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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논문] 벨직신앙고백서의 역사적 배경과 37조에 담긴 종말론 2
이상웅(총신대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기사입력: 2016/09/07 [13:11]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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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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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폼드뉴스>】이 글은 이상웅 박사가 개혁신학회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벨직신앙고백서가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작성되었으며 37조에 담긴 종말론은 어떠한 것인가를 면밀하게 연구하고 제시하였다.


4 벨직신앙고백서 37조의 구조와 내용 분석

이제 벨직신앙고백서 37조에 담긴 종말론적인 신앙고백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브레덴호프는 이 37조에서 “저지대 지역에 살고 있던 개혁파 신자들의 종말론의 주요 윤곽”을 볼 수 있다고 논평을 했지만, 그 내용을 일별해 보더라도 소위 종말론적인 주제들을 대략이라도 다 다루기는커녕 지극히 제한된 주제만 다루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제 37조에 담긴 종말론적인 내용을 분석하기 위하여 먼저는 37조의 구조를 먼저 분석해 보고자하며, 이어서 내용에 대한 분석적 고찰과 평가를 수행해 보고자 한다.

4.1 벨직신앙고백서 37조의 구조

4.1.1 학자들의 구조 분석


37조에 대한 대표적인 네 학자들의 구조 분석을 먼저 소개하려고 한다. 네 권으로 된 벨직신앙고백서에 대한 학문적 해명서를 쓴 뽈만(A. D. R. Polman, 1897-1993)은 37장의 제목을 “마지막 날은 심판의 날이다”라고 붙이고 크게 네 개의 소주제로 분석했다.

a. 그리스도 재림의 날
b. 그리스도 재림의 양식
c. 그리스도 재림시 심판
d. 이 심판에 대한 이중적인 생각

두 번째로 얀 판 브룩헌(Jan van Bruggen, 1909-1965)은 제목을 “최후 심판”으로 붙이고, 그 역시도 37조 내용을 크게 네 개의 주제로 분석했다.

a. 심판자의 위엄 있는 강림
b. 죽은 자와 산자를 모두 불러 모으심
c. 펴지게 될 책들
d. 이 위대한 날을 강렬하게 기다려왔던 성도들의 명예회복

세 번째로 대니얼 하이드(Daniel Hyde)의 경우는 37조의 제목을 라틴어 번역본에 따라 “최후심판, 몸의 부활 그리고 영생”이라 명명하고, 그 역시 내용을 네 가지 소주제로 분석했다.

a. 그가 다시 오실 것이다
b. 부활
c.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하여
d. 영원한 상태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벨직신앙고백서 해설을 출간한 칼 스카울스(Carl A. Schouls)의 분석을 살펴보면, 앞서 소개한 세 사람의 분석과 다르게 분석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a. 영광의 날인 심판의 날
b. 공포의 날인 심판의 날
c. 기쁨의 날인 심판의 날

4.1.2 논자의 구조 분석 제시

이상의 네 명의 학자들의 구조 분석은 다소 달라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대동소이하다고 볼수도 있다. 논자는 37조 본문을 거듭 읽으면서 나름대로 그 구조와 내용을 분석해 보고자 노력했고, 구조 분석 시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A. 정하신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심판자로 재림하실 것이다.

a. 그는 옛 세상을 정결하게 하시기 위해 불과 화염으로 사르실 것이다.
b.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시되 죽은 자들에게는 몸의 부활을 통해, 산자들은 순식간에 변화하게 하시어서 심판대 앞에 서게 하실 것이다.

B. 심판의 기준과 내용

a. 양심의 책들이 펴질 것이며, 사람들은 선악 간에 행한 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b. 무익한 말에 대해서도 심판을 받을 것이고, 모든 비밀과 위선도 드러나게 될 것이다.

