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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고난 당하신 모습을 영상을 통해서 잠깐 시청하시겠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상상하기조차 힘든 엄청난 고난을 당하셨을까요? 오늘 본문이 답을 주고 있습니다.그것은 우리의 죄악과 허물 때문입니다.
본문 5절을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고 가시와 창에 찔리고 피를 다 쏟으신 것은 나의 허물 때문입니다. 나의 죄악 때문에 손과 발에 못이 박히시고, 고통을 참으시면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고 절규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은 나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본문 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 시키셨도다”고 했습니다. 내가 져야 할 그 죄 짐을 예수님께서 대신 지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습니다. 양은 연약한 동물입니다. 그래서 맹수와 싸울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양은 목자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목자가 지켜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목자 없이는 살 수 없는 양 같은 우리들이 제 갈 길로 갔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길로 간 것입니다. 저주의 길로 불행의 길로 간 것입니다. 이런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예수님이 고난의 땅에 오신 것입니다. 너무도 연약하여 세상과 싸워 이기지 못하고, 죄악의 세력 앞에 나약한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목자로 오셔서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요,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늘 감격 속에 살아갑니다. 결코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목자의 인도를 따라 살아갑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그토록 고난 당하신 것은 바로 나를 위한 것이요, 우리를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4-6절에 보면 ‘우리’라는 말이 9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바로 우리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로 나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나의 허물, 나의 죄악, 나의 교만, 나의 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와 여러분의 영원한 저주와 진노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과 아픔과 십자가는 바로 나의 죄악 때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며 이번 고난주간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고난이 나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감사하며 주님의 고난에 백만분의 일이라도 동참하는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난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본문 12절을 보면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예수님이 고난당하신 분깃을 얻게 하며”라고 말씀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마침내는 승리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결코 패배가 아닙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시어 우리에게 영원한 승리를 안겨주셨습니다.
이 승리는 사망에 대한 승리요, 저주에 대한 승리입니다. 죄에 대한 승리요, 마귀에 대한 승리입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승리를 주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시고, 믿는 우리에게 안겨 주신 것입니다.
요 19:30절을 보면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승리에 대한 선언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우리의 구원을 다 이루신 승리를 말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성전의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있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찢어지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전에는 대제사장 외에는 누구도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휘장이 찢어지므로 누구나 지성소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모두 성전에 들어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그 은혜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난의 결과로 주어진 것입니다. 찢어진 휘장은 찢어진 예수님의 육체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고 있었던 죄의 장벽이 무너진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의 길, 천국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이런 놀라운 은총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신 결과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이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은혜를 입었다면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모진 고난을 당하셨는데 우리는 고난은 피하고 영광만 바랍니다. 그런 야고보와 요한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막 10:37~38절에 보면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이 말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함께 겪어야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후4:10절에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의 고난과 죽음 없는 그리스도의 신앙은 성립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교회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쉽게, 그리고 편리하게 믿으려 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손해 보지 않고 힘들이지 않고 그 고통과 고난을 외면하려 합니다.
또 그런 시험이나 유혹이 굉장히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당하시려고 했을 때 헬라 사람들이 와서 예수를 헬라로 도피시키려고 했습니다. 헬라로 가면 십자가를 지지 않아도 되고 안전과 영달과 행복을 누릴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주님의 고난이 없었다면 부활도 없고 우리의 구원도 없으므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 모진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인에게 해산의 고통이 있음같이, 정금과 은을 용광로에서 연단함과 같이 허물과 죄 많은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써 정결함을 받기 위해 죄를 아파하는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주로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고난과 죽음의 십자가를 멀리서 바라보거나 명상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날마다 그 고난을 맛보며 동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16:24절에 보면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했고, 눅14:27절에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또 눅9:24절에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명령에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 잡는 어부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했을 때 베드로는 배와 그물, 집도, 처자식도 다 버리고 주를 좇았습니다. 배와 그물, 집도, 처자식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른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입니까. 그런 자에게 주님은 엄청난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막 10:29~30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고난과 십자가를 회피하거나 멀리하지 말고 오늘의 고통과 아픔을 딛고 일어서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길을 따라가셔서 부활의 영광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종준 목사(꽃동산교회 담임목사) <저작권자 ⓒ 리폼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기사 내용에 특정된 개인이나 관련 교회가 반론을 요구할 때 재반론을 조건으로 허락할 수 있습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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