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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논문]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Confessio Augustana) 3
정원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역사신학)
기사입력: 2017/04/26 [08:56]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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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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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정원래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의 탄생 배경, 믿음의 주요 조항들, 교회 안의 오용들, 고백서의 영향과 의의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III.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 교회 안의 오용들

제 22-28조항에서 토르가우 조항을 토대로 하여, 특히 교회 안에서 오용되는 것을 제거하는 문제에 강조점을 둔다. 그러나 이미 앞서 제시된 신학적 성찰에 따른 실천의 영역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들이다. 멜란히톤은 교회의 현장에서 가장 그르다고 판단되는 몇몇의 로마의 남용들에 대하여 지적한다. 이는 2부의 다음과 같은 서언에 내포되어 있다:

“우리 가운데 교회들이 [성경으로부터, 또는] 보편교회로부터의 신앙의 어떠한 조항에서는 불일치가 없으며, 단지 몇몇의 남용들, 이것들은 [일부는 역사 속에서 왜곡되었고, 또 일부는 강제적으로 유입되었으므로] 새로운 것(nova)이거나, 캐논의 목적에 반대되는 것으로 시대의 악에 의해 받아들여진 것들이 생략되었습니다. 간청하기를, 황제께서 변화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사람들이 자신들의 양심에 반하여 이러한 남용들을 준수하도록 강요되어서는 안되는지를 관대하게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 게다가 진리란 일반적인 소문이나 대적의 비난에서 찾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어떠한 것도 교회들에서 적절하게 행해지는 의식보다 더 의식의 품격을 유지하고, 사람들 사이의 존경이나 경건을 배양하는 것이 없음을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CA)

이러한 주장에 따라 멜란히톤은 교회 안에서 행해지고 것들 중, 역사 속에서 혹은 강제적으로 유입된 남용들을 개혁해야 하고, 나아가 선한 양심들에게 이들을 지키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멜란히톤은 이전부터 종교개혁자들에게 ‘새로운 믿음’을 전하는 자들로 비방하지만, ‘새것’이 아니라 ‘처음의 것’[원래의 것]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먼저 제 22-24조항은 성례론을 오용하는 것에 대하여 논박하고 있다. 제 22조에서 미사 때에 잔을 주지 않는 문제, 즉 평신도에게는 빵만을 제공한다는 점에 대하여, 이는 성서에서 그리스도는 분명히 두 종류의 만찬을 베풀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성경에 위배된다고 하였다. 평신도들에게 배찬을 거부하는 것은 또한 전통에도 반대된다. 이를 위해 멜란히톤은 키프리아누스, 교황(Gelasius)을 인용하기도 한다. 나아가 멜란히톤은 빵만을 제공하는 관습이 언제, 어떻게 교회에서 시작되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비록 니콜라스 쿠사누스(Nicolas Cusanus)가 콘스탄스 공의회(1414-18)에서 거론하였음만 제시한다.(CA. XXII).

제 23 조는 역시 신양성경과 교회 전통에 근거하여 ‘성직자 독신주의’를 반대한다. 가장 먼저 멜란히톤은 교황 피우스(Pius)역시 성직자 독신주의의 이유는 있으나, 다시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음을 거론한다. 성직자들 역시 결혼하는 것이 허용되어야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신자가 정욕에 빠지지 않기 위해 결혼하는 것이 의무다(고전 7:2)고 역설한다. 성직자 독신주의는 1075년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us VII)가 금식공의회를 통해 모든 성직자의 의무로 도입하였다. 그러나 디모데전서 4장 13절에 따르면, 혼인을 금하는 것은 미혹하는 영의 가르침이므로 거절되어야 한다.(CA. XXIII).

