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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제101회 총회45] 화란 개혁교회의 역사와 신학 이해
기사입력: 2016/10/01 [08:05]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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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회 총회에서 '세계교회교류협력위원회'가  보고한 내용 일부이다. 안인섭 교수의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 교단과의 교류를 위한 화란 개혁교회의 역사와 신학 이해"의 글을 전문 게재한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 교단과의 교류를 위한 화란 개혁교회의 역사와 신학 이해

안인섭 교수(총신대학교)(현)총신대 글로벌개혁신학처장 (현)Refo500 아시아 디렉터

네덜란드의 개혁교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네덜란드 교회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어떻게 교회가 발전해 갔는지를 살펴야 한다. 화란개혁교회는 종교개혁 직후부터 현재까지 500년동안 지속적인 분열과 연합을 이루며 발전해 왔다. 그러므로 오늘의 화란개혁교회의 교단과 신학교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역사적 맥락을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1. 화란개혁교회의 사상적 기원

1) 공동생활형제단과 토마스 아 켐피스
화란은 종교개혁 이전에 이미 종교개혁에 깊이 영향을 준 개혁적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중세 말인 14세기와 15세기에, 그리스도인의 내면의 개혁을 통한 교회 및 사회 개혁과 세계내 경건을 주창했던 “새로운 경건 (Devotio Moderna)”운동이 조직화된 공동생활형제단의 운동이 화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영적 운동은, 그리스도에 헌신하는 삶과 교육을 강조했다. 이런 종교적 풍토 속에서, 어거스틴적 영성과 버나드적이고 프란시스칸적인 영성을 16세기 종교개혁에 전달해준 토마스 아 켐피스(1380-1471)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진다. 그는 19세에, 캄펜에서 10분거리에 있는 쯔볼레(Zwolle)에 세워진 아그네스템베르크 어거스틴 수도원에 들어가, 평생을 “그리스도를 본받아(De Imitatione Christi)”와 같은 고전을 저술하면서, 칼빈의 종교개혁과 화란 교회 개혁운동의 깊은 토대를 놓았다.

화란인 에라스무스(Erasmus:1469-1536)도, 이 공동생활형제단에서 교육을 받은 후, 성경적 경건과,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영적이고 도덕적인 개혁 사상을 형성했으며, 칼빈의 개혁사상의 길을 예비했던 것이다.

2) 칼빈
칼빈과 화란과의 깊은 관계는, 일차적으로는 그의 가족적인 환경과 친구관계를 통해서 잘 드러난다. 그의 어머니 잔 프랑 (Jeanne Franc)과 아내 이들렛트 드 부르 (Idelette De Bure)는 모두 불어를 사용하는 당시의 화란이었던 캄브라이(Cambrai)와 리에주(Liege) 출신이었다. 칼빈의 고향 노용(Noyon) 또한 당시의 화란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따라서 칼빈은 개인적으로 화란을 어머니의 나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칼빈은 화란 개혁주의자들에게 매우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통해서 화란에 개혁신학이 전파되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칼빈의 기독교강요 최종판(1559년)이 이미 1560년에 화란어로 번역되어 크게 영향을 준 것을 보면 칼빈과 화란개혁주의와의 관련성이 얼마나 깊은가를 잘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칼빈은 네덜란드에 몇 차례 논문을 발송했는데, 특히 1543년에 보내진 논문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그 내면에서 개혁주의를 받아들일 뿐 아니라, 외적으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었고, 이것은 바로 화란 칼빈주의자들의 적극적인 개혁신앙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었다.

3) 칼빈주의 사상의 확립과 화란의 독립운동의 상호관계

16세기 후반에 신성로마의 황제였던 스페인의 필립 2세의 절대주의적인 스페인화와 카톨릭화 정책에 대항해서, 화란의 칼빈주의자들은 1565년에 헤이즌(Geuzen)동맹을 결성하여 맹렬한 독립전쟁을 전개한다. 당시의 화란에서 독립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한다는 것은, 투철한 칼빈주의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독립 직후, 칼빈주의자들 내부에서 예정론 논쟁이 발생했고, 이 아르미니우스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최초의 칼빈주의 세계 대회인 도르트 총회(1618-1619)가 화란에서 열리게 되었다. 그 결과 영문 약자를 따서 튤립(Tulip)이라고 알려진 칼빈주의 5대 교리가 확립되었다. 이 교리들은 전적타락, 무조전적 선택, 제한 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그리고 성도의 견인으로서, 매우 핵심적인 칼빈주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화란의 개혁주의 교회는 화란의 독립 과정을 통해서 칼빈주의 신학 확립에 공헌했던 것이다.

