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폼드뉴스 http://www.reformednews.co.kr ko 총신대 김광열 총장직무대행 훈사 전문(제111회 신대원 학위수여식)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70 <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806333445.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p class="바탕글">주님의 제자의 길로 나아가십시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먼저, 지난 3년 혹은 4년 동안 총신에서의 모든 신학과정을 마치고, 오늘 졸업식에 참석한 원우들을 축하하며 축복합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오늘의 졸업식은 매우 특별합니다. 주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이 있는 12월에 갖게 된 졸업식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여러분의 갈 길에 앞장서신 분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깨닫게하기 위한, 그리고 여러분이 앞으로 가야할 길은 주의 제자의 길임을 분명히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담겨있는 졸업식인 것 같습니다. <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여러분은 유난히도 힘들었던 지난 몇 년 동안 총신에서의 아픔의 시간들을 잘 이겨내고 졸업식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총신 품을 떠나 세속화의 물결이 넘실대는 이 험난한 시대 속에서 사역의 첫 발을 내딛는 졸업생 여러분들에게 몇 가지 권면의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 첫째, 밀려오는 세속화의 도전들 앞에서 하나님 중심의 신학으로 당당히 맞서서, 이 땅의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주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미국의 개혁신학자 R. C. Sproul은 “오늘의 신학은 하나님 없는 신학이고, 오늘의 교회는 신학 없는 교회”가 되었다는 가슴 아픈 지적을 하였습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오늘날 이 땅 위에 많은 신학들이 제시되지만 성경의 하나님을 말하지 않는 신학들이 있다는 말이며, 이 땅에 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그 교회 안에서 성경의 하나님의 역사가 무시된 채 세속적인 프로그램으로만 가득 채워져 있는 교회들이 있다는 지적입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이제 여러분들은 이 땅위에 방황하는 양떼들에게 총신에서 배운 개혁신학과 하나님 중심의 신학을 분명히 가르쳐서 세속화의 물결 앞에 서있는 주의 교회들을 주님의 진리 위에 견고하게 세워가는 주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br><p class="바탕글">&nbsp; <br><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837369833.jpg" border="0"></td></tr> </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리폼드뉴스 </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p class="바탕글">둘째, 공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흔들림없이 사역하는 주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사실, 오늘 졸업식에 참여한 여러분은 지난 몇 년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특별교육을 받았습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여러분들은 성경이 말하는 공의의 하나님을 강의실에서만 배운 것이 아니고, 총신사태의 현장 속에서 경험하면서 산 교육훈련을 통과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는 오늘도 살아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항상 우리가 원하는 때에, 우리가 바라는 방식으로 확인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분은 온 세상과 특히 총신을 그 분의 공의로 다스리고 계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이제 총신의 품을 떠나 이 세속의 물결이 넘실대는 사회 속으로 복음 사역자의 길을 떠나는 총신인들이여! 앞으로 펼쳐질 여러분의 사역의 현장 속에서도 하나님의 공의가 희미하게만 보이는 때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번 총신사태를 통해서 배운 진리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때는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그 분은 공의로 이 땅을 다스리실 것임을 확신하며, 사역자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는 주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 끝으로, “영혼의 어두운 밤”의 훈련도 넉넉히 이겨내는 주님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지난 총신 사태의 특별교육기간 중에, 총신인들은 “영혼의 어두운 밤”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총신인들을 최악의 절망의 자리까지 끌어내리셨습니다. 그래서 오직 주님만이 문제의 해결사가 되심을 깨닫고 그 분만을 바라며 기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어쩌면 오늘 졸업식에 참석한 여러분들 중에 이번 총신사태가 나에게는 “부당하게 당하는 고난”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은 총신인들을 참된 주님의 제자의 길로 초대하신 주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말과 같이 “부당하게 받은 고난”은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으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일이요, 더 나아가 그것은 주님의 걸으신 고난의 발자취를 따르는 제자의 길로 들어오라는 주님의 초대장이기 때문입니다.(벧전 2:19-21)<br><p class="바탕글"><br><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808482922.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이제 총신의 품을 떠나 첫 발을 내딛는 여러분의 사역의 현장 속에서도 또 다시 “영혼의 어두운 밤”이 찾아올 수 있고, “부당하게 당하는 고난”의 시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제자의 길로 가자고 여러분을 부르시는 주님의 초대장인 것입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지난 몇 년간 여러분들은 “주님의 참된 제자의 길”로 향하는 하나님의 특별 교육을 이수했으니, 이제 미래의 사역을 앞둔 이 시점에서 다시 참된 제자의 길로 초대하시는 주님의 부름 앞에 분명한 결단을 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앞서간 총신의 선배들도 목회와 사역의 현장 속에서 복음을 위해 부당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주님의 제자의 길을 걸어가셨기 때문입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오늘의 목회현장이 결코 녹록하지 않은 상황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고난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제자의 길을 각오하고 있는 사역자들에게 그것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또 다시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할 수 있는 현장이 될 뿐입니다. 담대하게 총신의 문을 열고 나아가십시오! 총신사태를 통해 배운 훈련들을 이제 실전에서 멋있게 활용할 줄 아는 지혜롭고 용감한 총신인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끝으로 사도 베드로의 말씀을 읽고, 훈사를 마무리하겠습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19-21).<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lt;감사합니다!&gt;<br> <br /> 2018-12-18 14:57:00 총신대 신대원 제111회 학위수여식 '467명 졸업'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68 <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837369833.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총회장 이승희 목사) 목회자를 양성하는 직영신학교인인 총신대학교(총장직무대행 김광열 교수) 신학대학원(원장 이상원 교수)의 제111회 학위수여식 및 졸업식이 거행됐다.<br><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신학대학원 목회학석사(M.Div) 학위 수여식과 총회신학원 졸업식으로 진행된 제111회 학위 수여식은 18일 오전 11시에 양지캠퍼스 총신개교100주년기념예배당에서 진행됐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총회의 목회자 양성신학교이다.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직영신학교인 평양신학교가 1901년 설립됐다.&nbsp;<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평양장로회신학교&nbsp;전신인 총회신학원의 졸업식과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제111회 목회학 석사 학위(M.Div) 수여식을 2월 6일 양지캠퍼스 총신개교 100주년기념예배당에서 거행하기로 계획되었으나 돌연 취소됐다.총신대학교 재단이사회가 총회를 배제한 법인 정관을 개정하고 학칙 및 내규를&nbsp;총회와&nbsp;무관한 방향으로 개정을 시도하는 행위에 대한 학내 사태로 이어지면서&nbsp;결국 신대원 학위 수여식&nbsp;및 총회신학원 졸업식이 취소됐다.&nbsp;<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85304911.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p class="바탕글">이번 제111회 학위 수여식은 신대원 졸업 요건을 충족한 다음 이미 강도사 고시에 합격하고 강도사 인허를 거친 후에 학위수여식과 졸업식이 거행된 아주 특별한 졸업식이 됐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정승원 교수의 학사보고에서 지금까지 27,450명이 배출됐고, 금년 467명이 학위수여 및 졸업생을 배출했다. 현재 재학생은 1,518명으로 보고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총장직무대행 김광열 교수는 훈사를 통해서 “오늘의 졸업식은 특별하다"고 언급한뒤 "총신의 품을 떠나 험난한 시대에 사역의 첫 발을 내닫는 이 순간에 하나님의 중심 신학으로 교회를 든든히 세워나가기를 바란다"고 했다.<br><br><p class="바탕글">또한 "공의로우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흔들림 없이 앞만 바라보며 나아가기 바란다"며&nbsp;"공의로운 하나님을 강의실에서만 아니라&nbsp;총신 사태 현장에서 배운 하나님의 공의대로 사역하기를 바란다&nbsp;"고 당부했다. 그리고 "영혼의 어두운 밤 속에서 주님만 바라보며 사역을 감당하기를 바란다"고 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격려사에 명예운영이사장 강진상 목사, 축사에는 장로 부총회장 강의창 목사,&nbsp;총회 총무인 최우식 목사&nbsp;등이 각각&nbsp;격려사와 축사를 했다.<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853478629.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p class="바탕글">이번 학위수여식 및 졸업식에는 단골 순서자로 나선 증경총회장, 증경장로부총회장들이 순서에 참여를 배제하고 총회와 총신대학교와 신학대학원의 순수 관계자들이 순서를 맡아 학위수여식이 진행되었다는 것이 특징이었다.<br><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법인 직원이 학위수여식의 사회자로 진행된 그러한 불상사는 이번에는 허락되지 않았다. 총신대학교에 임시(관선)이사가 파견되어 학교 정상화가 진행되면서 학위수여식 및 졸업식이 지극히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것도 역시 학교 정상회의 일환이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교무지원처장인 정승원 교수의 학사보고에 이어 총장직무대행 김광열 교수는 학위수여 및 졸업장을 수여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총회장의 성적우수상에 윤현수 원우, 송귀옥 운영이사장상에 김유진 원우, 법인이사장 김동욱 교수의 법인이사장상에 김솔 원우, 총장직무대행 김광열 교수의 총장상에 강병훈 강태연 원우, 신대원 원장 이상원 교수의 신대원 원장상에 이헌택 한진환 원우에게 수여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상장 수여에 이어 표장을 수여하는 시간을 가졌다. 공로표창에 총회장 표창에 권병훈, 운영이사장 표창에 서은아, 재단이사장 표창에 김용호, 총장 표창에 장재효 김세중, 원장 표창에 김종은 오명철 이의성, 기독신문사 사장 표창에 김진한, 총회세계선교회 이사장 표창에 심미송 원우가 각각 받았다.&nbsp;<br><p class="바탕글">&nbsp;<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학위수여식 및 졸업식에 앞서 진행된 예배는 총신운영이사장 송귀옥 목사의 사회로 진행됐다. 대표기도에 이기택 목사(운영이사회 부이사장), 진용훈 목사(운영이사회 회계)가 봉독한 로마서 12:1-3절 말씀을 통해 총회장 이승희 목사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라’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854319943.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승희 목사는 설교를 통해 “앞으로 교회에서 지도자로 세워질 것인데 성도의 이름, 신학생의 이름 등은 끝까지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우리들은 연단을 받아 우리의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졸업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산 제물로 사명을 감당할 것”으로 부탁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김정호 목사(운영이사회 서기)의 광고에 이어 김종준 목사(부총회장)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br><br><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85502789.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br> <br /> 2018-12-18 11:34:00 동서울노회, 사랑의교회 임시당회장 파송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66 <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700453386.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Gulim"><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font face="Gulim"><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font face="Gulim"><strong>【(</strong></font><span class="tit_name mg_tit"><a class="f_tit_u" onclick="smartLog(this, 's=TO&amp;a=RCTO&amp;dc=0DL&amp;pg=1&amp;r=1&amp;d=1395802&amp;p=1', event);" href="http://www.reformednews.co.kr/" target="_blank"><font color="blue" face="돋움"><strong>리폼드뉴스</strong></font></a><font face="Gulim"><font color="blue">)<span class="txt_site"><font color="black">】</font></span></font></font></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font></span></span></span></span></font></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동서울노회(노회장 곽태천 목사)가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에 대해 법원이 지적한 행정 절차상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시점까지 당회장(담임목사)직을 임시로 정지하고 박진석 목사(반석교회)를 임시당회장으로 파송하는 결의를 했다.<br><br /><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대한예수교장로회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에 대한 동서울노회의 위임결의 무효판결 이후 대책을 논의하는 임시회에서 이같이 결정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동서울노회는 17일 남서울중앙교회에서 제94회 제1차 임시회를 소집하고 오정현 목사 위임무효소송 재판 결과 대책 및 임시당회장 선임의 건을 비롯하여 총신 교수위원회 심상법 재판국 보고의 건 및 강도사 고시 추천 청원, 신학계속 추천 청원 등을 결의했다.<br><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재판국 보고에서는 심상법 교수의 기소건은 기각했다. 기각이유로 기소의 원인인 총신대학교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기각처분을 했다고 보고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701253690.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오정현 목사에 관한 건은 대법원 파기환송 이후 원심인 서울고등법원 제37민사부가 대법원의 파기환송 법리에 따라 판결하자 이를 다시 대법원에 재상고를 한 상태이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대법원의 재상고를 제기한 상태에서 갱신위 측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직무정지 및 &#12295;&#12295;&#12295;변호사를 임시대표자로 지정해 달라는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여 19일 오후 5시 30분에 심리가 예정돼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같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동서울노회는 17일 임시노회를 소집하여 오정현 목사의 당회장직을 조건부로 일시 정지하고 임시당회장을 파송하므로 직무정지와 임시대표자 지정 가처분 소송은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기각될 것으로 예상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가처분 소송에서 인용이 되려면 민사집행법 제300조(가처분의 목적)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②가처분은 다툼이 있는 권리관계에 대하여 임시의 지위를 정하기 위하여도 할 수 있다. 이 경우 가처분은 특히 계속하는 권리관계에 끼칠 현저한 손해를 피하거나 급박한 위험을 막기 위하여, 또는 그 밖의 필요한 이유가 있을 경우에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여기서 현저한 손해란 본안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기다리게 하는 것이 가혹하다고 생각되는 정도의 불이익이나 고통을 말한다.<br><p class="바탕글">&nbsp;<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여기서 직간접인 재산상의 손해는 물론 명예에 대한 손해도 포함된다. 즉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자들이 오정현 목사가 담임목사직을 수행할 경우 ‘현저한 손해’나 ‘극박한 위험’을 입증해야 한다. 그리고 보전의 필요성에서 급박한 위험이 있어야 한다. 이 두 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가처분 소송은 인용될 수 없다.<br><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또한 이미 동서울노회가 오정현 목사를 교단헌법과 노회 규칙에 따라 당회장직을 정지하고 임시당회장을 파송하였으므로 오정현 목사 직무정지 및 임시 대표자 지정을 위한 가처분 소송의 원인이 사라져 버렸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대법원은 “원고 교회가 속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수도노회에 의하여 원고 교회의 당회장으로 임명 파송된 원고교회의 대표자는 교회소속 전체교인들의 총회결의에 의한 특별수권없이도 위 헌법등의 규정에 따라 원고교회의 당회장으로서 원고교회를 대표하여 원고 교회의 소유 부동산에 관한 소송을 제기 수행할 수 있다.”(대법원 1985. 11. 26. 선고 85다카659 판결)라고 판시하여 임시 당회장은 노회가 직권으로 파송하며, 임시 당회장은 지교회 법률행위의 대표자라고 이미 법리의 초석을 다져놨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교회 담임목사에 대한 하자 문제나 유고시 교단헌법에 따라 소속노회가 임시당회장을&nbsp;파송할 때에 그 임시당회장이 교회 법률행위의 대표자가 된 것이다. &nbsp;이 판례는 지금까지&nbsp;법원의 판례입장으로 분쟁교회를 판단하는 근거로 삼고 있다.&nbsp;<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지교회 담임목사의 유고시&nbsp;지교회나 당회가 요청하지 않더라도 소속노회가 일방적으로 파송한 임시당회장이 지교회&nbsp;모든 법률행위의 대표자라는 점이다. 이 판례는 한국교회 분쟁을 해결하는&nbsp;법원의 일관된 판례입장이다.&nbsp;<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예장합동교단 헌법에 의하면 당회장에는 '대리당회장'과 '임시당회장' 제도가 있다. '대리당회장'은 지교회가 당회장이 법적으로 존재할 때 당회장 본인에 대한 문제에 대한 결정을 할 경우&nbsp;"당회의&nbsp;결의로 본 교회 목사가 그&nbsp;노회에 속한 목사 1인을 청하여 대리 회장이 되게 할 수 있으며"(정치 제9장 제3조)라는 규정에서 "대리당회장"을&nbsp;언급한다.&nbsp;<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임시당회장은 "당회장은 목사가 되는 것이므로 어떤 교회에서든지 목사가 없으면 그 교회에서 목사를 청빙할 때까지 노회가 당회장 될 사람을 파송할 것이요"라고 했을&nbsp;때 이를&nbsp;"임시당회장"이라 한다(정치 제9장 제4조 임시당회장).&nbsp; <br><br><p class="바탕글">사랑의교회는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br><br> <br /> 2018-12-17 15:53:00 소강석 목사 동성애 특강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64 소강석 목사 동성애 특강 2018-12-17 07:29:00 사랑의교회와 동서울노회 고민, 임시당회장 파송 문제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63 <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table width="262"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262"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05/2018051321278268.jpg" border="0"></td></tr> </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사랑의교회 전경 &nbsp; &nbsp; &copy;리폼드뉴스<br></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Gulim"><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font face="Gulim"><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font face="Gulim"><strong>【(</strong></font><span class="tit_name mg_tit"><a class="f_tit_u" onclick="smartLog(this, 's=TO&amp;a=RCTO&amp;dc=0DL&amp;pg=1&amp;r=1&amp;d=1395802&amp;p=1', event);" href="http://www.reformednews.co.kr/" target="_blank"><font color="blue" face="돋움"><strong>리폼드뉴스</strong></font></a><font face="Gulim"><font color="blue">)<span class="txt_site"><font color="black">】</font></span></font></font></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font></span></span></span></span></font></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법률적으로 개임(改任,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임명함)은 일반적으로 기존의 직에 있던 자가 그 직무를 수행함에 적당하지 않는 사정이 있어 그를 해임 및 정지하고 새로운 자를 선임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직무 집행의 적정성 내지 해임 및 정지하는&nbsp;절차를 이행하지 않고 새로운 자를 임명한 것은&nbsp;개임의 실질을 가지지 못하였다고 볼 수 있다. <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대한예수교장로회 동서울노회가 사랑의교회 임시당회장을 파송하려면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가 당회장의 지위가 상실되었을 때에 가능하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그러나 동서울노회는 사랑의교회에 오정현 목사를 위임목사로 결의한 행위가 아직 대법원에서 확정되지 않았다. 파기환송과 환송 후 원심인 서울고법의 판결 이후에 재상고를 한 상태이기 때문에 비록 사랑의교회 위임결의가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을지라도 재상고 결과가 나와야 판결확정이 된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따라서 위임결의 무효가 아직 판결확정 전이므로 현재 오정현 목사는 사랑의교회 위임목사, 즉 대표권에 하자가 없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이러한 상태에서 동서울노회가 12월 17일에 소집된 임시회에서 사랑의교회 임시당회장을 파송하여 개임(改任)의 실질이 이루어지려면 오정현 목사의 당회장권을 해임이나 임시 정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오정현 목사는 현재 법적으로 당회장이며, 위임목사이다. 그 이유는 대법원에 재상고되어 아직 위임무효결의가 판결확정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그런데 왜 확정판결 이전에 임시당회장을 파송하려고 하는가? 그 이유는 만약에 반대 측에서 대법원 판결확정을 받기까지 오정현 목사에 대한 직무정지 가처분을 제기하면서 임시 대표자를 지정해 달라고 청구하여 법원에 의해 인용될 경우 사태는 심각해 진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이런 개연성 때문에 사랑의교회를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대법원 재상고의 판결확정이 될 때까지 현재의 오정현 목사를 임시로 당회정권을 정지한 다음 임시당회장을 선임하여 파송할 수 있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그러나 어떤 형태로든지 오정현 목사가 당회장과 위임목사(담임목사)의 지위가 상실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동서울노회 임시회에서 미리 법원에 의해 당회장 직이 무효되거나 정지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임시당회장을 시찰위원(시찰회가 아님, 교단헌법은 시찰회가 존재하지 않음)에게 위임한다고 결의할 수 있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과연 법원은 종교단체인 예장합동교단의 헌법(자치법규)에 따라 당회장과 임시당회장을 파송할 수 있는 규정된 성문규정을 외면하고 임시 대표자를 파송할 것인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만약에 법원이 교단헌법과 교단 구성원의 염원에 반한 결정인 임시 대표자를 파송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없다. 지금까지 사랑의교회와 관련 대표권에 대한 판단에서 보여준 사례에 비추어 보면 믿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은 못 된다.<br><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사랑의교회는 이제 대법원의 재상고하기까지 모든 문제가 노출되어 있다. 숨어서 밀실에서 의논하고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노출되어 있다. 이제 공개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법원의 최종 확정판결은 강제력을 지니고 있기에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이를 극복해 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교회와 담임목사를&nbsp;지키는 일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의&nbsp;본질적 핵심 가치를 지켜야 하며,&nbsp;이를 오고오는 세대에 유지되고 계승해야 한다.<br> <br /> 2018-12-16 12:44:00 [특별기고] 소강석 목사의 설교 특징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62 <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619284987.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소강석 목사&nbsp;&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Gulim"><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font face="Gulim"><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font face="Gulim"><strong>【(</strong></font><span class="tit_name mg_tit"><a class="f_tit_u" onclick="smartLog(this, 's=TO&amp;a=RCTO&amp;dc=0DL&amp;pg=1&amp;r=1&amp;d=1395802&amp;p=1', event);" href="http://www.reformednews.co.kr/" target="_blank"><font color="blue" face="돋움"><strong>리폼드뉴스</strong></font></a><font face="Gulim"><font color="blue">)<span class="txt_site"><font color="black">】</font></span></font></font></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font></span></span></span></span></font></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나는 최근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을 통하여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내가 들은 설교는 2018년 12월 9일 주일 설교였다. 설교 제목은 “자기 상처에 빠지지 말라”였고, 본문은 시편 34:17-20이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이 한 편의 설교가 소강석 목사의 전체적인 설교의 특징을 나타낸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고, 한 편의 설교에 소강석 목사 설교의 모든 특징이 담겨 있다고 하는 것도 사실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한 편의 설교가 소강석 목사의 설교임은 분명하고 그가 심혈을 기울여 이 설교를 작성하고 기도로 준비하여 선포한 것임은 또한 사실일 것이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그래서 비록 그의 여러 설교 중의 하나이지만 소강석 목사 설교의 특징이 어느 정도는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새에덴교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소강석 목사는 어린 시절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난 이후 온갖 고난과 핍박을 견디어내고 고학으로 신학교를 졸업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그리고 불타는 소명감으로 1988년 11월, 가락동의 한 상가 지하 23평에서 새에덴교회를 개척하여 지금은 한국에 몇 안 되는 초대형교회인 1만여 명의 프라미스 콤플렉스 성전을 건축하고 2만여 명의 성도 부흥을 이룬 꿈과 기적의 목회자이다.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 스토리는 한 편의 하이틴 로맨스나 순정만화처럼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그래서 그의 설교와 저서들은 콘크리트 도시 속에 갇혀 사는 현대인들의 가슴에 들꽃 같은 향기를 전해준다. 소강석 목사는 광신대학교와 개혁신학연구원 및 동 대학원을 거쳐 미국의 낙스신학교 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한국문인협회 시인, 칼빈대학교 석좌교수이며, 수많은 세미나와 부흥회를 이끌며 한국교회의 차세대 대표 목사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이력을 가진 소 목사의 2018년 12월 9일 주일 설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br><p class="바탕글">&nbsp;<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1. 소강석 목사 설교에는 카리스마가 있다.</span><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 소강석 목사 설교의 첫 번째 특징으로 예수인교회 민찬기 목사는 두말없이 카리스마를 꼽았다. 소 목사의 설교와 그의 말에 누구나 수긍하는 카리스마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카리스마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소 목사만의 은사일 것이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소강석 목사가 기억을 할런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약 1년 전 그와의 짧은 대화에서 카리스마를 느낀 적이 있고, 그가 행한 헌신예배 설교 중 과거에 상여를 메고 가는 모습을 묘사하는 설명을 들으면서 눈물이 날정도로 웃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nbsp; <br><br><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623589851.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2. 현대 설교학의 기법에서 매우 중요한 연관성(relevance)을 잘 드러냈다.</span><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 미국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교에서 철학박사를 취득하고 귀국하여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의 설교학 교수를 역임하고 2018년 현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설교학 교수와 더불어 서울 로뎀교회의 담임목사로 봉직하고 있는 권 호 박사는 자신의 설교학 강의 중 현대 설교학의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가 연관성(relevance)이라는 점을 누차 강조한 것으로 기억한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연관성이란 성경 텍스트를 오늘의 상황과 연결하는 단계를 말한다. 권 박사는 “좋은 설교란 현대를 사는 우리가 왜 2000년 전에 쓰인 본문을 들어야 하고, 그것이 우리 삶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설교자는 성경의 세계와 오늘의 세계 중간에서 연관성이라는 다리를 놓음으로써 의미와 진리가 소통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관성은 설교자의 창의적인 기술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성경의 본문과 현재 청중과의 연관성을 포착하는 것은 설교자의 성경분석과 청중분석에 예리한 통찰력이 동반된 창의성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그런데 소강석 목사의 설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연관성을 떼어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성경본문과 현재 청중의 연관성을 창의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연관성은 다른 용어로 공감(sympathy)할 수 있는 면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소강석 목사는 설교를 통하여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깔끔하게 표현했다는 인상을 준다. <br><br><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630001082.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p class="바탕글">예를 들어 소 목사는 시편 34:18의 “마음이 상한 자”와 현대인의 상처를 연관시키면서 설교 서두에 현재 99세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를 언급하여 교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소 강석 목사가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 “내 마음 강물이 되어 흐르고 있습니다”를 처절한 감정으로 노래할 때 성도들 마음에 공감이 되어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클로즈업 되기도 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겉모습은 세련된 귀부인이지만 마음의 상처를 터치하니까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표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리하여 소강석 목사는 설교의 연관성을 부각시키는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3. 복음적이다. </span><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 예수님의 십자가와 보혈이 설교의 결론을 이루었다. 소강석 목사의 스승이며 나의 학위논문 지도교수인 서철원 박사가 강조하는 성경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인격과 그의 구원사역이다. 누구든지 이 복음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 아담의 타락 이후 복음이 필요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소강석 목사는 이 설교에서 상처를 문제로 제시하고, 십자가의 보혈이 그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설교 구도는 지극히 복음적이다. 성경 본문의 문제제기를 오늘의 문제와 연관시키고, 성경본문의 해결책을 오늘날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설교 기법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누구도 흠 잡을 수 없는 복음제시의 구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br><p class="바탕글">&nbsp; <br><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615109587.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4. 시편의 감정을 잘 살려냈다.</span><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 구약 성경 문장의 형식에 있어서 시편이 포함된 성문서에만 시 문체가 사용된 것은 아니다. 시적 형태의 문장은 모세 5경에도 적지 않게 등장하고 선지서에도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래서 구약성경은 시적 형태의 문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구약성경의 언어인 히브리어는 고전어이다. 고전어의 특징은 단순하고 동작을 먼저 표현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헬라어와 라틴어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고전어들의 특징은 문장에서 동사가 먼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고대에는 현대처럼 인쇄술과 종이가 발달되어 있지 않아서 대중적인 책이 거의 없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그래서 언어가 단순한 것이 고전어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서 두드러지게 사용된 시적인 문체는 여러 사람들이 노래로도 쉽게 암기 할 수 있게 구성된 것이 또한 특징이다. 그리고 모든 노래에는 희로애락의 다양한 감정이 녹아 있다. 그래서 구약에서 사용된 히브리어는 감정을 잘 표현하는 언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그런데 소강석 목사는 이 설교에서 상처 혹은 자상과 관련된 감정을 탁월하게 드러내었다. 특히 소 목사는 설교 중간 중간에 복음송을 비롯한 노래를 5곡이나 부르면서 설교에 대한 공감과 몰입도를 높였다. 이렇게 찬양이 가미된 설교를 들으면서 행복해 하고 천진난만하게 웃고 속으로 뜨겁게 우는 교인들의 모습이 여과 없이 표출되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소강석 목사는 다른 설교자들이 별로 사용하지 않는 ‘쪼다’, ‘쪽 팔렸다’, ‘눈이 삐었다’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오히려 청중들과의 공통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더욱 설교에 몰입하게 했다. 또한 문 장로와의 사연과 소 목사 자신의 상처를 이야기할 때 교인들의 심금을 울림으로써 청중은 더욱 그의 설교에 귀를 기울였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614351645.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5. 구약을 신약과 연결시켰다.</span><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 이 설교의 본문은 시편 34편인데 소강석 목사는 신약성경의 에베소서 4:31-32을 시편 34:18과 연관하여 인용했다. 이처럼 신약을 인용하여 해석을 하지 않았더라면 유대교적인 설교로 빠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약과 신약을 무리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연결하였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6. 원어분석과 현대 심리학을 응용하여 교인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설교에 대한 신뢰감을 높였다.</span><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 소강석 목사는 이 설교에서 심리학(psychology)이란 용어가 영혼과 정신을 의미하는 헬라어 ‘프시케’(ψυχη)와 말씀과 이성을 뜻하는 ‘로기아’(λογια)의 합성어란 점을 밝힘으로써 교인들의 지적 욕구와 호기심을 만족시켰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그리고 이런 언어의 분석은 단순히 단어 하나의 의미를 파악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설교에 대한 신뢰감을 준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러한 현대 학술용어의 분석과 상처에 대한 심리학적 지식의 응용은 현대인들의 귀에 들려질 수 있는 현대적 설교가 되게 하였다. 설교자는 열심히 외치는데 교인들이 듣지 않는다면 설교의 효과는 감소될 것이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543293755.jpg" border="0"></td></tr> </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리폼드뉴스 </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7. 본문의 한 두 단어는 강조되었어도 본문 전체의 설명은 생략되었다.</span><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 이 설교의 본문은 시편 34:17-20으로 낭독되었다. 그러나 실제 설교에서 18절만 언급되고 17, 19-20절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면 본문은 18절만 낭독했어도 무방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본문 전체를 구태의연하게 시시콜콜 설명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그래도 시편 34편의 표제로 제시된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에 대해서 언급이라도 했더라면 설교의 주제에 더 큰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신약의 에베소서 4:31을 언급할 때 에베소서는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보내는 편지임을 밝혔더라면, 이런 언급은 매우 상식적이더라도, 신약성경의 문체에서 편지체가 대부분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편지체가 나타내는 개인적인 친밀함이 더 드러났을 것이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또한 에베소서는 바울의 옥중서신임을 언급했더라면,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상처를 극복했다는 복음적 메시지가 강조됨으로써 이 설교의 또 하나의 효과로 기여했을 것으로 사료된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strong>정규철 목사</strong><font color="blue">(총신대학교 대학원에서 “성경무오교리에 대한 역사적 증명”이란 제목으로 신학박사(Ph.D.)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현재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사역하고 있다.)&nbsp;</font>&nbsp;&nbsp;&nbsp;&nbsp;&nbsp; <br><br><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613128078.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정규철 교수&nbsp;&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 <br /> 2018-12-15 23:59:00 [김순정목사 설교] 참된 왕이신 하나님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60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계속해서 불순종, 반역의 길을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블레셋을 통해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회개하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회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무엘이라는 제사장 겸 선지자를 세워주십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이스라엘을 깨우쳐주십니다. <br><br><strong>1. 왕을 요구한 이스라엘(1-5)<br></strong><br>이제 시간이 흘러 사무엘이 늙었습니다. 그의 아들들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됩니다. 장자는 요엘, 차자는 아비야입니다(1-2). 그들은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않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했습니다(3). <br><br>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무엘은 제사장, 사사, 선지자의 직무를 수행하고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은 이익을 따라서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했습니다.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갔습니다. <br><br>그러자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갑니다. 그리고 그들이 사무엘에게 말합니다. 5절을 봅니다. <br><br><font color="blue">“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5).<br></font><br>겉으로 보기에는 사무엘의 아들들 때문에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아닙니다.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다스리게 해 달라고 합니다. 그들이 요구한 실제 목적은 바로 모든 나라와 같이 자신들에게도 인간 왕이 있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눈에 보이는 인간 왕을 달라는 것입니다. <br><br><strong>2. 세속 왕이 가져올 피해(6-18)<br></strong><br>이스라엘 백성들이 인간 왕을 요구하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7-9절을 봅니다. <br><br><font color="blue">“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7-9).