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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열 목사 헌법 해설
장로회 정치 원리와 당회
목사가 당회원이라면 당회 결의정족수에 치명적인 하자가 발생된다
기사입력: 2013/02/23 [05:42]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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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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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회 정치 체제는 “대의(代議)를 특징으로 한 교회 정치체제”이다. 즉 장로회주의(presbyterianism) 를 표방하고 있다. 장로회주의에 따르면 공화정치체제는 모세로부터 시작하여, 산헤드린 공회를 거쳐 사도시대와 예루살렘 공회를 비롯하여 니케야(Nicea)회의 등으로 연속성을 이루어 왔다.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정치체제는 성경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즉 1518년 루터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명력 있는 교회정치의 모습은 대의회제도라 하였고, 에라스무스(Erasmus)는 공의회체제를 제안하였으며, 부쳐(Bucer)는 총대의회(총회)를, 멜랑톤(Melanchthon)과 칼빈은 성도들의 연합을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장로교회의 지도자들은 모두가 대의회 정치(Council Government)의 개념을 지닌 교회정치를 실현시켜왔다. 이같은 정치는 양심의 자유에 입각한 교인의 기본권에 기초한 것이다.

1. 장로회 역사적인 정치원리의 개관

1) 장로회 정치제도의 초기 요람지 스트라스부르

칼빈은 그의 생애 중에 29년간 목회 생활에 몸을 바쳤다. 1536년 8월에서 1538년 4월까지 처음 제네바에서 2년 동안 목회를 했고, 제네바에서 쫓겨나 당시 독일령이었던 스트라스부르에 가서 3년간(1538년 9월-1541년 9월) 프랑스 피난민 교인들을 위하여 교회 일을 보았다. 1541년 9월 다시 제네바의 초청을 받아 1564년 5월 27일 죽을 때까지 23년간 거기서 목회활동을 하였다.

칼빈은 종교개혁자요, 신학자요, 성경 주석자요, 교회 조직자요, 설교자요, 목회자라고 부른다. 이 같은 칼빈에 의해서 장로회 정치제도가 형성되고 조직화되어졌다. 그러나 칼빈에 의해서 체계화되어진 장로회 정치제도의 아이디어는 자신이 개혁파교회를 말씀 위에 세우기 위해 창안한 교회정치제도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결과인가? 보통 칼빈은 부처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 초판 헌정문은 1535년 프랑수아 1세에게 바치는 박해받는 자들의 신앙을 변호하는 글 속에 나타난 칼빈의 교회론과 1536년 칼빈의 기독교 강요 초판에 나타난 교회론은 스트라스부르로 망명 가기 전에 작성된 내용이었다. 그러나 1539년에 발표된 기독교 강요 제2판은 스트라스부르 망명생활 중에 프랑스 피난민 교회를 맡아 목회하고 있을 때 발표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 초판에 비해서 제2판에서는 초판에서 언급하지 않는 교회 직분적 체계가 구체적으로 언급되었다는 점이다. 이로 보아 칼빈은 망명지 스트라스부르에서 자신의 장로정치제도가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곳 스트라스부르에는 이미 종교 지도자 부처가 있었다. 그런데 이 부처는 바젤시의 종교개혁자 요하네스 오코람파디우스(Johannes Oecolampadius)의 영향을 받아 스트라스부르에서 장로정치제도를 적용한 사람이었다. 부처가 스트라스부르에서 오코람파디우스의 영향을 받았거나 장로정치제도를 적용한 시기에 칼빈이 스트라스부르로 망명을 와서 프랑스 피난민교회를 목회할 때 부처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칼빈은 결코 부처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는 점도 참작되어야 할 것이다(W. Neuser).

우리는 먼저 칼빈이 스트라스부르로 망명가기 전부터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부처가 영향을 받은 오코람파디우스의 장로정치제도에 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코람파디우스는 1530년 바젤에서 새로운 교회 조직을 만들기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마태복음 18:15-18을 자신의 시대에 교회 조직을 위해서 필요한 성경적인 근거로 사용하였다. 그는 사도들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어떤 장로들이 교회의 치리(discipline)를 조정하기 위해 임명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장로들의 위원회는 12명의 책임성이 있고, 평판이 좋은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하며 4명의 목사들, 4명의 시 당국의 대표자들, 그리고 4명의 일반시민들의 대표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위원들을 구성하려는 그의 의도와 목적은 견책자들(censors)을 성경의 장로들과 동일시하였다. 시 당국으로부터 교회의 독립적인 치리를 구성하기 위해 이미 서신을 통해 그는 제네바에 있는 츠빙글리에게도 독립을 강력하게 강조하였다. 그 서신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 “교회의 권위를 가져가는 이러한 당국들은 적그리스도보다도 참기 힘든다. … 그리스도는 당신의 형제가 죄를 범하면 당국에 가라고 하지 아니하고 교회에 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츠빙글리는 교회 목사들이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으로 그들이 죄에 빠지지 않도록 경고하는 일을 한다면, 기독 군주들은 그들이 가진 검을 이용하여 죄인들을 벌하여 도덕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고 함으로 오코람파디우스와는 전혀 다른 견해를 갖게 되었다. 오코람파디우스는 결국 바젤시의 교회 법정의 감독 및 치리는 목사를 제외하고 시의회 의원이나 평신도 중에서만 피선된 사람들로 구성하였다. 오코람파디우스의 구상은 바젤시의 반대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마르틴 부처(Martin Bucer)가 오코람파디우스의 영향을 받아 스트라스부르에서 장로회 정치제도를 적용시킬 때가 바로 칼빈이 제네바에서 1차 목회에 실패하고 스트라스부르를 방문한 때였다. 제1차 제네바 종교개혁에서 실패한 칼빈은 스트라스부르에서 부처의 소개로 그곳 프랑스 피난민을 중심으로 목회를 했으며 이때 그는 부처와 함께 개혁의 주도자로서 3년을 함께 보냈다(1538-1541).

스트라스부르의 개혁자들의 관심도 어떻게 하면 개혁교회 교인들을 제대로 치리(discipline)하고 다스리(govern)느냐에 있었다. 특히 이들의 관심은 세속권한으로부터 독립하여 교회 자체의 영적 훈련과 교인의 신앙훈련에 대한 아이디어는 부처에게 일찍이 1523년에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Das Ym Selbs”라는 책에서 초대교회가 성만찬에 부당한 자들이 참예하는 것을 방지해야만 했으며 이러한 규율은 곧 치리(discipline)라는 개념을 나타낸다고 필하였다.

칼빈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부처의 가장 완성된 교회정치와 장로 제도의 견해는 1550년 에드워드 4세(Edward Ⅳ)에게 보내는 글(De Regno Christi)에서 더욱 투명하게 나타난다. 이 글에서 부처는 개혁교회의 4대 교회 직분(목사, 박사, 장로, 집사)을 선명하게 규정짓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부처는 이 글에서 장로 중에 지도적인 역할을 하는 장로를 감독으로 간주하는 등 소위 두 종류의 장로의 존재를 인정하였다. 부처는 스트라스부르와 영국 개혁교회의 직제에 관해 말하면서, 설교하고 가르치는 장로와 그들을 도우면서 치리의 관장을 책임진 평신도 장로를 둘 것을 주장하였고 이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운용하도록 기술하였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구제와 관용을 위해서는 집사제도를 두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모든 장로가 다 감독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 수장로가 감독직을 맡게 된다고 하였다. 칼빈이 스트라스부르에서 망명시절 그곳에서 목회하고 있었던 부처는 오코람파디우스의 영향을 받아 결국 개혁교회의 교회다운 운영을 위해, 그리고 신자들의 신앙을 관리하고 지도하기 위해 장로 직분론을 등장시켰다.

