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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논문] 하나님의 형상과 그리스도인의 성품 1
이상원(총신대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기사입력: 2016/12/21 [09:59]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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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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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상원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그리스도의 성품에 대해여 살피고, 이중적 형상론에 근거한 그리스도인의 품성의 개발에 대해여 제시하고 있다.

들어가는 말

인간이 유기체인 몸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짐승들과 같은 범주로 분류되면서도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다양한 짐승들의 종들 가운데 하나로 내려앉아 버리지 않는 이유는 짐승들에게는 없는 인격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격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짐승들보다는 우월한 존재로 차별화되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인간의 인격은 하나님의 형상의 좌소다. 하나님의 형상의 좌소인 인격은 이성, 감성, 의지와 같은 인지기능들과 이 기능들을 활용하는 도덕적 판단 주체이자 자아의 중심인 양심 등으로 구성된다.

타락하기 전 인간의 인격은 지속적인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하나님과 교류가 가능한 이상적인 품성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에는 죄의 세력의 누적적인 작용과 영향으로 인하여 인간의 기능 전체가 죄의 세력에 의하여 오염된 가운데 특히 품성이 직격탄을 맞아서 하나님과의 교류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지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타락한 이후에도 인간의 품성은 다른 동물들과 차별화된 인격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을 만큼은 그 기능이 남아 있다.

누적적인 죄의 세력과 오염으로 인하여 망가진 인간의 품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지속적인 말씀을 들음과 묵상, 성령의 지속적인 충만한 임재와 작용, 성도들과의 지속적인 교제 등을 통하여 다시 하나님의 뜻을 지속적으로 행할 수 있는 견실한 품성으로 회복되어 가기 시작한다. 나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 것처럼(마7:17) 죄로 말미암아 오염되고 왜곡된 마음의 품성(롬1:28-32; 막7:18-23)으로부터 온갖 악한 생활과 사회구조가 나왔다면,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마7:17) 말씀과 성령에 의하여 거듭나고 성화되어 가는 새로운 품성으로부터 선한 생활과 사회구조가 나온다.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능력을 갖추어 가는 새롭고 견실한 품성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출발점이다. 그러면 변화된 새로운 품성은 어떤 내용들로 채워져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의 형상론이 답변을 제시한다. 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개혁주의의 관점은 그리스도인이든 비그리스도인이든 모든 인간들이 타락한 이후에도 넓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임을 말한다. 넓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론은 비기독교인들과 공유할 수 있는 시민윤리 실천을 위한 품성의 요소들을 말하는 것으로서 시민사회 안에서 매우 굴절된 형태로 인식되고 있는데, 이 같은 굴절된 형태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고 예리하게 인식된 형상론에 의하여 비판되고 수정되고 지양(止揚)되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넓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론은 문화비판과 대안문화로서의 의미와 아울러 철학적 윤리에 대한 비판과 대안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개혁주의적 관점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에게서만 회복될 수 있는 좁은 의미의 형상을 말한다. 좁은 의미의 형상은 비기독교인들과는 차별화된 품성의 내용들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 품성은 그리스도인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이며,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야 할 높은 인격적 표준을 말한다. 이 품성은 진정한 문화형성과 윤리적 실천의 참된 동기와 터전으로 작용하는 것들이다.

이 글의 I부에서는 개혁주의의 이중적인 하나님의 형상론의 핵심 논증을 소개하고자 한다. 넓은 의미의 형상론에서는 인간이 영존하는 영적 존재라는 점과 자유와 책임을 지닌 책임적 존재라는 점이 어떻게 형상의 내용으로 형성되어 나오는가를 밝히고, 좁은 의미의 형상론에서는 참된 지식, 거룩, 의가 어떻게 형상의 내용으로 형성되어 나오는가를 밝힌다. II부에서는 I부에서 소개된 다섯 가지 하나님의 형상의 항목들이 지닌 신학적, 철학적, 윤리적 함의들을 밝힘으로써 그리스도인이 계발해야 할 바람직한 품성의 특성들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I. 하나님의 형상의 이중적 의미

a. 하나님의 형상의 의미

성경이 제시하는 인간론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말한다는 점에서 독특성을 지닌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류가 가능하며, 또한 다른 동물과 구별된다. 그러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형상을 말하고 있는 본문들 가운데 가장 고전적이고 중요한 본문은 창세기1장 26, 27절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이 본문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형상을 뜻하는 첼렘과 모양을 뜻하는 데무트는 히브리 병행어법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동일한 내용을 가리키는 동의어다. 그 증거는 여러 곳에 나타난다.
 
