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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논문] 네덜란드신앙고백서(1561)에 나타나는 개혁주의 성경관 1
이상웅(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기사입력: 2016/10/12 [10:58]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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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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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상웅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네덜란드 신앙고백서에 나타난 개혁주의적 성경관에 대해 연구하고 제시한다.

1. 들어가는 말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는 종교개혁의 형식적 원리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신적인 기원을 가진 문서이기 때문에, 모든 참된 신지식(congnitio Dei)과 선악의 판별 기준은 오직 성경에서 찾아져야 한다. 그러나 근대 비평학의 발달과 더불어서 성경의 영감과 신적인 권위에 대한 확신은 의심으로 변하고 마침내는 비평적으로 다루어야 할 ‘고대문서중 하나’에 불과한 것처럼 여기는데 까지 이르고 만다.
 
인간을 척도(homo mensura)로 삼는 자유주의자들뿐 아니라 소위 복음주의자들 가운데서도 성경의 권위에 대해서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이들이 존재하게 되었다. 종교개혁 이후 어느 시대나 그러하였지만 특별히 21세기에 살아가는 우리 개혁주의자들에게는 성경의 기원, 영감, 권위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재정립하고, 이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뒤흔들어 놓고자 하는 파괴적인 비평학과 어느 정도 동의하고자 하는 입장들에 대해서 바른 성경관을 변호하고 방어해야 할 책무가 주어져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 시대적인 책무의식에서 본 연구는 출발하였다.

논자는 개혁주의 성경관을 확인하는 작업의 일환으로서 네덜란드 신앙고백서(Confessio Belgica, De Nederlandse Geloofsbelijdenis, 1561년)의 성경관을 논구해 보고자 한다. 순교자 귀도 드 브레에 의해서 1561년에 처음으로 공표된 이 신앙고백서는 라틴어 번역으로부터 영어번역본에 이르기까지 벨직신앙고백서라고 표기하고 있지만,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일관되게 네덜란드신앙고백서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1561년 첫 원본에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순수성에 따라 살기를 소망하는, 저지대에 살고 있는 신자들의 공통의 일치에 의해 만들어진 신앙고백”(Confession de foy, faicte d’un commun accord par les fideles qui conversent es Pays-Bas, lesquels desirent vivre selon la purete de l’Evangile de Notre Seigneur Jesus-Christ)이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을 뿐이다.
 
사실 벨직신앙고백서이든 네덜란드신앙고백서이든 명칭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다만 이 신앙고백서는 네덜란드개혁교회와 동질의 신학을 추구하는 북미주개혁교회에서 ‘일치를 위한 3신앙고백서’(Drie formulieren der eenighied, The Three Forms of the Unity) 중 가장 오래된 신앙고백서라고 하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1563년에 공표된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1618-1619년에 작성된 도르트신경에 비해 이 신앙고백서는 1561년에 출간되었다).
 
또한 브레이던호프의 지적처럼 3대 신앙고백 문서 가운데 네덜란드신앙고백서는 유일하게 순교자가 만든 것이다. 자신이 고백한 신앙고백에 대하여 자신의 피로 손수 인을 친 문서라고 하는 점에서 감동을 주는 신앙고백서인 셈이다.

논자는 본고에서 이와 같은 네덜란드신앙고백서에 담긴 개혁주의 성경관을 논구해 보고자 하는데, 자료문제와 논의의 순서를 먼저 밝히고자 한다. 연구서들에 대한 참고도 필요하지만, 본고의 우선적인 주 자료원은 네덜란드신앙고백서 본문 자체이다.

2. 역사적 배경과 성경관 논의의 컨텍스트

2.1. 네덜란드신앙고백서의 저자 귀도 드 브레와 역사적 배경

다양한 토론들이 있긴 했으나 네덜란드 신앙고백서의 저자 내지는 주요 저자로 공인되어온 사람은 순교자가 된 귀도 드 브레 혹은 귀 드 브레(Guido de Brès or Guy de Bray, 1522-1567)이다. 드 브레가 신앙고백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이 도움을 주었을수도 있고, 출판하기 전에 여러 교회에 보내어 자문을 구했다고 하더라도 신앙고백서의 주요 저자는 귀도 드 브레라는 점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네덜란드 신앙고백서의 저작 배경에는 저자 드 브레의 삶과 그가 활동했던 저지대의 역사적 상황이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적지 않은 논의들이 공표되어 있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최대한 간결하고 요점들만 제시하고 지나가고자 한다.

