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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논문] 잠언 5-7장에 대한 목회상담적 주석 2
이관직(총신대신학대학원 실천신학)
기사입력: 2016/12/07 [12:28]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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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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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폼드뉴스)】이 글은 이관직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잠언 5-7장에 대한 목회상담적인 주석을 펴 나간다.

2. 6장에 대한 목회상담적 주석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네 눈을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을 감기게 하지 말고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같이 스스로 구원하라(6:1-5).

여기서 아들은 르호보암일 것이다. 왕의 아들로서 르호보암이 이웃관계에서 보증해야할 경우는 별로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있다면 왕실의 문제, 처가의 문제, 국가간의 조약과 같은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개인의 삶에서도 이 권면은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특히 보증이나 담보가 잘못되는 바람에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증이나 담보는 처음에 거절하는 말을 하기가 힘들지만 “No”라고 거절하는 것이 지혜롭다.

본문에서 담보와 보증은 같은 의미를 반복하는 것이다.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도 같은 뜻을 반복하는 시적인 표현이다. 개역개정판은 2절을 결과로 번역하였지만 NIV 성경은 1절을 계속 이어가는 조건절로 번역하였다. 그렇게 보면 담보하는 것은 말로 얽히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뒤에 나오는 것처럼 마치 올무에 빠진 상황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중구속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에 대해서 지혜자는 지시적으로 제안하였다. 첫째, 가능한한 빨리 해결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뒤로 미루거나 회피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선 회피하는 것은 쉽지만 그것은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위험성이 높은 행동이다. 마치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분을 해결하라는 성경적인 가르침처럼(엡 4:26 참조) 하루 생활을 마친 후 잠자리에 들기 전에 당사자를 직접 찾아 간청하라는 것이다. 둘째, 자신을 낮추어 이웃에게 배려와 이해를 간구하라는 것이다.

자존심을 챙기느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미루다보면 호미로 막을 수 있는 부분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잘 인식하고 문제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두 번 부탁해보고 거절당할 때 자존심이 상해서 자신을 더 이상 낮추지 못한다면 그것은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5절에서는 “노루와 사냥꾼의 손,” “새와 그물 치는 자의 손”이라는 은유가 사용되었다. 올무에 걸린 노루나 그물에 걸려든 새는 빠져나가기가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냥꾼의 손이 올가미를 벗겨내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필사적으로 힘을 낸다면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그물에서는 빠져나가기 힘들겠지만 사냥꾼의 손이 새를 잡는 순간 필사적으로 날갯짓을 해서 빠져나오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위기에 봉착했을 때 절망한 채 포기하지 않고 잠자지 않고서라도 빠져나갈 궁리를 하며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 지혜롭다는 것이다. 그물과 올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본다면 가능하면 예방적으로 그물과 올무에 아예 걸리지 않도록 경성하고 각성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적용 2: 거절 당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남들에게 거절해야 하는 상황에서 잘 하지 못한다. 항상 ‘예스맨’이 되면 곤란하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그래서 싫으면서도, 심지어 조종당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식하면서도 담보를 설 가능성이 높다. “예면 예, 아니면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 진실이다. 진실은 관계를 궁극적으로 자유롭게 한다. 거절하는 것이 상대방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6:6-11).

솔로몬은 자신의 아들에게 두 번씩이나 “게으른 자여”라고 직면하였다. 이 말은 자신의 아들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게으름의 이슈를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하는 권면이기도 하다. 앞에서는 노루와 새가 동물로 비유되었지만 여기에서는 가장 작은 동물 중의 하나인 개미가 비유로 사용되었다. 개미의 행동을 통해서 배울 부분은 무엇인지를 직접 보라는 것이다. 게으를 뿐 아니라 어리석은 자는 개미들의 행동을 보고서도 깨닫는 것이 없을 것이다.

솔로몬은 개미의 특성을 몇 가지로 지적한다. 첫째, 개미는 두령이나 감독자나 통치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먹을 것을 예비하며 일한다는 것이다. 게으른 자는 동기가 매우 부족하다. 스스로 하는 경우가 드물다. 둘째, 개미는 시기를 분별한다는 것이다. 일할 때와 쉴 때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게으른 자는 개미와는 달리 일할 때와 쉴 때를 구별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조금만 더 자고 싶은 마음, 좀 더 쉬고 싶은 마음은 인간적이다. 그러나 이런 삶의 태도가 습관이 되면 성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즉 게으름이 성격화되어 열심을 내어서 삶을 살지 못하게 된다. 솔로몬은 이런 사람에게는 빈궁과 곤핍이 강도 같이 또는 적군이 공격하듯이 순식간에 찾아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당장에는 표시가 나지 않지만 나태한 사람의 삶에는 회복하기 힘든 경제적 어려움과 관계적 어려움이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 더 나아가 이 게으름은 영적인 삶에도 영향을 주어 영원한 멸망으로 이어질 치명적인 죄가 될 수 있다.

