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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제101회 총회48] 세계교단교류위, 일본기독교개혁파교회
기사입력: 2016/10/01 [08:23]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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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회 총회에서 '세계교회교류협력위원회'가  보고한 내용 일부이다. "일본기독교개혁파교회(The Reformed Church in Japan, RCJ)"의 글을 전문 게재한다.
 

일본기독교개혁파교회(The Reformed Church in Japan, RCJ)
신학교:고베신학교, 고베신학교병설신학교(연구소)

1. 간략한 역사

일본의 장로교 선교

도히 아키오(土肥昭夫)에 의하면, 1896년 현재, 일본 선교에 착수한 선교교파, 선교회의 숫자는 총 31개에 달하였다고 한다. 예를 들면 미국의 네덜란드 개혁교회, 스코틀랜드장로교회, 미국에 근거를 둔 독일계 개혁교회 등 여러 계열의 장로교계 선교교파, 선교회가 ‘일본 사업’을 펼쳤지만, 그들 스스로 직접 일본에 장로교단을 세운 것은 아니었다. 이들 선교세력이 지원하고, 일본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일본기독교회’의 수립에 참여한 것뿐이다. 그래서 ‘일본기독교회’를 일본 장로교회로 보아야 하며, 그 중심적 신학입장은 개혁파 장로교회의 노선을 따랐다

이에 앞서, 일본 프로테스탄트 그리스도교의 최초 교회공동체는 1872년 3월에 설립된 ‘요코하마기독공회’(橫浜基督公會)이다. 여기에는 기독교 신앙을 수용한 일본인 기독교인들과 주요 선교교파인 ‘미국 네덜란드개혁파 교회’, ‘미국 북장로회’, 회중교회 계통으로 훗날 ‘일본조합교회’를 지원한 ‘아메리칸 보드’ 등의 선교사들이 모두 함께 참여한 ‘교회공동체’였다. 결국 교파 구별 없는 ‘단일교회’의 설립이 실현된 것이다. 그런데, 이 ‘일본기독공회’ 설립의 주축은 역시 장로교계 신학을 표명하는 선교 계열이며, ‘일본장로교회’의 첫 조직이었다고 볼 수 있다.

1874년 10월에 가장 먼저 조직된 ‘요코하마기독공회’, 그 이후의 ‘도쿄(東京)기독공회’, ‘고베(神戶)기독공회’, ‘오사카(大阪)기독공회’ 등 4개의 기독공회 대표들이 모여 공회 조례를 채택하고 그것을 공동의 교회규칙으로 할 것을 결의한 후, 그 다음해 4월에 차기 대의원회의를 개최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미국 북장로회의 경우는 달랐다. 즉 선교 본부의 지침에 의거한 것일 수도 있으나, 미 북장로회는 마침내 별도로 1873년 12월 자파 선교사가 관계하는 일본교회를 중국장로교 ‘노회’(Synod)에 소속하는 일본 ‘중회’(中會, Presbytery)로 조직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결과적으로, 장로교 정치제도와 회중교회의 제도가 조화를 이룰 수 있었던 ‘일본기독공회’의 전국 조직이 실패한 것이다.

그 후 미국 네덜란드 개혁파 선교회, 미국 북장로회 선교회, 스코틀랜드장로회 일치 장로파가 연합하여 1877년 10월 ‘일본기독교일치교회’를 설립했는데, 이것이 공식적으로 일본에서 장로교파가 첫 출범한 시작이다.

일본의 장로교회 전통을 계승한 ‘일본기독교회’

1889년 5월 ‘일본기독교일치교회’의 제5회 대회에서 ‘일본조합교회’와의 합동작업을 포기하고, ‘장로교회’로서의 정체성에 충실한 교파교회서의 진로를 정하고 정비작업에 들어갔는데, 이는 곧 교회의 헌법, 규칙을 손질하는 것이다. 그 다음 대회인 1890년 12월 개정된 헌법과 신조를 가결하고, ‘일본기독교회’로 개칭하면서, ‘일본기독교회’는 일본 장로교회의 종주교단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였다. 그 과정에서 난항이 있었는데 중요한 문제가 신앙고백에 대한 논쟁이었다. ‘영국장로교회의 신조’, ‘웨스트민스터신조’, ‘사도 신조’ 등을 놓고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고, 일정한 선에서 장로교 전승을 살리는 차원으로 조정되었다.

결국 ‘일본기독교회’ 내의 교리 신조, 혹은 신학적 입장 차는 신학교 문제에서 구체적으로 불거졌다. 선교사들과 일본의 기독교인들은 성직자 양성을 위해 산하에 신학교를 설립해 나갔다. 1887년에 메이지(明治)학원 신학부, 1881년 히가시야마(東山)학원(후에 메이지가쿠인신학부에 통합) 신학부, 1886년 도호쿠가쿠인(東北學院) 신학부, 1891년 교리츠(共立)여자신학교, 1903년 오사카(大阪)신학원 등을 설립 운영했다.
 