귀도 드 브레는 1522년 저지대에 속한 베르흔(Bergen/ Henegouwen)에서 출생했으나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알기 어렵다. 다만 칼 5세의 통치하에 있던 가톨릭 지역에서 자라난 그가 개혁파적인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은 1547년경이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1548년 드 브레는 개혁파신앙에 대한 박해를 피해서 런던으로 갔고, 그곳에서 유럽의 개혁자들인 마르틴 부처, 요한 아 라스코, 페트루스 다테인 등과 교제하면서, 신학적 지식을 처음으로 광범위하게 쌓게 되었다. 그는 1552년에 다시 저지대로 돌아와 순회설교자로 사역했다(레이설 또는 릴르와 주변지역). 4년 후 가톨릭의 박해가 극심해지자 다시 저지대를 떠나 프랑크푸르트로 망명을 떠나게 되었고(1556년), 그후 베자가 가르치고 있던 스위스 로잔과 칼빈이 목회하고 있던 쥬네브로 가서 1559년까지 머물면서 신학공부를 계속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기간 동안 드 브레가 어떤 공부를 하였는지에 대해서도 확인하기는 어렵다.

1559년에 다시 고국으로 되돌아온 드 브레는 도르닉(Doornik, 프랑스어로는 뚜르네이 Tournai라고 부름)에서 비밀교회를 조직하여 목회하기 시작했다. 비밀스러운 사역을 진행하던 중에 박해를 일삼는 신성로마제국과 로마가톨릭에 대하여 자신들이 믿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공개적으로 알려야 하겠다는 사명의식을 가지고 작성하게 된 것이 바로 네덜란드 신앙고백서이다. 헤이띵(W. Heijting)에 의하면 신앙고백서는 ‘1561년 4월 전에’(voor April 1561) 드 브레가 사역하고 있던 도르닉(= 뚜르네이)의 은신처에서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인쇄된 신앙고백서 책자가 공적으로 처음 알려지게 된 것은 11월 1일-2일 사이 밤중에 도르닉 성벽안으로 몰래 투척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부터였다.
 
드 브레는 개혁파 신자들이 믿고 있는 신앙이 재세례파의 과격한 신앙이 아니라는 점을 알리고, 펠리페 2세나 저지대 행정관들이 박해를 중단해 줄 것을 탄원하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드 브레의 간절한 소원에도 불구하고 그의 탄원서와 신앙고백서는 펠리페 황제나 그가 세운 섭정 마르가 레타에 의해 수용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극심한 박해를 받게 되었다. 드 브레는 4년 동안 프랑스 북부에 소재한 아미엥(Amiens)과 세당(Sedan) 등에 머물렀고, 1566년에 도르닉에서 멀지 않은 발랑시엔느(Vaenciennes, L’Aigle)에서 목회사역을 시작했다. 한때 복음에 의해서 발랑시엔느가 개혁도시가 되는가 싶었으나, 결국에는 스페인군대에 의해서 성은 함락되었고, 도피중에 잡힌 귀도 드 브레는 체포되어 몇 개월 동안 감옥에 갇히어 된다. 그리고 1567년 5월 31일에 공개적으로 교수형에 처해지고 나서 화형에 처해지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드 브레의 삶의 여정과 신앙고백서의 작성 경위에 대한 검토를 통해서, 네덜란드신앙고백서는 스페인과 가톨릭진영의 박해아래 고난받고 있던 저지대지방 신자들의 공통적인 신앙고백이 무엇인지를 공개적으로 밝히기 위해서 작성되었음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가 있다. 그리고 1561년 원본 앞부분에 첨부한 펠리페 2세에의 헌정사와 뒷편에 수록한 저지대 지방관원들에게 보내는 탄원서 등과 더불어서 함께 고려할 때에, 본 신앙고백서가 가지는 또 하나의 중요한 목적은 저지대의 개신교 신자들은 재세례파와 같이 위험스러운 무리들이 아니라 복음적인 신앙을 가지고 위정자들의 합당한 권위에 순복하고 있는 자들이라고 하는 것을 밝혀서 신앙의 자유를 보장해주도록 요청하는데 있음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 신앙고백서의 저자인 귀도 드 브레나 동역자 뻬레그랭 드 라 그랑쥬(Pérégrin de la Grange) 목사는 순교자가 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로써 네덜란드신앙고백서는 자신의 고백을 위해 피로 인친 순교자의 신앙고백서가 된다.

2.2. 네덜란드신앙고백서의 성경론의 컨텍스트

이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네덜란드신앙고백서의 성경관이 드러나고 있는 2조-7조의 문맥(context)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먼저 우리는 총 37개조로 구성되어 있는 네덜란드신앙고백서의 구조를 간략하게 주목해 보고서 성경관의 문맥을 살피고자 한다. 귀도 드 브레가 자신의 신앙고백서를 작성하기 위해 많이 의존했던 테오도르 베자의 신앙고백(1560년)에 비하자면 그 분량이 짧지만, 프랑스신앙고백서(1559년) 보다는 두 배 가량 분량이 많다. 37개조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토론이 있어 왔다. 깜뻔신학교의 교의학교수였던 뽈만(A. D. R. Polman)은 다음과 같은 분석을 제시한 바가 있다.