제 24 조에서는 ‘미사’(missa)의 희생적인 성격과 논쟁하고 있다. 멜란히톤은 종교개혁자들이 미사를 폐지했다고 고발당하고 있음으로 시작한다. 개신교인들에게서도 ‘미사’[예배]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멜란히톤은 온전한 미사는 신앙을 일깨우고 양심을 위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신자의 공동체가 더불어 경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로마가톨릭이 말하는 ‘희생제사로서의 미사’는 성경이 말하는 본래의 미사의 의미와는 다르다. 오히려 로마 가톨릭은 미사를 이익을 얻기 위해 타락시켰으며, 이들은 얼마나 광범위하게 율법에 반하여 보상이나 대가의 수단으로 미사를 드리고 있는지 모른다.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어떠한 신적인 일들도 미사처럼 이익을 위해 이용당한 것은 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는 것 같다.” 또한 ‘개인적 미사들’(privatae missae)은 폐지되어야 한다. 미사는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그리스도만을 기념하는 것으로 유일하고도 충분하다. 그러므로 미사는 유일회적 십자가 희생을 현실화하는 것뿐이다. 그 희생의 열매는 오직 신앙에 의해서만 전달되는 것이며, 미사는 사제에 의한 교회의 속죄제사(Sühnopfer)가 아니다.(CA. XXIV).

제 25항은 ‘고백’에(confessio) 대하여 거론한다. 제 11조에서 언급한 고해할 때 모든 죄를 낱낱이 셈하는 것에 다시 한 번 반대한다. 왜냐하면 우리 양심은 그런 방법으로는 결코 위로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찬을 받기 위해서는 선행하는 고해가 의무였다. 따라서 사면을 받는 믿음에 대하여는 매우 주의 깊이 가르쳐져야 한다. 즉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죄의 사죄를 가져오는 것이다.

고백은 하나님 앞에서의 죄의 고백과 하나님으로부터의 사죄의 선포로 이루어진다. 즉 사람 앞에서 고해하는 자는 자신의 모든 죄를 셈할 필요가 없으며, 또한 하나님의 사죄의 선포는 인간에 의해 부과된 배상에 결부되어 있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개신교에서는 고해성사가 복음이 제공하는 용서(Absolutio)에 맞게 인간의 죄성을 고백하는 것으로 가르쳐야 한다. 이러한 주장을 위해 멜란히톤은 시편 19편12절과 예레미아 17장 9절의 성경 말씀과 더불어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Johannes Chrysostomus)를 인용한다. 당시 유효한 교회법으로 여겨지던 그라티아누스의 법전(Decretum Gratiani)에 의지하여 고해성사는 성경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의해 채택되었다고 강조한다.

제 26조항은 금식이나 음식에 관한 교리와 일반적인 금욕과 자기 훈련 등을 내용으로 한다. 금식이나 다른 금욕적 규정들은 누가복음 21장 34절, 마태복음 17장 21절 그리고 고린도전서 9장 27절 등에서 기본적으로는 긍정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구원에 필수적이라거나 칭의를 위해 사역한다는 주장을 배제한다. 오히려 멜란히톤은 이러한 규정들이 첫째로 은혜와 믿음에 의한 칭의의 교리를 모호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둘째로 이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약화시킨다. 셋째는 이러한 규정들은 인간의 양심에 커다란 걸림이 된다.(CA.XXVI).

제 27조항에 따르면 수도사 서원 역시 ‘가정을 꾸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므로 반대한다. 멜란히톤은 수도원은 아우구스티누스 때는 자유로웠다고 말하며, 수도사들이 타락하면서, 규정에 규정이 더하여졌다고 이해한다.

이는 마치 새로운 형태의 감옥이라고 보았다. 게다가 수도사들은 자신들의 삶을 통해서 사죄의 공로를 쌓거나, 하나님 앞에서 칭의를 획득한다고 가르쳤다. 과거의 수도원은 성경과 교회에 유익한 다른 지식을 연구하는 학교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들은 자신들을 삶으로 사죄와 칭의의 공로를 쌓으며, 가장 완전한 상태로 가장한다. 수도사 서원을 제 2의 세례라고 하거나 또는 완전한 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시각은 성서에서 그 어떤 근거도 찾을 수 없는 엘리트적 의식일 뿐이다.(CA. XXVII).

