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개혁신학
[논문] 네덜란드신앙고백서(1561)에 나타나는 개혁주의 성경관 2
이상웅(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기사입력: 2016/10/19 [09:36]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김순정
배너

▲     ©리폼드뉴스

 
이 글은 이상웅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네덜란드 신앙고백서에 나타난 개혁주의적 성경관에 대해 연구하고 제시한다.


3.4. 정경(4조)

네덜란드신앙고백서 4조는 이어서 정경의 명단을 소개해 준다. 4조는 “우리는 성경이 두 책 즉, 구약과 신약안에 포함되었으며, 정경이라 불리우는 이 책들에 대해 아무 것도 반대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믿는다.”라고 시작한다.

네덜란드신앙고백서는 신구약 성경을 ‘정경적’이라 표현한다. 그러고 나서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정경의 명단을 나열해 준다. 동일한 66권이지만, 다른 신앙고백서와 다른 점들이 있다. 일례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1647년)는 66권의 명단을 단순하게 나열하지만, 네덜란드신앙고백서는 여러 가지 설명들을 덧붙여 가면서 나열한다. 본신앙고백서가 정경의 명단을 나열하고 기술하는 방식에 있어서 특이한 점들을 차례대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우선 구약을 소개함에 있어서 모세오경이라는 표현만 사용하고, 다섯권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역대상하를 말하면서도 파라림포메네(dits Paralipomènes)라는 특이한 단어를 덧붙였다. 역대상하에 대해서 부언한 빠라리뽀멘느(paralipomènes)라는 표현은 ‘the things left over’의 의미이다. 열왕기상하와 역대기를 조화시키려고(harmonize) 하는 전통에서 이 표현을 사용해 온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에스라를 에스라1서(the first of Ezra)라는 호칭을 사용했고, 시편을 다윗의 시편(Psaumes de David)이라고 함으로 다윗을 주요 저자로 지칭했고, 잠언, 전도서와 아가서를 열거하면서 솔로몬의 세 책들(les trois livres de Salomon)이라고 명시함으로서 세 책의 저자가 솔로몬이라고 하는 점을 명시한다. 그리고 4대 선지서(les quatre grands Prophètes)라는 명칭하에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을 포함시켰고, 다른 12 소선지서(puis les autres douze petits Prophètes)라는 명칭 하에 호세아로부터 시작해서 말라기까지 나열한다.

신약의 경우는 4복음서(les quatre Évangélistes)라는 명칭을 제시하고 네 개의 복음서 명단을 제시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이 신앙고백서는 로마서로부터 시작해서 히브리서까지 총 14개의 서신을 바울이 썼다고 명시한 점이다.

그리고 현대에 일반서신(general epistles)라고 불리우고 있는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1, 2, 3서 그리고 유다서를 “다른 사도들의 일곱 서신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특이점들을 고려해 볼 때, 네덜란드신앙고백서는 각 성경책의 전통적인 저자설을 지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구태여 모세오경이라 불렀고, 솔로몬의 세 책들이라 불렀다. 그러면서 문제가 될수 있는 것은 히브리서의 저작권을 바울에게 돌린 점이다. 후일에 네덜란드신앙고백서를 받아 본 칼빈은 이 3조에 대해서 동의하되 다만 히브리서를 바울서신에 포함시킨 것에 대해 반대했다. 그리고 야고보와 유다에 대해서도 사도라고 지칭한 점도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또한 문제로 제기될 수 있는 것은 4대 선지서라는 명칭하에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을 나열하면서 ‘예레미야애가’를 빠트리고 있는 점이다. 귀도 드 브레가 본 신앙고백서를 작성하기 위해 크게 의존했던 프랑스신앙고백서 3조에서는 예레미야애가를 빠트리지 아니하고 리스팅하고 있는 것을 볼 때에 놀라운 일일 것이다. 또한 1618-1619년 도르트총회에서 승인한 최종 수정 공인본에서 조차도 애가서는 누락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더욱더 충격적이라고 할 것이다. 단지 원저자 귀도 드 브레의 실수뿐 아니라 초기의 다양한 역본들과 도르트의 공인본 조차도 누락시킨 사실을 몰랐고, 한역본들 조차도 그 사실을 놓친 것은 심히 의아스러운 일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역사적인 규명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3.4. 성경의 권위(5조)

