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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해석/설교
[김순정목사 설교] 고난 받으신 예수님
마 27:27-56; 온갖 희롱을 받으신 예수님
기사입력: 2016/03/19 [20:07]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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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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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폼드뉴스] 고난주간이 되었습니다. 해마다 우리는 교회의 절기 가운데 하나인 고난주간을 지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할 점은 절기이기 때문에 고난주간을 맞이하고, 주님의 고난을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주님의 고난은 우리의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생각하고 묵상해야 하며, 잊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신앙의 내용입니다.
 
고난주간 한주만 금식하고, 기도하고, 특별새벽기도회를 한다고 해서 주님의 고난에 참여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생애가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고 거룩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망각할 때 우리는 또 형식적으로 고난주간을 보내게 되고 말 것입니다.

배경

오늘 본문의 배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공생애를 마치시고 십자가 죽음을 바로 앞에 두고 계신 때였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로마에서 파송된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넘겨주었습니다(1-2).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에게 예수님을 팔도록 했고 유다는 예수님의 체포 사건을 보고 죄책감으로 자살했습니다(3-10).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했으나 죄목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죄목을 찾지 못한다고 공포하자 백성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고 외쳤습니다. 백성은 거의 민란을 일으킬 정도로 예수님을 처형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민란을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그들의 요구대로 넘겨주게 됩니다(11-26).

1. 온갖 희롱을 받으신 예수님(27-31)

로마 총독 빌라도의 판결이 있은 후 총독의 병사들은 예수님을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 온 군대를 모았습니다(27). 예수님의 처형을 준비한 것입니다. 먼저 그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혔습니다. 홍포는 당시에 왕이나 귀족들, 신분이 높은 자들만 입을 수 있던 옷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조롱의 표시로 홍포를 입혔습니다(28).

뿐만 아니라 병사들은 가시관을 엮어 예수님의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오른손에 들리게 하고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희롱합니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이는 예수님에 대한 존경이 아니라 조롱이고 모독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대하는 것처럼 모독하고 조롱한 것입니다(29).

병사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예수님께 침을 뱉고 갈대를 예수님의 손에서 빼앗아 그분의 머리를 쳤습니다(30). 그리고 희롱을 다한 후에 홍포를 벗기고 원래 예수님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이기 위해 끌고 나갔습니다(31).

홍포는 왕의 의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가시관은 왕의 왕관을 상징하는 것이고, 갈대를 오른손에 들게 한 것은 왕의 금홀을 상징합니다. 또 무릎을 꿇는 행위는 백성이 왕에게 표현하는 경배의 상징입니다. 병사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오셨음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장난하고 조롱하고 놀림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실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만왕의 왕이시고, 거룩한 왕이십니다. 그분은 장차 이런 왕의 모습으로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재리하실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절대 이런 장난, 희롱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희롱을 참으셨습니다. 이유는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늘 그리스도의 이 놀라운 사랑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32-44)

이제 예수님은 병사들의 조롱을 받으시고 해골의 곳이란 골고다까지 십자가를 메고 가십니다. 그 길에 십자가가 너무 무거웠습니다. 예수님은 목요일 밤에 잡히셔서 밤새 한 잠도 주무시지 못하고 수차례 이동하며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빌라도에게 최종 재판을 받으시고 거의 숨만 붙어있을 정도로 매를 맞으셨습니다. 따라서 기운이 전혀 없으신 상태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가기는 불가능했습니다.

병사들은 길에서 만난 구레네 사람 시몬을 불러 억지로 십자가를 메고 가도록 명령합니다(32). 병사들은 골고다에 도착하여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님에게 마시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마취제에 해당합니다. 십자가에 달리는 일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도 거부하십니다(34). 하나님의 저주, 십자가의 고난을 몸소 다 감당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시는 대속 제물의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마 27:35-42)

병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목 박은 후 옷을 제비 뽑아 나누어 가졌습니다. 이것은 시편 22:18에 나타난 말씀의 성취입니다. 즉 지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시편에 기록된 장차 오실 메시야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병사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쓴 죄패를 붙입니다. 이것도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으로 구속주로 메시야로 오신 분이라는 것을 증명해줍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좌우에 강도들과 함께 못 박히셨습니다. 이사야 53:12에 보면 장차 오실 메시야는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을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은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결국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은 예수님이 그리스도, 메시야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고, 하나님의 구원을 완성하시는 분, 우리의 구속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3.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45-56)

제6시 즉 우리 시간으로 정오에 해당합니다. 이 시간에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9시 즉 우리 시간으로 오후 3시에 해당하는 시간까지 어둠이 온 땅에 계속되었습니다(44-45). 제9시쯤에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크게 외치십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것입니다(46). 즉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시고 버림을 받으신 것입니다. 이 고난이 십자가의 고통보다 더 크고 중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의로우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하나님의 저주, 버림을 받으신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 은혜는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듣고 엘리야를 부른다고 했습니다(47). 다른 사람은 달려가 해면에 신포도주를 적셔서 갈대에 꿰어 마시게 했습니다(48). 이것은 일종의 마취제입니다. 즉 고통을 덜어주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십니다. 사망했다는 말입니다(50). 떠나시다(아페켄)라는 단어는 헬라어 문법에서 부정과거 직설법입니다.
 
이것은 사건의 완료된 동작이나 사건을 뜻합니다. 완전히 분명히 죽으신 것을 나타냅니다. 기절하거나 죽은 척하거나 흉내는 낸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분명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확실한 죽음이 필요한 이유는 확실하고 분명한 죽음만이 우리를 구속할 수 있고, 대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번제는 희생 제물의 죽음과 피가 있어야 했습니다. 기절한 것도 아니고 죽은 척한 것도 희생의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죽어야 하고, 확실히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고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고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났습니다(51-52).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였습니다. 백부장과 함께 예수님을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했습니다(54). 누가 시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눈으로 직접 목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이 고백은 예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습니다.

결론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우리는 다시금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낮고 낮은 자리까지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시고 버림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를 살리고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이 은혜를 입은 우리는 고난주간만 아니라 우리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백성으로 합당하게 성결하고 거룩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