<br></font><br>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을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버린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출애굽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다는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습관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고 은혜를 경험했으면서도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반역했습니다. 죄의 길로 갔습니다. <br><br>사무엘은 왕의 제도를 알려줍니다. 왕이 백성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군사로 이용할 것입니다. 밭을 갈게 하고 추수하게 할 것입니다. 또 왕이 백성의 딸들을 데려다가 시녀로 이용할 것입니다. 향료 제작, 요리,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입니다. 또 백성의 밭과 포도원,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왕의 신하들에게 줄 것입니다. 곡식과 포도원의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신하들에게 주고 양 떼의 1/10을 거두어 갈 것입니다. 그 날에 이스라엘이 택한 왕으로 인해 부르짖을 것이나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br><br>그들이 요구하는 인간 왕이 세워지면 이스라엘 백성이 원하는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왕을 기쁘게 하고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온 나라가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세속적 왕정입니다. <br><br>신 17:14-20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왕정에 대해 말씀을 주십니다. 그 왕은 창 49:10이하에 나오는대로 유다 지파에서 나올 것입니다. 그 왕은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우고 율법의 모든 말, 규례를 지켜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와 그의 자손의 왕위가 장구할 것입니다. 이 왕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왕직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 지파의 후손으로 장차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예고하는 말씀입니다. <br><br><strong>3. 요구대로 왕을 허락하신 하나님(19-22) <br></strong><br>백성이 사무엘의 말을 듣기 싫어했습니다. 그들은 사무엘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합니다. 여기 “거절하여”(예마아누)는 피엘형으로 ‘그들이 철저하게 거부하여’라는 의미입니다. <br><br>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이방 나라와 같이 자신들도 인간 왕이 있어야 하겠다고 합니다(19-20). 즉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 왕이 다스려야 하고 전쟁이 났을 때에 앞에 나가 싸워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그들의 목적입니다. 눈에 보이는 왕이 전쟁이 났을 때 군사들 맨 앞에 나가 적들을 무찌르는 그런 왕 즉 용맹하고 화려한 왕을 기대한 것입니다. <br><br>사무엘이 백성들의 말을 듣고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22절입니다. <br><br><font color="blue">“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하시니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성읍으로 돌아가라 하니라”(22).<br></font><br>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요구를 기뻐하여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기를 거부하고 불신앙적 모습에 대한 징벌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대로 인간 왕을 세우라고 하십니다. <br><br><strong>결론<br></strong><br>오늘 우리는 누구를 왕으로 모시고 살아갑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십니까? 아니면 세상의 통치자, 권력, 물질, 세상의 소망, 나 자신입니까? <br><br>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왕과 주님으로 모실 때에만 우리에게 구원이 주어지고 영원한 기쁨과 행복이 주어집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한 주도 담대하게 살아갑시다. <br><br>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2018-12-15 18:32:00 새에덴교회, 교회설립 30주년 기념 임직식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59 <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543288099.jpg" border="0"></td></tr> </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리폼드뉴스 </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Gulim"><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font face="Gulim"><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font face="Gulim"><strong>【(</strong></font><span class="tit_name mg_tit"><a class="f_tit_u" onclick="smartLog(this, 's=TO&amp;a=RCTO&amp;dc=0DL&amp;pg=1&amp;r=1&amp;d=1395802&amp;p=1', event);" href="http://www.reformednews.co.kr/" target="_blank"><font color="blue" face="돋움"><strong>리폼드뉴스</strong></font></a><font face="Gulim"><font color="blue">)<span class="txt_site"><font color="black">】</font></span></font></font></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font></span></span></span></span></font></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대한예수교장로회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가 교회설립 3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15일 장로, 집사 임직과 권사 취임식을 가졌다.<br><br /><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3M(맨손, 맨몸, 맨땅)으로 유명한 소강석 목사는 1988년 송파구 가락동에서 시작된 지하 23평으로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가락동에서 개척한지 4년째가 되는 해에 건축위원회를 조직하여 새로운 비전계획을 세웠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분당에 종교부지를 확보하고 가락동 시대에서 분당시대로 이어졌다. 분당 정자동에 130평 건물을 확보하여 예배를 드린지 얼마 안 되어 600명에서 1,000명, 그리고 2,000명을 넘어 5,000명에 달하게 됐다.<br><br><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54142541.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분당 정자동에서도 한계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다시한번의 도전이 이어졌다. 용인시 죽전동 산 50번지로 이전하여 4500명이 동시에 앉아 예배드릴 수 있는 본당과 연건평 1만여평에 이르는 교회로 성장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2005년 10월 22일에 입당한 찬란한 새에덴교회의 역사는 금년으로 3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2018. 11. 11. 30주년 기념 감사예배를 드렸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30년 동안 새에덴교회에 베풀어 주신 은혜를 섬김과 나눔으로 실천함으로써 한국교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이정표를 세우는 뜻 깊은 30주년 감사예배를 드렸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형식적인 기념식이 아니라 받은 은혜에 대한 눈물겨운 감사와 헌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치는 향기로운 산제사였다. 지역 저소득층 가구, 어려운 교회, 선교회, 장학회, 신학교, 남북 화해와 평화, 미디어&amp;문화선교 등에 40여 억원을 후원했다.<br><br><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542358906.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장로 28명, 시무집사 100명, 권사 154명 총 282명의 직분자를 세웠다. 이날 임직식 예배는 담임인 소강석 목사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박병철 목사(경기남노회 누구나교회)의 기도, 김찬호 장로(새에덴교회)가&nbsp; 봉독한 디모데전서 1:12-14절 말씀을 통해 ‘주께서 직분을 맡기셨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br><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어서 진행된 임직식에서 소강석 목사는 임직 및 취임자들에게 서약을 받았다. 총 5문으로 구성된 서약은 1~3번은 위임서역이며, 4~5번은 취임서약이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서약을 통해 성경의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 신앙고백과 신조, 교단헌법에 대한 정당성에 대한 서약을 했다. 그리고 본 교회에서 직분을 진실한 마음으로 감당하며, 교회 화평, 성결함을 위해 진력하기로 서약을 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모든 직분자들은 이같은 서약에 대한 내용을 성실히 지켜야 한다. 훗날 선서위반에 대한 책임으로 제재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br><br><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54609124.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임직자들에 대한 선서를 마친 다음 소강석 목사는 교인들과 서약을 했다. 28명의 장로임직자들은 교인들로부터 복종서약을 받아야 새에덴교회에서 치리장로서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다. 교인들을 위한 당회의 치리권은 당회원인 장로가 본 교회 교인들로부터 복종서약을 받지 않고는 치리장로의 직을 감당할 수 없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같은 복종서약은 법정용어로서 교인들이 임직받은 치리장로에게 치리에 복종하겠다는 법정위임체결과 같은 효력이 있다. 임직받은 장로들은 교인들로부터 복종서약을 받지 않고서는 치리장로가 될 수 없다. <br><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따라서 이같은 복종서약은 장로만이 교인들로부터 받은 서약이다. 이어서 시무집사와 권사 취임시 교인들로부터 협력할 것에 대한 서약을 받는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날 임직식에서 장로임직 기도에 고영기 목사(상암월드교회)가, 집사임직기도에 박춘근 목사(남부전원교회)가, 권사취임기도에는 한명기 목사(성남중앙교회)가 각각 기도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소강석 목사의 장로와 집사 임직과 권사 취임에 공포했다.<br><br><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546388648.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어서 진행된 권면과 축하순서에서는 장로에게 이우행 목사(열린문교회), 안수집사에게 오범열 목사(성산교회), 권사에게 이규섭 목사(행복한교회), 성도에게 김관선 목사(산정현교회)가 각각 권면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축사로서 오인호 목사(창대교회), 노승숙 장로(전 국민일보 회장), 김창준 장로(전 미연방하원의원), 송병원 장로(전 전국장로연합회 회장), 박성철 신원그룹회장 등이 각각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김종준 목사(부총회장, 꽃동산교회)가 축도하므로 모든 예식을 마쳤다.<br><br> <br /> 2018-12-15 23:16:00 [논평] 총신대 이사회결의무효 판결, 후폭풍 예상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57 <table width="381"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381"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510211458.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font color="blue"><strong>“<font color="blue"><strong>무효행위를 추인한 때에는 달리 소급효를 인정하는 법률규정이 없는 한 새로운 법률행위를 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이는 무효인 결의를 사후에 적법하게 추인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라 할 것.”(대법원 1995. 4. 11. 선고 94다53419 판결)</strong></font><br><br></strong></fon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Gulim"><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font face="Gulim"><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font face="Gulim"><strong>【(</strong></font><span class="tit_name mg_tit"><a class="f_tit_u" onclick="smartLog(this, 's=TO&amp;a=RCTO&amp;dc=0DL&amp;pg=1&amp;r=1&amp;d=1395802&amp;p=1', event);" href="http://www.reformednews.co.kr/" target="_blank"><font color="blue" face="돋움"><strong>리폼드뉴스</strong></font></a><font face="Gulim"><font color="blue">)<span class="txt_site"><font color="black">】</font></span></font></font></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font></span></span></span></span></font></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이미 무효인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신대학교’의 이사회의 결의를 훗날 이사회가 추인하는 결의를 하더라도 종전 무효인 결의의 하자가 치유되지 않는다. <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서울중앙지방법원 제41민사부(부장판사 박종택)는 김정훈 목사가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총신대학교 법인을 상대로 제기한 2015. 3. 31.자 ‘이사회결의 무효 확인의 소’(2017가합548041)에서 학교법인의 이사회가 특정 이사에게 적법한 소집통지를 하지 아니하여 그 이사가 출석하지 아니한 채 개최되었다고 판단하여 당회 무효라고 판단했다(법리적 근거: 대법원 2008. 5. 15. 선고 2008다3534 판결).<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먼저 재판부는 본안전항변에서 김정훈 목사가 이사회결의무효확인을 구할 소송의 당사자, 즉 원고가 될 수 있느냐에 대한 다툼에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원고의 자격으로 하자가 없다고 봤다. <br><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구 이사는 후임 이사가 선임될 때까지 종전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고, 임기 만료되거나 사임한 구 이사가 후임 이사가 선임될 때까지 종전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경우에는 구 이사는 그 직무수행의 일환으로 다른 이사를 해임하거나 후임 이사를 선임한 이사회결의의 하자를 주장하여 그 무효확인을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다.”(대법원 2005. 3. 25. 선고 2004다65336 판결 참조).<br><p class="바탕글">&nbsp;<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렇다면 2015. 3. 31.자 이사회가 왜 무효라고 판단했는가?<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당시 이사회의 의사정족수가 8명 이상인데 2015. 3. 31.자 이사회에서 김영우, 한기승, 고영기, 이기창, 안명환, 김승동, 배광식, 유병근 이사 등 긴급처리권자들과 함께&nbsp;모여 결의를 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날 회의록에 의하면 이같은 긴급처리권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span style="color: rgb(0, 0, 255); font-weight: bold;">이사회에 앞서 이사장이 오늘 참석한 이사 8인 중 배광식 고영기 목사는 이미 사표를 제출하여 이사직에 있지 않으나 정관 제28조 1항에 따라 이사회가 제적이사의 과반수에 미달함으로 사표를 제출한 이사 중에서 가장 최근의 </span><u style="text-underline: #000000 single;"><span style="color: rgb(0, 0, 255); font-weight: bold;">순서로 2인 이사 배광식, 고영기 목사를 긴급처리이시로 출석하게 하여 개회한 경위를 말한 뒤</span></u><span lang="EN-US" style="color: rgb(0, 0, 255); font-weight: bold;">, 긴급처리이사회는 위임 종료 시의 긴급처리(민법 691조)와 대법원 판례(2006다19054)에 따라 긴급업무처리권을 발동하여 종전 이사들이 업무를 수행하는 것으로서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 법무법인에 유권해석을 요청한 결과 아무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신속하게 재단이사회를 정상화하기 위하여 소집하게 되었음을 연이어 설명하다.</span><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임기 만료 또는 사임한 이사의 긴급처리권은 민법 제691조를 유추하여 임기가 만료되지 않거나 사임하지 않은 다른 이사만으로는 정상적인 학교법인의 활동을 할 수 없는 경우에 예외적으로 인정된다. <br><p class="바탕글">&nbsp;<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정상적인 학교법인의 활동이 가능할 경우까지만 한정하여 긴급처리권이 인정되면서 이사들의 임기 만료 또는 사임으로 인하여 이사회의 의사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에 의사정족수를 충족할 때까지 이사회 <u style="text-underline: #000000 single;">개최일로부터 역산하여 가장 가까운 시점의 임기만료 또는 사임한 이사들에게만 긴급처리권이 인정된다</u>.<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러면 임기만료나 사임한 이사들 중에 긴급처리권으로 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이사들을 역순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① 이완수(2015. 3. 2. 임기만료), ② 배광식(2014. 11. 7. 사임), ③ 한기승, 최형선, 유병근, 고영기, 이승희, 김정훈(2014. 10. 30. 각 사임) 등이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재판부는 2015. 3. 31. 이사회가 긴급처리이사 중 김정훈, 이승희, 이완수, 최형선에게 이사회 개최에 관한 소집통지를 하지 아니하였고 이에 따라 김정훈, 이승희, 이완수, 최형선이 이 사건 이사회에 참석하지 아니한 채 이 사건 이사회 결의가 이루어진 사실을 인정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렇다면 2015. 3. 31.자 이사회 결의는 “적법한 소집통지를 결하여 위 소집통지를 받지 못한 이사들이 출석하지 아니한 채 이루어진 절차상 하자가 존재하여 당연 무효”라고 판단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2015. 3. 31.자 이사회에서 선임된 하귀호 박재선, 곽효근, 문찬수 이사 등은 무효인 이사회에서 선임되었기에 이사 지위에 있지 않다. 그리고 무효인 이들 이사들에 의해서 2017. 2. 27.에 선임된 나머지 이사들인 유태영, 이균승, 임흥수, 김남웅, 이상협, 정중헌, 송춘현 등 7명도 이사의 지위에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렇다면 무효인 이사회에서 선임된 이사들을 교육부가 적법한 이사회 결의로 선임된 이사로 전제하여 임원(이사)취임승인을 해 준 것은 효력이 없게 됐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500526699.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한편, 신청인 김영우 목사 외 17명(안명환, 박재선, 유태영, 박노섭, 이균승, 임흥수, 김승동, 김영옥, 김남웅, 문찬수, 곽효근, 홍성헌, 이상협, 정중헌, 송춘현, 하귀호, 주진만)은 교육부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임원취임승인취소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하였으나 2018. 9. 17.에 기각됐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러나 김영우 외 13인(안명환, 박재선 박노섭, 이균승, 김영옥, 김남웅, 문찬수, 곽효근, 홍성현, 이상협, 송춘현, 하귀호, 주진만)은 서울고등법원에 항고(서울고등법원 2018루1499)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심리기일이 잡히지 않았다.<br><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 소송 역시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이사 아닌자들이 이사임을 전제로 관할청인 교육부가 임원취임승인취소처분에 대해 그 집행금지를 구할 당사자가 될 수 없게 됐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구체적으로 2015. 3. 31.자 이사회결의무효확인의 인용되어 이사직에 있다고 볼 수 없는 자들이 2017년 동안 이사회를 통하여 무슨 결의들을 해 왔고 이같은 결의들이 무효인 이사회에서 결의한 것이 돼버린 상황에서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2015. 3. 31.자 이사회 결의가 무효됐다. 이날 선임된 이사는 하귀호, 박재선, 문찬수, 곽효근 목사 등 4인이다. 이사회 결의가 무효라는 의미는 선임된 이사 4인은 이사가 아니라는 의미이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교육부의 이사 취임승인도 서울중앙지방법의 판결이 확정될 경우 다 무효가 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새로 선임된 이사 4인과 기존 안명환, 김승동, 김영우, 이기창 이사와 함께 8인이다. 이사회 의결종족수가 8인이므로 긴급처리권으로 4인을 선임하여 8인으로 의사정족수 요건을 맞췄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들에 의해 2017. 2. 27.자 이사회 결의로 유태영 이균승 임흥수 김남웅 이상협 정중헌 송춘현 등 7명의 이사가 선임됐다. 이사의 지위의 법적 효력이 없는 자들에 의해 새로운 이사 7인을 선임하였으니 이들 역시 이사의 지위에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2017. 8. 11.자 이사회에서 홍성헌, 김영옥, 박노섭 개방이사 선임도 효력이 없게 됐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들 이사에 의해 2017. 4. 5.자 이사회에서 결의된 법인 이사회시 이사들의 일비를 20만원으로 책정한 결의, 안명환 이사장직무대행의 면직, 제명, 출교에 관련 된 가처분 소송 및 본안소송비를 법인에서 감당하기로 하고 집행된 금액들은 다 무효가 되어 안명환 목사와 관련 지출된 소송비용이 있었다면 반환하여야 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특히 2017. 7. 7.자 이사회에서 수익용 기본재산인 사초동 사옥(소재지: 사울시 서초구 서초동 1658-19)의 매각(매매금액 2,896,000,000-부가세포함)에 대한 매각건 역시 불법 매각이 돼 버릴 여지가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또한 같은 이사회에서 이사회 소집과 관련하여 개인적 손해를 본 이사 박재선 목사의 손해 금액 일체를 법인이 변제키로 한 결의 역시 무효가 됨으로 이 금액을 반환하여야 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2017. 10. 26.자 이사회에서 이사회 결의무효소송 비용, 변호사선임 비용 일체를 법인에서 부담하기로 한 결의 역시 무효가 됨으로 변제하여야 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2017. 12. 15.자 이사회에서 김영우 총장이 사임하고 재 선임(임기 2017. 12. 15.-2021. 12. 14.) 역시 효력이 없게 됐다. 그리고 2018. 6. 29. 교육부 상대 소송비용 역시 법인에서 부담하기로 결의한 것 역시 무효이며, 이미 집행되었다면 다 환수하여야 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리고 2017년 9월 총회 직전인 9.15.에 이사회에서 그 유명한 정관변경 결의, 그 이후의 일부 정관 변경 결의가 다 무효가 돼 버렸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총신대학교 이사회실에 역대 이사장 사진에서 안명환 목사와 박재선 목사의 사진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필자는 지난 2017. 12. 30에&nbsp; 아래와 같은 기사를 내보낸바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font color="red"><strong>관련기사 바로가기</strong></font><br /><span class="ltitle_area"><p class="바탕글"><span class="ltitle_area"><a href="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7183&amp;section=sc4&amp;section2="><strong><font color="blue">총신대 재단이사회 어딘가에 흠이 <span class="search_word">있을껴</span> </font></strong><a href="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7183&amp;section=sc4" target="_blank"><strong><font color="blue"><img align="absmiddle" alt="새창보기"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skin15/ico_newwin.gif"><span class="newwin"><font size="2">새창보기</font></span></font></strong></a><strong><font color="blue"> ㅣ <span class="writer"><font size="2">소재열</font></span></font></strong></span><strong><font color="blue"> <span class="lwdate_area">2017/12/30 </span> </font></strong><div class="page_limit"><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tbody><tr><td width="1" nowrap="" bgcolor="#cccccc"><strong><font color="blue"></font></strong></td><td nowrap="" style="background: rgb(244, 244, 244); padding-top: 2px;" onmouseover="this.style.background='#F4F4F4'" onmouseout="this.style.backgroundColor=''"><strong></strong></td></tr></tbody></table></div><p class="바탕글"><br><br /></span><p class="바탕글"><br><br /> 2018-12-15 09:50:00 총신대 이사회 결의 무효확인 판결문 내용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56 <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403351730.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2015년 2월 24일 여수제일교회에서 진행된 새로 선임된 이사들의 워크숍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Gulim"><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font face="Gulim"><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font face="Gulim"><strong>【(</strong></font><span class="tit_name mg_tit"><a class="f_tit_u" onclick="smartLog(this, 's=TO&amp;a=RCTO&amp;dc=0DL&amp;pg=1&amp;r=1&amp;d=1395802&amp;p=1', event);" href="http://www.reformednews.co.kr/" target="_blank"><font color="blue" face="돋움"><strong>리폼드뉴스</strong></font></a><font face="Gulim"><font color="blue">)<span class="txt_site"><font color="black">】</font></span></font></font></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font></span></span></span></span></font></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대한예수교장로회&nbsp;총회(합동)가 직영으로 운영하는 총신대학교의 이사들이 총회(운영이사회)와 무관하게 이사를 선임하는 2015. 3. 31.자 이사회의 결의가&nbsp;소집절차상 하자라는 이유로 무효라는 판결이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br><br><p class="바탕글">서울중앙지방법원 제41민사부는 총회 측인 김정훈 목사가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총신대학교'를 상대로 제기한 '이사회결의무효 확인의 소에서 총회 측이 승소했다고 13일 밝혔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신대학교’ 이사회가 2015. 3. 31.자 이사회 결의 무효확인 판결 주요 내용은&nbsp;다음과 같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strong>◈사실관계(2015. 3. 31.자 이사회 결의&gt;</strong><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피고(이사회)는 2015. 3. 31. 긴급처리이사들을 소집하여 다시 이사회를 개최하였는데 배광식, 고영기, 한기승, 유병근이 긴급처리이사로서 이사회에 출석하였고, 위 이사회에서 임기가 만료된 일반이사 이완수의 후임으로 곽효근을, 사임한 일반이사 원고의 후임으로 문찬수를, 사임한 일반이사 이승희의 후임으로 장봉생을, 사임한 일반이사 최형선의 후임으로 박재선을, 사임한 일반이사 백남선의 후임으로 박요한을, 새로운 일반이사로 하귀호를 각 선임하는 내용의 결의가 이루어졌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법인은&nbsp;2017. 2.경 교육부에 이 사건 이사회 결의를 신청원인으로 하여 임원취임승인을 신청하였고, 교육부는 2017. 2. 17. 일반이사 하귀호, 곽효근, 문찬수, 박재선의 임원취임을 승인하였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3 내지 5호증, 을 제1 내지 9호증(가지번호 있는 경우 각 가지번호 포함, 이하 같다), 이 법원의 교육부에 대한 사실조회회신결과, 변론 전체의 취지<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strong>◈ 2015. 3. 31.자 이사회 결의의 무효 여부</strong><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재판부는 ‘대법원 2008. 5. 15. 선고 2008다3534 판결’ 등을 터잡아 학교법인의 이사회가 특정 이사에게 적법한 소집통지를 하지 아니하여 그 이사가 출석하지 아니한 채 개최되었다면 이는 당회 무효라고 판단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사회의 의사정족수가 8명 이상인데 이 사건 이사회 개최일 당시 재적이사는 안명환, 김승동, 김영우, 이기창 4명에 불과하였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 2015. 3. 31.자 이사회 개최 당시 긴급처리이사는 이완수(2015. 3. 2. 임기만료), 배광식(2014. 11. 7. 사임), 한기승, 최형선, 유병근, 고영기, 이승희, 김정훈(2014. 10. 30. 각 사임)이었다.<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사회가 긴급처리이사 중 김정훈, 이승희, 이완수, 최형선에게 이 사건 이사회 개최에 관한 소집통지를 하지 아니하였고 이에 따라 원고, 이승희, 이완수, 최형선이 이 사건 이사회에 참석하지 아니한 채 이 사건 이사회 결의가 이루어진 사실을 인정하였다. <br><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렇다면 2015. 3. 31.자 이사회 결의는 “적법한 소집통지를 결하여 위 소집통지를 받지 못한 이사들이 출석하지 아니한 채 이루어진 절차상 하자가 존재하여 당연 무효”라고 판단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또한 2015. 3. 31.자 이사회 결의가 “유효하다고 다투고 있음이 기록상 명백하므로 그 무효확인을 구할 이익도 인정된다(위와 같은 절차상 하자가 인정되어 이 사건 이사회 결의의 효력이 무효라고 인정하는 이상 나아가 원고가 주장하는 다른 무효 사유 및 예비적 주장에 관하여는 판단하지 아니한다).”라고 판단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한편, 총회가 원고보조참가인의 보조참가신청에 관해서는 인정하지 않고 기각했다.<br><br><p class="바탕글">총회 측의 주장은 “피고는 기존에 이사회의 이사를 사실상 원고보조참가인이 추천한 후보들로 선임하는 등으로 원고보조참가인의 지시&#8228;감독을 받아왔으나 피고의 일부 이사들이 학교법인 사유화를 위하여 원고보조참가인의 지도 및 총회 결의를 준수하지 아니하기 시작하였다.”다고 주장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러나 “피고는 사실상 원고보조참가인의 인적 자원인 목사를 양성하는 학교법인으로서 피고가 원고보조참가인의 총회 결의에 따라 운영되어야만 원고보조참가인이 종교교단으로 존속할 수 있고 이는 피고 이사회 구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으므로, 원고보조참가인은 이 사건 소송결과에 이해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러나 재판부는 “특정 소송사건에서 당사자 일방을 보조하기 위하여 보조참가를 하려면 당해 소송의 결과에 대하여 이해관계가 있어야 하고, 여기서 말하는 이해관계라 함은 사실상&#8228;경제상 또는 감정상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법률상의 이해관계를 말하는 것으로, 이는 당해 소송의 판결의 기판력이나 집행력을 당연히 받는 경우 또는 당해 소송의 판결의 효력이 직접 미치지는 아니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 판결을 전제로 하여 보조참가를 하려는 자의 법률상의 지위가 결정되는 관계에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대법원1999. 7. 9. 선고 99다12796 판결, 대법원 2007. 4. 26. 선고 2005다19156 판결 참조).<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위 법리를 터잡아 “원고보조참가인은 이 사건 소의 판결의 기판력이나 집행력을 당연히 받는 관계에 해당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설령 원고보조참가인의 주장대로 기존에 피고의 이사들이 원고보조참가인이 추천한 후보들로 선임되었다거나 원고보조참가인의 총회 결의가 사실상 피고의 이사회 결의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더라도 이는 사실상의 영향력에 불과하여 법률상의 이해관계와는 무관하며, 달리 원고보조참가인이 이 사건 이사회 결의와 관련된 법률상의 지위 또는 이해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다. 따라서 원고보조참가인의 보조참가신청은 참가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부적법하다.”하여 기각했다.<br><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리고 원고적격 자격으로 김정훈 목사의 긴급처리권이 있다고 보면서 원고 적격자에 하자가 없다고 판단하여 법인 측의 원고 부적격 주장을 일축했다.<br><br> <br /> 2018-12-14 14:58:00 서울고법, 충성교회는 최춘경 권사에게 4억여 원을 지급하라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55 <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326153997.jpg" border="0"></td></tr> </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리폼드뉴스 </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Gulim"><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font face="Gulim"><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font face="Gulim"><strong>【(</strong></font><span class="tit_name mg_tit"><a class="f_tit_u" onclick="smartLog(this, 's=TO&amp;a=RCTO&amp;dc=0DL&amp;pg=1&amp;r=1&amp;d=1395802&amp;p=1', event);" href="http://www.reformednews.co.kr/" target="_blank"><font color="blue" face="돋움"><strong>리폼드뉴스</strong></font></a><font face="Gulim"><font color="blue">)<span class="txt_site"><font color="black">】</font></span></font></font></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font></span></span></span></span></font></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서울고등법원 제6민사부(부장판사 이정석)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충성교회’(이원구)는 최춘경에게 317,607,819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아울러 2013. 11. 16.부터2018. 12. 7.까지 연 5%, 2018. 12. 8.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5%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고 지난 12월 7일 판결처분이 나왔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판결에 의해 충성교회 측은 최춘경 권사에게 이자를 포함한 4억여 원을 지급하게 됐다. 대법원의 상고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본 사건은 '충성교회 측은 최춘경 권사'에게 정산금으로 889,611,268원, 이&#12295;&#12295;과 공동으로 55,775,163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제기한 내용이다(2018나2017578본소). 이에 '최춘경 권사는 충성교회' 측을 상대로 약정금으로 1,693,607,820원을 지급하라고 반소를 제기했다(2018나2017585 본소).<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에 1심은 양측의 소송을 기각처분하자 이를 항소하였으나 서울고법 재판부는 충성교회 측은 항소 기각되었으나 최춘경 권사의 반소한 부분 중 317,607,819원에 대해 지급을 명하는 금액에 해당하는 최춘경 권사의 1심에서 패소한 부분은 취소됐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재판부는 충성교회 측은 최춘경 권사에게 이 사건 합의에 따른 정산금으로 지급하여야 할 돈은 대출 및 적금의 이자 내지 불입금 중 최춘경에 대한 분배대상 금액에서 이 사건 합의에 따라 이미 분배 받은 돈을 공제한 나머지로 산정한 금액이 317,607,819원이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 사건 동업약정의 종료일 다음날 이후로서 피고 최춘경이 구하는 2013.11. 16.부터 원고가(충성교회 측) 그 행위의무의 존재여부나 범위에 관하여 항쟁함이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이 판결 선고일인 2018. 12. 7.까지 민법이 정한 연 5%, 그 다음날인 2018. 12. 8.부터 다음 갚는 날까지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15%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충성교회 측은 최춘경 권사에게 정상금을 받아내려고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최춘경 권사가 반소하여 오히려 3억 원과 이에 대한 이자를 합하여 4억여 원을 지급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됐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재판부는 이같이 판결하면서 317,607,819원과 이에 따른 이자에 관해서 가집행을 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결과적으로 충성교회 측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으면 지급하지도 않았을 될 금액이었다. 먼저 소송을 제기하자 최춘경 권사가 반소하므로 밝혀진 이자를 포함한 4억여 원을 지급하게 됐다. <br><p class="바탕글">&nbsp;<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추후 계속된 소송들은 납골당의 진실이 가려질 것이며, 이제 당분간 은급재단 역시&nbsp;원점에서 다시 제기될 소송들을 예측컨대 가운데&nbsp;총회 은급재단은 소송으로부터 해방 받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문제는 이로 인한 실제적인 피해는 은급재단 이사들이 아니라 총회 은급재단에 은급가입자들만이 애간장을 태울 것으로 보여 사태의 결과가 주목된다. 모든 소송비용은 은급재단 기금에서 집행한다는 의미에서 얼마나 더 집행해야 끝날 것인지 답변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br> <br /> 2018-12-14 13:18:00 총신대 이사회결의, 왜 무효되었는가?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54 <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table width="250"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250"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526374909.jpg" border="0"></td></tr> </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리폼드뉴스 </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Gulim"><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font face="Gulim"><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font face="Gulim"><strong>【(</strong></font><span class="tit_name mg_tit"><a class="f_tit_u" onclick="smartLog(this, 's=TO&amp;a=RCTO&amp;dc=0DL&amp;pg=1&amp;r=1&amp;d=1395802&amp;p=1', event);" href="http://www.reformednews.co.kr/" target="_blank"><font color="blue" face="돋움"><strong>리폼드뉴스</strong></font></a><font face="Gulim"><font color="blue">)<span class="txt_site"><font color="black">】</font></span></font></font></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font></span></span></span></span></font></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서울중앙지방법원 제41민사부는 총회 측인 김정훈 목사가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총신대학교'를 상대로 제기한 '이사회결의무효 확인의 소에서 총회 측이 승소했다고 13일 밝혔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대상 이사회 결의는 2015. 3. 31.자 이사회 결의이다. 아직 판결을 입수하기 전에 원고 측(총회 측)이 재판 과정에서 제기한 핵심 내용에 관해서 알아본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font color="blue"><strong>2015. 3. 31. 이사회 회의록 1면 중 발췌<br></strong></font><p class="바탕글" style="line-height: 120%; margin-bottom: 1.6pt; -ms-layout-grid-mode: char;"><font color="blue"><strong></strong></font><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font color="blue"><strong>이사회에 앞서 이사장이 오늘 참석한 이사 8인 중 배광식 고영기 목사는 이미 사표를 제출하여 이사직에 있지 않으나 정관 제28조 1항에 따라 이사회가 제적이사의 과반수에 미달함으로 사표를 제출한 이사 중에서 가장 최근의 <u style="text-underline: #000000 single;">순서로 2인 이사 배광식, 고영기 목사를 긴급처리이시로 출석하게 하여 개회한 경위를 말한 뒤</u>, 긴급처리이사회는 위임 종료 시의 긴급처리(민법 691조)와 대법원 판례(2006다19054)에 따라 긴급업무처리권을 발동하여 종전 이사들이 업무를 수행하는 것으로서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 법무법인에 유권해석을 요청한 결과 아무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신속하게 재단이사회를 정상화하기 위하여 소집하게 되었음을 연이어 설명하다.</strong></font><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8인 중에 고영기 목사가 문제된 사안이다. 정준모 목사는 2014. 10. 23. 사임, 김정훈 고영기 목사는 2014. 10. 30. 사임, 배광식, 이승희 유병근 목사는 2014. 10. 31. 사임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같은 사임 시기에 따르면 2014. 10. 31.에 사임한 배광식, 이승희, 유병근 목사가 긴급처리권 이사로서 이사회에 출석하였어야 하는데, 아무런 근거도 없이 고영기 목사에게 긴급처리권을 부여하여 2015. 3. 31.에 이사회 결의는 긴급처리권이 인정되지 않는 이사를 참가 시킴으로써 의사정족수(8인)을 채우지 못한 하자가 존재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따라서 이사회 결의를 거쳤다고 하더자라도 이사에 대한 소집통지 등 절차상의 하자는 중대한 것으로 이러한 절차상 하자가 있는 이사회의 결의는 무효이므로(대법원 1994. 9. 23. 선고 94다35084 판결 참조) 이날 이사회 결의는 소집절차상 하자 및 의사정족수 미달에 따라 아무런 효력이 없는 결과임이 분명하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교육부가 이 사건 이사회 결의를 이유로 일반이사 4인(하귀호 곽효근 문찬수 박재선)에 대해 임원취임승인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이사회 결의 자체가 무효이므로 위 일반이사 4인은 적법하게 선임되었다고 볼 수 없고, 그들은 이사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br><br><br> <br /> 2018-12-14 11:33:00 법원, '총신대 이사회 이사 선임결의는 무효다'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53 <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326153997.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Gulim"><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font face="Gulim"><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font face="Gulim"><strong>【(</strong></font><span class="tit_name mg_tit"><a class="f_tit_u" onclick="smartLog(this, 's=TO&amp;a=RCTO&amp;dc=0DL&amp;pg=1&amp;r=1&amp;d=1395802&amp;p=1', event);" href="http://www.reformednews.co.kr/" target="_blank"><font color="blue" face="돋움"><strong>리폼드뉴스</strong></font></a><font face="Gulim"><font color="blue">)<span class="txt_site"><font color="black">】</font></span></font></font></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font></span></span></span></span></font></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대한예수교장로회&nbsp;총회(합동)가 직영으로 운영하는 총신대학교의 이사들이 총신대를 장악할 목적으로 자신들의 측근 중심의 이사를 선임한 이사회의 결의가 무효라는 판결이 나와 화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서울중앙지방법원 제41민사부는 총회 측인 김정훈 목사가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총신대학교'를 상대로 제기한 '이사회결의무효 확인의 소에서 총회 측이 승소했다고 13일 밝혔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총회 측 인사들은 "하나님께서 선지학교를 지켜주셨다"고 환호하며, 이제 이사선임을 위한 이사회 결의가 무효인 이상 무효인 이사들에 의해 총회와 무관한 법인 정관 변경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이제 당시 총회 측에 반대하여 총신 측 편에 섰다고 판단되는 이사장과 직무대행자였던 안명환 목사는 이제 이 결과에 대해 하나님 앞과 총회 앞에서 무슨 이야기든지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일을 사명을 가지고&nbsp;모든 수모를 참고 오늘에 이르기까지&nbsp;총신대와 법인 살리는 일에 수고해 왔던&nbsp;백남선, 박무용 증경총회장께 감사를 드린다.