네덜란드신앙고백서는 4조에서 정경으로 믿는 성경책 명단을 나열한 후, 5조에서는 성경의 권위에 대하여(De Auctoritate Sacrae Scripturae) 무엇을 믿는지를 고백한다. 우선 5조의 모두는 4조의 내용과 맞물려서 시작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우리는 이러한 모든 책들만을 우리 믿음을 규정하고, 기초놓고, 확립하기 위하여 거룩하고 정경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소위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의 성경적인 원리가 분명하게 천명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귀도 드 브레나 저지대 개혁교인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개혁주의 신자들이 “믿음을 규정하고, 기초놓고, 확립”하기 위해선 성경 66권만을 ‘거룩한 정경’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는 사실은 불변의 원칙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구절들 속에서 5조는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모든 것을 어떠한 의심도 없이 믿는데”라고 말한 후에, 왜 그러해야 하는지 이유를 밝힌다. 우선 그러한 믿음의 근거는 “교회가 그것들 자체를 받아들이고 인정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는 교회의 정경수용 결정과 공인을 믿음의 근거로 받아들이는 것을 전면 부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성령의 증언과 성경의 자증성(autopistia)이다. 성경의 권위에 대해 기술하는 5조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로 끝을 맺고 있다.

더욱 특별히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서 그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증거하시기 때문이며, 성경 스스로가 그렇게 증거하기 때문에 믿는다. 왜냐하면 맹인이라도 성경안에서 예언된 것들이 성취되고 있음을 깨닫게 될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일단 우리는 여기서 프랑스신앙고백서 4조와 내용상 유사함을 발견하게 된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이 책들을 정경적이며, 우리 신앙의 확실한 규범이라고 아는데”라고 시작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로 제시한 내용에 있어서는 네덜란드신앙고백서 5조와 거의 유사함을 보인다.

교회의 공통적인 동의와 일치에 의해서 보다는 유익하긴 하나 신앙의 조항을 발견할수 없는 다른 교회적 문헌들과 성경을 구별하게 만드시는 성령의 증언과 내적인 조명에 의해서 우리는 이 책들을 정경적이며, 우리 신앙의 확실한 규범이라고 안다.

두 신앙고백서 모두 성령의 내적인 증언을 언급한다. 다만 네덜란드신앙고백서는 “성경이 스스로 증거한다”고 첨언했고, 프랑스신앙고백서는 ‘성령의 내적인 조명’을 언급했다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가신성의 근거로 제시된 내용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1장 5항에서도 분명하게 전승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무오한 진리와 신적인 권위에 대한 우리의 완전한 납득과 확신은 우리의 가슴 안에서 말씀으로 그리고 말씀과 함께 증거하시는 성령의 내적인 역사로 말미암는다.

3.5. 정경과 외경의 차이(6조)

이어지는 6조에서는 정경적인 책들과 외경의 차이에 대해서(De Discrimine Librorum Canonicorum et Apocryhorum) 기술하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게 된다. 외경적인 책들은 최초의 번역성경인 70인경(LXX)과 히에로니무스의 라틴어역(Vulgata)에서 정경과 더불어 수록한 일군의 책들을 말한다. 본 신앙고백서 6조는 그 명단을 다음과 같이 나열해 준다.

에스드라 3, 4권, 토비트,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에스더서 부록, 불구덩이 속의 세 아이들의 찬송, 수잔나의 역사서, 벨과 용, 므낫세의 기도, 마카비의 두 책 등.

