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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논문] 잠언 5-7장에 대한 목회상담적 주석 3
이관직(총신대신학대학원 실천신학)
기사입력: 2016/12/14 [09:27]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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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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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관직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잠언 5-7장에 대한 목회상담적인 주석을 펴 나간다.

3. 7장에 대한 목회상담적 주석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계명을 간직하라 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 같이 지키라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판에 새기라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여인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7:1-5).

지혜자는 표현의 차이는 조금씩 달리하지만 반복적으로 자신의 아들에게 잠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지킬 것을 권면한다: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3:3). 지혜와 명철을 자신의 누이와 친족으로 대하라고 말한다. 즉 원수처럼 대하거나 이방인처럼 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친구로 대하며 생명처럼, 자신의 눈동자처럼 귀하게 대할 때 지혜와 명철은 보호하며 도와줄 것이다. 특히 음녀, 즉 말로 호리는 이방 여인에게 빠지는 것을 막아줄 것이다.

적용 11: 음행을 피하는 적극적인 방법은 지혜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말씀을 가까이 하며 말씀에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음행의 요인이 되는 핵심 감정 중의 하나인 외로움을 정면으로 맞설 수 있다. 비록 배우자와의 관계가 행복하지 못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위로를 받고 힘을 얻을 때 일시적이며 중독적인 관계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어리석은 행동을 피할 수 있다.

내가 내 집 들창으로, 살창으로 내다보다가 어리석은 자 중에, 젊은이 가운데에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노라 그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의 집 쪽으로 가는데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 그 때에 기생의 옷을 입은 간교한 여인이 이를 맞으니 이 여인은 떠들며 완악하며 그의 발이 집에 머물지 아니하며 어떤 때에는 거리, 어떤 때에는 광장 또 모퉁이마다 서서 사람을 기다리는 자라 그 여인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입맞추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그에게 말하되 내가 화목제를 드려 서원한 것을 오늘 갚았노라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 내 침상에는 요와 애굽의 무늬 있는 이불을 폈고 몰약과 침향과 계피를 뿌렸노라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하므로 희락하자 남편은 집을 떠나 먼 길을 갔는데 은 주머니를 가졌은즉 보름날에나 집에 돌아오리라 하여 여러 가지 고운 말로 유혹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젊은이가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도다 필경은 화살이 그 간을 뚫게 되리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의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같으니라(7:6-23).

솔로몬은 음녀의 유혹적인 말과 태도에 대하여 잠언 7장에서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여주듯이 묘사하였다. 그녀는 “내가 화목제를 드려서 서원한 것을 오늘날 갚았노라”라고 신앙적인 표현으로 상대방 청년을 무장 해제시킨다.

혹시라도 청년이 느낄 수 있는 죄책감을 누그러뜨리며 초자아의 목소리를 약화시킨 것이다. 음녀가 반드시 세속적이며 비신앙적인 사람이 아닐 수 있음을 이 표현에서 추론할 수 있다. 음녀는 신앙적인 용어를 사용하며 서원을 하며 화목제까지 드렸다는 종교적 표현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화목제를 드렸는지는 알 수 없다. 음녀는 꾀기 위해서 거짓말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목제를 드리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비신앙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즉 예배와 삶의 괴리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습이 이사야서에 잘 나타난다.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리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고발하였다: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사 1:11-15).

본문에 나오는 음녀가 하는 말은 신앙인의 삶을 산다고 하면서도 성적인 죄를 반복적으로 짓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것은 특히 크리스천들 사이에서 외도가 일어날 때 신앙적인 합리화가 일어나는 것과 연결될 수 있는 표현이다.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서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15절)라는 음녀의 표현에서 그녀가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인정, 칭찬을 하면서 이 잘못된 만남을 마치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 만남처럼 왜곡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음녀는 성적인 유혹을 적극적으로 이어서 한다: “내 침상에는 화문 요와 애굽의 문채 있는 이불을 폈고 몰약과 침향과 계피를 뿌렸노라”(16-17절). 시각적이며 후각적인 묘사를 통해서 상대방을 유혹한다. 그리고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18절)고 말한다. 이 표현이 결혼관계에서 일어난 것이라면 그 관계는 행복하며 건강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관계일 것이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며 희락한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다. 결혼 관계 밖에서 이루어지는 행복한 관계는 “길이 아니다.”

