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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해석/설교
김창훈, 언약(신학)의 관점에서 본 설교의 역할
강단에서 언약신학에 충실한 메시지가 선포되어야!
기사입력: 2013/07/30 [17:52]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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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훈/정리 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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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총신대신학대학원 설교학 김창훈 교수가 「신학지남」 2013년 여름호에 실은 글이다. 이 논문을 요약하여 실었다. 


들어가면서

성경 전체에 흐르는 중요한 그리고 대표적인 신학적 주제 가운데 하나는 언약이다. T. McComiskey는 “언약은 성경의 구조를 바르게 이해하는데 기초와 바탕”이 되고, “전체 구속사를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하였다.

M. Horton은 언약은 “성경의 믿음과 행함의 건축학적 구조를 함께 지탱하는 버팀목과 기둥이요....(언약은)성경의 놀라운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문맥을 제공해 준다”고 하였다. Peter de Jong은 언약신학은 “단순히 어떤 특수한 교리나 교회의 가르침 중의 하나로 보기보다는 조직신학에 등장하는 다양한 교리들을 조정하고 통제하는 기본적 형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고 하였다. Meredith Kline은 “구약 성경을 재평가하는데 있어서 지난 25년 동안 가장 중요한 업적은 사해사본의 발견이 아니라 고대 근동의 국제 조약문서의 빛 아래서 밝혀진 구약의 언약에 대한 발견이다”라고 하면서 언약신학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이와 같이 성경 전체 구조의 기초요, 중심주체라고 할 수 있는 언약(신학)의 관점에서 설교의 역할을 관찰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판단된다. 특별히 본고에서는 언약신학의 관점에서 한국교회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과 부흥을 위해 한국교회 설교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와 더불어 성시화 운동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평가를 하고자 한다. 

 
I. 성경에 나타난 언약의 특징

언약의 관점에서 설교의 역할을 제시하기 위해 먼저 성경에 나타난 언약의 의미와 특징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특히 언약개념은 주로 구약성경에 나타나 있기 때문에 구약 성경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나타난 언약의 기본적 의미

많은 학자들이 언약의 기본적 의미를 밝히기 위해 다양하게 노력해 왔다. 그러나 아직 그 말의 기원에 대해 일반적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성경에 등장하는 용례에 의해 그 의미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먼저 기본적으로 언약은 ‘관계’에 대한 언급 없이 그 의미를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경에서도 거의 예외 없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 또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언약이 맺어진다. 언약은 대개 “-와 연관되어,” “-와 함께,” 또는 “-사이”등과 같은 용어와 함께 나타난다. 따라서 언약은 본질적 면에서 관계성에 근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언약은 항상 두 당사자 사이의 ‘단순한 동의나 협약’이 아님을 알 수 있다. Moshe Weinfeld는 그 속에 항상 의무, 책임 또는 부과됨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 언약은 두 당사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따라서 성경에서는 자주 언약과 맹세가 하나의 쌍으로 등장하기도 한다(창 26:28; 신 29:12,14,21). 요약하면 언약은 기본적으로 의무와 함께 맺어지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2.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 사이의 언약의 특징들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 사이의 언약관계는 여러 가지 독특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인간 상화간의 단순한 계약 관계와는 다르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언약관계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해 시작되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관계는 이스라엘의 탁월함이나 공로에 대한 보상으로 결코 시작되지 않았다. 그것은 신명기 7:6-8절에 잘 표현되었다.

다음으로 이스라엘에게 언약관계의 의무로서 율법이 주어졌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선택받은 이스라엘이 주변 이방 나라들에게 종교적인 모습뿐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영역을 포함한 모든 부분에서 구별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하셨다. 또한 그들의 구별된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분임을 보여주길 원했다. 그래서 율법을 통해 이스라엘의 종교적 삶 뿐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인 부분까지 모든 삶에서 언약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주셨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언약 백성으로 율법을 반드시 지켜야 했다. 물론 율법을 지키지 않았을 때는 반드시 징계가 임할 것임을 말씀하셨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율법은 우선적으로 긍정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 4:8은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라고 말씀한다(레18:5; 신4:1; 5:33; 8:1; 16:20; 31:26,27; 느9:29; 시19:8; 119:39; 겔20:11,13,21).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새로운 땅에서 이스라엘이 계속 복된 삶을 살도록 선물로 율법을 주신 것이다. 이에 관해 Brevard Childs가 잘 설명했다. 

