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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언덕에서 바라 본 세상
행복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행복하십니까가 아니라 행복할 이유를 갖고 있습니까?
기사입력: 2016/07/17 [08:12]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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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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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폼드뉴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행복과 복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복이라는 표현보다 축복이라는 말이 더 마음에 와 닫는 단어로 자리잡고 있다. 축복이라는 말은 '복을 빌어준다'는 단어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축복해 주신다'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복을 빌어준다'는 이상한 의미가 돼 버린다.

그래서 성경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내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리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3)라는 말씀에서도 분명이 ‘복’과 ‘축복’을 구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것은 복이며, 우리들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복을 빌어준다고 했을 때 이를 ‘축복’이라 한다.

성경은 복에 관해서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창 1:28)라고 말씀하시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 다스리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복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창 6:8) 노아에게 이어지고(창 9:1), 아브람에게 이어진다(창 12:2~3, 22:17~18). 이 복은 대를 이어 이삭에게 이어지고(창 25:11, 26:3~4), 그의 아들 야곱에게 이어진다(창 35:11).

족장시대를 지나 애굽에서 민족적인 단위로 번창한 히브리민족에게 동일한 약속의 복이 이어진다(출 1:7). 오히려 학대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게 된다(출 1:12, 20).

아담이후 아브람과 그의 자손과 “네 씨가 크게 번성”하게 되며, 결국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라고 말씀한다(창 22:17~18).

이러한 ‘자손’과 ‘네 씨’에 대한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씨)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갈 3:16)고 말씀한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상태는 곧 복의 상태이며 거룩의 상태인데(창 2:4) 이는 행복과 기쁨과 희락의 상태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왜 이러한 복과 행복을 주셨는가? 성경은 복을 받는 비결이나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한 주 목적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심을 알려주기 위해서 기록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을 하나님의 자기계시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어떻게 자신을 계시하셨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는 길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셨다. 우리는 이를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관점, 혹은 구속사적인 맥락에서 이를 취급한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다양한 인물들이 어떠한 복을 받았는가, 그래서 우리들은 그 속에서 복 받는 비결을 찾아낸다. 또한 성경에 기록된 인물들이 어떠한 행복속에 살았는가를 찾아내어 행복의 비결은 무엇인가, 과연 당신은 행복한가라고 묻는다. 이는 성경 전체 의미의 맥락을 담아내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은 성경에 등장한 각종 인물들에게 무엇 때문에 복을 주셨고, 무엇 때문에 행복하게 하셨는가? 그것은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였고, 그러한 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었다. 따라서 성경을 통하여 복받는 비결이나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을 찾아내는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 복을 주셨고 행복하게 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왜 우리들에게 복을 주셨고 행복을 주셨는가 라고 물어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혼이 잘되고(완료) 구원을 받고, 복을 받고, 행복한 사람들이 되게 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 이유를 잊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 주셨다면, 나에게 복을 주셨다면 무엇 때문에 주셨는가? 이 사실을 확인하게 되면 나는 행복해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궁극적인 목적은 내가 행복해지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다른 사람에게 나의 행복을 통해서 하나님을 소개해 주는데 있다. 이를 우리들은 전도라는 단어로 의미를 담아낸다.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없다는 의미와도 같다. 내가 살아야 할 목적도 의미도 없이 무의미하게, 무책임하게 살아가는 자들이다. 이들에게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전도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더더욱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의미도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행복해지는데 궁극적인 인생의 목적을 갖는 경우는 이 행복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남을 죽이고 무너뜨려야 내가 살고, 내가 행복해진다고 믿는 사람들의 삶은 약육강식의 비정한 원리가 통할 뿐이다. 그래서 의외로 신앙인들의 성격은 고집불통으로 이어진다. 그들에게 도저히 은혜의 개념이 자리 잡지 못한다. 즉 이스라엘이 아닌 야곱식의 삶으로 살아간다.

따라서 “당신은 행복합니까”가 아니라 “당신은 무엇을 위해 행복을 찾습니까?”로 질문해야 한다. 여기에 우리 신앙인들의 정체성이 있다. 내 중심으로 내 안에서 행복해야 할 이유를 찾는 자들에게, 그것이 거절되고 부인될 때 극단적인 선택이나 공허함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에 비해 나는 덜 행복하다는 차등적 개념의 행복론은 자신을 학대하고 좌절과 절망의 늪으로 빠지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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