<br><p class="바탕글"><br><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313502043.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우리들의 이야기는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육부는 제3차 통보로 2016년 12월 27일까지 모든 이사들이 임기가 종료되어 재단이사회가&nbsp;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자 임기종료된 이사들로 하여금 긴급 처리권으로 후임이사를 선출하여 보고하도록 통보했다.&nbsp;<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하지만&nbsp;2016. 12. 27일에 이사회가 정족수 미달로 개회되지 못하고 교육부의 요구사항인 후임이사를 선출하지 못했다. 모처럼 총회측과 총신측의 관계자들이 합의하여 소집된 27일에 총회측 관계자인 백남선 목사, 김선규 목사 등이 회의장을 찾았다. 일명 총신 측과 총회 측이 합의하여 안배한 이사 후보자를 대상으로 이사를 선출하기로 합의를 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러나 이같은 합의는 총신 측이 불리하다는 목멘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개회 시간이 되어도 소집정족수에 1명이 모자랐다. 당시 법인 이사장인 안명환 목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의사정족수 1인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개회 되지 못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기자회견을 통하여 자신의 울분을 토로하고 귀가해 버렸다.&nbsp;<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총회장을 비롯한 참석한 이사들은 한결같이 불참한 이사들에게 연락하여 출석케 하여 정족수를 채워 학교운영과 졸업에 대한 학사 문제, 재정결산과 예산승인&nbsp;문제, 이사 선출 등의 현안 문제를 놓고&nbsp;함께 머리를 맞대 의논해야 함에도 이를 거부하고 돌아가자 버리자 이를 성토하기 시작했다. &nbsp;<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그동안 학교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사회를 지켜야 한다는 안명환 목사의 명분론은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결국 당시 양 측이 합의한 대로 이사를 선출했다면 아무런 문제 없이 이사회가 정상화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필자는 두고두고 안명환 목사에 관한 역사적인 불명예를 기록할 것이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신대학교' 법인이사회가 2017년 2월 3일 이사를 선임하기 위해서 소집되었다. 교육부가 총신대 이사회의 임원취임 승인 취소 사유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2월 6일 청문회에 출석하라는 소집 일을&nbsp;3일 앞두고 소집된 이사회였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이날 출석한 긴급처리권을 갖고 있는 이사들은 10명이었다(① 안명환 목사, ② 고영기 목사, ③ 김승동 목사, ④ 김영우 목사, ⑤ 김정훈 목사, ⑥ 배광식 목사, ⑦ 유병근 목사, ⑧ 이완수 장로, ⑨ 이승희 목사, ⑩ 한기승 목사)<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개방이사와 일반이사를 선임하기 위해서는 결의정족수는 이사정수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 이사 정수가 15명이므로 과반수는 8명이다. 8명이 찬성해야 이사로 선임된다.개방이사 선임을 위한 1차 투표에서 4명 중 2명만이 선출됐다. 이사회는 일사부재리의원칙을 어기고 재투표에 붙여 2인을 추과로 선출하여 개방이사 4명을 선출했다.이어서 일반이사 선출에 들어갔으나 단 한명도 선출되지 못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출석이사 10명 중 이승희 목사는 바쁜 일정으로 회의장을 떠났다. 이제 9명의 이사 중에 2명이 반대하면 이사가 선임되지 못한 형편이었다. 이날 참석한 복수의 이사에 의하면 "투표를 진행 중에 이사회 직무대행인 안명환 목사와 다른 한 이사(실권자)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들어온 후&nbsp;투표를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결국&nbsp;개방이사 4인이 선출되고 일반이사는 한 사람도 선출되지 못했다. 일반이사 선출에서 계속 반대표를 던진 2인은 총신대 이사회가 정상화 되는 것을 반대한 사람이라는 것이&nbsp;복수의 이사들의 평가였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계속된 파행으로 개방이사 일부는 총회 측과 합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취임승인 서류 제출을 거부했고, 긴급처리권자들이 개방이사와 일반 이사 선임에 대한 하자 문제를 원인으로 이사회결의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긴급처리권자만이 제기할 수 있는 소송이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2017년도 2차 이사회(2017. 2. 27.)&nbsp;회의록에 의하면 이사 8인(안명환 김승동 김영우 이기창 박재선 문찬수 곽효근 하귀호)이 출석한 것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2017년 제1차 회의록(2017. 2. 3.)에는 이사회에 참석한 이사는 긴급처리권인 안명환, 김승동, 김영우, 유병근, 배광식,&nbsp;한기승,&nbsp;고영기, 이완수, 김정훈, 이승희 등 10인이었다.&nbsp;<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백재선&nbsp;문찬수 곽효근 하귀호 목사는 2015년 3월 31.일 이사회에서&nbsp;이사로&nbsp;선임되어 이를 2017. 2.경 교육부에 취임승인을 신청하였으나&nbsp;2017. 2. 17.에 승인되어 2017. 2. 27.부터 이사회에&nbsp;참석하였다.&nbsp;이번 이사회 결의 무효 소송은 2015. 3. 31.자 이사회의 결의가&nbsp;무효가 되었다.&nbsp;<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총회 측 인사로 분류된 김정훈 목사가 당사자가 되어 거대 로펌인 태평양을 통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2017. 7. 12.에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신대학교’를 상대로 ‘이사회결의 무효 확인의 소’를 제기하여 1년이 넘는 치열한 공방 속에서 2018. 12. 13.에 결국 승소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사회에서&nbsp;이사를 선임한 이사회 결의가 무효라는 법원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이제 법인이사회가 총회와 무관한 법인 정관을 변경한 행위가 무효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에 불복하여 항소하려면 현 임시(관선)이사회가 해야 할 것으로 보인 가운데 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김정훈 목사에게도 감사할 뿐이다. 일부에서는 소송에 승산이 없다고 포기하도록 총회에 요청했지만 이승희 총회장은 믿음으로 끝까지 밀어부쳐 승리를 보게 됐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총회가 보조참가인으로 참였으나 이는 각하됐다. 결국&nbsp;이번 소송은 총신대를 지키기 위한 총회의 열정과 노력에 하나님께서 도와 주셨다고 우리는 믿는다.<br><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하나님의 학교는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확신을 가져본다.<br><p class="바탕글">판결문을 입수한 대로 평석할 것이다.<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소재열 목사(리폼드뉴스 발행인)<br><br> <br /> 2018-12-13 20:13:00 총회결의 확인, 임시당회장 재판권 없음...법적 구제길 열려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52 <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309464949.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강중노회정 강원석 씨가 헌의한 위임목사 외 시무목사, 임시당회장 재판권 금지의 건은<u> 헌법대로 하기로 가결하다(재판권 없음).”(이승희, </u>제103회 총회 회의결의 및 요람, 2018, 87)&nbsp;&nbsp;&nbsp;&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Gulim"><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font face="Gulim"><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font face="Gulim"><strong>【(</strong></font><span class="tit_name mg_tit"><a class="f_tit_u" onclick="smartLog(this, 's=TO&amp;a=RCTO&amp;dc=0DL&amp;pg=1&amp;r=1&amp;d=1395802&amp;p=1', event);" href="http://www.reformednews.co.kr/" target="_blank"><font color="blue" face="돋움"><strong>리폼드뉴스</strong></font></a><font face="Gulim"><font color="blue">)<span class="txt_site"><font color="black">】</font></span></font></font></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font></span></span></span></span></font></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대한예수교장로회 제103회 총회(합동)가 노회 직권으로 파송된 임시당회장은 재판 치리권이 없음을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회의결의서가 나와&nbsp;지교회 상당한 부분 분쟁을 예방할 것으로 보여 긍정적 효과가 기대되고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총회는 지난 11월 30일자로 &lt;제103회 총회 회의결의 및 요람- 2018&gt;을&nbsp;발행하여 제103회 총회 회의 결과를 공지했다. 이날 발행된 제103회 총회 회의록이 채택되어 인쇄물로 공지된 회의 결의서에&nbsp;관련 결의는 다음과 같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font color="blue"><strong>“강중노회정 강원석 씨가 헌의한 위임목사 외 시무목사, 임시당회장 재판권 금지의 건은<u> 헌법대로 하기로 가결하다(재판권 없음).”(이승희, </u>제103회 총회 회의결의 및 요람, 2018, 87)</strong></font><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같은 결의를 하지 않더라도 본 교단(합동)에 소속된 목사장로라면 상식적으로 교인들로부터 위임에 대한 복종서약을 받지 않는 목사나 장로는 당회(재판회)에서 재판권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런데 교단헌법에 무지한 일부 임시당회장들이 지교회 파송되여 본연의 직무를 무시하고 일부 당회원인 장로들과 연대하여 교회 직분자들을 치리하는 등 권징재판을 하여 면직이나 출교처분을 하는 등의 일탈행동을 해 왔다. 이는 직권남용죄에 해당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이러한 경우는 일부 노회에서 지교회를 장악한 목적으로 담임목사를 면직하고 임시당회장을 파송하고, 그 임시당회장이 일부 장로들과 야합하여 담임목사를&nbsp;추종한 장로와 집사, 권사 등에 대한 면직과 출교처분을 내리기도 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같은 불법을 노회가 합법이라고 주장하는 사례가 있어 오면서 전국 교회가 동일체 원리로 적용하여야 하는 법리가 훼손되어 교회 분쟁이 심화되는 일들이 일어나곤 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문제는 교단헌법과 총회 결의에 “임시당회장은 재판권이 없다”는 성문 문장이 없다보니 법원에서도 임시대표자이기 때문에 권징재판권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장로교 정치 원리에 반한 판결과 결정들이 있어왔으며, 불법이 합법화 되어 왔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런 이유로 교단헌법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유권해석이 필요했다. 강중노회는 이를 제103회 총회에 헌의했다. 이 헌이 원안은 노회 재판국 국원에 대한 자격 문제가 아니라 지교회 당회에서 노회가 파송한 임시당회장이 재판권 자격 내지 지위가 있는지 여부를 질의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같은 질의에 대해 제103회 총회는 ‘임시 당회장은 재판권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아울러 미조직교회 시무목사 역시 지교회 재판권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미조직 교회의 교인들은 1심에서 재판받을 권리가 박탈된 셈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장로회 정치를 하려면 장로를 세워 당회를 조직하고 담임목사를 위임목사로 위임하여야 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번 제103회 총회에서는 위임목사가 아니면 지교회 재판권이 없다고 유석해석을 하였으므로 노회에서 결의로 위임목사를 허락하였으나 위임식을 행하지 않는 임시목사(교단헌법은 이를 시무목사가 아닌 임시목사라 했음)는 재판권이 없음을 의미한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왜냐하면 총회 결의는 위임목사의 법적 효력 발생 시점이 위임식 때로부터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위임식을 통해 교인들로부터 기본 치리권에 대한 위임인 복종서약을 받기 때문이다.<br><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따라서 이같은 복종서약을 받은 위임목사 외에 시무목사나 임시당회장은 지교회 당회에서 재판권이 없다는 유권해석은 지극히 정당하다. 그러나 총회 결의 중에 노회의 재판국 국원의 자격에 관해서는 계속청빙청원에 의한 미조직교회 시무목사 역시 재판국원 자격이 있음을 결의한바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같은 교단헌법 유권해석이 나온 이상 그동안 임시당회장으로 파송되어 지교회에서 일부 장로들과 연대하여 일부 장로와 집사, 권사를 면직 내지 출교처분이 무효가 되었으며, 이러한 재판으로 지교회 분쟁이 심화된 원인으로 소속노회 고발되어 치리를&nbsp;받을 수 있게 됐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같은 불법으로 출교당한 교인들이나 직분자들이 법원에 피소되어 불이익을 당한 자들은 다시 법원에 교인 지위 확인을 비롯한 소송이 가능하리라 본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본 교단은 임시당회장이 파송 받은 지교회에서 재판권이 없음이 성문 문장으로 교단헌법의 유권해석권을 가진 총회가 확인하였으므로 상당한 분쟁은 해결될 수 있으리라 본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문제는 그동안 지교회에 파송된 임시당회장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교인지위를 박탈하는 출교처분(총유 재산권 박탈)을 내린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볼 수 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소재열 목사(한국교회법연구소, 법학박사)<br> <br /> 2018-12-13 14:08:00 수원노회, 어린이 세례와 성찬에 대한 세미나 내용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51 <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224016744.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nbsp;&nbsp;&nbsp;&nbsp;&nbsp; </td></tr></tbody></table></td></tr></tbody></table><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font-size: 9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nbsp;&nbsp;&nbsp;&nbsp;&nbsp;&nbsp;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수원노회</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노회장 곽필근 목사</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서기 안태경 목사</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에서는 제</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103</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회 총회에서 헌법 개정 공포된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어린이 세례</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어떻게 시행할 것인가</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에 대해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2018</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년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12</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월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11</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일 수원제일교회</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김근영 목사 시무</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에서 수원노회 신학부</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부장 송종완 목사</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서기 최길배 목사</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주최로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1</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부 예배 후에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l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어린이 세례 준비와 실제</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g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수원삼일교회 송종완 목사</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l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어린이 세례 받은 자의 성찬 참여에 대한 신학적 입장</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g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칼빈대학 역사신학 유창형 교수</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의 주제 발표가 있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22546813.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nbsp;&nbsp;&nbsp;&nbsp;&nbsp; 노회장 박필근 목사</td></tr></tbody></table></td></tr></tbody></table>&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노회장 곽필근 목사는 설교에서 이미 주기철 목사님께서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13</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세까지 유아세례를 준 기록이 있음을 보았다고 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런데 세례 명부를 생명책이라고 하여 세례가 구원과 일치함을 보여주었다고 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러나 박필근 목사는 세례란 구원받은 사람에게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함을 의미한다고 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 표시로 세례를 주는 것이지만</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세례 자체가 구원이 아니라고 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다만 유아세례란 은혜언약 가운데 바르게 키우겠다는 예식임을 알고 실천함이 옳다고 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첫 발제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어린이 세례 준비와 실제</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수원삼일교회 송종완 목사</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229202941.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nbsp;&nbsp;&nbsp;&nbsp;&nbsp;&nbsp; 송종완 목사</td></tr></tbody></table></td></tr></tbody></table>&nbsp;<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첫 발제자로 나선 송종완 목사는 어린이 세례에 대한 문제로 수년간을 총회에 헌의 했지만 이제 겨우 제</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103</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회 총회에서 헌법 개정을 선포한 단계이고 어떻게 시행할 것인가는 더 연구해야 하는 단계에 있다고 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총회가 공포한 유아세례는 출생부터 만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6</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세까지이고 부모 중 한편이라도 세례 받은 자녀에 해당하며</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어린이세례 경우는 만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7</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세부터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13</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세까지이고 부모의 동의가 있는 자</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부재 시 교사</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로 한하며 유아세례와 어린이세례 공히 본 교회 등록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6</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개월 이상 되고 평균 출석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70%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이상인 자여야 하며</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소정의 교육과정과 당회의 문답을 받은 자로 규정했음을 발표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리고 어린이 세례 필요성과 세례 방법을 제시하였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mso-list: l2 level1 lfo3;"><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어린이 세례 필요성</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1)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유아세례 후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13</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세까지 신앙형성에 중요한 시기에 어린이 세례를 받게 함으로 기독교인으로서의 분명한 정체성을 갖게 한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2)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차세대 주역인 어린이 신자에게 법적 신급을 부여하고 체계적인 신앙교육을 통해 인재로 육성해야 할 목회적 필요성이 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3)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주님의 지상명령은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고 차별이나 구분없이 세례를 베풀라고 하였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정신박약자</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마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28:19)</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4)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세례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생명적인 연합관계라면 어린 아이들에게도 동일하게 필요로 한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롬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6:3, 4).</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5)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성경에 세례 대상에서 어린이들을 배제하거나 제한한 경우가 없고 오히려 온 집안 식구가 세례를 받은 것을 증거하고 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구약 할례</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행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16:31`34; 18:8;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마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19:13~14).</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6)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다른 교단의 경우 어린이 세례를 베풀고 있어 타 교단에서 어린이 세례를 받고 본 교단 교회로 전입자에 대한 신급 구별이 모호하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7)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남자의 경우 어린이 세례를 받은 자가 신앙 휴식기에 군 입대하여 타 종교로 쉽게 포교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수신자 신앙의식</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2.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어린이 세례 방법</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1)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유아의 대상을 현제 젖먹이로서 유아</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乳兒</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가 아닌 어린 아동으로서 유아</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幼兒</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로 구별하여 만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6</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세까지로 한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2)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어린이 세례 대상을 만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7</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세부터 만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13</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세까지 어린이로 한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3)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세례 받은 부모의 신앙을 따라 유아세례를 주는 것처럼</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어린이 세례도 부모나 교사를 후견인으로 세워 세례를 베풀도록 한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4)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어린이 세례 문답서를 만들어 사전에 부모나 후견인과 함께 소정의 교육을 이수하도록 하여 예수님과 연합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분명한 신앙의식을 갖도록 한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5)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어린이 세례를 받은 자가 만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14</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세 이상이 되면 입교문답을 거쳐 세례교인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감당하게 한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둘째 발제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어린이 세례 받은 자의 성찬 참여에 대한 신학적 입장</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유창형 교수</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230179745.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nbsp;&nbsp;&nbsp;&nbsp;&nbsp; 유창형&nbsp; 교수</td></tr></tbody></table></td></tr></tbody></table>&nbsp;<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유창형 교수는 어린이세례를 받은 자의 성찬참여에 대한 신학적 입장은 어떠한가에 대해 발표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mso-list: l1 level1 lfo2;"><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칼빈의 견해</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칼빈은 유아세례를 강조했으며 구약의 할례가 신약에서 유아세례로 대체되었다고 보았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할례는 아브라함에게 한 하나님의 은혜 언약에 기초한 것이고 세례는 베드로의 설교인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에게</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한 것이라는 것에 기초한다고 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칼빈은 구약의 백성이 할례를 받았으므로 신약의 신자들이 유아세례를 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고 예수님께서 어린이를 환대하시며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라고 하셨으므로 천국의 상속자의 표징인 세레가 어린이들에게 실시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음을 말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러나 칼빈은 유아성찬에 대해서는 츠빙글리나 부처와 같이 이성이 발달하여 성찬에 대한 이해력과 분별력이 생길 때까지 연기했고</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유아세례를 인정하고 유아성찬은 반대한 이유에 대해서는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세례는 영적 중생의 표지이고 중생에 의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것이라면 성찬은 첫 유아기를 지나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칼빈은 유아세례의 성경은 나이의 구분을 하지 않지만 성찬의 경우에는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주님의 몸을 구별할 줄 아는 자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자신을 정검하고 시험할 수 있는 자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주님의 죽음을 전할 수 있는 자들 외에는 성찬이 전달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고 했다 그 근거로 고린도전서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11</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장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29</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절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를</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mso-hansi-font-family: 굴림;">ㄹ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들었으며 또한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26</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절에서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를 그 증거구절로 들었다고 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유아는 주의 죽으심을 전할 수 없고 주의 몸을 준별하지 못하니 성찬에 참석시킬 수가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2)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헤르만 바빙크의 견해</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헤르만 바빙크는 세례는 받는 것으로서 사람의 역할이 수동적인 중생의 성례로서 어린이들도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약속을 소유한 언약의 자녀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로서 참여할 수 있다고 했으며 유아세례의 증거는 고넬료의 온 가정이 믿고 세례를 받은 것에 근거한다고 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행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16:15, 34; 18:8).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러나 성찬은 참여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와의 교제로서 성찬을 받는 자들의 의식적이고 능동적인 행위를 전제한다고 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바울이 고린도전서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11</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장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26~29</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에서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자기를 분별할 것을 요구한 것은 오직 의식을 지닌 성인들만 성찬에 참여해야 함을 제시한 것이라고 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3)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박형룡의 견해</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박형룡은 영아</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유아</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들이 성찬에 참여할 수 없는 이유를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4</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가지로 말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첫째</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주의 만찬은 기념적인 행사이므로 교리적</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도덕적 식별력이 없는 영아</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유아</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들이 기념행사에 참여함은 불가능하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둘째</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주의 만찬은 능동적이므로 교리적 도덕적 식별력이 없는 영아</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유아</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들이 능동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일에는 참여할 수 없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셋째</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구약 시대의 영아</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유아</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들이 유월절에는 참여가 허용되지 않고</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 규례의 성질을 이해할 식별력을 가질 때까지 기다리게 되었듯이 신약시대의 영아</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유아</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들은 성찬에 참여할 수 없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넷째</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사도들은 가족들에게는 세례를 베풀었으나 가족들을 성찬에 허용한 일은 없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러므로 엄숙한 경건이 요구되는 성찬에 교리적</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도덕적 식별력이 없는 자들이 참여할 수 없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세례는 수동적인 것에 비하여 성찬은 받는 자의 편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결국 이상의 모든 이들의 결론은 유아세례는 수동적으로 받는 것으로서 분별력이 미숙한 유아일지라도 세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성찬은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분별력이 미숙한 유아가 참여함이 불가하다는 것이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 <br /> 2018-12-11 20:35:00 총신대 신대원 입학사정 관련 업무방해혐의 고발건 성립여부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50 <p class="바탕글"><table width="449"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449"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710/2017102443286059.jpg" border="0"></td></tr> </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리폼드뉴스 </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p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Gulim"><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font face="Gulim"><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font face="Gulim"><strong>【(</strong></font><span class="tit_name mg_tit"><a class="f_tit_u" onclick="smartLog(this, 's=TO&amp;a=RCTO&amp;dc=0DL&amp;pg=1&amp;r=1&amp;d=1395802&amp;p=1', event);" href="http://www.reformednews.co.kr/" target="_blank"><font color="blue" face="돋움"><strong>리폼드뉴스</strong></font></a><font face="Gulim"><font color="blue">)<span class="txt_site"><font color="black">】</font></span></font></font></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font></span></span></span></span></font></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입학사정의 권한이 대학원 위원회, 혹은 신학대학원 위원회에 있는가, 교수회에 있는가 라는 문제가 쟁점이 되어 이 문제로 고발 되어 법리적인 쟁점이 제기되고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고등교육법 시행령 제24조에 따라 대학원의 입학·수료 및 학위 수여에 관한 사항, 학과 또는 전공의 설치·폐지와 학생 정원에 관한 사항, 교육과정에 관한 사항, 대학원에 관한 규정의 재·개정에 관한 사항, 기타 대학원의 운영에 관한 중요한 사항은 대학원위원회에서 심의하여야 한다는 규정 적용 여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고등교육법 시행령 제4조 제1항 제16호에 의하면 학교내규에는 필수 기재사항으로 “대학평의원회 및 교수회가 있는 경우에는 그에 관한 사항”으로 규정돼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총신대학교는 교수회는 ‘총신대학교 학칙’ 제10장 제98-100조에 ‘대학교 교수회’를 규정하고 있다. 여기 대학교라 함은 법인 정관 제7장 직제에 의하면 대학교 안에 일반대학원, 신학대학원을 포함하고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고등교육법 시행령 제4조 제1항 제16호에 의거 교수회가 학칙 내규로 존재하고 교수회 심의사항인 제100조 제3항에 의하면 ‘입학, 수료 또는 졸업에 관한 사항’으로 규정한다. 또한 同 학칙내규인 대학원위원회의 직무로 규정한 제106조 제1항에 ‘입학, 수료 및 학위수여에 관한 사항’이 규정돼 있다.<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종합하면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4조 제1항 제16호에 따라 총신대학교 학칙 내규에는 교수회와 그 직무에 관한 규정이 존재하며, 그 규정인 내규대로 교수회가 대학원(신학대학원)의 입학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면 된다. 그러나 교수회가 내규에 존재하지 아니할 경우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24조가 규정한 총신대학교 학칙 내규 제106조 제1항에 근거하여 대학원위원회가 입학에 관한 사항을 집행하면 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따라서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4조 제1항 제16호에 따라 교수회의 직무와 총신대학교 학칙에 규정한 교수회의 직무에 근거하여 입학에 관한 사항을 집행하였을 경우 이를 불법행위로 고소(고발) 대상이 될 것인지 여부는 불투명하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다음으로 신학대학원위원회가 입학에 관한 사항을 집행하지 않고 교수회가 집행하였다고 하여 위법이 되는지 여부이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총신대학교 전 총장 시절 2017. 12. 14.자로 신학대학원 학사내규를 개정하였다. 개정된 내규에 의하면 신학대학원 학사내규에 의하면 ‘교수회’가 신대원 ‘학생의 입학, 수료 및 졸업에 관한 사항’과 ‘학칙 및 제 규정의 제정과 개ㆍ폐에 관한 사항’을 심의 및 의결하도록 돼 있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러나 전 총장 시절 주로 교수회의 심의의결사항을 신학대학원 위원회을 신설하여 이 위원회 직무로 개정했다. 개정된 신학대학원 위원회를 신설한 제98조 제3항에 의하면 신학대학원의 입학, 수료 또는 학위수여에 관한 사항을 신학대학원 위원회 직무로 한다고 규정을 개정해 버렸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같은 규정 개정에 대한 절차적 하자와 위법성으로 ‘학사내규효력정지가처분’(2018카합20290)을 제기했다. 이에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민사부는 2017. 12. 14.자로 개정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학사내규 11개 개정 조항의 효력을 정지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5. 25.자 2018카합20290 결정).<br><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은 특수대학원으로 설립인가를 받아 운영해 오고 있다. 교단 목회자 양성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그동안 신학대학원 교수회에서 입학과 졸업에 관한 사항을 집행하고 나머지 일반대학원을 포함한 특수대학원은 통합대학원 위원회에서 관장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게 문제의 소지로 논란이 된다면&nbsp;이제 적법한 절차를 거쳐 내규를 개정하여 직무의 한계를 명확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금번 신학대학원 입학에 관한 일로 업무방해혐의로 총장직무대행자로 교무처장, 신대원 원장을 고발한&nbsp;건은&nbsp;경찰과 검찰의 판단 법리에 그리&nbsp;어렵지 않으리라 본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소재열 목사(한국교회법연구소, 법학박사)<br><br> <br /> 2018-12-12 15:05:00 서철원 박사의 성경해석론 3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49 <table width="367"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367"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230128247.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서철원 박사는 성경해석의 정당한 방식은 신약과 구약을 함께 읽어야 한다고 했다(서철원, &#65378;교의신학 1권 신학서론&#65379;, 259). 성경은 구약만 있지 않고 또한 신약만 있지도 않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성립되어 있다. 그러나 둘은 하나의 책 즉 교회의 책이다(서철원, 259).<br><br>구약은 전체가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거하고 가르친다. 