하나님의 율법은 언약 백성들의 기쁨과 교육을 위해 제정하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따라서 그것은 짐으로 주신 것이 아니고 최고의 특권과 보물로서 그리고 신적 사랑의 가장 중요한 표현으로 주신 것이다. 

세 번째로, 하나님과의 이스라엘의 언약관계는 그것을 시작하셨던 하나님 자신에 의해 보장되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관계는 영원하고 결코 파기되지 않는다. 언약관계를 시작하고 보장하시는 하나님 자신이 영원하고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신분과 지위가 율법의 순종에 의해서만 보장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물론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경험할 수 있지만 그것은 마지막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과정이었다. 이 언약관계는 엄격한 의미에서 당시 일반적이었던 조건적인 계약의 차원을 넘어선 것이었다.

네 번째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관계는 단지 계약 당시의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후손들에게까지 적용되었다. 이것은 신명기 5:2-3과 29:14-15에 잘 표현되어 있다.

다섯 번째로,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언약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을 이루고 완성된다. 이스라엘의 거듭된 실패와 바벨론 포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새 언약(렘 31:31-34)을 선포하셨고 그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 언약의 중재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공개적으로 새 언약의 성취를 선포하시고 십자가를 통해 완성하셨다(마 26:28; 막 14:24; 눅 22:20).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새 언약 가운데 있는 백성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하신 새 언약을 늘 기억하며 새 언약 백성으로서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전 11:23-24).

 
II. 언약신학이 제시하는 설교의 역할
 
1. 회개(경고/심판)의 메시지

언약신학은 설교자들에게 경고와 심판과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할 것을 요구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그들이 지켜야 할 의무로서 율법을 주실 때부터 경고와 심판, 회개의 메시지는 포함되었다. 신 5-26(또는 28장)장은 모세에 의해 이스라엘의 신앙과 삶을 위해 주어진 지침(가르침)들인데 신 4:15-31; 6:10-15; 7:12-26등에서 경고와 심판, 회개의 메시지가 언급된다. 신 27:26에 경고, 신 28:1-19의 복과 은혜가 선포된 후 신 28:20-69에 불순종할 때 임할 심판에 대해 훨씬 길게 서술한다. 뿐만 아니라 모압 땅에서 언약을 맺으면서도 회개에 대한 메시지를 빼놓지 않는다(신 30:1-4).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언약관계에서 의무로 요구되는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계속 징계하셨고 다시 회개하고 돌아오면 그들을 회복시키셨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들이 불순종함으로 죄를 지을 때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경고와 심판,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시면서 돌아올 것을 말씀하셨다(사 1:2-4; 사 1:18-20).

오늘날 한국교회도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구약의 이스라엘처럼 교회의 지도자들이 타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교회가 세상의 기관들과 구별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성도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교회는 갈수록 대사회적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고, 영적으로도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최근에 여러 동계와 여론 조사들은 한국교회가 지금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2007년도 「목회와 신학」의 조사를 통해 이러한 심각한 위기의 상황에서도 한국교회 설교자들의 회개에 대한 설교는 그렇게 많지 않는 것이 확인되었다. 설문대상자들의 61.6%가 주로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고 했고, 오직 12.4%만 죄와 회개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고 했다. 특히 중대형 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들의 66.6%가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고 했다.

지금 한국교회 강단에서 절실히 필요한 것은 지도자들의 죄와 교회동동체의 죄와 개인적인 죄에 대한 경고와 심판,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이다. 회개 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회개는 부흥과 회복의 전조요 출발점이다.

물론 딤후 4:3에서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쫓을 스승을 많이 두고”라고 말씀한 것처럼 말세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른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설교자는 예레미야처럼 성도들이 듣기 좋아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배척당할 각오를 하고 경고와 심판과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해야 한다(겔 33장). 

2. 소망(회복)의 메시지

언약신학은 설교자들에게 소망과 회복의 메시지를 선포하기를 요구한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관계는 이스라엘이 범죄하고 잘못한다고 할지라도 결코 파기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심판은 회복의 과정이었지 결코 마지막 조치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스스로 그 회복을 이루셨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심판의 메시지와 함께 소망과 회복의 메시지를 선포하셨고 또한 심판의 메시지가 아니라 회복과 소망의 메시지로 끝을 맺으셨다. 그런데 소망과 회복의 메시지는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선포되었다.