제 28조항에 따르면 주교의 ‘맺고 푸는 권세’는 오직 세속적 권세가 아니라 영적 권세에 해당하는 일에만 연결된다. 주교들이 영적인 권세와 세속적 권세를 혼동함으로 커다란 혼란의 원인이 된다. 주교는 교회의 지도자로서 영적인 일을 돌보아야 한다. 주교들은 말씀을 전파하고, 성례를 관장하며, 올바른 말씀의 선포를 보장해야 한다. 교회는 스스로 세속적인 삶을 규율하는 세상적 삶에 속한 법을 제시하려고 시도함으로 정치의 영역에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

주교는 파문(성찬으로부터의 배제)을 선포함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이는 단지 말뿐이다. 외적인 강압, 즉 세상적인 힘은 주교에게 결코 허용되지 않았다. 주교직이 세상적인 관리의 권한에 들어가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주교는 복음에 반하는 것을 설교해서도 안 된다. 주교는 양심을 제한하는 혹은 구원과 관련된 어떤 법(금식, 절기 준수 등)을 제시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단지 공동체의 선한 질서를 위해 지시할 수 있을 뿐이다.(CA. XXVIII).

이러한 주교의 권위에 대한 이해 하에, 멜란히톤은 주교들이 복음에 합당하게 가르치거나, 올바르지 못한 관습을 완화하라고 요청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불화와 분열의 원인이 될 것이라는 경고도 담겨 있다.

“사도 베드로는 감독들에게 주인의 위치에 올라 교회들을 주장하지 말라고 금한다(벧전 5:30). 그런데 우리의 의도는 주교들에게서 치리권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복음을 순수하게 가르치라는 것과, 죄를 짓지 않고는 준수할 수 없는 몇 가지 관습을 완화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어느 하나도 양보하기를 거부한다면 자신들의 완고한 태도로 불화와 분열의 원인을 제공한 사실에 대해서 훗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CA.XXVIII).

결론(Epilogus)

“... 여기에서 말해지거나 예를 들 어떠한 것도 다른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닙니다. 단지 이러한 이들은 말해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운데 어떠한 교리나 의식도 성경과 보편교회에 반대되는 것은 받아드릴 수 없음이 이해되길 바랍니다. 이로써 우리가 어떠한 새롭고 불경건한 교리도 우리의 교회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애써 주의하고 있음이 명확해질 것입니다.”(CA.) 결언 역시 상당히 공손한 표현으로 마무리 하고 있다.


VI.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의 영향과 의의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은 이어지는 종교개혁의 역사에서 상당한 정치적 파장을 불러 왔다. 예를 들면 성찬식에 대한 견해의 차이 때문에 스트라스부르크, 콘스탄츠, 메밍엔, 린다우 등의 도시들은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들은 츠빙글리의 성찬 견해를 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1555년 ‘아우구스부르크 종교 평화’에서 이 아우구스부르크 고백에 참여한 자들만이 가톨릭과 더불어 제국 법에 따라 동일하게 간주되었다.

또한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이 낭독되자 즉각적으로 로마 가톨릭진영의 논박이 나왔다. 1530년 8월 3일 가톨릭 측이 발표한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 반박』(Confutatio Confessionis Augustanae)은 에크, 요한 파브리, 코클레이우스 등의 20여명의 가톨릭 학자들에 의해 준비되었고 낭독되었다. 이들은 주로, “원죄를 급진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공로주의 사상을 배격한 것들이 비난의 대상이다. 오직 신앙에 반대하여 칭의 때 신앙과 행위의 연계가 강조되었다. 회개는 완전한 죄의 고백, 즉 모든 행위의 죄를 낱낱이 계산하는 것을 전제로 하였다. 아우구스부르크 신앙 고백 제 8항의 “거룩한 자들의 모임이요 참된 신자들의 모임”이라는 교회의 개념 정의는 결국 도나투스적이라고 하여 거부되고 말았다. 성인 숭배에 대하여는 교회에서 지속되어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반박은 성직자 독신주의와 평신도의 양종 선찬 금지를 수용하기로 하였다. 동시에 미사를 비판하며 자국어를 사용하자는 의견을 거부하였으며, 개인미사나 침묵미사를 지속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미사의 희생적 성격을 계속 강조하였다. 수도사의 서약은 영원한 삶을 향한 관점에서 특별한 공적으로 이해되었다. 주교의 세상 권세와 영적 권세는 모두 성서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충분히 근거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아우구스부르크 신앙 고백을 조목조목 논박하고 있다.”