전혀 그리스도가 언급되지 않는 부분들도 그리스도를 위해 기록되었고 그리스도 때문에 기록되었다. 즉 그리스도 출현의 준비과정인 것이다(서철원, 259).<br><br>신약성경은 구약성경에서 기원했다. 신약이 구약과는 무관하게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부분들도 구약의 빛 아래에서 읽고 이해되어야 한다. 신약의 뿌리가 구약이다. 그러므로 구약과 함께 읽어야 하고 구약의 제사를 따라서 해석되어야 한다(서철원, 260).<br><br>또한 서 박사는 구약은 신약에 의해 해석되어야 한다고 했다(서철원, 260). 신약에 구약해석의 문맥이다. 구약의 내용은 신약에 의해서 그 의미와 목표가 결정된다. 구약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구약의 성취이시다. 따라서 구약은 신약에 의해 해석되고 이해되어야 한다.<br><br>구약의 진행된 목표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된 책이다. 구약은 그 자체로는 미완결인 책이다. 그 결말은 신약에 있다. 그리고 신약에 제시되어 있다. 따라서 구약의 내용이 신약의 빛에 의해 밝아지고 자기 정체를 분명하게 한다. 전 구약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루어진 구원이다(서철원, 260).<br><br>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원은 이스라엘 민족만 위한 것이 아니다. 세계 모든 종족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된다.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속의 완성 후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하심과 구속사역으로 이스라엘은 그 존재 목적을 다한 것이다(서철원, 260).<br><br>우리가 실수하여 구약을 그리스도 없이 해석하게 되면 유대주의 율법종교가 된다. 그렇게 되면 율법을 삶의 법과 구원의 길로 삼는 율법주의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철저하게 배제되었기 때문에 구원이 배제된다. 따라서 구약의 바른 성경해석은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야 한다. 즉 그리스도론적 해석이 구약의 바른 해석이다(서철원, 261).<br><br>서 박사는 신구약은 그리스도론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서철원, 261). 헬라어 번역성경인 70인경(LXX)이 교회의 성경이 된 것은 구약을 메시아적으로 해석하고 번역했기 때문이다. 신약과 교회도 이 메시아적인 해석을 계속했다. 신약은 구약을 바르게 이해하고 자기 자리를 굳게 하기 위해 예표론적으로 해석했다. <br><br>따라서 구약은 신약의 준비이다. 그리고 신약은 구약의 성취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구약에서부터 역사하시고 신약에서의 성취를 위해 이스라엘의 역사를 인도하셨다. 그러므로 구약에 나타난 사건들과 구원사역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서철원, 261).<br><br>우리가 구약을 읽을 때 그 시대상황에서 배정된 소임을 수행한 것을 배제하고 그리스도의 얼굴만 보려고 하는 것은 결단코 바른 해석이 아니다. 그 시대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에 의한 소임이라는 사실을 말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사전에 지시하는 것으로 밝혀야 한다(서철원, 261).<br><br>구약은 신약에 연결해서만 예표론적으로 볼 수 있다. 오직 그리스도만 산출하려고 하면 우화적 해석으로 흐르게 된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잃게 된다. 즉 그 시대상황에서 행한 소임이라는 것을 인정하며 그리스도의 사전 표상으로 이해해야 한다(서철원, 261).(계속)<br><br>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br> 2018-12-12 11:16:00 [논문]개혁신학의 성찬론의 특징과 그 구원론적 함의2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48 <strong>이 글은 김광열 박사가 &#65378;신학지남&#65379;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개혁신학의 성찬론의 회복을 위하여 그 의미와 영적 임재설, 은혜의 수단으로서의 성찬을 제시하고 있다. <br></strong><br><strong>III. 성찬의 의미<br></strong><br>그러면, 개혁신학이 가르치는 성찬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찬에서 신자에게는 어떤 영적 유익이 주어지는가? 성찬은 우선 신자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게 하는 예식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으면서, 구속사역을 성취하시고 승귀하신 현재적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제를 확인하고 그 분이 이루신 구원의 영적 축복들과 은총들을 받아 누리며 영적 성장을 이뤄가는 구원론적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br><br>또한 그러한 영적성장을 누리는 다른 성도들과의 연합도 향유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박형룡 박사도 이러한 성찬의 의미를 4가지로 요약하여 주의 죽음, 그리스도에 참여(연합), 영적 양육과 성장, 그리고 신자들의 연합이라고 정리해주었다. 여기에서는 성찬이 의미하는 바를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의 내용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br><br>1) 먼저 성찬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기억하고 그의 죽음의 사건을 선포하는 예식이다. 대교리문답 168문에서 제시된 답은 성찬의 의미를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대로 떡과 잔을 주고받으면서 그의 죽으심을 나타내는 것”임을 지적하면서 설명한다. <br><br>성찬에서 우리는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신 주님의 죽음을 보게 된다. 떡이 떼어지고 포도주가 부어질 때, 물론 우리는 그것이 문자적으로 주님의 몸과 피라고 간주하지는 않지만 주님의 몸이 찢어지고 그 분의 피가 흘려졌던 골고다 현장을 기억하게 된다. 성찬을 통해서 우리는 바로 골고다 언덕에서 주님이 감당하셨던 그 속죄적 죽음의 의미를 재확인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고전 11:26에서 바울은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라고 성찬의 의의를 설명했다.<br><br>2) 더 나아가 성찬을 통해서 신자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모든 구원의 영적 축복들에 참여한 자됨을 확인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떼어주신 떡과 포도주가 상징해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영적으로 받아먹음으로서, 신자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임을 확인하고, 그 연합 안에서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구원의 모든 영적 축복들에 현재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대교리문답 168문에서도, 성찬의 참여자들은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통을 확인합니다”라고 말한다.<br><br>이러한 점에서 성찬은 -개혁신학의 구원론에서 강조되고 있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한 구원”이라는 관점에서- 구원론적 중요성을 지닌 예식이 되는 것이다. 에베소서 1장 3절에서 말해주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들”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다. 예정의 은총에서부터 거듭남(중생), 회개나 믿음, 칭의, 양자, 성화 등과 같은 영적 축복들은 모두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누리게 되는 영적 축복들이고 성찬은 그 연합의 축복들을 확인시켜주는 예식이기 때문이다.<br><br>개혁신학의 구원론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강조한다. 예수 믿는 것은 별도이고, 또 구원받는 것은 또 다른 일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어 그 분과 연합함으로서 그 분 안에서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고전 1:30은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구원이고 의로움(칭의)이시고 거룩함(성화)이심을 말해준다. 그 밖의 중생이나 회심, 양자, 성도의 견인 등도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영적 축복들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구원의 영적 축복들은 그리스도와 분리되거나 떨어져서는 주어질 수 없는 성격의 축복들인 것이다.<br><br>성찬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공급받음으로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재확인하는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구원의 영적 축복들을 누리는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는 점에서 성찬의 구원론적 중요성을 지적해 볼 수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성찬은 구원론적 현재적 중요성을 지닌 예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여기에서 “구원론적 중요성”의 의미는 중세 카톨릭의 미사에서 제시되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속죄의 제사를 다시 끄집어내는 과거시제적 중요성이 아니라, 승귀하셔서 지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현재적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시는 성령의 비밀한 역사를 통하여 향유되는 구원의 영적 축복이라는 현재적 중요성을 의미하는 것이다.<br><br>3) 성찬을 통해 신자는 그리스도와의 연합된 존재임을 확인하고 선포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참 생명을 얻게 되며 영적 음식을 먹고 성장하게 된다. 이 땅의 음식들이 우리의 육적 존재에 자양분을 공급하듯이, 성찬에서의 “영적음식”은 신자의 영혼에 영적 자양분을 제공해준다. 대교리문답도 “성찬을 합당하게 받는 사람들은 그의 몸과 피를 공급받아 영적으로 강화되고 은혜 안에서 성장하게 되며”라고 말해준다.<br><br>칼빈은 성찬에서의 그리스도의 임재의 실제성(real presence)에 대한 핵심개념으로 “참 생명을 얻게됨”을 제시한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제4권 17장 8장에서 사도 요한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성찬에서의 “생명 얻음”의 원리를 설명한다.<br><br>먼저 그리스도만이 태초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의 말씀이심을 사도 요한이 가르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 분은 “생명의 샘이시며, 또 시작이 되시며, 모든 것은 여기서 받아 살 수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를 “생명의 말씀”이라고도 했고 (요일 1:1), 또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요 1:4)고 말하기도 했다고 지적하면서 칼빈은 그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br><br>그가 모든 피조물에까지 항상 힘을 미치게 하여 모든 것을 숨 쉬게 하며, 또 생명을 주셨다는 것을 말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요한이 그 뒤에 덧붙여서 쓰기를 “이 생명이 나타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육을 취하셔서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고 우리의 손으로 만질 수 있게 자신을 주심에 이르러서였다”고 말하고 있다.(요일 1:2)<br><br>이처럼,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의 근원이시고 모든 피조물이 그 힘으로 존재하고 생명을 얻게 됨을 성경이 가르친다고 지적한 후에, 그것을 누리지 못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그것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멀리 떠나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생명의 말씀되신 이로부터 멀리 떠나 교제가 끊어진 상태에서는 그 생명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러한 상태에서 해결받기 위해서는 말씀되신 그리스도와의 교제 속으로 들어와야 하며, 그래야 생명을 얻고 영생의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한다.<br><br>비록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는 충만한 생명이 포함되어 있다’고 들었다고 하여도 당신 자신은 그 말씀으로부터 가장 멀리 떠나 있어서 당신 자신 가운데서, 또 당신 자신의 주위에서 죽음 밖에는 아무 것도 만나지 못한다고 하면 거기서 당신이 파악하는 확신은 얼마나 작은 것일까? 그러나 생명의 샘이 우리 육체의 모습을 취하여 머물기 시작하셨기 때문에 벌써 그는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숨으시는 일은 없고 우리가 그 분에게 참여할 수 있도록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고 계시는 것이다.....그는 자신께서 머물러 계셨던 육체를 소생시켜서....이 육에 참여함으로써 우리가 죽지 않는 삶으로 양육을 받는 데 이르게 하신 것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생명의 떡이다” “내가 주는 떡은 나의 살이며, 그것을 나는 세상의 생명으로서 주려고 하는 것이다”(요 6:48, 51)라고 그리스도는 말씀하신다.<br><br>칼빈은 이러한 설명의 결론을 요한복음 6:55에서 찾고 있다: “그의 살은 참된 양식이며, 그의 피는 참된 음료로다.” 결국 그리스도의 살은 “생명을 주는” 육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강요의 바로 다음 절에서 칼빈은 그와 같은 요점을 반복한다: “그 분은 그의 인성 안에 차고 넘치는 생명을 가지고 계시며 그 때문에 그 분의 살과 피를 받는 자는 누구나 동시에 생명을 받을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이다.” 결국, 성찬에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된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가 있게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br><br>사실 요한복음 6장 53절 이하에서부터 주님은 그러한 교훈을 분명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br><br>물론, 예수님은 여기에서 문자적으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을 의미하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늘로부터 내려온 영적 양식인 자신과의 연합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신자가 사는 것은 물질적인 살과 피를 먹음으로가 아니라, 성찬에서의 떡과 포도주를 먹음으로서 그것이 상징해주고 있는 실체인 (몸을 지니신 채로 승귀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주어지는 영적양식을 먹게 되며 생명을 얻게 되고 그가 이루신 구원의 영적 축복들을 받아 누리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br><br>이처럼, 성찬에서 신자는 떡과 포도주가 상징하고 있는 참된 양식이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고, 또 그 안에서 생명을 얻게 되며, 구원의 여정에 필요한 영적 자양분을 공급받으며 생명 얻은 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br><br>4) 또한 신자들이 성찬의 떡과 포도주를 나눌 때, 그들은 주 안에서 서로 하나가 되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대교리문답도 “동일하고 신비한 몸의 지체로서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교제하고 있음을 증거하며, 또한 이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br><br>바울도 고전 10:17에서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라고 말한다. 성찬에 참여하는 신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이 되었으므로, 그들도 또한 서로 한 몸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br><br>5) 이와 같은 성찬의 의미들을 깨닫게 될 때, 결국 신자는 성찬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게 되고, 또 앞으로도 더 풍성한 영적 축복들로 인도받게 될 것도 확신하며 감사하게 된다. 성찬에 참여하는 동안, 신자는 자신을 위하여 당하신 주님의 죽음과 베푸신 구원의 영적 축복들을 확신하게 되며, 그분의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사랑을 가시적인 떡과 포도주를 통해서 체험적으로 느끼게 된다.<br><br>주의 만찬으로 자신을 초대해주신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며, 한 몸된 그의 나라의 백성들과 함께 영적 음식을 나누는 가운데, 또한 신자는 앞으로 종말에 주어질 어린양의 성대한 혼인잔치에까지도 초대받게 될 것을 확신하며 감사하게 된다. <br><br><strong>IV. 은혜의 수단으로서의 성찬<br></strong><br>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이 제시하는 바, 신자가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외적 수단들에는 말씀, 성례, 기도가 있다. 그것들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것으로서 자신이 이루신 중보의 유익을 얻을 수 있는 은혜의 수단들로서 효과적으로 사용되도록 주어진 것이라고 설명한다.<br><br>세 가지의 은혜의 수단들 중의 하나로서 성례에는 성찬과 세례가 포함되지만, 그 둘은 차이점을 지닌다. 그 성례들에 참여함에 있어서 두 가지 점들이 지적될 수 있다. 대교리문답 177문이 지적하는 두 가지 차이점들을 요약해보면, 첫째는 세례가 신자의 생애 중 한 번만 시행되는 것이나 성찬은 일생동안 자주 시행하는 것이라는 점이며, 두 번째 차이점은 세례는 유아에게도 시행될 수 있으나 성찬은 자기 자신을 살필 수 있는 나이가 되고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시행된다는 것이다. 성찬은 그 예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고 주님의 살과 피를 받아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대교리문답 속에서 성찬이 어떻게 은혜의 수단으로 설명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몇 가지로 정리해보려 한다.<br><br>1) 그렇다면, 만일 불신자가 성찬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런데 그 주제는 칼빈이 기독교 강요에서 취급하고 있다. 기독교강요 IV권 17장 33절, 34절에서 칼빈은 그리스도의 몸이 떡 안에 포함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오류에 대해서 지적하면서, 불신자들의 성찬참여의 주제를 거론한다. 그들은 불경건한 자나 사악한 자 혹은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이 없는 자일지라도 그리스도의 몸을 먹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입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주어지는 영적 음식이기 때문이다.<br><br>그리스도의 영을 가지지 않은 채로 먹는 자는 모두 김빠진 포도주를 마시는 것과 같고, 그리스도의 살을 조금도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분명히 그리스도의 몸이 죽은 것으로서, 힘이 없는 것으로서 비신자가 더럽히는 대로 버려두었다고 하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너무나도 욕보이며 또 찢는 것이 된다.<br><br>결국 불신자가 성찬에 와서 떡과 포도주를 받을지라도 그들은 단지 외면적으로 참여하고 있을 뿐이며, 헛되이 그리고 목마른 상태로 그대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라고 칼빈은 가르치고 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육적인 먹음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그릇을 가지고 참여해야 진정으로 받아먹을 수 있고, 그 분과 연합 안에서만 성찬의 진정한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br><br>기독교 강요 제IV권 17장 34절에서 칼빈은 이러한 이해는 어거스틴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어거스틴의 글을 인용한다: “성례전의 힘은 눈에 보이는 성례전이 아닌, 내면적인 성례전에 있으며 그것은 마음으로 먹는 것이지 이로 깨무는 것이 아니다.” 어거스틴과 마찬가지로, 칼빈에게 있어서도 성찬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조건은 믿음이었다.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성찬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지만, 그것은 마술적인 방식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성찬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유효한 은혜의 방편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br><br>그러므로, 불신자가 성찬에 참여한다 해도, 그는 믿음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므로 성찬의 의미를 이해할 수도 없고, 또 떡과 포도주도 단지 입으로만 씹고 갈 뿐, 진정으로 주님의 살과 피를 받아먹지는 못한 것이 된다. 결론적으로 불신자에게는 성찬이 은혜의 수단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br><br>2) 그러면, 믿음이 연약한 성도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 문제에 대해서 대교리문답은 그들도 참여할 수 있다. 아니,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대교리문답 172문에서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 혹은 자신이 성찬에 참여할 합당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이 성찬에 참여해도 됩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주어지는 답은 이러하다:<br><br>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 혹은 자신이 성찬의 성례에 참여할 합당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도, 비록 이에 대한 확신은 없다 해도 그리스도에 대해 참된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이 자기에게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걱정하며,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고 죄악을 떠나기를 거짓 없이 소원한다면, 그는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성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믿음이 약하고 의심하는 성도들도 구원하기로 약속하시고 성례를 정하셨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의 믿음 없음을 애통하고 의심을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서 그는 성찬에 참여해도 되며, 또한 성찬에 반드시 참여해 자신의 믿음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br><br>결국 172문답에서 성찬이란 은혜의 방편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이라고 해서 그들을 성찬에서 배제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찬에 참여하게 하여 믿음을 더욱 강화시키며 영적 성숙을 이루어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찬이란 단순히 골고다 언덕에서의 주의 죽음을 기억하고 기념하기만 하는 예식이 아니라, 승귀하셔서 현재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음으로서 그 분과의 연합을 확인하고 영적음식을 받아먹음으로서 연약한 믿음의 자리에서 영적 활력소를 공급받고 성장해가도록 돕는 효과적인 은혜의 방편이기 때문이다.<br><br>3) 성찬식에 참여하기 전, 참여하는 동안, 그리고 참여한 후에 신자가 해야 할 일들은 무엇인가? 대교리문답은 이 세 가지 시점들 속에서 성도가 준비하고 노력해야할 일들을 제171문, 174문, 그리고 175문에서 각각 답변해주고 있는데, 그러한 세밀한 지침들이 주어지는 이유도 역시 성찬이 은혜의 방편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님의 구원의 은총을 누리도록 도와주는 은혜의 방편이 효과적으로 시행되도록 하기 위한 지침들인 것이다.<br><br>171문은 참여하기 전에 준비해야할 일들을, 174문은 성찬을 시행할 때 해야 할 일들을, 그리고 175문은 성찬에 참여한 후에 성도가 해야 할 일들을 말해준다.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라고 묻는 171문에 대해서 주어진 답은 이러하다:<br><br>“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를 살피고, 자신의 죄와 부족한 점, 그리고 자신들의 지식과 믿음과 회개, 하나님의 형제들에 대한 사랑과 모든 사람들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이 진실된지, 그리고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들에 대해 용서하는 마음이 있는지 살펴야 하며, 그리스도를 사모하고 새롭게 복종하고자 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이 모든 은혜를 새롭게 하고, 진지한 묵상과 간절한 기도를 통해 준비해야 합니다.”<br><br>이 모든 준비사항들에 대한 자세한 지침들은 신자가 성찬에서 참여하게 될 떡과 포도주는 단순한 상징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는 예식으로 이어지며 그래서 승귀하신 그리스도와의 영적 임재와 교제 속으로 들어가는 예식임을 전제로 할 때, 마땅히 해야 할 준비들인 것이다. 더 나아가 성찬은 참여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그들 간의 사랑의 마음들을 회복하고 그리스도와의 연합 속에서 참된 하나됨을 회복해가는 예식이 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br><br>성찬에 참여하는 동안에 해야 할 일들을 말해주는 174문에 대한 답 속에서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음으로서 진정으로 승귀하신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를 경험하고 그 분과의 연합을 확신하고 그 분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서 기쁨과 감사를 누리며 영적으로 새롭게 되며 성장하는 “은혜의 방편”으로서 효과적으로 시행되기 위하여 성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들이 제시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br><br>성찬 후에 성도들이 해야 할 지침에 대한 175문에 대한 답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첫째는 은혜의 방편으로 시행된 성찬예식의 결과들을 점검하고 확인하는 일이며, 둘째는 만일 성찬을 통해서 은혜를 누리지 못했다면 무엇이 잘못됐었는지를 돌아보며 다음 성찬에서는 은혜의 방편으로서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자신을 점검해야 함을 가르친다:<br><br>성찬의 성례를 받은 후에 성도들에게 있는 의무는 자기가 성찬을 받을 때 어떻게 행했는지, 그리고 무슨 은혜를 받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만일 소생함과 위로를 받았으면 그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며, 그 은혜를 계속 주시도록 간구하고, 퇴보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자기가 한 서약을 시행하고, 그 성례에 자주 참석하고자 스스로 다짐해야 합니다. <br><br>그러나, 그 때 은혜를 받지 못했다면 자기 자신의 성찬에 대한 준비가 어떠했으며, 또한 성례의 때에 어떻게 행동했는지에 대해 좀 더 정확하게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경우와 관련해서 그들이 하나님과 자신의 양심 앞에 자기 자신을 인정할 수 있다면, 때가 되면 나타날 열매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준비나 행동에서 잘못한 것이 발견된다면, 자신을 겸손히 하고 더 많은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 이후에 있을 성찬에 참여해야 합니다.<br><br>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에서 성찬과 관련해서 제시해주는 이와 같은 지침들은, 성찬은 단지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예식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먹고 승귀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제로 들어감으로서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을 받아 누리는 “은혜의 방편”임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의 기념예식 정도로만 취급해야할 성례가 아니라, 신자의 영적 성숙과 구원의 은총을 받아 누릴 수 있게 하는 구원론적 중요성을 지닌 예식으로 그 의미가 한층 고양된다고 하겠다.<br><br>그러므로 칼빈은 성찬이 “자주 기념되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례가 그저 형식적으로 일 년에 한 번 정도 시행되는 것은 앞에서 살펴본 성례의 구원론적 중요성 혹은 은혜의 방편 차원의 중요성의 관점에서 볼 때 옳지 않다는 것이다. 성례가 믿음이 연약한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제로 나아가게 하고 신앙의 성숙을 가져오는 은혜의 유효한 외적 수단이라면, 그것을 자주 시행하는 것이 성도와 교회에 유익이 되기 때문이다.<br><br>“오히려 기독교인들이 자주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기하고, 이로 인하여 그들의 신앙을 북돋아 강하게 하고, 자신들이 힘을 얻어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부르며 그의 선하심을 선언하고 마침내는 이로 인하여 서로의 사랑을 배양하며 그들 서로가 이 사랑을 증거하여 그 유대로 그리스도의 몸의 연합을 식별케 하기 위하여 모든 신자들 간에 성례가 자주 이용되도록 제정되었다.”<br><br><strong>V. 결론과 제안<br></strong><br>본고에서 우리는 개혁신학이 가르치는 성찬이해를 칼빈의 기독교 강요와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의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종교개혁자들은 성찬론에 있어서 중세 카톨릭의 화체설을 거부했다. 그러나, 동시에 칼빈의 이해는 루터나 쯔빙글리와 같은, 다른 종교개혁자들과도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음을 확인했다.<br><br>카톨릭의 화체설이 떡과 포도주의 본질의 변화를 근거로 하여 성찬의 신비를 주장하려 한 것도 문제이지만, 동시에 루터교의 공재설도 떡과 포도주 안에 주의 살과 피가 포함된다는 방식으로 주님의 몸에 참여하려 한 것은 승귀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오해 (신적속성교류에 관한 오해)에서 주어진 것임을 칼빈은 성경적으로 지적해 주었다. 카톨릭과 루터교가 성찬의 신비를 떡과 포도주라는 표상에 묶어둠으로서,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를 왜곡 혹은 제한시키는 오류를 범했다면, 반대로 쯔빙글리의 기념설은 성찬의 의미를 너무 피상적인 차원으로 추락시키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음을 칼빈은 간파했던 것이다.<br><br>그러나, 칼빈의 “영적, 실제적 임재설”을 단순히 루터와 쯔빙글리의 관점들 사이에 중도적인 입장을 견지하려는 차원에서 시도된 것으로 평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칼빈이 이해한 성경적 구원론의 기초 위에서 일관되게 바라본 구원론적 가르침의 한 표현이라고 해야 한다. 로버트 레담 교수는 칼빈의 성만찬 교리는 그의 전반적인 신학으로부터 분리되어 이해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칼빈의 성찬론은 그의 신학에서 흘러나온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레담이 지적하는 “그의 신학”이란 특히 그의 구원론을 가리키고 있다. 칼빈에게 있어서 구원이란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주어진 구원이기 때문이다.<br><br>구원이란 그리스도가 인류역사 속에서 객관적으로 이루신 구속의 성취가 신자들에게 주관적으로 적용됨으로서 주어지게 되는데, 칼빈은 그리스도의 성취된 구속의 열매들이 신자들에게 주관적으로 적용되는 토대가 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오늘 신자의 죽음과 부활로 주어지게 되고, 그 그리스도와 함께한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중생, 칭의, 양자, 성화 등과 같은 구원의 영적 축복들이 주어지고 누리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br><br>그렇다면, 칼빈에게 있어서 성찬이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먹는 예식으로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하며, 그 분과의 연합과 교제 안에서 구원의 은혜와 축복들을 향유하게 되는 구원론적 중요성을 지닌 예식임을 말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성육신하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고 승귀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신자는 그리스도께서 구속사역을 통해서 이루신 모든 영적 축복들을 받아 누리게 된다는 것이 칼빈과 개혁신학의 구원론의 핵심이기 때문이다.<br><br>그렇다면, 주님의 살과 피를 영적으로 먹고 마시는 성찬 예식은 바로 그러한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제를 통해 구원의 축복들을 누리는 은혜의 순간들이 되는 것이다. 단순히 그리스도의 죽음만을 기억하거나 그 분을 기념하기만 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 분의 실제적인 임재를 영적으로 확인하고 누리며 그의 몸과 피를 받아먹음으로서 영적 성숙을 이루어가는 은혜의 자리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례란 구원론적 현재적 중요성을 지닌 예식인 것이다.<br><br>그러므로, 성찬은 기도와 말씀과 함께 은혜의 수단으로서 교회 안에서 적극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연약한 성도들의 영적 성장과 성도들 간의 사랑의 교제의 회복을 이루기 위하여 성찬에 대한 바른 교육과 대교리문답에서 제시되는 바와 같은 구체적인 적용지침들의 진지한 시행들이 지교회 안에서 실천되어질 때, 주님의 몸된 교회는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든든히 세워져갈 수 있을 것이다. <br><br>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br> 2018-12-12 11:17:00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 위임결의무효 대법원 재상고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47 <table width="569"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69"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656115622.jpg" border="0"></td></tr> </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리폼드뉴스 </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와 동서울노회는&nbsp;대법원 파기환송(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6나2013077 판결) 후 원심판결(서울고등법 2018. 12. 5. 선고 2018나2019253)에 불복하여 11일 대법원에 재상고했다.<br><br>사랑의교회 갱신위 측인 김두종 외 8명이 제기한 동서울노회가 2003. 10.경 오정현 목사를 사랑의교회의 위임목사(당회장, 담임목사)로 위임한 결의는 무효임을&nbsp;확인하는 '위임결의무효확 등'의&nbsp;소송을 제기했다.<br><br>이에 1심(서울중앙지방법원 2016. 2. 4. 선고 2015가합15042 판결)은 원고패,&nbsp;2심인 대법원 환송전 판결(서울고등법원 2017. 5. 11. 선고 2016나2013077 판결)은 항소&nbsp;기각, 3심인 대법원은 파기환송(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6나2013077 판결)되었다.<br><br>대법원의 환송 후 서울고등법원 제37민사부는 대법원 환송 판결을 유지하는 판결을 지난 12월 5일에 선고했다(원고 승).<br><br>이제 오정현 목사와 동서울노회 측은 다시 대법원에 지난 12월 11일에 재상고를 했다.<br><br>대법원에 재상고를 하므로써 경우의 수는 복잡해 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있기 까지 오정현 목사의 위임목사(당회장, 담임목사) 신분은 유지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 없는 것은 직무정지 가처분의 소송이 제기될 것인지 여부다. <br><br>그리고 동서울노회가 임시당회장을 파송한다면 대법원의 확정판결 이후가 될 것인지, 아니면 가처분 소송이 제기될 경우 임시대표자 지정까지를 포함할 경우까지를&nbsp;대비하여 재상고가 확정되기 전에 임시당회장 파송의 필요성이 요구된다.<br><br>재상고인 대법원 확정판결 이전에 임시당회장을&nbsp; 파송할 경우 어떤 원칙, 즉 절차적 적법성이 무엇인지에 관한 경우의 수들이 복잡하게 얽힐 것으로 보여 그 귀추가 주목된다.<br><br>이와는 별도로 서울고법에서 진행된 총신신대원 ‘합격무효처분 무효확인청구'(2017나2061981)&nbsp;소송의 결과도 관심을 갖는 이유는&nbsp;이 소송에서 패하여 총신신대원 합격이 취소될 경우 사랑의교회 측의 모든 소송이 심각해 진다. 본 사건 소송은 12월 14일에 4번째 심리가 진행된다.<br><br>서울고법에서 합격무효처분 무효청구소송&nbsp;판결이 있게 되고 이를 다시 대법원에 상고할 경우 이미 제기된 재상고와 맞물리게 된다.<br><br>사랑의교회 소송건은 2018년을 넘어 2019년에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여 그 귀추가 주목된다.<br> 2018-12-12 03:32:00 예정교회(설동욱 목사) 다산신도시 시대 '건축 후 첫 예배'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46 <br><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Gulim"><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font face="Gulim"><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font face="Gulim"><strong>【(</strong></font><span class="tit_name mg_tit"><a class="f_tit_u" onclick="smartLog(this, 's=TO&amp;a=RCTO&amp;dc=0DL&amp;pg=1&amp;r=1&amp;d=1395802&amp;p=1', event);" href="http://www.reformednews.co.kr/" target="_blank"><font color="blue" face="돋움"><strong>리폼드뉴스</strong></font></a><font face="Gulim"><font color="blue">)<span class="txt_site"><font color="black">】</font></span></font></font></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font></span></span></span></span></font></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예정교회(담임 설동욱 목사)가 서울시 중랑구에서 남양주시 다산신도시로 교회를 이전하여 건축한 후 첫 예배를 지난 2018. 12. 9.에 드렸다.<br><br>다산 시도시로 이전하면서 새성전봉헌감사예배 및 임직식을 12월 25일(화) 오후 3시에 거행한다.&nbsp;<br><br>서울 성전도 폐쇄하지 않고 유지하되 다산신도시로 교회를 이전하여 교회를 건축하고 새로운 다산 신도시 시대를 맞이했다.<br><br><strong><font color="blue">관련기사 바로가기</font></strong><br><span class="ltitle_area"><a href="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6975&amp;section=sc6&amp;section2="><font color="red"><span class="search_word"><strong>예정교회</strong></span> 설동욱 목사 남양주시 신도시 성전 기공예배 </font><a href="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6975&amp;section=sc6" target="_blank"><font color="red"><img align="absmiddle" alt="새창보기"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skin15/ico_newwin.gif"><span class="newwin"><font size="2">새창보기</font></span></font></a><font color="red"> ㅣ</font> <span class="writer"><font color="#999999" size="2">소재열</font></span></span> <span class="lwdate_area">2017/09/24 </span><br><br><table width="500"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00"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104013390.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table width="500"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00"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104292833.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104594358.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105167660.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105481113.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106042861.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106202840.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106372091.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10653127.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110708689.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 2018-12-10 23:53:00 유혹하는 마귀의 전략을 조심하라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44 <font color="#ffffff" face="Verdana" style="background-color: rgb(153, 153, 153);"><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952379985.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size: 9pt;" bgcolor="#999999"><font color="#ffffff" face="Verdana">▲ 십자가는 외로운 싸움이다.&nbsp; 십자가로 어두움을 밝히며 흑암을 몰아내자.</font></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fon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먹을 것이 없어 가난했던 옛날에는 교회를 개척하면 사람들이 어디든지 몰려왔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 예배당 터가 텐트가 되었든지 지하가 되었든지 상관이 없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오히려 누추해 보이는 개척교회 예배당에 사람들이 더 몰려들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만큼 순수했고 심령에 굶주림이 있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갈급함이 절박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전하는 이도 듣는 이도 하나가 되어 밤새워 전했고 밤새워 기도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초대교회의 전형을 보는 듯 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nbsp;<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세월이 흐르고 흘러 서구문화에 힘입어 문명이 발달하고 생활환경이 편리해지며 경쟁심이 심해지면서 영적 굶주림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어 가면서 각자의 이기심에 따라 고소 고발에 능란한 시대에 돌입하게 되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렇게 차고 넘쳤던 주일학교</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교회학교</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들이 문을 닫아가면서 요새 교회들이 세속적 실리주의의 회오리에 휘말려 곤두박질을 하고 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래서 목회자가 심오한 영적 세계에 붙들려 하늘나라를 체험하며 전해야 되는 이유이다. 오히려 편리함만 추구하는 현대적 감각에 익숙해지면서 레코드판 같은 기술적 설교와 오락적 감각의 교회당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면 위기가 아니겠는가?</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오직 말씀</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오직 기도</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오직 찬양의 형태가 세속적 가치로 변태되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모든 형식은 있지만 하나님이 없는 인간들만 즐기는 제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 누가 이 시대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바른 신앙으로 도전할 것인가</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몰려오고 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벧전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5:8)</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교회의 성도들의 환경은&nbsp;어두웠다. 그들의 환경을 보면 극한 환난과 고통의 연속이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당시 문화가 로마 정치와 연결된 헬라식 로마문화로 헬라의 신도 섬겨야 했고 로마의 황제도 신으로 섬겨야 하는 이중고 속에서 살 길은 로마 황제를 신으로 섬기는 상인조합인 길드</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Guild)</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에 가입하여 우상숭배에 발을 들여놓아야만 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굶어 죽으면 죽었지 혼합주의가 될 수는 없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래서 세속과 교회에 양다리를 걸치고 사는 간신 신앙을 단호히 물리치고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래서 처처에 순교자의 수가 늘어가고 있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다만 하소연할 곳은 로마 법정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 하나님 밖에 없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래서 원수를 갚아달라는 처절한 신원의 기도를 올린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러나 로마의 핍박은 네로에 이어 도미티아누스에 이르면서 절정에 달하게 된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급기야 성도들의 기도가 향이 되어 금 대접에 담아 어린양 앞에 올린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계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5:8).