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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제101회 총회49] 종교개혁 신학사상의 현대적 재조명
종교개혁 500주년기념사업위원회 보고
기사입력: 2016/10/01 [08:39]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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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회 총회에 "종교개혁 500주년기념사업위원회"가 보고한 문병호 교수의 "종교개혁 신학사상의 현대적 재조명"의 글을 전문 게재한다.
 

종교개혁 신학사상의 현대적 재조명 - 종교개혁 500주년기념사업:신학분야-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1. 종교개혁과 한국교회의 장로교

장로교는 초대교회이후 전개된 정통신학에 견실히 서 있다. 제네바의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에 의해서 점화된 종교개혁의 정신을 계승하고 그것을 신학적으로 체계화하여 장로교의 토대를 놓았으며 스코틀랜드의 녹스(John Knox, 1514-1572)는 그것을 교회 정치 구조로 수립하였다.

한국 장로교는 선교 130년, 총회 수립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교회로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의 신학과 신앙을 추구해왔다. 1962년부터 10년간 총신대학교에서 가르쳤던 선교사 간하배(Harvie M. Conn) 교수는 “한국 교회사 초기는 보수주의적 기독교, 복음주의적 기독교의 역사였다.” 라고 그의 책 첫머리에 규정하면서, 근거로 당시 선교사들이 스코틀랜드 언약성도들의 후손들로서 보수적이며 복음적인 기독교인들이며 네비우스 선교정책(Nevius Mission Plan)의 영향을 받아 철저히 성경 중심적이었다는 사실을 거론하였다.

동일한 맥락에서 죽산 박형룡 박사는 장로교회의 신학을 “구주대륙의 칼빈 개혁주의에 영미의 청교도 사상을 가미하여 웨스트민스터 표준에 구현된 신학이다.” 라고 정의하였다. 죽산은 한국 장로교 신학을 “청교도 개혁주의”라고 부르며 그 특징으로 “성경의 신성한 권위를 믿는 믿음,” “하나님 주권에의 확신,” “안식일의 성수와 경건생활에 치중,” “성실한 실천,” “천년기전 재림론”을 들었다. 이렇듯 여러모로 개진된 우리 교단의 특성은 우리가 종교개혁의 핵심 가치를 공유하고 있음을 잘 시사하고 있다.
 
2. 칼빈의 언약신학: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종교개혁은 무엇보다 교회의 개혁으로 추구되었다. 그것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자리에 세우고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보자 되심을 부인하며 사제중보주의를 주창한 로마 가톨릭의 망상을 몰아내는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종교개혁의 정신을 교회론적으로 정립한 것은 칼빈이었다. 칼빈은 그의 대작 기독교 강요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마지막 4권에서 교회론을 다루었다. 이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우리는 칼빈이 장로교의 신학적 토대를 구축했다는 점을 논의하기 위하여 그의 교회론이 갖는 교리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먼저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칼빈의 교회론은 철저히 기독론에 정초해 있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신 것은 그가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 속에 내주하여 우리의 안과 밖에서 중보하시기 때문이다. 성도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은 그가 다 이루신 의를 거저 우리의 것으로 삼아주셔서,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위도 의롭다고 여기고 받아주시기 때문이다.

칼빈의 신학이 칼빈주의 혹은 개혁주의로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신인양성(神人兩性)의 중보 사상과 더불어 선택(選擇)과 유기(遺棄)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의 교리 즉 예정론이 부각되었다. 그리스도는 구속의 의를 다 이루시고 그 의를 하나님의 자녀들의 것으로 삼아주심으로 곧 전가(轉嫁)해 주심으로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의 연합체 곧 한 몸을 이룬다. 칼빈은 “온전한 교리의 일치와 형제적 사랑”이라는 두 축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고리로 연결될 때 교회는 참되다고 보았다.

장로교 교회 정치의 두 가지 핵심 요소는 첫째, 하나님의 주권, 둘째, 성도의 교역(敎役)과 교정(敎政) 참여에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5장과 26장에서는 교회의 무형적이며 유형적인 본질과 성도의 교제를 연이어 다루고 있는데 이는 교회의 수직적 측면과 수평적 측면을 역동적으로 바라보는 장로교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는 칼빈의 교회론으로부터 비롯된다.

칼빈은 교회의 본질을 논하면서 성도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수직적인 연합과 성도 상호간에 하나가 되는 수평적인 연합을 함께 강조하였다. 성도의 참여는 단지 수동적이지만은 않다. 성도는 직분에 따라서 주어진 은사와 능력으로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는 기회를 얻는다. 하나님은 직분을 세우실 때 은사를 미리 예비하신다. 성도들은 직분에 봉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머리로 고백하는 자마다 교회의 사역에 참여한다.

