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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논문] 잠언 5-7장에 대한 목회상담적 주석 1
이관직(총신대신학대학원 실천신학)
기사입력: 2016/11/30 [09:18]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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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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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폼드뉴스

이 글은 이관직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잠언 5-7장에 대한 목회상담적인 주석을 펴 나간다. 

서론

필자는 이미 잠언에 대해서 세편의 주석적인 논문을 게재한 바 있다. 이 논문은 1장부터 10장까지 필자가 쓴 네 편의 논문 중에서 마지막으로 게재되는 것으로서 잠언 5장부터 7장까지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미 게재된 논문들의 방식과 마찬가지로 필자의 개인적인 본문 성찰과 현상학적인 글쓰기 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필자의 성찰을 담은 주석과 김정우, 박윤선, 그리고 브릿지스의 주석들을 비교하여 필요한 부분에서 각주에서 다루는 형식의 글쓰기를 하였다.

김정우는 잠언 5장, 6장, 7장에는 아내 외의 다른 여자와 관계하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세 개의 훈계가 등장한다고 잘 지적하였다(5:1-23, 6;20-35, 7:1-27). 그런 점에서 이 주석은 주로 외도 관계에 대해서 다루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특징적일 것이다. 오늘날 불신자들과 신자들을 가리지 않고 수없이 발생하고 있는 외도 관계들은 사실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솔로몬 당시에도 오늘날과 똑같이, 똑같은 역동성으로 일어났다는 점에서 인간은 창세 이후에 여전히 동일한 죄와 씨름해왔음을 잘 알 수 있다.
 
솔로몬 자신이 전도서의 초두에서 이 사실을 표현한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전 1:9-10).
 
따라서 솔로몬도 씨름했고, 직접 아들에게 교훈했던 성문제 및 외도 문제에 대한 가르침이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통찰과 지혜를 가져다줄 것이다.3 필자는 외도 관계가 인간관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죄악이자 어리석음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데 초점을 맞추며 주석하였다.

1. 5장에 대한 목회상담적 주석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 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로우며 그의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의 걸음은 스올로 나아가나니 그는 생명의 평탄한 길을 찾지 못하며 자기 길이 든든하지 못하여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5:1-6).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릴 정도로 매혹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그녀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럽다. 그녀의 입술과 입은 중독적이며 기만적이다. 따라서 한번 음녀와 애착(attachment)되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음행의 결과는 쑥과 같이 쓰다(bitter)는 사실을 예상하는 것이 지혜롭다. 당장에는 꿀처럼 달지만 얼마 가지 않아 인생에서 가장 쓴 맛을 보게 될 것이다. 성경의 수술적인 능력과 치료적인 능력을 표현할 때 “두 날 가진 칼처럼 날카롭다”(히 4:12)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흥미롭게도 음녀의 말은 양날 가진 칼처럼 날카로워 음행한 자의 생명을 사지(死地), 즉 스올로 끌고 간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살리는 예리한 칼이지만 음녀의 말은 생명을 앗아가는 예리한 칼이다.

간음하는 자들이나 성적으로 부적합한 관계를 맺는 이들은 자신과 상대방, 그리고 타인들, 더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인지가 왜곡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나님까지도 자기 중심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맞추는 대신 자신의 뜻에 하나님의 뜻을 끼워 맞추려는 사고 방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태도와 관점, 감정, 관계가 왜곡되어 있으며 병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따라서 주변에서 아무리 객관적인 이야기로 직면을 해도 수용하는 힘이 매우 약할 가능성이 높다. “자기 길이 든든하지 못하여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6절)는 말씀이 이 사실을 잘 지적한다.

적용 1: 외도 과정에 있는 사람들의 인지 왜곡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외도란 일종의 ‘미침’(madness)의 과정이다. 따라서 그들의 현실 이해과 검증 능력이 떨어져 있음을 알고 왜곡된 인지가 정상으로 회복되기까지 시간이 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내하면서 돕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즉 아들들아 나에게 들으며 내 입의 말을 버리지 말고 네 길을 그에게서멀리 하라 그의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 두렵건대 타인이 네 재물로 충족하게 되며 네 수고한 것이 외인의 집에 있게 될까 하노라 두렵건데 마지막에 이르러 네 몸, 네 육체가 쇠약할 때에 네가 한탄하여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히 여기고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며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었던고 많은 무리들이 모인 중에서 큰 악에 빠지게 되었노라 하게 될까 염려하노라(5:7-14).