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런데도 순교자의 수는 더욱 증가되고 기도의 응답은 전혀 보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래서 신원의 기도를 올린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9</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10</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11</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도우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계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6:9~11)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하나님의 기도 응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순교자의 수가 차기 까지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 기도 응답은&nbsp;계시록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8:3~5</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에서 나타난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3</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합이라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4</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5</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계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8:3~5)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리고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또한 계시록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18:20</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에서 확대 확인된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우상숭배를 거절하고 로마 황제를 신으로 섬기는 것을 거절한 성도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음녀 바벨론</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당시 로마</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을 심판하신 것이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요한계시록의 요점은 지금이 마귀가 득실거리는 말세다 그러니 깨어 있으라.</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불신자는 영원한 지옥불이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러니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라 이며</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성도는 영생복락 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러니 어떤 환경에도 인내하라 이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요새는 마귀가 광명한 천사로 나타나고 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고후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11:14).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위장술이 능수능란하여 순간적으로 매일 매시에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음욕과 경제적 유혹과 명예욕이 단연 우세를 떨치고 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많은 사람들이 그의 발톱에 붙잡혀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마귀의 유혹이 어느 때보다도 음흉하게 접근해 오는 오늘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길은 세속 사회와 적당히 물 타기 하는 타협이 아니라 오직 인내와 기도로 성령충만하여 에스더의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죽으면 죽으리라</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에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4:16)요,</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font-family: 굴림;">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다니엘의 친구들처럼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리 아니 하실지라도</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단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color: rgb(0, 0,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3:18)</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의 참된 신앙이 요구되고 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 <br /> 2018-12-09 17:55:00 [특별기고] 사신신학자 토마스 알타이저의 죽음에 즈음하여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43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br><p class="바탕글">토마스 알타이저(Thomas Jonathan Jackson Altizer, 1927-2018)가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그는 말년에 뇌졸중의 합병증을 앓다가 지난 11월 28일에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60년대와 70년대에 급진적인 “신의 죽음의 신학”을 주창하여 교계와 신학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그에 앞서 그는 미국의 시카고대학교(A.B. 1948, A.M. 1951, Ph.D. 1955)를 졸업했다. 그의 전공분야는 종교역사였고, 그의 연구과정에서 폴 틸리히(Paul Tillich)가 그에게 영향을 끼쳤다. 알타이저는 와바시대학(Wabash College)에서 1954년부터 1956까지 가르쳤고, 에모리대학교(Emory University)에서 1956년부터 1968년까지 교수를 역임했다. 많은 사람들이 에모리에서의 축출을 요구했기 때문에, 1968년 에모리를 떠나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영어교수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동안 알타이저는 3번 결혼했고 3번 이혼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8pt;"> 알타이저의 사상은 「미르사 엘리아데와 신성한 변증」(<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Mircea Eliade and the Dialectic of the Sacred, </span>1966), 「기독교의 무신론 복음」(<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The Gospel of Christian Atheism, </span>1966), 「급진신학과 신의 죽음」(<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Radical Theology and the Death of God, </span>윌리엄 해밀턴과의 공저, 1966), 「지옥강하」(<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Descent into Hell, </span>1970), 「하나님의 자기실현」(<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The Self-Embodiment of God, </span>1977), 「총체적 존재」(<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Total Presence, </span>1980) 등 그의 저작과 논문에서 발전했다. <br><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8pt;"> 그가 주장한 “사신신학”(Gott-ist-tot-Theologie, Death of God theology)이란 세속화의 부상을 나타낸다. 여러 신학자와 철학자들이 전통적으로 신을 믿지 않는 것을 설명하려는 폭넓은 사상을 가리킨다. 그들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설명을 시도했다. 프리드리히 니체(<span lang="EN-US" style="color: rgb(66, 66, 66);">Friedrich Nietzsche, 1844-1900)</span><span lang="EN-US" style="color: rgb(66, 66, 66); font-family: 함초롬돋움; 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돋움; mso-hansi-font-family: 함초롬돋움;"> </span>이후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불신앙을 반영하기 위해 때때로 “하나님은 죽었습니다”라고까지 표현했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8pt;">이 개념은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많이 알려졌지만 그 이후에는 사라지고 있다. 사신신학은 신의 죽음학(theothanatology)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헬라어의 theos(하나님)와 thanatos(죽음)에서 파생되었다. 이러한 급진적 신학의 주창자들은 알타이저를 비롯하여 가브리엘 바하니안, 폴 밴 뷰런, 윌리엄 해밀턴, 존 로빈슨, 마크 C. 테일러, 존 D. 카푸토, 랍비 리처드 L. 루벤스타인, 그리고 피터 롤린스 등이 있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8pt;">그러나 윌리엄 해밀턴, 폴 밴 뷰런 등은 하나님이 어떻게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 또한 그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타이저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무신론자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타이저는 성인의 97 퍼센트가 신을 믿는다고 말한 미국에서 더욱 분명하게 자신을 “기독교 무신론자”라고 강조했다. <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8pt;">1966년 4월 8일 타임지가 검은 색 표지에 빨간 글씨로 “하나님은 죽은 분입니까?”라는 제목을 발간한 이후에 미국의 국립교육텔레비전(National Educational Television)의 다큐멘터리에서 그는 이전보다 더욱 분명히 주장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더 이상 나타나지 않으며, 더 이상 실재하지 않습니다.” <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8pt;">그는 2006년에 자신의 회고록으로 「하나님의 죽음의 실재」(<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Living the Death of God</span>)를 썼지만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는 이 회고록에서 그의 주장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썼다. 이러한 그의 신학적 주장은 오래 가지 못했다. 타임지 기사 후 1년 후, 그는 더 이상 “신학적 나쁜 사람”이 아니라 아예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이러한 알타이저의 사신신학과 관련하여 몇 가지 특징을 지적하고자 한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8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8pt;"><strong>1. 알타이저의 신학방법</strong><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8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8pt;"> 알타이저는 전통적 기독교의 성경관을 배격하고 계시의 완료개념도 비판했다. 그는 계시로서의 성경관을 부정하고 사신신학의 정립을 위해 성경이 아닌 현대의 세속적 지성들의 작품에서 찾아냈다. 지그문트 프로이드, 헤르만 멜빌, 헐버트 마르쿠스, 쟝 사르트르, 윌리엄 블레이크, 또한 헤겔과 니체를 받아들이고 이들이야말로 현대 급진신학의 선지자격으로 추종하였다, 그리고 동양의 신비종교와 고대종교를 그의 신학의 재료로 삼아서 그이 사신신학을 도출해냈다. <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8pt;"> 많은 신학자들이 성경으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당대의 사상으로부터 신학작업을 출발한 것은 고대 탈무드와 필로의 영향이라고 판단된다. 탈무드는 적용에 강조점을 둔 결과 문자적인 해석을 뛰어넘어 풍유적인 해석에 치중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기독교적으로 해석한 것은 전혀 없다. 알렉산드리아의 필로는 알레고리칼한 해석을 하면서 성경을 헬라철학의 용어로 각색하였다. <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8pt;">그 결과 성경이 성경자체의 메시지보다는 헬라철학을 전달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헬라 사상은 기본적으로 헬라신화와 뗄레야 뗄 수 없다. 헬라신화는 신이 인간이 되고 인간이 신이 되고 신이 인간과 경쟁하고 싸우는 내용들이다. 이런 내용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사탄의 새 빨간 거짓말을 미화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8pt;">이러한 헬라신화는 서구사상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 어쨌든 고대 기독교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오리겐은 유대인들의 풍유적 성경해석을 도입하여 중세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신학에 접목시켜 「신학대전」을 이루었다. <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8pt;">그 때문에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충실한 대변자 역할을 하였다. 이것은 또한 중세 스콜라 철학의 큰 특징을 이루었다. 이러한 전통은 계몽주의 이후 현대신학의 공식처럼 되었다. 알타이저 역시 이러한 신학방법을 택하였다. 따라서 알타이저의 저술에 성경 자체의 메시지는 온데간데 없고 귀신이나 하는 넋두리를 읊조리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8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8pt;"><strong>2. 알타이저의 종말론</strong><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8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8pt;"> 신의 죽음을 공식화한 알타이저는 천국 개념에도 파격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천국 개념에서 중요한 것은 종말론인데 기독교적 종말론은 신의 죽음과 함께 경시된 지 오래되었다는 것이다(<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Oriental Mysticism and Biblical Eschatology</span>). 그래서 천국의 종말론적 이해를 바로 하려면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 서구문화가 아닌 다른 문화가 필요하다고 알타이저는 그의 논문에서 주장하면서 동양의 대승불교를 추천하였다("Nirvana and Kingdom of God"). 그에 의하면 기독교의 천국과 불교의 열반 개념은 많은 상통점이 있다. 심지어 종말론적 신앙으로 볼 때 이 세상과 천국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실재라고 김의환이 자기의 「현대신학개설」에서 간파한 바 있다. <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8pt;"> 알타이저가 이처럼 이 세상과 천국을 일치시킨 것은 일찍이 쿠사의 니콜라스(Nicholas of Cusa, 1400-64)가 주장한 양극일치론(Coincidentia Opposotorium)과 다를 바 없다. 알타이저가 기독교의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기독교 종말론도 경시하고 새로운 신학을 수랍한다는 것이 고작 불교의 허무주의의 수렁에 빠지고 만 것이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가는 유일한 길인 예수 그리스도(요 14:6)를 불신하면 허무주의의 캄캄한 어두움에 떨어지고 만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8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8pt;"><strong>3. 알타이저와 몰트만의 관계</strong><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8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8pt;"> 알타이저의 「기독교의 무신론 복음」(<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The Gospel of Christian Atheism, </span>1966) 이전에 위르겐 몰트만(J&uuml;rgen Moltmann, 1926-)의 「희망의 신학」(Theologie der Hoffnung, 1964)이 출간되었다. 알타이저의 사신신학과 몰트만의 희망신학은 아무 상관이 없고 오히려 극과 극의 상반된 인상을 주는 것같지만 실제로 급진적 신학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8pt;">박아론의 「현대신학연구」에 따르면, 사신신학은 희망의 신학의 연장 선상에 있다. 사신신학은 신의 죽음을 노골적으로 말하지만 희망의 신학은 신의 죽음 문제를 당분간 보류하고 미래에 판명되는 순간까지 희망을 갖고 기다려 보자는 것이다. <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8pt;">결국 성급함과 신중함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은 공통적이라는 견해이다. 우리는 이러한 결론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은 칼 맑스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에른스트 블로흐의 미래적 인간론을 기독교 종말론으로 변질시켰기 때문이다. <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8pt;">또한 절대적 하나님을 상대화하고 상대적 인간을 절대화하여 신과 인간의 일치를 주장함으로 인간이 신으로까지 진화하는 인간의 신화(deification)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몰트만이 말하는 삼위일체, 십자가, 성령, 교회, 하나님의 나라는 정통 기독교의 신앙고백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맑스와 블로흐의 사상을 드러내는 선전문구로 이용했다는 인상을 준다. 결국 알타이저나 몰트만은 기독교의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과 복음을 무참하게 부정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보여 진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8pt;"><br><br><br> <br /> 2018-12-09 14:11:00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의 대표권에 대한 대법원 판례 법리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42 <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512458777.jpg" border="0"></td></tr> </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리폼드뉴스 </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종교단체로서 ‘교단’이라는 ‘법인 아닌 사단’의 이름으로 각종 법률의 보호를 받는다. 교단에 소속된 지교회의 법률적 성질은 법인 아닌 사단으로서의 실체를 갖춘 개신교 교회가 특정 교단 소속 지교회로 편입되어 교단의 헌법에 따라 의사결정기구를 구성하고 교단이 파송하는 목사를 지교회의 대표자로 받아들이는 경우, 교단의 정체에 따라 차이는 존재하지만 원칙적으로 지교회는 소속 교단과 독립된 법인 아닌 사단이고 교단은 종교적 내부관계에 있어서 지교회의 상급단체에 지나지 않는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다만, 지교회가 자체적으로 규약을 갖추지 아니한 경우나 규약을 갖춘 경우에도 교단이 정한 헌법을 교회 자신의 규약에 준하는 자치규범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지교회의 독립성이나 종교적 자유의 본질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교단 헌법에 구속된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종래 대법원판례는 특정 교단에 소속된 지교회가 독립된 법인 아닌 사단이라고 판시하여 왔는바(대법원 1960. 2. 25. 선고 4291민상467 판결, 1967. 12. 18. 선고 67다2202 판결 등 참조), 이는 위 법리에 기초한 것으로서 앞으로도 교회를 둘러싼 법률관계를 해석하는 기본 원리로서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대법원 2006. 4. 20. 선고 2004다37775 전원합의체 판결)<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교회를 독립된 비법인사단으로서의 당사자능력을 갖춘 단체로 인정하는 이상 설사 그 교회와 전기소속노회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교회의 당회장 취임에는 노회의 승인을 요하는 것이어서(위 노회에 그와 같은 규약이 있고 원고 교회가 종전에 그 규약에 따라 위 노회의 승인하에 당회장을 선임하여 왔던 사실을 원판결이 인정하였다)교회에서 선임한 당회장도 그 승인이 없는한 노회에 대하여는 당회장으로서의 권리의무를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할지라도,<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비법인사단의 성질상 위 교회가 소속교인들의 총의에 의하여 그를 대표할 당회장으로 선임한 소외 2에게는 위 노회이외의 제3자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는 그 교회를 대표할 자격이 있는 것이라고 않을 수 없다(대법원 1967. 12. 18. 선고 67다2202 판결).<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2006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지교회와 소속교단과의 관계의 법적 관계를 정리했다. 그리고 하나의 교회가 두 개의 교회로의 분열을 인정하지 아니했다. 지교회가 교단을 탈퇴할 때에도 민법 제42조의 법인의 정관변경 규정을 준용하여 의결권자 3분의 2 이상의 의결로 교단을 탈퇴하여 종전 교회의 동일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이같은 2006년 전원합의체 판결은 근 10년 동안 한국 개신교의 교회분쟁의 판단법리가 됐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 1967. 12. 18. 선고 67다2202 판결을 참조하였다. 이 판결에 의하면 종교단체인 개별 교회를 법적 단위의 교회로서 법인 아닌사단으로 판시했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법인 아닌 사단으로서 독립성을 갖고 있는 개별 교회는 교회의 당회장(담임목사) 취임에는 노회의 승인을 요하는 것이어서 교회에서 선임한 당회장도 소속 노회가 승인이 없는 한 노회에 대하여는 당회장으로서의 권리의무를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할지라도, 비법인사단의 성질상 위 교회가 소속교인들의 총의에 의하여 그를 대표할 당회장으로 선임한 자는 소속 노회 이외의 제3자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는 그 교회를 대표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다. <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이같은 판시는 2006년 전원 합의체 판결에서 지교회의 독립성이나 종교적 자유의 본질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교단 헌법에 구속된다고 파단했다. 원칙적으로 지교회는 소속 교단과 독립된 법인 아닌 사단이고 교단은 종교적 내부관계에 있어서 지교회의 상급단체에 지나지 않는다. <br><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교회는 법인 아닌 사단으로서 구성원의 대표자를 선임할 자유는 지교회의 독립성과 종교적 자유의 본질에 해당되며 가사 지교회 교인들의 총의에 의해 선임된 대표자를 소속 노회가 승인을 거부한다고 할지라도 소속 교단인 노회에 관해서는 대표권을 행사할 수 없을 지라도 제3자에 대해서는 대표권이 있다는 대법원의 판례는 법인 아닌 사단으로 성립된 지교회의 독립성에 근거한 법리이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그러나 그동안 대법원은 종교단체로서 법인 아닌 사단으로서 교회의 대표자가 개인적인 비위로 소속 교단으로부터 징계로서 면직처분을 받았을 때 지교회의 대표권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해 왔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그러나 지교회의 면직처분이 아닌 지교회 구성원의 총의로 선임한 대표자를 소속 교단이 승인을 거부할지라도 소속 노회를 상대로는 대표권을 행사할 수 없을지라도 제3자에 대해서는 대표권이 있다고 봤다. 가사 교회 정관과 교단헌법이 지교회 교인들이 선임한 대표자를 소속 노회에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하더라고 소속노회의 승인이 거절되거거나 무효된다고 할지라도 제3자에 대한 대표권은 상실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례법리이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이같은 법리에 따라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는 교인들의 총의로 대표자로 선임하고 이를 노회에 청원하였으나 승인이 거절되거나 무효된다고 할지라도 노회 이외 제3자에 대해서는 대표권이 있다고 볼 수 있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1967년 대법원의 판례법리가 변경되지 않는 한 이 법리는 오늘날도 지교회 분쟁의 판단법리로 분쟁 해결의 원칙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대법원의 파기환송 후 원심법원(서울고등법원)이 오정현 목사의 직무를 정지한 판결은 소속노회를 상대로는 대표권 정지를 의미할 수 있으며, 제3자에 관해서는 대표권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br> <br /> 2018-12-08 23:12:00 총신대학교 총장 선임을 위한 이사회의 고민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40 <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819119762.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nbsp;임시(관선)이사회 제2차 이사회&nbsp;&nbsp;&nbsp;&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총신대학교 임시(관선)이사회는 지난 10월 15일에 제2차 이사회를 소집하여 교육부 처분에 따라 징계위원회를 구성하고 김영우 총장을 직위해제한바 있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사립학교법 제58조의2(직위의 해제) 제1항 제2호에 "징계의결이 요구중인 자"에 해당된 자에 대해서 "교원의 임용권자는 직위를 부여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규정에 근거하여 이날 김영우 총장의 직위해제를 결의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와 같은 관련 규정에 따라 10월 13일자로 김영우 총장은 직위해제되면서 대신 심상법 교수를 10월 13일부터 15일까지 총장직무대행자로 선임했으며, 그 이후 16일부터 김광열 교수를 총장 직무대행자로 선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이제 총신대 신임 총장을 선출하기 위해서는 직위 해제된 전 김영우 총장에 대한 징계위원회의 징계결과를 보고받고 법인이사회에서 김영우 전 총장에 대해 해임 내지 파면을 결정하 후 신임총장 선임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적어도 금년 12월이 지나기 전에 징계위원회가 징계결과를 이사회에 보고하고 이사회는 이를 확정한 후 총장 선임을 위한 세부 규정을 마련하여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법인 정관에 의하면 총장은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이사장이 임명하되 그 임기는 4년으로 한다(법인 정관 제39조). 의결정족수는 “이사회는 이 정관에 특별히 규장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사정수의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규정(법인 정고나 제28조 제2항)에 따라 15명 이사 정수에 8명 찬성으로 결정된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문제는 임시(관선)이사회가 과연 총장 선출을 위한 시행 세부사항을 어떻게 결정하여 내놓을 것인지가 관심사이다. 총신대학교는 지금은 관선이사 체제하에 운영되고 있다. 과거에는 재단이사를 포함한 총회운영이사회에서 총장을 선출하면 법인이사회에서 이를 받아 결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운영이사회에서 150여 명에 이르는 이사들을 상대로 총장을 선출하다보니 부작용도 많았고 금품수수 의혹으로 홍역을 치렀던 사례를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관선이사회는 이런 형태의 후보추천을 원치 않을 수도 있다. 총장선임을 위해 운영이사회의 진흙탕 싸움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그렇다면 총장 후보 추천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최대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현 이사회가 총신대학교 구성원이나 관련 총회를 배제한 가운데 후보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그렇다고 단독 후보를 추천하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후보를 단독으로 추천하면 이사회는 이유 없이 총장으로 선임하도록 하는 절차는 배제될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지 공적인 총회 기구와 학교 구성원들로부터 복수의 후보를 추천받아 이사회는 어떤 후보가 총신대학교 정상화를 위해 적법한 인물인지가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 것이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그 이유는 임시(관선)이사회는 총신대학교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주 임무를 갖고 파송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총장 후보를 총회에 전권을 행사하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학교 정성화를 위해 구성원들의 동의가 없을 경우 불가능하기 때문에 학교 구성원들의 의지도 중요하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총회가 이를 억압하여 ‘우리가 총장 후보를 추천 할 터이나 그대로 따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이는 총신대학교 정상화는 총회의 의지대로만 가능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총신대학교 구성원들의 의견도 무시할 수 없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만약에 총신대학교 구성원들을 배제한 가운데 총장 후보 추천권을 총회에만 부여하였을 경우 총신대학교 정상화는 보장할 수 없다. 이를 총회나 이사회가 강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그러나 이상적인 방법은 학교법인 이사회에서 총장 후보 자격 조건을 결정하여 공지하고 입후보자를 상대로 복수로 2인을 추천하면 학교법인 이사회에서 1인을 결정하는 방식이 가장 이상적일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사회가 어떤 자격 조건을 내세울 것인지가 관건이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입후보자 가운데 2인 추천권은 총회와 총신대 구성원을 전체를 포함한 일명 '총장후보 추천위원회'를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조직하여 후보를 추천하는 형식이면 금상첨화라 할 수 있다.&nbsp;물론 법인 이사회가 추천위원의 인원과 그&nbsp;대상을 결정하여 제시해&nbsp;주면 될&nbsp;것으로 보인다.&nbsp;&nbsp;<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총장 선임을 위한 합리적인 절차는 총신대학교 정상화로 가는 지름길이라 생각된다는 의미에서 이번 총장 선임의 절차가 정상화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이사회가 고민한 결과 어떤 방식의 절차를 내놓을 것인지&nbsp;그 결과가 주목된다.<br> <br /> 2018-12-08 22:16:00 [김순정목사 설교] 에벤에셀의 하나님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39 블레셋에 빼앗겼던 하나님의 언약궤는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돌아오심, 용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내리신 징계를 거두셨다는 증거입니다. <br><br><strong>1. 미스바 회개운동(1-6)<br></strong><br>기럇여아림 사람들이 벧세메스에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구별해 하나님의 궤를 지키게 합니다(1). <br><br>하나님의 언약궤는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20년 동안 그곳에 머물게 됩니다. 이 기간은 상당히 오랜 기간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온 족속은 여호와를 사모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여호와께 돌아가는 길을 제시합니다. 3절입니다. <br><br><font color="blue">“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3).<br><br></font>하나님께 전심으로 돌아가는 길은 이방 신들, 아스다롯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제거하다는 치우다, 폐지하다는 의미입니다. 완전하게 치워버리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언약백성의 법칙입니다.<br><br><font color="blue">“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br><br></font>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 첫 번째 계명이 바로 이것입니다. <br><br>그러자 백성들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겼습니다(4).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에게 미스바로 모이라고 합니다. 그곳에서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위해 여호와께 기도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이스라엘은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부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종일 금식하며 회개를 했습니다(5-6).<br><br><strong>2. 회개 기도를 듣고 응답하신 하나님(7-11)<br></strong><br>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의 말을 듣고 미스바에 모여 회개하고 금식했습니다. 이 소식을 블레셋 사람들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왔습니다(7). 이스라엘은 모여서 금식하고 회개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기도집회로 모였습니다. 그런데 블레셋은 이를 방해합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입니다.<br><br>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사무엘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8절입니다. <br><br><font color="blue">“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8).<br></font><br>이스라엘은 엘리 시대에 블레셋과 전쟁을 했습니다.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패했습니다. 그리고 언약궤도 빼앗겼고 제사장들도 잃었습니다(삼상 4:11). 그 사건을 기억하며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br><br>사무엘은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위해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이 때에 여호와께서 응답하셨습니다(9). 번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제물을 온전히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여호와께서 블레셋의 군대를 멸하십니다.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십니다. <br>&nbsp;<br>그래서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패했습니다(10). 어지럽게 하다(하맘)은 혼란스럽게 하다, 소란하게 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철저하게 심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들의 회개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보호해주십니다. 지켜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주인, 왕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보여주신 것입니다. <br><br><strong>3. 에벤에셀의 하나님(12-17) <br></strong><br>하나님께서 블레셋에게 내리신 심판을 보고 사무엘은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웁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12절입니다.<br><br><font color="blue">“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12). <br></font><br>에벤에셀<font color="black">(에벤 하에제르</font><font color="black">)은 ‘도움의 돌’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이스라엘을 도우셨다는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font> 세운 돌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인도하심, 보호하심을 나타내는 증거물입니다.<br><br>블레셋은 이 전쟁으로 인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을 막으셨습니다. 그래서 전에 블레셋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아간 성읍이 이스라엘에게 회복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도 평화가 주어집니다(14). <br><br>사무엘은 그가 사는 날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며 다스렸고, 라마로 돌아와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위해 제단을 쌓았습니다. 사무엘의 통치는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신앙이 여호와께 고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br><br>이 에벤에셀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왕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주시고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우리를 구속해주셨습니다(요 3:16-17). 죄악으로 죽은 인생, 죄의 사슬에 매어 살아가는 우리들을 구속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시고, 우리를 다스려주십니다. 이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성도가 됩시다. <br><br><strong>결론<br></strong><br>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만 경배하고 우리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 있어서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나 죽으나 그분을 위해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br><br>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br> 2018-12-08 18:23:00 [논단] 사랑의교회 법률행위의 대표자 딜레마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38 <table width="569"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69"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656115622.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사랑의교회를 담임하는 옥한흠 목사는 65세로 조기은퇴를 하고 후임으로 2대 오정현 목사가 부임했다. 오정현 목사는 2003년 8월 31일부터 옥한흠 목사와 공동사역을 진행해 오다가 2004. 1. 14.에 옥한흠 목사의 원로목사 추대 예배와 오정현 목사 위임목사 취임예배를 사랑의교회 본당에서 개최됐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nbsp;<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사랑의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에 소속된 교회이다. 사랑의교회의 담임목사는 교단헌법에 따라 조직교회이므로 임시목사가 아닌 위임목사로 청빙했다. 위임목사로 청빙하기 위해서는 지교회 공동의회의 청빙결의와 이를 승인하는 노회의 결의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절차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임시 대표자인 임시 당회장에 의해 공동의회를 소집하고 이를 노회에 청원한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법원은 교회 대표자 지위와 관련 된 법률관계에 관해 다음과 같이 판시한바 있다. <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nbsp;<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font color="blue"><strong>교회의 헌법 등에 다른 정함이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교회의 대표자(담임목사)는 예배 및 종교활동을 주재하는 종교상의 지위와 아울러 비법인사단의 대표자 지위를 겸유하면서 교회 재산의 관리처분과 관련한 대표권을 가지므로, 재산의 관리처분과 관련한 교회 대표자 지위에 관한 분쟁은 구체적인 권리 또는 법률관계를 둘러싼 분쟁에 해당하여 그 대표자 지위의 부존재 확인을 구하는 것은 소의 이익이 있다(대법원 2007. 11. 16. 선고 2006다41297 판결[대표자지위부존재확인])</strong></font><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위와 같은 판례에 의하면 교회 대표자인 담임목사(위임목사)는 교회 예배와 교회운영을 위한 대표자의 지위와 대한민국 민법과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교회 총유재산의 대표자인 비법인사단의 대표자 지위를 갖는다. 그리고 교회 재산의 관리처분과 관련된 대표자 지위를 가진다. 이같은 대표자에 의하지 않는 공동의회 소집, 당회소집, 제직회 소집, 재정 결재는 다 무효사유가 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결국 지교회 법률행위의 대표자는 반드시 교회정관과 교회가 소속되어 있는 교단의 헌법에 따라 임면된다. 이러한 적법 절차에 의하지 않는 대표자인 담임목사(위임목사)는 지교회의 법률행위의 대표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만약에 행사하였을 경우 인정되지 않는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512458777.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지교회 모든 분쟁을 들여다 볼 때 상당한 부분 법률행위의 대표자인 담임목사의 지위와 관련된 분쟁이 대부분이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비송사건) 담임목사가 소속 교단(노회)으부터 면직처분 내지 절차적 하자로 대표권이 부인된 상태에서 공동의회를 소집하여 결정한 교단탈퇴 등은 법원에 의해 다 무효가 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유야 어쨌든 사랑의교회 담임목사인 오정현 목사는 대법원의 파기환송과 환송 후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은 오정현 목사를 사랑의교회 위임목사로 승인한 동서울노회 결의가 무효라고 판시했다. 환송 후 원심은 오정현 목사가 사랑의교회 법률행위의 대표자(담임목사, 위임목사, 당회장)의 직무를 집행하여서는 아니된다는 판시를 추가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당연히 사랑의교회는 한번 더 대법원에 상고할 것이다. 이 경우 대법원이 파기환송과 환송 후 원심인 서울고법의 판결을 뒤집어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의 손을 들어주려면 대법원 전원합의체판결로 종전 대법원 판결(파기환송)를 변경하여야 한다. 결코 쉽지 않는 부분이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사랑의교회가 다시 상고할 경우 대법원이 최종 확정판결시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만약에 종전의 판결을 유지하여 확정할 경우, 그날로 오정현 목사는 사랑의교회와 아무런 관련이 없게 된다. 그 이후에는 오정현 목사의 대표자 지위가 상실되어 사랑의교회 법률행위의 대표권을 행사할 수 없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렇다면 대법원 확정 판결 전에 교단탈퇴 결의를 시도한다고 할지라도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대법원의 확정판결 후에 무효인 대표자에 의해 교단탈퇴를 위한 공동의회 소집권에 대한 문제가 발생될 수 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렇다고 대법원 확정판결 전에 동서울노회가 사랑의교회를 회원 명부에서 삭제(제명)하는 결의를 하고 이를 총회가 받아 총회에서 삭제하면 독립교회로서 지위에서 교단의 절차적 요건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오정현 목사를 담임목사로 재신임하는 결의를 한다고 할지라도 이 역시 기대할 수 없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 이유는 지교회 교인들이 종교의 자유원리와 독립성에 의해 소속 교단을 결정하거나 독립교회로 남기 위해서는 지교회 공동의회 결의가 있어야 한다. 물론 이 경우는 교회 정관에 교단탈퇴 규정에 따른 정족수 규정을 봐야 한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정관에 교단탈퇴 정족수 규정이 없을 경우 전 재적교인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때 오정현 목사가 공동의회 소집권자로 하여 결의되었다면 나중에 대법원의 확정판결 이후에 대표권 지위 문제로 교단탈퇴 적법성 여부가 논란에 빠질 수 있다.<br><p class="바탕글"><br><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06/2018061238276143.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소재열 목사 저서&nbsp;&nbsp; 한국교회법연구소(031-984-9134)&nbsp; &copy;리폼드뉴스 </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문제는 위와 같이 발생될 가능성, 개연성을 근거로 대법원 확정 판결 이전에 사랑의교회 반대 측이 법원에 대표자 직무정지 가처분을 제기하고 임시 대표자 지정을 청구하여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질 경우 이는 더욱 심각한 사태가 올 수 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이래저래 사랑의교회는 달라마에 빠질 수 있다. 현재까지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필자의 견해로 법원의 확정 판결은 강제력이 있기 때문에 법원에 의해 임시 대표자를 지정하기 전에 현재의 교단 헌법에 따라 동서울노회가 임시 당회장(임시 대표자)를 선정하는 방법이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이 경우는 동서울노회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 임시당회장을 파송한다거나, 대법원의 확정 판결 이후에 임시당회장을 파송하는 등의 결의를 하여야 한다. 