이렇게 외경들의 명단을 나열하면서 정경과는 구별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한 후에, 네덜란드신앙고백서는 외경의 가치에 대해서 전면 부정하지 아니하고 다소 유보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책들은 그 내용이 정경에 기록된 내용과 일치하는 한계 내에서만 읽혀질 수 있고 교훈을 줄 수 있을 뿐이다. 또한 기독교적인 종교 혹은 신앙의 어떤 면이라도 확증을 줄 수 있는 능력이나 효능과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이 책들로 인해 다른 거룩한 책들의 권위를 손상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진술을 두 가지로 나누어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적어도 6조에 의하면 나열한 외경들을 무조건 무시하거나 거부한 것이 아니라 제한적인 사용이 가능하다고 진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신앙고백서는 외경의 “내용이 정경에 기록된 내용과 일치하는 한계 내에서만 읽혀질 수 있고” 심지어는 “교훈을 줄 수도 있다”라고 하는 단서를 달고 있다. 1561년 네덜란드신앙고백서를 작성했던 주요 저자 귀도 드 브레가 순교하기 두 주전인 1567년 5월 19일자로 어머니에게 써 보내었던 편지를 그 일례로 들 수가 있다. 그는 구약의 외경중 하나인 「마카비하」 제 7장에 기록되어 있는 한 용감한 어머니에 대해 언급했다. 7명의 자식이 순교자가 된 어머니 이야기이다.

이 예를 인용하면서 드 브레는 아들을 순교자로 두게 될 어머니의 영광에 대해서 언급하며 위로하려고 한다. 선교학적인 측면에서 본신앙고백서를 논구한 박사논문을 쓴바있는 웨스 브레이던호프(Wes Bredenhof)에 의하면 귀도 드 브레는 그의 모든 저술들에서 총 48회나 외경으로부터 인용하고 있다고 한다. 본신앙고백서 6조에 표현한대로 드 브레는 실제로 정경의 기록과 일치하는 선에서 외경을 사용했었다는 것을 확인할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로 6조에 의하면 외경은 정경과 관련해서 ‘그것이 없으면 안되는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는 점이다. “기독교 신앙의 어떤 면이라도 확증을 줄 수 있는 능력이나 효능과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이 책들로 인해 정경의 권위를 손상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적인 종교와 신앙의 어떤 면들’이든 확증할수 있는 능력과 효능은 외경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정경에 달려있다는 점을 천명했고, 어떤 경우에도 외경이 다른 거룩한 책들 즉, 4조에서 열거한 정경의 권위를 손상시킬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네덜란드신앙고백서의 외경에 대한 입장을 1647년에 작성된 장로교회의 표준문서인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1장 3항과 대비해서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외경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밝힌다.

보통 외경이라고 부르는 책들은 신적 영감에 의해 된 것도 아니며 정경의 일부도 아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아무런 권위도 없다. 또한 다른 인간적 저서보다 더 인정되거나 사용되어서도 안된다.

외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아도 읽고 배울 수 있다고 말한 네덜란드신앙고백서의 경우와는 달리 웨스트민스트신앙고백서의 입장은 단호하다고 할 수가 있다. 물론 전자도 외경의 정경적 권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배척했다. 최근에 『신약정경론』을 출간한 변종길은 네덜란드신앙고백서의 외경에 대한 태도는 “중세를 지나오는 동안 오랫동안 교회에서 읽혀져 왔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와 같은 귀도 드 브레에 의해 작성된 1561년 원문은 1619년 도르트총회의 최종 수정안에서도 변경되지 않고 통과되었다.

정리를 해보면, 네덜란드신앙고백서 6조는 외경의 권위를 정경의 권위와 동일시하지 않으며, 다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이 정경과 일치할 때 읽거나 교훈을 받을 수 있다라고 하는 점을 유보적으로 말했을 뿐이다. 사실 외경의 내용들 가운데는 “역사적 진실성에서나 성경과의 조화에서나 도덕적 표준으로서나 영감서의 성격을 가지지” 못하며, 또한 “오류가 무수하며 의심없이 정경적인 책들에 발견되는 진술들과 충돌하는 진술들이 많다”고 하는 점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단적인 예로 들수 있는 것은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자신들의 연옥설의 근거로 삼아온 마카비 2서 12장 42-45절과 같은 부분이다. 그러나 죽은 병사들을 위한 속죄제를 드리게 한 것과 같은 내용은 비정경적인 책에서 언급된 것일 뿐, 정경 66권 어느 곳에서도 언급되지 않고 있는 것이므로 우리는 하등의 교리적 구속력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3.6. 성경의 완전성과 충족성(7조)