C. 심판의 두 가지 결과와 두 가지 반응

a. 사악하고 불경건한 자들에게는 그 날이 끔찍스럽고 공포스러운 날이 될 것이다. 그날에 심판을 받고 지옥불 속에 들어가게 되어 죽지 않고 영원히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b. 택자들에게는 매우 바람직하고 큰 위로가 되는 날이 될 것이다.
a) 그들의 완전한 구속이 이루어지는 날이고, 모든 수고의 열매를 받는 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b) 그들을 대적하고 박해하던 불경건하고 사악한 자들이 공정하게 심판 받는 것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c) 세상에 의해서 받았던 그들의 명예회복이 이루어지는 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D. 결론적 적용

-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충만히 누릴 수 있기 위하여 그 위대한 날을 크게 대망하며 기다려야 한다.

4.2 내용 분석

앞에서 제시한 구조 분석에 따라 37조에서 개진된 종말론의 내용을 상세하게 살펴보기로 하겠다. 크게 네 가지 주제로 종말론적 신앙을 기술하고 있다.

4.2.1 정하신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심판자로 재림하실 것이다.

37조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시작한다. 그가 언제 재림하실 것인지에 대해서는 피조물은 알지 못한다고 못을 박는다. 다만 성경이 말하는 대로 “선택된 자들의 수가 채워지고”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재림하실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벨직신앙고백서가 견지하고 있는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정신을 다시 한 번 재확인하게 된다. 사실 이 신앙고백서가 그렇게도 빠른 시간 안에 저지대 지역(벨기에와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공식적인 신앙고백으로 인정되고, 1618-1619년 도르트총회에서 “일치를 위한 세 신앙고백서”(Drie formulieren van enigheid)중 하나로 공인된 것도 고백서 속에 담긴 내용들이 철저하게 성경적이었기 때문이었다. 37조 전체를 통해서도 다시 한 번 철저하게 성경중심적인 신앙고백임을 확인하게 된다. 성경에 의하면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것은 명백한 예언이지만, 그가 어느 때에 오시는지에 대한 예언은 주어진바가 없다. 다만 주님의 약속에 의하면 “선택된 자들의 수가 채워지고 나면”(마 24:36, 25:13; 살전 5:1, 2; 계 6:11; 행 1:7; 벧후 3:10), 다시 오실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게 고백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37조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양식에 대해서 단순명료하게 고백을 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올라가신대로, 하늘로부터 육체적으로 그리고 가시적(corporellement et visiblement)으로 오”실 것이라고 했다. 이는 사도행전 1장 11절 하반절에 근거한 것이다: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라는 것은 가시적인 부활체를 입고 승천하신 것을 가리킨다.

승천하신 것과 동일한 모습으로 그리스도는 다시 재림하실 것인데, 신앙고백서는 특히 그가 최후 심판자 되심을 강조해서 말한다. “자신이 산자와 죽은 자들의 심판자 되심을 선포하시며”(declarer, 살후 1:7, 8; 행 17:3; 마 24:30, 25:31; 유 15; 벧전 4:5; 딤후 4:1). 그리고 최종적인 심판을 설명함에 있어서 비인격적인 피조물과 인격체에 대한 심판으로 양분하여 말해준다. 고백서는 먼저 전자에 대해서 말한다. “옛 세상을 정결케하기 위하여 불과 화염으로 사르실 것을 믿는다”(벧후 3:7, 10; 살후 1:8).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이 구절은 1618-1619년 최종본에 담긴 내용이다. 1562년 원본에는 ‘pour le purifier’가 아니라 ‘pour le consumer’(태워버리기 위하여, 소멸시켜버리기 위하여)로 되어 있었다. 드 브레의 원 고백서에 따르면 세계 멸절설(annihilationism)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이기 때문에, 1566년 수정본에서는 ‘pour le consumer’를 ‘pour le purger’(깨끗하게 하기 위하여)로 수정했고, 1618-1619년 최종 수정본에서는 현재의 형태로 수정된 것이다. 개혁주의적인 입장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정당하게 수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면 심판하시기 위해서 재림하시는 날에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이어지는 구절에서 신앙고백서는 다음과 같이 고백을 한다.