2) 칼빈의 장로회 정치의 재발견과 적용

칼빈이 3년간 부처와 함께 스트라스부르에 있었던 해를 분수령으로 해서 칼빈의 교회 직분에 대한 견해는 현저하게 부처에게서 영향을 받았거나 또한 발달된 것임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로버트(Robert)는 다음 4가지로 이 점을 요약한다.

첫째, 직분이 이전보다 훨씬 분명하게 정의된다. 초기의 언급들은 잘못된 태도를 교정하는 선임자로 규정지어졌다. 그러나 후기에는 교회를 감찰하는 데 있어서 목사를 조력하는 장로로 아주 분명하게 서술하고 있다.

둘째, 이 직분의 의무들은 점점 분명하게 교회의 통치라는 정황과 연계되었다. 초기에는 하나의 원로회(Senate)로 존재하다가 후에는 그것의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는 장로회 조직으로 발달되었다. 칼빈의 사도행전 주석은 이러한 구조의 발달을 분명히 취하고 있다.

셋째, 장로 제도는 초대교회와 연계되어 이해되고 이러한 견해는 곧 성경과 연계되어 그것의 권위가 확고하게 되었다.

넷째, 두 종류의 장로가 있었음을 인정하였고, 그리고 이것은 영속적인 것으로 보았다. 특히 이러한 견해는 1561년 딤전 5:17의 주해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칼빈의 장로직분에 대한 사상은 칼빈의 창안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라 개혁교회의 올바른 상을 위해 정립된 개혁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그들의 아이디어를 성경과 역사 속에서 그 근거를 확립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들은 개혁교회의 장로직제를 없는 것에서 만들어낸 것(ex nihilo)이 아니라, 성경과 교회 역사에 있는 것을 재발견(rediscovery)한 것이라고 인식한다. 이러한 그들의 사상은 종교개혁 자체를 새로운 것에 대한 시대적인 발명이 아니라 재발견의 산물로 보았던 16세기 개혁자들의 의식정황에 비추어 본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칼빈의 장로정치 제도는 부처를 중심한 스트라스부르의 개혁자들과의 목회사역 속에서 발전되었으며 칼빈은 장로정치제도의 타당성을 일반 사회나 초대교회의 일반통치원리의 경험론 위에서 조명하였다. 그리고 세속정치의 교회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칼빈은 필요에 의해 장로정치제도의 성경적인 근거를 찾아갔다.

초기의 태도의 교정(Correctors of manners)을 위해 있었던 연장자들(seniors)의 개념이 후에 목사를 도와 교회의 관찰(oversight) 역할을 하는 장로의 개념으로 분명해져 갔다. 초기 직분의 이러한 의무들은 점점 교회의 행정(government of church)의 정황에서 이해되어지므로 일반 원로회(Senate)의 개념들이 교회의 장로직의 것으로 전환되었다. 교회정치제도는 성경과 연결하여 이해하고 권위를 갖게 됨으로 성경적인 규범들(norms)을 추적하게 되었다. 칼빈의 교회 직분의 개념은 사상의 발전(progression)으로 성숙해졌다. 그리고 이러한 진보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고 의식적인 고려의 결과였다.

칼빈의 장로정치제도는 발명된 산물들(inventions)이 아니고, 재발견의 산물(re-discovery)이다. 칼빈은 두 종류의 장로직분(장로목사와 장로)을 분명히 구분한다. 장로직분을 감독, 목사와 함께 감독, 목사를 도우는 사역의 직분으로 인식한다. 칼빈이 말하는 장로직분은 시당국의 간섭을 배제한다는 차원에서는 열쇠의 전권(the whole power of the keys)이 주어지지만 주로 교회 내의 도덕적인 문제의 치리이다. 칼빈은 말씀과 성례직분은 감독, 목사에게 국한 시킨다. 칼빈은 감독, 목사 중심의 교회 행정과 치리를 선호한다. 칼빈은 교회 직분의 이러한 제도는 영원히 필요한 직제로 보고 있다.

장로회 정치 제도는 제네바의 존 칼빈에 의해 시작되었고 스코틀랜드의 존 녹스에 의해 발전되었다. 스코틀랜드에서 장로회 정치 제도가 발전하였는데, 그 발전 과정은 다음과 같다. 스코틀랜드에서 종교개혁을 시작할 때 처음에는 탄압이 아주 심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교회를 바르게 세우려는 목사와 장로들이 매주 월요일 모여서 일종의 수양회 같은 것을 가졌다고 한다. 원래는 성경 공부를 하고 교제를 하기 위해 모였는데, 이것이 차츰 발전되어 교회에 대한 여러 문제들을 의논하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여기서 결정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노회(presbytery)”이다.

노회(老會)란 장로회(長老會)를 뜻한다. 곧 목사와 장로들이 모여서 교회의 문제를 의논하고 결정하는 모임을 말한다. 이 ‘노회’가 중심이 되어 교회의 문제를 결정하는 정치 제도가 곧 장로회 정치 제도이다. 노회 위에 총회가 있고 노회 밑에는 개교회의 당회가 있다. 이 중에서 특히 노회에 중요한 권한이 주어져 있는 것이 장로회 정치 제도이다.

복음전도 초기에 교회는 복수장로제로 시작하였으나, 교회 안에서 말씀과 가르침의 중요성과 더불어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장로들이 자연히 생겨나게 되었고, 이들을 장로와 구별하여 자연스럽게 목사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엡4:11). 그러나 초대교회는 아직도 목사와 장로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았고, 장로 또는 감독이라는 말로 대신하였으며, 그 중에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구별하여, 교회가 이들의 사례비를 책임질 것을 명하고 있다(딤전5:18).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교회가 목사후보생을 훈련하고 이들을 위한 신학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보다 훗날의 일이다(김길성,「개혁교회론」(서울: 총신대학교 출판부, 2001), p. 29-30.).

결국 신약성경에서 나오는 ‘감독’을 ‘장로’와 같은 의미로 보았다. 여기서 ‘감독’이란 감독 정치에서 말하는 바 목사들 위의 감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어상 교회를 ‘돌아보는 자(episkopos)’란 의미이므로 장로와 같은 의미로 보았다. 또한 디모데전서 5장 17절에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고 하였는데, 이 구절을 따라 ‘가르치는 장로’와 ‘치리하는 장로’의 두 종류로 나누었다.
 