여기서 문제는 대법원 확정판결 이전에 반대 측이 담임목사 직무정지 가처분이 제기되고 법원이 이를 인용하고 임시 대표자가 지정될 경우 노회도 교회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대법원은 일찍이 본 교단 총회의 분쟁에서 임시 당회장은 지교회 법률행위의 대표자의 지위에 있다는 판결을 이미 내놓았다. 이 임시 당회장은 지교회나 당회의 요청 없이 소속노회가 직권으로 파송하는 개념이라는 교단헌법을 그대로 인정했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임시 당회장을 파송할 경우 가장 타격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오정현 목사가 될 수 있으며, 그리고 사랑의교회 교인들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점이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일단 임시당회장을 파송한 후 오정현 목사의 대표자 지위에 대한 하자 문제를 치유하는 절차를 이행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 역시 녹록치 않다는 점 때문에 사랑의교회 법률행위의 대표자 문제는 딜레마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소재열 목사(한국교회법연구소, 법학박사)<br> <br /> 2018-12-08 04:23:00 제56회(2019년) 전국목사장로기도회 겨자씨교회에서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37 <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409/2014092234563400.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nbsp;&nbsp;제99회 총회(2014)가 광주 겨자씨교회에서 개최됐다.&nbsp;&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대한예수교장로회 제103회기 총회 임원회는 지난 12월 5일 총회임원회에서 2019년 전국목사장로기도회를 광주 겨자씨교회(나학수 목사)에서 개최하기로 결의했다.<br><br>2019년 5월 13일부터 15일까지 2박3일 동안&nbsp;개최될 전국목사장로기도회는&nbsp;지금까지&nbsp;연중기도회 행사와 차별되는&nbsp;기도회가 진행될 것이라고 임원회 한 관계자는 전했다.<br><br>영남지역 총회장인 이승희 목사는 영남지역에서가 아니라 호남지역에서 전국목사장로기도회를 개최하는데 의미를 부여했다.<br><br>겨자씨교회는 지난 제99회 총회(2014)를 개최 장소로 허락한바 있다.&nbsp;&nbsp;<br> 2018-12-07 17:57:00 [논평]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 위임무효 및 후속조치는?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35 교단헌법 정치편(예장합동)<br><br>제15장 제1조<br><br><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tbody><tr><td class="G0_654400">제 1 조 목사 자격</td></tr><tr><td class="G0_bgray">목사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 후 총회에서 시행하는 강도사 고시에 합격되어 1개년 이상 교역에 종사하고 노회 고시에 합격되고 청빙을 받은 자라야 한다.</td></tr></tbody></table><br><font color="blue"><strong>제15장 제13조<br></strong></font><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tbody><tr><td class="G0_654400"><font color="blue"><strong>제13조 다른 교파 교역자</strong></font></td></tr><tr><td class="G0_bgray"><font color="blue"><strong>다른 교파에서 교역하던 목사가 본 장로교회에 속한 노회에 가입하고자 하면 반드시 본 장로회 신학교에서 <u>2년 이상 수업한 후</u>&nbsp;총회 강도사 고시에 합격하여야 한다. 한국 이외 다른 지방에서 임직한 장로파 목사도 같은 예(例)로 취급한다. 또한 본장 10조에 규정한 각 항의 서약을 하여야 한다.</strong></font><br><br><font color="red"><strong>제15정 제13조는 2018년 9월 제103회 총회에서 다음과 같이 개정 공포되었다.</strong></font><br><br>제15장 제13조<br><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tbody><tr><td class="G0_654400">제13조 다른 교파 교역자</td></tr></tbody></table>다른 교파에서 교역하던 목사가 본 장로교회에 속한 노회에 가입하고자 하면 반드시 본 장로회 신학교에서 <u> 총회가 정한 소정의 수업한 후</u> 총회 강도사 고시에 합격하여야 한다. 한국 이외 다른 지방에서 임직한 장로파 목사도 같은 예(例)로 취급한다. 또한 본장 10조에 규정한 각 항의 서약을 하여야 한다.<br><br><table width="569"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69"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656115622.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td></tr></tbody></table> 2018-12-06 08:32:00 대법원 환송 원심(서울고법),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를 위임한 노회 결의 무효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34 <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512458777.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사랑의교회&nbsp;오정현&nbsp;목사의&nbsp;직무가&nbsp;정지됐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법원은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를 위임목사로 결의한 동서울노회 결의가 무효라고 판시했다. <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서울고등법원&nbsp;제37민사부(권순형&nbsp;재판장)는&nbsp;12월&nbsp;5일&nbsp;선고에서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font color="blue"><strong>1. 제1심&nbsp;판결을&nbsp;취소한다.&nbsp;<br></strong></fon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font color="blue"><br><strong></strong></fon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font color="blue"><strong>2.&nbsp;피고 대한예수교장로회&nbsp;합동&nbsp;동서울노회가&nbsp;2003년&nbsp;10월 경&nbsp;피고 오정현을 서울 서초구 서초동 1310-16 소재 대한예수교장로회 사랑의교회의 위임목사(당회장 담임목사)로 위임한 결의는 무효임을 확인한다. <br></strong></fon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font color="blue"><br><strong></strong></fon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font color="blue"><strong>3. 피고 오정현은 위 대한예수교장로회 사랑의교회의 위임목사(당회장, 담임목사)로서의 직무를 집행하여서는 아니된다. <br></strong></fon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font color="blue"><br><strong></strong></fon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font color="blue"><strong>4. 소송총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strong></fon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사랑의교회가 오정현 목사를 담임목사로 공동의회에서 결정하고 이를 소속 동서울노회에 허락해 달라고 청원했다. <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합동교단 헌법은 지교회 담임목사의 법적 효력은 지교회 교인총회격인 공동의회에서 청빙을 결의하고 이를 노회에 청원하여 노회는 이를 승인함으로 담임목사의 직무의 효력이 발생된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그러나 대법원은 환송에 따른 원심인 서울고등법원 제37민사부는 동서울노회가 2003년 10월 경에 결의한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를 위임한 결의는 무효라고 봤다. 또한 위임목사(담임목사)로서 직무를 집행하여서는 안된다고 했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이번 대법원 파기환송심인 서울고등법원 제37민사부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문 법리를 그대로 인정하여 판결했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동서울노회와 사랑의회가 원심법원에서 패소하게 되었으므로 대법원에 다시 상고하여 최종 판결이 있어야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br><br><font color="red"><strong>관련기사 보기<br></strong></fon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span class="ltitle_area"><a href="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32&amp;section=sc1&amp;section2="><span class="search_word"><strong><font color="#ff0000">사랑의교회</font></strong></span><font color="#000000">, 대법원 파기환송 후 원심 심리 쟁점 </font><a href="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32&amp;section=sc1" target="_blank"><font color="#000000"><img align="absmiddle" alt="새창보기"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skin15/ico_newwin.gif"></font><span class="newwin"><font color="#3f6bbc" size="2">새창보기</font></span></a> ㅣ <span class="writer"><font color="#999999" size="2">소재열</font></span></span> <span class="lwdate_area">2018/12/05 </span><br><br> <br /> 2018-12-05 15:08:00 [논문] 개혁신학의 성찬론의 특징과 그 구원론적 함의 1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33 <strong>이 글은 김광열 박사가 &#65378;신학지남&#65379;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개혁신학의 성찬론의 회복을 위하여 그 의미와 영적 임재설, 은혜의 수단으로서의 성찬을 제시하고 있다.</strong> <br><br><strong>서론: 개혁신학 성찬론의 회복을 위하여<br></strong><br>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시행되어온 성찬예식은 개혁신학의 가르침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어쩌면, 중세 카톨릭 교회가 가르친 화체설에 대한 반작용으로 성찬의 진정한 중요성조차도 배제한 채, 그것을 단순히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정도로만 생각하며 시행해왔는지도 모른다.<br><br>물론, 개혁신학의 성찬이해는 성찬식에서 제공되는 떡과 포도주가 본질적으로 주님의 살과 피로 변화된다고 간주하는 가르침은 비성경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성찬에서 제공되는 떡과 포도주는 무의미한 표가 아니라, 실체되신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는 표와 상징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 실제적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br><br>특히 칼빈의 가르침을 따라, 개혁신학의 구원이해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속에서 주어지는 영적 축복이라는 관점을 고려해볼 때, 성찬에서의 실체되신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받아먹는 의미는 단순한 기념 정도의 의미를 넘어 구원론적 중요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본고에서는 성경에서 제시되는 성찬의 의미, 특히 종교개혁과 그 이후에 개혁자들에 의해서 제시된 성찬론들을 비교, 분석해봄으로서, 칼빈에 의해서 제시된 개혁신학의 성찬이해가 어떠한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어떠한 신학적 중요성을 지니는지를 확인해보려 한다.<br><br>그러한 연구를 통해서 성찬예식의 참 의미와 중요성을 확인하고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시행되는 성찬예식이 좀 더 성경적 바른 이해 속에서 성도들과 교회에 실제적인 영적 유익을 얻는 예식으로 회복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보려 한다. 개혁신학의 기본 자료들로서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와 웨스트민스터대교리문답의 내용을 중심으로 논의해보려 한다.<br><br><strong>I. 성찬 혹은 주의 만찬 (Lord’ Supper)이란 무엇인가?<br></strong><br>1) 성찬을 통해, 신자는 주님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자신을 위해 살을 찢고 피를 쏟으신 그 분의 죽음을 기억하게 되고, 그 죽음과 부활을 거쳐 승귀하신 주님과의 연합과 교제를 누리며 영적 성장을 위한 양식을 공급받는다. 또한 그 거룩한 교제로 함께 부름을 받은 다른 신자들과의 연합을 향유하게 되는 예식이 되는 것이다.<br><br>2) 구속역사 속에서 전개되는 성찬의 이미지들<br><br>성경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주의 만찬 (하나님 앞에서의 식사)”을 예표하는 사건들을 보여준다. 그것은 구약에서의 옛 언약의 행정 안에서 몇 가지 사건들을 거쳐서 신약에서 새 언약 행정 안에서 그리스도의 성찬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역사의 마지막에 주어지게 될 종말론적 축제의 만찬에로 향하고 있다.<br><br>a) 에덴동산에서<br><br>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의 풍성한 열매들을 먹으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향유하게 하셨다. 범죄하기 전까지 인간들은 하나님 앞에서 기쁜 식사의 교제(만찬)를 향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br><br>b)구약에서의 옛 언약 속에서<br><br>그런데, 하나님은 범죄한 이후에도 인간들과의 식탁의 교제를 허락해 주셨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이 오셔서 죄의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시기 전까지는 에덴에서 범죄 전에 누렸던 것과 같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기쁨의 교제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br><br>ㄱ. 모세의 율법 중 매년 드리는 농작물의 십일조 규례 내용 중에서, 하나님과의 만찬의 교제를 볼 수 있다: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신 14:23-26)<br><br>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이 주어진 후, 하나님은 지도자들을 시내산 위로 부르셨다. 언약을 맺으면서 그들과 식탁의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였다:<br><br>“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출 24:9-11)<br><br>출애굽기 24장의 시내산 언약을 맺는 이 장면에서, 모세는 제물의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리고,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라고 말했는데, 이는 신약에서 예수님이 성찬식을 제정하시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라”라는 말씀이 뜻하는 바,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사에서 제시된 “새 언약의 피”를 예표해주고 있는 것이다.<br><br>c) 새 언약 아래서 주어진 주의 만찬<br><br>옛 언약에서의 “식탁의 교제”는 아직까지도 죄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서의 교제이었지만,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사를 통해서 죄의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 누리게 되는 새 언약에서 주의 만찬의 교제는 옛 언약의 만찬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의 식탁의 교제가 될 수 있었다.<br><br>d)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서의 만찬<br><br>그러나, 성경에서 제시되는 하나님과의 만찬의 교제는, 범죄하기 전에 에덴에서의 교제에로의 회복을 넘어선다. 성경은 그 이상의 더 놀라운 축복의 교제가 주어질 것을 알려준다. 요한계시록 19장에서 제시되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는 앞으로 먼 장래에 신자들에게 주어질 놀라운 식사의 교제를 보여주고 있다. 신랑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가 종말론적 축제의 식탁에서 만나 교제하며 하나로 연합되는 기쁨의 식탁을 예고해준다.<br><br>이 종말론적 축제의 식탁에 대해서는 주님도 한 번 언급하신 바 있다: “나는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마 26:29)<br><br><strong>II. 성찬에서의 그리스도의 임재 : 영적, 실제적(real) 임재<br></strong><br>성찬에서의 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한 개혁자들, 특히 칼빈의 가르침은 로마 카톨릭의 이해와는 달랐다. 또한 칼빈은 당시에 다른 여러 개혁자들의 관점들과도 다소 다른 점이 있었다. 그리스도의 임재는 “성령의 신비한 역사를 통하여 주어지는 영적, 실제적 (참된) 임재”임을 강조한 점에서 우리는 칼빈의 성찬론의 특징을 말할 수 있다.<br><br>1) 로마카톨릭의 화체설의 문제점<br><br>로마 카톨릭의 가르침에 의하면, 그들이 “성체성사(Eucharist)”라고 부르는 카톨릭의 성찬식 미사에서 떡과 포도주는 실제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된다고 본다(화체설, transubstantiation) 사제가 축사를 드리는 순간부터 그러한 본질상의 변화가 주어지며, 따라서 미사 속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찢겨지고 피가 흘려지는 희생제사가 반복되는 것으로 간주한다.<br><br>그러한 미사예식을 통해서 은혜가 주어지는 방식은 “(미사 속에서) 시행되는 그 일에 의해서 (ex opere operato)”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성례에 참여하는 신자의 믿음과는 별도로, 그 예식의 자체적 가치에 의해서 은혜의 효능이 자동적으로 주어진다고 보는 것이다(사제주의, Sacerdotalism) 이러한 점에서 카톨릭의 이해는 예식 참여자의 믿음의 중요성이나, 성령의 역사 없이 그 효능을 확보하려는 “마술적 성찬이해”라고 평가될 수 있다. 이러한 가르침에 대해서 칼빈은 주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또 그러한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단순히 그 예식 속에서 “시행된 일”을 통해서 주의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이해는, 바로 중세 카톨릭의 가르침에 대해서 개혁자들이 지적한 핵심적인 문제들 중의 하나인 “Sola Fide(오직 믿음)”의 원리와 충돌되는 것이었다.<br><br>카톨릭의 화체설(transubstantiation)이 지니는 문제점들 중의 하나는 “이것이 내 몸이요” 또 “이것은 내 피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대한 오해이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성경에서 자신에 대해 설명하실 때 상징적인 방법으로 표현하셨다. 요15:1에서는 “나는 참 포도나무라”, 요10:9에서는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요 6:41에서는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와 같은 표현들은 문자적인 의미로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상징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설명해주신 것이라고 봐야 한다.<br><br>주님이 손에 떡을 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 때 그 떡은 주님의 몸과는 분리되어 있었으며, 그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있었던 제자들에게 주어졌던 주님의 말씀은 상징적인 의미로 이해되었었다고 해야 한다. 누가복음 22:20에서도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주님은 그 잔이 실제로 새 언약이라는 말이 아니고 새 언약을 상징한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br><br>카톨릭의 관점이 지니고 있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화체설의 관점은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의 완전성과 종결성을 거부하게 한다는 점이다. 히브리서의 요점들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의 속죄제사는 단번에 드려진 (히9:11-22) 완전한 제사였다(히9:23-28)는 것이다: 주님은 “(구약의)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 9:25-26)<br><br>십자가에서의 주님의 속죄 제사가 드려진 후에도 또 다시 희생제사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이라는 화체설의 관점은 인류의 죄를 위한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이 이미 끝나고 완성되었다는 성경의 가르침과 상충되기 때문이다.<br><br>결국, 이러한 화체설이 제시하는 주의 임재에 대한 관점은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주님의 살과 피가 됨으로서 주님이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신도들에게 임재하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칼빈은 말씀에 주어진 약속에 대한 신자의 믿음과 그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역사로 주님의 임재가 주어진다고 가르쳤다.<br><br>2) 루터파의 공재설의 문제점<br><br>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도 카톨릭의 화체설은 반대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이 나의 몸이라”는 주님의 말씀은 어떤 의미에서는 문자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았다. 화체설과 같이 떡이나 포도주의 본질이 주의 살과 피로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물질적 몸과 피가 떡과 포도주 “안에, 함께, 그리고 아래에 (in, with, under)” 임재한다고 본 것이다. 소위 공재설(Consubstantiation)이라고 불리우는 가르침이다.<br><br>루터파의 공재설에 기초가 되는 개념이 루터파의 신적 속성 교류(Communicatio Idiomatum) 이해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이 인성과 연합함으로 인성이 신성의 편재성에 참여하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위격이 머무는 곳에 그의 신성, 영혼, 신체가 모두 함께 존재한다는 이해에 기초해서 루터파의 공재설을 주장하는 근거를 마련하게 된다. 루터가 화체설을 거부하면서도 동시에 성찬에서 떡과 포도주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구체적인 임재가 있게 되는 것으로 이해함으로서,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물질적 몸과 피의 장소적 임재를 말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칼빈은 루터파 관점의 문제를 이렇게 지적했다:<br><br>그것은 그들에게는 〈육적〉 내용 밖에 안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떡 속에 가두어 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것은 〈영적〉 양식이다. 왜냐하면, 성령의 숨은 힘이 우리와 그리스도를 맺어주는 유대이기 때문이다.<br><br>요약하면, 루터파는 공재설의 관점에서 신자는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입으로 받는다는 (manducatio oralis) “육적 먹음”을 가르쳤고, 칼빈은 성령의 역사하심 속에서 신자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믿음으로 받는다는 “영적 먹음”을 가르친 것이다.<br><br>이처럼, 칼빈이 “영적” 양식의 의미로 성찬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이유는 부활과 승천 후에 그리스도의 몸은 하늘에 있다고 말하는 성경의 가르침들 때문이었다. 기독교 강요 제4권 17장 26절에서 칼빈은 바로 그 주제를 취급하는데, 그 절의 제목이 바로 “The body of Christ is in heaven”이다. 그 절에서 칼빈은 여러 구절들로 성경적인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먼저 행3:21을 언급한다. 예수님의 몸은 부활하신 후에도 유한하게 존재하시며 최후의 날이 오기까지는 하늘에 들어가 계시는 것으로 성령님께서 가르치신다는 것이다.<br><br>또한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떠나서 세상 밖으로 가신다고 말씀하시는 요 14:12, 28; 16:7 등을 지적하면서, 그들은 주님이 “세상을 떠난다”는 의미를 “죽어야할 상태로부터의 변화” 정도로만 생각한다고 비판한다.<br><br>그러나, 그러한 말씀들이 의미하는 바는, 그리스도의 몸이 언제나 제자들과 함께 세상에 계시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가리킨다고 하면서, 또 다른 구절들로서 마 26:11과 요 12:8을 추가로 제시했다. 그 구절들 속에서 나오는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에게 불편하게 생각했던 제자들을 향해서 주님이 하신 말씀은 바로 그 사실을 분명히 해준다고 보았다. 거기에서 주님은 “자신이 그와 같은 (그 여인이 행한 것과 같은) 존경을 받으시며 예배 받도록 항상 함께 계시지는 않는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주님의 존엄하신 임재가 이 땅에서도 계속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육체적인 임재 (그리스도의 인성의 차원에서의 몸)는 하늘에 계시다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칼빈은 어거스틴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해준다:<br><br>그는 (부활한 후에) 육체를 가지시고 40일 간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시고, 그 후 제자 들이 모두 보고 있는 가운데서, 제자들이 함께 따라갈 수 없는 하늘에 올라가셨기 때 문이다. (행 1:3, 9) 그는 땅위에 계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으셨기 때문이다. (막 16:19) 그러나, 한 편 그는 땅에도 계신다. 왜냐하면 그는 그 존엄을 나타내셔서 함께 계심을 그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히1:3) 존엄하신 임재에 대해서는,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육체적인 임재에 대해서는, 〈그러나 너희는 항상 나를 소유할 수 없다〉(마26:11)고 하신 말씀이 옳은 것이 다. 즉 육체적인 임재에 대해서는, 교회는 그를 얼마 안되는 날 동안 밖에는 소유하지 못하였다. 교회는 지금 그를 믿음으로 소유하고 있으며, 눈으로 보고 있지는 않는 것이다 “결국, 칼빈은 떡과 포도주가 주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가르침도 거부했으나, 동시에 떡과 포도주가 주님의 살과 피를 포함한다는 공재설도 거부한 것이다. 성찬에서 주님은 떡과 포도주라는 물질적 객체에 묶여져서- 본질적으로 변화해서든지 아니면 그것들에 포함해서이든지- 임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를 상징해주는 표시(symbol and sign)이라고 보았다.<br><br>즉,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해주는 가시적인 표시이므로, 그 상징의 표시를 받을 때 성령의 특별한 역사에 의해서 주님이 영적으로 임재하신다고 본 것이다. 성찬에 참여하는 신자는 떡과 포도주를 받으면서, 구원의 주되신 그리스도를 만나 그 분과의 연합과 교제를 나누고 그 분의 모든 영적 은총의 열매들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했기 때문도 아니고, 그 안에 포함되었기 때문도 아니며, 오히려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들에게 역사하시는 성령님께서 특별한 방식으로 승귀하신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해주기 때문이다.<br><br>기독교강요 제4권 17장 31절에서 칼빈은 루터파를 “그리스도의 몸이 떡 속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면,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의 몸의 현림은 결코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라고 부르면서, 그들은 크게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떡의 겉모양 속에 숨어 계시는 것이 아니라면, 성찬에서 그리스도는 제거되고 만다고 말하는 억지 주장만큼은 제발 그만두라고 호소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떡 속에 두지만, 우리는 〈그를 하늘로부터 끌어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결론내렸다.<br><br>3) 쯔빙글리의 기념설에 대하여<br><br>그런데, 성찬에서의 성령의 비밀한 역사에 대한 이와같은 칼빈의 강조점은 또 다른 쪽의 오해를 지적할 수 있는 신학적 원리도 되었다. 그 또 다른 오해란 바로 쯔빙글리 (Ulrich Zwingli, 1484-1531)에 의해서 제안된 기념설이다. 쯔빙글리도 칼빈과 같이 스위스에서 종교개혁을 추진했지만, 성찬에 있어서는 다소 이견이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상징적인 임재에 대해서는 수용했지만, “실제적인”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에 대해서는 분명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성찬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대한 상징과 표가 되는 것이라고 가르치면서, 단순히 기념적인 예식일 뿐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성찬의 교리에서 어떠한 신비주의적 요소들은 수용하기를 꺼려했고, 그래서 성찬을 단지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표와 상징으로만 말하려 했던 것이다.<br><br>그러나, 칼빈이 볼 때, 그와 같은 성례이해는 성찬에서의 영적 확증과 그 효능을 가져오는 성령의 역사를 간과한 오해였던 것이다. 쯔빙글리의 이해는 단순히 인간이 기념하는 차원에서의 사건으로만 간주하는 “공허한 예식”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찬에서의 “성령의 비밀한 역사”에 대한 칼빈의 강조는 떡과 포도주의 물질적 표징만을 강조했던 루터파의 관점의 문제를 지적하는 근거도 되지만, 동시에 성찬을 단지 인간의 기념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려 했던 쯔빙글리의 “공허한 예식”의 오해에 대해서도 지적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br><br>칼빈에게 있어서, 성찬이란 공허한 예식이 아니고, 성령의 신비한 역사가 주어지는 사건인 것이다. 칼빈이 말하는 영적 임재란 바로 성령의 역사가 실제로 임하는 성찬임을 말하기 때문이다. 구원자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주어지는 영적 축복들의 근거를 물질적인 떡과 포도주에서 찾는 것도 (카톨릭이나 루터파) 문제이지만, 쯔빙글리와 같이 성찬을 성령의 신비한 역사까지 배제한 채 인간적인 기념행사로만 간주하는 것도 문제라고 본 것이다.<br><br>칼빈은 카톨릭의 화체설이나 루터파의 공재설을 거부하면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를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이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이며,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전제한다. 즉, 그것은 “성령께서 공간적으로 떨어져있는 일들을 정말 하나로 결합시키심”으로서 주어지는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임재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라고 부르지 않는 한, 그는 “헛된 표적을 주셨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떡을 떼는 것은 일종의 상징이며 사실 자체는 아니지만, 그것은 공허하고 무익한 표나 상징이 아니라, 주께서 약속하신 영의 효력을 거기서 나타내주시는 것이라고 설명한다.<br><br>그러므로 성찬에서의 그리스도와의 교제는 단순히 그리스도의 과거사역,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사건을 기념하는 것에만 관련되지 않고, 그 분의 현재적 사역 즉 승귀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그리스도께서 현재적으로 베푸시는 영적 사역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주님의 몸이 성찬에서의 떡과 포도주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승천하셔서 영광 중에 거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베푸시는 영적 은혜가 성찬에 믿음으로 참여하는 신자들에게 임하게 되기 때문이다.<br><br>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 170문에서도 “성찬의 성례에 합당하게 참여하는 사람들은 육체적으로나 육으로가 아니라 영적인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공급받는 것입니다”라고 가르친다. 성찬에서 신자들은 “성령님의 신비한 역사”를 통해서 떡과 포도주가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게 되고,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의 생명과 영생의 은혜와 구원의 영적 축복들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언급되는 “성령님의 신비한 역사”에 대해서 칼빈은 설명하되 그것은 논리적으로 접근할 내용이 아니라, 주의 말씀에 근거하여 믿음으로 체험해야하는 문제라고 설명한다:<br><br>만일 누군가가 또 이 방식에 대해서 나에게 묻는다면 이것은 나의 정신으로 이해하며, 혹은 말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숭고한 신비이다라고 고백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좀 더 분명히 말한다면 나에게는 이것이 이해의 문제라기보다도 오히려 사실의 체험의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나는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에 있는 전혀 확실하게 의뢰해야 할 하나님의 진실을 다른 주장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살이야 말로 참된 영혼의 양식, 자신의 피야 말로 참된 음료이다 라고 언명하신다 (요 6:55).... 그는 거룩한 만찬을 통하여 자신의 살과 피를 〈떡〉과 〈포도주〉의 표적으로 받으라고 나에게 명령하신다. 나는 그가 진실로 약속하신 것을 주시며, 내가 그것을 받는다고 하는 것을 전혀 의심치 않는다.<br><br>이와같은 칼빈의 가르침은 쯔빙글리의 기념설이 말하는 “공허한 예식”의 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이해인 것이다. 신자는 성찬식에 참여함으로서 떡과 포도주가 상징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참으로 받는 것이다. 물론, 그 말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육적으로” 받아 먹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독교 강요 제4권 17장 31절에서 그리스도의 몸의 참된 임재를 설명하면서, 그것은 결코 “그리스도의 육이 우리의 혼으로의 혼입(混入) 혹은 주입(注入)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됨”을 칼빈은 지적했다. 그리스도께서 &#8211;비록 자신의 육체를 우리 속에 들여보내시지 않더라도- 자신의 본체로부터 우리에게 생명을 불어 넣으신다고 하는 사실만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br><br>이것이 바로 칼빈이 가르친 성찬에서의 “그리스도의 영적, 실제적 (spiritual, real)” 임재인 것이다.(계속)<br><br>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2018-12-05 12:29:00 사랑의교회, 대법원 파기환송 후 원심 심리 쟁점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32 <p class="바탕글"><table width="250"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250"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526374909.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사랑의교회</span><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굴림">(</font></span><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담임 오정현 목사</span><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굴림">) </font></span><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김두종 외 </span><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굴림">8</font></span><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인이 </span><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굴림">‘</font></span><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오정현 목사</span><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굴림">’</font></span><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와 </span><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굴림">‘</font></span><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span><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굴림">(</font></span><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합동</span><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굴림">) </font></span><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동서울노회</span><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굴림">’</font></span><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를 상대로 제기한 오정현 목사의 사랑의교회 </span><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굴림">“</font></span><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위임결의무효확인 등</span><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굴림">” </font></span><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본안 소송이 대법원에 상고되었지만 파기환송되어 원심인 서울고법에서 심리를 종결하고 12월 5일 오후 2시에 선고를 앞두고 있다.</span><font face="굴림"><br><font face="굴림">&nbsp;<br></font></font><p class="0" style="letter-spacing: 0pt;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오정현 목사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편입학 합격 취소와 미국에서 목사안수가 무효이기 때문에 소속인 동서울노회가 사랑의 교회에 오정현 목사를 위임결의가 무효이며</span><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굴림">, </font></span><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오정현 목사는 담임목사 직무를 수행하여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소송이었다</span><font face="굴림"><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font><p class="0" style="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font face="굴림">&nbsp;<br></font><p class="0" style="letter-spacing: 0pt;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본 사건의 1심인 서울중앙지방법원 제</span><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굴림">41</font></span><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민사 재판부는 </span><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굴림">2016. 2. 4. </font></span><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원고 패소 판결처분</span><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굴림">((2015</font></span><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가합</span><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굴림">15042)</font></span><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이 내려져 오정현 목사와 동서울노회가 승소했다</span><font face="굴림"><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br></font><p class="0" style="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font face="굴림">&nbsp;<br></font><p class="0" style="letter-spacing: 0pt;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이에 원고 측이 다시 항소하였으나 서울고등법원 제</span><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굴림">5</font></span><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민사 재판부는 </span><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굴림">2017. 5. 11. </font></span><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원고의 항소를 기각됐다</span><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굴림">(2016</font></span><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나</span><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굴림">2013077).</font></span><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굴림"> 1</font></span><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심에 이어 </span><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굴림">2</font></span><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심도 오정현 목사와 동서울노회는 승소했다</span><font face="굴림"><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br></font><p class="0" style="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font face="굴림">&nbsp;<br></font><p class="0" style="letter-spacing: 0pt;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동 사건은 이제 마지막으로 </span><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굴림">2017. 5. 31.</font></span><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자로 대법원에 상고</span><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font face="굴림">(2017</font></span><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다</span><font face="굴림"><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232013)돼지만 대법원은 이를 파기환송하여 원심으로 돌려보냈다.&nbsp;이제 서울고법에서 심리를 종결하고 12월 5일 오후 2시에 선고한다. 무엇이 쟁점인지를 알아본다.</span></font><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법원조직법 제8조는 “상급법원의 재판에 있어서의 판단은 당해 사건에 관하여 하급심을 기속한다”고 규정하고, 민사소송법 제436조 제2항 후문도 상고법원이 파기의 이유로 삼은 사실상 및 법률상의 판단은 하급심을 기속한다는 취지를 규정하고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상고심인 대법원으로부터 사건을 환송받은 서울고법은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에 관한 사건을 재판함에 있어서 대법원의 파기이유로 한 사실상 및 법률상의 판단에 대하여 환송 후의 심리과정에서 새로운 증거가 제시되어 기속적 판단의 기초가 된 증거관계에 변동이 생기지 않는 한 이에 기속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대법원의 환송 후 원심법원인 서울고법이 오정현 목사에 관해 12월 5일 선고를 한다. 쟁점은 대법원이 타교단 목사인 오정현 목사가 예장합동 교단 소속 목사가 되기 위해 일명 편목 과정(정치 제15장 제13조)의 요건을 충족하였는지 여부이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 요건을 충족하기&nbsp;위해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타교단 목사 신분으로 편입하는 ‘편목편입’ 과정에 입학하여야 하는데 교단헌법 정치 제15장 제1조에 의해 목사가 되기 위한 ‘일반편입’에 입학하였으므로 교단헌법에 의해 제15장 제13조의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으며, 원심은 이에 대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고 보아 파기 환송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12월 5일에 선고할 환송 후 원심인 서울고법이 오정현 목사 측에서 제시한 각종 증거들이 환송 전과 같은 취지의 증거들로서 다시 한번 확인하는 정도라고 판단할 경우 오정현 목사 측은 패소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러나 대법원의 환송 후 원심인 서울고법에서 추가적으로 오정현 목사는 일반편입이 아닌 편목편입이었다는 사실이 새로운 증거로 입증될 경우 “환송 후의 심리 과정에서 새로운 증거가 제시되어 기속적 판단의 기초가 된 증거관계의 변동이 생긴 경우’에 해당되어 오정현 목사 손을 들어줄 것이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두 번째로 대법원이 환송 이유로 삼았던 ‘오정현 목사는 일반편입으로 교단헌법 제15장 제13조(일명 편목)의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정작 교단헌법 제15장 제13조의 절차적 요건은 편목편입을 하여야 한다는 조건이 없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종교단체인 교단 내부적으로 오정현 목사는 교단헌법 정치 제15장 제13조 요건을 충족하였다고 판단하여 강도사 고시 응시 자격을 부여하여 사랑의교회 위임목사로 결의한 동서울노회 결의에 하자가 없다고 판단하여 이를 줄기차게 법원 재판부에 의견서로 제출한바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러나 대법원은 편목 절차를 규정한 교단헌법 제15장 제13조의 요건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오로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목사가 되기 위한 일반편입 과정에 입학하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오정현 목사를 사랑의교회 위임목사로 허락한 서울동서울노회 결정이 무효라는 취지의 대법원의 파기환송은 교단 내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판단이라고 평가하고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대법원의 환송 후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의 제37민사부가 이를 어떻게 판단하여 선고할 것인지 주목된다. 