칼빈에 따르면 교회의 권세는 주님으로부터만 주어지고, 주님 안에서만 작용한다. 이는 “교리권(敎理權),” “입법권(立法權),” “사법권(司法權)”으로 나누어진다. 이러한 삼권은 특정한 사람에게 집중되지 않는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 이러한 모든 권세의 주(主)가 되신다.

교리권은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권세이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은 성령의 감화 가운데 전달되어야 한다. 듣지 않고, 배우지 않은 것을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무엇보다 순수하고 바른 진리에 서 있어야 한다. 성경의 권위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에 있다. 성경은 스스로 증거, 즉 자증(自證)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교리권은 오직 성령의 감동에 순종할 때에만 참되게 작용한다.

입법권의 기원은 친히 법을 조성하셔서 수여하시는 하나님에게 있다. 하나님은 법을 통하여 자신이 누구시며, 자신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신다.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법은 몸을 움직이는 “근육”과 같다. 그것은 교회를 세워서 머리이신 그리스도께로 자라게 하는데 근본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법은 세상의 법에 종속되지 않으며 오히려 본질상 그보다 앞선다.

재판권은 권징의 책벌을 의미한다. 권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적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자들을 돌이키기 위하여 시행된다. 교회의 권징은 영적인 재판권이기 때문에 세상적인 방식을 사용할 수는 없다. 지상에서의 심판은 그것이 교회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종국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언제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버리지 말 것이며 하나님의 자비의 손에 맡기는 기도의 자세가 필요하다. 권징의 본질은 세우는데 있는 것이지 무너뜨리고자 함이 아니다.

3. 녹스의 스코틀랜드 종교개혁

마틴 로이드 존스(Martyn Lloyd Jones)는 녹스를 “청교도주의의 설립자”라고 부르면서, 그 이유로 그가 성경을 최고의 권위를 지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교회를 “뿌리에서부터” “전면적”으로 개혁하였다는 점을 들었다. 우리는 녹스가 제네바에 체류할 당시 영국인들을 목회하며 제네바 성경을 편찬했다는 점과 그를 이어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을 완수한 멜빌(Andrew Melville) 역시 스코틀랜드에 대학 총장으로 초빙되기 전에 제네바에서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연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헬라어 강사로 가르쳤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는 성도가 교회의 직분에 참여하기 전에 먼저 말씀으로 자신을 다스리는 내적인 경건과 외적인 삶을 강조했다. 녹스가 가장 강조한 것은 “양식 있는 설교 사역”이었으며 “사람들을 말씀에 헌신된 제자들”로 가르치는데 있었다. 녹스는 스코틀랜드를 “언약 국가(covenanted nation)”로 세우고자 하였다. 이렇듯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근간은 성경적 신학에 있었다.

녹스는 화염과 같은 열정으로 복음을 선포한 ‘나팔수(trumpeter)’였을 뿐만 아니라 칼빈의 사상을 충실히 계승, 심화시켜 장로교 신학의 토대를 놓은 신학자였다. 녹스의 수작(秀作) 『예정론』을 통하여 우리는 그의 신학적 입장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동시에 장로교의 사상적 토대를 파악할 수 있다. 『예정론』에 전개된 녹스의 사상은 1560년에 공표된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에 여실히 드러난다.
 
이는 장로교의 맥을 잇는 스코틀랜드 언약신학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신도게요서)와 대소요리 문답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는 총 25개조로 이루어졌는데 그 형식이나 체계 그리고 신학적 사상에 있어서 칼빈이 기초(起草)하여 1536년에 공표한 『제네바 신앙고백서』와 유사한 점이 매우 많다.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는 말씀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어 오류가 없다는 성경의 성령영감성과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은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에 따른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말미암는다는 언약신학을 두 축으로 삼는다. 성경은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시는 기록된 말씀으로서 이를 통하여 성도는 신랑이며 목자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전적인 은혜로 창세 전에 택함을 받은 언약의 백성에 속한다. 교회는 이러한 백성의 모임으로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아 한 몸을 이룬다.

칼빈의 제네바 종교개혁을 이끈 삼두마차가 『신앙고백서』, 『신앙교육서』(catechism), 『기독교 강요』였다면, 녹스의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에는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일반예식서(the Book of Common Order)』, 『제1차 치리서(the First Book of Discipline)』가 있었다.

예배, 기도, 성례, 결혼, 공적 회개, 출교, 병자 심방 등을 다룬 『일반예식서(the Book of Common Order)』는 녹스가 제네바에서 영국인들을 목회할 때 다루었던 것을 스코틀랜드의 상황에 맞게 좀 더 면밀하게 보완했을 뿐이다. 장로교의 정체와 관련하여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녹스가 작성한 『제1차 치리서』였다. 여기에는 교회 행정을 위한 당회, 노회, 총회가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목사, 교사, 장로, 집사 외에 감독(superintendent)과 예배를 주재하는 것을 허가 받은 평신도 독경자(讀經者, lay reader)를 두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순교를 각오하고 평신도들이 서로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권고하던 “비밀교회(privy kirks)”의 전통이 반영된 것이었다. 녹스의 『제1차 치리서』는 칼빈의 『제네바 교회규칙서』에 의해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본 문건의 가장 큰 장점은 그것이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에 선포된 신앙의 조목들을 당시의 사정에 맞게 매우 실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데 있다.

