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가톨릭교회의 마리아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1

이상웅(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김순정 | 기사입력 2015/05/18 [09:36]

로마가톨릭교회의 마리아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1

이상웅(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김순정 | 입력 : 2015/05/1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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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총신대에서 조직신학을 교수하는 이상웅 박사가 「개혁논총」에 기고한 논문이다. 로마교가 주장하는 마리아론에 대해서 개혁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무엇이 오류인지를 비평하였다.

1 들어가는 말


청빈, 사랑과 화해를 강조하면서 100여시간도 채 머물지 않은 프란치스꼬 교황의 방한은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개신교에 대해서는 비판 일반도였던 대중매체들조차도 교황의 방한기간 내내 로마가톨릭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으로 소개하는 것을 우리는 지켜 보았다. 심지어는 개신교신학자, 목회자 그리고 평신도들 가운데도 교황의 방문을 적극적으로 환영하면서 개신교회와 가톨릭교회가 한 형제 교회이라고 하면서 교회일치에 별 문제가 없다라고 발언하는 이들을 보기도 했다. 이처럼 교황 방문의 여파로 가톨릭의 대사회적 영향력은 더 일취월장하게 되고, 그렇지 않아도 바닥을 치고 있는 개신교회의 영향력은 더욱 더 위축되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개신교회(특히 우리 개혁교회)는 심각한 고민과 대처 방안을 마련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으로 판단되어진다.
 
우리가 가톨릭을 비롯한 타종교에 대해서 무례하고 비상식적으로 대하는 것은 기독교적인 자세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신사적인 자세와 대처방식이 종교포용주의(religious inclusivism)나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로 빠지거나, 혹은 교리와 신학적인 일치 없이 단순히 일치운동을 추구하는데로 나가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로마가톨릭교회가 가진 교의들은 종교개혁자들에 의해서 여러 가지 면에서 비판되었고, 바울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은총의 신학에서 근본적인 이탈인 것으로 평가 되었기 때문에, 개신교회는 가톨릭과 개신교가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인식하고 가톨릭을 바르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특히 칼빈의 신학 전통을 따르고 있는 우리 개혁교회는 로마 가톨릭의 신학사상이 종교개혁시기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으며 한 형제 교회라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가톨릭의 실체를 바로 이해하고 가르쳐야 할 책임이 우리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게 절박함을 느끼면서 본 논문을 쓰게 된다. 우리가 신학활동하고 있는 21세기 초반에 서서 로마가톨릭교회를 개혁신학적 관점에서 평가하려고 할 때 여러 가지 신학적 차이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과 전통의 이중 권위, 로마교황권의 수위와 무류성, 연옥설과 면죄부(= 전대사) 문제, 세미 펠라기우스적인 구원관, 로마가톨릭교회만이 참교회라고 말하는가 하면(보수적인 진영)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을 통해서는 모든 종교를 포용하는 입장을 표명한 점 등을 몇 가지 실례로 들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분명한 차이점 가운데 빠트릴 수 없는 것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마리아론(Mariology)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바티칸 문헌 가운데 중요한『교회헌장』67항에 보면 가톨릭 교도권도 가톨릭에서 갈라진 형제들이 “동정녀의 임무와 특권”에 대해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힘써 막아야 한다라고 사제들을 향해 주의를 주고 있듯이 마리아론의 여러 교의들은 개신교와 가톨릭이 하나 될 수 없게 만드는 신학적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로마 가톨릭교회의 역사와 다양한 신학적 흐름들을 일별해 보면 마리아론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존재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다양한 흐름들을 교도권이 정리해 놓은 것이『교회헌장』제8장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 계시는 천주의 성모 복되신 동정 마리아”라고 할 수가 있다. 따라서 우리가 가톨릭의 공식적인 인가를 받은 마리아론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교회헌장』54항이 분명하게 밝히고 있듯이 이 문헌은 “마리아에 관한 교리를 제시하거나 신학자들의 노력으로도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문제들을 종결시킬 마음은 없다”라고 밝히고 있는대로, 공의회가 열리기 전까지 공식적으로 결정된 사항들을 종합 정리해주고 있기 때문에 이 문헌을 주의해서 살펴봐야 할 것이다.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로마가톨릭의 마리아론을 분석하고 비판하려고 하는 본고를 시작하면서 두 가지를 먼저 언급하려고 한다.
 
