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성경해석/설교
[김순정목사 설교]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마 9:13 구약을 인용하신 예수님
기사입력: 2017/04/08 [20:08]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김순정
배너
▲     ©리폼드뉴스

마태복음 9장은 38절로 되어 있습니다. 1-8절은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주시고 죄사함을 선포하신 내용입니다. 9-13절은 세리 마태를 부르시고 제자로 삼으십니다. 14-17절은 요한의 제자들이 금식의 문제로 예수님께 질문하는 내용이고, 18-26절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주시고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을 고치십니다. 27-38절은 두 소경, 말 못하는 자를 고쳐주신 사건을 다룹니다. 이 중에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은 13절입니다.

1. 배경(9-12)

예수님은 가버나움으로 가셨고 그곳에서 여러 사람이 중풍 병자를 들 것에 눕혀 데려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고쳐주십니다. 그 사건이 있고 나서 예수님은 그곳을 떠나 지나시다가 마태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십니다. 예수님은 세리 마태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9).

세리는 헬라어로 텔로네스라는 단어입니다. 세금 징수원이라는 의미입니다. 로마 제국은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식민지 사람들 중에 일부를 택하여 그 일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이 세리들은 로마에서 거두어들이라는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이 거두어 자신들이 취하였습니다. 그래서 동족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비난을 받았습니다(9:10-13; 21:31).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리를 이방인과 같이 취급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초대하고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그때에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와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습니다(10).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고 했습니다(11). 이는 비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리스도라는 예수님이 어찌 죄인들과 함께 먹을 수 있는가? 그것도 나라를 팔아먹고 동족에게 세금을 몇 배로 거두어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악한 자들과 함께 먹을 수 있는가?

예수님은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12). 의사는 건강한 자에게는 필요 없는 존재입니다. 의사는 병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를 건강한 자라고 여겼습니다. 반대로 세리들은 죄인으로 여겼습니다. 이방인과 같이 여겼습니다. 이 말은 구원받은 선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들은 의인으로 구원에 이를 자들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2. 구약을 인용하신 예수님(13a)

예수님은 자신을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에게 구약의 말씀을 가지고 설명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13a).

이 말씀은 호세아 6:6의 말씀입니다. 거기에 보면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되어 있습니다.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이 패망하고(BC 722년) 남유다가 아직 멸망하기 이전 710년을 전후로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을 깨고 우상숭배를 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버려 멸망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유다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죄악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 멸망한 북이스라엘과 죄악을 범하고 있던 유다에 경고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특히 호세아 6장에서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면 은혜를 주실 것과,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죄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적합니다. 그 가운데 핵심이 바로 하나님은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으시고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형식만 남은 가식적 신앙을 하나님은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 역시 그러한 형식만 남은 가식적 신앙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리와 죄인들을 비난하고 자신들은 의인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을 정죄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호세아서의 말씀을 가지고 그들을 깨우치십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외친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을 깨닫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성경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했던 자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말씀을 그들에게 던져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은 형식만 있고 실상은 알맹이가 없는 제사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의 내용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은 의인이고 세리들은 죄인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과 같이 동물과 같이 취급하고 정죄하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은 의인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들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는 호세아 시대의 조상들과 같은 죄악을 범하는 것이었습니다.

3.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13b)

예수님은 이제 그들에게 선언하십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13b).

원문에 보면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로 시작합니다. 즉 13a에 주신 말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반대로 죄인을 부르러 왔기 때문이다’는 의미입니다.

“나는 왔노라”(엘돈)는 말은 원문에 부정과거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분명히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누구시기에 이 세상에 이런 목적을 가지고 오셨는가? 예수님은 이 단어를 통해 자신의 정체를 알려주십니다. 즉 자기 계시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두 단어를 대조하십니다. 의인(디카이오스)은 의로운 자, 거룩한 자, 흠이 없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죄인(하말톨로스)은 죄 있는 자, 죄를 범한 자, 범죄자라는 의미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을 의인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세리들을 죄인이라고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의인관, 구원관에 대해 지적하십니다.

스스로를 의인으로 여기던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행함, 혈통, 할례 등을 구원의 조건으로 여겼습니다. 나면서부터 그들은 구원받은 자들이며,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자들이며, 할례를 통해서 구원을 당연히 따 놓은 자들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보기에 세리들은 구원에서 제외된 죄인들이라고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의인으로 여기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구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에게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의인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것입니다.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예수님이 과연 누구라는 말인가?

결론

오늘 우리는 스스로 의인이 된 자들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가 필요한 죄인들입니까?

이 진리를 분명하게 깨닫는다면 교회에서든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교만할 수 없습니다. 겸손하게 됩니다. 나를 드러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다른 이들을 세워주는 자가 됩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배너
배너
배너
가장 많이 읽은 기사
사랑의교회 공동의회 정관변경 안건 상정 연기 /리폼드뉴스
대전고법, 충남노회 정기회측 인정 판결 /소재열
종교인 과세, 교회 50~60% 이상 근로장려세제 대상 될 수도 /리폼드뉴스
[이형만 목사 논단] 총회 파회 이후 올바른 총회역할에 대한 제안 /이형만
총회화해중재위, 산이리교회 화해 위한 조건부로 난항 /리폼드뉴스
부총회장, 총무 입후보자들의 경쟁력 /소재열
분당중앙교회 콘퍼런스 , ‘종교인과세에 대한 기독교 입장 선언문 /리폼드뉴스
광주지법, 광주중앙교회 명도소송 기각 “평석” /소재열
명성교회 "법률행위 대표자 원로목사인가 임시당회장인가" /소재열
함평노회 교육부 주최 "교회정치와 행정(정관법) 세미나 개최 /김종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