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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환 박사의 목회와 선교이야기
장례문화의 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기사입력: 2008/11/05 [17:38]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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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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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의환 목사(전 총신대학교 총장, 칼빈대학교 총장)


목회자들에게 당면하는 어려운 문제들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인간과의 충돌관계로 또 하나는 불신문화와의 충돌관계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전통적인 장례문화와 기독교적인 장례문화 사이의 긴장관계는 목회현장에서 흔히 당면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따라서 무속종교와 불교와 유교문화의 배경에서 내려온 전통적 가치관과 기독교적 가치관의 차이에서 야기하는 충돌과 긴장을 어떻게 목회적으로 풀어 가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목회적 과제이기도 하다.

오늘의 한국적 상황에서 기독교적인 장례문화 형성의 과정에 당면하는 몇 가지를 논하고져 한다.

1. 성경은 매장, 화장 모두 언급한다.

한국인에겐 조상의 묘를 잘 쓰면 후손들이 복을 받는다고 믿는 민속신앙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화장을 불효한 짓으로 보아온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또 화장을 하면 망자를 두 번 죽인다는 생각 때문에 화장을 꺼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화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성경은 장례의 장식에 대하여 일정한 규범을 알리고 있지 않다. 구약에 보면 족장들의 장례는 거의 매장의식을 따랐다. 아브라함이 죽으매 마므fp 앞 막벨라굴에 장사하였으며(창25:9) 이삭이 죽으매 같은 곳에 장사하였다.(창35:29). 야곱이 죽으매 야곱의 유언대로 성대한 장례식을 치룬 후 같은 곳에 장사하였다(창50:13)

신약에 보면 나사로도 무덤에 묻혔고 예수님도 “유대인의 장사법대로” 장사했다고 요한은 기록하고 있다(요19:40). 그러나 매장 아닌 화장도 언급되어 있다. 아모스 6장 10절에 “죽은 사람의 친척 곧 시체를 불사를 자가 그 뼈를 집으로 가져갈 것을 말함으로 화장의 경우 친척에 의하여 정중하게 집행된 것을 암시하고 있다. 사울왕과 그 아들들의 시신들도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 중의 장사들에 의하여 화장되었으며 이 소식을 들은 다윗왕은 그들을 칭찬하여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장사하였으니 여화와께 복을 받을지어다“고 하였다. 다윗왕의 칭찬은 물론 그들이 행한 장례의 방식 곧 화장 그 자체를 잘한 것으로 한 것이 아니라 블레셋 사람들에 의하여 비참하게 처리된 사울과 그 세아들들의 시체를 위험을 무릎 쓰고 못박힌 성벽에서 끌어내어 정중하게 장사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성경은 장사의 방법에 있어서 매장이냐, 화장이냐 그 어느 쪽을 강조하지 아니하고 형편에 따라 두 가지 방법이 다 가능한 것을 가르친다. I. V. F. 사전 ‘Dicioary of Jesus and Gosel"에 의하면 화장습관은 주전 4세기부터 주후 2세기까지 로마제국에서 일반화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교회사적으로 보면 속사도 교부들도 화형으로 순교했고 종교개혁의 선구자 존 위클리프와 존 후쓰도 화형으로 순교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화형에 의한 장례가 성경적으로나 교회, 역사적으로 유족들에 의하여 선포된 처리는 아니였다.