적용 3: 아침이 되면 일어나서 활동을 해야 하는데 해가 중천에 있을 때까지 잠을 잔다면 그는 게으른 자일 것이다. 현대적으로는 밤낮이 바뀌어 활동하는 사람들은 아침 늦게까지 자는 것이 정상이다. 일하는 것이 아니라 새벽까지 자지 않고 게임에 빠져 있다가 새벽녘에 잠을 자고 오후가 되어서야 일어나는 청소년이나 청년이 있다면 그는 게으른 자에 해당된다. 자야할 때 게임하면서 놀고 일해야 할 때 늦게까지 자는 것은 시간의 청지기가 아닌 삶을 사는 것이다.

불량하고 악한 자는 구부러진 말을 하고 다니며 눈짓을 하며 발로 뜻을 보이며 손가락질을 하며 그의 마음에 패역을 품으며 항상 악을 꾀하여 다툼을 일으키는 자라 그러므로 그의 재앙이 갑자기 내려 당장에 멸망하여 살릴 길이 없으리라(6:12-15).

지혜자는 악당들과 무뢰한 자들의 증상들을 잘 간파하여 설명한다. 첫째, 돌아다니면서 말로 이간질을 하며 루머를 만들어내며 부패한 말을 하는 것이다. 대인관계에서 반사회적인 특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권면하면서 젊은 과부들 중에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는 이들이 있다고 지적하였다(딤전 5:13).
 
이들은 본문이 말하는 불량하고 악한 자들에 비해 소극적이며 그 정도가 심하지는 않지만 교회 공동체에 고통을 야기할 수 있는 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자신들만이 아는 신체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의사소통하면서 악한 일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들은 눈짓, 손짓, 발짓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하면서 악을 꾀하는데 악한 지혜가 있는 자들이다. 암호와 은어를 사용하며 오늘날 상황으로 말하자면 증거를 남기지 않으면서 의사소통하고 대포폰을 사용하며 악을 행하는 자들이다.
 
소리내어 말을 하지는 않지만 소리 없이 눈짓하며 손짓하며 심지어는 책상 밑으로 발짓을 하여 공모하는 자들이다. 셋째, 마음 속에서 거짓과 악을 생각하며 고안하며 품는다. 악한 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 마음이 부패하며 악한 것이다(마 15:19-20 참조).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같다(마 15:17-18 참조).
 
악한 자들은 선한 일을 생각하는데는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자들이다. 그러나 악한 생각에 대해서는 기발하며 머리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특성이 있다. 이런 자들이 있는 공동체는 결과적으로 항상 분쟁과 다툼과 싸움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을 흙탕물로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이런 악한 자들은 파괴적인 영향력을 상당히 행사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도 소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은 이런 자들에게 재앙이 갑자기 찾아올 것이며 이들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될 것이라는 점에 있다. 악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있을 것이다. 이 사실은 아삽의 시에서 잘 표현되었다. 아삽은 악한 자들의 형통함으로 인하여 거의 실족할 뻔했다고 고백하였다(시 73:2-3 참조).
 
그 과정 속에서 그는 악인이 결국에는 졸지에 멸망할 것임을 깨달았다: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게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시 73:16-19). 지혜자의 충고를 듣지 않고 이 악한 자들과 동행하게 되면 함께 파멸에 이를 수 있다는 점에서 악한 자들을 분별하며 그들과 상종하지 않는 것이 지혜롭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6:16-19).

지혜자는 하나님이 혐오하시는 것들을 명료하게 표현하였다. 이것들은 마귀가 기뻐하는 행동들이다. 첫째, 하나님은 교만한 눈을 싫어하신다. 눈은 종종 마음의 창이라고 표현된다.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교만함이 눈에 나타난다. 교만한 눈에는 자신보다 연약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태도가 드러난다. 어려운 일을 당하는 자들에 대한 공감이 눈빛에 없다. 이런 눈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눈에 들보가 박혀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오히려 타인의 눈에 티를 보며 빼려고 한다.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목이 곧고 뻣뻣하다. 교만한 눈은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에게서 잘 나타난다.