첫째, 논자는 본 연구를 진행함에 있어 일차적으로 로마 가톨릭에서 나온 공식문서들인『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과 2천년 어간의 가톨릭교회 공의회들의 결정들과 교황들의 회칙과 교서를 담고 있는『신앙규정편람』(Enchiridion Symbolorum)을 기본적인 참고자료로 활용하고, 몇 몇 마리아론 전문가들이 쓴 책들과 개혁주의나 복음주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비판한 자료들을 참고하려고 한다. 우리와 다른 사상에 대한 학문적인 평가는 원전에 근거한 정확한 이해를 근거로 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논자는 분명하게 인식하고 바빙크가 강조했듯이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을 기울여 볼 것이다.
 
둘째, 이어지는 본론을 크게 두 부분(2, 3)으로 나누어서 논구하려고 하는데, 이는 가톨릭의 마리아 전문가들에 의하면 마리아론의 기본 4대교의(마리아의 동정성, 마리아의 신적 모성(즉, theotokos),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즉, 원죄로부터 면제된 무염시태, 마리아의 승천교의)와 마리아의 주요한 역할인 중재자로서의 역할로 크게 양분하고 있기 때문에 이 구분을 따라서 논구하려고 하는 것이다. 로마가톨릭 내에서는 어느 정도 마리아론에 대한 정립이 되어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논의들을 담은 방대한 문헌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짧은 소고에서 충분한 논의를 담을 수는 없다는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면서 앞서 언급한 두 가지의 주요한 마리아론의 요강(要綱)을 바르게 이해하고,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평가하는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2 로마 가톨릭교회 마리아론의 4대 기본교의

우리는 먼저 로마가톨릭이 마리아론의 4대 교의라고 부른 주요 교의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4대교의라는 것은 가톨릭교회가 직접 정한 것이다. 2006년에 한국가톨릭교회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가 펴낸『올바른 성모신심』에 의하면 마리아에 관한 주요 교리는 하나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마리아 등 네 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마리아에 관한 교의는 가톨릭 교회의 성모공경에 대한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말도 하였다. 또한 마리아론의 권위자인 조규만 주교 역시 마리아론의 기본교의로서 이상의 네 가지 사항을 말한다. 따라서 우리도 편의상 이러한 4개 조항의 순서에 따라 고찰해 보려고 한다.

2.1 마리아의 신적모성(God-bearer)의 교의

첫 번째 교의는 동정녀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가톨릭은 “천주의 성모”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고,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을 낳은 자”는 표현을 즐겨 사용함)라고 하는 것이다. 조규만 주교에 의하면 이와 같은 명칭을 마리아에게 처음 사용한 교부들은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더, 아타나시우스 등이다. 그러다가 네스토리우스(Nestorius)에 의해서 이 호칭을 마리아에게 적용하는 것을 반대하고 “마리아는 단지 그리스도의 인성만 낳았으므로 그리스도를 낳은 자가 적합한 표기”라고 주장하다가, 알렉산드리아의 키릴과 논쟁에 불이 붙게 되었다. 그 결과 431년에 소집된 에베소공의회는 키릴의 입장을 받아들여 신경에 반영하게 되었다: “그 동일한 태에서 육을 따라 육과 연합하시사 출생하셨다고 말한다. 이처럼 거룩한 교부들은 거룩한 동정녀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두 본성교리에 대해서 집중하여 논의했던 451년 칼케돈공의회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인성을 따라서는 동정녀 마리아, 하나님의 어머니에게서 출생하셨다.”(et propter nostram salutem ex Maria virgine Dei genetrice secundum humanitatem)라는 구절을 신경 속에 포함시킴으로서 마리아가 하나님을 낳은 자 즉 하나님의 어머니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기에 이른다. 어찌되었든 간에 그후로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하는 호칭은 공식적으로 별 반대 없이 지속적으로 사용되어졌고, 지금까지도 가톨릭교회는 이 명칭(국내에서는 천주의 성모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함)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심지어는 종교개혁자 츠빙글리나 몇 몇 개혁교회 신앙고백서들 속에서도 이 표현이 사용되어지고 있다.

