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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특별기고] 개혁주의가 가르치는 목회자의 청빈생활
박희석 교수(총신대학교 전부총장 및 신대원장)
기사입력: 2017/04/05 [08:33]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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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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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희석 교수(총신대학교 전부총장 및 신대원장)
한국교회 초기부터 목회자들은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오직 교회만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교회를 부흥시켰다
. 가족들은 고생하였지만 청교도적 청빈생활 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으며, 그 결과 인격적, 영적 능력을 인정받는 지도자가 되었다. 이러한 전통이 한국교회를 크게 부흥시킨 한 요인이 되었다. 이 전통은 칼빈에서 시작된 개혁신학의 전통이라 할 수 있다. 본 논고는 목회자가 지켜야할 청빈생활에 대한 칼빈의 기독교강요, 주석, 설교, 등을 분석 한 것이다. 칼빈의 청빈사상 가운데 현재 우리 현실에 비추어 물욕과 야심만 취급 한다.


1.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모범

 

칼빈은 하나님과 동일본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나약한 종의 모습으로 탄생하여 청빈한 생활을 하다 십자가를 지신 그 모범을 목회자가 따라야 한다고 가르친다. 메시아는 유대인들이 기대한 것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제왕적이 아닌 너무나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기 때문에 누구도 그를 자신들의 왕으로 인식하지 못하였다. 이 그리스도의 비천한 청빈이 칼빈의 신학의 중심이 된다.

 

칼빈은 바울신학의 초점도 청빈에 두고 있다. 고후12:10의 주석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육체적으로 약하고,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당하는 것을 기뻐한 이유는 바로 그때 영적으로 강하였기 때문이다.”육체적으로 약할 그 때 성령의 충만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많은 성경을 기록하였다. 바울도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가난, 질병, 핍박, 등의 어려움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영적축복을 경험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인간은 가난과 십자가를 통해 훈련 받지 않으면 마치 길들일 수 없는 혈기 왕성한 말이 날뛰듯 여지없이 방종과 부패에 빠지기 때문에 그러한 연단이 필요하다고 칼빈은 강조한다.

 

2. 근검절약한 생활

 

칼빈은 목회자가 양 극단에 빠지지 않고 균형 잡힌 생활할 것을 권한다. 의복, 음식, 재물 등을 무절제하게 낭비하는 사람에게 경고하면서 동시에 지나치게 양심에 족쇄를 채워 일상생활에 필요한 온갖 것들을 금지하는 행위도 반대한다.

 

그는 성도가 자신이 소유한 물질을 임의로 사용할 수 있지만 가능한 탐닉과 사치를 억제하고 과다한 낭비를 제거하라고 한다. 음식이나 의복 등 생활필수품들은 항상 즐겁게 사용해야 하지만 지나치면 죄가 될 수 있다. 칼빈은 초대교회 감독들은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식사까지 절약하면서 구제한 사례를 높이 평가한다. 칼빈의 제네바 시의회는 1558년에 빈곤퇴치를 위한 목적으로 사치금지법을 제정하였다. 일부 부유층에서 음식과 의복을 위해 과다한 생활비를 지출하면서 사치하기 때문에 파산하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에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항상 새로운 유행에 민감하여, 허영심을 만족시킬 새로운 옷이나 장식품을 구입하려고 밥을 굶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제네바 시의회는 탐욕, 낭비, 방탕, 사치, 각종 경박한 생활 등을 금하는 법을 만들었다.

 

동시에 반대로 성경의 가르침보다 도가 지나치게 사람의 양심에 족쇄를 채워 일상생활에 필요한 온갖 것들을 다 금지하는 행위도 반대한다. 칼빈은 인간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정신적 즐거움을 거절하는 극단적 금욕을 강조하는 스토익 철학을 비난하였다. 음식, 의복, , 각종 열매, , , 상아, 대리석, 등은 하나님이 우리가 즐기도록 주셨는데 모든 것의 무소유를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칼빈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물질을 그 목적에 따라 사용하면 잘 못이 없다는 것이다. 물질을 사용하는 것은 양심의 문제이기 때문에 명문화된 법으로 제재할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나 성경은 사치를 금하고, 검소하게 절약하여 사용하라는 일반적 규범을 제시하고 있다. 칼빈은 성도들에게 식욕, , 의복, 등이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지만 지나친 과욕은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므로 세상물질에 만족한 생활을 하지 않도록 경고한다.