1. 하나님과 하나님을 알게 되는 방편들(1-11조)
2. 창조, 섭리, 타락과 그 결과들(12-15)
3. 선택과 타락한 인간의 회복(16-17조)
4. 그리스도(18-21조)
5. 구원의 은덕들(22-26조)
6. 교회와 은혜의 수단들(27-35조)
7. 정부와 최후의 일들(36, 37조)

반면에 최근의 학자들은 네덜란드신앙고백서가 개혁파교의학(Reformed Dogmatics)의 논의 순서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동의를 하고 있다. 대니얼 하이드에 의하면 신론을 먼저 다루고(1-13조), 인간론(14-15조), 기독론(16-21조), 구원론(22-26조), 교회론(27-36조) 등을 다루고 나서 종말론(37조)으로 신앙고백서의 내용은 전개된다. 신앙고백서의 최신 화란어 편집본의 편자 라우껀스 역시도 이러한 분석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 분석에 따르면 성경관은 어떠한 문맥에 속하게 되는 것일까? 전통적인 교의학의 로치(loci)방식에 의하면 성경관은 서론(Prolegomena)에서 다루어져 왔다. 서론에서 신학의 원리와 방법론을 다루고 나서, 신론과 다른 로치로 넘어가는 것이 종래의 개혁주의 교의학의 순서였다. 그러한 순서를 거의 따르고 있는 네덜란드신앙고백서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성경관은 서론부분에 별도로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신론과 연관지어서 위치하고 있다. 신앙고백서 1조에서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들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한 후에, 이러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 계시에 달려있음을 말하면서 성경에 대한 고백이 시작된다(2조).

인간이 하나님을 알수 있게 허락하신 이중적 수단에 대해서 2조는 다루고 나서, 이어지는 3조에서는 기록된 말씀에 대해 기술하고, 4조에서는 성경의 정경적 책들 66권의 명단을 소개하고, 5조에서는 성경의 권위에 대해서 다루고, 6조에서는 정경적인 책들과 외경의 차이점들에 대해 기술하고, 7조에서는 유일한 신앙의 규범으로서의 성경의 충족성에 대해서 서술한다. 그러고 나서 8조부터 다시금 신론적 주제가 전개되어진다(8-13조).

우리는 이와 같은 성경관과 신론과의 배치 문제 내지 구조 문제에 잠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16세기 개신교신앙고백서와 17세기 개신교신앙고백서의 구조적 차이에 주목한 리처드 멀러(Richard A. Muller)의 견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멀러에 따르면 1, 2차 스위스 신앙고백서(Confessio Helvetica prior et posterior)를 제외한 16세기의 다른 신앙고백서들(프랑스신앙고백서와 네덜란드신앙고백서 포함)은 성경을 먼저 다루고 하나님에 대해 고백하는 17세기 신앙고백서들(예컨대 아일랜드신조,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등)과는 달리 하나님에 대한 고백으로부터 시작해서 성경으로 넘어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멀러는 16세기 신앙고백서들이 왜 그러한 논의의 순서(즉, 하나님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해서 성경관으로 넘어가는 방식)를 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신학적인 이유로서 “우리가 성경을 떠나서는 하나님을 알수 없지만, 또한 성경적 계시의 존재 또한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역사적인 이유인데, 성경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멀러에 따르면 성경관에 대한 폭넓은 논의는 종교개혁 2세대에 이르러서야 가능해진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37개조로 된 네덜란드신앙고백서의 구조와 성경관이 담긴 2-7조의 구조적 위치 문제를 논구해 보았다. 본 신앙고백서는 16세기 개신교 신앙고백서의 구조에 따라 하나님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해서(1조), 그 하나님을 어떤 수단 혹은 방편에 의해서 알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하는 중에 성경관(2-7조)을 다루게 되는 것을 확인해 보았다. 그러고나서 본격적인 신론적 주제들이 기술되는 것을 보게 된다(8-13조). 이와 같은 구조 혹은 컨텍스트를 고려해 볼 때에 우리는 네덜란드신앙고백서에서 성경관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바르게 고찰할 수가 있다고 사료된다.