둘째, 하나님은 거짓된 혀를 싫어하신다. 거짓된 혀를 가진 자는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이며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다. NIV 성경은 “거짓말을 쏟아내는 거짓 증인”이라고 번역하였다. 이 사람은 십계명에서 명시적으로 금한 행동을 스스럼없이 행하는 자이다. 거짓말을 말하는 혀를 가진 자는 초자아가 발달되지 않은 자이며 동시에 ‘거짓의 사람’이다. ‘거짓의 아비’인 마귀에게 속한 자이다. 여기에서 거짓을 말하는 혀는 적극적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파괴적인 혀를 의미한다. 형제 사이를 이간질하는 말을 하는 사람은 마귀의 종이다. 마귀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하와와 아담 사이를 이간질하는 거짓말을 하였다.

적용 4: 역으로 하나님은 정직을 말하는 혀와 형제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치유적인 혀를 사랑하신다. 치유적인 혀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양약이다(잠 17:22 참조). 기독교상담사의 혀는 하나님이 사용하는 치료적인 도구가 되어야 한다. 기독교상담사는 내담자가 거짓된 혀를 가진 사람이 아닌지 분별할 필요가 있다. 또는 거짓된 혀 때문에 상처를 입은 사람인지를 진단할 필요가 있다. 거짓 증인으로 나설 만큼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사회병질적인 사람이다. 상담으로 쉽게 치료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지능지수가 높기 때문에 조종과 기만에 능숙하다. 상담사조차 농락할 가능성이 높다.

셋째, 하나님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을 혐오하신다. 하나님은 선한 일에 부요하도록 손을 창조하셨다. 그러나 가인은 무죄한 동생 아벨을 손으로 쳐죽임으로써 피를 흘렸다. 악인들의 손은 악행을 행하는데 능숙하다.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 제사하면서도 불의한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였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사 1:15).

넷째, 하나님은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을 미워하신다. 악한 계교를 꾀하는(devise) 마음은 죄를 범하는데 지혜가 있는 마음이다. 일반적으로 반사회적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지능지수가 평균 이상이다. 특히 사기죄를 짓는 사람들은 속임에 능수능란하다. 하나님이 주신 은총인 뛰어난 지능과 두뇌를 가지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꾀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다섯째, 하나님은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을 혐오하신다. 욕동(drives)이 일어나면 브레이크가 작동되지 않고 충동적으로 악을 행하는데 기여하는 발을 싫어하신다. 예레미야는 우상숭배에 혈안이 되어 달려가는 모습을 암낙타에 비유하였다:

네가 어찌 말하기를 나는 더럽혀지지 아니하였다 바알들의 뒤를 따르지 아니하였다 하겠느냐 골짜기 속에 있는 네 길을 보라 네 행한 바를 알 것이니라 발이 빠른 암낙타가 그의 길을 어지러이 달리는 것과 같았으며 너는 광야에 익숙한 들암나귀들이 그들의 성욕이 일어나므로 헐떡거림 같았도다 그 발정기에 누가 그것을 막으리요 그것을 찾는 것들이 수고하지 아니하고 그 발정기에 만나리라 내가 또 말하기를 네 발을 제어하여 벗은 발이 되게 하지 말며 목을 갈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나 오직 너는 말하기를 아니라 이는 헛된 말이라 내가 이방 신들을 사랑하였은즉 그를 따라 가겠노라 하도다(렘 2:23-25).

충동적인 행동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우상숭배 죄뿐만 아니라 다른 죄악들을 행함에 있어서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과 양심과 초자아의 경계와 제지에도 불구하고 충동적으로 죄를 짓는 자들은 악한 자이며 어리석은 자이다. 대조적으로 평안의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은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적용 5: 기독교상담사는 내담자의 삶에서 이런 죄성이 있는지를 평가하고 진단할 필요가 있다. 내담자의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옛 자기’의 모습은 벗어버려야 하며 소거시켜야 한다. 죄가 신체 부분으로 표현되는 것이 특징적이다. 눈과 혀와 손과 발이 악의 도구가 되는 것은 하나님이 혐오하는 것이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그것이 네가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네가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네가 깰 때에 너와 더불어 말하리니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6:20-23).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혜자의 표상이다. 지혜자의 명령과 법은 인생 여정에서 등불과 빛이다. 항로를 알려주는 등대다. 몸을 밝히는 눈이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마 6:22-23). 이 등불과 빛이 마음을 밝히는 사람은 어두움 속에 거하지 않으며 어두움에 행하지 않는다. 그 길은 생명 길이다. 반면 이 빛이 없는 자는 눈먼 사람처럼 시행착오를 너무 많이 겪으며 크게 학습하지도 못해 결국에는 사망에 이를 수 밖에 없다. 시편 기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등불과 빛에 비유한 바 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19:105);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119:130).

