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가톨릭교회의 마리아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2

이상웅(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김순정 | 기사입력 2015/05/27 [09:14]

로마가톨릭교회의 마리아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2

이상웅(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김순정 | 입력 : 2015/05/27 [09:14]

▲     ©리폼드뉴스

3 마리아의 중재자(co-mediatrix) 지위와 역할

우리가 앞서 살펴본 4대 기본교의는 마리아가 누구인가(the person of the Virgin Mary)에 관해 가톨릭이 규정하고 있는 것들이었다면, 이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그러한 마리아가 도대체 어떤 사역을 했고 또 지금도 하고 있는가(the work of the Virgin Mary)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역사적으로 로마 가톨릭은 마리아가 수행한 사역에 대하여 다양한 호칭들을 부여하여 왔다. 우리가 이러한 명칭들과 그 의미를 파악한다면 가톨릭이 말하는 마리아의 사역론을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일단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화육과 십자가 사건에 수동적으로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참여했다고 하면서 심지어는 15세기 부터는 공동 구원자(co-redemptrix) 또는 구원자(salvatrix)라고 하는 용어를 마리아에게 적용하고(제2차 바티칸 회의에서 주의 깊게 배제되었지만),
 
마리아를 모든 후손을 죽음으로 이끈 하와에 대조적으로 생명을 부여한 “제2의 하와” 혹은 복구자(reparatrix)라고 부르기도 하고, 하늘의 여왕, 교회와 모든 사람의 어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가톨릭에 의해서 강조된 마리아의 사역은 바로 “중재자”(mediatrix) 혹은 “공동 중재자”(co-mediatrix)로서의 역할에 있다는 점이 강조되어왔고, 지금도 강력하게 주장되고 있는 마리아의 주요 사역이다. 따라서 이 항목에서는 중재자로서의 마리아의 사역에 주력하여 논구해 보려고 하며, 그러한 중재자 사역을 분명하게 담고 있는 성모송(Ave Maria)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우리가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는 것은 가톨릭도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재자(즉, 중보자) 이심을 힘써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3.1 중재자로서 마리아

가톨릭학자인 지게나우스에 의하면 중재자(혹은 중개자, mediatrix)라는 용어는 12세기에 이르러 교회내에 자리를 잡았으며, 이 용어가 의미하는 바는 “마리아가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신다”라고 말한다. 조규만 주교는 “마리아의 중재자” 역할이 마리아의 주요한 역할이라고 말하고, 이것은 교도권이 교의로 선포한 것이 아니라 “신자들이 날마다 성모 마리아에게 중재 기도를 수없이 바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마리아의 중재성은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교부들로부터 전승으로 물려 받은 신앙이기도 하다라고 그 근거를 댄다. 우리가 이러한 중재자로서의 마리아에 대한 신앙의 역사를 추적해 보면 마리아숭배(Mariolatry)라고 하는 극단적인 입장을 마주치게 된다.
 
예를 들면 중세 말혼란스럽던 시기에 마리아를 기적적인 도움을 청하며 마리아를 여신으로 숭배하였던 민심의 경우나 마리아를 “하나님의 동료”로서 거의 하나님과 같이 흠숭(latria)한 17세의 브린디시의 로렌스(Lawrence of Brindisi), 그리고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께 다가갈 수 없으며, 심지어 악마들은 하나님 자신보다 마리아를 더 두려워한다”고까지 주장한 18세기 그리뇽 드 몽포르(Grignion de Monfort) 등을 예로 들수가 있다. 이와 같은 입장은 오늘날 가톨릭 교도권이 주의깊게 경계하고 있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교회는 변함없이 마리아의 중재권 혹은 마리아가 그리스도께서 구속사역으로 획득하신 모든 은혜를 중개한다는 가르침을 유지하고 있으며, 신자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마리아에게 전구(intercession, 개신교적 용어로는 중보기도라고 옮길수 있다)를 요청할 것을 권하고 있다.

