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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로교회 역사이야기
‘교단설립 100주년’, 역사표기 오류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100주년인가, 총회(합동)창립 100주년인가?
기사입력: 2011/07/21 [20:18]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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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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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1일은 총회조직 100주년 기념일이다. 총회가 조직되었다는 것은 한국장로회 교파인 교단이 설립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조선예수교장로회”라는 교파의 최고 치리회인 총회가 조직되었다는 의미이다. 한국에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교파는 총회를 조직한 해인 1912년 이전에 이미 설립되었다. 따라서 지금 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 교단설립 100주년>이라는 명칭은 잘못됐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창립 100주년>이라는 명칭으로 사용해야 한다.

▲ 1912년 제1회 총회 회의록  © 리폼드뉴스
이미 우리 합동총회는 2006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100년사>를 출간했다. 이때에 총회는 커다란 오류를 범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교파 명칭과 그 장로회 교파의 <최고 치리회인 총회>를 구분하지 못한 오류를 범한 것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100년사>라고 해야 하는데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100년사>라고 잘못 역사를 기록했다. 당시에 필자는 이 문제를 계속 제기했으나 무시됐다.

문제는 이번 총회 제95회기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100년사>를 출간하기 위해 편집위원을 구성했다고 한다. 우리 합동측은 이미 1907년을 기준으로 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100년사>라는 책과 1912년을 기준으로 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100년사>가 또 출간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총회 100년의 시발점이 전혀 다른 두권의 총회 100년사가 존재한 것이다. 또한 총회라는 유권해석이 전혀 다른 총회 100년사라는 두 권이 존재한 것이다. 이는 우리들의 아픔과 혼란이 아닐 수 없다.

통합측은 2003년에 <총회창립 90주년 기념 대한예수교장로교회사>를 상,하권으로 출간했다. 통합측은 역사의 기록을 정확히 하고 있다. 소위 통합측은 한국교회사에 대한 역사학자들이 이를 이끌어갔다. 그러나 합동측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보여진다. 역사학자들에게 맡기지 않고 교단의 정치 핵심그룹들이 이 일을 이끌어간 결과이다.

어떻게 해서 1912년이 <교단설립 100주년>이라는 말인가? 총회가 공식적으로 <교단>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가? 1942년을 끝으로 일제는 <총회>를 폐쇄하고 <교단>이라는 명칭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와 전국 교회를 장악하지 않았는가? 일제의 잔제인 <교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교단설립 100주년>이라 하고 있으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는 이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가?

다음은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역사적 흐름과 그 전통, 정체성을 시대별로 알아보자.


◈ 한국 땅에서 첫 번째 그리스도교회(장로교회) 조직

1884년 9월 20일에 알렌선교사가 입국하고 1885년 4월 5일에는 언더우드 장로교 선교사가 입국했다. 복음을 전한 이후 장로교가 최초로 세워진 다음 기록을 보자. “이곳 사업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진척되고 있습니다. 지난 화요일(1887. 9. 27) 저녁 14명의 교인들로 한국 땅에서 첫 번째 그리스도교회 조직을 완료했으며, 지난 주일에 교인 한 사람이 더 늘어났다는 사실을 첨부해야만 하겠습니다. 한국 교인들이 한 사람 한 사람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사업도 날로 번창해 가고 있습니다. (중략) 남쪽에서 북쪽에서 그리고 서쪽에서 세례지원자들이 문답과 세례를 베풀어 달라고 아우성입니다.”(H.G.Underwood′s Ietter to the Board of Foreign Missions of the Presbyterian Church of America, Sep. 30. 1887.)

"1주일 전 화요일 장로 두 사람을 선출함으로써 장로교회 조직을 완성했습니다. 그 둘은 지난 주일(1888. 10. 2)에 안수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14명으로 (교회를) 조직했는데 주일에 한 사람 더 추가되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교회는 매일같이 성장하고 있습니다.”(H.G.Underwood, “Korea, First Church in Korea, Oct. 7. 1887", The Church at Home and Abroad, Vol.3, Feb. 1888, pp. 196-197.)

◈ 미국북장로회 미션 및 빅토리아(호주) 미션연합공의회(1889년)

선교사들이 입국한 후 1889년에 선교사들에 의한 최초의 선교 연합 기관인 장로회공의회를 처음으로 조직하였는데 당시 조선에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회와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 선교회 선교사들 뿐이었으므로 공식 명칭은 「미국 북장로회 미션 및 빅토리아(호주) 미션 연합 공의회」칭하였다.

이 공의회는 1890년 서기인 데이비스 선교사가 부산 임지로 가던 중 갑자기 병사함으로써 빅토리아 미션회원이 없게 됨으로 3,4회 정도 모임을 갖은 후 폐지되었다(선교사 공의회 영문회의록, p. 5).