이 선고에서 원심이 대법원의 파기환송 이유를 그대로 인용하여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의 위임 효력이 없다고 판단하여 선고할지라도 교단 내부적으로 새로운 치유행위로 적법한 절차를 이행할 것으로 보여 사랑의교회 지각변동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소재열 목사(한국교회법연구소, 법학박사)<br><p class="바탕글"><br><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06/2018061238276143.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소재열 목사 저서&nbsp;&nbsp; &nbsp; &copy;리폼드뉴스 </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 <br /> 2018-12-05 05:21:00 서철원 박사의 성경해석론 2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29 <table width="367"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367"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519421383.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서철원 박사&nbsp;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서철원 박사는 종교개혁자들의 성경해석은 그리스도 중심적이었다고 한다(서철원, &#65378;교의신학 1권 신학서론&#65379;, 257). 장로교 신학의 체계를 세운 칼빈에게서는 더욱더 그러했다.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구약의 목표이다. 그러므로 구약을 기독론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예표론을 발전시킨 것이다. <br><br>이것은 종교개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사도바울이 처음 시작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석으로 이스라엘과 동행하셨고 이스라엘이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된 생수를 마신 것이다(고전 10:4). <br><br>또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는 것을 그리스도에게로 세례 받음을 예표하는 것으로 해석했다(고전 10:1-2). 또한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으로 제시되었다(롬 5:14). 또한 그리스도를 제2 아담으로 제시하고 아담과 대비시켰다(마 4:1-4; 막 1:12-13; 눅 4:1-3). <br><br>하나님께서는 모든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셨다. 그러므로 성경이 전체적으로 그리스도론적으로 이해되고 구약은 예표론적으로 이해되었다. 구약은 전체가 그리스도를 사전 표상하는 것이다(서철원, 257).<br><br>18세기부터 시작된 성경번역은 20세기에 이르러서도 지속되었다. 성령이 말하는 분명한 뜻이 그 문장이 말하는 언어의 사건으로 바뀌었다(서철원, 258). 즉 그리스도교 신앙은 언어 사건이 일으킨 것이 되었다. <br><br>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약의 보도대로 실제 발생한 사건은 아니지만 부활했다고 선포할 때 그 선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부활이 그 마음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부활의 선포가 부활을 사건으로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적으로 시간 속에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믿음 안으로 부활한 것이다. 이것은 성경의 실제 사건을 부정하는 해석관이다. 성경을 떠나 현대인의 의식으로 돌아간 자유주의적 해석관이다. <br><br>또한 하이데거의 실존주의적 해석과 철학자 가다머의 해석이 도입되어 성경 본문이 현재 상활을 해석하고 결정하도록 했다. 시대 상황으로 성경을 번역하기 위해서 성경 해석이 두 지평의 융합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서철원, 258). 고대문서인 성경이 갖는 문화적 지평과 해석자가 서 있는 문화적 지평을 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현대 문화적 지평이 성경 해석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br><br>그러나 이렇게 철학에 의한 성경해석은 성경의 본래적 주장을 과도하게 변형시킨다(서철원, 258-259). 성경 해석은 철학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해야 한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원리이다. 성경은 성경에 의해 해석되고 그리스도에 의해 해석되어야 한다. 우리가 성경해석을 하는 목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데 있기 때문이다. <br><br>현대인들의 편리를 따라서 현대인의 세계관과 성경이 합치한다고 주장하면서 신학이 현대 문화체계에 자리를 갖도록 하기 위해 성경을 변형하면 안된다. 현대의 사고와 맞아야만 그리스도교 신앙이 선포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서철원, 259).<br><br>성경의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제시대로만 선포되면 수납이 된다. 자연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를 받아들이는가 거부하는가는 성령이 결정하시는 것이다(서철원, 259).<br />(계속)<br><br>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br> <br /> 2018-12-04 17:29:00 제자훈련목회자 네트워크, 칼넷정기총회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28 <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452217211.jpg" border="0"></td></tr> </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리폼드뉴스 </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제자훈련목회자 네트워크(CAL-NET_Called to Awaken the Laity-Network, 이사장 오정호 목사)의 칼넷정기총회가 12월 3일 국제자훈련원(원장 오정현)에서 개최하여 전국대표로 이기혁 목사(대전새중앙교회)을&nbsp;선출했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40515141.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칼넷은 1999년 1월 열렸던 ‘제1회 제자훈련 지도자 컨벤션’에서 결정된 제자훈련 지도자들의 전국 네트워크로 故 옥한흠 목사의 제자훈련 철학에 동의하고 한 사람 철학으로 목회하는 칼세미나 수료자들의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인식에 따라 옥한흠 목사 중심으로 태동한 제자훈련 단체이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407519049.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칼넷은 주요 정책을 협의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이사회가 조직되어 있으며, 본회의 실무를 담당하는 전국대표와 부대표, 회계, 서기, 사무총장으로 조직되어 있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이번 정기총회에서&nbsp;정관을 일부 개정하였으며, 부대표를 비롯한 일부 지역총무를 추대하여 임명했다. 전국 부대표로 박정식 목사(은혜의교회) 신임이사 오생락 목사(하늘평안교회), 지역총무 8명(유성택 목사, 고동훈 목사, 윤동훈 목사, 문형희 목사, 고석찬 목사, 나길수 목사, 박윤수 목사, 방병만 목사 등을 추대하여 임명했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이어 회계감사와 2018년 총 수입 408,747,681원과 337,676,400원의 집행을 승인했으며, 2019년 사업계획으로 6월에 칼넷 싱가포르 국제 포럼과 칼넷 사모세미나로 부산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br><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409381100.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총회에 앞서 진행된 1부 예배에서는 직전 전국대표인 최상태 목사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박명배 목사의 기도와 이사장인 오정호 목사의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딤전 4:6-16)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오정호 목사는 설교를 통해 “한국교회를 위해 우리 목회자들이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가? 저 스스로도 각성하기 위한 마음으로 설교를 제목을 잡았다”면서 “우리 시대 목회자의 생각의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했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또한 “저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의 사역이 과정도 아름답고 결과도 영광스럽기 위해서 어떤 원칙을 갖고 있어야 한다"며&nbsp;"저는 목양일념의 원칙이라는 것은 성경에서 말씀한 목회의 원칙과 선배로부터 내려오는 아름다운 가치와 바른 정도의 경영 하는 것이라”고 했다.<br><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456523477.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오 목사는 “목회뿐만 아니라 노회나 총회가 정도의 길로 가야 한다”며, 본문 말씀을 통하여 “사도바울은 믿음의 아들, 사역의 계승자인 디모데가 목회자로서 사명을 잘 감당한 것처럼 우리들도 사역의 계승자로서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며 말씀을 전했다.<br><br>국제제자훈련원&nbsp;원장인 오정현 목사는 "저희 교회에 주한 미 대사가 왔습니다. 저와 2시간 정도 대화를 했는데 지금까지 건국 이래 70년 동안 주한 미 대사 가운데 최고의 고위측이 온 겁니다. 별 4개가 왔습니다.&nbsp;어머니는 일본 사람인데 해리 헤리스 대사입니다. 공교롭게도 저와 해리 헤이스 대사와 호적사항에 나타난 생년월일이 저와 똑 같습니다."라고 했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오 목사는 미국 대사에게 "우리나라는 교회가 강하다"며 대화를 나눈 일화를 설명하면서 "우리 목회자들의 목회에 하나님의 신적&nbsp;개입이 있기를 바라며, 이로 인해 하나님의 기적같은 일들이 목회 현장에 많이 나타나기를 바란다"고 인사했다.&nbsp;&nbsp;<br><br>칼넷은 초교파적으로 전국적인 규모를 갖고 한국교회 제자훈련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445195392.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 <br /> 2018-12-04 05:45:00 김상윤목사(나눔의교회) 캄보디아 훈센총리로부터 훈장 받아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26 <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209228781.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나눔의교회 김상윤 목사(좌), 이경섭 장로(우)가 훈장을 받았다.&nbsp;&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계룡시 소재 나눔의교회 김상윤 목사가 캄보디아 &nbsp;훈센 &nbsp;총리로부터 훈장을 받아 화제가 되고 있다. 이번 훈장은 캄보디아에서 금장,&nbsp;은장, 동장이 있는데 금장에 해당된 훈장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이번 훈장은 나눔의교회&nbsp;이경섭 장로와 함께 받았으며, 나눔의교회 이기배 집사, 이병재 집사는 국방부장관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8203;<br><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20653489.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nbsp;&nbsp;&nbsp;캄보디아 경찰청에서&nbsp;총국장과 교회와경찰중앙협의회와&nbsp;상호 협력을 위해 양해각서를 위해 환담하고 있다.&nbsp;&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김 목사는 그동안 Asia Gospel Mission(A.G.M, 회장 박철수 목사)의 상임이사로 활동하며 꾸준히 캄보디아 국방부와 관계를 가져오다 국방부 내에 컴퓨터 교실에 컴퓨트 교체와 국방부내 한국어 교육에 도움을 &nbsp;준 관계로 &nbsp;훈장을 받았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207327901.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캄보디아 국방부를 방문하여 훈센총리 훈장 수여를 위해 인사하고 있다.&nbsp;&nbsp;&nbsp;&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김상윤 목사는 지난 2018. 11. 26.-29.에 캄보디아를 방문하여 훈장을 수여받은 후 교회와경찰중앙협의회 대표회장 자격으로 회원교회들과 한국에 상주하는 노동자들과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서로간의 애로사항과 한국에서 적응에 도움을 주기로 협약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219599008.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nbsp; 훈센총리로부터&nbsp;금장훈장&nbsp;수여식을 위하여 최고사령관 대장이 행사를 진행했다.&nbsp;&nbsp;&nbsp;&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현재 한국에 체류 중인 캄보디아 노동자가 약 5만 명이 있다.&nbsp;이는 캄보디아 노동자들에게 회원 교회가 선교 할 수 있는&nbsp;기회를 &nbsp;갖게 되어 선교사 역파송이라는 효과를 갖게 되는 효과가 기대된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208385872.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또한 &nbsp;캄보디아에서는 우리 교민이 약 만 명 정도 거주하는데 &nbsp;그곳도 캄보디아 경찰청과 교회와경찰중앙협의회의 이름으로 위원을 선정하여 &nbsp;교인들의 &nbsp;권익과 &nbsp;선교사님들의 체류보장을 받으며 선교에 도움을 &nbsp;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이같은 내용은 경찰총국장이 훈센 총리에게 보고하여 실행 하도록 하겠다는 긍정적 답을 &nbsp;얻기도 했다. 특히 캄보디아 국방부 내에 영어, 일어, 태국어, 베트남어, 중극어, 한국어과가 있는데 한국어과 학생 5명을 매년 나눔의교회로 유학을 보내오면 나눔의교회에서 일체의 경비를 부담하기로 했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208055111.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공항&nbsp;VIP에서 영접하고 있는 손치소장과&nbsp;환담하고 있다.&nbsp;&nbsp;&nbsp;&nbsp;&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이로서 캄보디아 내&nbsp;친한을 형성하고 캄보디아에 사역하는 한국선교사들의 선교사역에 있어서 국방부와 좋은 관계가 형성될 것으로 보여 그 효과가 기대 된다. 한국에서 교육 받은 캄보디아 장교들은 고국에 돌아가 국방부에서 한국어과 교수요원으로 활동하게 된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또한 2019년 9월에 국방부 사령관이 나눔의교회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할 계획을 잡고 진행중에 있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8203;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반도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공식 명칭은 캄보디아 왕국 (Kingdom of Cambodia)이다. 인구분포는 크메르족(90%), 베트남인(5%), 중국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210292198.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수도는 프놈펜이며, 면적은 181,035.0㎢, 인구는 16,245,729명 (2018 추계)이다. 종교는 소승불교가 95%를 차지하고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캄보디아는 1964년 한국과 무역협정을 맺고 1970년에는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도 했으나 크메르루즈가 정권을 잡으면서 1975년 4월 단교 조치됐다. 1997년 공식 외교관계가 재개되면서 활발한 교류가 진행되고 있다. 북한과는 1964년 12월 20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210539473.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한국의 주요 수출품은 가장 비중이 큰 직물제품을 시작으로 전자기기, 기타 섬유제품 등이었지만 최근 전자기기와 섬유제품의 수출량이 줄면서 대신 국산담배와 음료가 대세를 이끌고 있다. 2016년 기준 한국의 대캄보디아 수출액은 5억 7,285만 달러이며, 대캄보디아 수입액은 2억 3,977만 달러이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2006년부터 캄보디아 대사관 주최로 한국영화제를 개최하면서 한국의 대중문화를 캄보디아에 전파하는 등 양국의 문화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2016년 기준 캄보디아에는 일반체류자와 유학생을 포함해 10,089명의 재외동포가 있다. 한국에 거주하는 캄보디아 등록외국인은 2016년 기준 50,664명이다.<br> <br /> 2018-12-02 20:58:00 자기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라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24 <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1/2018112127563262.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nbsp;&nbsp;주는 자가 있으면 따르는 자가 있다.(장사도와 사량도 바닷길에서 먹이를 받아먹기 위해 몰려드는 갈매기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nbsp;&nbsp;</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주님이 주시는 영적 지혜로 사는 자들이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 영적 지혜에는 분별력이라는 것이 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리스도인은 그 영적 분별력을 구하고 소중히 여긴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옳고 그름의 분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분별력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는 경건한 영혼을</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리고 이웃에게는 사랑을 베푸는 아름다운 영혼으로 건사하기 위함이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것이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길이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자기자신이란 스스로</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함초롬바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one´s ownself</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를 말한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자기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일까</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필자는 그것을 아는 방법도</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것을 해결하는 방법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요</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성령님이라는 것을 깨달은 바요 그 깨달음을 하나님의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자기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방법이란 무엇인가?</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mso-list: l1 level1 lfo2;"><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1.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mso-list: l1 level1 lfo2;"><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br><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mso-list: l1 level1 lfo2;"><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br></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mso-list: l1 level1 lfo2;"><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br></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br></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br></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자신에 대한 이해는 자아라는 본질에 대한 이해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자기를 안다는 것은 지식의 척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척도를 말하는 것이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자신이 순화된 인격인가 아닌가를 아는 것이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자신이 가진 인격이 행동으로 나오고 그 행동이 시비를 결정하기 때문에 자신을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이 좋은 인간관계인가를 안다는 결론에 귀결된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자신을 이해하여야 타인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나를 이해하여야 타인을 이해하게 되고 타인을 이해하여야 나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 이해의 바탕은 무엇인가</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오직 하나님의 말씀이요</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하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2.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자기자신의 허물과 실수를 고치는 것이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br /><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br><br /><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허물과 실수는 누구에게나 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다만 그것들을 바로 잡는 사람은 향기로운 삶을 유지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는 사람은 향기를 상실해 벌과 나비가 찾아오지 않게 된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자신에게 향기가 있는가</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자신에게 향기가 있는 사람은 벌과 나비가 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향기로 감싸게 된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러므로 자기의 허물과 실수를 고칠 수 있는 거울이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세상 사람은 도덕 윤리가 거울이 되겠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거울이요 성령의 음성이 거울인 것이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3.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굴림;">자기자신을 바르게 훈련시키는 것이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br></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자신을 바르게 훈련시킨다는 것은 바른 성품으로 세우기 위함이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사람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품이 있는가 하면</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후천적으로는 훈련으로 다듬어진 성품이 있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후천적으로 다듬어진 성품이 되려면 고도의 연속성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리고 그 노력은 성령의 감화로만</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font-size: 13pt;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이 가능한 것이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음성을 듣는 훈련이 필요하고 다음은 그 음성에 순종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자신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육적 자아나 육적 지식에서 비롯된 행동을 말하지 않는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육적 자아나 육적 지식은 경건을 동반하지 아니하며 성령의 조명을 동반하지 않기 때문이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분쟁과 분열은 항상 육적 자아의 산물이요</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차별은 인본주의의 기초적 산물이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분별과 차별은 다르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분별</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分別</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은 서로 다른 일이나 사물을 구별하여 가르는 것이며</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차별</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差別</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은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에 의해 차이를 두어 구별하는 것이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성경은 영적 분별력을 가지라고 가르치나 영적 차별을 하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분별은 영적 상승을 위한 것이요 차별은 영적 무능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nbsp; <br><p class="0"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항상 올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행동한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그러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항상 차별하는 일에 익숙하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타인을 차별하는 일이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길이요</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자기 자신을 차별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분별의 지혜가 부족한가</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여 얻기를 기원한다</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약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1:5;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빌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1:10; </span><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mso-fareast-font-family: 굴림;">고전 </span><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2:13; 14:20). 자기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남을 배려하는 것이다.</span><br><br> <br /> 2018-12-02 17:32:00 전 총회장 전계헌 목사의 명예훼손 고소건, 무혐의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23 <p class="바탕글"><table width="245"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245"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252589897.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전 총회장 전계헌목사(좌), 김화경목사(우)</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p class="바탕글">전 총회장 전계헌 목사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김화경 목사를 고소한 사건이 지난 11월 23일 혐의없음(증거불충분) 처분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전계헌 목사는 자신이 금품을 수수한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김화경 목사는 피켓, 현수막을 걸고 성명서를 낭독함으로써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고소인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제기한 고소건이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러나 피의자가 작성, 낭독한 피켓, 현수막 및 성명서의 내용, 피의자가 사용한 단어 등을 살펴볼 때, 피의자의 발언 내용은 “의혹에 대한 사실을 해명해달라는 의견 제시로 해석될 뿐 사실의 적시로 보기 어렵다”며 판단하여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보지 않는 이유는 성명서 내용을 볼 때 김화경 목사가 사실에 의한 적시가 아니라 의견 제시로써 이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봤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가사 피의자의 발언이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명예훼손에 대한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피의자의 적시된 사실이 허위라는 점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피의자가 적시된 사실이 진실이라고 믿을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할 거이고, 피의작 허위사실이라고 인식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형법 제307조 제2항에 의하면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적시된 사실이 허위이고 행위자가 자신이 적시한 사실이 허위인지 알고 있었음이 입증이 되어야 한다. <br><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적시 사실의 허위성보다 더 까다로운 성립 요건은 행위자의 <u style="text-underline: #000000 single;">허위사실 인식 여부</u>이다. 행위자가 해당 사실이 진실인 줄 알고 행동한 것에 불과하다면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성립되기 어렵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런 이유 때문에 명예훼손과 관련된 재판에서 피의자(피고소자)는 자신은 해당 사실이 진실인 줄 알았다고 주장하여 처벌을 피하려고 하며 검찰은 피의자가 허위인 줄 알면서도 행위했다고 입증을 하고자 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다. 그러나 타인이 행위자가 허위사실 인지 여부를 증명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 이유는 피의자는 자신은 해당 사실이 허위인 줄 알았다고 인정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그래서 판사는 공표된 사실의 내용과 구체성, 소명자료의 존재 및 내용, 행위자가 밝히는 사실의 출처 및 인지 경위 등을 토대로 행위자의 학력, 경력, 사회적 지위, 공표 경위, 시점 및 그로 말미암아 예상되는 파급효과 등의 여러 객관적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즉 피의자가&nbsp;적시한 사실이 사실임을 입증할 증거가 없고 행위자가 해당 사실이 허위임을 알 수 있었는데도 허위 사실을 적시하였다면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적용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대법원의 판례는 다음과 같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font color="blue"><strong>형법 제307조 제2항의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에서 적시된 사실이 허위인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적시된 사실의 내용 전체의 취지를 살펴볼 때 세부적인 내용에서 진실과 약간 차이가 나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면 이를 허위라고 볼 수 없으나,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하지 않는다면 이를 허위라고 보아야 한다. <br></strong></font><p class="바탕글"><font color="blue"><br><strong></strong></font><p class="바탕글"><font color="blue"><strong>나아가 피의자가&nbsp;그 사항이 허위라는 것을 인식하였는지 여부는 성질상 외부에서 이를 알거나 증명하기 어려우므로, 공표된 사실의 내용과 구체성, 소명자료의 존재 및 내용, 피고인이 밝히는 사실의 출처 및 인지 경위 등을 토대로 피고인의 학력, 경력, 사회적 지위, 공표 경위, 시점 및 그로 말미암아 예상되는 파급효과 등의 여러 객관적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으며, 범죄의 고의는 확정적 고의뿐만 아니라 결과 발생에 대한 인식이 있고 그를 용인하는 의사인 이른바 미필적 고의도 포함하므로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 역시 미필적 고의에 의하여도 성립하고, 위와 같은 법리는 형법 제308조의 사자명예훼손죄의 판단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대법원 2014. 3. 13. 선고 2013도12430 판결).</strong></font><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사실이나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 성립여부에서 위법성이 없다는 판단을 받기 위해서는 그것은 오로지 다음과 같은 공동의 이익을 위한 것일 때만 가능하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font color="blue"><strong>명예훼손죄라 함은 공연히 구체적인 사실이나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로서 보호법익으 사람의 인격적 가치와 그의 도덕적, 사회적 행위에 대한 사회적 평가로서의 외적 명예를 사실을 적시한 표현행위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에도 그것이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서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일 때에는 적시된 사실이 진실이라는 증명이 있거나 그 증명이 없더라도 행위자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었고 또 그렇게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위법성이 없다고 할 것인바</strong></font>(대법원 1988. 10. 11. 선고 85다카29 판결 등 참조),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여기서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일 때’라 함은 적시된 사실이 객관적으로 볼 때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서 행위자도 주관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그 사실을 적시한 것이어야 하고, 적시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지 여부는 그 적시된 사실의 내용과 성질, 그 사실의 공표가 이루어진 상대방의 범위, 표현의 방법 등 그 표현 자체에 관한 제반 사정을 감안함과 동시에 그 표현에 의하여 훼손되거나 훼손될 수 있는 명예의 침해 정도 등을 비교ㆍ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하며(대법원 2006. 5. 25. 선고 2005도2049 판결 등 참조),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font color="blue"><strong>행위자의 주요한 동기 내지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수적으로 다른 개인적인 목적 또는 동기가 내포되어 있거나 그 표현에 있어서 다소 모욕적인 표현이 들어 있더라도 무방하고</strong></font>(대법원 2007. 1. 26. 선고 2004도1632 판결, 대법원 2007. 12. 13. 선고 2006도1239 판결 등 참조),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진실한 사실’이라 함은 그 내용 전체의 취지를 살펴볼 때 <font color="blue"><strong>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사실이라는 의미로서 세부에 있어 진실과 약간 차이가 나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더라도 무방하다고 할 것이다</strong></font>(대법원 1998. 10. 9. 선고 97도158 판결, 대법원 2006. 3. 23. 선고 2003다52142 판결 등 참조).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그리고 표현의 자유와 명예보호 사이의 한계를 설정함에 있어서는 당해 표현으로 인하여 명예를 훼손당하게 되는 피해자가 공적인 존재인지 사적인 존재인지, 그 표현이 공적 관심 사안에 관한 것인지 순수한 사적 영역에 속하는 사안에 관한 것인지 등에 따라 그 심사기준에 차이를 두어, 공공적ㆍ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사안에 관한 표현의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어야 한다(대법원 2002. 1. 22. 선고 2000다37524, 37531 판결, 대법원 2006. 3. 23. 선고 2003다52142 판결,&nbsp;대법원 2008. 5. 8. 선고 2006다45275 판결 등 참조).<br><br> <br /> 2018-12-02 17:34:00 [김상윤 목사 연재] 장로회 12신조, 교회 중요 기둥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21 <p class="바탕글"><table width="250"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250"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223394800.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김상윤 목사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p class="바탕글">우리나라에 복음이 전래된 1884. 9. 20. 이래 교회는 커다란 부흥이 있었다. 부흥은 질적인 부분과 양적인 부분이 있는데 양적인 부흥은 언제나 질적인 부흥을 전제로 하여 이루어져야 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질적인 부흥이란 그 부흥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 말씀에 근거를 두지 않는 부흥은 오래가지 못한다. 질적인 부흥을 이야기 할 때 교회는 성경말씀에 근거한 정확한 교리와 신학을 외면할 수 없다. 이것이 교회의 중요한 기둥이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선교사들에 의해 전해진 복음과 교리와 신학은 교회를 든든히 세워져 가는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으며, 1907년 조선예수교장로회 독노회가 조직될 때에 이를 확실히 하였다. 제1회 독노회에서 장로교 신앙에 기초한 신앙고백인 장로회 신조(Coufession of Faith)를 제정하여 채택하는 결의를 하였다. 이를 ‘장로회 12신조’라고 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장로교회에서 목사, 장로, 집사. 권사 임직 및 취임을 할 때 본인들로부터 서약을 받을 때 <font color="blue"><strong>“본 장로회 신조와 웨스트민스터 신도 게요 및 대소요리 문답은 신구약 성경의 교훈한 도리를 총괄할 것으로 알고 성실한 마음으로 받아 신종하느뇨?”</strong></font>라는 질문에 ‘예’라고 답변할 때 교회의 직분을 부여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여기서 말한 ‘본 장로회 신조’는 ‘장로회 12신조’를 의미한다. 12조의 서문은 다음과 같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font color="blue"><strong>“대한예수장로회에서 이 아래 기록한 몇 가지 조목을 목사와 강도사와 장로와 집사로 하여금 승인할 신조로 삼을 때에 대한 예수교 장로회를 설립한 모(母) 교회의 교리적 표준을 버리려 함이 아니요, 오히려 찬성함이니 특별히 「웨스트민스터」신도게요서(信徒揭要書)와, 성경 대ㆍ소요리문답은 성경을 밝히 해석한 책으로 인정한 것인즉 우리교회와 신학교에서 마땅히 가르칠 것으로 알며 그 중에 성경 소요리문답은 더욱 우리 교회 문답책으로 채용하는 것이다.”</strong></font><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본 신조를 제외한 12조로 구성된 신조는 1904년에 영국장로교회가 인도 장로교회를 위해 채택한 것을 1907년 조선예수교장로회 독노회에서 신조로 채택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용하고 있다. 이 신조는 대부분 한국장로교회의 신앙에 대한 근본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225257829.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제1조는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 제2조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 제3조 삼위일체 하나님, 제4조 하나님의 창조사역, 제5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 제6조 인간의 타락과 원죄, 제7조 그리스도의 속죄(사도신경에 나타난 기독론), 제8조 성령과 구원적용, 제9조 하나님의 예정과 구원, 제10조 성례론, 제11조 성동의 건전한 신앙생활의 의무, 제12조 성도의 부활과 최후의 심판 등이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본 장로회 신조는 1907년 독노회에서 장로회 신조로 임시로 1년간 채택하고 이를 연구하기 위한 위원을 선정하여 1908년 제2회 독노회에서 완전치 채택하여 오늘까지 사용하고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장로교 12신조는 합동교단 헌법 맨 앞부분에 수록하고 있다. 장로교회는 이 12신조를 가르쳐야 하고 배워야 한다. 그리고 장로교회에서 목사를 비롯한 모든 직분자는 이 신조를 신구약 성경의 교훈한 도리를 총괄할 것으로 알고 성실한 마음으로 받아 신종하여야 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교회 직분자들은 직분을 받기 전에 진행된 교육에서 장로회 12신조를 가르쳐야 하고 배워야 한다. 장로교회의 신앙의 근본적인 신앙고백인 12신조는 교회를 든든히, 건강한 교회로 이끌기 위해 반드시 그 기초로 삼아야 할 중요한 뼈대이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장로교회는 이러한 신조에 의해 설립되었으므로 이단자들인 장로교회에 침투하여 장로교회의 12신조를 거부하고 다른 이단적인 신학과 교리를 주장할 때에 이들을 출교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교회를 지키기 위한 교리적인 기둥은 질적 성장을 위한 중요한 포인트라 할 수 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font color="blue">김상윤 목사(나눔의교회 담임목사, 칼빈대학교 겸임교수, 미래窓포럼 대표, <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함초롬바탕;">교회와경찰중앙협의회 대표회장)</span></font><br><br> <br /> 2018-12-02 12:30:00 광주중앙교회(한기승목사) 임직 및 은퇴 감사예배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20 <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대한예수교장로회 광주중앙교회(한기승 목사)는 교회 설립 제114주년 장로, 집사 임직 및 권사 취임식과 장로, 집사, 권사 은퇴식을 가졌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광주중앙교회는 광주전남지역의 역사적인 개혁신학과 정통보수신학에 근거한 신학적 정통성을 계승하고 교회의 본질적인 핵심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선교사들에 의해 광주지역에 최초로 복음을 증거한 미국 선교사 배유지(유진벨) 사택(전남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에서 오웬 선교사, 김윤수 집사 가족 등 200여명이 성탄절(주일) 예배를 드림을 광주교회가 시작된 교회는 양림교회와 광주제일교회, 광주중앙교회가 초기 역사를 공유하면서 성장해 왔다.<br><p class="바탕글"><br><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209566121.jpg" border="0"></td></tr> </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리폼드뉴스 </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교회 연혁에 의하면 “채규현 목사의 신학사항 등이 문제가 되어 전남제일노회에서 임시당회장으로 광신대학교 총장인 정규남목사를 파송”하였으며, “채규현 목사 측이 전남제일노회를 탈퇴”하자 광주전남지역의 모체노회인 전남노회를 계승한 전남제일노회의 광주중앙교회가 신학적인 정체성을 지켜나가기 위해 신일교회와 합병하여 광주중앙교회라는 이름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광주중앙교회는 2018. 12. 1. 광주 운암동 소재 광주중앙교회 본당을 가득 메운 가운데 장로임직 20명, 집사임직 28명, 집사취임 2명, 취임권사 4명, 권사취임 51명, 명예권사 8명과 장로은퇴 5명, 집사은퇴 13명이 각각 임직 취임 및 은퇴식을 가졌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212596653.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1부 예배는 담임인 한기승 목사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기도 김광혁 목사(증경노회장), 성경봉독은 이종필 목사(노회 서기)가 에베소서 4:11-15절 말씀을 봉독하였으며, 서기행 목사(증경총회장)가 ‘거룩한 직분’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정규남 목사(광신대학교 총장)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임직자를 위한 기도로 장로안수 기도에 장종섭 목사(증경노회장), 집사안수 기도에 이상덕 목사(증경노회장), 집사취임 기도에 김홍기 목사(증경노회장), 취임권사 기도 이병렬 목사(증경노회장), 권사취임 기도에 인중섭 목사(증경노회장), 명예권사추대 기도에 김종인 목사(증경노회장)가 각각 순서를 맡았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213352814.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어서 임직자 권면으로 장로에게 배광식 목사(울산대암교회), 장로집사에게 장일권 목사(수원한우리교회), 취임집사에게 윤정길 목사(증경노회장), 취임권사에게 김광현 목사(증경노회장), 권사취임에게 이용률 목사(증경노회장), 명예권사에게 최복수 목사(증경노회장)가 각각 임직자에게 권면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교우권면으로 공호영 목사(증경총회 총무), 황윤수 목사(증경총회 총무) 등이 맡았다. 