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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총신에서의 “조직신학”논의- 회고와 전망 2
글/ 김광열(총신대학교 조직신학)
기사입력: 2014/04/09 [10:25]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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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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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총신대학교와 신학대학원에서 오랫동안 조직신학을 교수한 김광열 박사가 「신학지남」 2013년 겨울호에 기고한 것이다. 한국개혁신학의 요람이라 불리는 총신대학교의 조직신학에 대한 회고와 전망을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한국교회가 나아갈 바를 찾고자 요약하여 소개한다. 

A. 총신 초기의 조직신학: 이율서와 구례인(Crane)

1. 이율서(李律瑞, W.D.Reynolds)

총신의 역사가 시작되던 초기에 신학적 흐름을 형성하며, 신학사상의 기초를 놓은 이들을 손꼽게 될 때에, 우리는 총신 초기의 조직신학자들로서 이율서 박사와 구례인(J.C.Crane)박사를 들게 된다. 이율서박사는 1892년 안수받은 후에 6명의 동료들과 함께 미국 장로교 한국 선교부를 설립하였다. 그 후 한국에서 45년간의 선교사역을 감당하면서, 순회선교사, 성경번역가로 일했으나, 그 중에 우리가 초점을 맞추려는 부분은 그의 신학교 교수사역과 그러한 교수 사역에 사용하기 위하여 그가 저술한 조직신학서이다.

간하배에 의하면, 총신에서 조직신학교수로서의 그의 사역은 1924년부터 1937년까지 14년 동안이 된다. 그런데 총신의 재직기간 동안, 그는 중국인이 저술한 조직신학서를 교재로 활용하게 된다. 그 저서는 남경신학교와 천진신학교에서 교수사역을 하였던 차유밍교수의 조직신학서로서, 전6권으로 구성되어있다. 제1권은 기독교 험증론(Christian Evidence), 제2권은 신론(Doctrine of God), 제3권은 인죄론(Anthropology or Origin of Man and Sin), 제4권은 구원론(Soteriology), 제5권은 성령론(Pneumatology), 제6권은 내세론(Eschatology)이다.

이 조직신학서는 미국의 개혁주의 신학자였던 C. Hodge의 Systematic Theology와 그의 아들 A. A. Hodge의 Outlines of Theology, 그리고 침례교의 보수적인 신학자였던 A. H. Strong의 Systematic Theology의 내용을 토대로 하여 집필된 책이다. 이렇게 볼 때, 한국교회는 그 초기에서부터 개혁주의 신학이 뿌리내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눌서의 조직신학서가 1938년까지 신학교교단에서 사용되었던 점을 고려해 볼 때, 그 기간 동안에 한국교회의 기초를 놓았던 1세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을 포함한 주의 일군들의 신학적 사고의 틀과 교리체계가 개혁주의적 전통의 뿌리 위에 든든히 놓여졌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차유밍의 조직신학서의 신학내용을 고찰하려할 때, 사료 확보의 어려움 때문에 그 분석의 한계가 있는 것은 아쉬운 현실이다. 그러나, 제한된 자료 안에서 평가해본다면, 이눌서가 교단에서 사용한 조직신학서에 대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지적해볼 수 있다. 먼저, 그것은 차유밍의 조직신학서로서, 미국장로교회의 정통-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조직신학서들에 의존하여 집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아무런 주관없이 그대로 옮겨놓기만 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자기 나름대로의 신학적 내용 내지는 강조점을 제시하려는 저자의 창조적 성격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사실은 그의 책의 구조만을 분석해보더라고 금방 확인될 수 있는데, 예를들어, 차유밍이 자신의 책을 쓰기위해서 기초적 신학서로 활용한 A. H. Strong의 조직신학서와 비교할 때에도, 그 차이는 드러난다. Strong의 조직신학서는 전체 8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일반적인 조직신학의 전개 순서를 따라, 1부에서는 서론, 2부-4부까지는 신론을, 5부는 인죄론을, 6부는 기독론/구원론을, 7부는 교회론, 그리고 8부는 종말론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차유밍의 책은 제1권을 기독교험증론이라는 주제로 서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4권의 구원론과 제6권의 내세론 사이에 성령론(Pneumatology)라는 새로운 주제를 취급하는 제5권을 삽입하고 있다. 더욱이 차유밍이 취급하는 성령론은, Strong이 그의 조직신학서 중에서 신론에 해당하는 제4부의 2장에서 삼위일체론을 논할 때 언급되는 ‘성령의 인격성’정도의 내용이 아니라, ‘성령의 세례’에 관한 논의인 것이다. 靈洗의 필요성, 特恩, 그리고 증거들을 논한 다음, 영세가 기독교도가 되는 필수요건임을 강조하는 내용들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유밍 나름대로의 독특한 강조점이 제시되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둘째로, 차유밍의 책은 성경관에 있어서, 정통개혁주의 신학에 입각한 견해를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성경의 정경성에 대한 반대이론들을 일일이분석하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 “..... 전시에성경의착오가 있었다하였음은 성경의 착오가 아니오, 이에 사람의 의견이 착오됨이며 혹은 초사와 번역의 착오뿐이라. 진실로 성경의 진실가빙함은 성서와 영감으로 말미암았음이니, 세대는 가고 옴이 있으되 성경은 만고에 상신할지라”. 이처럼, 차유밍의 신학서는 성경관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책은 신적 권위를 지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에 기초한, 종교개혁자들의 성경유일주의 사상(Sola Scriptura)을 한국교회 안에 깊이 뿌리박게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종성교수에 의해서도 이 사실은 인정되고 있는데, 그에 의하면 그러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관은 초기의 한국교회에 뿌리를 내리게되어, 한국교회로 하여금 역사 속에서의 어떠한 환란과 신학적 혼란 속에서도 말씀에 기초한 신앙 위에서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해주었다고 지적했다.