4. 종교개혁의 열매로서의 칼빈주의

“개혁파” 혹은 “개혁주의”(Reformed)는 역사적으로 “칼빈주의(Calvinism)”와 동의어로 사용된다. 개혁주의는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라는 모토로 집약된다. 여기에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오직 은혜로(sola gratia)!,” “오직 그리스도로(solo Christo)!,”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이라는 의미가 모두 내포된다.

칼빈주의는 “모든 성경”을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믿는다(딤후 3:16). 그리고 우리가 “배우고 확신한 일”(딤후 3:14)이 성경의 진리이며 성경적 진리라는 것을 고백한다. 칼빈의 영향을 받은 개혁신학자들은 “성경의 복음”만을 “성경적 복음”이라고 보았다. 이는 “성경적”이라는 말에 대해서 열린 입장을 지니고 “성경적 복음”을 “성경의 복음”에 국한하지 않는 포괄주의, 혼합주의, 다원주의와는 분명 대조된다.

칼빈주의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른 참 신학과 참 경건을 엄밀하게 추구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보수주의(Conservatism)” 혹은 “근본주의(Fundamentalism)”라는 이름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칼빈주의가 “보수주의”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것이 고유한 기원과 근원 곧 성경에 충실히 붙들려 있기 때문이다. 칼빈주의가 “근본주의”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것이 성경의 근본적 가르침인 교리를 교회가 서고 넘어지는 조항으로서 견지해 왔기 때문이다.

개혁신학(Reformed Theology)의 근본원리는 성경이다. 개혁신학을 언약신학(Covenantal Theology)과 동일시 할 때, 그것은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의 원리를 되새기는 것과 다름이 없다. 아브라함 카위퍼가 말하듯이, 칼빈주의는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 삶 중심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이 모든 요소들이 어우러진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며, 교리이며, 신학이다.

성경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오직 믿음으로만 받아들여진다. 즉 수납(受納)된다.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이 성령의 조명으로 떨어지고(受) 그 감화로 들어온다(納). 세상의 지식은 이성으로 추론되지만, 성경의 지식은 오직 믿음으로만 수납된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정확무오하다. 성경의 권위는 그 저자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 있다. 성경은 그 규범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그 역사에 있어서도 무오하며, 사상과 문자에 있어서도 무오하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원저자는 하나님이시다. 인간 저자들은 이차적이다. 그들이 받은 말씀과 기록이 모두 정확무오하다.

개혁신학과 신앙은 삶의 신학과 삶이 있는 신앙을 추구한다. 그리하여 율법주의도 율법폐지주의도 모두 거부한다. 율법의 끝이 아니라 완성으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한다(마 5:17; 롬 10:4). 그리스도는 율법을 다 이루시고 그 다 이루신 의를 전가(轉嫁)해 주심으로 성도가 은혜 가운데 율법을 행하며 살도록 하신다. 칼빈은 이를 율법의 가장 주요하고 고유한 용법이라고 하였다.

율법은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뜻을 계시한다. 율법의 약속을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셨다. 이것이 복음이다. 언약의 법으로서 율법은 오직 복음 안에서만 신학적인 기능을 감당한다. 우리는 이러한 유산을 이어받아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롬 1:16) 생명을 살릴 뿐만 아니라 생활을 거룩하게 하는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작용함을 굳게 믿는다.

5.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서(신앙고백서)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서(信徒揭要書,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이하 『신도게요서』라고 약칭)는 종교개혁 이후 125년 동안의 개신교 신학을 집대성했다. 그 근저에는 칼빈의 신학으로부터 비롯되는 개혁주의 언약신학의 맥이 면면히 흐른다.

