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정욕의 폐해

본문 - 4:1~4

김종준 | 기사입력 2014/12/21 [22:48]

[설교] 정욕의 폐해

본문 - 4:1~4

김종준 | 입력 : 2014/12/21 [22:48]
▲김종준 목사(꽃동산교회 담임)     ©리폼드뉴스
“인류의 역사는 싸움으로 시작해서 싸움으로 끝난다”고 혹자는 이야기 했습니다. 성경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마귀와의 싸움으로 시작해서 결국 아마겟돈 전쟁으로 세상이 끝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 노르웨이 사람이 1970년대에 낸 통계에 의하면 인류역사에 큰 전쟁만 해도 14,500건에 달한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까 우리 민족도 3,000번 이상의 크고 작은 전쟁을 치루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성경에도 보면 얼마나 많은 치열한 싸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왜 이런 비참한 싸움판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그 이유를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본문1-2절입니다. “너희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너희도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사람들이 싸우고 다투는 원인이 정욕과 욕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욕과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치열하게 싸움을 해도 능히 얻지도 못하고 취하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설령 그렇게 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고 취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자기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수많은 싸움과 역사를 가진 메소포타미아,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로마를 보십시오.
 
그들은 싸움을 통하여 얻고, 취하여 승승장구 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 그들의 것이 되지 못하고 얼마가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든 것이 위에서 부터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얻었어야 하는데 인간의 정욕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 싸움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절-3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했습니다. 인간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그렇게 정욕을 채우기 위해 싸우고 다투어서 얻거나 취해서는 안 되고, 바른 기도를 통해서 즉 위에서 주시는 은혜로 얻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다시 한번 봅시다. 본문 1절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했습니다. 여기서‘싸움’이라고 하는 말은 전쟁과 같은 큰 싸움을 말하고, 다툼은 인간끼리 싸우는 작은 싸움을 말합니다. 위 내용을 보면 싸움 다툼의 원인이 정욕 때문이라는 사실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욕이 무엇입니까? 여기서 말하는 정욕은 쾌락을 말합니다. 쾌락의 사전적 의미는 “감성의 만족이나 욕망의 충족에서 오는 유쾌하고 짜릿한 감정”입니다. 쉽게 말하면 쾌락은 자기욕망 다시 말하면 자기만족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 쾌락인 정욕이 이 모든 싸움과 다툼의 근거가 된다는 말입니다.
 
모든 싸움의 현장을 보면 자기 욕망 만족을 채우려는 데서 일어납니다. 히틀러가 자기만족을 채우기 위해서 전 유럽을 전쟁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성경에도 다툼과 싸움에 관한 내용들이 많이 나옵니다.
 
창세기 13장에 아브라함과 롯의 다툼, 눅 9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다툼, 고린도교회에 일어난 심각한 분파 싸움 등을 보면 다 자기 중심, 이기심, 자존심, 자기만족을 채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신성한 교회에서 그것도 주님을 위해서 봉사를 하는데 왜 다툼이 일어납니까? 주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나보다 잘하고 인정받는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중상모략을 해서 깎아 내리려고 합니다. 그런데서 분란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모든 분란과 다툼의 원인이 정욕, 쾌락에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쾌락 때문에 찾아오는 싸움의 결과는 비참합니다.
 
우리는 헤밍웨이의 작품가운데‘노인과 바다’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 내용 가운데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다가 84일 만에 큰 상어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워낙 큰 물고기라 배에 끓어 올리기 위해서 이틀 동안이나 사투를 벌이다가 결국 고기를 배위로 건저 올렸는데 앙상한 뼈만 남은 것입니다. 이 작품이 주고자 하는 교훈은 싸움의 결과는 폐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갈라디아서 5:15에서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말씀합니다. 인간의 욕망과 쾌락 때문에 생기는 싸움과 다툼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정욕, 쾌락은 싸움과 다툼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응답까지 막는 무서운 독소입니다. 오늘 본문 2절 하반절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했습니다.
 
이 말씀은 위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다툼과 싸움을 통해서 얻으려고 하고 구하지 않기 때문에 주시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위로부터 오는 은혜와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 야곱, 한나, 여호수아, 히스기야, 엘리야, 다니엘 등등 기도를 통해서 놀라운 기적과 승리를 체험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른 기도가 응답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3절을 보십시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했습니다. 쾌락을 위하여 즉 자기 기쁨과 만족을 위하여 구하는 것은 주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응답받는 기도가 되려면 사욕을 버리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14:36의 예수님의 기도를 보십시오.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했습니다.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이런 기도가 바른 기도요, 응답 있는 기도입니다.
 
그동안 우리의 기도는 어떠했습니까? 나의 욕심과 만족을 위한 기도가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응답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정욕, 쾌락에 젖어서 신앙 생활하는 자들에게 야고보 선생은 오늘 본문 4절에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됨을 알지 못하느냐”했습니다.
 
정욕, 쾌락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싸움만 일으키고, 기도의 응답이 없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간음하는 여인이요, 세상과 벗된 것이므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성도의 관계는 신랑과 신부의 관계입니다. 여기서‘간음한다’는 것은 주님을 배신하고 세상과 짝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롬5:8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과 죄로 말미암아 원수가 되었을 때 예수님을 희생 시키셔서 우리를 구원 시켜 주시고 신부로 삼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신부가 되었으면 신랑 되신 예수를 바라보고 살아가야 되는데 쾌락을 따라 세상과 짝하여 살아가는 것이 영적간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영적 간음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요, 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과도 원수가 되면 관계가 끊어지는데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은 저주의 자락으로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 살려면 정욕, 쾌락을 버리고, 본문 6절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므로 교만하게 살지 말고 겸손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7~8절에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는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가까이 하시고, 큰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 은혜와 축복 받는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꽃동산교회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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