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신사도 운동에 대한 개혁신학적 비판 14

김순정 | 기사입력 2026/05/16 [07:29]

[논문] 신사도 운동에 대한 개혁신학적 비판 14

김순정 | 입력 : 2026/05/16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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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치유론 비판

 

내적치유는 그들이 주장하는 중요한 사상이다. 풀러신학교의 교수 챨스 크래프트(Charles H. Kraft)는 나이지리아 선교사에서 돌아와 교수를 했다. 그는 영적 전쟁으로 내적 치유사역과 축사사역에 대한 3권의 책을 썼다. 깊은 상처를 치유하시는 하나님(1993), 사악한 영을 대적하라(1993), 영적전투에서 승리하라(1994)를 통해 그는 우주적 차원의 영적 전쟁과 지상 차원의 영적 전쟁을 강조한다. 그리고 내적 치유를 통한 지상 차원의 영적 전투에 중점을 두는 영전전쟁론을 펴나간다.

 

이들은 인간의 범죄를 모두 사탄에게 돌린다. 사탄이 유혹했기 때문에 인간의 책임은 사라지고 모두 사탄에게 떠넘긴다(Charles H. Kraft, 영적전투에서 승리하라, 165-167). 그러나 이것은 옳은 주장이 아니다.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폴리슨(David Powlison) 교수는 이에 대하여 맹렬한 비판을 가한다. 그는 성경이 말하는 영적전쟁(1996)이라는 책에서 영적전쟁에 관하여 구약과 신약을 통전적으로 고찰하면서 성경적 영적전쟁은 축사와 능력사역으로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도래를 선포한 예수님과 사도들 외에는 누구든지 축사가 아니라 회개와 용서 그리고 믿음과 순종을 통하여 사탄의 세력을 물리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축사사역의 위주의 영적 전쟁은 대단히 비성경적이면서 마술적 세계관의 영향 때문이라고 일축하며 비판한다.”(이영배, “교회성장학파의 영적전쟁에 관한 개혁주의적 평가와 대안,” 16-17)

 

신사도 운동의 한 사람인 손기철은 사도 시대 이후에도 은사나 기적의 치유가 계속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모든 사람을 치유하시기 원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개혁신학과 거리가 멀다. 박형룡 박사는 성경 계시가 완료된 이후에는 계시의 통로나 확증의 수단으로서 기적이 중단되었다고 밝힌다(임창무, “신사도운동에 대한 비판적 연구,” 30). 단지 계시와 무관한 신앙치병(치유)는 인정한다.

 

치유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응답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치유를 해주실 수도 있고 그냥 두실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이 성경적인 신앙이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께 명령하거나 인간이 무슨 능력이 있어서 사람에게 치유를 줄 수는 없다. 그러나 신사도 운동은 사람에게 능력이 있고 자신의 능력으로 치유를 베풀어 주는 신적 존재, 치유의 힘을 가진 존재로 사람을 높이고 추앙하게 만든다. 이것은 성경의 치유가 아니고 성경이 말하는 신앙이 아니다.

 

(1) 성경의 치유와 신사도 운동의 치유는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

 

치유를 말할 때 성경에 나타난 치유와 오늘날 신사도 운동의 치유를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신학적으로 큰 문제에 놓이게 된다. 성경의 치유는 목적이 있다. 그것은 이적의 한 방편이다. 이적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리는 방편이다.

 

신약에 나타난 치유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계시, 구약 예언의 성취,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방편으로서 보여주신 것이다. 또 사도행전의 치유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소개하는 차원의 치유이다. 치유의 목적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는 방편, 계시의 방편이었다.

 

그러나 신사도 운동에서 나타나는 치유는 그런 차원이 아니다. , 사탄의 역사인 경우가 많고, 신사도 운동가들의 자기 자랑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또 치유 후에는 막대한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성경은 말세에 사탄도 치유를 보여주고 신비한 기적들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고후 11:14-15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바울은 사탄이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 했다. 또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나타나는 행위, 기적만 가지고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13:1-14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12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13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14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2) 치유는 하나님의 기도 응답이다

 

성경 속에서의 치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일 경우가 있다. 그러나 다른 경우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으로서 주신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성경의 치유를 모두 은사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으로 치유를 주신 일도 있고, 하나님께서 병 고침의 은사를 주신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치유가 모두 은사라고 하거나 모두 기도 응답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경은 두 가지를 다 기록하고 있다. 신사도 운동은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치유를 은사로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병 고침의 은사를 가진 자는 특별한 지위를 가지며 특별한 은혜를 입었다는 식으로 높이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성경의 은사론을 잘못 이해한 결과이다. 따라서 신학 수업의 필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3) 치유와 예수 그리스도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의 치유 사역이 세 가지로 등장한다. 요한과 함께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고친 사건(3:1-11), 중풍병자 애니아를 고친 사건(9:34), 죽었던 다비다를 살려낸 사건(9:38)이다. 성전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고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후에 첫 치유로 볼 수 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를 치유의 근거로 설명한다.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이 구절을 자세히 보면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강조하고 있다. 즉 이 사건의 핵심은 베드로, 베드로의 능력, 베드로의 은사, 베드로의 기도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베드로의 능력이나 은사나 기도로 고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으로 그가 일어났음을 말한다. 이것이 이 사건의 핵심이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치유를 연결해 설명한다.

 

4:9-12 “민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베드로는 자신의 치유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연결해 설명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기 전부터 이미 행하시던 치유를 보고 들은 이들은 자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 사역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래서 베드로의 치유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베드로가 중풍병자 애니아를 고친 사건에서도 베드로는 이렇게 선포한다.

 

9:34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베드로는 중풍병자인 애니아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신다고 선포한다. 즉 베드로가 고친 것이 아니다. 그의 은사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치신 것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사건은 다비다를 살린 사건이다. 베드로는 죽은 다비다를 살린 사건을 이렇게 기록한다.

 

9: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베드로는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죽은 다비다를 살려주신다. 이것은 베드로의 은사이거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 살려주신 것이다. 그래서 신사도 운동이 주장하는 대로 모든 치유가 은사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치유 능력과 결과는 성경의 치유 사건의 결과와는 전혀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신사도 운동의 치유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빠져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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