가톨릭교회에 있어서 중재자 마리아 사상 혹은 신념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그들이 지시하는 성경적 근거를 보자. 가나혼인잔치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마리아의 역할(요 2:1-12)을 중요시하고, 오순절 성령 강림을 기다리며 기도하는 120문도 속에 마리아가 동참하고 있는 것을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본문들은 마리아가 지상 생애중에 한 일들을 가리킬 뿐이지, 마리아가 몽소승천하여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를 중재하고 있다는 사상의 근거를 제공해주지는 않는다는 점을 우리는 쉽게 간파할 수가 있다. 오히려 그들이 강력하게 증거로 제시하는 것은 3-4세기에 등장하기 시작한 마리아에게 기도하며 중재를 구하는 것을 실행하고 가르치는 여러 초기 신학자들과 중세 신학자들 그리고 근현대에 이르러 가톨릭교의로 규정한 여러 교황들과 제2차 바티칸회의 결정 내용 등이 근거로 제시될 수 있을 뿐이다.

교황 그레고리 1세는 “죄에 대한 속죄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아니라 성인들의 중재기도, 특히 마리아의 중재기도를 통해서 효과가 있다”는 사상을 발표했고, 콘스탄티노플의 제르마노는 마리아가 승천해야 할 이유로 천상에서 우리들을 중재하기 위해서라고 일찍이 말했다. 그리고 중세의 대중 신심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심판은 정의의 심판이고, 마리아의 심판은 자비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비로운 황후”로 묘사하면서 마리아에게 적극적으로 중재기도를 드리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마리아가 어머니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기도를 거절할 수 없고, 마리아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하는 극단적인 입장도 등장했다. 물론 이러한 극단적인 입장에 대해 중세 스콜라신학자들은 경계를 하기도 하였다. “마리아 박사”라 일컬어진 둔스 스코투스는 “복되신 동정녀는 기도로써 중재하는 권위를 지니고 있지, 하나님께 명령하는 권위를 지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종교개혁후 근세에 이르러서도 여러 가톨릭신학자들과 교도권에 있는 자들에 의해서 마리아의 중재사상은 강화되었다. 특히『마리아의 영광』이라는 베스트 셀러를 출간하여 마리아신심을 고무시킨 이탈리아의 주교이자 시성된 성인인 알폰수스 드 리구오리(Alphonsus de Liguori, 1696-1787)에 의하면 “마리아는 하나님의 모든 은총이 거쳐 나오는 중재자”라고 하는 명시적인 언급과 그러하기 때문에 “복되신 동정녀의 한 번의 한숨 소리가 모든 성도들이 함께 기도드리는 것 보다 더욱 더 강력하다”라고 까지 주장하기도 했다. 19-20세기에 들어오면 가톨릭 교황들 가운데 마리아신심과 공경을 대단히 강조하는 결정과 회칙을 발표하는 사례가 많아지게 되면서 중재자 마리아를 높이고 중재를 요청하는 신앙은 더욱 더 공식화되고 강화되기에 이른다. 레오 13세는 회칙 “10월”(Octobri Mense)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정을 발표했다.

“우리의 절대적 중재자는 성자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없다...그러나 특별히 복되신 동정녀에게 이 영광스러운 칭호를 드릴 수 있다...아무도 지존하신 하나님께 성자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가까이 갈 수 없다. 그처럼 질서를 따라서 그 분의 어머니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갈 수 없다.”

그리고 교황 피우스 9세에서 12세까지(1846-1954) 가톨릭 당국은 마리아가 유일한 구속주이신 예수님을 보조하는 공동 구속자(co-redemptrix)라고 하는 교리를 강화시키게 된다. 피우스 10세가 발표한 회칙 Ad Diem(1904)에서는 마리아는 “재량공로(de congruo)에 의하여 인간 구원을 위한 모든 선물들을 분배하는 자요, 은혜를 나눠주는 첫 번째 사역자”로서 “은혜들의 중재자”(meditrice gratiarum)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또한 피우스 11세는 회칙 Mortalium animos(1928)에서 마리아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하라고 권한다. 우리는 가톨릭의 공식적인 문헌이나 신학저술들 속에서 헤아릴 수 없는 증거들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러나 짧은 지면에서 그 모든 것을 다룰 수는 없는 일이고, 마지막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에 담긴 중재자 사상을 확인함으로 마무리를 지으려고 한다.