로마 가톨릭은 “하나님의 어머니” 혹은 “신적모성”교의가 의미하는 바는 “결코 마리아가 신성을 지녔다든가, 여신이라든가, 또는 그리스도의 신성이 마리아로부터 유래한다는 것과 전혀 상관이 없”다라고 단언한다. 조규만 주교는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이다.”라고 교의적 의미를 설명한다. 바오로 6세는 마리아에게 돌려진 이 칭호가 “최고 영광의 호칭”이라고 하면서 그 이유로 “바로 이 칭호에서 마리아의 모든 특권의 근거를 발견하기 때문”이라고 공표했다. 개혁주의교회는 에베소회의와 칼케돈회의 결정을 성경적이라고 받기 때문에 이 호칭을 그 의미를 견강부회하거나 잘못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인정할 수가 있을 것이다. 칼빈은 누가복음 1장 43절에 기록된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내 주의 어머니”(the mother of my Lord)라고 호칭한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하고 있다.

“in calling Mary the mother of her Lord, the unity of person in the two natures of Christ is intended, as if she had said, he who is born a mortal man in the womb of Mary is at the same time eternal.” 즉, 마리아가 잉태한 분이 단지 죽을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점에서 내 주의 모친 혹은 초대교회 신경이 채용한대로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호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톨릭교회가 이 용어를 근거로 해서 마리아에 대해 다양한 호칭들(공동구속자, 공동중개자)과 특권들과 다른 마리아 교의들을 추가해 나가기 때문에 경계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이 호칭에 근거하여 “예수의 인격적인 면모에서 마리아의 인격적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라고 비판해야 할 것이다.

2.2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semper virgo) 교의

로마 가톨릭이 공식적으로 결정한 마리아론의 두 번째 교의는 마리아가 예수님 출산 이전까지 뿐 아니라 출산 중에도 그리고 평생에 동정녀로 머물렀다고 하는 것이다. 사도신경으로부터 초대교회 신앙고백서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이시자 참 인간으로 화육하심을 분명하게 고백하기 위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라고 문구를 즐겨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고백은 이사야 7장 14절의 예언이나 마태복음 1장 16절과 같은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고백한 것이다. 하지만 성경 어떤 곳에서도 마리아의 영원 동정성을 말하는 곳은 없을 뿐만 아니라, 니케아 이전 교부들의 문헌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바빙크에 의하면 교부들 가운데 마리아의 평생동정성 교의에 관하여 언급한 이들은 에피파니우스, 히에로니무스, 닛사의 그레고리우스, 암브로시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였으며, 그리고 교회의 공식적인 교의로 채택되고 선포되어진 것은 553년에 모인 제2차 콘스탄티노플공의회에서 부터이다.
 