웨스트민스터 총회(1647-1648)의 주류를 점했던 사상은 당시 팽창되고 있었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칼빈주의였다. 무엇보다 신약과 구약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그것을 교회정치의 영역까지 적용하고자 했던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영향이 주목할 만하였다. 『신도게요서』는 1647년에 스코틀랜드 총회가 이를 채택한 것을 필두로 미국과 영국의 여러 장로교파와 일부 회중교회와 침례교회도 이를 받아들였다. 우리나라의 장로교단은 1907년에 “조선예수교장로회신조(12신조)”를 채택했는데 이는 『신도게요서』의 영향을 받은 인도장로교회의 신조를 본 떠 만든 것이었다. 이후 1974년 총회 헌법에 『신도게요서』가 실리게 되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구현된 신학은 영국과 대륙이 함께 호흡했던 16-17세기 칼빈주의의 공유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채택되고 영국 의회에서 1648년에 승인된 “장로교정치양식”은 1647년 스코틀랜드 의회가 채택한 “교회행정을 위한 지침서”와 더불어 장로교 정치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장로교정치양식”은 교회 정치의 본질이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대속적 공로와 계속적 중보에 있다는 『신도게요서』 25장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구현하였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서 지교회의 공동의회와 제직회(직원회의)의 활동이 강화되고, 무엇보다도 교회에 대한 노회의 행정과 치리를 강조하였다. 주목할 것은 여기에서 목사, 교사, 장로, 집사의 직분을 규정하되, 서로간의 견제보다는 사역의 효율성이 고려되고, 교회교육과 권징의 긴밀성과 이웃에 대한 구제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는 사실이다.

『신도게요서』는 성도의 구원을 다루면서 우리가 받은 성령이 “진리의 영”이시라는 사실을 강조한다(요 14:17, 26; 15:26; 16:13). 칼빈이 말했듯이, 진리의 영의 역사로 성도는 성경이 확실한 객관적 진리일 뿐만 아니라 주관적으로 나에게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그렇다고 인정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그 말씀이 나의 말씀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리스도의 공로를 우리의 것으로 삼아주시는 ‘의의 전가(轉嫁)’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지혜의 부요함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부요함을 삶 가운데 구현하며 교회의 사역을 통하여 나누게 된다. 국가는 이러한 영적인 왕국을 보호하고 그 고유한 특성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그 앙양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여기에 장로교 언약신학의 핵심이 있다.

죽산 박형룡 박사가 지적했듯이 『신도게요서』를 “성경을 밝히 해석한 책”으로 받는 한,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분명하다. 그것은 역사상 그 정통성이 변증된 “개혁주의”이다. 죽산은 “정통신학은, 신구약 성경을 천계(天啓)와 영감(靈感)으로 말미암아 온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리고 우리의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법칙으로 인정하는 초자연적인 성경관을 가진다”고 피력하여 그 자리매김을 분명히 하였다. 이는 개혁주의 특히 장로교 전통에 정확하게 잇대어 있다. 그러므로 성경과 함께 이를 즐겨 배우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6. 우리가 서 있는 자리와 나아갈 바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 대해서 고찰했다. 그것은 “개혁”이라는 말로 대변된다. 그런데,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지고 있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est semper reformanda).” 이를 위해서 우리는 먼저 우리의 자리를 분명해야 한다. 생명의 진리는 하나이며 다른 복음은 없기 때문이다. 죽산 박형룡 박사는 우리 교단의 정체성을 “청교도 개혁주의”라고 규정하였다. 우리는 무엇보다 이러한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죽산이 지적한 바와 같이 올바른 성경관이 그 지남(指南)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오늘날 횡횡하는 이단들과 여러 모양으로 참 신학을 가장(假裝)하는 성경비평주의, 자유주의, 신정통주의, 신자유주의, 신복음주의 등에 맞서서 진리를 온전하게 변증해야 한다. 근자에 세계교회협의회(WCC)의 문제를 진리의 문제로 여기고 엄정하게 대처한 바와 같이 진리를 보수하고 심화시키며 복음 전도와 선교 사역을 감당하기 위하여 범교단적으로 비진리에 대처하는 대오를 굳건하게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순수하고 오직 배우고, 믿고, 확신한 바에 거하는 것이어야 한다.

오직 복음만이 선포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보는 예배’를 ‘듣는 예배’로 바꾸고 가르치는 교회(ecclesia docens, teaching church)와 선포하는 교회(ecclesia praedicens, preaching church)를 기치로 내걸었던 종교개혁의 정신을 다시금 되새겨야 한다.

한국 교회는 현재 강단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무엇이 문제인가? 그것은 설교자가 하나님 앞에서 받은 것을 전하지 않고 오히려 받지 않은 것을 성도들에게 맞추어서, 이성적으로, 세속적으로 전하는데 있다. 사도행전은 설교행전이다. 초대교회의 부흥은 말씀의 선포로부터 비롯되었다. 베드로의 “말을 받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니 삼천이나 되었다(행 2:41).
 
사도 베드로가 구약의 말씀을(욜 2:28-32; 시 16:8-11; 110:1) 정확히 인용하면서 설교하니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었다. 교회의 진정한 부흥은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의 수가 더하는데 있다(행 2:14-47). 우리가 모두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진리를 땅 끝까지 전하여야 한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겔 2:5, 7; 3:11),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딤후 4:2), 피를 토하듯이 전해야 한다.
 
영원히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립니다(Soli Deo gloria in aetern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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