3. 네덜란드신앙고백서의 성경관 분석

이제 본격적으로 네덜란드신앙고백서 2-7조의 내용을 분석 고찰해 보고자 한다. 해당 텍스트들을 주도면밀하게 읽고 분석하는 일도 필요하겠지만, 본 신앙고백서가 크게 의존하고 있는 프랑스신앙고백서(Confessio Fidei Gallicana, 1559)의 해당 본문들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3.1. 하나님 지식의 근원으로서 계시(2조)

유일하신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들에 대한 고백으로 1조를 시작한 본 신앙고백서는 2조에서 어떤 방편 혹은 수단에 의해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우리에게 알려지게 되는지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데로 넘어간다. 일단 2조의 첫 머리를 주목해 보면 “우리는 두 가지 수단에 의해 그분(= 하나님)을 알게 된다”(Nous le connaissons par deux moyens)고 고백하고 나서, 그 두 가지 수단이 무엇인지를 차례대로 기술해 주는 것을 주목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허락된 두 가지 방편이 무엇일까? 첫째는 “이 우주적 세계의 창조, 보존, 그리고 통치”를 통해서(par la création, conservation et gouvernement du monde universel)라고 말한다.
 
소위 신학적으로 자연계시(revelatio naturalis) 내지는 일반계시(revelatio generalis)라고 명명한 것과 궤를 같이 하는 내용이다. 신앙고백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 보존, 통치가 “우리들의 눈 앞에 마치 아름다운 책과 같이 놓여져 있다”(d’autant que c’est devant nos yeux comme un beau livre)고 하는 흥미로운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고 나서 세계 속에 있는 크고 작은 모든 피조물들은 “문자들”(de lettres)에 비유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한 문자들로 구성된 세계라는 책을 통해 우리들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 1장 20절에서 말한대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 즉,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알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을 충분히 알게 하시며 핑계할수 없도록 만드신다고 하는 점을 지적한다. 약간의 표현상의 차이는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첫 방편에 대한 설명은 칼빈의 『기독교강요』 1권 5장과 여러 주석들 가운데서 공표된 해설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음을 주목할 수가 있다.

하지만 첫 번째 신지식에 이르게 하시는 방편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신앙고백서도 마찬가지로 두 번째 ‘더욱 명백하고 분명한’(plus manifestement et évidemment) 방편을 주셨다고 기술한다. 그 방편이란 ‘그분의 거룩하고 신적인 말씀’(sa sainte et divine Parole)을 가리킨다. 이 거룩한 말씀이라는 방편이 어떤 효용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생에서 그분의 영광과 그의 백성들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들을 충분히” 알려준다고 기술했다. 즉,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과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거룩하고 신적인 말씀’이 ‘명백하고 분명하게’ 가르쳐 준다는 것이다.

종합해 보건데, 네덜란드신앙고백서 2조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두 가지 방편에 대해서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방편은 자연계시 혹은 일반계시로 정리되어질 수 있는 것이고, 두 번째 방편은 하나님의 거룩하고 신적인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러나 2조는 이러한 두 가지 방편이 있다고 하는 점을 명시하였을 뿐 두 번째 방편에 대한 더 분명한 소개는 하지 않았다.

3.2.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3조)

네덜란드신앙고백서 3조는 2조에서 ‘그분의 거룩하고 신적인 말씀’(sa sainte et divine Parole)이라고 언급했던 바에 대해서 상술을 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말씀이 … 라고 믿는다”(Nous confessons que cette Parole de Dieu)라고 하는 3조의 모두는 일단 성경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포된 말씀(the Spoken Word)에 대한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물론 3조 말미에는 그러한 말씀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기록되어 성경이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3조에서 말하고자 하는 첫 번째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주어진 것도 전달된 것도 아니고, 오로지 사도 베드로가 말한 대로(벧후 1:21)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라고 하는 점이다. 일단 여기까지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책 자체에 대한 말씀이 아니고, 그 전단계인 구두계시의 단계를 말한다. 3조의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그 계시가 기록되어지는 단계를 말해준다.

그리고 그 후에, 비범한 배려에 의하여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분의 종들인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바(신탁 oracles)를 기록하라 명령하셨고, 그분 스스로 손수 두 판에 율법을 기록해 주셨다.

이처럼 신앙고백서 3조는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신탁들(oracles)이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비범한 배려)에 의하여 기록되도록 명령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손수 써주신 십계명의 두 돌판을 언급하기까지 했다. 네덜란드신앙고백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조처를 ‘비범한 배려’(par le soin singulier) 혹은 ‘특별한 배려’(een bijzondere zorg)라고 부른다. 그리고 3조의 말미에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그 글들을 거룩하고 신적인 경전”이라고 부른다는 고백으로 끝을 맺는 것을 보게 된다.

이처럼 3조에서는 구두 계시가 인간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의 감동에 의해서 주어졌으며, 하나님의 특별하신 배려에 의하여 사도들과 선지자들로 하여금 계시를 기록하도록 조처하셨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수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배려에 의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해 기록해 주신 말씀을 ‘거룩하고 신적인 경전’ 즉, 성경이라고 부르게 된 것임을 명시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이러한 표현들과 그 행간에서 네덜란드신앙고백서를 작성했던 귀도 드 브레에게 있어서 성경이라고 하는 책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으로 받아 들여졌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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