이 공의회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sanctam gloriosam semper Virginem Mariam)이라는 호칭을 공식적으로 결정했고, 649년에 열린 라테란공의회에서는 “평생 동정이며 거룩한 하나님의 모친이며…동정이 손상되지 않고 낳으셨으며, 출산 후에도 영원히 동정이시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는다면 파문을 받을지어다”라고 하는 결정을 내렸다. 후일에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도 이 교리를 부정하는 사람은 “성령의 권위에 대해 모욕하는 자”라고 정죄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 결정된 “평생 동정” 교의는 지금까지도 가톨릭의 공식적인 교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종교개혁기로 오면 취리히의 개혁자 츠빙글리(Zwingli)나 몇몇 개혁교회 신앙고백 문서들에서도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인정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 그러나 존 칼빈은 “신앙요리문답”(1538판과 1545년판에서) 속에 단순히 그리스도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고 언급한다. 주저『기독교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1536, 1559)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 교의를 받아들이는데 신중했다. 바빙크에 의하면 루터교회와 개혁교회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 교의를 “경건을 이유로 수용할 만하다 할지라도, 신앙의 조항은 아니며 그 어떤 경우에도 마리아에 의해 서약의 방식으로 취해진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어떤 면에서는 마리아론의 교의 가운데 이 평생동정교의를 크게 위험하지 않은 교의라고 판단했음을 알 수가 있다.
 
앞서도 지적했지만 마리아의 출산 이전 뿐 아니라 출산중과 출산이후 평생동안 동정녀였다고 하는 교의는 성경에서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은 예수님을 “첫 아들”이라고 호칭하거나(눅 2:7), 요셉은 마리아가 예수를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았다(마 1:25)고 명시하거나, 예수님의 형제들과 자매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마 13:55, 막 3:31-35).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설교되듯이 이 예수의 형제들과 자매들이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은 후에 요셉과의 사이에서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통해서 낳은 자녀들이라고 한다면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교의는 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교부시대에 “예수님의 형제들”의 정체성에 대한 논쟁이 지속적으로 있었다. 19세기의 유명한 신약학자 라이풋(J. B. Lightfoot)에 의하면 세 가지의 해석 가능성이 있다. 히에로니무스(= 제롬)는 예수의 형제들이란 그의 사촌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했다.
 
에피파니우스는 예수의 형제들을 요셉이 마리아와 결혼하기 이전의 결혼에서 낳은 아들들이라고 하는 견해를 주장했다. 그렇게되면 예수의 형제들 야고보와 유다 등은 예수의 의붓 형제들이 되는 셈이다. 마지막 세 번째로 헬비디우스는 예수의 형제들이란 예수가 태어난 후에 요셉과 마리아가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통하여 낳은 친 자녀들이라고 하는 해석을 내어놓았다. 바빙크의 판단을 좇아서 말하자면, 로마가톨릭교회가 취해온 일반적인 입장은 히에로니무스의 견해이고, 많은 개신교신학자들은 같은 입장을 취하든지 에피파니우스의 견해를 따라왔다고 한다.

또한 가톨릭 학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자기 어머니를 요한에게 맡기신 사건(요 19: 25-27)을 들어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의 한 증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또한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의 신학적 의미로서 “인간의 지고한 사랑과 충실성”으로 이해하고, 평생 동정성을 하나님께 대한 그러한 “온전한 봉헌”이라고 해석한다. 이러한 헌신은 교회론적 의미와 종말론적 의미도 지닌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우리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이러한 교의가 성경에 기초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신앙의 조항으로 받아들일수가 없다. 오히려 조규만 주교가 역사적으로 잘 지적한대로 313년 밀라노칙령이후 순교라고 하는 덕목이 새로운 덕목인 동정성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교의가 발전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직시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라고 사료된다.
 
개혁주의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고자되는”(마 19:12) 가능성도 인정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결혼제도와 부부간의 성을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다시 한 번 더 바빙크의 명쾌한 신학적 지적대로 우리 개혁교회는 “마리아의 평생동정성”에 대한 소신이 “경건을 이유로 수용할 만하다 할지라도, 신앙의 조항은 아니며 그 어떤 경우에도 마리아에 의해 서약의 방식으로 취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2.3 마리아의 무염시태(immaculata conceptio) 교의

