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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논문] 성전과 성품 1
김희석(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신학)
기사입력: 2017/03/22 [10:38]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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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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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3회 총회 개회를 앞두고 성찬식을 거행하면서 그리스도 십자가 아래서 모두가 하나임을 고백하며 성찬식에 참여하고 있다     ©리폼드뉴스



이 글은 김희석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언약신학의 관점에서 그리스도인의 성품에 대해 연구하고 제시한다. 창조의 사건에서, 구약의 구속역사에서, 신약에서 나타난 성품을 제시하고 있다.


I. 들어가는 말

우리는 성품교육이 중요해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일반 학교 교육의 현장에서는 대학진학과 취업을 위해서 좋은 성적을 획득하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가치로 이미 자리 잡았고, 그런 영향 아래에서 기독교 교육의 자리 역시 계속 좁아져만 가는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나를 보내신 이유를 고민하고 묵상하며 자신의 인생의 길을 걸어가게 하는 진정한 의미의 인격적인 교육이 절실한 시점이 되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자명하다.
 
사회망이 개인화되어가면서 인격적인 관계를 온전히 경험하지 못한 다음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양육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가?

우리가 진리의 책으로 고백하는 성경은 이러한 인격적 교육 문제에 있어서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을까? 한 사람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가르쳐 참된 인격체로 양성해내기 위해 우리가 성경에서 배워야 할 교육의 의미와 방향성은 어떤 것일까? 교육에 있어 성경의 많은 가르침이 있겠으나, 본고에서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연구 주제로 택했다.
 
그리고 이러한 성품의 주제를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성전에 대한 개념을 토대로 이해해 보려고 한다. 이 두 가지 주제는 다소 서로 달라 보일 수 있겠으나, 사실은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리스도인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라는 본질적 관점에서 함께 고찰되어야 하는 관계를 갖고 있다. 본고에서는 먼저 성전의 개념에서 대해서 다룬 후, 그 성전 개념이 그리스도인의 성품으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창조 및 구속사의 순서를 따라 살펴보려고 한다. 그 후에 이런 성전과 인품의 관계가 우리 교회의 교육현실에 어떻게 반영될 수 있을지에 대한 함의를 고찰하고자 한다.

II. 창조사건에 나타난 성품

우리는 먼저 ‘성전’이란 무엇인지 그 정의에 대해 고찰해야 한다. 성전이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을 말한다. 하나님의 신현과 임재가 있는 곳이 바로 성전이다. 구약성경의 경우, 이러한 성전 개념이 명확하게 드러난 경우가 건물로서의 성전, 곧 출애굽 때의 성막과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다. 이 경우에 한정하면, 성전이란 건물 개념과 깊은 연관을 맺게 된다. 그러나 성전 개념은 이러한 건물 개념에 제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전의 핵심은 건물이 아닌 하나님의 임재 사건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임재하신 곳이 성전이며,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있는 곳이 바로 성전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성전 개념을 가지고 성경의 창조 사건과 구속사 사건의 중요한 장면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가장 먼저 살펴보아야 할 본문은 창세기 1:1-2:3이다. 대개 ‘창조 기사’(creation account)라고 부르는 본문이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온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역사를 기술하고 있는 본문이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온 세상을 창조하셨고, 6일째 되는 날 창조의 정점에 인간을 창조하셨다. 이러한 창 1:1-2:3의 창조기사는 ‘하나님께서 피조세계를 어떻게 창조하셨는가’에 대한 설명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창조의 가장 기본적인 뜻은 ‘무에서 유로의 창조’(creatio ex nihilo; creation out of nothing)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고, 그분의 전능하신 손길에 의하여 존재하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창조기사에서 ‘창조 사건의 객관적 기술’이라는 사실 외에 또 다른 의미를 파악해 내야 한다. 바로 하나님의 창조 행위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피조세계에 대하여 ‘질서를 부여하시는 왕적인 통치 행위’였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맨 처음 세상을 창조하셨을 최초 시점을 묘사한 창 1:2에서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라고 기록하여, 모든 것이 물로 덮여 있었음을 묘사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후 1일부터 6일까지 이러한 상태에 대하여 질서를 부여해 나가신다. 제 1일에는 빛을 창조하사 빛과 어둠을 구별하셨고, 2일에는 물을 위의 물과 아래의 물로 나누어 구별하셨고, 제 3일에는 아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여 뭍이 드러나게 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는 ‘질서를 부여하시는 통치 행위’라고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통치행위는 시 104:9에서 “주께서 물을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표현되었다.
 
즉 창 1:1-2:3의 창조기사는 ‘무에서 유로의 창조’인 동시에 ‘왕적 통치 행위’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동시에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를 토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피조세계 전체를 하나님의 ‘성전’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은 온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거하실 공간과 시간이 되게 하시고, 그 피조세계를 통해서 온전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신 것이다.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각각의 존재에게 부여된 기능을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창조기사에서 한 가지 특징적인 사건을 더 언급해야만 한다. 바로 제 6일에 인간을 창조하신 사건이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의 통치자로 피조세계를 창조하시는 그 절정의 시점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셨다. 그렇다면, 성전으로서의 피조세계 개념과 인간 창조는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그 연결점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창 1:26-28의 본문을 살펴보아야 한다.