그런데 이들 신학교는 대부분 선교사들이 직접 운영하거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당시 ‘일본기독교회’의 대표적 지도자이며 메이지학원대학 신학부 교수였던 우에무라(植村正久)와 새로 같은 메이지학원 신학부 교수가 된 미 남장로회 선교사 풀턴(S. P. Fulton, 후에 한국 남장로회의 신사참배 관련 ‘풀턴선언’으로 유명한 그 풀턴의 부친)과의 신학논쟁이 벌어졌다. 즉 우에무라를 풀턴이 자유주의로 지목한 것이다. 이에 우에무라는 1903년 12월 메이지학원 신학부 교수직을 사임하고 이듬해 11월 별도의 ‘도쿄신학사’(東京神學社)를 설립했다.

그러나 미국의 남장로회 선교사들은 우에무라 등이 분립했음에도 메이지학원대학 신학부가 장로교 신학을 보수적으로 파수하는 데는 지나치게 진보적이라는 불만을 삭이지 못했다. 이에 마침내 미국 남장로회는 1907년 메이지학원대학 경영에서 인퇴를 결정하고, 같은 해 9월 코베(神戶)신학교를 별도 설립했다. 이 신학교야말로 보수적인 칼빈주의를 표방하고 운영되었는데, 추후 오사카신학원을 병합하여, 중앙신학교로 개편했다. 이 신학교가 일본에서 장로교의 가장 보수적 입장을 대변하는 신학교육기관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와 미국의 독일계 개혁파 교회는 비교적 ‘일본기독교회’와 협력적 관계를 형성해 나간 데 비해, 미국의 네덜란드 개혁파 교회 선교부, 미국 남장로회 선교부 등은 선교협력의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

‘일본기독교단’ 조직과 ‘일본기독교회’

1930년대 말 ‘파시즘’이 절정기에 이르면서 일본기독교는 국가로부터도 더욱 강력한 ‘일본화’ 요구에 직면하c회와 미국의 장로교회, 개혁교회들과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으나, 민족적 상황과 역사에 있어서 조금씩 다른 모습들도 볼 수 있다.

2. 규모

전국에 150여개 교회, 성도는 9000명의 교세이며 관서에 고베신학교와 동경에 고베신학교 병설신학교(연구소)가 있다.

3. 신학교 - 고베신학교

고베개혁파신학교는 1947년 4월에 RCJ에 의해서 개설되었지만, 그 역사는 1907년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성이 있다. 1907년까지 명치학원(明治學院)신학부의 경영에 참가했던 미국의 남장로교선교부가 명치학원이 자유주의 신학 물들어가는 것에 반발하여 독자적으로 고베신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그 후 1927년에 미국의 북장로교선교부가 운영했던 오사까신학교와 합병을 하여 중앙신학교라는 이름으로 개칭을 하였다. 그러나 1941년 종교통폐합과 신사참배 반대운동으로 중앙신학교는 폐교되고, 1947년 RCJ가 중앙신학교의 신학적인 전통을 이어받아 고베개혁파신학교를 개교하게 된 것이다.

1907년부터1950년까지의 졸업생명단을 보면, 50여명의 한국사람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중에서도 한국의 유명한 교계 지도자와 일본의 교계 지도자들을 다수 볼 수 있다. 또한 1950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매년 한국인들이 공부를 하고 있으며, 특별히 1950년 이전에는 유학생들이 많은 반면, 1950년이후에는 재일교포나 일본선교사로서 이 학교에서 공부한 경우가 많다.

특징

申成日(JEM선교사, RCJ목사)선교사는 고베개혁파신학교가 철두철미한 개혁신학을 가르친다고 말하면서, 아마도 일본 내에 이렇게 정통적인 개혁신학을 가르치는 신학교는 없을 것이며, 또한 한국의 장로교개통의 신학대학원들과 비교해서도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현재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는 마키타 요시카즈(牧田 吉和)이며 이 신학교의 교장이기도 하다. 그는 특별히 화란의 캄펜신학대학에서 공부를 했으며, 벌콥의 조직신학을 기초로 하여 화란의 바빙크, 워필드, 벨카우워, 폰 핸드렌, 폰 룰러등의 신학을 폭넓게 가르치고 있다.”고 말하였다.

특별히 금요일에는 일한교회문제공동연구세미나가 있어서 한국과 일본의 여러 가지 교회문제를 비교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학점 교류에 대하여 한국의 고신대학원이나, 총신대학원에서 학점을 인정해 주고 있고,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칼빈신학교 등에 유학할 경우 M.div를 이수한 것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고베신학교는 일본 문부성의 인가를 받지 않았으나 보수적인 장로교 신학을 고수하고 있다.

4. 한국에 있는 교단과의 교류역사

본 합동 총회에서 이 교단과 교류한 역사가 있고, 고려파(고신대학교). 장로교(합동중앙)총회 등과도 최근에 서로 방문하고 교류한 바가 있다.

5. 평가

RCJ의 역사를 살펴보거나, 과거 총회와의 관계 및 교류 역사가 있었던 것과 함께 한국에 있는 보수교단과의 교류가 계속되고 있는 것을 보아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서로 협력 내지 교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특히 일본의 복음화를 위하여 보다 더 활발한 교류를 가지며 선교사 파송 내지 신학적 교류, 신학생 유치 등 보다 미래 지향적인 관계 개선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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