로마가톨릭교회의 마리아론의 세 번째 기본 교의로 결정된 것은 바로 마리아의 무염시태(無染始胎) 교의이다. 1854년 피우스 9세의 회칙에 의해서 이 교의는 최종 결정되어 선포되었고, 제2차 바티칸회의에서도 아무런 이의 없이 통과됨으로써 이 교의는 가톨릭교회의 정통교의중 하나로 확정되었다. 무염시태란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가 잉태의 첫 순간에 원죄의 모든 오점으로부터 자유가 보존되었다는 것을 지지하는 교의”를 말한다. 피우스 9세는 1848년에 신학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무염시태 교의를 연구하게 했고, 그 결과 17명이 찬성하고 3명만 반대했다. 그리고 603명의 주교들에게 의견을 구하니 56명만 반대했다. 주교들의 90% 이상이 찬성했기 때문에 피우스 9세는 1854년에 회칙을 통하여 마리아의 무염시태 교의를 공식적으로 선포하였다. 피우스 9세는 이러한 교의가 “하나님에 의해 계시되었기 때문에 모든 신앙인들은 확고하고 신성하게 믿어야 한다”라고 하는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이 교의에 반대되는 어떠한 의견들이나 책도 공표하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내리기까지 했다.

이러한 무염시태 교의가 공식적으로 선포되기 전의 역사로 되돌아가 보도록 하자. 과연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이러한 결정에까지 이르게 된 것일까? 일단 가톨릭신학자들도 이 교의가 성경에 직접 언급된 적이 없다는 점과 역사가운데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켜 왔다는 점을 인정한다. 초대교부들 가운데는 이러한 사상을 직접적으로 주장한 이도 없었다. 물론 동정녀 마리아의 육신의 정결함에 대해서 말한 이들이 있긴 했지만 감히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마리아가 “원죄로부터 면제된 무염시태”를 했다고 하는 주장을 하는 초대교부는 없었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 조차도 이 교의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원죄와 모든 실행죄로부터 자유로운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기 때문에, 감히 마리아를 원죄에서부터 자유롭게 잉태되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이러한 생각은 아우구스티누스가 후기에 신학적 논쟁을 가졌던 펠라기우스와 그의 제자 코엘레스티우스가 가졌던 사상인 것이다. 심지어는 중세의 주요한 신학자들인 안셀무스, 끌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 대 알베르투스, 보나벤투라, 그리고 로마가톨릭이 오늘날 까지도 “그 신학자”로 존경해 마지 않는 토마스 아퀴나스 조차도 이 교의에 대해서 거부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는 점을 가톨릭학자들은 잘 인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대세에 대항하여 무염시태 교의에 대하여 치밀한 논증으로 변호를 시작한 사람은 바로 “마리아 박사”(Doctor Marianus)라고 불리우는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였다. 스코투스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완벽한 구속사역에 근거하여 마리아를 원죄의 오염으로부터 지켜내실 수 있었다”라고 주장하였다. 그후 토마스가 속했던 도미니쿠스 수도회와 스코투스가 속했던 프란체스코 수도회 간에는 이 문제를 두고 긴 논쟁의 기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16세기 반종교개혁운동으로 개최된 트리엔트 공의회는 마리아의 무염시태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결정하기를 유보했으나 샤프가 판단한대로 이후의 명시적 결정사항에 가깝다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다가 무염시태 교의는 마리아신심이 강했던 피우스 9세가 교황이 되자 교회의 공식적 교의로 확정되고 발표되기에 이른다. 앞서 언급한대로 1854년 피우스 9세는 교서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Ineffabilis Deus)을 통해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무염 시태, 無染始胎) 교의를 공식적으로 선포하였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규명하고 선포하며 정의한다.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권위와 은총으로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가 잉태의 첫 순간에 원죄의 모든 오점으로부터 자유가 보존되었다는 것을 지지하는 교리는 하나님에 의해 계시되었다. 따라서 모든 신앙인들은 확고하고 신성하게 믿어야 한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무염시태 교의를 선포한 교황 피우스 9세는 이 교의에 대해 달리 생각하는 자들에 대하여 “스스로 정죄된 자요, 믿음에 대하여 파선한 자요, 교회의 일치성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자이며, 따라서 법에 의해 형벌을 받아야 할 자”라고 하는 경고문을 첨가함으로써, 무염시태 교의에 대해서 어떤 반대의견을 말하거나 출판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제1차 바티칸 회의에서 신앙의 근본조항으로 결정된 데 에다가, 1858년에 프랑스의 루르드(Lourdes)에서 18회에 걸친 성모 마리아의 발현소식이 알려져 마리아의 무염시태 교의가 가톨릭신자들의 신심에 깊이 그리고 널리 파고들도록 만드는 커다란 효과를 발휘하였다. 그 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러서도 이 무염시태 교의는 가톨릭교회의 교의임이 재천명되었다.