그러나 화장형식의 시체처리가 성경적으로 합당치 못하다고 할 수 없다. 시신이 흙 속에 묻혀 흙으로 변하든 불에 타서 재로 변하든 부활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장례의 방법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도 화장보다 매장을 여전히 선호하고 있다. 외국의 그리스도인들도 화장보다 매장을 여전히 선호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화장이 일반화되어 가고 있다. 일본은 97%, 중국이 92%, 태국이 90%, 홍콩이 72% 등의 높은 비율의 화장율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유교사상 및 풍수지리 사상 등의 영향으로 화장율은 22%에 불과하다. 이는 효 사상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2,700만개의 매장묘지가 있는 것으로 아려져 있다. 매장식 묘지는 이제 공급이 한계에 이르러 가고 있고 고건 서울시장의 설명에 의하면 십년내에 서울 주변의 묘지를 위한 가용 용지는 한계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이 같은 인구증가와 제한된 매장공간을 고려할 때 화장이 불가피한 선택적으로 다가올 것으로 내다본다. 4천 4백만 남한인구 중에서 매년 평균 25만명이 죽어가는데 현행 묘지법의 따라 매장한다면 매년 250만 미터 제곱의 국토가 묘지로 할애되어야 한다. 1998년 2월 현재 남한의 묘지면적은 996평방 킬로미터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전국토의 가용면적의 4,3%에 해당된다. 서울시의 면적의 1.6배이며 공장용지의 2.4배에 이른다. 2000만 기의 장묘에 매년 필요한 묘지수는 27만명분이고 매년 약 20만기(9평방킬로미터)의 새로운 묘지가 발생하고 있다. 이는 분묘 매1기당 1.5평을 감안할 때 그 소요면적은 여의도의 1.2배에 이른 것이다. ( 기독교신문. 1992. 2. 7)

이러한 추세로 감안할 때 국가적으로도 화장을 권장할 때가 멀지 않았다고 본다. 국토의 제한성을 고려하여 화장이 일반화 되어가고 있다. 화장이 일반화 될 때 납골당 무제 평토장 문제도 따라서 긍정적인 수용을 얻게 될 것이다. 동시에 묘지의 지나친 고급화 및 장례비와 묘비설치의 과잉지출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2. 장례문화에 대한 교회적 대응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경우 큰 교회는 자체 교회의 묘지를 형성하여 왔고 작은 교회는 기독교인 공동의 묘지를 선호하여 사용하여 왔다. 이제 묘지의 확충이 국토의 제한성 때문에 커다란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된 오늘날 교회가 더 이상 묘지문화를 유일한 기독교적 대안이라고 고집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시류를 외면하고 묘지 문화만을 강조한다면 환경 보전을 선도하지 못하고 환경 파괴에 앞장선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단순한 환경보존 뿐만 아니라 비용면에서도 도시 주변에 넓은 비싼 땅을 교회가 매입하여 공동묘지를 형성하여 운영하는 것은 지나친 과다지출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대형교회는 자체묘지를 마련하는데 재정적 부담이 문제시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자체 묘지를 마련하지 못하는 중소교회의 입장에서는 교회간의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실상에 비추어 볼 때 이제 한국교회는 묘지문화에 대한 새로운 반성속에서 한국사회 전체적 시각에서 선도적 역할을 감당해야 될 줄로 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새로운 장례문화에 대한 공통 대안을 모색하기 위하여 장례문화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시키고 해결점을 제시하여야할 것이다.

이제 구체적인 제안으로 필자는 먼저 화장 문화에 대한 계몽이 필요하다고 본다. 화장에 대한 일반적 거부 반응에 대하여 무리한 반론으로 대응하기보다 뿌리 깊은 유교적 효사상과 정서를 이해하면서 점진적으로 설득을 시켜서 가급적 화장 문화를 정착시켜야 된다고 본다. 그래서 교계 일각에서 일고 있는 “화장 유언 남기기 운동”을 확산시키며 현재 여론상에 나타난 70% 화장선호 (그리스도인 자신에 관한 한)의 고무적 현상을 극대화 시켜나가야 한다.

다음으로 화장 문화의 대한 수용이 끝까지 어려운 성도들에게 평토묘지를 권하여 환경파괴를 극소화시켜야 한다고 본다. 미국에서와 같이 평토묘지를 쓰되 가족들과 함께 단계적으로 쌓아올리는 입체형 묘지를 사용하면 묘지가용면적을 크게 절감하며 가족묘지 개념을 더욱 살릴 수 있다고 본다.

끝으로 교회당 지하실을 납골당으로 사용하면 공간 절약면이나 공동체 개념에서 볼 때 가장 이상적인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3. 목회자와 장례집례 문제

예수님은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죽은 자의 장례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이 아니다. 전도사역을 위해 주님이 부르실 때 장사를 핑계하고 그 부르심을 회피하거나 경시(輕視)하는 일에 대한 경중성(京中性)을 따지는 경고였다. 사실 한국목회자는 장례 때문에 너무 많은 목회적 소모를 강요당하고 있다. 지나친 유교적 배경에서 오는 문화적 관습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목회적 차원에서 시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교인들에게 “기독교적 장례문화 확립” 차원에서 교육을 통하여 장례에 따른 목회적 소모를 극소화 시켜야 할 것이다.

