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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제101회 총회50] 개교회주의 극복과 연합을 통한 공교회성 회복
기사입력: 2016/10/01 [08:45]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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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전교회 박성규 목사    © 리폼드뉴스

개교회주의 극복과 연합을 통한 공교회성 회복 - 종교개혁 500주년기념사업 신학분야 - 
 
박성규 목사(부전교회) 

서 론

우리는 예배 때마다 사도신경을 고백한다. 이는 우리가 신앙하는 내용을 고백함으로써 이 은혜를 주신, 그리고 앞으로 주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 고백대로 살 것을 다짐하는 시간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신앙고백에 그런 감사와 다짐이 있는가?

오늘 우리가 주목할 사도신경의 내용은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 이다. 이것은 공교회(公敎會)를 믿는다는 고백이다. 과연 우리는 우리가 속한 개교회(個敎會)만이 아니라, 공교회가 있음을 믿고, 그 공교회를 세우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루는 고사하고 일년에 한 번도 공교회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신앙생활 할 수도 있고, 목회를 할 수도 있다.

만약에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고백은 의미 없는 외침이며 실천하지 않는 구호에 불과할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생활에서 벗어난 것이다. 오늘은 이 공교회성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 강의에서 다음 몇 가지를 다루고자 한다. 첫째, 공교회성이란 무엇이며, 둘째, 그것의 회복이 왜 필요한가, 셋째,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가를 다룰 것이다.

1. 공교회성이란 무엇인가?

공교회성은 개교회성과 대조되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공교회라는 말은 어떤 뜻일까? 그리고 로마 천주교회와 우리 개신교가 생각하는 공교회성의 차이는 무엇인가?

가) 사도신경

사도신경에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는 헬라원어로 “피스튜오 하기안 카톨리켄 에클레시안”(Πιστεύω … ἁγίαν καθολικὴν ἐκκλησίαν)이다. 여기에 ‘카톨리켄 에클레시안’이 ‘공회(公會)’이다. 풀이하면 ‘공교회(公敎會)’이다. 여기서 ‘공(公)’의 뜻인 ‘카톨릭켄’(영어로 카톨릭)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우리는 ‘카톨릭’ 하면 요즘 가톨릭이라고 불리는 로마 천주교를 연상한다.

그러나 카톨릭이란 말은 로마 천주교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 말은 본래 교회의 본질을 설명하는 용어였다. 즉 교회의 본질 중에 하나인 보편성(普遍性)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사도신경에 나오는 ‘카톨릭켄’은 주격 단수형이 카톨리코스이다. 이 단어는 두 단어의 합성어로, 카톨리코스(καθολικό󰐠) = 카타(κατά) + 홀로스(ὅλος) 이다. ‘카타’는 처음부터 끝까지를 뜻한다.
 
그리고 ‘홀로스’는 전부를 뜻한다. 그러므로 카톨리코스의 뜻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throughout all)이다. 따라서 카톨릭교회란 모든 교회가 하나의 교회라는 말이다. 이것을 보편적인(universal) 교회라고도 부른다. 이것은 개교회와 대조되는 의미에서의 보편적인 교회이다. 여기에서 연합의 개념이 나온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모든 교회는 하나의 교회, 형제자매이기 때문에 연합해야 한다.

나) 로마 천주교회와 개신교의 공교회성

개혁주의 조직신학자인 루이스 벌콥은 공교회(카톨릭)라는 용어를 로마 천주교회가 오용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로마 카톨릭은 보편성을 마치 로마 천주교만이 카톨릭으로 불려질 권리를 가진 것인 양 사유화하였다. 로마 천주교회는 그들만이 진정한 카톨릭교회로 간주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로마 천주교는 전 지구상에 퍼져 있으며, 모든 나라에 설립되어 있고, 항상 순종하는 신실한 성도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로마 천주교가 천주교를 반대하는 모든 분파를 다 모은 것보다 멤버의 숫자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로마 천주교의 공교회성의 문제는 교황을 공교회(카톨릭)의 머리로 삼는데 있다고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아주 분명하게 지적했다.
 
“그들의 이론은 로마교황청을 머리로 여겨 거기에 복종하지 않으면 교회는 목이 잘린 불구가 된다는 것이다. 즉 로마 교황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대리로서 그리스도 대신에 온 교회를 주관하며 로마 교구가 다른 모든 교구들 위에 수위권을 유지하지 않으면 교회가 잘 조직될 수 없다는 것이다. … 교회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유일한 머리이시며, 우리는 모두 그의 지배 하에서 그가 제정하신 질서와 조직에 따라 서로 연합된다. 교회에 머리가 없을 수 없다는 구실로 세계 교회 위에 한 사람을 앉히려고 하는 그들은 그리스도를 현저히 모욕한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시기 때문이다.”
 
우리 개신교 특히 개혁교회에 있어서 공교회(카톨릭)란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모든 교회가 하나라는 뜻이다. 형제교회라는 뜻이다. 또한 공교회란 불가견적 교회와 가견적 교회를 모두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로마 천주교회가 카톨릭이란 말을 사용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공교회의 머리를 로마교황으로 여기는 것과 로마 교황의 통치권 아래에 있는 교회만이 공교회(카톨릭)라고 주장한 것이다. 우리 개신교는 예수를 머리로 모신 모든 교회가 하나의 교회라는 공교회론을 가지고 있다.

2. 공교회성의 회복이 왜 필요한가?

공교회성 회복이 필요한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교회의 본질 회복의 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설계하신 교회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모든 교회가 하나로 연합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서로 협력하고 도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교회 신학의 바탕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모두 교회의 연합이다.