 

나아가 칼빈은 궁핍한 사람은 인내로 참고 견디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초라한 의복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값비싼 의복을 입으면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다. 초라한 음식에 만족할 줄 모르고 더 화려한 식사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사람은 막상 그런 식사를 할 형편이 되면 무절제하게 사치하고 남용하게 된다. 초라함을 견디지 못해 힘들어 하면서 억지로 참는 사람이 부귀와 영광을 얻으면 오히려 거꾸로 교만해져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다고 경고하였다. 그래서 성도는 바울의 모범을 따라 비천과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워야 한다.

 

3. 예배와 목회자의 생활

 

칼빈은 중세교회의 외형적 화려한 예배를 비판한다. 교회는 천주교회처럼 사치를 위해 돈을 낭비하지 말고 항상 모든 일에 근검절해야 한다. 그는 우리가 주님께 모든 것을 드려 예배해야 하지만 그 예배는 영적예배이어야지 돈을 낭비하는 화려한 예배는 미신적 행위로 규정한다. 경건의 규범은 예배의 외형적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돈이 낭비되지 않는 단순하고 진실한 영적예배이어야 한다. 칼빈은 우아하고 화려한 것을 사랑하여 뻔뻔스러운 행동을 하게 된다면...화려한 것에 온통 감각을 다 솥아 부어서 정신이 완전히 파묻혀 버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대리석, , 그림들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그 마음이 마치 대리석 같이 굳어지고 마치 금속처럼 변하고 그림 속의 인물처럼 되어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고 중세교회를 비판하였다. 그는 중세교회는 온갖 종류의 값진 고가품들로 교회 건물을 비롯한 외형을 화려하게 꾸미는데 정성을 다 기울였기 때문에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질책하였다. “천주교 교황은 마치 어린아이가 인형에만 몰두하듯 모든 관심을 성찬대, 조각 작품, 화려한 교회당건물, 금제품, 고가의 대리석, 등에만 있다. 교회의 위엄은 모든 성도가 함께 모여 믿음과 경건함으로 드리는 예배에 성령이 함께 하는 내면성에 있다.”

 

칼빈은 가토(Gato)가 말한 의복에 대한 큰 관심은 덕()에 대한 크나큰 무관심을 만들어 내고.” 격언에 온통 육체에 마음이 가 있는 사람은 대개 영혼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말을 명심하라고 권한다. 교회도 외형에만 관심을 둔다면 영적인 일과 내면성에 무관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칼빈은 사역자들의 청빈을 크게 강조한다. 칼빈에 따르면, 초대교회 장로들 가운데는 자발적으로 자기의 모든 소유를 하나님께 바치고 스스로 가난한 하게 된 자가 많았다. 그래서 사역자들에게 음식이 부족하지 않았고, 가난한 자들도 소홀함을 받지 않도록 세심한 분배가 이루어졌다. 다른 사람에게 검소한 생활로 모범을 보여야 할 사역자가 화려함과 사치스러운 생활로 재물을 허비할 정도로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고, 필요한 것을 채우기에 충족할 정도로만 소유하도록 그들을 적절하게 지원하였다. 초대교회의 사제들은 재물 관리에 아주 엄격하였으며 모든 감독들이 철저하게 사제들을 감시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세교회는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전통과 역행하는 일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행하였다. 가난한 성도들의 입에 들어가는 빵부스러기를 빼앗아 교회의 아름다운 성물들과 자신들의 화려한 가운을 구입하고 부패한 배를 채우는데 사용하는 등의 일들을 자행하였다. 안타깝게도 중세는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을 무시하고 교회가 외적 화려함과 성직자의 부를 축적하는데 혈안 된 것을 칼빈은 통탄한다.