“마침내 원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시어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는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치시고 육신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으로 올림을 받으시고, 주님께 천지의 모후로 들어 높여지시어, 군주들의 주님이시며(묵시 19, 16 참조)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자이신 당신 아드님과 더욱 완전히 동화되셨다.”

이렇게 공식적 교의로 자리잡은 마리아의 원죄로부터 면제된 무염시태 교의의 신학적 의미가 무엇인가하는 것에 대해 가톨릭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을 위해서 그 분의 거처가 될 수 있는 자격 조건”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의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이며,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감(sensus fidelium)에 근거하여 교의로 정해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심지어 조규만 주교는 원죄론 때문에 무염시태 교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론에 대해서 비판을 가한다. 그가 로마서 5장 12절을 잘못 번역하면서 원죄론에 대한 강력한 신앙을 가지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악영향을 행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창세기 3장의 타락기사는 현대성경학자들에 의해서 사실적 보도가 아니라고 하는 것까지도 주장한다.
 
역사적 개혁주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해석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은 물론이다. 비성경적인 견해를 입증하기 위하여 직접적인 전거가 될 수 없는 성경 구절들을 견강부회하여 해석하거나 무염시태에 반대되는 구절들은 비역사적인 것이라고 해체해 버리려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비성경적인 자세라고 할 수가 있다.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가 펠라기우스파에 대항하여 제시한 모든 인간이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며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만이 우리를 원죄의 사슬에서 건져낼 수 있다는 점을 성경적인 교리라고 믿고, 이 점에서 마리아도 예외가 아니라고 하는 점을 분명하게 말할 수가 있다. 가톨릭신자로 있다가 개신교로 개종한 윌리엄 웹스터는 무염시태 교의는 아무런 성경적 근거도 없고, 초대교회에는 이단들이 주장한 교리이며, 오직 근거가 있다면 소위 “무오한” 교황의 회칙이 있을 뿐이라고 비판하였다. 또한 가톨릭학자들이 자랑삼아 말하는 것처럼 마리아의 무염시태 신앙은 오래되고 널리 용인된 신자들의 신심에 바탕하고 있다라고 하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2.4 마리아 몽소승천(assumptio in coeli) 교의

로마 가톨릭 교도권은 마리아의 원죄로부터 면제된 무염시태 교리를 결정하는 것에 만족하지 아니하고 오랜 논의 끝에 피우스 12세는 1950년에 발표한 회칙『지극히 관대하신 하나님』(Munificentissimus Deus)을 통해 마리아의 몽소승천(蒙召昇天) 교의를 공식적으로 선포하기에 이른다. 이는 헤르만 바빙크가 1910년에 이미 “마리아의 승천 교리 조차 시간 문제일 뿐이다”라고 예견하기도 했던 일이다.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 이 교의를 선포해줄 것을 요청하는 신자들의 청원서에 대해 답변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마 피우스 9세를 예외로 하면 교황들 가운데 가장 마리아 신심을 널리 전파한 교황”이라고 평가되기도 하는 피우스 12세는 위에서 언급한 회칙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공표하였다: “원죄 없으시고 평생 동정이신 하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지상 삶을 마친 후에 영혼과 육신이 함께 하늘의 영광으로 들어올림을 받으셨다.”