음녀는 유부녀임을 스스로 드러낸다: “남편은 집을 떠나 먼 길을 갔는데 은주머니를 가졌은즉 보름에나 집에 돌아오리라”(20절). 본문에서 상대방 청년이 기혼자인지 미혼자인지 정확하게 표현되지 않는다. 가정해서 미혼자일 경우에 유부녀의 유혹은 정신분석학적으로 볼 때 청년이 갖고 있는 해결되지 않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의 역동을 건드리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나이 어린 남자 청년에게 있어서 유부녀는 엄마와 같은 푸근함을 제공하는 대상(object)이다. 유부녀의 가슴은 오래 전에 잃어버렸던 엄마의 가슴을 무의식적으로 연상시키는 것이다. 솔로몬은 음녀의 행동에 대해서 21절에서 “여러 가지 고운 말로 혹하게 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유혹했다”고 표현한다.

지혜자는 성적으로 유혹을 받아 음녀에게 들어가는 청년의 결과에 대해서 비유적으로 잘 묘사하였다: “소년이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일반이라”(6:22);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까지에 이를 것이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일반이니라”(6:23). 단기적인 만족을 위해서 장기적인 파멸을 선택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것이라고 심리학에서도 지적한다. 잠깐의 성적인 만족을 위해서 자신의 영혼을 팔며,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다. 이 세상에 어떤 즐거움도 우리를 영원히 만족시킬 수 없다. 이 세상에 어떤 인간과의 관계도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과 만족을 제공할 수 없다. 이 기본적인 진리를 철저하게 인식하는 사람만이 간음과 음란의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자신의 삶을 통하여 간증하였다: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전 2:10-11);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 하는도다”(1:8).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간접 경험을 통해서 배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직접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는 배우지 못하는 ‘고집스러움’(stubbornness)과 ‘곧은 목’(stiff neck)을 갖고 있다.

적용 12: 솔로몬이 음녀에 대해서 잠언에서 강하게 경고하고 훈계한 것은 정신분석학적으로 볼 때 두 가지의 역동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솔로몬 자신의 삶에서 수많은 음녀들에게 유혹을 받고 성적으로 문란했던 모습에서 자신의 아들에게 ‘역전이’(countertransference)의 이슈를 갖고 ‘투사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를 경험하였다고 볼 수 있다. 솔로몬 자신이 경험했던 것을 아들이 경험할 위험성이 있어 보일 때 솔로몬은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아들을 이해하려고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역전이 역동성이 가능하다. 전이 또는 역전이는 일종의 ‘평행과정’(parallel process)이다. 투사와 투사동일시는 차이가 있는데 투사동일시라는 기제는 아이들의 발달단계에서 투사라는 방어기제보다는 좀 더 발달한 기제이다. 솔로몬이 자신의 이슈를 아들, 또는 잠언을 읽는 사람들에게 투사하여 권면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 투사된 모습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아울러 인식했다면 투사동일시의 역동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솔로몬은 자신의 삶의 시행착오를 통해서 후대의 신앙인들에게 경고하며 격려하는 ‘상처 입은 치료자’였다.

이제 아들들아 내 말을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그 집은 스올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7:24-27).

지혜자는 음행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상하여 엎드러졌으며 죽은 사람들도 허다하다고 지적한다. 음녀의 집은 스올의 길이며 사방의 방이라고 지적한다. 그 길은 “내려가는” 길이다. 다시 올라오기가 힘든 함정과 같은 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외도와 음행으로 인하여 고통을 겪는 것은 객관적인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은 그렇게 되더라도 자신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부인하는 것은 중독자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증상이다. 자신은 예외라고 생각하며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만 해도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인들과 집단적으로 행음하다가 하나님의 치심을 받아 이만사천 명이 쓰러져 죽었다(민 25:1-9 참조). 삼손은 블레셋 여인 들릴라의 유혹에 빠져 나실인의 비밀을 노출했고 하나님의 영이 떠나심으로 힘을 잃고 포로가 되었고 두 눈이 뽑혀 큰 맷돌을 돌리는 짐승 취급을 받아야 했다(사 16:4-22 참조). 잠언을 썼고 이 권면을 했던 지혜자 솔로몬 자신조차 자신이 한 말을 지키지 못하고 성적인 타락의 길을 걸었고 우상숭배의 문을 열었던 왕이 되고 말았다.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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