이 ‘치리하는 장로’는 오늘날의 장로를 말하고 ‘가르치는 장로’는 목사를 뜻한다. 즉 목사는 교육과 치리를 담당하는 장로이고, 일반 장로는 치리만 하는 장로이다. 이 목사와 장로들이 모여서 당회를 구성한다. 이 장로교는 스코틀랜드에서 발생하여 미국으로 건너가 크게 발전하였다. 그리고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올 때 미국의 장로교 선교사들이 초기에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한국에는 장로교회가 뿌리를 내리고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2. 장로회 정치의 근본 원리

장로회 정치의 근본원리는 다음 3가지 항목을 포함한다. 첫째, 장로들에 의한 치리, 둘째, 성직자의 평등, 셋째, 3심 제도이다.

1) 장로에 의한 정치

장로교회정치는 노회에서 위임하여 파송한 목사와 교인들의 대표인 장로가 당회를 구성하여 교회를 치리하는 방식의 대의제(代議制)를 특징으로 한다. 장로회 교회가 택하는 대의제는 치리회에서 본질적으로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바탕으로 한다. 즉 치리장로의 치리권과 성직자의 강도권에 기초한 치리권 사이에 조화를 이루도록 한다. 그러므로 장로회주의는 성직자의 치리권과 평신도의 기본권을 서로 동등하게 하며 또한 이를 상호 견제케 함으로써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이 건전한 발전과 부흥을 도모하는 정치형태라고 할 수 있다(교회정치통람, p. 10).

따라서 장로회주의는 교인의 기본권을 인정하지 않는 성직자의 치리권을 배제하고 성직자의 치리권을 인정하지 않는 교인의 기본권 역시 배제한다. 이것은 장로회 정치의 원리가 양심의 자유 원리를 인정치 않는 교회의 자유 원리를 배제하며, 교회의 자유 원리를 인정치 않는 양심의 자유 원리도 배제하는 것과 같다.
 
기본권을 인정치 않는 치리권은 제도적으로 성직자의 부패와 횡포를 부르는 온상이 되고, 성직자의 치리권을 인정치 않는 교인의 기본권은 제도적으로 평신도의 타락을 가져오게 하는 죄악의 온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양심의 자유원리와 교회의 자유원리도 꼭 같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같은 장로회 정치 원리에 따라 대한예수교 장로회 헌법은 장로를 교인의 대표라고 하며(정치 제5장 제4조 1항), 치리기관에서 교인들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목사로 하여금 전횡과 독단으로 치리권을 행사하여 교인들의 양심의 자유가 억압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헌법은 장로의 치리권을 목사의 치리권과 “같은 권한”으로 말한다. 치리회에서 목사와 장로가 “같은 권한”이어야 객관적인 치리권이 행사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기원에는 차이가 있다. 즉 목사의 치리권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치리권이요, 장로의 치리권은 교인들의 기본권, 즉 양심의 자유를 최대한 구현하도록 하는 차원에서의 치리권이다.

장로회 교회는 이러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의하여 교회를 효율적으로 치리한다. 그 결과 감독주의가 갖고 있는 폐단도 극복하고 자유정치가 갖는 약점도 보완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들은 목사와 장로의 관계를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관점에서 정리해 볼 수 있겠다. ① 목사와 장로는 치리회에서 같은 권한을 갖고 있다. ② 교인의 대표인 장로는 목사와 협동, 협력해야 한다. ③목사와 장로는 치리회에서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2) 성직자의 평등주의

장로회주의는 모든 장로(Presbyter)의 평등을 주장한다. 이것은 만인 제사장주의의 새로운 표현이다. 특히 장로회주의는 모든 성직자의 평등을 강조한다. 아마도 이것은 강도권의 독립성을 주장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감독주의를 채택한 교회(로마 가톨릭, 희랍정교회, 성공회 등)는 성직자의 계급적 차이를 인정한다.

성직자를 조제(Diacon), 신부 혹은 사제(Priest), 주교 혹은 감독(Bishop)으로 나누어 계급화한다. 이 제도 아래서 사제는 각 교회에서 설교, 기도, 성례를 맡아보고 사죄의 선언을 한다. 조제는 사제의 보조자이다. 주교는 일정 구역 내의 교회와 신부, 조제를 관할하고 임직과 견신을 맡아보고, 교구통치의 임무를 맡는다. 이것은 상호간에 평등한 지위에서 직무를 분할한 것이 아니다. 하나의 계급적 구조 속에서 조제는 사제에게, 그리고 사제는 주교에게 종속되는 관계인 것이다. 감독주의가 성직의 위계성을 인정하는 근거는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장로와 감독이라는 용어가 서로 다른 직분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로회주의자들은 감독과 장로는 동일한 직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며, 다만 쓰임에 있어서 다르게 사용되었을 뿐이라고 한다. 즉 장로는 연령, 권위, 지혜에 관해서 쓰는 말이고 감독은 신자들의 영적 지도자라는 기능을 가리켜서 한 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로회주의자들은 성직의 위계성을 부정하게 되는 정치 체제를 갖고 있다. 또한 장로회주의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성직자 평등주의를 주장한다. 즉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시므로 어느 누구도 스스로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으며, 그리스도 대신에 교회를 다스리거나 인간을 속죄하고 인간의 구세주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높임을 받으셔야 하고 인간은 다만 그분의 통치를 받을 뿐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와 생명적, 유기적 관계를 지니고 스스로 생명을 갖고 교회를 채우시고 교회를 영적으로 다스리신다는 의미에서 유기체적인 머리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는 곧 제도적 조직체로서의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그의 교회를 말씀과 성령으로 다스리신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교회의 머리로 교회를 주관하지 못한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교황이 교회의 머리가 되고, 감독정치를 취하는 곳에서는 감독이 교회의 머리가 되지만 장로교회는 예수님만이 교회의 머리가 되고 나머지는 모두 동일한 지체라는 정치제도를 두고 있다. 존 맥퍼슨(John Macpherson)은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다음과 같이 강도권의 독립성을 주장한다. ; “신약성경은 복음에 대한 설교가 최상위의 교회 직분이 가져야 하는 기능이라고 한다. 이러한 기능이 수행되는 곳에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종속될 수 없는 직분을 생각하게 된다. 치리와 행정의 기능들은 어떠한 교회 직분자에 대하여도 이 단순한 설교자보다 우월함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배경에서 장로회주의는 복음에 대한 설교를 위하여 안수받은 모든 교회의 직분자들의 계층적 평등을 주장한다.”

3) 삼심제에 의한 교회 연합과 동일체 원칙

장로회 교회는 분리주의 집단이 아니다. 한국장로교회는 근본주의적 경향 때문에 간혹 분리주의로 비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연합을 추구하는 교회이다. 한국교회의 역사는 수많은 분열의 역사를 안고 있지만 또한 부단히 연합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이 그 반증이다. 연합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삼심제도를 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진리와 행위와의 관계 원리는 자율적인 최선택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자율적인 방비책은 무능하고 무의미하므로 장로회 정치는 제도적인 최선택으로 삼심제도를 두고 있다. 자율적으로 바로 서지 못하는 자라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삼심제를 통해서라도 바로잡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삼심제는 당회의 치리에 불복이 있으면 노회가 그것에 대하여 치리권을 행사하고 또 노회의 치리에 불복이 있으면 총회가 그것을 치리하여 최종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합동) 헌법은 장로를 비롯한 일반 신도들에게 세 번의 재판을 받을 수 있는 3심제도를 갖고 있지만 목사는 두 번만의 재판을 받는 2심제도를 갖고 있다. 그 이유는 헌법이 명시한 대회제를 시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목사는 당회 소속이 아니라 노회 소속이다. 즉 당회에서 목사의 치리권을 행사할 수 없다. 1심은 노회가 되고 2심은 총회로 되어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서라도 대회제는 실시되어야 한다.