그러고 나서 세상의 시작부터 끝까지 살았던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이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에 의해서 소집되어(고전 15:42; 계 22:12, 13; 살전 4:16) 이 위대한 심판자 앞에 몸소 출두하게 될 것이다(comparaitront personnellement, 계 22:12, 13; 행 17:31; 히 6:2, 9:27; 고후 5:10; 롬 14:10). 창세로부터 세상 종말에 이르기까지 이 땅위에 존재했던 모든 인류는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에서는 이미 죽었던 자들과 재림시까지 살아있던 자들을 나누어서 설명을 한다. 우선 이미 죽었던 자들은 “땅으로부터 부활하게 될 것이며(ressusciteront de la terre), 그들의 영혼들은 이전에 그 안에서 살았던 자신의 육체들과 결합하여 하나가 될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아직 살고 있던 자들에 대해서는 “그때에 살아있던 자들의 경우는 다른 사람들처럼 죽지 아니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썩을 것에서 썩지 아니할 것으로 변화를 받게 될 것이다”(고전 15:51-53)라고 성경적으로 고백한다. 정리해보면 주님의 재림과 심판의 날에 이미 죽은 자들은 몸의 부활에 참여하고, 살아있던 자들은 순식간에 변화하여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몸의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이 입게 될 몸에 대해서 “이전에 그 안에서 살았던 자신의 육체들”(son propre corps dans lequel il a vecu, their proper bodies in which they formerly lived)이라고 표현한 점이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32장 2항에서도 “죽은 자들은 모두 본래와 같은 몸으로 부활할 것이다. 이 부활체는 질적으로는 전과 다를 것이나 같은 몸으로 영혼과 다시 결합하게 될 것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논자는 이와 관련하여 이전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논증을 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개혁신학자들은 부활체와 현재의 몸 사이의 동일성 내지 연속성도 있다고 하는 점을 분명하게 확신하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그와 같은 동일시는 단순히 현재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적 요소들(totalitas materiae)의 회복과 재구성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점 또한 분명하게 인정해 왔다.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구성요소들은 매 7년 마다 전부 바뀐다고 하는 과학적인 사실들을 참고하더라도 그러한 식의 사고는 합당하지 않다고 할 수가 있다. 다만 우리는 바빙크의 적절한 표현대로 “개별적인 인간 존재의 연속성은 영혼의 정체성에서와 마찬가지로 몸의 정체성에서도 유지된다”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그리고 우리는 신자가 마지막 날에 입게 되는 부할체는 질적으로 전혀 다르다는 것 즉, “그리스도 자신의 영광스런 몸”을 닮게 된다고 하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4.2.2 최후 심판의 기준과 심판의 대상