우선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마리아에 대해서 어떠한 타이틀을 돌리고 있는지를 주목해 보기로 하자. 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라고 선포했고, 또한 “하늘의 여왕”(the queen of Heaven) 혹은 천지의 모후로서 성자와 함께 교회를 다스린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분명히 그리스도의 지체들의 어머니이시다.”(plane mater membrorum Christi)고 선포하며, 따라서 “가톨릭 교회는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 자녀다운 효성으로 마리아를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matrem amantissimam)로 받든다”라고 그 당위성을 선언했다. 그리고「교의헌장」, 62항에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기도 했다:

“실제로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성모님께서는 이 구원 임무를 그치지 않고 계속하시어 당신의 수많은 전구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얻어주신다. 당신의 모성애로 아직도 나그넷길을 걸으며 위험과 고통을 겪고 있는 당신 아드님의 형제들을 돌보시며 행복한 고향으로 이끌어 주신다. 그 때문에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교회 안에서 변호자, 원조자, 협조자, 중개자(Advocatae, Auxiliatricis, Adiutricis, Mediatricis)라는 칭호로 불리신다.”

물론 그들은 “유일한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의 존엄과 능력에 아무것도 빼지 않고 아무것도 보태지 않는다”고 덧붙인 후에 “마리아의 이러한 종속적인 임무를 교회는 의심 없이 믿고 끊임없이 체험하며, 신자들의 마음에 권장하여 어머니의 이러한 도우심과 보호로 중개자 곧 구원자를 더욱 더 가까이 따르자고 한다.”라고 선언한다.「교의헌장」, 66항에 보면 마리아는 “지극히 거룩한 천주의 성모로서 교회에서 특별한 공경으로 당연히 존경을 받으신다”라고 하면서 “신자들은 온갖 위험과 곤경 속에서 그분의 보호 아래로 달려 들어가 도움을 간청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리아론을 마무리하는 부분인「교의헌장」, 69항에서는 마리아는 “순례하는 하느님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로와 표지로서 빛나고 계신다.”라고 선언하고 있고,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은 천주의 모친이시며 사람들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간절한 기도를 바쳐야 한다.”라고 선언한다.

3.2 아베 마리아(Ave Maria, 성모송)

이상에서 살펴본 마리아의 중재권과 그에 의지한 마리아공경과 신심은 마리아를 위한 여러 전례들속에 그리고 가톨릭에서 주기도문 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도 많이 사용되고 있는 성모송(Ave Maria)에 간단명료하게 담겨져 있기 때문에 별도의 항목으로 다루어 보려고 한다. 구노, 안톤 브루크너, 슈베르트 등에 의해서 작곡된 아베 마리아 곡들을 통해 마리아 신앙은 전세계 일반 대중에게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성모송은 가톨릭 교회 뿐 아니라 영국성공회와 그리스 정교회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럼 우선 현재 사용되고 있는 성모송의 내용을 먼저 소개하도록 하겠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즉, 하나님의 어머니)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이러한 성모송의 기본 골자는 누가복음 1장 28절, 42절 등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다가 현재의 형태로 확정되는 것은 13세기 때에 이르러서이다. 이 때에 특히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라는 마지막 구절이 첨가되었다. 그렇게 정해진 성모송의 형태는 마침내 피우스 5세에 의해 1568년에『성무일도』에 삽입되었고, 트리엔트 공의회가 이『성무일도』를 강조함으로써 대중적으로 보급되기에 이른다.

앞서 우리는 이러한 성모송(Ave Maria) 가운데서도 마리아의 중재자 역할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을 찾아볼수 있다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우리는 두 가지를 주목해 보아야 한다. 첫째는 그러한 중재자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근거를 제시하는 “은총이 가득한”(gratia plena)이라고 하는 표현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구절에 근거해서 이렇게 주장한다: 이외에도 신적 모성으로 말미암아 동정녀에게서 은총의 원천이시며, 천사들보다 고귀하시고, 그분으로부터 모든 은총의 충만함이 비롯되는 점에서 그리스도와 유사함을 찾아볼 수 있다. 천사가 동정녀를 일컬어“ 은총이 가득한 분이여”라고 했던 것처럼.