이것이 너를 지켜 악한 여인(immoral woman)에게, 이방 여인의 혀로 호리는 말(the smooth tongue)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이것이 너를 지켜 악한 여인에게, 이방 여인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네 마음에 그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6:24-25).

인간은 아름다움을 좋아한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외모가 아름다운 여성들을 좋아한다. 많은 여성들도 외모가 좋은 남성들을 좋아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외도의 역동성의 경우에는 반드시 외모의 아름다움이 유혹하는 요소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심리적인 편안함을 주는 대상에게 마음이 끌려서 성적인 관계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본문은 능동태와 수동태의 문장으로 같은 의미의 경고를 하고 있다. 능동적으로 외모의 아름다움만을 보고 정욕을 품지 말라는 경고이다. 수동적으로 유혹적인 “눈꺼풀,” 즉 유혹적인 눈빛에 포로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경고이다.

적용 6: 눈빛은 정신분석적인 역동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 성적 유혹의 과정을 외부 대상 이미지가 무의식화된 내부 대상 이미지를 깨우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름다운 외부 대상, 유혹적인 눈빛, 그리고 “부드러운 말”(6:24)은 어린 시절 아기로서 경험했던 엄마 대상 이미지 혹은 환상으로 그렸던 내부 대상 이미지와 동일시되는 것으로 분석해볼 수 있다.
 
아름다운 대상의 눈빛은 엄마가 어릴 때 아기에게 보여주었던 시선으로서 ‘자기애적인’ 욕구를 만족시켜주고 ‘미러링’(mirroring) 해주었던 눈빛과 연결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정신역동성이 미성숙한 한 사람의 삶을 파멸로 이끌 수 있다. 이 심리적 역동성은 유혹 받는 사람의 책임성을 경감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역동적 과정을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성적인 유혹에 넘어지며 빠져버린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음녀로 말미암아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여인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야 어찌 그의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을 숯불을 밟고서야 어찌 그의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그를 만지는 자마다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도둑이 만일 주릴 때에 배를 채우려고 도둑질 하면 사람이 그를 멸시하지는 아니하려니와 들키면 칠 배를 갚아야 하리니 심지어 자기 집에 있는 것을 다 내주게 되리라(6:26-31).

음녀의 아름다움과 눈꺼풀의 유혹은 예측할 수 있는 파멸로 이끄는 미끼이다. 겉포장은 그럴듯할지 모르지만 그 내용은 파멸에 이르는 것임을 미리 아는 것이 지혜이다. 음녀는 마치 사냥물을 획득하듯이, 또는 빵 한조각을 쉽게 먹어버리듯이 유혹한 자를 파멸로 이끌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달리 해석한다면 음녀는 상대방을 떡 한 조각을 구걸해야 하는 가난한 인생으로 전락시킬 것이다. 남의 배우자와 통간하는 사람은 도둑질하다 들키는 사람보다 더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다. 그는 “자기 집에 있는 것을 다 내주게 되리라”는 경고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자기가 쌓아온 것, 즉 자기의 전체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길 수 있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할 때 음행의 죄악을 예방할 수 있다.

지혜자는 음녀를 품는 것은 뜨거운 불을 품으려는 것과 같고 숯불 위를 걸어가려는 어리석은 행동과 같다고 비유한다. 뜨거운 불을 품으면 옷이 금방탈 것이다. 심지어 온 가슴이 화상을 입게 될 것이다. 뜨거운 숯불 위에 서 있다면 그 발은 화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 간음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혜자는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고 단언하는 것이다. 그녀를 만지기만 해도 벌을 모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경고는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는 말씀과도 연결된다.

