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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통신
광주전남지역 모노회 전남노회, 전남제일노회 분립
1911년 9월 18일 전라노회 제1회, 전남노회 1917년 9월 17일에 제1회
기사입력: 2017/03/10 [20:13]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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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는 신사참배를 강요하여 한국교회를 억압했고 조선장로회 총회를 폐쇄하기도 했다.   © 리폼드뉴스
 
대한예수교장로회의 광주전남지역의 모노회는 전남노회이다. 전남노회는 전라노회에서 전남노회와 전북노회가 분립됐다.
 
1911년 9월 18일에 전라노회 제1회 노회로 모였으며, 1917년 8월 24일 전라노회 제78회를 끝으로 전라노회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대신 전라노회에서 전북노회와 전남노회로 분립되면서 전남노회 1917년 9월 17일에 제1회로 모였다. 1920년 2월 2월 25일에 제5회, 1920년 9월 4일에 제6회로 모였다.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1942년을 끝으로 폐쇄되는 해인 1942년 5월 4일에 전남노회가 제34회로 모였다. 1943년 5월 6일 제35회 전남노회를 끝으로 전남노회는 폐쇄되고 대신 1943년 8월 16일 전남교구 제1회로 모였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후인 1945년 11월 7일에 전남노회 제36회로 모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35회로 모였다. 전남교구는 다음해인 1946년 3월 17일 전남교구 제3회를 끝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1950년 3월 14일에 전남노회 제42회가 소집됐고 다음해인 1951년 3월 13일에 전남노회 제43회로 모였다.
 
전남노회는 1979년 주류와 비주류로 분열될 때 주류의 합동측의 전남노회와 비주류의 개혁측의 전남노회로 존속되다가 2005년에 다시 합병하여 합동측 교단이 되었다.
 
합병되자 구혁측 전남노회와 구합동측의 전남노회가 동일명칭으로 존속되자 제비뽑기로 결정하여 구합동측이 전남노회 명칭을 사용하였고, 구 개혁측은 전남제일노회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전남제일노회는 1979년 분열 이전부터 소속된 회원들이 정통성을 유지해 왔다. 구개혁측과 구합동측이 합병하기 직전에 구개혁측에서 9개 교단 합동이 이루어졌는데 그 때 일부 교회와 목회자들이 전남제일노회 전신인 전남노회에 가입하여 오늘의 전남제일노회로 성장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남노회에서 광주노회로 분립됐고 전남제일노회 역시 분립과정을 밟고 있다. 작년 제101회 총회에서 전남제일노회 분립을 허락하고 총회분립위원회가 조직되어 분립을 진행하고 있다.
 
분립의 양측은 전남제일노회의 명칭을 고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남제일노회 명칭을 가지지 못한 측에서는 역사적인 칭호인 전라노회도 좋을 듯 싶다. 그것도 원치 아니하면 광주제일노회로 하면 좋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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