이처럼 1618-1619에 열렸던 도르트 총회에서 벨직 신앙고백서(처음 작성은 1566년), 하이델베르그 신앙고백서(처음 작성은 1563년), 그리고 도르트신조가 공인되어, 개혁교회의 3대 일치 신조(Three Forms of Unity)가 확립되었으며, 그 이후 개혁교회의 신앙적 근간이 되었다.

2. 근현대 시대 화란 개혁교회의 발전

1) 개혁교회의 흥왕 (17세기와 18세기)

종교개혁 시기인 1585년에 이미 네덜란드에 레이든 대학교(University of Leiden)가 세워졌다. 이 최초의 대학에 신학과가 있었다. 또한 17세기에 흐로닝언(Groningen)과 위트레흐트(Utrecht)에도 대학교가 세워졌으며 이 대학교들에도 역시 신학부가 있었다. 종교개혁 이후 지속되고 있던 개혁교회는 이들 대학의 신학부로부터 목회자들을 제공받고 있었다. 17세기와 18세기에 개혁교회는 네덜란드 사회 안에서 공식적인 기독교 신앙이었다. 개혁교회는 네덜란드의 공식적인 신앙이었고, 위에 언급한 대학의 신학부에서는 개혁교회의 목회자들을 교육해 왔다. 그렇지만 당시의 다른 유럽에서는 국가의 종교와 다르면 가혹한 박해를 하고 있었지만, 당시 네덜란드에서 국가의 신앙이었던 개혁교회는, 로마 가톨릭을 포함한 개혁교회가 아닌 다른 그룹에 대해서 비교적 관대하였다.

2) 계몽주의의 도전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종교개혁이후 17세기와 18세기를 지난 화란 사회는,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1795년에 프랑스 군대가 네덜란드에 입성한 후, 1810년에는 프랑스에 완전히 합병되고 말았다. 당시 화란에는 사회적 불안정과 분열, 그리고 세속주의가 풍미하게 되었다. 1813년에 화란 왕실이 옹립되면서 새로 형성된 왕실 개혁교회는 권위주의화 되어갔으며, 신학도 교회 현장과 상관없이 세속화 및 사변화 되어갔다.

3) 개혁주의의 응전:19세기 중반의 분리(Afscheiding:1834) 운동과 기독개혁교회(Christelijke Gereformerde Kerken)의 형성(1869)

그러자 헨드릭 더 콕을 중심으로 기존의 개혁교회 혹은 국가개혁교회(Nederlandse Hervormde Kerk)로부터 종교개혁의 정신과 도르트신조의 신앙고백으로 돌아가자는 개혁 운동이 경건 운동과 더불어 일어났다. 이것이 바로 캄펜 신학대학교 출현의 직접적 원인이 된다. 이 운동에 참여하는 일단의 개혁교회들이 1834년에 화란 왕실 개혁교회와 결별하게 되는 “압스케이딩”(분리:Afscheiding)이 발생한다. 그것은 화란의 전통적인 영성이었던 삶 속에서의 경건을 회복하고, 신학과 교회 사이에 다리를 놓고자 하는 교회와 신학 개혁에 대한 열망이 당시 화란의 사회적 경제적 배경속에서 열매 맺은 것이었다. 이 “압스케이딩”의 교회 개혁 운동은 1854년 12월 6일에 캄펜에 신학교를 세움으로, 학문성과 실천성을 겸비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캄펜 신학대학교의 공식적인 출발이 된다. 이 교회 운동은 1869년에 총회를 열어 “기독개혁교회(Christelijke Gereformerde Kerken)”라 지칭했다.

4) 국립대학 신학부의 이중 구조화(1876):국가임명 교수좌와 교단임명 교수좌의 분리

1876년에 교회와 국가의 분리가 일어나게 되면서 이중의 교회법제도(duplex ordo)가 실시되었다. 국립대학교(레이든, 흐로닝언, 위트레흐트)의 신학부는 신앙을 위한 연구에서 조차도 학문적으로 중립적일 것이 요구되었다. 신학은 종교학과도 같이 바뀌고 있었다.