적용 7: 현대적인 의미에서 이 본문을 포르노그래피와 연결해서 해석할 수 있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볼 수 있는 포르노적인 여성들은 현대판 음녀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눈을 타락하게 하며 마음을 더럽히는 각종 음란물들은 중독적인 힘을 갖고 있다. 특히 믿음의 자녀들의 영적인 생활을 사냥하는 음녀적인 것이다. 이것은 마치 불을 품으려는 것과 같다. 숯불을 밟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드러나게 될 때 겪어야 할 수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들키면 칠 배를 갚아야” 할 뿐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겪어야할 수치는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 사실을 어느 정도 예측하면서도 ‘설마’라는 ‘부인’(denial)의 방어기제가 작동되는데 있다. 불안, 분노, 슬픔, 외로움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일시적으로나마 감소시키거나 마취시키려고 음란한 동영상이나 사진에 접속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믿는 자들이 매우 경성해야 할 영역이다.

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되나니 남편이 투기로 분노하여 원수 갚는 날에 용서하지 아니하고 어떤 보상도 받지 아니하며 많은 선물을 줄지라도 듣지 아니하리라(6:32-35).

본문의 “무지한 자”를 NIV 성경에서는 “판단력이 부족한 자”라고 번역하였다. 간음하는 자는 자기파괴적이며 자기패배적인 행동을 하고 있음을 판단하지 못하는 자다. 세상에서도 상함과 능욕과 수치를 당할 뿐 아니라 자신이 영혼을 영원한 심판을 받는데 내어주는 어리석은 자다. 바울 사도는 음행의 파괴적 결과를 경고하였다: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엡 5:5-6).
 
탐하는 자나 더러운 자와 마찬가지로 성경은 음행하는 자를 우상 숭배자라고 규정한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매우 혐오하시는 분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 신약 시대에는 눈에 보이는 우상숭배는 믿는 자들이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상숭배에 그렇게 중독적으로 매였던 유대인들도 바벨론 포로 생활 이후에는 더 이상 우상숭배하지 않는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숭배가 더 무섭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숭배도 매우 혐오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오히려 믿는 자들은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탐욕을 부리거나 성적으로 타락한 삶을 사는 것은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분노하게 하는 삶이다.

적용 8: 예수님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그 마음에 간음하였다고 말씀하셨다(마 5:28). 외적 행위보다 내적 동기와 내적 행위를 더 관심 있게 보시는 주님의 눈앞에서 간음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과연 누가 있을까? 외적인 간음죄로 드러나게 비난받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는 모습을 멈추고 우리 자신의 내면을 자주 성찰하는 분별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내면의 성적 역동성에 대해서 잘 인식하고 마음으로라도 범죄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적용 9: 외도의 역동성은 이상화(idealization)와 가치절하(devaluation)가 특징적인 경계선 성격장애의 역동성과 매우 유사하다. 외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이상화하는 동시에 자신의 배우자를 가치절하 하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외도자의 자아 기능이 미숙하거나 퇴행됨으로써 연결하며 구별하는 능력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에 일어난다. 외도가 일어나면 자신의 배우자의 가치와 외도 대상의 가치를 제대로 구별하며 분별하는 능력이 작동하지 않는다. 아울러 자신의 배우자와의 대상관계가 그동안 어떻게 맺어져 왔는지에 대하여 현재와 잘 연결하는 전체적이며 통합적인 시각을 갖지 못하게 된다. 주로 부정적인 대상관계 경험만 인식하고 연결하기 때문에 자신의 배우자를 가치절하 하는 것이다.

간음하는 자는 외도과정에서 오는 잠정적인 즐거움과 쾌락과 외도 후에 찾아오는 항구적인 고통과 슬픔을 연결해서 생각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본문에서는 이런 사람을 “무지한 자”(lacks judgment)라고 표현하였다. 판단력이 부족한 것이다. 그리고 인지가 왜곡되어 장기적인 만족 대신에 단기적인 만족을 선택한다. 장기적인 파멸과 단기적인 만족과 연결할 줄 모른다. “자신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상함과 능욕을 받고” 씻을 수 없는 수치심을 당하게 될 것을 내다보지 못한다. 더 나아가 자신의 삶도 파멸로 이르며 자신의 가족까지 파멸에 이르며 자신과 관계하는 사람들에게까지 고통을 준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다.

적용 10: 외도상담을 할 때 기독교상담사는 이와 같은 역동성과 사실에 대하여 알려주어 내담자의 인식의 지평을 넓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먼저 단기적인 만족에 애착하며 집착하는 내담자의 마음을 이해하며 공감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보다 객관적인 그림과 영적인 그림을 볼 수 있도록 인지치료적 접근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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