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개혁신학
[논문] 설교실습을 위한 16세기 청교도 노르위치(Norwich) ‘설교연구회’(Prophesying) 규정 연구 2
박태현(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실천신학)
기사입력: 2017/03/01 [09:08]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김순정
배너



이 글은 박태현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16세기 청교도 노르위치 설교연구회의 규정을 연구하여 현대교회가 추구해야 할 설교에 대해 바른 길을 제시하고 있다.

3. ‘주교 공석’(Sede Vacante)시에 시작된 1575년 노르위치(Norwich)의 ‘설교연구회’ 규정

주교 공석시 시작된 1575년 노르위치의 설교연구회의 규정(The Order of the Prophecy at Norwich in Anno 1575, Begun Sede Vacante)이 ‘설교연구회’ 훈련에서 준수되어야 할 규칙들 제일 먼저, 형제들이 판단하기에 적절한 것으로서 ‘설교연구회’는 노르위치(Norwich)의 크라이스트 처치(Christ’s Church)에서 매주 월요일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이 시간을 메꿀 연사들이 있다면) 개최되고, 첫 번째 연사(speaker)는 45분을 초과해서는 안 되며, 나머지 시간은 동일한 본문에 대해 하나님께서 감동하시어 말하게 될 형제들을 위해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들은 진심으로 매우 짧게 언급하기를 바라야 할 뿐만 아니라, 특히 자기들 다음에 능숙하게 말할 수 있는 여러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볼 때 그러해야 한다.

형제들이 판단하기에 ‘설교연구회’에서 말하기에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자들의 이름은 서판(Table)에 기록되어야 한다. 모든 연사들은 본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들은 세속 역사나 교회 작가들에 대한 많은 증거들, 근거 없는 성가신 주장들, 본문에서 적절하게 도출되지 않는 보편논제들과 분류들에 대한 적용들을 나열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또한 본문을 쪼개고, 성령의 의미를 드러내고, 나중에 잘 적용될 수 있고, 설교에서 교리나 방법에 관하여 보다 상세하게 취급될 것들을 간단히, 요약적으로, 그리고 명백하게 관찰하도록 언제나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본문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적절하게 다루어질 수 있다: 우리는 먼저 본문이 선행된 말씀에 의존하는지 그렇지 않는지, 그리고 어떻게, 어떤 경우에 그 말씀이 기록되거나 언급되었는지, 그 행위가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그 역사[즉, 성경 내러티브]가 되풀이되었는지 보여줌으로써 이것이 성경으로부터 정상적으로 수집된 것임을 드러낸다. 성령의 취지와 목적, 그리고 성경 구절의 명백한 의미가 펼쳐져야 한다. 그 말씀이 상징인지 그렇지 않은지 그 속성이 주목되어야 한다. 성경의 유사구가 다른 곳에서 사용되는지, 반대되는 것으로 비쳐지는 성경 구절들은 조화시켜야 한다. 본문에서 사용된 논쟁점들을 제시하고, 거기에 언급된 미덕들과 악덕들을 드러내며, 그것들이 속한 명령이 준수되었는지 혹은 파괴되었는지 보여주고, 현재의 본문이 대적들에 의해 어떻게 왜곡되어 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어디에서 그들이 오해했는지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설교를 통해 주어지게 될 신앙의 확실성, 그리고 생활의 거룩을 위한 권면에 유익한 요점들을 드러내야 한다[즉, 이 모든 것들은 본문에 대해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시행되어야 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동일한 본문에 대해 언급해야 하며, 반복하지 않고 덧붙이는데 조심스럽게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동일한 순서를 따라 언급해야 한다. 자신들 안에 내재된 것과 마찬가지로 앞서 언급된 것에 대하여 반대되는 것을 언급하거나 앞선 연사들을 시사하지[즉, 은밀하게 공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결코 서로 논박하지 말아야 하고, 고의적으로 그리고 다툼을 좋아하는 식으로 명백한 거짓된 가르침이 제시된 것을 제외하고는 그들의 가르침에 대한 검토를 형제들의 사적인 대화에 맡겨야 한다.
 
그리고 나서 거짓된 가르침은 논박되어야 하고 매우 지혜롭게 다루어져 가능한 한 최대한 잘못된 것이 제거됨으로써 제기되었던 주장보다는 오히려 진리가 옹호된다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드러나야 한다. 그 어떤 연사도 공개적으로 반대하거나, 자신이 즉각적으로, 그리고 명백하고도 간략하게 답변할 수 없다면 그 어떤 질문도 제기해서는 안 된다. 오랫동안 묻혀있던 옛 이단들에 관하여는 언급되지 말아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다소간 그들의 무덤에서 다시금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매우 치명적으로 되살아난 경우를 제외하곤 언급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이단들은 반드시 성경에 의해 확실하게 타도되어야 한다.

