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남긴 선진들(7) / 조만식 장로편

송삼용 | 기사입력 2008/12/03 [18:11]

빛을 남긴 선진들(7) / 조만식 장로편

송삼용 | 입력 : 2008/12/03 [18:11]

6. 참는 것도 진정한 용기다

 

자기의 기능, 노력, 재산, 기타 무엇이든지 사회 조그마한 공헌, 조그마한 비익(裨益) 이 될 것이면 이것을 제공하고 사화에 봉사하자. - 고당 조만식<1935.10. 삼천리>

1907년 미국에서 귀국한 도산 안창호 선생은 신민회, 대성학교 설립 등을 위해 서울과 평양 등에서 여러 차례 연설을 했다. 도산은 탁월한 웅변력으로 수천 인파의 마음을 사로잡곤 했다. 당시 숭실 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고당은 도산의 연설 때마다 찾아 다니며 귀를 기울였다. 청년 조만식의 가슴 속에는 이미 하나님과 민족을 위해 일하고자 하는 소명에 불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민족 지도자의 연설을 들을 때마다 그 결심을 늘 새롭게 했다.

조만식은 연설장 맨 앞에 앉아서 깨알같은 글씨로 수첩을 가득 메꿨다. 민족 지도자였던 도산의 어록 한마디 한마디에 자신의 갈 길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청년 학생들에게 준 어록들은 오랫동안 조만식의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대는 매일 5분씩이라도 나라를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청년이 다짐해야 할 2가지 과제가 있다. 첫째 속이지 말자. 둘째 놀지 말자. 나는 이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청년은 스스로 생각할 때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 농담이라도 거짓말을 말아라, 꿈에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통회(痛悔)하라.”

이런 연설들은 청년 조만식의 가슴을 불태워 주었다. 조만식이 일본 유학을 떠나게 된 것도 그런 민족 지도자들의 영향 때문이었다. 장차 하나님과 조국을 위해서 일하려면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유학길에 올랐던 것이다. 유학 중에는 장차 민족을 위해서 봉사하려면 실력을 배양하는 길만이 최상의 길이라는 한가지 목표를 두고 학업에만 전력했다.

1910년 조만식이 일본 중학 중 2년 만에 귀국해서 잠시 고향에 머무르고 있을 때 경술 국치의 소식을 들었다. 그해 8월 29일 조선 황제는 일제의 강압에 못 이겨 합병 조서에 조인하고 말았다. 그는 치욕스런 합병의 날 비분을 참지 못하여 무슨 실력 행사를 해야겠다는 충동을 받았다. 한편 경술 국치의 합병이 발표되자 평양 시내의 일본의 거류민들은 축하 행사로 들떠 있었다. 그때 자신들의 신(神)을 모신 가마를 멘 축하 가장 행렬이 고당의 집 근처까지 몰려왔다. 이에 비분강개한 고당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축하 행렬을 향해 뛰쳐 나가려고 했다.

“저 넋빠진 사람들의 미친 짓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

조만식은 무심코 구경하고 서 있는 동포들에게 경술국치의 치욕을 호소하면서 합방 반대의 열변을 토할 요량이었다. 기회를 봐서 축하 행렬을 들러 엎으려는 결심으로 일어선 것이다. 그러자 부친 조경학이 아들의 무익한 희생을 걱정하면서 팔을 붙잡고 말했다.

“그자들이 미쳤다고 너까지 날뛰어서는 안된다. 이럴 때 일수록 냉정히 꾹 참는 것도 진정한 용기다. 지금 너 혼자 맨손으로 날뛰어도 얻을 것이 없다.”

아버지의 간곡한 권유에도 조만식은 격분을 참지 못해 당장 집을 뛰쳐나갈 기세였다. 그의 얼굴에는 비장한 각오가 서려 있는 듯했다. 그러자 가족들이 총 동원되어 조만식을 붙들었고, 아버지는 계속 말을 이었다.

“나라는 이미 망했는데 너 혼자 나서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더구나 싸울 적은 저 거리의 불량배 일본 거류민이 아니다. 네가 정말 싸울 때와 장소는 다른데 있다. 그러니 지금은 참아야 한다. 지금은 참아야 해 ---.”

그 순간 부자는 꼭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나라 잃은 설움에 복받쳐 흘러나온 눈물이었다. 조만식은 양친의 간곡한 설득으로 통분한 마음을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 고당은 분을 참지 못하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는 한 밤 중에 일어나 밤이슬을 맞으며 밤길을 걸었다. 여기 저기에서 풀벌레들의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한참 걸어서 나즈막한 뒷산의 바위에 걸터앉아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둥그런 보름달에서 빛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는 조용하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제가 장차 조국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소서. 앞으로 하나님과 민족을 위해서 일하고 싶습니다. 저를 인도해 주소서.”

한참 후 기도를 마치자 한가닥 소망이 생겼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앞으로 실력을 쌓아서 조국의 국권을 되찾는데 일조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때 몇 년 전 숭실 중학교 시절에 들었던 도산 선생의 연설이 불현듯 떠올랐다.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

그런 어록이 떠오르자 조만식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신이 낙망하면 이 민족도 죽게 된다는 생각이 들자 낙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생각되었다. 지금 비록 나라 잃은 치욕을 맛보고 있지만 우리 조국은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어떤 경우도 낙망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조만식은 새벽 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들을 바라보면서 조국의 미래를 그렸다. 자신의 비전도 새롭게 했다. 그렇게 기도와 묵상으로 한밤 중에 두어 시간을 동산에서 보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조만식은 정신적으로 갈등되거나 번민의 순간에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신앙을 쌓아갔다. 절망에 처할 때마다 기도는 언제나 그에게 힘을 공급해 주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새벽 이슬을 맞으면서 집으로 내려온 조만식은 그날 새벽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해 두었다.

“오늘날 이 망국을 설욕하는 길은 나 하나의 희생에 있지 않다. 나 한사람의 극한적인 항거보다는 실력을 충분히 배양한 뒤에 온 국민과 함께 보조를 맞춰 싸워 나가는 길 밖에 없지 않는가. 그러지면 일시적인 울분을 억제하고 계속 학문의 탐구에 열과 성을 기울여야 한다”

조만식은 그제야 부친의 간곡한 만류를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은 참아야 한다고 눈물 뿌리면서 하소연하던 부친의 선견지명도 깨닫게 되었다. 아직은 자신이 나설 때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 것이다. 조만식은 그날 이후 일생 동안 참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는 것을 잊어본 적이 없다. 그런 인내력은 일제와 싸우면서 보여주었던 무저항, 비폭력 정신의 바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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