성적인 타락의 결과는 분명하다. 8절에 표현된 “그의 집”은 음녀(adulteress)의 집을 말한다. 본문의 음녀는 배우자가 있는 여자로 볼 수 있다. 본문에서 음녀는 여성을 지칭한다. 그러나 많은 외도나 간음의 경우 남자가 가해자가 된다. 아무튼 성경은 음행을 하는 자의 “집”이 사망과 파멸로 이어질 것임을 경고한다.

간음의 결과는 물질적인 손실로도 이어질 것이다. 간음한 자는 사회적으로 수치를 당하는 것은 물론이며 경제적으로도 손해 배상 청구를 당하게 될 것이다. 성적인 욕구를 추구하는 간음 관계는 오래 가지 못한다. 설령 드러나지 않고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성적인 욕구가 줄어들며 남성호르몬이나 여성호르몬이 줄어들어 더 이상 성적인 기쁨을 이전처럼 느끼지 못할 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성적인 즐거움에 모든 것을 걸고 희생한 사람은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런 삶을 산 사람에게는 영원한 심판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한다. 오늘의 즐거움이 내일의 울음과 탄식으로 변할 것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성적인 타락에 빠지지 않게 된다.

간음은 당사자 뿐 아니라 배우자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며 자녀들에게 수치심과 분노를 야기한다. 마침내 한 가정이 파괴되며 관련된 상대방 가정까지 파괴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그 물이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으로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5:15-20).

결혼관계에서 남편과 아내가 나누는 샘물은 타인이 공유할 수 없는 배타적인(exclusive) 샘물이다. 배타수역에 다른 나라 배가 들어온다면 저지해야할 것이다. 남의 나라 수역에 허락 없이 들어가서도 안 될 것이다. 이 경계선(boundary)은 유연성이 있는(flexible) 경계선이 아니다. 이 경계선은 분명하며 명료해야 할 것이다. 이 경계선이 흐려지면 타인이 개입하거나 타인과 나누는 ‘삼각구도’(triangle)가 형성되며 죄가 개입된다. 결과적으로 온 가정이 역기능적이 된다. 부부 사이만 역기능적이 될 뿐 아니라 자녀들까지 역기능적이 된다.

이 경계선을 지키는 적극적인 방법은 자신의 샘물에 대하여 자족하는 마음이다. “네 우물”과 “네 샘”이라는 표현은 기혼자의 경우에는 자신에게 분복으로 주신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공급되는 샘을 하나님이 이미 공급해주셨음을 의미한다. 이 샘이 마르지 않도록 부부관계를 건강하게 지켜 나가야 할 책임이 성도에게 있다. 샘물이 고갈될 때 다른 샘물을 마시고 싶은 갈증을 느끼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샘이 집 밖으로 넘치거나 거리로 흘러나갈 때에 그 샘은 오염되며 더 이상 기쁨과 감사의 샘이 될 수 없다.
 
이 샘이라는 은유와 더불어 사용되는 은유는 ‘암사슴’과 ‘암노루’이다. “젊어서 취한 아내”를 여전히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것은 그 남편이 하나님 앞에서 결혼 관계에 대해서 자족하며 감사할 때 가능하다. 그 아내의 가슴으로 만족하는 것이 창조의 질서이며 하나님의 뜻이다. 아내가 남편을 바라보는 태도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항상’ 그 품을 족하게 여기는 것이 외도를 막는 긍정적인 예방책이다.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그 사람의 모든 길을 평탄하게 하시느니라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죽겠고 심히 미련함으로 말미암아 혼미하게 되느니라(5:21-23).

21절 말씀을 NIV 성경은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다 보고 계시며 그가 가는 모든 길들을 검토하신다”라고 번역하였다. 이 번역을 따른다면 하나님의 눈으로부터 피할 인생은 단 한명도 없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선인과 악인을 각각 그 행하는 길의 전후좌우와 과거, 현재, 미래를 다 알고 계시며 보고 계신다. 믿는 자의 경우에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신다는 사실은 큰 위로가 된다. 하나님이 알고 있는 한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이 있다.(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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