86회 총회(2001년)에서 대회제의 부활건이 헌의 되었지만 “총회의 종전 결의대로 행함이 가한 줄 아오며”라고 결의되었다. 총회 종전 결의란 57회 총회(1972년) 시 대회제 폐지안이 가결된 결의이다(총회 제57회, 회의록 p. 51.). 그런데 여기서 폐지가 아닌 유보라고 결의해야 하는데 폐지라고 잘못 결의했다. 그 이유는 헌법이 대회제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폐지가 아니라 실행 유보이다. 폐지로 가결되었다면 각 노회에 수의하여 헌법에서 대회제를 삭제했어야 했다.

3심제는 교회의 통일성에 신학적 기초를 두는데 이것은 동일체 원리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교회는 여러개가 아니라 하나의 교회이므로 그 하나됨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장로회 정치 원리에 따라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합동) 헌법, 정치 제8장 2조 2항에 “각 치리회는 각립한 개체가 아니요 서로 연합한 것이니 어떤 회에서 어떤 일을 처결 하든지 그 결정은 법대로 대표된 치리회로 행사하게 하는 것인즉 전국 교회의 결정이 된다”라고 하였다.

또한 권징조례 제11조에 “치리회가 기소할 때에는 곧 대한예수교 장로회가 원고와 기소위원이 된다”라고 하였다. 이것을 법이론상 “치리회 동일체의 원칙”이라고 한다. 즉 지상교회가 나뉘어 있을지라도 각립한 개체가 아니요, 서로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이므로 근본적으로 동일체이며 교회는 하나라는 말이다. 즉 지교회는 대한예수교 장로회인 하나의 교회 지체일 뿐 독립된 개체가 아니다. 따라서 지교회의 판결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전국교회의 판결(대한예수교 장로회의 판결)이 된다. 따라서 어느 지교회의 판결이든 그것은 대한예수교 장로회의 판결이 되어 그 효력은 전국 교회에 미친다.

3. 장로회 당회 해석과 그 적용

1) 치리회의 필요

당회는 치리회이다. 치리회가 왜 필요한가?

“교회를 치리함에는 일정한 정치 원리가 절대 필요하다. 우리는 당회, 노회, 총회의 제도에 의한 교회 치리가 사실상 유익하고 성경적이고 사도시대 교회의 치리법과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주장하면서 우리는 교회 치리의 원리에 있어서 우리와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을 사랑으로 포용해야 된다.”

2) 대한예수교 장로회와 치리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인가,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헌법”인가? 이 같은 질문은 하나마나 하는 질문 같으나 이 질문의 답변여하에 따라 장로회 정치 원리와 제도가 왜곡되어진다. 우리들은 너무나도 쉽게 “총회헌법이라고 한다. 이 말은 마치 ”대한민국 헌법“을 ”대법원 헌법“이라는 말하는 것과 같다.

”대법원 헌법“이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이듯이 ”총회 헌법“이 아니라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이다. 총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안에 당회, 노회, 대회, 총회가 속해 있다. 즉 총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안에 소속되어 있는 최고회일 뿐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가 곧 총회를 의미하지 않는다. 즉 대한민국이 대법원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런 개념이 반영된 규정이 바로 헌법 정치 제12장 1조이다. “제1조 총회 정의 : 총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의 모든 지교회 및 지리회의 최고회(最高會)니 그 명칭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라 한다.” 전국지교회의 공식 명칭은 <대한예수교장로회>이며 그 안에 최고회인 총회가 있다.

헌법 총론에 보면 “장로회 헌법”, “대한예수교장로회 교회의 헌법”이라고 표기하도 하면서 아울러 “총회의 헌법”이라고도 하는데 “총회의 헌법”은 잘못 표기된 것이다. 또한 총회규칙 제2조 목적에 보면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헌법을 준수하며”라고 한다. 여기도 잘못 표기되어 있다. 총회의 목적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을 준수하며”라고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 교단 홈페이지에 “총회 헌법”이라는 하는 것도 잘못 표기되고 있다. 1912년 제1회 총회에서는 전국 교회 명칭 앞에 “조선예수교 장로회"라는 명칭을 붙이기로 했다. 제35회 총회(1949년)에 이르러 ”조선예수교 장로회“를 ”대한예수교 장로회“로 변경됐다.

정치 제8장 제2조 제2항에 의하면 “각 치리회는 각립한 개체가 아니요 서로 연합한 것이니 어떤 회에서 어떤 일을 처결하든지 그 결정은 법대로 대표된 치리회로 행사하게 하는 것인즉 전국 교회의 결정이 된다”라고 했다. 여기서 전국 교회(지교회, 개체교회)를 가리켜 부르는 공식 명칭은 <대한예수교장로회>이다. 전국 교회가 흩어져 있을지라도 그 교회들은 각립한 개체가 아니요 하나이다. 그 하나의 이름이 <대한예수교장로회>이다.

개체교회(지교회)로 흩어져 있을지라도 그 하나됨을 위하여 각 치리회는 관할의 범위를 정하여 당회, 노회, 대회, 총회와 같은 치리회를 두고 각 치리회는 순서절차에 따라 상회의 지도와 관할을 받게 함으로 흩어진 전국교회가 대한예수교장로회로 하나됨을 유지한다. 따라서 흩어진 지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인 하나의 교회 지체이지 독립한 개체가 아니다.

이와 같은 원리로 볼 때 어느 지교회(당회)의 결정(판결)이든지 그것은 대한예수교장로회의 판결이 되어 그 효력이 전국교회에 미친다. 따라서 A교회에서 면직한 장로, 집사, 권사는 B교회에서 면직되는 것과 같은 동일한 효력을 갖기 때문에 그 면직된 장로를 B교회에서 취임한다는 것은 법률적 모순이 있다.

전국교회에 효력이 미치게 하는 원리 때문에 치리회가 기소할 때, 당회, 노회, 총회가 기소한다라고 하지 않는다. 권징조례 제11조에 의하면 “치리회가 기소할 때에는 곧 대한예수교장로회가 원고와 기소위원이 된다”라고 한다. 이런 원칙과 원리에 의하여 장로의 자격을 명시한 정치 제5장 제3조 “흠 없이 5년을 경과하고”라는 규정을 해석할 때에는 A교회에서만의 5년을 계산하지 않고 B교회와 합산하여 5년을 계산한다. 단 이명서에 의해 교회를 옮긴 경우에만 이 원칙이 적용된다.

대한민국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가 여럿이 있다. 구분하기 위해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이라고 표기하면 구분이 된다. 따라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헌법>, 혹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합동)>이라고 해야 한다. 아니면 그냥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이라고 표기해도 좋겠다.