그렇다면 최후 심판의 기준과 대상에 대해서 벨직신앙고백서는 무엇이라고 기술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우선 이 단락에는 상당히 논란의 여지가 있는 구절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유의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그때에 책들이(다시 말하자면 양심의 책들) 펴질 것이며”(alors les livres seront ouverts [c’est-a-dire les consciences])라고 하는 부분이 그러하다. 심판 날에 책이 펴질 것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 몇몇 곳곳에 기록되어 있기에 크게 어려움이 없다. 요한계시록 20장 13절에 의하면 사람의 행위를 기록한 책들과 생명책이 심판날에 펼쳐진다고 한다. 그런데 왜 신앙고백서는 양심의 책들이 펼쳐진다고 말한 것일까? 사실 증거로 제시한 본문들(계 20:12, 13; 고전 4:5; 롬 14:11, 12; 욥 34:11; 요 5:24; 단 12:2; 시 42:13; 마 11:22, 23:33; 요 5:29; 롬 2:5, 6; 고전 5:10; 히 6:2, 9:27)을 통해서도 해명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어떤 역본들에서는 ‘다시 말하자면 양심의 책들’이라는 문구를 생략하기도 했다. 혹은 J. 판 브룩헌 같은 사람은 이 구절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였고, 뽈만은 이 문구는 생략해 버리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해설을 해보려고 시도한 스카울스 같은 사람도 있다. 논자가 생각하기에는 철저하게 성경적인 고백서이기를 추구한 벨직신앙고백서의 정신에 따라 이 부가적인 문구는 생략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심판의 기준으로 제시한 “죽은 자들은 이 세상에서 선악 간에 행한 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고 하는 내용은 성경적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영육통일체로 살아가는 동안에 어떻게 행했느냐가 심판의 기준이 될 것이라고 성경은 일관되고 가르치고 있고, 이에 따라 개혁파 신학자들도 대체로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 행한 대로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에 이 세상 사람들이 단순히 우스개소리 내지 심심파 적으로 여길 수 있는 “무익한 말들”(de toutes paroles oiseuses)에 대해서도 심판을 받게 될 것이며, 또한 모든 “사람들의 비밀들과 위선들”(les cachettes et les hypocrisies de hommes)도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고백한다. 이 모든 표현들은 성경구절에 근거한 것들이다.

4.2.3 심판의 두 가지 결과와 두 가지 반응

신앙고백서는 그와 같은 심판의 날에 단 두 가지의 결과들이 있을 것이라고 서술해준다. 제3의 가능성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사악한 불경건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심판과 ‘경건하고 선택된 자들’에게 주어진 결과 두 가지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두 부류의 심판결과를 생각할 때에 두 가지의 반응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시한다. 우선 ‘사악하고 불경건한 자들’에게 내려지는 심판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들은 특히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성도들을 “박해하고, 압제하고, 그리고 고문했던 그 사악한 자들”이다. 이들은 그들 위에 집행되는 하나님의 ‘끔찍스러운 보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단 7:26; 마 25:46; 살후 1:6-8; 말 4:3). ‘그 악한 자들은 그들 자신의 양심에 의해서 정죄함을 당하게 될 것이며’(롬 2:15), 그들 역시도 불사적인 존재 즉 죽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마귀와 그의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속에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 불은 신약에 의하면 게헨나의 불이다. 이는 복음서뿐 아니라 요한계시록도 명백하게 말하고 있는 악인들의 최후 상태이다. 신앙고백서는 신약의 계시를 따라 단순하게사악한 자들에게 임할 마지막 형벌에 대해 고백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최종 형벌이 언도 되고 집행되는 심판 날을 생각 혹은 기억한다고 하는 것은 고백서가 표현한대로 ‘끔찍스럽고 공포스러운‘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앙고백서 37조는 사악한 자들에 대해서는 비교적 단순명료하게 진술한 반면에, ‘경건하고 선택된 자들’에게 임할 심판의 결과에 대해서는 비교적 길게 서술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는 환란 중에 있던 16세기 저지대 지방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한 강력한 동기에서 37조가 기록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선 사악한 자들에게는 그렇게도 ‘끔찍스럽고 공포스러운 날’이 하나님의 택자들에게는 ‘크게 소망하는 날이 되고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왜 그렇게 소망하고 위로가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 고백서는 자세하게 설명을 해준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날에 성도들의 ‘완전한 구속’(redemption totale)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중생하고 칭의의 은혜를 받으며 성화의 과정 속에 들어가게 되고, 임종하여 영혼이 하늘에 가게 될 때에 영화에 이르게 되지만, 몸의 부활을 입고, 영육통일체로 새 하늘과 새 땅에 살게 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완성이 되기 때문에, 신앙고백서는 최후심판에서 성도들이 누리게 될 영광을 무엇보다 ‘완전한 구속’이라는 개혁파적인 언어로 표현을 한 것이다. 둘째, 최후 심판 날에 성도들이 누리게 되는 것은 이 땅위에서 행한 ‘모든 노고와 수고의 열매들을 받게’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도 성경에서 명시적으로 약속하고 있는 내용이다(눅 22:28; 요일 3:2, 4:17; 계 14:7; 살후 1:5, 7; 눅 14:14). 셋째, 성도들은 그 날에 억울함이 풀어지고 명예가 회복됨을 받게 될 것이다. 37조는 이 사실을 ‘그들의 무죄함은 모든 이들 앞에 알려지게 될 것’이라고 하든지, 악인들의 심판을 보게 된다고 표현하든지, ‘영광과 명예로 면류관을 쓰임받게 될 것’이라고 달리 표현해준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아버지 하나님과 그의 택한 천사들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인정하실 것’이며, 이 땅위에서 흘린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신앙고백서가 작성되던 당시 상황에서도 그렇지만 교회사를 통하여 수많은 성도들의 대의명분(cause)이 이 세상의 “재판관들과 위정자들에 의해서 이단적이고 악독하다(heretique et mechante)고 정죄당”해 왔지만, 그 날에 그들이 헌신하고 목숨 걸었던 대의명분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의 대 의 명분을 위한 것이었음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신앙고백서는 성도들이 누리게 될 축복에 대해서 “또한 주님께서는 은혜로운 보상으로서 사람이 마음으로 결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그러한 영광을 그들로 하여금 소유하게 하실 것이다”(사 54:4; 고전 2:9)라는 말로 마무리 짓는다.