◈ 장로회 정치를 쓰는 미선공의회(1893-1990년)

1893년 1월 28일에 선교사 공의회를 조직할 필요를 느껴 경성 빈톤 의사 집에 모여 “장로회정치를 쓰는 미슌공회”를 조직했다. 설립자는 미국 남장로회미슌회원 선교사들과 북장로회미슌회원 선교사들이 공의회를 조직했는데 이 공의회의 목적은 한국에서 프로테스탄트 신경과 장로회 정치를 사용하는 연합교회를 설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공의회는 그 소속 선교회에 대하여는 권고권만 있으나 교회가 장로회 규칙대로 완전히 성립될 때까지는 전국 교회에 대해서 전권치리(專權治理)할 수 있는 유일한 상회(上會) 역할을 했다(곽안련, 朝鮮耶蘇敎長老會史典彙集, p. 15-16).

◈ 조선예수교장로회 합동 공의회(1901-1906년)

1901년부터 조선인 총대가 참가하여 선교사와 조선인 총대 합동공의회를 조직하였는데 그 회원은 조선인 장로 3인, 조사 6인, 선교사 25인이었다. 1906년까지 조선인 총대가 공회에 참가하였으나 교회 일에 익숙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조선인 목사가 없고, 장로도 희소한 관계로 각처 총대의 친목하는 것과 교회 일을 처리하는 규칙과 어떻게 처리할 것을 실습도 하고 토론도 함으로 유익을 가져오는 선에서 멎어진 합동공의회가 있었다.

1901년 합동공의회 제1회 회의록 서문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장로교회에 4종의 회명이 있으니 1은 당회니 차(此)는 한 지회를 치리하는 목사와 장로가 회집하는 것이요, 2는 노회니 여러 당회가 파송한 목사와 장로가 회집하는 것이요 3은 대회니 모든 노회가 파송한 목사와 장로가 회집하는 것이오 4는 총회니 각처(處)노회가 파송한 목사와 장로가 회집하는 것이라 연측(然側)당회는 한 지회를 치리하고 노회는 속한 당회를 치리하고 대회는 속한 노회를 치리하고 총회는 속한 대회를 치리하느니 우리 조선은 각처에 교회를 설립한지 수년에 아직 당회는 다 설립되지 못하였으나 의논할 사건이 너무나 많은 고로 지금 위시하여는 전국지회가 일처에 회집하여 의논하게 되매 그 명칭을 조선장로회 공의회라 하니 이는 장차 노회가 설립될 장본이라 여(余)는 이 회가 속히 조직되어 장차 이 나라에 이 네 가지 치리회가 완전히 성립되기를 희망하노라.”

◈ 대한국 예수교 장로회 독노회(1907-1911년)

“그러나 아직 한국 목사를 장립치 못함으로 노회를 이루지 못하고 그 회 이름을 장로공의회라 칭하고 저간에 15차를 모이더니 하나님께서 은혜를 풍부히 주심으로 수년 전에 미국 남장로회교회와 북장로교회와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장로교회와 캐나다 장로교회 이 네 곳 총회의 권을 얻어 한국 교회에 노회되는 취지를 설명하시되 이 노회는 교회의 머리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십자가를 튼튼히 의지하고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고 세상사람 앞에 영화로운 빛이 되며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정결한 노회를 이루어야 하겠다 하시고, 주강생 1907년 9월 17일 오정에 한국 노회를 설립한 후에 대한에 신학교 졸업학사 일곱 사람을 목사로 장립하고 대한국 예수교 장로회 노회라 하였으니 이는 실로 대한국 독립 노회로다.”

◈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1912-현재까지)

“주후 1912년 9월 1일 상호 10시30분에 예수교장로회 조선총회 제1회로 평안남도 평양경창문안녀성경학원에서 전회장 이눌서 씨가 히브리서 12장에 장자회리는 문제로 강도함으로 개회한후에 마포삼열 씨가 떡을 가지고 원두우 씨는 포도즙을 가지고 축사함으로 성찬례를 거행하고 정회하였다가 하오 2시 30분에 계속하여 김석창 씨의 로마서 8장에 ”나는 괴롭다“는 문제로 강도한 후에 김종섭 씨의 기도로 폐회하다.”

대한민국의 공식 칭호를 대법원이라고 하지 않듯이 대한예수교장로회의 공식 명칭을 총회라고 말하지 않는다. 총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최고 치리회일 뿐이다. 따라서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이라고 하는 것이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헌법이라고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대법원 헌법이라고 하지 않고 대한민국 헌법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소재열 목사/ 한국교회사, 법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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