장로회정치란 치리권이 개인에게 있지 않고 치리회에 있는 의회정치체제(議會政治體制)이다. 장로회정치를 근간으로 한 본 교단은 헌법 중 행정관계 규범으로 <교회정치>를, 재판관계 규범으로는 <권징조례>를 두고 있다. 치리회가 회집되면 행정사건은 <교회정치>에 의하여 처결되고, 재판사건은 <권징조례>에 의해서 처결된다.

헌법 중, 정치 제8장 제1조에 의하면 “교회를 치리함에는 명백한 정치와 조직이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또한 “정당한 사리(事理)와 성경 교훈과 시도시대 교회의 행사(行事)에 의지한즉 교회 치리권은 개인에게 있지 않고 당회, 노회, 대회, 총회 같은 치리회에 있다”고 규정한다.

치리권를 갖고 있는 각 치리회 회원은 “목사와 장로”로만(정치 제8장 제2조) 구성되며 이 치리회는 “당회, 노회, 대회, 총회”(정치 제8장 제1조)가 있다. 이 치리회는 다수결(多數決)의 민주적인 의결체(議決體)이다. “교회 혹은 그 대표 중 다수파가 소수파를 지배하며, 혹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논쟁사건에 대해서도 다수파가 결정하고 소수파가 복종”하는 원리이며, “다수는 지배하고 소수는 복종하는 처결은 전체 교회를 대표하는 처결이니, 이를 존중하는 것은 모든 개교회와 또는 연합한 교회의 본분”이다. “그러나 그 처결에 대하여 계층에 따라 상소할 수 있고, 최종심의회의 처결은 반드시 순복”해야 한다(정문 제424문).

치리회에 치리권을 행사하려면 치리회가 회집되어야 하고 “정족수유지”, 혹은 “성수유지”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치리권이란 행정권과 재판권(권징권)으로(권징제1장 제5조) 나눠지는데 행정권은 행정관계 규범인 <정치>로 재판권은 <권징조례> 규범으로 다뤄야 한다. 재판규범은 치리회가 당석에서 재판하는 직할심리와 재판국을 구성해서 그 재판국으로 하여금 심리케 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재판은 고소자가 없으면, 치리회가 기소하지 아니하면 재판할 수 없고, 비록 고소자가 있다할지라도 정식 재판규례에 따라 재판을 하지 않고는 시벌할 수 없다는 “불리불벌(不理不罰) 의 원칙, 즉 심리하지 아니하고는 벌을 주지 못한다는 원칙이다(정문 제243, 187, 356). 단 “피고가 자복하면 재판하지 않고 시벌”(정문 제356문) 할 수 있으나 그 시벌도 치리회, 재판국을 통해서 가능하다.

3) 당회의 구성원과 1심 치리권

당회의 구성원이 누구이며, 각각의 권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회’에 대한 헌법적 규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합동) 정치 총론 제5항에 보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장로회 정치; 이 정치는 지교회 교인들이 장로를 선택하여 당회를 조직하고 그 당회로 치리권을 행사하게 하는 주권이 교인들에게 있는 민주적 정치이다. 당회는 치리장로와 목사인 강도 장로의 두 반으로 조직되어 지교회를 주관하고, 그 상회로서 노회 대회 및 총회 이같이 3심제의 치리회가 있다.”

이같은 내용은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야 한다.

“장로회 정치; 이 정치는 노회에서 파송하여 위임한 지교회 담임목사와 지교회 교인들이 선택한 장로와 함께 당회를 조직하고 그 당회로 치리권을 행사하게 하는 주권이 교인들에게 있는 민주적 정치이다. 당회는 목사인 강도치리 장로와 치리장로의 두 반으로 조직되어 지교회를 주관하고, 당회, 노회, 대회와 노회, 대회, 총회인 3심제의 치리회가 있다.”

당회의 소속과 노회의 소속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원심치리권도 당회와 노회로 구분되기 때문에 장로회 정치의 3심제도는 구분되어야 한다. 장로와 교인들의 소속은 당회이기 때문에 장로와 교인들의 1심 치리권은 당회에 있다. 당회를 1심으로 하여 노회와 총회로 이어지는 3심제도이다. 목사는 당회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목사의 치리권은 당회에 있지 않고 노회에 있다. 왜냐하면 목사는 노회 소속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사는 노회와 대회, 총회로 이어지는 3심제도를 갖고 있다.

4) 당회원 개념

당회는 목사와 장로로만 구성된다. 이때 당회원이라고 했을 때 목사도 당회원인가? 아니면 장로만이 당회원인가? 이같은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당회 치리권의 가부를 묻는 결의정족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컨대 목사도 당회원이라면 장로가 2명이고, 목사가 1인일 경우 총 3명 중에 2명의 찬성으로 결의 선포되면 장로 2인이 힘만 합치면 목사의 의견과 상관없이 그 어떤 안건도 평신도의 대표자인 장로에 의해서 교회가 좌지우지될 수 있다. 그러나 목사는 당회원이 아닐 경우 목사 1명과 장로 전체를 1로 보아 1:1로 결의선포하면 성직권을 갖고 있는 목사와 평신도권인 장로가 서로 견제와 균형으로 치리회를 이끌어 갈 수 있다. 이와 같은 문제로 살피건대 법리적으로 목사는 당회원이라 할 수 없다. 따라서 후자의 견해가 장로회 헌법(합동)의 정신이다.

헌법을 보자. 당회의 조직편을 보면 “당회는 지교회 목사와 치리 장로로 조직하되”라고 규정하고 있다(정치 제9장 제1조). 동 3조에 의하면 “당회장은 그 지교회 담임 목사가 될 것”이라고 규정한다. 어느 단체이든지 회장은 그 회에서 뽑는다. 그러나 당회의 당회장은 그 회인 당회원 중에서 당회장을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담임목사가 당회장이 되며, 담임목사는 지교회 교회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노회가 지교회의 청원을 받아 결정한다.
 
지교회는 청원권이 있으며 그 청원을 승낙하여 위임식을 거행하여 담임목사로 시무케 하는 결정권은 노회에 있다. 따라서 당회장은 당회원 중에서 선출한 것이 아니라 노회에서 당회장으로 위임하여 결정한다. 당회원으로 당회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당회장의 이름으로 당회에 참여한다.

정치 제9장 제2조 당회의 성수에 의하면 “목사 1인과 장로 과반수”라고 했다. 목사를 장로수에 포함시켜 전체 당회원 가운데 과반수로 개회 성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목사와 장로 과반수이다. 장로 과반수로 모였다고 할지라도 목사1인이 참석하지 않으면 당회 성수가 안된다.

(1) 목사는 당회원이 아니라 당회장이다.

당회는 노회로부터 위임하여 파송한 담임목사(시무목사)와 장로로 조직한다. 목사의 소속은 노회요, 장로의 소속은 당회이다. 목사는 당회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당회에서 치리할 수 없다. 소속인 노회로부터 치리를 받는다. 장로의 1심치리는 소속인 당회에 있다. 노회가 노회소속인 아닌 장로를 1심치리를 하면 이는 불법이다. 하회인 당회에서 소원이나 상소, 위탁, 당회에서 장로 1인 경우에만 노회는 2심 치리권이 있다. 장로는 노회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노회 회원이라 하지 않고 노회 총대라고 한다. 당회가 노회에 파송할 때만이 총대일 뿐이다.