 

칼빈은 성직자들이 검소하고 모범적 생활을 해야 함을 너무나 강조면서 당시 천주교회 사제들을 비판한다. “검소와 절제로 모범적 생활을 해야 할 사제들이 마치 군주처럼 많은 하인들을 부리고 건물을 화려하게 꾸미고, 찬란하고 우아한 의복으로 치장하며, 연회를 즐기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이들은 마을과 가축에게 손을 댈 뿐 아니라 광대한 지역을 먹어치우고 급기야 국가 전체를 손아귀에 잡고 있으니, 과연 이보다 더 모순 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칼빈은 성직자들의 생활은 원래 가난, 검소, 정숙, 겸손해야한다고 한다. 칼빈은 목회자가 지켜야 할 세 가지 중요한 원리를 제시한다. 1), 풍족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지 말고, 검소, 단순, 겸손한 생활을 해야 한다. 2) 교회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혐오스런 오락이나 사치한 생활은 금해야한다. 3)초대교회 목회자가 검소하고 가난하게 생활한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목회에 가난과 빈곤을 규칙으로 세우셨기 때문이다. 그는 주님께서 목회자를 위해 세우신 규칙은 아주 가난한 생활이라고 정의한다. 칼빈은 목회자들은 주님이 몸소 실천하시고 세우신 검소하고 가난한 생활원리를 지키고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도한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이 자신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날마다 순간순간 필요를 따라 새로운 것들을 공급해주시는 사랑에 만족해야 한다.

 

4. 목회자들의 교권을 경계하라

 

칼빈은 야심이 인간의 죄악 된 부절제한 본성을 나타내는 또 다른 한 방편으로 본다. 높은 지위에 오르려는 야심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들 끼리 서로의 경쟁심으로 인해 자신을 겸손하게 하기가 아주 어렵다.’ 이런 야심을 지닌 높은 지위의 소유자는 거만하고 너무나 호전적이어서 복음을 바르게 믿고 생활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칼빈은 야심을 불신 사회뿐 아니라 특별히 교회 내에 존재하는 모든 악의 어머니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자기의 지위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며 온유와 절제의 은사를 간구해야 한다.

 

칼빈에 따르면 초대교회는 감독이나 주교를 택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만들어진 규칙을 준수하였으나, 중세교회 와서 불법이 자행되었다. 최고의 법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문서들 속에 사장(死藏)되어 있다. 칼빈은 당시 술주정뱅이, 음행하는 자, 도박꾼, 각종 범법자들과 자격미달 자들이 권모술수에 의해 주교직에 오르고 있다고 질타한다. 중세교회가 탐욕이 가득한자들을 주교와 감독직에 임명하는 것은 선택 과정에 사전 계획된 음모에 의해 승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교 후보자 자격 심사를 할 때도 시험은 완전 형식적이었다. 유치기 짝이 없는 시험에서 결점이 발견된다 하여도 금권과 개인적 비호아래 사제직에 얼마든지 임명되었음을 지적한다. “돈이 있다거나 아니면 누군가의 호의를 받는 경우라면 서품이 얼마든지 가능하였다. 또한 그들이 성직 수여를 받기 위해 제단에 나갈 때도 동일한 조작이 행하여진다...그런 일을 오랫동안 계속해오다 보니, 이제 그들 스스로 그 일이 지극히 적법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더욱 경악할 일은 누군가가 그런 일은 불법임을 비판한다면 그 사람을 붙잡아 사형언도를 받게 하였다. 항상 불법을 합법으로 가장하여 자행하였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것이 잘 못된 것임을 인식도 못하였다. 설령 어떤 사람이 잘못을 지적하면 교권이 그 사람을 죽여 버리기 때문에 불법은 더욱 대담하여졌다.