먼저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에서(그들이 죄를 지어 징계를 당하고 있다고 해도) 항상 하나님의 백성을 기억하고 지켜주실 것을 선포하였다(사 49:14-16; 사 43:1-2). 다음으로 징계와 심판은 회복을 위한 과정임을 선포하였다(사 1:25-27). 뿐만 아니라 징계로 인해 당한 어려움이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발발하는 주변 상황이 모두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가운데 있음을 선포하였다(사 14:24-27).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교회와 성도를 향해 모든 상황에서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항상 주도적으로 적극적으로 지키시고 도우시고 인도하신다는 소망과 회복의 메시지를 선포해야 한다.

성도들이 메시지를 통해 영적 에너지를 공급받고 하나님 안에서 새 힘을 얻어 믿음과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전 세계 교회의 상황이 어렵고 때때로 절망스럽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주도적으로 교회를 지키시고 회복시키시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선포하여 이 땅의 모든 교회를 향한 믿음과 소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별히 포스트모더니즘의 상황에서 악한 일이나 비참한 상황들을 보면서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을 향해 입에 담을 수 없는 저주를 쏟아내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설교자들은 선지자들처럼 인간이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대해서 그리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효과적이고 설득력 있는 메시지를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상황에서 성도들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는 믿고 하나님으로 인해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언약신학은 이 소망과 회복의 메시지를 이 시대의 여러 가지 안타까운 상황을 경험하며 좌절하고 혼란스러워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확신과 열정으로 선포하도록 요구한다. 

3. 구별된 삶고 사회적 책임의 메시지

언약신학은 오늘날 설교자들에게 구별된 삶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메시지를 선포할 것을 선포할 것을 요구한다. 율법은 거듭해서 언약 백성들에게 구별된 삶과 사회적 책임에 대해 강력하게 명령한다. 하나님이 언약백성들에게 요구하신 삶의 대표적인 개념은 구별됨(거룩함)이었다(출 19:6; 레 19:2). 특히 이웃에 대한 보호와 사람과 관심을 다양한 측면에서 명령하고 있다(출 23:6; 신 24:17; 27:19; 출 22:25-27; 신 24:12-13; 24:14-15; 레 19:13; 25:35-38; 출 22:21-22; 23:9). 한걸음 더 나아가 만약 그렇게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하고 사회적 책임을 온전히 감당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 상응한 징계를 내리시겠다고 경고하셨다(출 22:21-24).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명령에 순종하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그 부분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신다(사 1:5-9, 11-15). 이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정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하신다(사 1:16-17).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단순한 종교적 열심이나 예배 행위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구별된 삶과 사회적 책임의 열매가 동반된 예배와 예물과 기도를 원하셨다.

오늘날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다.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과 크게 구별되지 않는다. 「한미준」이 일상생활의 다양한 영역 중에서 대표적인 일곱 가지 즉 이론, 낙태, 음주, 흡연, 혼전 성관계, 뇌물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의식을 조사했는데 안타깝게도 성도들과 불신자들의 행위와 가치관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교회가 갈수록 세속화되고 있다. 계속해서 신자의 수가 감소하는데 그 답은 구약 선지자들이 제시했다.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으로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열정과 함께 교회 공동체 전체가 그리고 성도 개개인이 세상과 구별된 모습을 보이고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다. 

4. 복음의 메시지

예수님은 자주 자신이 신구약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 주제요 내용이라고 말씀하셨다(눅 24:27, 44; 요 5:39). 또 복음서 기자는 성경을 기록한 목적도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과 그리스도 되심을 믿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막 1:1; 요 20:30-31).

또한 예수님께서는 유언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예수님의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고, 그 유언을 따라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바울은 생명을 걸고 복음 되신 예수님을 전했다(행 1:8; 20:24; 롬 1:16).

이러한 성경의 기록들은 우리에게 크게 세 가지 사실을 교훈한다. 먼저 성경을 주해하고 적용할 때 구속사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선포해야 할 핵심 메시지는 복음되신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과 하나님 되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약신학은 이러한 성경의 핵심적인 교훈에 온전히 부합한다. 구약언약들의 목표와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또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새 언약의 중보자와 성취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새언약 백성의 사명이요 의무이다(고전 11:23-24). 따라서 언약신학은 오늘날 선교사들에게 복음의 메시지 또는 복음적 설교를 선포하도록 요구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의 강단에서 이런 메시지를 듣기는 쉽지 않다.