성경관을 다루고 있는 네덜란드신앙고백서의 마지막 조항인 7조는 성경의 완전성과 충족성에 대해서 진술하고 있다. 특히 신앙의 유일한 규칙으로서 성경이 무오하고 충분하다는 사실을 단호하게 천명하고 있다. 우선 7조는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다 포함하고 있으며,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 믿어야 할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안에 충분하게(suffisamment) 가르쳐지고 있음”을 고백함으로 시작한다. 성경에는 구원을 얻기 위해 믿어야 할 내용들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예배의 전 방식이 전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진술한다. 그러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심지어는 사도라고 하더라도, 성경에서 가르쳐지고 있는 것과 달리 가르치는 것은 불법이” 되는 것이다.

신앙고백서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1장 8절에서 선언한 것을 따라서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고 해도”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또한 7조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어떤 것을 더하거나 빼는 것”이 성경에서 금지하고 있다는 점(신 12:32; 계 22:18-19)을 상기시키면서, 이러한 엄격한 금지조항에서 성경의 “가르침이 모든 면에서 완전하고 완성된 것”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준다고 진술한다.

성경이 그와 같이 완전하고 충족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어떤 인간적인 문헌이나 권위를 가질 만한 것들도 성경의 권위에 비교할 수는 없다고 상술하는데로 나간다. “우리는 어떤 인간들의 저술들도, 그들이 성자라고 하더라도, 신적인 문헌(즉, 성경)과 비교해서는 안된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어서 “하나님의 진리는 모든 것 위에 뛰어나기 때문에,” “어떤 관습도, 거창한 숫자도 즉, 다수성이라고 해도, 고대성도, 시간의 연속성도, 인물의 연속성도, 공의회들도, 결정사항들도, 규례들”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진리’와 비교해서는 안된다라고 선언한다.

앞서 우리는 ‘성자’라고 불리우는 인간의 저술조차도 성경의 권위에 대적할 수 없다고 하는 점을 보았는데, 이어지는 구절 속에서도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스스로 거짓말쟁이며, 공허 자체보다도 더 공허한 자들이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강한 진술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어떤 종류의 인간적인 저술도, 인간들이 권위있게 여기는 어떤 기준이라고 해도, “모든 것 위에 뛰어난” 하나님의 진리와 비견할 것은 없다고 하는 것을 그렇게 대비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와 같이 성경의 충족성과 완전성을 강조한 후에 7조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지극히 순리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무오한 규범과 일치되지 않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온 마음을 다하여 배척한다.” 그리고 그렇게 배척해야 하는 이유는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찾았다. 즉,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는 요한일서 4장 1절의 말씀과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한 요한이서 1장 10절 말씀들이다.

정리해 보자면, 성경의 완전성과 충족성에 대해서 진술하고 있는 본 7조의 내용은 그 역사적 배경에 있어서는 성경이외의 교회 전통을 중요시했던 로마가톨릭교회의 입장에 대한 단호한 거부가 담겨져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프랑스 신앙고백서 5조와 대비해서 볼 때에, 본 조항이 내용적으로 뿐 아니라 문구적으로 유사성을 보인다는 점을 지적할수 있다. 그러나 양자의 결론 부분이 상이해지는 것을 주목하게 된다. 후자는 앞서 열거했던 다양한 인간적인 기준들은 “성경에 따라 조사되고, 규제되고 개혁되어야 한다”라고 제시하였고, 이어서 “그러므로 우리는 세 개의 신조들 즉, 사도신경, 니케아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 등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기 때문에 [받아들인다]고 고백한다”로 끝을 맺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무오한 규범과 일치되지 않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온 마음을 다하여 배척한다.”로 끝맺은 네덜란드신앙고백서 7조와 달라진 내용이다.