그 외에, 우리는 칼빈주의 예정교리도 차유밍의 조직신학서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하나의 개혁신학적 특징임을 알 수 있다. 에베소서1:4,5이나 살후 2:13등의 구절들을 중심으로, 차유밍의 조직신학서에서 강조되었던 예정교리는, 바로 창세 전에 하나님의 주권적 뜻에 의해서 신자들이 택함을 받았다는 칼빈주의 예정론이었다. 그렇다면, 그 책을 중심으로 강의한 이눌서교수에 의해서 한국장로교회에 속한 교회들과 성도들이, 그 초기에서부터 예정교리로 무장할 수 있게되었던 것이라고 추론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차유밍의 조직신학서의 기초를 제공했던, Strong이나 Hodges 부자(父子)의 조직신학서들이 미국의 칼빈주의 장로교 전통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고전적인 책이라는 사실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끝으로, 차유밍의 조직신학서에서 지적될 수 있는 또 하나의 부분은, 구원의 현재적 중요성에 대한 가르침이다. 때때로 한국교회, 특히 보수교회들은 그 역사의 초기에서부터, 내세주의적인 신앙으로 나아갔다고 지적되곤 한다. 교회 안에서의 열렬한 기도생활, 성경암송, 전도생활 등은 열심이나, 대사회적 의무나 삶에 있어서의 신앙인의 책임을 간과하는 신학과 신앙이 자리잡았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좀 더 객관적인 자료들에 근거한 균형잡힌 평가로 재고되어야 한다. 물론, 한국선교 초기에 선교사역의 효율성을 위해서, 교회 안에서의 정치적 활동을 일체 금했던 적도 있었고, 정치적 독립의 소망이 사그러져갈 때 성도들의 관심을 종교적 소망으로만 집중하도록 전환되었던 시기도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와 함께 간과해서 안될 부분은, 1919년의 삼일운동에서의 기독교신앙의 역할과 의의에 대한 평가이며, 또한 차유밍의 조직신학서에서도 강조되고 있는, 복음의 현재적 의의를 포함하여 설명되는 구원이해이다.

구원에 대한 그의 설명 중에서, 우리는 그것이 단지 “영적”생활에서만의 복음이 아니며, 따라서 영적 영역에서만의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영역과 아울러 육적 영역 모두에 관계되는 복음이며 구원임을 강조함으로써, 신자의 현세생활의 중요성을 제시했다는 사실을 발견케된다. 그의 조직신학서가 1931년에 번역되어 이눌서교수에 의해서 평양신학교에서 교수된 사실을 고려할 때, 우리는 한국교회가 그 초기에도 -비록 적은 규모였을찌라도- 사회봉사 내지는 사회참여에 대한 관심이 있었으며, 또 실제로 가르쳤으며, 그러한 삶을 실천하려는 진정한 노력을 시도해왔었다는 사실을 간하배교수와 함께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초기의 평양신학교나 한국교회의 신학과 신앙의 성격을 전적으로 내세주의적이였다고만 비판하는 지적들은 재고해야할 것이라고 본다. 그들이 삼일운동의 실패 등을 통해 정치적 좌절을 겪고서, 정치적 참여에 대한 노력보다 순수한 종교적 신앙생활의 방향으로 전환된 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평양신학교의 신학이나 교육방침 등이 근본적으로 사회에 무관심한 방향으로 자리잡았었다거나, 사회적 책임의 부분을 전혀 간과했었다고만 평가하는 것은 편향된 해석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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