그러나 “은총이 가득한”(눅 1:28)이라는 이 구문을 가톨릭교회처럼 이해하는 것은 헬라어 원문을 잘못 번역한데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에라스무스와 로렌조 발라가 밝혀낸 바가 있다. 그런 교정에 의하면 마리아가 마치 은총의 저장고처럼 가득해서 중보자나 공동 구속자가 될 수 있다는 근거가 되는 구절이 아니라, 단지 마리아가 하나님께 크게 은혜를 받은 자라는 의미일 뿐이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구절은 가톨릭의 마리아 중재권 사상의 근거가 될수 없다는 점은 자명한 일이 된다.

뿐만 아니라 성모송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ora pro nobis peccatoribus, nunc et in hora mortis nostrae)라고 비는 것이다. 이는 마리아가 현재 교회의 어머니로서, 하늘의 황후로서 성자와 다스리고 있는 공동 중재자라고 믿기에 자신들의 슬픔과 눈물을 보아주고, 기도를 들어주며, 대신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는 명시적인 기도문이라고 할 수가 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이러한 구절이 담긴 성모송을 주기도문보다 더 애호하고,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많이 애송하거나 애창하고 있다. 그리고 구절에 있는대로 임종 때에나 전쟁터에서 죽어갈 때도 이 성모송을 간절하게 읊조리는 것을 영화 같은데서도 왕왕 보곤한다.

3.3 개혁주의관점에서의 비평

이상에서 살펴본 로마 가톨릭의 마리아중재자 사상에 대해서 이제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비판을 해보려고 한다. 우선 이러한 사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 중보자되심을 명백히 하고 있는 신약성서의 가르침에 위반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2장 5절에서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했고, 히브리서 4장 14-16절에서는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물론 로마가톨릭 교도권도 이러한 그리스도의 유일중재자 되심에 대해서 분명하게 인정을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톨릭의 공식적인 문헌들을 세심하게 다 살펴보고, 그들의 실제적인 마리아 공경의 내용을 관찰해 본다면 마리아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예수 그리스도 가까이 그 위상이 높여져 있으며, 때로는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 보다 더 자비롭고 은혜로운 중재자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가 없다고 하는 사실이다. 권리상(de jure)은 아니지만 실제적으로(de facto) 마리아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거의 동일한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고 비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최근 평화방송을 통해 방영된 한 성경공부 속에서 집전하던 사제는 마리아상을 향해 “엄마” 3창을 하고, 성삼위와 성인들과 마리아의 이름을 들어 강복(= 축도)을 했고, 모든 모임을 마친 후에는 오늘 은혜를 주신 성삼위와 성모님께 감사의 박수를 올려드리자하여 박수까지 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다. 이것이 로마가톨릭의 마리아공경의 실제적 모습이라는 점을 간파해야 할 것이다.

둘째, 우리는 가나혼인 잔치에서 곤경에 처한 혼인 잔치집과 그리스도 사이에 중재를 한 역사적 사건이나 마가요한의 다락방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던 마리아의 모습을 근거로 하여 마리아가 죽고 난 후에 하늘로 올려져 그리스도의 보좌 옆에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우리를 위해 기도를 해주며 우리에게 은혜의 중개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다. 소위 가톨릭이 말하는 성인의 통공(communio sanctorum)은 정확하게 이해하자면 성도들 간의 교제를 말하는 것이지, 죽은 마리아와 성인들과 현재 지상에 남아있는 신자들이 서로 교제하고, 그들의 잉여공적을 힘입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죽은 성도들과 지상에 남아있는 성도들 사이에 서로 직접 교제하여 도움을 청하거나 도움을 준다고 하는 그런 종류의 교제 혹은 교통이 존재한다고 가르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우리는 마리아에게 돌려진 여러 가지 존칭들(하늘의 모후, 교회의 어머니, 공동 구속자, 공동 중재자, 은혜들의 중재자 등)과 중재자 역할에 대한 교의나 공적 결정들이 대부분 성경적인 근거가 아니라 교부들이나 중세 스콜라신학자들, 그리고 근현대의 가톨릭신학자들과 교황들의 결정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역사적으로 간파해야 한다. 또한 그러한 교의화 작업에 있어서 기존 가톨릭신자들의 신심 내지는 공통 의식을 중시한 결과일 때도 적지 않다는 점을 우리는 직시해야 할 것이다. 즉, 중세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마리아에 대한 일반 신자들의 강력한 신심에서 받아들여졌던 바를 교의로 결정하였다라고 하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가톨릭은 오직 성경이라는 규범을 따르지 아니하고 당대의 그리스도인들의 의식에서 교의학적 규범을 찾았던 슐라이어마허의 자유주의신학과 유사해 보인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또한 한스 큉에 의하면 가톨릭의 마리아론은 결국 교황중심주의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도 우리는 간과할 수가 없다고 생각된다.