4.2.4 결론적 적용.

이상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경건한 성도들이 최후심판 날에 받게 될 심판의 결과들을 생각할 때에 가질 수 있는 정상적인 반응은 37조의 결론 구절에서 묘사된 대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들을 충만히 누릴 수 있기 위하여, 그 위대한 날을 크게 소원하며 기다린다(히 10:36-38).” 혹은 중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이러한 날을 생각하면서 “큰 소망과 큰 위로”를 얻게 될 것이다. 이는 벨직신앙고백서 작성자였던 귀도 드 브레가 순교자로서 분명히 체현해주었던 바이고,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몸소 확증했던 바이다.

4.3 평가

이상에서 살펴본 37조의 내용에 대해서 몇 가지로 평가를 해보고자 한다. 첫째, 37조는 종말론적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주요 주제들을 다 다루지 아니하고, ‘최후 부활, 최후 심판, 그리고 최후 상태’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프랑스어 원문에는 각 조항별 제목이나 문단 구분조차도 없었지만, 라틴어 번역문에서부터 제목이 붙여지기 시작했는데, 37조에 대한 제목은 “최후심판, 몸의 부활 그리고 영생”이라고 명명한 것도 37조가 담고 있는 고백의 내용을 정확하게 드러내준다고 사료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신앙고백서 속에서 다른 종말론적인 주제들, 예컨대 개시된 종말론, 중간상태론, 시대의 표적론, 천년왕국론 등과 같은 주제들에 대해서 참조할 내용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말은 현상적인 관찰을 말한 것이지, 그러한 현대적인 내용들이 결여되었기에 이 신앙고백서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 역시도 그 방대한『기독교강요』(Institutio Christaianae Religionis)에서 “최후부활”에 대해서만 논하고 있을 뿐이며, 1647년에 작성된『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종말론 역시도 주의 깊게 선별된 주제들만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본신앙고백서 역시도 16세기라는 정황 속에서 가장 논란이 적으면서도 필수적인 종말론적 신앙조항들에 대한 조항을 간결하게 제시한 것이 본신앙고백서 37조라고 할 수가 있다.

둘째, 그 서술 내용에 있어서 성경적일 뿐 아니라, 그러하기에 칼빈과 베자의 전통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도 확인할 수가 있다. 특히 37조의 내용을 1560년에 간행된『베자의 신앙고백』(Theodore Beza’s Confession)의 ‘여섯 번째 요점: 최후심판에 관하여’와 대조해 보면, 드 브레는 베자의 고백서의 내용을 거의 따르고 있으며, 다만 보다 확장하여 기술하고 있다는 차이점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도 벨직신앙고백서는 철저하게 칼빈주의적인 고백문서라고 할 수가 있다.