피우스 12세는 이러한 마리아 몽소승천교의를 믿는 믿음이 “우리 자신의 부활에 대한 신앙을 더욱 돈독하고 적극적이도록 하는 것이며 우리의 희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몽소승천 교의를 하나님의 계시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 교의를 거부하거나 자발적으로 의심하는 자들은 “신적이며 가톨릭적인 믿음으로부터 자신이 완전히 떨어져나간 자”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하는 강한 어조의 경고문을 첨부하였다. 개신교신학자 피터 툰(Peter Toon)에 의하면 이러한 교의선포이후 가톨릭교회 안에서 “마리아에 대한 애착은 높은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라고 한다.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성모 승천에 관해 공식적으로 비준함으로써 마리아의 몽소승천 교의는 가톨릭의 정통 교의로서 자리를 확고하게 잡게 된다. 마침내 원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시어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는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치시고 주님께 천지의 모후로 들어 높여지시어 군주들의 주님이시며(묵시 19.16 참조)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자이신 당신 아드님과 더욱 완전히 동화되셨다.”

이러한 마리아의 몽소승천교의는 성경에서 명시적으로 가르친 적이 없고, 초대 교부들 가운데서도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의 교도권이나 학자들은 중세의 다양한 문헌들과 오래된 가톨릭신자들의 일반적 신심에 호소하면서 이 교의를 정당화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신학적 전거들을 들어서 이 교의를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마리아 몽소승천 교의는 성경적으로 정당화될 수가 없다. 사실상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중세의 위경적인 문헌들에서나 발견되지 초대 교부들이나 심지어는 토마스 아퀴나스에게서도 발견되지 않는 사상이다. 겔라시우스나 호르미시다스 같은 교황들은 그런 문헌들을 이단적인 문헌으로 정죄한 바가 있다. 따라서 마리아 승천교의는 성경적인 교의가 아니라고 우리는 반박해야 한다. 우리가 마리아의 마지막 생애에 대해서나 죽음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 앞서 마리아의 무염시태 교의에서 반박했듯이 마리아가 우리 모든 인간과 동일하고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죄인으로서 원죄를 타고 났으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임을 근거로 한다면 우리는 마리아 역시도 모든 아담의 후손들과 동일한 결국 즉, 육체적 사망과 더불어 어떤 형태이든지 매장되어 그 육신은 영광스러운 부활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할 수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상에서 로마 가톨릭 마리아론의 4대 기본교의에 대해 살펴보았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이고, 평생동정녀이고, 원죄로부터 면제된 무염시태를 했으며, 그리고 또한 죽은 후에 영뿐 아니라 육신도 하늘로 들려올려졌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앞서 논의한대로 하나님의 어머니 혹은 하나님을 낳은 자라는 칭호는 에베소공의회(431년)와 칼케돈공의회(451년)에서 결정된 사항으로 개신교에서도 받아들이는 칭호이지만, 그러한 칭호를 사용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인간의 몸을 입었을 뿐 아니라 그분이 참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된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마리아가 평생 동정녀였는지 아니었는지를 우리는 역사적으로 확인할 길이 없으며, 오히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형제자매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여러 본문들을 신뢰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길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마리아의 무염시태나 몽소승천교의는 전혀 성경적인 근거도 없을 뿐 아니라 초기 교부들의 지원도 받지 못하는 것들로서 로마가톨릭신자들의 오래된 성모신심에서 비롯되어 가톨릭 교도권이 교회의 교의로 결정하고 권위를 부여한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윌리엄 웹스터는 자신의 가톨릭교회 비판서에서 마리아에게 무죄함(무염시태)과 하늘로 들려올려짐과 같은 특권을 부여한 것은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간의 병행을 추구해 온 카톨리시즘의 결과임을 잘 밝혀주고 있다.(계속)
 
요약 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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