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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신학의 전통과 계승을 버린 교단정치꾼들은 각성하라
박형룡 박사와 함께 교단신학을 보수한 51인 신앙동지회인 선배들 반만 하라
기사입력: 2014/07/31 [23:40]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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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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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룡 박사는 1972년 총신대학교 교수를 은퇴할 때까지 정치적 후원자인 신앙동지회와 함께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다. 교단 신학교는 정치적인 문제로 휘말릴 개연성이 많은 곳이다. 제아무리 똑똑하고 위대한 교수일지라도 정치적 후원자의 도움이 없이는 인정사정없이 몰아치는 교단의 정치적인 폭풍으로부터 견뎌 낼 수가 없다. 박형룡 박사는 51인 신앙동지회를 통해서 교단 내 정치적인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고 볼 수 있다.
 
신앙동지회란 1946년 조선신학교내에서 정통을 사랑하는 학생들이 자유주의 신학에 반대한 신앙동지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좌경화된 조선신학교 교수들의 신학의 부당성을 총회에 진정서로 제출하였다. 그 진정서에 서명한 학생들이 51명이었다. 그래서 '51인 신앙동지회'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신앙동지회'라는 명칭으로 체계화된 시기는 51인 신앙동지들이 박형룡 박사를 따라 부산 고려신학교에 편입한(1947년 10월 14일) 이후인 1947년 11월 25일이었다. 이날 정식 '신앙동지회'가 조직되고 정관이 통과되었다. 이미 1946년부터 '51인 신앙동지회'라는 명칭과 함께 '서울 조선신학교 정통을 사랑하는 학생'으로 불리어졌다.
 
특히 「대한예수교 장로회 제33회 총회」(1948년) 진정서에는 51인의 서명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51인이 조선신학교를 자퇴하고 나올 때 조동진이 함께 나와 적극적으로 뜻을 같이 했기에 이때로부터「52인 신앙동지회」라고 불리우기도 했다. 이 신앙동지회는 박형룡 박사와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총신과 교단의 보수신학을 지켰다.
 
박형룡 박사는 1972년 총신에서 은퇴 후 예장 합동 교단의 정치권력의 구도가 서서히 재편되기 시작하면서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박형룡의 총신 교수 은퇴 전까지 자신의 든든한 정치 후원자이며 교단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던 신앙동지회 회장인 정규오 목사를 비롯한 호남과 황해 세력이 영남과 평안세력에 의해 침식당하고 있었다.
 
이때로부터 교단의 실력자인 이영수 목사의 독주가 시작되었는데, 이후 이영수 목사는 15년이란 긴 세월 동안 그 기반이 단단히 다져짐으로 누구도 이에 대항하여 무너뜨리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해마다 돌아오는 총회의 임원 선거는 언제나 이영수 사단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때로부터 권력의 소수파로 전락된 정규오 사단은 구세력으로 명명되면서 교단의 정치권력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김요나와 김남식은 「믿음의 사람, 효암 백남조」라는 책에서 그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술한다 : “1972년 박형룡 박사의 은퇴 이후 김희보 교수를 학장으로 내세운 신세력에 대해 교단 권좌에서 밀려난 구세력들은 그 후 7년 동안 갖가지 정치적 비리와 불법을 들추어 내면서 종래 총신의 보수신학이 변질되어 자유화되었다며 물고 늘어졌다.”
 
박형룡 박사는 1978. 10. 25 오전 7시에 소천하였다. 박 박사는 평양신학교, 만주신학교, 고려신학교, 총회신학에서 교수로, 교장으로, 학장으로 50여년 동안 신학교육, 특히 조직신학으로 학적 공헌이 많은 총신대학명예학장이신 박형룡 박사가 78년 10월 25일 오전 7시 서울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하였다. 향년 82세. 장례는 27일 오전 10시 30분. 총신대학교 강단에서 총회장으로 거행되었다.
 
박형룡 박사 소천 후 1979년 1월 구세력인 정규오 목사는 보수신학의 전통을 잇는다는 명분으로 방배동에다 총회신학교(개혁측)란 학교를 세우고 교장에 박형룡 박사의 영식 박아론을 추대하여 운영한다. 그러다 2005년 9월 제90회 총회에서 다시 합병하게 되었는데, 1979년 분열된 이후 26년만의 일이었다.
 
제90회 총회(2005년 9월 27일-9월 30일, 대전중앙교회당)에서 합동되었다.
 
<합동선언문>은 다음과 같다;
 
“이 땅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된 지 120년 동안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한국교회는 놀라운 성장을 하였고 세계 복음화 사역의 중요한 부분을 감당하여 왔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분열과 나눔이라는 아픔도 있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을 힘입어 1979년의 분열을 극복하고 지난날의 실수를 뉘우치면서 한국교회 앞에 하나되는 교회의 참 모습을 보이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다짐한다. 하나, 우리는 개혁주의 보수신학을 우리의 신학적 바탕으로 하나님 중심, 성경중심, 교회중심의 신앙의 토대를 굳건히 한다. 하나,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원리에 의한 장로교회의 정치 체제와 그 역사를 계승한다. 하나, 우리는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사역을 극대화함으로 이 땅의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하나, 우리는 바른 신학과 신앙으로 이 세상을 향해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가 되는 새 역사를 이루었다. 이제 분리보다 일치를, 정죄보다 용서를, 분산보다 협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선포하며, 개혁주의 신학의 아름다운 정통을 계승하기 위하여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돌보심을 간구한다. 오직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고전10장 31절)
주후 2005년 9월27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제90회 총회 총대 일동.
 
신학적으로 교단이 위태로울 때마다 선배들은 성경적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을 지켜냈다. 현 총회를 돌아보면 과연 이러한 성경적 보수신학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자들이 교단을 섬기는 자들 중에 과연 얼마나 되는가? 총신출신이라고 자랑하지 말고 성경적인 개혁신학을 자랑하자. 말로만 개혁신학을 부르짖으며, 자신들의 교권을 유지하기 위해 개혁신학을 이용하지도 말자.
 
교단의 신학과 신앙, 정체성을 위해 염려하는 교단의 원로들이 있는가? 원로들은 연합과 일치라는 이름으로 교리의 순결성을 버리고 교단의 정체성를 버리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130년 동안 지켜온 성경적 신학의 보수성을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심각해하게 고민해야 한다. 더 이상 원로에게 가서 자문을 받을 이유가 사라졌다. 자신들의 노후 대책용으로 사용한 일치와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교단이름을 사용하며 교단 대표행세를 하고 있지는 않는지 역시 심각하게 생각해 보자. 그러나 그 중에서도 존경받는 원로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제99회 총회는 이 부분을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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