그러자 대학은 실천적이고 조직적인 신학 공부를 위해서 “교회 교수좌(ecclesial chairs)”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 교회 교수좌는 “신앙고백적 방법”으로 신학을 연구하고 가르칠 수 있었다. 교수들은 교회(Nederlandse Hervormde Kerk)로부터 임명되었으나, 정부에 의해서 월급을 받았다.

5) 아브라함 카위퍼의 반 프랑스 혁명 운동:애통(Doleantie, 1886)

한편 1880년에 영역주권을 주창하면서,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자유대학교(de Vrije Universiteit)”를 세운 아브라함 카위퍼를 따르는 일단의 교회들이 1886년에 화란 국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역사는 이를 “돌레앙찌”(애통:Doleantie)라고 한다. 이 자유대학교의 자유의 의미는 국가와 교권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6) 화란개혁교회(Gereformeerde Kerken in Nederland)의 형성(1892)

앞에 언급되었던 압스케이딩(분리:1834) 교회 중 다수가 아브라함 카위퍼의 돌레앙찌의 교회들이 연합하여, 1892년에 화란개혁교회(“Gereformeerde Kerken in Nederland”)를 형성하게 되었다. 캄펜 신학대학교와 자유대학교 둘 모두로부터 이 교단의 목회자들이 배출되게 되었으며 두 대학은 형제 대학의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 캄펜 신학대학교에서 개혁교회 교의학(Gereformeerde Dogmatik)의 저자이자 위대한 개혁주의 조직신학자인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가 1883년부터 1902년까지 거의 20년을 교수로 역임했으며, 개혁주의 성경신학의 거봉인 헤르만 리델보스(Herman Ridderbos) 교수가 평생을 사역했다.
그러나 압스케이딩의 교회 중에서 카위퍼와의 연합을 반대하는 일단의 교회들은 계속 기독개혁교회에 잔류할 것을 고수하였으며, 아펠도른(Apeldoorn)에 신학교를 세우게 되었다.

7) 다수의 보수적인 신자들의 국가개혁교회(Nederlandse Hervormde Kerk) 잔류

비록 국가개혁교회 안에 근대적인 진보적 신학의 영향이 일부 있었지만, 다수의 개혁주의 신자들은 이 교회를 이탈하지 않았으며, 아브라함 카위퍼를 따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국가개혁교회 안에는 다수의 정통적인 개혁주의자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17세기 개혁파 경건주의(Nadere Reformatie)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런 개혁파 경건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학생들은 국립대학교 신학부에 진학했는데 특히 위트레흐트 대학으로 많이 갔다.

8) 개혁주의 연맹 (Gereformeerde Bond, Reformed Alliance)의 설립 (1906)

개혁주의 연맹은 1906년 국가교회에 남아있던 보수적인 신자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로서, 1816년 제정된 국가주도형태의 교회법에 반대하고, 지역노회의 독립성을 주장하며 보수개혁주의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들은 1951년 이미 여성안수에 공식적으로 반대하였고, 동성애도 반대하는 단체로, 보수 개혁주의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연합단체이다.

9) 화란개혁교회(Gereformeerde Kerken in Nederland)의 분열(1944)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압스케이딩과 아브라함 카위퍼의 돌레앙찌 그룹이 연합했던 화란개혁교회, 즉 1892년에 형성되었던 개혁교회 교단 안에서 1944년에 분리가 발생했다. 약 십분의 일에 해당하는 교회들이 신학적이고도 교회 정치적 이유로 분리해 나가 31조파 혹은 프레이허마크트(Vrijgemaakt)교회를 세웠다. 원래의 큰 교단을 화란개혁교회 총회측(Gereformeerde Kerken, Synodaal)이라고 부르고, 갈라진 작은 그룹을 화란자유개혁교회(Gereformeerde Kerken, Vrijgemaakt)라고 불렀다. 자유라고 하는 것은 교권주의적인 교회 정치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 결과 이 두 교단의 신학교가 같은 캄펜에 두 개 존재하게 되었다. 따라서 20세기 후반기에 캄펜에는 두 개의 신학대학교가 존재하게 되었다. 기존의 교회에 속한 신학교를 Kampen Oudestraat라고 부르고, 갈라진 신학교를 Kampen Broederweg이라고 불렀다. 혹자들은 전자를 Kampen I, 후자를 Kampen II라고 부르기도 했다. 전자는 주로 총신과, 후자는 주로 고신과 역사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총신과 후자의 관계도 매우 긴밀하게 발전되었다.