따라서 당회의 조직은 반드시 목사와 장로로만 가능하며, 당회장은 당회원중에서 선출하는 개념이 아니라 노회 소속인 목사가 담임목사(시무목사)로 파송할 때 담임목사가 자동 당회장이 된다. 당회장은 당회원 가운데 선출한 개념이 아니요, 당회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목사를 당회원이라고 하지 않고 당회장이라고 한다. 당회장은 당회원으로 당회에서 결의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당회장으로 결의권을 행사한다.
 
담임목사가 공동의회 회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공동의회 회원은 교인들이고, 목사는 노회 회원이다. 공동의회는 “본 교회 무흠 입교인”(정치 제21장 제1조)으로 조직한다. 문제는 공동의회 회장을 공동의회 회원인 교인 중에서 선출하는 개념이 아니다. 공동의회 회장은 “당회장”이다(정치 제21장 제1조 3항) 장로는 지교회 교인이기 때문에 그 교인의 대표자로 당회 구성원, 즉 당회원이 되었다. 하지만 목사는 당회장으로 공동의회 회장을 겸한다. 따라서 공동의회는 당회장과 무흠입교인이라 할 수 있다.

제직회는 지교회 교인들 중에 직분자들로 조직한다. 제직회 역시 회장은 담임목사(정치 제21장 제2조 1항), 즉 당회장이다. 그런데 우리 헌법은 제직회 조직은 “지교회 당회원과 집사와 권사를 합하여 제직회를 조직한다”라고 했다(정치 제21장 제2조 1항). 여기서 당회원은 교인들의 대표인 장로를 의미한다. 당회와 공동의회에서 그랬듯이 제직회 역시 회장은제직회 회원 가운데서 선출한 것이 아니라 노회가 파송한 당회장, 담임목사가 겸무한다. 따라서 제직회 역시 노회 소속 파송 당회장(담임목사)과 지교회 당회원과 집사와 권사를 합하여 제직회를 조직한다.

결국 당회장이 당회, 공동의회, 제직회에서 결의권을 행사할 때 같은 교인 자격이 아닌 당회장 자격으로 결의권에 참여한다. 목사는 당회 관할이 아니라 노회 관할이요, 장로는 당회 관할에 속한다. 근거는 권징조례 제19조이다. “목사에 관한 사건은 노회 직할에 속하고 일반 신도에 관한 사건은 당회 직할에 속하나 상회가 하회에 명령하여 처리하는 사건을 하회가 순종하지 아니하거나 부주의로 처결하지 아니하면 상회가 직접 처결권이 있다.”

(2) 당회에서 성안된 안건에 대한 결의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안건이 성안되어야 한다. 성안은 동의와 재청으로 가부를 물어 통과되어야 한다.
둘째, 토론을 한다.
셋째, 교인의 대표인 장로가 동의와 재청이 있어야 한다.
넷째, 성직권을 갖고 있는 당회장이 가부를 물어야 한다.

다섯째, 가부를 물을 때 아니라고 하면 이때 동의와 재청을 표결 처리한다. 이때는 다수결로 결정한다.
여섯째, 당회장은 다수쪽의 재청에 가부를 묻는다.
일곱째, 당회장이 가부를 묻지 않을 수 있는 권한도 있다. 반대로 당회원이 동의와 재청을 하지 않을 권한도 있다. 동의와 재청은 당회원의 권한이라 한다면 가부는 당회장의 권한이다.

교인의 대표인 장로가 동의와 재청을 하지 않으면 성직권을 갖고 있는 당회장은 그 어떤 안건도 가부를 물을 수 없다. 반대로 장로가 동의와 재청을 한다고 할지라도 당회장인 목사가 가부를 묻지 않으면 그 어떤 안건도 결의할 수 없다. 가부를 물을 수 있는 권한과 묻지 않을 수 있는 권한이 당회장에게 있다. 반대로 동의와 재청할 수 있는 권한도, 장로에게 있다. 따라서 협력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결의도 할 수 없다.

5) 목사와 장로의 관계

목사와 장로의 권한을 이야기할 때 먼저 장로의 권한에 대한 헌법 규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강도와 교훈은 그의 전무 책임은 아니니 각 치리회에서는 목사와 같은 권한으로 각 항 사무를 처리한다.”(딤전 5:17, 롬 12:7-8)(정치 제5장 제2조)

치리회의 성질과 관할 - 교회 각 치리회에 등급은 있으나 각 회 회원은 목사와 장로뿐이므로 각 회가 다 노회적 성질이 있으며, 같은 자격으로 조직한 것이므로 같은 권리가 있으나 그 치리의 범위는 교회헌법에 규정하였다(정치 제8장 제2조).

모든 치리회는 목사와 장로로 조직한다. 그런데 장로회 정치에 있어서 지교회의 가장 기본 치리회는 물론 당회라고 해도, 교회를 설립하거나 당회를 조직하게 하는 권한은 당회에 있지 않고 노회에 있으므로 장로회 정치에 있어서 중심 치리회는 노회이다. 당회를 지교회 당회라고 부르는 것은 노회를 중심한 호칭이다. 여기서 노회적 성질이란 다음과 같다.

첫째, 장로회 각급 치리회는 모두 성직권을 가지는 목사와 (교인의)기본권을 가지는 성도들의 대표인 치리장로로 구성하여, 이를 동등하게 하며 상호 견제하도록 조직한다는 의미에서 이를 노회적 성질이라고 한다.

둘째, 다루는 일이 신령적인 문제로서 다같이 신성유지권과 질서유지권을 지닌다는 의미에서 이를 노회적 성질이라고 한다.

셋째, 관할 구역을 전관하는 자치권이 있을뿐더러 동등한 공동 감시권을 가지고 조직되는 상회원으로서 동등한 치리회를 감시하며 감시받는 다스림에 참가한다는 의미에서 이를 노회적 성질이라고 한다.

넷째, 각급 치리회 회원들이 다같이 소속 치리회를 대표할뿐더러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신령한 직무가 있다는 점에서 노회적 성질이 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목사와 장로의 관계를 살펴보자.
(1) 강도와 교훈은 장로의 전무 책임은 아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합동) 헌법, 정치 제3장 제2조에 “교회에 항존할 직원은 다음과 같으니 장로(감독) (행20:17, 28, 딤전3:7)와 집사요, 장로는 두 반이 있으니, 1. 강도(講道)와 치리를 겸한 자를 목사라 일컫고, 2. 치리만 하는 자를 장로라 일컫나니 이는 교인의 대표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장로에게는 강도권이 없고 치리만 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통합)에서는 장로가 노회장까지 할 수 있다. 장로가 노회장이 된 이후 노회가 개회될 때 노회장이 설교를 하는데 장로가 설교를 하게된 상황이 되고 말았다. 노회라는 치리회에서 회원이 목사와 장로인데 장로가 목사 회원 앞에서 장로가 노회 개회 설교를 하게 된 것이다. 이 일로 통합 총회에서는 연구위원회가 조직되어 이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과연 장로의 강도권에 대한 헌법은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 강도권은 장로의 전무 책임은 아니다. 지교회 강도권, 즉 설교권은 목사에게 위임된 고유 권한이다. 그 어느 누구도 담임목사 허락 없이는 강단에 설교자로 세울 수가 없다. 그러나 허위교회일 경우, 즉 담임목사가 공석일 때 당회는 노회의 지도로 다른 목사를 청하여 강도하게 하며 성례를 시행한다(정치 제9장 제5조 3항).