창 1:26-28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구절에 나타난 핵심 메시지는 인간을 향하여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되고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라’는데 있다. 요약하면 ‘수가 많아지게 되라’는 명령과 ‘다스리라’는 명령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이러한 명령을 위하여 인간에게 주신 정체성이 26절에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라는 표현에 정의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창조의 정점인 인간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된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야 한다. 개혁주의 전통에서 이 구절은 대개 인간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창조된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인격성을 닮아 하나님의 성품을 모형으로 하여 창조된 ‘인격적인 존재’라는 의미로 생각해 온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매우 적절하며, 우리의 주제인 ‘그리스도인의 성품론’에 중요한 의미를 던진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어졌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닮았음’ 즉 ‘유사성’에 대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지어졌고, 지(知)·정(情)·의(意)의 인격을 지닌 존재로 지어졌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살면서 그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삶의 열매를 맺는 것이 인간의 삶의 기본적인 목적으로 정의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형상’과 ‘모양’이라는 말을 ‘하나님의 성품’으로 이해하면서도, 조금 더 깊이 나아갈 필요가 있다. 고대근동 문화권에서 ‘형상’과 ‘모양’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독특한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이 두 표현의 한글번역과 원문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창세기 1장 26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개역개정에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로 번역된 ‘브짤메누’는 전치사 ‘베’ + 명사 ‘쩰렘’ + 1인칭 복수 대명접미사 ‘누’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의 모양대로’로 번역된 ‘키드무테누’는 전치사 ‘케’ + 명사 ‘드무트’ + 1인칭 복수 대명접미사 ‘누’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표현인 ‘브짤메누’에서 전치사 ‘베’는 매우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을 따라’라고 번역하는 것보다는 ‘∼로서’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게 생각된다. 바로 뒤에 나오는 전치사 ‘케’가 ‘∼처럼’ 혹은 ‘∼로서’라는 보다 좁은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쩰렘’의 해석이다. 고대근동에서 ‘쩰렘’이 기본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육신적 현신’(physical representation)이다. 즉, ‘쩰렘’이란 그것이 가리키는 실제의 어떤 존재가 그 ‘쩰렘’을 통해서 현존하게 된다는 의미를 가진다. 한국어로는 ‘상’으로 번역할 수 있겠고, 신적 존재에 대한 경우라면 ‘신상’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브짤메누’는 ‘우리의 상으로’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은데, ‘우리의 존재를 대신 드러내는 현존으로서’라는 의미가 된다.
 
이제 ‘키드무트’의 경우를 보자. 전치사 ‘케’를 ‘∼를 따라’로 번역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드무트’는 ‘다마’ 동사의 명사형으로, ‘유사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육체적 현존이나 영적 유사성을 모두 의미할 수 있다. 따라서 ‘키드무트’는 ‘우리의 모양을 따라’로 번역하고 ‘우리를 닮은 존재로서’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이해를 기초로 했을 때,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또한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것은 첫째, 하나님을 닮은 영적인 성품을 지닌 존재이며, 둘째, 하나님의 현존을 피조세계 가운데 보여주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창 1:1-2:3의 문맥에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창 1:26의 뜻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왕적 통치행위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그 가장 마지막 정점에서, 그동안 창조하신 모든 만물을 다스릴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동안 지으신 피조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왕적 통치권’을 인간에게 위임하셨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피조세계를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가 있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으셨다는 것은 인간 창조와 관련하여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을 닮은 유사성을 지녔다는 점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첫째, 인간이 하나님을 닮은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존재로 지어졌기에 하나님의 성품이 인간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는 의미이다.
 
즉, 인간의 성품은 하나님의 인격적인 성품을 드러내도록 지어졌다. 둘째,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인간 성품’의 특징은 그냥 하나님의 성품과 유사한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 성품의 인격성은 인간이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다는 사실이 기억되어야 한다. 인간은 이 피조세계에 임재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왕적 통치를 위임받아,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하나님 대신 이 땅에 드러내고 구현’하는 역할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창 1:1-2:3의 창조기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인간의 성품의 궁극적인 특징은 ‘하나님을 닮았음’이라는 포괄적인 측면 뿐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피조세계 가운데 구현한다’는 목표성 혹은 방향성을 동반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성품’은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기 위해 부르심 받은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목적과 사명’과 연결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앞으로 본고에서는 ‘성품’의 논의가 추상적인 성격적 특징을 넘어선 ‘하나님 나라로서의 존재 목적과 기능’과 연결됨을 고찰하면서 논의를 진행해 나가려고 한다.(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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