10) 화란개혁교회의 연합 운동(2004)

2004년 5월에, 오랜 과정을 거쳐서, 화란에서 가장 큰 두 개의 개혁교회들이 (그리고 극고수의 복음주의 루터교회도 참여하여) 170년만에 공식적으로 연합하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다. 화란개신교회(Protestant Churches in the Netherlands)가 새롭게 창립된 것이다. 약자로는 화란어 앞자를 따서 PKN, 혹은 영어로는 PCN이라고 부른다. 연합된 교회의 두 개혁교회는 캄펜 신학대학교 I이 속해 있던 화란개혁교회(Gereformeerde Kerken in Nederland)와, 화란의 왕실이 속해 있던 국가개혁교회(Nederlands Hervormde Kerk)였다. 이 대형 교단의 신학교로는 화란개혁교회(Gereformeerde Kerken in Nederland) 측의 캄펜신학대학교와, 국가개혁교회(Nederlands Hervormde Kerk) 측의 레이든과 위트레흐트였다.

그렇지만 이 교회 연합 과정에서 국가개혁교회(Nederlands Hervormde Kerk) 안에 존재하던 보수주의자들인 개혁주의 연맹(Reformed Alliance) 가운데 극정통주의 그룹은 화란개혁교회(Gereformeerde Kerken in Nederland)와의 연합을 반대하면서 새로운 교단을 만들었다. 그 이름은 “환원국가개혁교회(Hersteld Hervormde Kerk)”라고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개혁주의 연맹 교회들은 그들의 독립성을 지켜나가면서 PKN내에서 연합하여 활동하는 것을 지지했다. 이들은 비록 PKN에 소속되어 있지만, 독립적인 활동과 발언권을 가지고 있으며, 교단 내 개혁주의 영향력의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6년 현재 대략적으로 25여만명의 교인들이 소속되어 있으며, 전체 PKN의 13%이상을 차지하는 대표적 연합그룹이다.

11) 국가에 의한 국립대학 신학부의 “이중구조(duplex ordo)” 금지(2005)와 화란개신교신학대학교(PThU)의 출범(2007)

2005년에 화란의 교육부(정부)는 국립대학 신학부에 국가임명 교수좌와 보수적인 교단임명 교수좌가 공존하던 이중구조(duplex ordo)를 금지하는 고등교육법을 제정했다. 그 결과 국립대학 내의 교단임명 교수좌가 없어지게 되면서, 레이든과 위트레흐트 대학의 신학부 내의 교단임명 교수좌는 새로운 구조를 찾아야만 했다. 그 결과 2007년에 화란개신교신학대학교(Protestant Theological University, 보통 약자로 PThU로 부른다)가 출범하게 되었으며, 그 캠퍼스는 위트레흐트, 레이든, 캄펜이 되었다.

12) 화란개신교신학대학교(PThU)의 흐로닝언 캠퍼스와 암스테르담 캠퍼스 시대의 개막(2012)

거대 교단인 화란개신교회(PKN)는 2012년에 그 캠퍼스를 흐로닝언과 암스테르담으로 옮겼다. 그 의미는 원래 국가개혁교회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흐로닝언 대학교와 원래 화란개혁교회의 흐름을 이어왔던 암스테르담의 자유대과의 긴밀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13) 화란개혁교회의 새로운 방향

(1) 국제화
화란개신교신학대학교(PThU)는 오랜 전통을 이어받아, 흐로닝언에 1년 과정의 영어 석사과정(Th.M.)을 운영하면서 전 세계의 학생들에게 개혁신학을 전파하고 있다.
캄펜신학대학교(Kampen II, 혹은 캄펜 부르더벡)도 최근에 1년과정의 영어 석사과정을 새롭게 개설하여 국제화에 힘쓰고 있다.

