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남긴 선진들(5) / 조만식 장로편

빛을 남긴 선진들(5) / 조만식 장로편

송삼용 | 기사입력 2008/12/03 [18:06]

빛을 남긴 선진들(5) / 조만식 장로편

빛을 남긴 선진들(5) / 조만식 장로편

송삼용 | 입력 : 2008/12/03 [18:06]

4. 공부해서 하나님의 일 하겠소

 


모든 유혹을 멀리하고 대원(大願)을 품어 실행있는 생활을 하여야 하겠다.

- 고당 조만식<1935.8.27-30. 금강산 장안사 강연>

기독교 신앙에 입문한 한 후 고당은 한정교를 따라 평양 장대현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 무렵 장대현 교회의 교세는 주일 낮에 1천 5백명을 육박할 만큼 큰 교세였다. 처음으로 교회당에 들어 선 순간 조만식은 거대한 군중들의 분위기에 압도되고 말았다. 당시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희한한 모습에 자신의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한 서양인의 인도에 따라 열광적으로 노래하다가, 다시 온 무리가 함께 부르짖기도 하는 광경에 조만식은 얼빠진 사람처럼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어렸을 때 종종 보았던 그 서양인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교회당에 처음 발을 딛었던 날 조만식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부르짖는 기도 소리가 귓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열광적인 분위기를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도 무언가에 끌려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뒤척이면서 꼬박 밤을 새우다가 새벽쯤에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오후 조만식은 한정교와 만나 전날 교회당에서 받은 느낌들을 이야기했다. 한정교는 기회를 놓칠세라 조만식에게 신앙 생활을 본격적으로 할 것을 권면했다. 조만식은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마음 속에서 누군가 자신을 이끌어 가는 듯한 느낌 때문이었다. 조만식은 한정교의 권면에 따라 수요일 저녁 예배와 토요일 저녁 성경 공부 모임에 참석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렇게해서 신앙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조만식의 생활에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신앙 생활을 시작 후부터 조만식은 방탕한 생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당시 조만식은 22세의 나이였지만 평양의 상계에 이름을 날릴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놀기를 좋아하고, 대주가(大酒家)로 용맹을 떨칠 정도였다. 어렸을 때는 골목 대장이요, 날파람(태권도와 비슷한 격투기으로 호신용 무술의 일종)의 명수로 소문나기도 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고당은 자신의 술고래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증언했다.

“연일 술을 그렇게 마셔대니 혹 내 몸이 상할까 보아 어머님이 어찌나 염려를 하셨는지 몰랐디요. 그때 받은 어머님의 사랑이 일생을 두고 골수에 사무칠 정도로 깊었디요”

그렇게 매일같이 마셔대던 술을 끊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었다. 하지만 고당은 한번 결심하며 어떤 습관과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굳건한 의지의 청년이었다. 거기에다 새롭게 접한 신앙의 힘으로 과감하게 술을 끊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술을 끊은 후 아무런 유혹도 없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술을 끊은지 30년이 지난 다음에도 여전히 무서운 유혹이 찾아오더라고 자신이 직접 회상한 적이 있다.

“사람의 습성이란 정말로 무섭더군요. 글쎄 내가 술을 끊은 지가 이미 30년인데 오늘 같이 날씨가 흐리터분하거나 경찰의 단련을 심하게 받거나 하면 속이 컬컬헤서 이렇게 술생각이 나거든요. 그 술 생각을 억제하느라고 지금 이렇게 손뼉을 치면서 테이블을 도는거요. 하하하 ----.”

고당이 청년기에 받았던 유혹들은 오늘날 우리 시대의 신앙인들에게 다가온 것들과 하나도 다를게 없었다. 신앙의 길로 들어섰지만 세상에서 누렸던 향락의 달콤함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세속의 습관들이 한순간에 정리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고당은 육신의 정욕이 솟구칠 때마다 기도로 자신을 이겨냈다. 안목의 정욕을 피해가기 위해서 언행심사를 철저히 다스리기도 했다. 이생의 자랑을 포기한 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 몸부림도 쳤다. 세상의 유혹이 몰려올 때마다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렇게해서 고당의 마음 속에 자라난 신앙의 힘은 어떤 유혹이라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이 되었다.

장대현 교회의 신년 사경회를 통하여 큰 은혜를 체험한 후 3월이 되자 고당은 숭실 중학교에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다음날 고당은 먼저 아버지께 공손히 말씀드렸다.

“아버지 저 내일부터 숭실 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겠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반색하면서 답했다.

“그랬으면 사람구실하게. 나는 암만해도 네 소리가 믿어지지 않는다”

결국 몇차례나 부탁하고나서 겨우 다짐을 받아냈다. 그날 밤 지금까지의 술동무, 화류계의 동무들을 불러 전별 파티를 열었다.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술자리를 같이한 후 세상과 결별하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날 저녁 고당은 친구들과 인연을 끊겠다면서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다음날 입에서 술냄새가 나고 발걸음이 갈지(之) 자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고당은 그길로 배 박사를 만나 입학을 요구했다. 배 박사는 주정뱅이 같은 행색을 하고 찾아온 고당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말했다.

“공부는 무엇하려구 하겠나”

마치 그런 몰골을 가지고는 숭실학교에 입학할 자격이 없다는 식이었다. 그러자 고당은 당당하게 말했다.

“공부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겠소”

고당의 답변에 감동한 것인지 배 박사는

“좋소! 그렇게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하시오”

하면서 고당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렇게해서 고당은 1905년 23살의 만학도로서 숭실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인간적으로 사업에 실패한 후 실의에 차 있을 때 신앙 생활과 학업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성공의 문이 열린 것이다. 이는 인간의 실패가 곧 하나님의 성공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더욱이 아직 신앙이 깊지 못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위해서 공부하겠다는 당찬 대답은 예사로이 받아넘길 일이 아니었다. 이미 그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은 소망이 싹이 트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민족의 암흑기에 빛을 비추는 지도자로 만들기 위해 고당으로 하여금 숭실의 문을 두드리게 하셨던 셈이었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보겠다는 어렴풋한 비전으로 시작한 숭실의 생활은 그의 운명을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그곳에서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심을 배웠고, 하나님을 섬기는 철저한 신앙도 쌓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꿈이라도 마음에 간직하고 있으면 반드시 이루는 법이다. 문제는 어떤 비전을 갖느냐가 중요하다. 비전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 준다. 하나님을 향한 비전은 헛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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