화란의 신학자인 흐로쉐이드(Grosheide)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때, 그 몸은 공교회와 개교회를 다 포함한다고 그의 고린도전서 주석에서 밝히고 있다. 고린도전서 12:13에 보면, 인종과 신분을 초월한 하나의 교회를 말하고 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반면에 고린도전서 12:27에 보면 지역교회를 향해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때 공교회와 개교회의 개념이 다 들어가 있는 것이다.

칼빈은 교회의 보편성이 교회의 연합으로 연결되어야 함을 말했다. “교회가 보편적인 것으로 부르는 것은, 그리스도가 나누어지지 않는 한, 교회도 둘이나 셋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선택된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었으므로, 한 머리를 의존하며 서로가 한 몸이 되고 한 몸에 달린 지체들같이 서로 단단히 결합된다. 그들이 참으로 하나가 되는 것은 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또 같은 하나님의 영 안에서 함께 살기 때문이다.” 이는 교회의 보편성과 연합이 교회의 본질임을 강조한 것이다.

헤르만 바빙크는 그의 교의학에서 교회의 공동체성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유익들을 소유한 자들의 공동체는 교회라는 이름을 지닌다. … 인간은 이미 천성적으로 사회적 존재, 정치적 동물이다. 그는 공동체로부터, 공동체 안에, 공동체를 위해 태어나 단 한 순간도 공동체를 떠나 존재할 수 없다.” 바빙크는 교회의 보편성을 공동체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보편성으로 보면, 우리 총회 산하 모든 교회도 하나의 교회이다. 공동체성을 가져야 한다.

3. 공교회성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

공교회성은 교회의 본질이며, 이 공교회성에 바탕한 교회의 연합활동이 교회의 진정한 내면의 부흥과 외적 성장의 결과를 낳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교회성을 실천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공교회성에 바탕한 연합활동을 더 잘 하는 총회가 될 수 있는가?

가) 공교회성이 교회론의 본질임을 자각해야 한다.

교회의 본질 네 가지는 거룩성, 통일성, 사도성, 보편성이다. 그 중에 하나가 보편성(카톨릭) 즉 공교회성이다. 우리 모두가 공교회성을 본질로 다시 인식할 때 공교회성에 바탕한 연합이 가능하다.

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아야 한다.

공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다. 로마 카톨릭의 문제는 교황을 예수님의 대리자로 삼아 현실에서 공교회의 머리로 삼는데 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키프리아누스도 바울을 따라, 교회 전체의 화합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감독으로 모시는 경우에만 올 수 있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 총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공교회성의 회복은 모든 목회자들이 먼저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사는 것이다. 그럴 때 공교회성이 회복된다.

다) 목회자들이 연합하면 공교회의 연합도 이루어진다.

김길성 교수는 목회자들의 연합에 대해서 이렇게 강조했다. “키프리안은 ‘교회의 연합은 감독의 연합’이라고 하는 사상을 체계화시켰다. 키프리안에 따르면 개개의 감독은 전 감독단의 일부이지만, … 감독들은 교회의 연합을 안전하게 수호할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감독직은 개별적이면서도 동시에 전체적인 의미를 가진다. … 키프리안에게 있어서 교회의 연합은 교황 중심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니라 감독직의 결속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바른 이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라) 노회와 총회를 존중함으로 공교회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

노회와 총회가 개교회를 살리는 사역을 하고, 개교회는 노회와 총회를 존중하는 사역을 해야 한다. 각 교회가 노회를 존중하고, 노회는 총회를 존중함으로 공교회의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총회는 보다 더 성경적인 교회론을 가진 교회가 될 것이다.

마) 노회는 미자립교회를 돕는 사역으로 공교회성을 실천해야 한다.

칼빈은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라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각각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과 형제적 일치를 유지하며 …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자의 아버지시며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모든 신자들의 머리시라는 것을 참으로 확신한다면 그들은 형제애로 연합되지 않을 수 없고 또 그들이 받은 은혜를 서로 나누지 않을 수도 없다.”

바) 공교회를 해치는 움직임에 대하여 연합하여 대처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초기에 연합을 통해 이교사상이 강력한 한국에서 교회의 토대를 놓았다. 박용규 교수는 “연조가 짧은 선교지 교회가 하나로 뭉치고 연합전선을 형성함으로써 이교 사상의 한가운데서 더욱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이슬람 문제, 동성애 합법화 문제 등 여러 현안들은 단순히 사회현상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공교회를 해치는 것이다. 이런 일들에 대해서 공동으로 대처하는 일에 모든 교회와 노회가 협력해야 한다.

결 론

오늘 한국교회의 문제점 중에 하나는 지나친 개교회주의이다. 이러한 개교회주의의 폐단은 다음 몇 가지로 나타났다. 첫째 공교회성이 훼손되었다. 둘째 이웃교회를 협력(cooperation)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competition)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셋째 미자립교회를 외면하게 했다. 넷째 이단과 반기독교적인 그룹에 대해서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다섯째 세상에 감동을 주지 못했다.
공교회성 회복이란 한국교회를 살리는 교회론이다.
 
우리가 사도신경으로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라고 고백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모든 교회가 거룩한 공교회 즉 하나의 교회, 형제교회임을 알아 연합한다는 뜻이다. 담임목사들도 겸손하게 연합의 대열에 자신을 비우며 나선다는 뜻이다. 그럴 때 한국교회의 미래가 있다. 이제는 성경적 공교회성을 회복하고, 나아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진정한 연합을 통해서 한국교회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 일에 우선 노회와 총회의 공교회성을 살리는 일에 우리 모두가 협력함으로써 건강한 개교회, 노회, 총회를 세워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한국교회와 한국사회를 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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