이러한 가톨릭 진영의 논박서는 황제와 가톨릭 진영의 제후들에 의해서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에 대한 반박서로 인정되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멜란히톤은 이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 반박』 문서를 입수하고, 여기에 대한 재반박과 『아우구스부르크 신앙 고백의 변증서』(CA Apologia)를 이듬해 출판하였다. 『아우구스부르크 신앙 고백』과 그 『변증서』는 상호 보완적이며 동시에 독일 루터교 신앙의 기초를 형성하였다. 1580년 이 두 신앙 고백문은 『일치서』(Konkordienbuch)안에서 루터교 신조로 채택되었다. 1540년 멜란히톤은 『변증서』의 내용을 통해 『아우구스부르크 신앙 고백 개정판』(Confessio Augustana Variata)를 출판하였다. 1541년에 스위스의 종교개혁자 칼빈도 이 개정판에 서명하였다.

현 루터교 세계 연맹은 이 초기의 『아우구스부르크 신앙 고백』이야 말로 “하나님의 말씀의 적절한 해석”(zutreffend Auslegung des Wortes Gottes)로 여긴다. 1973년 독일의 루터교단은 개혁파 교회에 대항하여 『아우구스부르크 신앙 고백』에 포함된 정죄(성찬, 기독론, 예정론 등)를 철회하는 유럽 전체의 “로이엔베르크 일치”(Leuenberger Konkordie)에 서명하였다. 『아우구스부르크 신앙 고백』 20세기 후반 들어와서 가톨릭 진영으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20세기 후반 가톨릭신학이 루터와 함께 종교개혁에 커다란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때 신학 교수였던 요셉 라칭거, 즉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1958-63년 프라이징과 본에서 멜란히톤 세미나를 개최하고, 제자들에게 멜란히톤을 연구하도록 하였다. 1980년대에 와서는 지도적 위치의 가톨릭신학 교수들, 특히 튀빙겐 대학 신학 교수였고, 현재 “그리스도교도 통합 추구를 위한 교황청 심의회” 의장인 발터 카스퍼 추기경은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을 가톨릭에서 인정할 것인가를 토의한 뒤 이 신앙고백은 가톨릭이 인정할 수 있는 입장들을 표명한다고 했다.

V. 나아가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아우구스부르크 신앙 고백』은 크게 몇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첫째는 종교개혁의 교리와 정신을 처음으로 황제와 가톨릭 영주들의 앞에서 체계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보름스 국회에서는 루터 개인의 변론 성격이 컸다면, 이 아우구스부르크에서의 신앙 고백은 황제와 로마 가톨릭 영주들 앞에 개신교의 진영의 수렴된 교리를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진술하였다.

둘째는 회의에서 멜란히톤과 개신교 영주들이 향하였던 것은 서로 논의를 통해 성경과 전통에 일치하는 가르침을 찾아내려고 시도한다. 따라서 논쟁을 일으키는 표현과 단어의 사용도 절제하고 있다. 종교개혁의 정신을 매우 온건하게 표현하고 있다. 때문에 로마가톨릭과의 대화에서 중요한 접촉점으로 사용된다.

셋째는 전체 내용을 구분함에서 서로가 공통으로 인정하는 교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차이점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각 조항들을 성경과 교부들의 글을 통해서 논증하고 있다. 새로운 것이 아니라 처음 것이라는 결론을 일관되게 담고 있다. 로마가톨릭의 그릇된 남용들은 바로 성경과 교부들에 의해 거절되는 것들이다.

넷째는 신앙고백 전체의 내용은 개신교의 ‘이신칭의’의 믿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제 1조 하나님에 대한 고백에서 제 28조항의 주교의 권세에 관한 논의에 이르기까지 멜란히톤은 ‘이신칭의’의 정신을 잘 부각시키고 있다.

다섯째는 이러한 공동의 신앙고백을 통해 종교개혁(루터교) 진영의 믿음과 교리의 일치를 이끌어 내었다. 이 일치된 신앙고백에 루터교 진영의 영주들과 도시대표자들이 서명하며, 연대와 동맹을 형성하였고, 로마가톨릭과의 대치에 힘을 결집할 수 있었다. 그 결과들이 1555년 ‘아우구스부르크 종교 평화’에까지 이어졌다.

현대에 이르러 멜란히톤의『아우구스부르크 신앙 고백』은 비록 대화의 모티브를 제공하는 것으로 주목을 받지만, 개신교 신앙의 근본적인 토대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진술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 『아우구스부르크 신앙 고백』을 고찰하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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