정치문답조례 제89문에 “목사가 없을 때에는 노회와 협의하여 주일마다 인도할 강도인을 택청(擇請)하며, 부득이할 때에는 장로가 직접 인도한다”라고 했다. 교회에서 목사가 외유중일 때 부교역자가 없는 경우 장로에게 설교하도록 일임해 주면 그때 장로는 설교를 할 수 있다. 장로가 설교하는 것이 고유 영역은 아니지만 특별한 경우에 설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목사의 요청이 오면 설교를 할 수 있다.

(2) 목사와 동등한 권한 관계

장로의 권한 두 번째로 “목사와 동등한 권한”이다. 이 권한은 목회적 차원에서 동등한 권한은 결코 아니다. 본 규정은 “각 치리회에서”, “목사와 동등한 권한”이라고 한다. 각 치리회란 당회, 노회, 대회, 총회를 지칭한다. 이 같은 치리회에서 장로는 목사와 동등한 권한으로 치리회에서 처리하고 결의하고자 하는 각항 사무를 처리한다.

목사는 교인의 기본권 위임을 받고 있는 장로를 치리회에서 목사 자신과 동등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데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곧 목사가 교인들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려는 태도로써 그것은 목사의 전형적인 월권이다.

따라서 치리회인 노회나 총회에서 목사와 장로는 동등 권한이라고 한다면 상비부 조직(노회원이 목사와 장로 동수가 아니기에 실천에는 약간의 무리는 있음)이나 특별위원회에서 목사와 장로의 동등 개념이 적용되어야 한다. 즉 목사 장로 동수로 조직되어야 한다. 동수 개념에서 목사를 1명 더 많게 하는 것은 목사의 말씀선포권을 인정하므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한 태도이다. 목사는 성경에 관하여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도록 부름을 받은 자이므로 평신도 장로보다 더 성경적인 결정을 내릴 개연성이 높다.

이런 관점에서 특히 재판국에서는 목사의 수를 과반수로 하는 것은 성경을 존중하는 신학사상이 교회의 권징조례에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권징조례 제13장 119조). 개혁신앙은 이러한 말씀중심의 사상에서 목사를 하나님의 대표자로 상정한다. 재판국뿐만 아니라 특별위원회, 시찰위원회에서 언제나 목사와 장로의 수를 동수로 하되 목사를 한 사람 더 많게 한다. 그래서 항상 이 같은 위원은 홀수로 결정된다. 여기서 이종일 목사가 말한 동등 개념에 대한 또다른 의미의 해석을 보자(「꼭 알아야 할 100가지 교회법률」204)..

장로가 목사와 같은 권한이란 말은 목사와 장로 개인이 1:1의 권한이란 말로 이해하여서는 안된다. 만일 그렇다면 장로회의 기본 치리회(당회)에서는 양권의 동등이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목사 1명, 장로 1명인 당회에서는 양권이 1:1이 되어 동등할 것이나 장로 10명이 있다면 양권은 동등이 아니라 1:10 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양권의 동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목사가 한 명인즉 그 한 명의 권한과 장로가 몇 명이 되었든 그 장로단의 권한이 동등, 즉 1:1이 되어야 하는 것이 장로회 정치원리의 기본 개념이다. 그렇다면 목사는 단 1명밖에 없는 당회에서 어떻게 하면 그 많은 장로와 1:1, 즉 동등하게 될 수 있을까?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 한 사람인 목사에게 당회장권을 주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하므로 최소한의 동등의 의미를 살리자는 것이 목사만이 당회장이 되게 한 이유이다.

당회나 노회나 총회에서 행정치리 안건이든, 사법치리 안건이든 공히 목사와 장로는 같은 권한으로 처리한다. 이 말은 교회 목양권(성직권)에서도 목사와 장로가 동등한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장로는 목사의 지도를 받아야 하는 평신도일 뿐이다. 그러나 치리회에서는 동등한 권한으로 사무를 처리한다. 이같이 장로에게 목사와 동등한 권한이 주어진 목적은 다음과 같다.

치리회에서 목사의 1인 독재에 대한 견제 기능이다. 지교회 치리회란 당회를 의미하는데 당회란 혼자 일을 처리하는 곳이 아니다. “교회 치리권은 개인에게 있지 않고 당회, 노회 대회, 총회 같은 치리회에 있다(행 15:6).”(정치 제8장 제1조) 여기서 치리권은 사법권(재판건) 행정권(행정건)이 있다(권징조례 제1장 제5조). 목사 혼자서 사법치리를 할 수 없다. 어떻게 혼자서 재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목사와 같은 동등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장로와 함께 치리회인 당회를 운영하도록 한 것은 모든 치리를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하라는 것이다. 즉 목사 1인 독재를 견제하기 위한 제도적인 법적 장치가 되려면 목사와 동등한 권한을 가진 자가 있어야 한다. 이 같은 견제는 치리회로 국한한다. 그 외 모든 목회적 관계에서는 견제가 아니라 “협력”이다(제5장 제4조 1항).

(2) 목사와 장로의 협력 관계

목사와 장로의 협력관계는 다음 두가지로 설명된다. 첫째로 목사와 장로는 치리회인 당회를 통해서 개인적인 독단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상호 협력해서 모든 안건을 처리한다. 둘째로 교회의 가장 중대한 사명은 말씀 선포와 증거이다. 그 말씀 선포와 증거를 통해서 목회적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목사가 장로와 합력하여 치리권을 행사”(정치 제4장 제3조1항)할 때 치리권과 목회적 관계에서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런 원리와 원칙이 무시되어 목사와 장로가 서로 주도권을 놓고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목사는 치리회를 통하여 장로와 협력하지 않고는 안된다. 장로 역시 치리회나 목회적 관계에서 절대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즉 치리회인 당회나 목회자의 목회를 협력해서 공동의 목표를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마치 장로는 당회나 목사의 목회적 활동을 감시하고 관리 감독하려고 하는 유혹을 쉽게 받는다. 쉽게 이야기해서 목사의 목회 활동의 일환으로 진행된 목회일정까지 감시하고 문제를 제기하려는 것은 전형적인 장로의 월권으로 생각된다.

(3) 목사와 장로의 견제와 균형 관계

“견제와 균형”은 “동등 관계”에 따른 결과이다. “교인의 기본권을 인정치 않는 치리권”은 제도적으로 성직자의 부패와 횡포를 부르는 온상이 된다. 이것은 목사의 독재로 나타난다. 그 반대의 현상이 장로의 월권으로 나타난다. 목사의 독재와 장로의 월권을 방지하는 것은 장로회 교회정치 원리와 헌법이 보장한 규정 안에서 견제와 균형은 파멸과 부패를 방지한다. 장로회 정치는 어느 한 쪽의 절대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견제와 균형을 통하여 발전하게 하는 정치제도이다.