셋째, 37조는 종말론을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순교적인 상황 속에서 성도들을 위로하고 견인불굴의 인내로 견뎌낼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다는 것을 배경연구와 37조 본문 연구를 통하여 분명하게 확인할 수가 있다. 귀도 드 브레가 신앙고백서 앞부분에 실은 “황제 펠리페 2세에게 쓴 편지”에서도 이 점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즉, 개혁파신앙을 가진 저지대 사람들이 “등에 매질을 당하고, 혀가 잘리고, 입에 재갈이 물리고, 온몸이 불태워지는 것을 감수”해온 것은 혹은 앞으로도 기꺼이 감수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종말론적 소망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논자는 벨직신앙고백서 37조를 ‘저지대지방 순교자들과 성도들의 주님 고대가, 마라나-타’라고 명명하고 싶다.

5 나가는 말

이상에서 우리는 1561년에 귀도 드 브레에 의해 작성되고, 1618-1619년 도르트총회를 통해 최종 수정되고 개혁교회의 ‘일치를 위한 세 신앙고백서’ 중 하나로 채택된 벨직신앙고백서의 종말론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논구작업은 크게 세 부분으로 진행해왔다. 각 부분의 요점을 먼저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섹션 2에서는 벨직신앙고백서 종말론을 다루기 위한 배경 설정으로서 저자문제와 역사적 배경에 대해 살펴보았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순교자 귀도 드 브레(1522-1567)가 본 신앙고백서의 주요 저자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드 브레와 저지대 지방의 신자들이 어떠한 상황 속에서 이 신앙고백문서를 작성하게 되었는지도 살펴보았다. 16-17세기에 100개가 넘는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들이 산출되었지만, 각 신앙고백서들은 작성 경위내지 삶의 정황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저자와 배경연구는 세부적인 내용 연구에 앞서서 짚고 넘어가야 할 선결문제였다.

이어지는 섹션 3에서는 본고에서 논구할 종말론을 담고 있는 37조의 번역문 시안을 제시해 보았다. 1561년 첫 고백서, 1566년 안트베르프 회의에서의 수정 그리고 도르트총회에서 최종 수정과 공인한 본문 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비록 그 차이가 극명하게 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해도 미소한 차이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37조에 관해서도 이러한 비평적 본문 정립이 필요하다고 사료되어 이러한 시도를 해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은 단지 37조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신앙고백서 전체에 대하여 이루어져야 한다고 사료된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섹션에서는 37조의 구조와 종말론적 내용들을 분석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벨직신앙고백서는 종말론적인 주요주제들을 다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과 최후심판 그리고 최후상태에 집중해서 진술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는 환난과 박해를 받고 있던 16세기 저지대 지방 성도들에게 큰 위로와 소망을 주는 핵심 내용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인 것도 살펴보았다. 37조에서도 드러나듯이 본 신앙고백서는 세밀한 교리적 토론이나 논쟁을 목표로 작성된 것이 아니고, 성도들이 영혼의 양식으로 삼아야 할 순수한 교리 혹은 복음의 순수함(la purete de l’Evangile de nostre Seigneur Jesus-Christ)을 제시하려는데 있음을 우리는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하이델베르크교리문답, 도르트신경과 더불어 ‘일치의 세 신앙고백서’로 공인되고, 서명까지 해왔지만, 상대적으로 소홀한 대우를 받아온 벨직신앙고백서에 대한 활발한 연구, 논의가 일어나기를 바라고, 주님의 재림이 어느 때 보다 가까운 말세 지말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벨직신앙고백서에 담겨져 있는 순수한 복음이 더욱더 강력하게 선포되어지기를 소망하면서, 벨직신앙고백서 37조에 담긴 종말론 연구를 마무리 짓고자 한다.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