물론 목회자의 손으로 시체를 직접 씻어주고 정성스럽게 염해주고 함께 밤을 세워주고 장례 범절 일체를 관장하여 며칠을 유족들과 함께 보냄으로 몇 가지 유익도 있을 것이다. 그런 희생을 통하여 상가와 보다 깊은 교제를 나누고 가까워지는 유익과 상가의 가족 중 불신자들에게 전도하는 기회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점차 장례문화가 개선되면서 시체처리에 관한 위생적 시체 처리는 장의사에게 맡기고 목회자는 장례절차 전반에 관여하기보다 장례예배를 주관하며 특히 죽음이란 한계상황 속에서 가장 수용하기 좋은 그런 영적 분위기를 최대한 활용하여 감동적이고 다이나믹한 메시지 준비와 전달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의 시신에 대한 기름바르는 엠밤(Embalm)도 사도들이 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리아(요 12:1-8)나 갈릴리에서 온 여인들(눅 24:1-2)의 몫이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교인들에게 기독교적인 장례문화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되, 첫째로 죽기 전에 재산처리에 있어 천국상급과 연관되는 유언서 작성 및 최후임종을 위한 준비교육을 시키며, 둘째로 장례식 비용의 간소화의 필요성을 교육을 시켜야 한다. 셋째로 장례식이 전도의 기회가 되며 부활의 메세지 전달 기회가 되도록 장례식 분위기 조성에 유념해야한다. 이화여대 김활란 총장은 죽전 교목과정의 전반에 관한 서전 상의가 있었다고 한다. 임종전의 교인들과의 사전상의는 성숙한 교인일수록 의무화 시켜야 한다. 이렇게 화여 목회자는 먼전 산자의 목회자가 되어야 하고 죽은 자의 뒷치닥거리에만 수종드는 목회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4. 추도예배에 관하여

성경에는 추도예배에 관한 언급이 없다. 한국교회가 조상제사를 허락지 아니함으로 추도예배를 그 대안으로 시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추도예배는 오직 조상의 신덕(信德)을 기리며 하나님께 그런 조상을 허락하신 일에 대한 감사와 그들이 남긴 영적 유산에 대한 보존을 다짐하는 차원에서 드린다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이런 경우 추도예배는 철저히 남은 유족들을 위한 것이므로 “"죽은 영혼”에 대한 교제나 예찬은 배제되어야 한다.

앞으로 가급적 추도예배는 신앙의 성숙도에 따라 남은 가족들이 드리지 않아도 되는 방향으로 지도함이 가할 줄 안다. 부득이하여 목회적 필요에 따라 추도예배를 드려야 한다면 다음 몇 가지 사항을 주의하여야 할 줄로 안다.

첫째, 추도대상자의 사진에 절을 하지 말 것.

둘째, 이미 죽은 영혼을 위하여 밀지 말 것.

셋째, 추도 예배 중에 지나치게 추모 대상자를 칭찬하는 일을 삼갈 것.

요한 칼빈은 자신이 죽은 후에 자신의 묘를 지나치게 꾸미거나 자신의 공적을 돌에 새겨 기리지 못하도록 자신의 묘에 묘비를 세우지 말 것과 묘의 표시까지 하지 말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하나님만을 섬기기 위한 철저한 한 신앙인 모습을 남긴 것이다.

5. 결언

앞으로 한국교회가 당면한 장례문화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게 전개될 것으로 본다. 아직도 국민의 일반의식이 화장보다 매장을 선호하고 크리스챤이라 할지라도 70%이상이 화장에 찬성하면서도 막상 당신의 경우일 때 어떻게 하겠느냐의 질문에 약 25%만 화장을 따르겠다는 조사결과이고 보면 화장의 현실화는 상당한 시간이 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화장시대는 원불원간(願不願間)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거성 개발이 내놓은 [한민족 가족묘] 안을 넘어서서 국민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 묘지안을 연구하면서 또 화장 이후의 묘역형태나 납골당에 대한 구체적 제안과 논의를 거쳐 어떤 장례 대안을 제시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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