창세기 5장 1절에 “하나님의 형상대로”에 상응하는 히브리원어는 1장에서 모양으로 번역된 데무트이며, 5장3절에서는 이 두 단어가 순서를 바꾸어서 모양(데무트)과 형상(첼렘)으로 등장하고 있다. 또한 창세기9장6절에서는 형상(첼렘)만이 사용된다. 이와같은 용례들은 첼렘과 데무트가 서로 교호적으로 사용된 단어들임을 시사한다. 물론 두 단어가 의미의 범주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첼렘은 “짜르다,” 또는 “베다”는 뜻으로서 동물이나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본 따서 조각하는 광경을 묘사한다. 이 단어는 조각된 모상이 원상을 대표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 단어가 70인 역에서 에이콘으로 번역되었다. 한편 데무트는 비슷하다는 의미를 가진 동사에서 유래했으며, 70인 역에서 호모이오시스로 번역되었다.

신약에서는 고린도전서11장7절에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라는 표현에서 형상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형상은 헬라어로는 에이콘이며, 야고보서3장9절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라는 표현에서 형상은 헬라어로는 호모이오시스다. 또한 골로새서3장10절에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라는 표현에서 사용된 형상은 헬라어 에이콘의 번역어다.

신약에서도 역시 에이콘과 호모이오시스는 교호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형상과 모양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두 개의 동의어로서, 인간이 하나님을 원상으로 하여 창조된 모상적 존재라는 기본뜻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타락하기 전에 인간은 완전한 형태로 하나님의 형상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 형상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손상되었다. 인간에게는 약화되고 부패된 모습이긴 하지만 이성과 의지가 하나님의 형상의 흔적(lineaments) 혹은 잔여물(remnant)로서 남아있다.
 
그러나 인간에게 남아 있는 이성과 의지는 왜곡되었고 순기능이 아닌 역기능을 하게 되었다. 인간 영혼의 기능 가운데 오염되지 않은 부분이 없을 정도로 인간은 부패한(depraved) 존재가 되었다. 이렇게 손상된 하나님의 형상은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새로워진다. 형상의 새로워짐은 곧 그리스도를 닮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닮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인 동시에 인간의 책임이다.

그러면 형상 또는 모양이 담고 있는 내용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떤 점에서 하나님의 모상이요, 하나님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가?

b. 좁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

골로새서3장10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기독교인을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라고 묘사한다. 이 본문은 형상이 지식의 영역에까지 새롭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은 지식이 형상의 구성적 요소로서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에베소서4장24절에는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는 말씀이 있다.
 
이 본문은 앞에서 인용한 골로새서와 같은 맥락으로서 중생한 사람에게 일어난 새사람으로의 변화를 서술하고 있는 본문이다. 이 본문에는 “하나님을 따라”라는 구절이 등장하는데, 이 구절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라고 읽을 수 있다. 본문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새롭게 된 새사람의 구성요소로서 의와 거룩을 제시한다. 이 두 본문을 종합하면 지식, 의, 거룩이 곧 하나님의 형상의 내용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지식, 의, 거룩이라는 하나님의 형상의 요소들의 특징은 모두 중생한 이후에 회복된 요소들이라는 점이다. 이 말의 의미는 이 요소들이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는 상실되었음을 시사한다. 곧 지식과 의와 거룩은 인간이 타락했을 때 상실되었다가 중생할 때 회복된 형상의 내용들이다. 이처럼 상실되었다가 회복된 형상의 내용을 원의(original righteousness)라고 한다. 원의는 상실될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의 구성요소라는 의미에서 비본질적인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불리는 동시에 좁은 의미의 형상으로 정의되었다. 뿐만 아니라 타락하기 전의 인류가 원의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최초의 인류의 상태가 적극적인 거룩의 상태로서 도덕적으로 중립의 상태가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좁은 의미의 형상인 지식과 의와 거룩은 중생할 때에 원리적으로 회복되었고, 향후 성화의 과정에서 계속하여 회복되는 과정을 겪는다. 참된 지식과 의와 거룩을 회복해가고자 할 때 제시되는 규범적인 원상(原象)은 그리스도의 형상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형상이니라”(고후4:4).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가 완전한 인간이라는 뜻이다. 완전한 인간이신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이다.
 