‘설교연구회’에서 언급되는 모든 것은 오직 영어로만 언급되어야 하는데, 예외가 있다면 더욱 건설적인 논의를 위해 약간의 라틴어나 헬라어, 혹은 히브리어의 강점이 드러나는 경우이며, 이것은 학식과 판단이 기여하는바 가장 주목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경건한 학자가 본문으로부터 자신에게 드러난 그 어떤 유익한 것도 자유롭게 제시할 수 있는 것처럼, 그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성급하게, 경솔하게, 혼란스럽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전에 있는 것처럼 온전하게 그리고 공손하게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을 더욱 잘 준수하기 위해서 첫 번째 연사는 하루 전날, 혹은 자신의 부재 시에,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위해 당일에 말하게 하고, 자신의 모자를 벗는 것과 같은 단정한 행동으로, 말하자면 발언하기 위해 그들이 앉도록 조용히 요청하고, 만일 그들이 말하려 하지 않을 경우, 그들은 모자를 쓰는 것과 같은 행동으로 의사표시를 한다.
 
이렇게 하여 그 옆에 앉은 사람에게 알리고, 한 사람씩 각 사람에게 알린다. 그리고 만일 시간이 많이 있다면, 동일한 형제가 계속 진행하되 새로운 사람이 자주 발언하도록 그들이 앉아 있는 순서를 따라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질 때까지 행한다. 약속된 두 시간이 다 지났을 경우, 첫 번째 연사는 교회 전체와 모든 사회적 신분들, 여왕, 추밀원을 위해 간략하게 기도하고, 여왕과 이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자비하심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곧바로 끝내야 한다.

‘설교연구회’가 끝나고, 함께 모인 학식 있는 형제들, 그리고 첫 번째 연사는 잠시 따로 떨어져 있고, 그 당시 사회자 혹은 의장(그는 언제나 하루 전날 첫 번째 순서에서 말한 동일한 형제이거나 그의 부재시 지명된 사람이다)은 첫 번째 연사에 관하여 순서대로 형제들에게 질문한다: 먼저 그의 가르침이 건전한지, 그가 어떻게 본문을 붙들고 따랐는지, 그가 본문 어디에서 벗어났는지, 그가 성경으로부터 자신의 증거들을 얼마나 적절하게 주장했는지, 그가 규정된 설교의 순서를 준수했는지, 그의 말이 얼마나 명백하거나 모호했는지, 그의 발언과 몸짓이 얼마나 조심성이 있었는지, 그의 전체 행동이 얼마나 확고하며 공손하며 온건했는지 혹은 어디서 실패했는지, 불확실하게 언급된 그의 어떤 말들이 너그럽게 강해되고 더 낫게 해석될 수 있는지 질문한다.
 
이것이 끝난 후, 첫 번째 연사는 나머지 형제들의 이름으로 사회자가 지시하거나 혹은(필요한 경우) 권면할 때 하나님을 공경함으로 수용해야 하는데, 이는 그들이 주장한 이유들과 원인들을 지닌 것으로 동석한 사람들에게 마땅한 권면으로 여겨지는 것들이다. 필요한 경우 동일한 질문이 나머지 연사들에 대해서도 제기될 수 있다. 그들 모두는 겸손한 마음으로 교만, 완고함, 혹은 오만함을 드러내지 않고 형제들의 판단을 신뢰해야 한다. 만일 교만이 어떤 형제 가운데 발견되거나 혹은 무질서와 같은 어떤 것에서 발견된다면, 형제처럼 친숙한 권면을 따라 자신을 개선하지 않는 그 사람의 이름은 그가 개선될 때까지 서판(Table)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그리고 만일 그가 교회를 더욱 어지럽힌다면, 더욱 엄격한 권징이 요구되고, 주님께서 우리를 떠나시는 모든 정당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 회합에서 연사들에 대한 권면이 있은 후, 어떤 형제가 본문으로부터 정당하게 발생할 수도 있는 어떤 의심을 제기했으나 그 어떤 연사에 의해서도 해소되지 않았다면, 그는 학식 있는 형제들에 의해 의혹을 풀어야 한다. 하지만 그가 충분히 의혹을 풀지 못했을 경우, 그리고 질문의 중대성에 비추어 형제들의 동의를 얻어 그 문제는 다음 시간까지 연기되어야 하며, 다음 ‘설교연구회’ 일자의 연사는 자신의 연설 초두에 다루어야 한다. 혹은 그가 충분히 다룰 수 없다고 판단되거나, 그렇게 중대한 문제 다루기를 겸손히 거절할 경우, 회합에서 형제들이 다시 검토해야 한다.