4. 나가는 말

우리는 이상에서 개혁교회 ‘일치의 3신앙고백서’중 가장 먼저 작성된 네덜란드신앙고백서의 성경관을 논구해 보았다. 특히 성경관이 기술된 2-7조 텍스트를 세세하게 분석해 보았다. 우선적으로 우리는 본신앙고백서의 역사적 배경과 구조, 그리고 성경관이 표현된 2-7조의 문맥(context)을 살펴보았다. 이어서 2-7조의 내용을 차례대로 분석 고찰해 보았다. 위에서 논구했던 바를 간략하게 요약하고 평가의 말로 본고를 끝맺음하고자 한다.

일단 성경관이 다루어진 문맥은 16세기에 작성된 개신교 신앙고백서들과 일치하여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부터 시작하고 난 후에 그러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방편을 다루는 중에 성경관이 제시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신앙고백서의 2조에서는 하나님 지식의 두 근원내지 방편으로서 계시에 대해서 먼저 진술하고(자연계시와 특별계시), 3조에서는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에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로의 특별한 배려를 고백했고, 4조에서는 정경적인 책들의 명단을 설명구와 더불어서 나열하는 것을 보았다. 5조에서는 성경의 정경성을 믿을수 있게하는 권위의 근거는 성령의 내적인 증언(testimonium internum)과 성령의 자증(autopistia)에 있음을 고백하고, 6조에서는 외경적인 책들의 권위와 사용가능 여부에 대해서 진술하는 것을 보게 된다.

마지막 7조에서는 성경의 완전성과 충족성(perfectio et sufficientia)에 대해서 고백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귀도 드 브레와 네덜란드신앙고백서에 의하면 성경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번 방식을 보여주고, 구원을 위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계시해주는 ‘무오한 규범’이며, 그 안에 담긴 ‘가르침은 모든 면에서 완전하고 완성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분석 작업을 통하여 본신앙고백서에서 고백된 성경관이 철저하게 개혁파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확인하게 되었다. 이러한 판단은 2-7조를 칼빈이 직접 초안하고 프랑스 개혁교회 총회에서 수정하여 받아들였던 프랑스신앙고백서(Confessio Fidei Galliana) 2-5조를 대조하여 살펴보거나 칼빈의 『기독교강요』와 대조하여 고찰해 보아도 분명하게 확인하게 되는 사실이다. 본 신앙고백서의 성경관과 여러 교리들에 대한 진술이 개혁파신앙의 내용을 잘 표현해준다고 판단되었기에 1618-1619년 도르트(레흐흐트) 총회에서 개혁교회를 위한 ‘일치의 3신앙고백서’중 하나로 공인될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관에 제한해서 볼 때에 몇 몇 비판적인 논의점들도 발견할 수가 있었다. 4조에서 정경의 명단을 나열할 때에 예레미야애가를 빠트린 점은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보다 더 깊은 역사적 고찰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또한 6조에서 제시하는 외경에 대한 평가와 사용여부에 대한 입장은 장로교 표준문서인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가 제시하는 바와 분명한 차이를 가지고 있음도 확인하게 되었다. 이러한 차이는 역사적인 배경을 살필 때에 이해가 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후자의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앞선 논의에 근거하여 우리는 순교자 귀도 드 브레가 작성했고, 1618-1619년 도르트총회를 통해서 “일치의 삼신앙고백서”중 하나로 공인되었던 네덜란드신앙고백서가 담고있는 성경관이 다른 개혁파 신앙고백문서들에서 개진된 입장과 대체로 일치한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세부적인 면에서 차이점이나 독특성이 존재한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고, 어떤 부분들은 역사적으로 신학적으로 좀 더 검증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음도 사실이다. 오늘날 같이 파괴적인 성경관이 횡행하고 있는 때에, 성경적이고 개혁주의적인 성경관의 정립과 확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우리들의 중차대한 과제임을 다시 한 번 천명하면서 본고를 마치고자 한다.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