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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원로목사의 소송과 후임 아들 목사의 죽음
아버지 원로목사의 소송과 후임 아들 목사의 죽음
기사입력: 2017/03/21 [08:09]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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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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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는 가진자들만의 잔치라는 말인가? 만약에 그렇다면 기독교는 미래에 희망이 없다. 누가 한국교회 대다수 많은 사람들의 희망을 빼앗아 가는가? 그런 아들과 아버지의 설교는 도대체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면서 설교하는가?     © 리폼드뉴스

(리폼드뉴스) 아버지가 교회를 개척하여 설립된 교회는 중소형교회로 성장했다. 신도시에 자리를 잡은 교인은 2~3천명 넘는 교회로 성장했다.

아버지는 교단의 총회장을 역임할 정도로 교단에 일정한 역할을 감당했다. 하지만 교단의 70세 정년이라는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담임목사직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엄연한 현실앞에서 목회를 그만두는 일은 힘든 일이었다.

한평생 일군 교회를 다른 사람들에게 담임목사직을 넘겨준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직한 일이었다. 혈육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담임목사직을 넘겨주는 일은 생각해 보지도 못했다. 

정년으로 교회 담임목사직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일은 곧 교회를 빼앗긴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허탈감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이 교회에서 노후를 보장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한 마음은 은퇴를 앞둔 아버지 목사에게 고민거리였다.

이러한 마음의 공허와 허탈감을 극복하고 계속 교회의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들을 자신의 자리에 앉히고 물러나면 된다. 아들의 권력은 곧 자신의 권력이요, 아들이 누리는 기득권은 곧 자신의 기득권이기 때문에 아들을 통해 대리만족과 교권, 기득권을 누리며 노후를 보장을 받을 수 있다.

교회 당회는 후임목사를 청빙하려고 할 때 차라리 아들을 후임자로 청빙하여 원로목사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교회 분쟁과 갈등 요인을 해결하면서 자신들이 계속된 기득권을 아무런 저항세력 없이 누릴 수 있는 생각이 서로 맞어떨어진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아들을 후임목사로 청빙했다. 그러나 청빙 이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적대관계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내 재산 한 푼도 안준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했다. "내 재산을 아들에게 한 푼도 안주고 나중에 사회사업을 위해 쓰겠다"고 했다. 이런 발언이 본심이 되기 위해서는 아들을 아예 처음서부터 교회 후임목사로 세워서는 안된다.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누나가 한 분 있기는 했지만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너무나 냉혹했다. 아들은 칼을 빼들었다. 후임인 아들 목사는 아버지 원로목사와 함께 했던 당회원들과 합세하여 아버지의 원로목사직을 해임하고 원로목사에게 지급하기로 한 생활비와 각종 경비를 집행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공동의회 결의를 무효화 시켜버렸다. 그리고 소속교단을 탈퇴해 버렸다.

그러나 원로목사인 아버지는 소송을 제기했다. 자신이 정년으로 은퇴할 때 원로목사에게 지급하기로 한 생활비와 경비 일체를 지급해 달라는 소송이었다.

법원은 난처했다. 아버지와 아들, 그 아들들이 형제와 벌리는 재산분쟁은 얼마든지 경험해 본 사실이지만 교회문제로 아버지 원로목사와 아들 목사 측의 법정 소송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필자는 아버지 원로목사를 위해 교회법에 대한 코칭과 교회법을 정리했다. "원로목사에게 그럴 수 없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필자의 이러한 글은 재판부에 접수됐다.

법원 재판부는 아버지 원로목사와 아들 목사 측 교회와 합의조정을 시도했고 아버지 원로목사에게 지급하기로 한 액수의 50%를 10년 간 지급하기로 하고 합의 조정을 하여 이 소송 사건은 종결됐다.

합의조정을 한 후 아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면 합의 조정한 후 아들 목사는 교역자 회의를 마치고 당회장실에서 쉬고 있었다. 점심식사 시간이 되어 식사하시라고 당회장실을 찾아갔을 때 그는 이미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다. 왜 죽었는지 사인의 이유가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사인의 원인을 다른데서 찾고자 했다.

아버지 원로목사는 자신의 침실에 걸려 있는 아들 사진을 바라보면서 생활하는 심정은 어떠할까? 아버지는 수백억원의 현금과 재산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재산을 아들에게 하푼도 안준다며 소리지르는 아버지를 원로목사로 대하는 아들 목사의 선택은 극단적이었다.

아들을 후임목사로 세우지 않았다면 이런 극단적인 갈등은 없었을 것이다. 이제 후회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들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 즉 고기를 잡아주지 않고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서 아버지의 후광으로 목회하려고 하지 말라고 말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들 스스로 개척하여 너의 목회를 너의 전 인생을 걸고 해 보라고 했더라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좋았을까?

요즘 한참 아버지 원로목사가 아들을 교회 후임자로 청빙하려고 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언론들이 이건 아니다 라고 말하면서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낸다.

현재 아들은 아버지가 담임목사로 있는 교회  재정으로 건축한 건물안에서 개척했다. 등기도 아버지가 섬긴 교회 명의로 등기했고 아버지가 그 건물의 대표자로 등기됐다.

지하 2층 지상 4층의 건물을 건축하고 아들 목사에게 그 건물에서 교회를 개척하라고 내줬다. 그리고 그 지역 교인들을 그 교회에 출석하게 했다. 아들은 그런 환경 속에서 목회하면서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정의, 공의, 사랑, 스스로 개척하는 개척자 정신을 가져야 한다"을 외친다. 그들의 교단은 아들이 아버지의 후임으로 청빙할 수 없는 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축복을 이야기하면서 "곧 나를 보라"는 식으로 설교하는 모습을 상상해 볼 때 적어도 하나님의 축복은 이런 것은 아닌 것 같다. 한국 교회를 부정적으로 몰아가게 하는 한 목회자 부자는 한국교회에 너무나도 커다란 부담을 안겨 주고 있다. 그 책임을 어찌하려는가?

기독교는 가진자들만의 잔치라는 말인가? 만약에 그렇다면 기독교는 미래에 희망이 없다. 누가 한국교회 대다수 많은 사람들의 희망을 빼앗아 가는가? 그런 아들과 아버지의 설교는 도대체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면서 설교하는가? 이제 평생 그의 설교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소재열 목사 / 리폼드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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