(2) 정통 보수 신학 수호 의지의 증가
국가개혁교회(Nederlands Hervormde Kerk) 안에 남아있으면서도 정통 보수 신학에 철저한 거대 그룹인 “개혁주의 연맹(Reformed Alliance)”은 개혁주의 정통 보수신학을 지키기 위해서 별도의 두개의 특별한 교수좌를 두고 있다. 하나는 흐로닝언 국립대학 안에 개혁주의 교수좌를 두고 있으며, 또 하나는 화란개신교신학대학교(PThU) 안에 암스테르담에 개혁주의 교수좌를 두고 있다. 이것은 보수적인 정통신학을 지키기 위한 제도적인 노력을 의미한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모이며 연맹 교회들의 연합을 지속하며, 보수개혁주의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3) 보수적인 개혁주의 교회들의 연합 운동
아주 최근(2015년 전후)에는 보수적인 교단 가운데서, 화란개혁교회 (Gereformeerde Kerken, Vrijgemaakt, 신학교는 캄펜 부르더벡)와 화란기독개혁교회(Christelijke Gereformerde Kerken, Apeldoorn, 신학교는 아펠도른)가 서로의 신학교를 연합하기로 합의했다. 2016년 두 학교는 통합되는 학교의 이름을 개혁주의 신학대학교 (GTU = Gereformeerde Theologische Universiteit)로 확정하였고 학교 위치 등의 논의가 진행중이다. 이것의 의미는 두 교단은 그대로 잔존하더라도 두 교단의 목회자를 배출하는 신학교는 하나로 합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 신학교 두 교단의 모델이 탄생하게 된다. 이때 이 신학교의 위치는 현재로서는 위트레흐트로 2018년 옮기는 계획이 정해져 있으나, 아직도 그 과정이 진행중이다.

3. 나오는 글

화란개혁교회의 역사는 이미 14세기부터 시작된 공동생활 형제단의 교회내 교회개혁운동과, 16세기 칼빈의 종교개혁, 그리고 17세기 개혁주의 운동을 그 원점으로 삼으면서, 직접적으로는 19세기와 20세기 전반기의 세속화, 사변화와 권위주위화에 맞선 교회 및 신학개혁과 사회개혁운동, 그리고 21세기의 교회 연합운동의 역사를 담지하고 있는 수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화란개혁주의의 특징은 신학이 교회를 위해야 한다는 강조점이다. 신학은 교회에 방향을 제시하며 역사는 그 교회의 실천의 장이 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학문과 삶속에서의 경건이다. 경건 없는 학문과 학문 없는 경건을 모두 배격하면서, 진정한 개혁주의의 정신을 추구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화란 개혁주의는, 칼빈주의 사상과 삶의 뿌리요 그 실천적 전파의 견인차 역할을 해 왔다. 화란 개혁교회를 통해서 스코틀랜드 등 영국과, 미국, 캐나다, 호주, 헝가리, 루마니아, 트랜실베니아지역, 남아공은 물론이고, 인도네시아와 수리남 및 한국 등에까지 이 개혁교회의 신학이 전해졌다.

개혁신학의 국제화라는 것은 다시 표현하자면, 각 민족과 사회 공동체에 개혁신학과 복음의 정신에 입각한 신학자, 기독교 지도자를 세운다는 것인데, 이런 정신에 입각해서 네덜란드의 개혁교회들은, 특히 캄펜 신학교 즉 현재의 PThU신학교는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우리 만큼 잘 준비된 장학 제도를 통해서 동유럽과 아시아와 남미와 아프리카의 우수한 신학도들을 초청해서 신학을 공부하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총신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다수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이런 기회를 통해서 배출되었다.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과 함께 남아공 기독교 운동을 이끌었던 알란 부삭(Alan A. Boesak)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캄펜 신학대학교에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던 경우였다.

물론 화란의 개혁신학이 한국의 칼빈주의와 한국 장로교회에 미친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적지 않은 개혁주의 신학자들도 이 대학들에 유학하여, 칼빈의 종교개혁 사상에 근거한 개혁주의 신학을 연구한 후에, 한국의 칼빈주의적 신학대학과 장로교회의 목회 현장에서 한국 개혁신학의 확립을 위해서 그 노력을 쉬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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