 

칼빈은 매매나 혈연이나 다른 인맥의 연줄로 모든 성직이 임명되었다고 밝힌다. “값을 지불하고 성직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면 혈연이나 인척 관계로 직분을 받고, 또 어떤 이들은 부모의 영향력으로 받고, 또 어떤 이들은 스스로 아첨하고 아양을 떨어서 직분을 받기도 한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임명된 무자격 사제들은 목회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교회 일에는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온갖 종류의 악행과 범법행위를 자행한다...그들의 도덕성은 어떠한가? 오늘날 그처럼 사치하고, 나약하고, 쾌락적이고, 온갖 종류의 정욕으로 악명 높은 사람들의 집단이 없고, 이들만큼 온갖 사기와 협잡과 반역과 배신에 능수능란한 대가들도 없고, 해를 끼치는 일에 그렇게 교묘하고 대담한 자들도 없다. 그들의 뻔뻔함, 교만, 탐욕, 잔인함, 무절제한 방종 등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이러한 악행을 견디느라 온 세상이 온통 지쳐 있는 형편이다.”

 

이렇게 불법을 자행하면서 사제 직분을 남발하다보니 교회 문제로 법정은 언제나 송사문제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논란과 시비가 폭발하고 법정 고발과 고소가 줄을 잇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칼빈은 그러면서도 그들은 어찌나 뻔뻔스러운지 온갖 망령되고 추잡한 것들을 교회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모든 책망을 면하려하였다. 이런 악행을 하면서도 자신들은 거룩한 사도적 계승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교회가 부흥한다고 자랑을 하였다고 한다.

 

이런 무자격 범법자들을 성직자로 임명하였기 때문에 교회가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것은 자연스럽다. “이런 비열한 방법을 통해 모든 권력은 로마에 집중되었고 교회의 질서는 완전히 와해되었다. 그러자 야망 있는 자들, 탐욕이 가득한 자들, 성직 매매를 일삼는 자들, 불경한 자들, 축첩자들, 근친상간을 일삼는 자들 등 온갖 죄악 된 자들이 각지로부터 로마로 몰려들어 교황의 권위로 교회의 명예로운 직분을 얻기 위해 애쓰며, 온갖 속임수와 협잡과 폭력이 난무하였다고 한탄한다. 그 결과 교회의 모든 질서가 무너지고, 지방 교회들은 갖가지 잔인하고 비통한 일들이 계속 발생하였다. 그런 부도덕한 사람들이 자행하는 여러 종류의 모순은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사람들의 질서 가운데 그보다 온갖 추잡한 악행들로 더럽혀져 있는 것이 없으며, 그 이상 분열과 증오, 파당심, 음모가 그렇게 맹렬하게 타오른 곳이 없다는 것이다...그러나 사창굴이 아니고 순결한 성소인 곳은 열 곳 가운데 한 곳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식사에는 검소한 면이 나타나는가? 그들은 마치 돼지들처럼 살이 피둥피둥 쪄 있다.”

 

이런 악한 자들이 사기수법으로 어리석은 백성의 돈을 갈취하고, 순교자들의 유품을 갖고 다니며 장사하고, 죽은 시체의 뼈를 순교자의 유골로 속이는 등 온갖 악행들을 일삼으면서 교회를 부끄럽게 한다고 칼빈은 지적한다. 이것이 돈과 권력만 따르는 부도덕한 집단들이 만든 유산들이다. 그들이 돈과 권력을 탐한 결과 종교개혁이란 심판으로 최후를 맞았다.

 

칼빈이 밝힌 중세말기 사제들의 타락상이 마치 합동교단 일부 지도자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는 느낌이다. 돈과 교권 욕심에 사로잡혀 합법을 가장한 권모술수, 탈법, 금권선거 등 온갖 비리로 지탄 받으면서 난리인데도 염치도 없이 뻔뻔하게 계속 다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특히 총신대학교를 둘러싸고 논란이 되고 있는 각종 비리 사건은 오래 전부터 대부분의 학생, 교수, 직원들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오히려 부패한 권력에 아부하고 기생하는 사람들까지 있어 언제 깨끗한 개혁이 완성될지 염려스럽다. 칼빈이 지적한 것처럼 얼마나 수많은 성도들이 타락한 교권에 눈먼 자들을 보면서 한탄하고 있는가? 우리교단의 문제로 얼마나 많은 법정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가? 그런데도 한 사람도 회개를 부르짖지 않는 현실이 통탄스럽다. 칼빈이 가르치는 청빈사상을 실천하여 옛 전통과 명예를 회복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