통계에 의하면 복음의 본질과 신앙생활의 핵심을 제대로 알고 다니는 사람들은 절반이 채 안된다.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강단은 본문의 의미와 복음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인간중심적 설교, 삶에 문제에 지나치게 치우친 적용 중심의 설교, 성경 메시지를 윤리와 도덕적 교훈으로 격하시키는 도덕적 설교, 치유와 회복에 과도하게 관심을 둔 필요 중심적 설교가 지배하고 있다. 


III. 성시화운동의 평가

언약신학의 관점에서 성시화운동을 평가해 보자. 성시화운동을 시작하고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고 김준곤 목사는 성시화운동은 예수님께서 천하 만민에게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지상 명령 성취를 돕는 운동이며, 한국민족복음화운동이며, 복음화된 한국민족의 자원을 세계 선교에 헌신하도록 돕는 운동이라고 했다. 이 운동의 두 모델로 엑스포 74와 춘천 성시화운동을 들고 있다.

쉽게 성시화운동은 “개인이 구원받으면 의식이 변화되고, 생활이 변화되고 그가 속한 공동체가 변화된다. 그렇게 하면 교회공동체가 도시 공동체를 전인 건강하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완전 복음화된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운동이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성시화를 위한 시도와 노력은 바람직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절대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상황에서 그리고 모든 종교를 인정하는 우리나라와 같은 비기독교 국가의 환경에서 성시화운동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엑스포 74와 같이 여의도 광장에서 공개적으로 대형집회를 하거나 춘천 성시화운동처럼 공개적으로 세속도시와 비기독교인들을 향한 사명을 선포하고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형집회와 공개적 행사가 종교간 갈등을 불러오고, 비기독교인들의 반발과 저항을 가져온다는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한 일이다. 30-40년 전에는 그러한 대형 집회와 행사가 어느 정도 효과를 발위한 부분도 있지만 특히 최근 들어 기독교의 대사회적 이미지가 많이 악화된 상황에서 그러한 접근들은 득보다는 실이 많은 것 같다.

때문에 필자는 성시화운동은 공개적 대형집회나 불신세상을 향해 대외적으로 사명을 선포하는 이벤트성 행사보다는 오히려 내부적으로 교회와 성도들에게 도전과 자극을 주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시화라는 목표를 위해 교회와 성도들에게 기독교의 정체성을 각인시키고 교회와 성도의 사명을 각성시키며 동기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뿐만 아니라 그런 접근은 언약신학에 충실한 교회와 성도를 세우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한국교회의 많은 성도들은 교회 내에서의 신앙생활이나 봉사에만 몰두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과 구별됨이나 사회적 책임에는 큰 관심이 없다. 이러한 모습은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 하나님을 보여주어야 하는 언약 백성으로서의 본연의 모습이 아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성시화에 대한 강조와 노력은 언약백성으로 교회 공동체와 성도 개개인들에게 하나님 나라와 이웃과 사회에 대한 사명과 관심을 가지고 섬길 수 있는 신선한 자극과 도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오늘날 한국교회의 대표적 문제 가운데 하나가 개교회주의이다. 그런데 성시화 운동은 교회 연합을 위한 매개가 될 수 있다. 이단이 아니라면 모든 지역의 교회는 우저적 무형 교회에 함께 속해 있는데 성시화라는 목표를 위해 지역교회들이 교제 협력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또한 성시화를 매개로 지역의 기독교인 기관장들이 업무 외 시간이 비공식적으로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거나 성경공부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도시가 되도록 기도하고 연합 전략을 세우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나가면서

지금까지 언약신학의 관점에서 오늘날 한국교회 강단에 요구되는 설교의 역할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것은 회개(경고/심판)-소망(회복)-구별된 삶고 사회적 책임-복음의 메시지를 바르고 능력있게 선호하는 것이다. 이러한 언약신학에 충실한 메시지는 오늘날 심각한 위기 가운데 있는 한국교회가 회복되고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임을 확인하였다. 뿐만 아니라 강단에서 언약신학에 충실한 메시지가 선포되고 교회와 성도가 언약백성으로 합당한 모습을 보이고 제대로 사명을 감당하기만 하면 성시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아무쪼록 언역신학에 충실한 메시지가 한국교회 강단에서 온전히 선포되고 모든 성도가 언약백성으로 합당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