골로새서1장15절에도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고, 히브리서1장3절에도 그리스도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고 했다. 죄가 없는 완전한 인간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중생한 자들은 이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는 자들이다. 로마서8장29절은 중생한 자들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정함을 받은 자들임을 말하고 있다. 중생한 자들은 고린도전서15장49절 말씀처럼 장차 종말의 때에 “하늘에 속한 이(그리스도)의 형상”을 입게 될 것이다.

c. 넓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

만일 좁은 의미의 형상 곧 타락 시에 상실된 원의만이 하나님의 형상의 전부라면 타락한 이후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 불릴 수 없다. 그러나 창세기9장6절은 타락한 이후의 인간을 가리켜서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이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실되지 않은 하나님의 형상 곧 넓은 의미의 본질적인 형상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다. 그러면 타락하기 전이나 후의 인간이 본질적으로 가진 하나님의 형상 곧, 인간이 하나님과 닮은 점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영이신 것처럼 인간도 영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닮았다. 영적 존재인 인간 안에는 영이신 하나님이 투영되어 있다. 또한 영이신 하나님이 영존하시는 것처럼 인간의 영혼도 영원히 존재한다.
 
물론 영혼의 불멸 또는 영존(永存)은 디모데전서6장16절에 명시되어 있는 하나님의 영생처럼 절대적인 의미의 영생 곧 필연적인 의미의 영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생의 모상(模象)으로서 그 영생으로부터 파생된 상대적인 의미의 영생이지만, 그 영혼이 창조된 이후부터 영존한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영존하는 영혼은 몸과 연합되어 있고 몸에 신축성 있게 적응하지만 그 존재가 몸에 의존하지 않는다. 몸이 해체되어 버린 후에도 영혼은 존재한다. 찰스 핫지는 영은 이성, 양심, 의지로 구성되어 있는 동시에 자유로운 선택의 능력을 가진 존재라고 말한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몸은 하나님의 형상에 포함되는가 하는 것이다. 성경이 영혼을 말할 때는 몸을 포함한 전인을 항상 염두에 두고 말하고 있으며, 특히 창세기9장6절이 몸을 죽이는 살인행위가 곧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행위임을 명시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몸도 전인의 일부로서 하나님의 형상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몸이 하나님의 형상에 포함된다는 말은 “영혼과 연합하여 그것의(영혼의) 자기표현의 기구로 봉사”한다는 것을 뜻한다. 마지막 날에는 몸도 영혼의 완전한 도구로서 신령한 새로운 몸으로 변화될 것이다(고전15:44). 중요한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형상을 말할 때는 전인을 항상 염두에 두고 말한다는 점이다.
 
칼빈은 하나님의 형상의 주요 좌소가 정신이나 마음 혹은 영혼의 여러 기능에 있지만 사람, 곧 육체의 부분에도 그 영광의 광채로 장식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였다. “비록 하나님의 영광이 인간의 외형 속에서도 빛나고 있긴 하지만,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님의 형상이 자리 잡고 있는 좌소는 인간의 영혼 속이다.… 비록 신적 형상의 일차적 좌소가 정신과 마음, 혹은 영혼과 그것의 능력들 속에 자리 잡고 있긴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빛나지 않는 곳은, 심지어 육체를 포함하여, 인간 속의 어느 곳에도 없다.”

한편 인간이 만물을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받았다는 사실도 하나님의 형상의 일부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만물을 다스리는 권한에 대하여 성경이 명시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권한은 하나님의 형상의 적용 또는 결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과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에게 주어지는 직분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창세기1장26절에 하나님의 형상을 언급한 뒤에 바로 만물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신 사실에 기초하여 이 권한을 하나님의 형상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성경이 제시하는 하나님의 형상론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모든 인간은 물질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영적인 존재로서 영존하며, 자유로운 선택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인 영혼은 몸 전체와 긴밀한 연관성 속에 있고, 몸을 통하여 자신을 표현하므로 사실상은 전인이 곧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 좁은 의미에서 볼 때 하나님과의 관련 하에서의 지식, 거룩성, 의로움이 하나님의 형상인 바, 이 형상은 타락 이전의 인간이 지니고 있었다가 타락했을 때 상실되었으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거듭난 이후에 회복되어 간다. 이 형상의 구체적인 롤-모델은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다.(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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