4 나가는 말

우리는 이상에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마리아론을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마리아론이 로마 가톨릭교회 신학의 중심에 놓여 있을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논구는 의미있는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앞선 논의들을 간략하게 요약하기 전에 분명하게 언급하고 싶은 것은 우리 개혁교회를 포함하여 개신교회는 성모 마리아가 믿음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탄생하도록 자기의 몸을 내어드린 헌신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라고 하는 점이다. 개혁신학자 헤르만 바빙크는 다음과 같이 공정하게 말한다:

이제 선행하는 세기들 속에서 이 전체적인 성육신의 준비는 말하자면 예수의 어머니로서의 마리아가 선택과 은혜를 입는 데 집중되고 완성된다. 마리아는 여자들 가운데 복을 받은 여인이다. 그녀는 다른 피조물이 받지 못한 영예를 받았다. 그녀는 분수에 넘치는 은혜, 모든 사람과 천사들을 초월한 은혜를 받았다. 로마교는 이것을 정당하게 견지했다. 이것을 부정하는 자는 하나님의 성육신을 심각하게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인식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2항에서 살펴보았듯이 아무런 성경적 근거도 없이 마리아의 무죄 잉태와 몽소 승천교리를 결정하고 가톨릭신앙의 근본적인 조항으로 발표해 버렸다고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가톨릭 마리아론의 4대 기본교의라고 확정된 하나님의 어머니(신적모성), 평생동정성, 원죄에서 면제된 무염시태, 몽소승천교의 등에 대해서 그 근거와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개혁주의적인 평가를 내려보았다. 하나님의 어머니 혹은 하나님을 낳은 자라고 하는 표현은 개신교도 인정하는 공의회들에서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공의회가 가졌던 원 의미를 훼손함 없이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마리아가 낳은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신가에 대한 관점에서 이 표현을 주의깊게 사용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평생동정녀 교의는 경건을 위해서 필요할진 모르나 구속력있게 신앙의 조항으로 삼는 일은 과도한 처사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무염시태와 몽소승천교의의 경우는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없이 전통과 일반적 신심에 근거하여 가톨릭 교황들이 결정한 교의들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의 원칙에 근거하여 단호하게 거부해야 할 것들임을 알게 되었다.

이어지는 3항에서는 마리아의 중재자권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로마가톨릭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은 어머니이기 때문에 다양한 호칭과 명예들을 마리아에게 돌렸는데, 그 가운데는 중재자(mediatrix)라고 하는 호칭과 특권도 포함되어 있다.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로서 지금도 하늘에서 가톨릭 신자들과 그리스도 사이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가톨릭은 굳게 믿고 있고, 이러한 신앙은 그들의 공식 교의적 문헌뿐만 아니라 마리아 공경 전례들과 성모송(Ave Maria)에 분명히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에 이러한 마리아의 중재자 사상은 성경적인 근거가 없으며, 명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상은(de facto)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 중보자되심에 해를 가하고 있다고 비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마리아가 마치 전능하고 편재하신 하나님처럼 예배나 기도처에 임재하여 찬송과 기도를 듣고 또한 중재를 해준다고 하는 것은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이사상(異思想)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특징들과 역할은 오로지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요 중보자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보내어주신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에게 돌려져야 마땅한 것임을 우리는 다시 한 번 분명하게 확인하게 된다. 마리아는 우리 인간들 중에 가장 탁월한 믿음의 헌신을 한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찬송해야 한다. 우리의 찬양은 오로지 삼위일체 하나님께만 드려져야 한다. 기도 역시도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은 삼위일체 하나님 밖에는 없다. 이 복음의 진리에 굳게 서서 어떤 다른 인간이나 인간 사상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대속의 죽음을 죽어 주시고, 지금도 하늘 보좌에서 온 세상과 교회를 다스리고 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고, 높이는 개혁신학도가 되어야 마땅할 것이고, 맡은 양무리들을 그렇게 지도해야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요약 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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