형제들의 동의하에 규정된 혹은 이후에 규정될 지침들에 복종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 그 누구도 ‘설교연구회’에서 말하도록 억압을 받아서는 안된다. 때때로 계기가 주어질 경우, 새로운 지침들은 그 어떤 사람의 권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형제들의 지식과 동의하에 의해서만 규정되어야 한다.

III. 나가는 글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교회는 마치 구약성경의 사사시대 말기처럼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던 시대였다(삼상 3:1). 따라서 종교개혁자들은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개선하려고 다양한 시도들 자국어 성경 번역, 설교집 간행 및 설교학 교과서 저술, 그리고 설교자들의 설교훈련을 위한 제도등을 강구하였다. 자국어 성경 번역, 설교집, 그리고 설교학 교과서의 출판이 개신교 설교를 위한 기초적, 원리적 토대를 마련했다면, ‘설교연구회’는 설교자들의 실제적 설교 훈련을 위한 실천적 기반이 되었다. 취리히에서 시작된 ‘프로페짜이’(설교연구회), 제네바의 ‘꽁그레가시옹’, 훗날 영국 청교도들 가운데 유행하였던 ‘프로페사잉’(설교연구회)은 설교자들에게 둘도 없는 유익한 실제적 훈련의 장을 제공하였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영국 청교도들의 노르위치(Norwich) ‘설교연구회’(prophesying)의 규정이 오늘날 신학교에서의 설교실습을 위한 하나의 좋은 지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신학교에서 설교실습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사역자라는 동역자 의식을 가질 뿐만 아니라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함과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한다”는 잠언 27장 17절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즉 설교실습에 임하는 목회자 후보생들은 모두 겸손한 마음으로 형제의 건덕을 세우는 성숙한 인격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 이런 의미에서 독일의 설교학자 루돌프 보렌(Rudolf Bohren, 1920-2010)은 설교 훈련을 위해 교회의 성숙을 강력하게 요청한다. “설교의 찬미로서 이해할 수 있는 설교비평을 해낼 수 있는 것은 성숙한 교회뿐이다. 그리고 신학과의 대화를 통하여 설교비평을 행할 때에 그 교회는 성숙해 가는 것이다. ... 설교비평에 있어서 교회의 성숙도가 나타나는 것이다.” 성숙한 교회는 설교비평을 통해 더욱 성숙의 자리로 나아간다. 특히 설교비평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설교자의 용기와 겸손은 자신을 더욱 성숙한 자리로 인도할 것이다.

설교비평은 그것이 어디서 오거나 설교자의 신학과 그 사람 자체를 물으며, 설교자를 시련 가운데로 인도하는 일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설교자는 더욱 비평의 여지를 주며, 바로 그 비평에 의한 시련을 받는 가운데서 말씀에만 주목하는 것을 배운다. 이런 의미에서 설교비평은 설교자를 돕는 것이다. 그러나 설교자와 청중의 만남에 있어서 신학적인 학습과정에 들어간다. 거기서는 설교자도 청중도 배울 수 있다. ... 말할 나위도 없이 비평에 자신을 노출시킴으로써 설교자 자신이 성숙의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성숙하다는 것, 진정 거기서 설교자의 자유는 생길 것이다. 그리고 또 정열적으로 기쁘게 설교하는 자유도!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배너
배너
배너
가장 많이 읽은 기사
아버지 원로목사의 소송과 후임 아들 목사의 죽음 /소재열
사랑의교회 7인장로 선출, 93% 찬성으로 피택 /리폼드뉴스
교수협의회, 총신대 교수 보직 조건으로 3천만원 수수 의혹 제기 /리폼드뉴스
광주중앙교회를 둘러싼 정통성 논쟁, "상식적 접근 안통한다" /소재열
명성교회 공동의회, 새노래명성교회와 합병, 김하나 목사 청빙 통과 /리폼드뉴스
광주신일교회, 정규오 목사 유지 계승 위해 합병 /리폼드뉴스
이승희 목사, "제102회 총회 부총회장 후보에 출마 한다" /소재열
총회 전남제일노회 분립위, 광주제일노회로 분립타결 /리폼드뉴스
새노래명성교회는 명성교회 건물안에서 개척 /리폼드뉴스
교육부, 총신대 회계감사 전격 실시 /리폼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