그러나 목사가 선호한 단어는 ‘협력’이고, 장로가 선호하는 단어는 ‘동등’일 것이다. 그러나 ‘견제와 균형’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아야 하고 이 견제와 균형을 통하여 협력과 동등이 제 기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원리를 깨닫지 못하고서는 합리적인 당회운영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런 원리를 무시하고 무조건 맹목적인 복종도, 충성도 결국은 교회의 균형적인 발전을 도모하지 못할 것이다. 성경은 굴종을 원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순종을 원하고 있다.

4. 결론

1884년 9월 20일. 미국 장로교 선교회 소속이었던 알렌 선교사가 중국을 통해서 조선에 들어왔다. 개신교 선교사의 첫 한국 입국이었다. 알렌은 목사가 아니라 의료선교사였다. 최초의 목사 선교사는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에 입국하였다. 미국 북장로교 선교회 소속인 언더우드 선교사였는데 그는 아직 결혼하지 않는 총각 선교사였다. 장로교 선교사 외에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 선교사와 함께 조선에 목사 선교사가 최초로 입국하여 복음을 전했다.

장로회 소속 선교사들이 입국하여 한국에 장로교회가 세워졌다. 명칭은 "조선예수교 장로회"였다. 교회가 세워지면서 미국 북장로교의 헌법을 번역하여 조선예수교 장로회 헌법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미국에서처럼 교회가 세워지면서 장로를 세웠다. 그리고 목사를 세우기 시작했다. 1907년 최초로 조선에 7명의 목사가 탄생되자 이제 조선 사람으로 목사와 장로가 세워져 이제 조선장로교회에도 당회가 조직되었다.

1907년 조선인 목사가 세워지기 전에 미국 선교사와 조선교회에서 임직받은 장로와 함께 당회를 조직하여 교회를 다스리게 되었다. 장로교회는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당회를 조직하여 교인들을 치리하고 교회를 다스려나간다. 어느 교회이든지 장로의 인격과 성품은 그 교회 이미지였고, 그 이미지 이상으로 교회는 성장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장로의 인격과 성품은 교회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일반 성도나 집사로 봉사할 때에는 전 교인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위치가 아니기 때문에 인격과 성품이 좀 부족해도 교회에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장로가 되면 그 직분은 전교인들에게 영향력을 끼친다. 행동 하나하나, 언어 한마디 한마디가 전 교인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그때 교인들은 그러한 장로를 통해서 교회를 평가하고 신앙을 평가한다.

더더구나 장로교회는 장로정치 체계를 갖고 있다. 모든 회중이 참석하여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고 다스리는 일을 결정하지 않고 목사와 장로가 당회를 구성하여 이 일을 시행한다. 교회의 대표인 목사와 교인들의 대표인 장로가 교회의 중요한 결정을 한다. 그러다 보니 목사와 장로에게 일정한 권력이 집중된다. 권력을 갖고 있는 목사와 장로가 일정한 인격과 성품이 모자라면 그 권력은 교인들에게 원망과 상처가 된다.

교회에서 다스리는 권력은 필요하다. 교회의 순결성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교회 순결성을 위해서 권력이 필요하고 그 권력을 행사하는 당회가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당회의 구성원인 장로가 교인들에게 모범을 보이지 못하거나 성품에 있어서 모나있다면 교회의 순결성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혼란을 초래한다.

교회에서 장로가 될 수 있는 일차적인 자격은 믿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교회에 출석하는 어느 교인들을 붙들고 물어봐도 스스로 믿음이 없다고 말한 사람은 없다. 사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교회에 나왔고 그 믿음의 외적인 평가로 직분을 받을만한 자격을 갖춘자로 인정되었기에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었을 것이다.

결국 장로가 되는 일차적인 자격 조건은 믿음이다. 그러나 그 믿음이 행위의 열매로 드러나게 하는 인격과 성품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장로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하면 배우면 된다. 그러나 장로가 교인들을 돌보는데 필요한 고매한 인격과 성품은 배운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타고나야 할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연단과 훈련을 통해서 자신을 절제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과 섬기려는 성품은 장로의 사역을 감당하는 중요한 자격 조건 중에 하나이다.

장로교회의 장로제도, 당회제도가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당회가 없을 때와 있을 때를 비교하면 차라리 장로와 당회가 없는 것이 교회 성장에 지름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그러나 필자는 장로와 당회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그 제도를 수행하는 사람이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장로교 제도 자체를 놓고 볼 때 그 제도는 나무랄 것이 못된다. 제아무리 제도가 좋다고 할지라도 그 제도를 시행하는 사람이 문제가 되는데 사람의 인격에 문제가 있다면 그 좋은 제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교회의 권력은 어떤 사람의 손에 들려있느냐에 따라 그 권력 집행은 복이 될 수 있고 화가 될 수 있다.

한국장로교회에 전해 내려오는 아름다운 이야기인 주기철 목사와 조만식 장로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주기철 목사가 산정현교회에 시무할 때의 일이다. 조만식 장로는 그 교회의 장로이다. 주일 예배가 시작되었다. 예배가 시작한 후에 조만식 장로가 늦게 들어왔다. 조 장로가 교회에 오다가 중요한 사람을 만나 잠간 얘기하다가 늦었던 것이다. 예배시간에 늦게 들어온 조만식 장로를 향하여 주기철 목사는 다음과 같이 강단에서 말했다.

"장로님, 거기 서서 예배드리시요. 장로가 늦으면 교인이 무엇을 본받겠습니까?"

조 장로는 그 날 뒤에서 선 채로 예배를 드렸고 예배 후 주기철 목사를 찾아와 주의 종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조만식 장로는 오산학교 교장이었고 청년시절에 주기철은 그 학교의 학생으로 조만식 장로에게 배웠으니 그의 제자였다. 주기철 목사를 산정현교회에 청빙할 때 교회 대표로서 주 목사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허락해 달라고 간청했다는 얘기는 우리의 가슴을 울리게 한다. 자기 제자였지만 주의 종으로 섬겼던 그는 진실로 겸손의 사람이었으니 그 목사에 그 장로였다.

장로교회의 당회를 통한 장로정치는 성경적이라고 믿는다. 성직권을 가지고 있는 목사와 교회 기본권을 갖고 있는 교인들로부터 위임받은 교인들의 대표인 장로가 협력하여 교회를 이끌어간다. 장로 없는 목사의 목회는 가능하지만 목사 없는 장로의 목회가 불가능한 것은 교회의 본질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로는 말씀을 선포하는 목사의 말씀권에 의존되어 있고 그 빛을 보게 된다.

겸손하고 훌륭한 목사 밑에 장로라는 말은 통해도 훌륭한 장로 밑에 목사라는 말은 있을 수 없는 것은 목사를 통해서 선포된 말씀권이 장로에게 종속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소재열 목사/ 한국교회법연구소 소장, 법학박사, 역사신학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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