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조선총독부, 거스리는 언론 기사 탄압 '반면교사'

사설 언론 발행인이 비록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회원이 할지라도 총회는 거슬리는 비판적 기사라고 하더라도 총회 임원회가 이를 조사하는 행위는 온당하지 않다.

리폼드뉴스 | 기사입력 2025/07/28 [16:41]

[사설] 조선총독부, 거스리는 언론 기사 탄압 '반면교사'

사설 언론 발행인이 비록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회원이 할지라도 총회는 거슬리는 비판적 기사라고 하더라도 총회 임원회가 이를 조사하는 행위는 온당하지 않다.

리폼드뉴스 | 입력 : 2025/07/28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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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폼드뉴스) 제8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1919104일 평양신학교에서 개최됐다. 이날 직전 총회장인 김선두 목사가 개회를 선언해야 하지만 부총회장이었던 마포삼열 선교사가 개회 선언을 했다.

 

그 이유는 김선두 목사가 독립운동으로 일제에 의해 경성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었기 때문이다. 총회장이 투옥되어 총회를 개회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회의록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회장 김선두 씨가 31일에 조선 독립운동 사건으로 경성 서대문 감옥에 수감되어 본 총회로 보낸 편지에 문안함과 축복함과 회장 직무를 마포삼열 씨에게 위임한 말씀을 서기가 낭독하매 회중이 슬픈 마음으로 부회장이 회장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다.

 

고종은 1910년 한일합방의 치욕을 지켜보면서 191931 운동이 일어나기 직전 121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67세로 승하했다.

 

191931 운동은 제2대 조선 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를 총독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그의 퇴진은 일제의 무단정치도 잠시 머뭇거리는 모양새를 취했다.

 

후임 총독 사이트 마코토는 부임 이튿날인 191933일 문화정치를 표방하는 4개 항의 훈시를 발표했다. 이 훈시는 무단정치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형식적으로 일부 변화가 있었다.

 

종전의 헌병 경찰 제도를 보통 경찰로 바꾸고 조선인의 관리 임용과 처우를 개선했다. 그리고 교육기관의 설립 요건을 완화했다. 문화정치 일환으로 금지해 온 민간지의 발행을 허용했다.

 

일제는 19077월 공포한 광무신문지법을 전가의 보도로 삼아 신문발행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해 왔다. 한국 언론으로는 암흑기였다. 일제의 기관지 매일신보만 허용되었다.

 

이제 길이 열렸다. 192035일에 조선일보가 창간하게 되었다. 원래 3131 운동 1주년을 기념하여 창간하려고 하였으나 조선총독부가 조선 민중을 선동할 우려가 있다라며 35일로 연기하여 창간호를 발행하게 되었다.

 

동아일보 역시 192045일에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이는 1919년 새로 부임한 사이트 마코토 총독의 문화정치 일환이었다.

 

총독부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논조가 눈에 거슬리면 사사건건 탄압을 가했다. 특히 일본 황실의 존엄을 손상할 경우,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다양한 수단으로 탄압하였다.

 

신문발행 전에는 간담, 주의, 경고 등으로 주눅 들게 하고 신문발행 후에는 삭제, 압수, 정간, 폐간 등을 옭아맸다.

 

특히 동아일보가 1920415일 자 평양에서 만세 소요라는 제목으로 평양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를 상세히 전했다가 창간 2주 만에 배포 금지됐다. 논조가 눈에 거슬리면 사사건건 탄압을 가했다.

 

조선총독부의 문화정치 일환으로 기독교 역시 교계 신문 및 잡지를 발행할 수 있었다. 1920년 조선총독부의 문화 정책 일환으로 <기독신보>는 기독교와 교회 관련 내용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적 뉴스도 보도하였다.

 

일제의 감시 때문에 종교 뉴스만 보도할 수밖에 없었으나, 192024일부터 시사 뉴스를 보도하게 되었다. 이날 사고에서 금호(今號)부터는 時事[시사]記載[기재]ᄒᆞᄂᆞ이다[하는도다]”라고 공지하였다.

 

이후 해외 소식은 물론 일제를 비판하는 글도 가끔 보였고, 이런 영향으로 19차례에 걸쳐 신문 압수 조치를 당했다. 무서운 일제의 탄압에도 기독신보는 언론의 사명을 다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는 해방 후 4개 교단으로 분열했다. 교파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기관지가 있고 사설 언론이 있다. 기관지를 제외한 모든 사설 언론은 언론의 자유를 표방한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신문법)에 의해 운영한다.(관련 기사 : 남송현 목사, 대구서현교회의 손해배상(기) 소송에 승소:리폼드뉴스)

 

사설 언론 발행인이나 기자가 비록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회원이라 할지라도 총회는 거슬리는 비판적 기사라고 하더라도 총회 임원회가 이를 조사하는 행위는 온당하지 않다. 서로의 공익과 사익의 인과관계에 대해 소통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야 한다. 소통의 부재는 서로의 불신을 부를 수 있다.

 

검찰은 사실과 개인적인 의견 표명이 혼재한 기사 내용에 대한 명예훼손 여부는 엄격하게 판단하여 공익적 알 권리 차원에서 언론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한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는 무제한 적으로 자유를 보장받지 못한다. 기사에 대한 책임이 있다. 또한 손해를 보았다는 자들은 언제나 언론 중재위원회나 민형사상 소송으로 대응하는 길이 각종 법률로 보장되어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매년 9월에 개최된다. 이때는 임원 선거가 있다. 임원 선거는 언제나 치열하다. 그 치열함 속에서 부정 뇌물 선거는 과거나 지금이나 고질병이다. 언론의 비판적 견제는 사라진 지 오래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사라지고 돈으로 거룩한 성직을 가지려는 발상은 언론의 아무런 견제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다. 이제 소급해서 10억 원 가까운 선거 자금은 은행 금융거래 정보로 확인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자유로운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거슬리는 기사를 탄압했던 역사를 회고해 보면서 오늘 언론의 사명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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