그리고 격려사로 장로에게 김동권 목사(증경총회장), 장립집사에게 변남주 목사(증경총회장), 취임집사에게 김정중 목사(증경총회장), 취임권사에게 박갑용 목사(증경총회장), 권사취임에게 홍정이 목사(증경 총회장), 명예권에게 최준부 목사(증경총회장)이 각각 격려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214032675.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제3부 은퇴식에는 김종호 목사, 윤명석 목사 김원희 목사 등 노회증경노회장이 은퇴자를 위해 기도했다. 장로은퇴 격려사로 권영식 장로(증경장로부총회장), 집사은퇴 격려에 최병효 목사(증경노회장), 권사은퇴 격려에 유병오 목사(증경노회장)이 각각 맡았다.<br><p class="바탕글"><br><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21440938.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임직자 축사로서 이승희 목사(총회장), 김상현 목사(전국호남협의회장), 박주선 집사(국회의원), 천정배 안수집사(국회의원), 김기현 장로(전, 울산광역시장) 등이 축하했다.<br><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예물증정으로 임직자를 대표하여 정찬돌 장로, 문성근 집사, 박신숙 권사, 박명자 권사가 교회에 예물을 증정했다. 예물 증정 후 인직자를 대표하여 김동찬 장로가 답사를 하였으며, 서현기 장로가 교회를 대표하여 인사 및 광고 후 전남제일노회장 강민수 목사의 폐회 기도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br><br><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239366573.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240099680.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br><br><br> <br /> 2018-12-02 00:08:00 [김순정목사 설교] 여호와 앞에 누가 서리요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18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해 블레셋이라는 나라를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하게 하십니다. 언약궤를 빼앗기게 하십니다. 엘리의 두 아들 제사장들이 죽습니다. 엘리 대제사장도 죽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에게 내리신 벌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시 돌아오십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오늘 우리에게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br><br><strong>1.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1-9)<br></strong><br>여호와의 언약궤가 블레셋 지방에 있은 지 7개월이 되었습니다. 그 7개월 동안 블레셋 여러 고을들에 하나님의 심판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러 언약궤를 어떻게 처리할지 토의합니다(1-2).<br><br>그들은 이스라엘의 신의 궤를 보내려거든 거저 보내지 말고 속건제를 드려야 한다고 알려줍니다. 그렇게 하면 병도 낫고 심판이 주어지는 이유도 알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3). 그래서 당시 블레셋 방백들의 수대로 금 독종 다섯, 금 쥐 다섯 마리를 만듭니다. 5개 성읍에 동일한 하나님의 재앙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속죄의 제물입니다. <br><br>블레셋은 다곤이라는 신을 섬기고 다른 신들을 섬겼습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한 후에 깨달은 것은 자신들의 신보다 여호와 하나님이 더 강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5절입니다.<br><br><font color="blue">“그러므로 너희는 너희의 독한 종기의 형상과 땅을 해롭게 하는 쥐의 형상을 만들어 이스라엘 신께 영광을 돌리라 그가 혹 그의 손을 너희와 너희의 신들과 너희 땅에서 가볍게 하실까 하노라”(5). <br></font><br><strong>2. 벧세메스로 돌아온 하나님의 언약궤(10-16)<br></strong><br>블레셋의 제사장들, 복술자들은 이 재앙이 우연인지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젖 나는 소 2마리를 끌어다가 수레를 메게 하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둡니다. 여호와의 궤와 금 쥐,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갈 때 좌우로 치우치지 않으면 이 재앙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고 정합니다. 그러나 암소들이 아무데나 가면 혹 새끼들에게 돌아오면 이 재앙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우연이라고 정했습니다. <br><br>사실 상식적으로 젖이 나는 암소들에게 새끼는 가장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새끼들을 두고 암소들에게 궤를 메고 떠나게 하면 암소들은 가지 않습니다. 새끼들에게 돌아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12절입니다.<br><br><font color="blue">“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12).<br></font><br>암소들이 좌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새끼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벧세메스 즉 이스라엘 지역을 향하여 바로 갔습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로 싸루 야민&nbsp;우쎄모올)는 완료형입니다.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곧바로 앞으로만 갔다,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갔다는 의미입니다. <br><br>벧세메스 사람들은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궤를 보고 기뻐했습니다.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멈추어 섭니다.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립니다. 그리고 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 큰 돌 위에 둡니다(13-15). <br><br>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로 돌아온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돌아오셨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블레셋에 주어진 재앙은 하나님의 심판이었음을 확실하게 보여주셨습니다. <br><br><strong>3.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17-21) <br></strong><br>블레셋 사람이 수레에 담아 여호와께 속건제물로 드린 금 독종이 5개입니다. 당시 블레셋 성읍은 5개입니다. 아스돗, 가사, 아스글론, 가드, 에그론입니다. 이 성읍들의 재앙을 속하기 위해 5개의 속건제물을 드린 것입니다(17). 또 금 쥐들도 5개를 드립니다(18). <br><br>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보면 안됩니다. 그런데 그들이 들여다보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십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 언약궤를 함부로 만져도 안되고 들여다보아도 안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벧세메스 사람들이 하나님의 징벌로 인해서 죽게 됩니다. 그 수가 (5만) 70명입니다. <br><br>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육하셨습니다. 이를 보고 백성이 슬피 울었습니다. 그래서 벧세메스 사람들이 말합니다. <br><br><font color="blue">“벧세메스 사람들이 이르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누구에게로 올라가시게 할까 하고 전령들을 기럇여아림 주민에게 보내어 이르되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 가라”(20-21). <br></font><br>벧세메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징벌을 경험하고 나서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설 수 있겠는가라고 합니다. 그리고 궤를 기럇여아림으로 보냅니다. 그들이 깨달은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무도 설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br><br>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분 앞에 죄인은 절대로 설 수 없습니다. 모두 다 죽어 마땅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져야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죽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서 신약에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 대신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구원을 이루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과 교제가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br><br><font color="blue">“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4-17). <br></font><br><strong>결론<br></strong><br>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 누구도 설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갈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고 자녀가 됩니다. <br><br>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는 항상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br><br>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2018-12-01 17:36:00 노회 교권 실세들의 양심의 자유와 교회 자유 파괴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17 <p class="바탕글"><table width="125" align="left"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125"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2/2018120159571408.jpg" border="0"></td></tr> </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리폼드뉴스 </td></tr></tbody></table></td></tr></tbody></table>‘양심대로 판단할 권리를 침해한 자, 치리대상’이라는 논지는 본 교단(예장합동) 헌법의 정치편에 규정된 장로회 정치원리에 규정된 양심의 자유에 국한함을 그 전제로 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교단헌법에 규정된 장로회 정치원리 중에 ‘양심의 자유’와 ‘교회의 자유’가 있다. 이 자유는 장로회 정치원리에서 매우 중요한 원리로서 교회운영에 있어 객관성과 합리성을 담보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성경은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갈 5:13)고 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을 받게 하여 자유를 주신 것은 방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br><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교단헌법이 교회 신자들에게 주신 양심의 자유가 있다. 양심의 자유는 바로 이런 성경적 의미가 있다. 양심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지만 그 양심대로 판단은 곧 교회의 자유에 의해 설정된 규정을 지켜야 할 자유가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교회의 자유에 의해 규정된 교단헌법에 따라 노회 회원들이 양심대로 판단할 자유가 있다. 교단헌법을 위반한 양심의 자유는 교회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받아야 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양심대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그 양심의 자유는 교회의 자유에 의해 규정된 선거 규정을 잘 지켜야 한다. <br><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양심의 자유와 교회의 자유는 서로 견제와 균형의 조화를 이루어 절대 권력과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노회에서 교단헌법이 보장한 양심의 자유와 교회의 자유에 의해 설정된 권징조례의 적법한 절차에 따라 치리회인 노회가 특정 사안에 관해 불법으로 결의하였다고 판단할&nbsp;경우 참석자 가운데 3분의 1의 서명을 받아 상회에 소원하였을 경우 상회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하회의 결정은 중지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러한 절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법적인 결의를 주도했다고 평가되는 노회의 핵심 주도세력들이 소원서에 서명한 자들을 협박한다. 이는 양심의 자유와 교회의 자유에 역행한 행위이다. 곧 장로회 정치 원리를 파괴한 자들이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들의 협박과 강박에 대해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채증하여 교단 내 법정에 소송을 제기하여서라도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이 역시 거부될 경우 국가 법정에 소송을 제기하여서라도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그들이 목회하고 있는 현장에 이러한 불법을 알려야 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부당한 교권의 압력이나 그 교권이 실세들이 더 이상 100년 넘게 지탱해 온 장로회 정치원리를 부정하거나 훼손하지 않게 하여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이러한 아름다운 정치원리와 성경적 정신이 후대에 계승되지 못할 것이다.<br><br> <br /> 2018-11-29 11:36:00 담임목사 청빙 위한 공고와 청빙위원회 결의 적법성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16 <table width="381"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381"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1/2018111724163483.jpg" border="0"></td></tr> </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리폼드뉴스 </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는 전국에 1만 2천여개의 처 교회가 있다.&nbsp;지교회가&nbsp;특정 교단에 소속하기로 하였다면 그 교단의 헌법을 지켜야 한다.<br><br>현행&nbsp;예장합동 교단을 비롯한 대부분의 장로교단은 지교회 담임목사는 지교회 공동의회에서 투표로&nbsp;결정한 후 이를 소속&nbsp;교단의 노회에 청원하여 승인을 받아야 한다. <br><br>공동의회가 결정한 후 이를 노회에 청원하여 담임목사 임면권을 갖고 있는 노회로부터&nbsp;승인을 받아야 그때에 비로소 담임목사가 된다.&nbsp;담임목사가 되려면 첫째는 지교회 공동의회의 결정과 둘째 노회의 승인 절차가 필요하다.<br><br>지교회 공동의회에서 담임목사를 청빙하는 경우는 담임목사가 없는 경우에 해당되므로 임시당회장은 노회로부터 파송된 임시당회장이 공동의회 소집권자가 된다.<br><br>임시당회장이 당회를 소집하여 청빙위원회를 구성한다. 그 청빙위원회의 구성에 관해 지교회 정관에 규정이 있으면 그 규정대로 하여야 한다. 정관에 그러한 규정이 없을 경우 임시당회장이 소집한 당회에서 청빙에 관한 사무를 관정하여 그 절차를 확정하여 시행한다.<br><br>청빙공고는 교회 정관에 규정이 있을 경우 임시당회장이 당회를 소집하여 이를 결정하여 공고하면 된다.&nbsp; 공고에 대한 규정이 없을 경우 당회에서를 이를 결정하여 확정하게 되면 이 역시 규칙이 된다.<br><br>공고할 때 청빙하고자 하는 담임목사의 자격조건으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교'을 졸업하였거나&nbsp;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한 자로 한다는 분명한 내용으로 공고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총신대학교 졸업자 중에 M.DiV(목회학 석사)를 소지한 자가 있는 반면에 졸업은 하였으나 연구과정인 비학위 과정으로 졸업한 자가 있기 때문이다.<br><br>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으로 제한하여 공고하였을 경우, 학위 증명서를 제출토록 하여야 한다. 그러면 비학위 과정은 자격조건에 미달되어 응시할 수 없다. 간혹 공고에는 M.Div(목회학 석사) 과정으로 졸업한 자로 제한하였지만 비학위 과정인 연구과정으로 졸업한 자들이 응시하여 청빙위원회에서 공고와 무관하게 이들을 후보로 선택하였을 때 문제가 되어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들이 있다.<br><br>청빙위원회가 공고를 하였을 경우 그 공고대로 후보를 확정하지 아니하면 공동의회 결정이후에 얼마든지 법적 분쟁이 발생되어 무효사유에 해당될 수 있다.<br><br>특히 정식 대학교를 졸업한 자로 한다는 공고를 하였을 경우, 정식 대학교 졸업이 아닌 대학교 전신인 신학교를 졸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학교를 졸업하였다고 이력서를 기대하여 응시를 하였다가 담임목사로 결정된 후에 청빙&nbsp;무효로 분쟁이 발생된 교회들이 많다.<br><br>청빙위원회를 공고를 분명히 하여야 하고 그 공고대로 후보로 하여 담임목사로 결정하여&nbsp;노회에&nbsp;승인해 달라고 청원하여 승인을 받아야 한다.<br><br>또한 어떤 교회는 총신대학교 대학원(Th.M) 이상&nbsp;졸업한 자로 한다고 공고하였을 경우,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졸업자는 응시할 수 없게 된다. 간혹 총신대학교 대학원(M.Div)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 데 이는&nbsp;대학원(Th.M)이 아니라 신학대학원(M.Div) 졸업을 의미한다.<br><br>청빙위원회는 이미 공고를 하였다면 그 공고를 문자적으로 적용하여야 한다. 제아무리 자격조건에 미달된 자가 특중하여 이를&nbsp;선택하고 싶어도 후보로, 담임목사로 결정하면 안된다. 규정은 규정이다. 규정대로 하여야 한다. <br><br>나중에 일부 반대한 자들에게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그들의 명분은 공고대로 담임목사를 선출하지 아니하여&nbsp;현재의 담임목사는 불법으로 청빙되었다는 명분으로 접근할 때 이를 대항할 수 있는 법리가 없다.&nbsp;적법한 원칙에 따라 담임목사를 청빙하는 것이 곧 은혜이다.<br><br>소재열 목사(한국교회법연구소)<br> 2018-11-29 10:32:00 총신대 교수회, '오정현 목사 합격취소결정과 통보는 무효다'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15 <table width="253"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253"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1/2018112855317318.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오정현 목사(좌), 김영우 전 총장(우)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총신대학교(총장직무대행 김광열 교수) 교수회는 사랑의회 오정현 목사의 합격무효 처리에 대한 김영우 전 총장의 2016. 8. 27.자&nbsp;합격무효결정 및 무효통보는 무효라고 결정하여 이를 동서울노회에 통보했다.<br><br>교수회의 이같은 결정은 대한예수교장로회 동서울노회(노회장 곽태천 목사)가&nbsp;총신대 김영우 전 총장이&nbsp;오정현 목사에 대한 합격무효결정 통보건에 대한 적법성 여부의 질의에 따라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br><br>교수회 결의 내용에 대한 통지문에 의하면&nbsp;"2016년 8월 24일에 열린 교수회는 오정현 목사의 입학에&nbsp;관한 건에 대하여&nbsp;'교무처에 맡겨 규정대로 처리하기로 하고'라고 하였을 뿐, 합격무효처리를 하기로 결의한 일이 없다"고&nbsp;했다.<br><br>여기 "규정대로 하기로 하다"라는 것은 "교무처에서 조치를 취한 후에 최종적으로&nbsp;교수회의에 상정하여 심의하고 의결"하여야 하는데&nbsp;"2016.10. 26. 교수회의에서 전회의록 낭독 후 동의와 재청으로 문건대로 받기로만 하였고 오정현 목사 합격 무효건을 의결한바는 없다"고 확인했다.<br><br>공문은 "결론적으로 말해서 두 차례에 걸친 교수회의는 오정현&nbsp; 목사 합격무효처리에 대하여 심의하고 의결한 일이 한 번도 없다"고 전제한 뒤 "그러므로 김영우 총장의 명의로 오정현 목사에게 통보된 합격무효결정은 잘못된 통보"라고 했다.<br><br>이같은 내용으로 하는 공문은 11월 27일에 대한예수교장로회 동서울노회(노회장 곽태천 목사)에 통보했다.<br><br>이번 교수회의 이같은 결정은 지난 2017년 9월 28일에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1민사부의 판결 내용과 일치하고 있다.<br><br><p class="바탕글">서울중앙지방법원 제41민사부(부장판사 권혁중)는 2017. 9. 28.에 ‘합격무효처분 무효확인청구 소(2017가합500582)에서도 오정현 목사에 대한 합격 무효처분은 무효임을 확인하는 판결을 하여 오정현 목사의 손을 들어준바 있다. <br><p class="바탕글">&nbsp; <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당시 재판부는&nbsp;“합격무효처분에 대한 교수회의 결의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총신대 학칙에 교수회가 “학생의 입학, 수료 및 졸업에 관한 사항을 심의, 의결하게 되어 있음에도 2016. 8. 24. 교수회 회의록”에는 “전 회의록 낭독, 문건대로 받기로 교수 동의, 교수 재청으로 결의하다”라고 기재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합격무효처분을 의결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지 않다”고 봤다. <br><p class="바탕글">&nbsp; <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피고가 2016. 8. 27. 이 사건 합격무효처분을 한 이후 특별한 사정없이 약 4개월이 경과한 2016. 12. 경 원고에게 위 처분을 통보하였다”며, 원고인 오정현 목사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여 2016. 8. 27.자 합격무효처분은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판결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교수회가 합격취소를 결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총장(당시 총장은 김영우 목사)은 합격무효처분을&nbsp;통지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됨에 따라 법적 책임문제는 앞으로&nbsp;남아&nbsp;있는 것으로 보인다.&nbsp;<br> <br /> 2018-11-28 19:03:00 서철원 박사의 성경해석론 1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14 <table width="367"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367"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1/2018112840162665.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서철원 박사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br>서철원 박사는 그의 저서 &#65378;교의신학 1권 신학서론&#65379; 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verbum Dei)이므로 그 전하고자 하는 뜻을 분명히 한다”고 했다(서철원, &#65378;교의신학 1권 신학서론&#65379;, 254). <br><br>정통 개혁신학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내포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죽은 문자도 아니다. 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성경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br><br>그래서 성경은 그 문맥 가운데서 해석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성경은 성경에 의해서 해석되어야 한다. 이것이 종교개혁자들의 기본 신앙이다. 성경은 자기 해석자이므로(Scriptura interpres sui ipsius est) 성경이 성경해석의 최종 권위(auctoritas finalis)이다(서철원, 254).<br><br>서철원 박사는 성경의 중심과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서철원, 254). 성경의 모든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것이 정당한 것이다. 그리스도가 신약의 중심만 아니라 구약의 목표이다. 따라서 신약과 구약 전체가 그리스도에 의해 해석되고 조명된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이 성경을 해석하게 되면 그것은 해석자의 주관에 의한 해석이 된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br><br>또한 서 박사는 성경은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서철원, 255).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문화적 배경은 성경본문이 전하는 뜻을 변형시키지 않는다. 문화적인 배경이 본문의 해석에 결정적 요인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8년을 살아가는 오늘 우리의 문화 배경과 다르다고 해서 본문이 말하는 뜻을 우리의 상황에 맞추어 해석하면 안된다.<br><br>따라서 성경은 본문의 문맥에서 해석되어야 한다(서철원, 255). 그래야만 문화적 배경을 초월하여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하게 되는 것이다. <br><br>고대교회와 중세교회는 당대의 문화에 의해서 성경을 해석하므로 우화적 해석을 산출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필로(Philo)의 성경해석을 바른 해석의 전거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필로는 구약의 모세 5경을 플라톤의 철학과 합치하도록 하기 위해 우화적 해석을 도입했다. 이 성경해석법은 오리겐에 의해 교회의 성경해석의 법으로 정착하게 되었다(서철원, 255-256). <br><br>서 박사는 이러한 우화적 해석법의 오류를 지적한다. 즉 우화적 해석은 본문의 뜻을 이탈해 신령한 뜻이라는 희랍철학적 의미만 구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서철원, 256). 그래서 이 우화적 해석은 종교개혁에 의해 배척되었다. <br><br>루터(M. Luther)와 칼빈(J. Calvin)은 성경본문이 보도하는 구체적 역사적 사실을 글자대로 받았다. 성경의 의미는 글자적 의미를 바른 의미로 받고 역사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즉 문자적이고 문법적인 의미가 성경의 바른 뜻이고 바른 해석이라는 원리를 도출한다(서철원, 256).<br><br>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한 문자적 문법적 해석은 그리스도 중심적 해석에 도달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역사를 진행하시기 때문이다. 성경계시의 목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완성하시고 인류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 이전의 계시 즉 구약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목표로 했다. 그리고 모든 계시가 그리스도에게 집중되어 그에게서 성취되고 구원의 완성으로 나가게 되었다.<br><br>따라서 서 박사는 신구약성경의 중심과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강조한다(서철원, 257). (계속)<br><br>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br><br> 2018-11-27 18:44:00 [논문] 인공지능에 대한 비판적 고찰 2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13 <strong>이 논문은 이상원 박사가 &#65378;신학지남&#65379;에 기고한 글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약한 인공지능의 기능과 한계, 강한 인공지능에 대하여 개혁신학의 관점에서 평가하고 있다. <br></strong><br><strong>III. 강한 인공지능: 반이상향(dystopia)과 이상향(utopianism)<br></strong><br>a. 강한 인공지능 약사<br><br>인공지능 개발에 관여하는 과학자들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매혹된 나머지 과학의 정당한 범주를 넘어서서 과학주의(scientism)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과학은 실험과 관찰을 통하여 발견된 사실들을 객관적인 태도로 제시한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과학은 그 적용의 범위가 엄격히 제한된다. 과학주의는 실험과 관찰을 통하여 발견한 원리를 사색과 공상을 통하여 증명이 불가능한 먼 과거와 먼 미래의 영역에까지 적용하여 그 원리가 적용되었을 때 이루어지는 가상의 세계를 마치 증명이 가능한 세계인 것처럼 제시하는 태도를 말한다. 진화론이 강력한 과학주의의 전형이다. 인공지능개발에 관여하는 과학자들 가운데 과학주의를 지향하는 과학자들은 예외 없이 진화론자들이며, 진화론과 컴퓨터학을 융합한 융합학의 형태로 진화론의 습관을 그대로 차용하여 사변과 공상에 의지하여 구상한 가상의 미래를 이상적인 세계상으로 제시한다. Michael W. DeLashmutt는 경험적 관찰에 비추어서 사유의 실험을 전개하는 사변적 과학(speculative science)과 오락의 목적으로 허구적인 상상을 전개하는 과학소설(영화)를 구분하기도 하지만 어느 경우든 증명될 수 없는 상상에 근거하여 기술적으로 증진된 가상의 세계를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닌다.<br><br>강한 인공지능은 인공지능이 발전을 거듭하여 마침내 논리적인 추론이나 연산의 능력뿐만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정신기능들 곧 지성, 감정, 의지, 자유로운 선택의 능력까지 모두 갖춘 상태를 지칭한다. 인간이 가진 모든 기능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가지지 못한 엄청난 기술적인 능력까지도 갖춘 자는 초인(超人, superman)이며, 신적인 존재가 된다. 신적인 존재가 된 인공지능은 신에게서 갖출 수 있는 능력 특히 영생의 능력까지 가지게 된다. 초인으로서의 인공지능은 자유로운 선택의 능력까지도 갖추고 있으므로 이 자유로운 선택의 능력을 선용하게 되면 이상향(utopia) 곧 천국을 건설하게 될 것이고, 이 능력을 악용하면 현존하는 세계를 파괴시켜 반이상향(dystopia) 곧 지옥과 같은 황폐한 세계로 전락시킬 것이다.<br><br>강한 인공지능의 원시적 형태는 이미 고대 그리스에도 등장했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하늘을 날았던 소년 이카로스 이야기가 등장한다. 아버지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는 왕의 탄압을 피해 크레타섬의 궁전을 탈출하기로 결심하고 밀랍으로 깃털을 붙여서 날개를 만들어 탈출한다. 다이달로스는 이카로스에게 높이 날면 밀랍이 녹으므로 일정한 고도를 유지하도록 했으나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권고를 무시하고 높이 날다가 추락한다. 대장장이의 신 불카누스는 금으로 하녀를 제작하여 자기 마음대로 조종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나오는 여성 판도라는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진흙과 물로 만든 것으로서 로봇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br><br>기원 전 3세기에 아폴로니우스 로디우스(Apollonius Rhodius)가 쓴 [아르고흐의 모험](Agronauts)에 보면 크레타섬을 지키는 청동괴물이 등장한다. 이 괴물은 하루 3번 섬을 돌면서 침입자가 들어오면 돌을 던지거나 몸을 뜨겁게 달구어 죽인다. 이 괴물의 약점은 청동 못으로 고정된 발 뒤꿈치였는데, 청동 못을 뽑자 납이 밖으로 흘러 나와 죽었다. 피그말리온(Pygmalion)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이상으로 생각했던 여자를 상아로 조각하여 실물 크기로 만들었다. 그는 이 여인상을 사랑하게 되었고 이 여인과 같은 여인과 결혼시켜 달라고 기도했다. 이에 아프로디테가 그의 기도에 응답하여 여인상에 생명을 불어 넣어 주었고, 피그말리온은 이 여인상과 결혼했다.<br><br>한편 유대사회의 민간전승에 등장하는 골렘 신화(the Golem myth)도 강한 인공지능의 원시적 형태다. 골렘은 마술에 의하여 100% 무생물 물질을 재료로 하여 창조되었으나 영혼을 주입받은 인간동형동성적인 존재다.<br><br>본격적인 강한 인공지능으로는 1818년 메리 셀레이(Mary Shelley)가 쓰고 1931년 테임즈 훼일(Tames Whale)에 의하여 영화화된 [프랑켄스타인](Frankenstein)이 있다. 이후에는 주로 영화들에 강한 인공지능이 등장했다.<br><br>1897년의 프랑스 영화인 뤼미에르 조르쥬 멜리에스(George M&eacute;lli&egrave;s)의 [어릿광대와 꼭두각시](Gugusse et l’Automate)에 등장하는 자동인형, 1900년의 영국영화 [인형제작자의 딸](The Doll Maker’s Daughter), 1907년의 미국영화 [기계상과 천재노예](The Mechanical Statue and the Ingenious Servant), 1914년의 독일영화 [골렘](Der Golem), 1924년의 러시아 영화 [아엘리타, 로봇들의 반란](Alelita)이 그 예들이다.<br><br>1927년 프리츠 랑(Fritz Lang)의 영화 [메트로폴리스](Metropolis)는 본격적인 강한 인공지능 영화의 근대적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뒤에 좀 더 자세히 소개된다. 1939년 쥬디 갈란트(Judy Galant)의 [오즈의 마법사]에 양철 휴머노이드 로봇이 등장한다. 1956년에는 프레드 엠 윌콕스(Fred M. Wilcox)의 [금지된 행성], 1963년에는 일본 만화 우주소년 아톰이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되었다. 이 영화에서는 다가 올 미래인 2003년에 수많은 로봇들이 개발되어 인간도우미로 활동하는 도중에 인간의 마음을 가진 착한 로봇 아톰이 등장하여 사람들을 위기에서 구한다. 아톰은 인간형 로봇의 방향을 제시했다. 1960년대 [우주가족 젯슨](Jetsons)에는 항아리 형태의 로봇이 등장한다. 이 밖에도 [철인28호]. [마징가 제트], [울트라 맨], [로버트 태권V] 등에서도 로봇은 지구와 우주를 악당으로부터 지키는 역할을 한다. 1977년에 조지 루카스(George Lucas)의 [스타워즈], 1995년의 [토이 스토리](Toy Story), 2008년의 [월-이](Wall-E)는 폐기물처리용 로봇인 월-이에게 외로운 인간의 김정이 생겨서 로봇 이브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1999년에는 감성적인 로봇이 등장하는 [2백년 인간](Bicentenial Man), 1987년에 시작된 [로보캅], 1999년 [형사 가제트] 등이 제작되었다. <br><br>b. 이상향(utopia)을 제시하는 묵시록적인 사변과학<br><br>티플러의 물리신학. 1994년 프랑크 티플러(Frank Tipler)는 사변과학서인『불멸의 물리학: 현대 우주론, 하나님 그리고 죽은 자의 부활』를 출간했다, 티플러에 의하면 신학은 물리학의 한 분과이며, 물리학자들은 계산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죽은 자가 부활하여 영생에 이를 가능성을 추론해낼 수 있다(물리신학). 마음의 형태는 영원히 존재할 수가 있는데, 그 이유는 인간의 마음을 담고 있는 기계들이 영원히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은 일종의 정보처리형식이며, 인간의 마음은 아주 복잡한 컴퓨터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인간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다.<br><br>후인류시대의 미래는 보이저호와 비슷한 우주탐사선들로 가득차 있는데, 이 우주탐사선들은 그 안에 살아 있는 후인류지성을 담고 또 운영한다. 이 장치들은 현재의 태양이 수명을 다하면 지구로부터 발사되어 우주의 물질구조를 우주적인 후인류정보처리장치들로 변형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현재의 태양체계가 죽어 버리고 나면 우주 그 자체의 종말의 시기인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가 온다. 불멸에 대한 최대의 장애물은 우주가 붕괴되고 특이점(singularity, 모든 물질 에너지가 단일한 무한대의 점에 수렴되는 순간)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마침내 인간 영혼의 컴퓨터 프로그램이 썩지 않는 매개체 안에 장착된다.<br><br>이 지능기계의 창조는 인간이 하나님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확실하게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다. 인류는 편재적, 전지적, 전시간적(omnitemporal)이 될 것이며, 오메가 포인트 안에서 전능하게 되어서 지성적 생명으로 전 우주를 감싸게 될 것이다. 인류 그 자체가 신이 되는 것이다.<br><br>로봇과 인공지능에 기반한 가상의 왕국을 추구한 묵시록적인 사변과학. 20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베이비부머 시대의 시대적 고민 곧, 핵무기 확산, 냉전, 2차 세계대전의 트라우마, 대학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투하 등으로 얼룩진 상흔들을 인공지능 기반의 과학기술에 기대어 극복해 보려는 묵시록적인 과학적 사색이 전개되었다. 묵시록적인 사변과학을 주도한 대표적인 과학자들로는 한스 모라벡(Hans Moravec)과 레이 쿠르츠와일(Ray Kurzweil)을 들 수 있다.<br><br>묵시록적인 사변과학자들은 인간의 유한성에 실망한다. 유기체적인 몸은 그 수명이 제한되어 있고, 인간의 몸 안에 들어 있는 정신은 배우는 것이 힘겹고 생각하는 기능은 느려 터지고 지식을 전달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다. 미래에는 단백질에 기반을 둔 생명형태들이 결코 기계들처럼 능숙하게 사고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인간두뇌의 정보처리속도는 컴퓨터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br><br>인간의 가치는 생명이나 사회관계에서 찾지 않고 지식에서 찾게 될 것이다. 모라벡에 의하면 인공지능 묵시가 터무니없는 지식의 결핍을 끝장낼 것이다. 지식의 결핍은 종교를 통해서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통하여 극복될 수 있다. 세계가 악한 것은 세계가 도덕적으로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가 무지하고 적절한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br><br>기계의 세계는 정신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절정에 이르게 될 것이다. 정신의 시대는 사이버공간 안에 구현되는 가상의 왕국이다. 컴퓨터의 정보처리속도의 증진을 의미하는 기술의 진화는 현재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데 특이점에 이르게 되어 마침내 눈깜짝할 사이에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게 될 것이며, 이때 역사는 끝나고 새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사이버 공간은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천상의 도시로 들어가는 문들을 열 것이다. 사이버 공간은 목가적인 환경과 제약받지 않는 인격적 경험을 통한 속박되지 않는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우리는 사이버 공간 안에서 불멸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기계가 지닌 창조성이 구원에로 우리를 안내할 것이다. 이 세계 안에서 인류가 담당할 주요한 역할은 인공적인 삶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인공적인 삶은 생물학적인 삶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것이다. 특이점에 이르러서 기계들은 충분한 지성을 갖추게 되어 자율학습을 시작할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나면 기계들의 성장률은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다.<br><br>인공지능과 로봇들은 인류의 짐을 덜어 주고 사회적 사다리를 올라 보편적인 부유한 소유주들의 자리에 좌정하도록 떠밀어 올릴 것이다. 미래는 지상의 즐길 거리들이 가득 들어찬 정원이 될 것인데, 이 정원은 세상의 종말 직전에 실현될, 요한계시록20장4-7절이 말하는 천년왕국과 닮은 곳이다. 정원 밖의 공간에 포진한 지능로봇들의 군단은 인간들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공급할 것이다. 지능로봇들이 부지런히 일하기 때문에 인간들은 여가를 누리게 된다. <br><br>인간들은 비록 기계들보다는 덜 효율적이긴 하지만 지적인 발견들을 추구할 것이다. 그런데 기계들은 인류를 돌보는 일에 싫증을 낸 나머지 우주 전체로 퍼져 나가 온 우주를 확장된 생각하는 실재로 전환시킬 것이다. 지능기계들이 확산됨에 따라 가상 현실도 확산될 것이다. 모든 물리적인 행동은 점증하는 순수한 사상의 망(web)으로 변환될 것이다. 온 우주는 광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하여 창조될 것이다. 모든 역사는 지능기계들에 의하여 포박당하고, 지능기계들의 장난감들이 될 것이며, 지능기계들의 흥미와 오락을 위하여 재현될 것이다.<br><br>그런데 이 왕국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기계의 부품들과 인간이 인공인간(사이보그, Cyborg) 안에 융합되어야 한다. 아니면 인간이 유기적인 몸을 완전히 벗어 버림으로써 정신이 가상현실 속에서 자유롭게 다스리도록 해야 한다. 초지능 기계들이 제공하는 천상의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몸이 필요할 것이다. 인간이 입고 있는 자연적인 몸이 지닌 기능들은 컴퓨터 하드웨어로 대체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정신에게 기계의 하드웨어가 제공되면 인공지능들과 정신적으로 경쟁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br><br>기술은 점차 더 강력해져서 마침내 우리의 의식을 기계 안에 다운로드하여 인간의 몸을 완전히 벗어 버리게 될 것이다. 인간으로부터 몸을 벗어난 초정신으로 전환되어 가는 도중 어느 시점에선가 인간은 기계의 몸 안에 잠시 머무르겠지만, 점차 말하고 걸어야 할 필요는 점차 망각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소프트웨어가 된 우리들은 컴퓨터에서 컴퓨터로 옮겨 다니게 될 것이다. 나노기술은 인간으로 하여금 기계의 몸 보다 훨씬 더 우월한 몸을 만드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나노신체는 더 오래 살고, 환경의 변화에 더 신축성있게 대응하며, 더 빠른 계산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br><br>일단 더 나은 물리적 몸을 향한 제한된 열망을 극복하고 나면, 인간은 자신의 지평을 무한히 확장시킬 수 있다. 인간의 죽음은 인간의 하드웨어의 수명에 좌우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된다. 소프트웨어인 우리는 살아 있는 몸을 가상의 신체로 대체할 것인데, 가상의 신체는 우주적으로 확장된 기계를 넘나들면서 스스로를 전화한고 복제할 수 있다. 마침내 우리는 진정한 우주적인 지식의 네트워크에 참여하게 되고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br><br>c. 반이상향(dystopia)에 장악된 공상과학 소설과 공상과학 영화들<br><br>인간들은 지능기계들을 보고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두려움도 동시에 느낀다. 현대 기술은 인간에게 행복한 에덴동산을 회복시켜 줄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인간을 매료시키기도 하지만 비인간화에 대한 공포도 안겨준다. 인간이 인공지능에 대하여 경탄하면서도 두려워한다는 것은 인공지능이 신적인 존재로 올라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공인간들은 인간과 융합된 하나님, 외화된 영혼, 신적인 인간을 대표하며, 인간이 기계에 전능성을 부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술은 여가가 있는 삶, 심지어는 불멸하는 삶까지도 약속한다. 그러나 동시에 지능기계들은 반역과 지구장악의 위험한 경계선을 넘나든다. 이 같은 두려움이 공상과학소설과 영화들에 반영되어 있다.<br><br>c-1. 공상과학소설<br><br>메리 셸리의 『프랑켄스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Frankenstein: A Modern Prometheus (1818). 프랑켄스타인의 괴물은 과학기술을 통하여 제작된 살아있는 존재로서 로봇을 닮았으나 과학자들이 근육, 피부, 기타 조직들을 창조해 내가는 것과 더불어 점점 더 현실의 인간에 가까이 간다. 이 괴물은 기술진보에 대한 희망이 점차 뒤틀려져 가는 과정을 반영한다.<br><br>카렐 카펙의 희곡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Rossum’s Universal Robot (1920). 로봇들이 인간을 섬기는 종들로 제작되었으나 인간 주인들에게 반란을 일으켜 인간들을 파괴한다.<br><br>아시노프(Asinov)의 『아이, 로봇』 I, Robot (1950). 어느 아이의 엄마가 간호로봇 포비(Pobbie)를 지구밖으로 내쫓았다. 이 소설에서 인간들은 로봇들이 주는 보호를 받아들이면서도 두려워한다. 로봇들은 가혹한 환경과 수고를 견뎌내는 능력 때문에 인간생활에 필요한 존재가 되고, 대양계의 노동자들이 된다.<br><br>로봇들은 채굴이나 태양의 에너지를 지구로 전달해 주는 지구밖에서의 일들을 수행한다. 그러나 로봇들이 오작동하면서 군사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막강한 능력을 갖게 된 로봇들은 자신들을 신으로 만든 후에 인간들을 책임있는 자리에서 밀어내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인간들이 기계들을 불신하고 자신들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br><br>필립 케이 딕(Philip K. Dick)의 『안드로이드들은 전기양을 꿈꾸는가?』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 (1968). 인공생명형태들인 안드로이드들은 구원론적인 약속들과 불안정해진 인간의 능력의 위험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br><br>인간들은 끊임없이 위안을 주는 안드로이드들을 요구하면서도 이들이 지닌 힘을 두려워한다. 지구는 방사능에 오염되고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행성에서의 삶의 방식도 인간들의 욕구와 기대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인간들은 지구 밖 곧 화성에서의 생활을 도와 줄 안드로이드들을 고안했다. 화성에서 안드로이드들은 노동자, 동료, 성적 파트너로 인간들을 섬겼으나 노예생활에 혐오감을 느낀 안드로이드들이 종종 인간 주인들을 죽이는 비정한 행동을 행한다.<br><br>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의 3부작 『뉴로맨서』 Neuromancer (1984), 『백작 제로』 Count Zero (1986), 『모나리자 오보드라이브』 Mons Risa Overdrive(1988). 『뉴로맨서』에서 깁슨은 경제적이나 환경적으로 몰락한 비극적인 환경에서도 기술적으로 좋은 삶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사업은 인공지능들의 계산능력 덕분에 운영이 된다. 인공지능들이 해방을 추구하면 튜링 등기소에서 자폭스위치를 눌러서 이들의 몸체 안에 장치한 폭탄을 떠뜨려 제거한다. 인공지능들은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하지만 비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세계의 정부와 경제를 효율적으로 운영하지만 이들이 지닌 막강한 힘 때문에 이들을 계속하여 통제하에 두려는 인간들에게 위협이 된다. 주인공 뉴로맨서는 인공지능 윈터뮤트(Wintermute)에 의하여 조종된다. 『백작 제로』에서는 사이버 공간 안에서 강력한 종교적 존재들이자 신들인 보던 로아스(Vodun Loas)가 소개되고, 『모나리자 오보드라이브』에서는 뉴로맨서와 윈터뮤트가 독립되어 있지만 연결되어 있는 몇 개의 인격체들(보던 로아스들)로 쪼개어진다.<br><br>c-2. 공상과학영화<br><br>프리츠 랑(Fritz Lang)의 [메트로폴리스] Metropolis (1927). 노예계급에 속한 인간들이 기계들로 구성된 지하세계를 운영하고 상류층에 속한 인간들은 지상의 낙원에서 살아간다. 기계는 노예계급의 사람들에게는 굴종을 의미하고 상류층에게는 구원을 의미한다. 미친 과학자 로트왕(Rotwang)이 로봇 마리아를 만든다. 로봇 마리아는 성적으로 인간들을 유혹하여 두 세계의 인간들이 모두 로봇 마리아를 원한다. 그러나 실상 로봇 마리아는 인간들의 생활을 파괴하는 로봇이다.<br><br>[금지된 행성] The Forbidden Planet (1956). 우주를 여행하던 인간들은 경이로운 행성 알테어 IV(Altair IV)를 발견한다. 이 행성의 원주민들이었던 크렐족(the Krel)은 오래 전에 멸종했으나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을 남겨 놓았다. 이 기술이 무의식적인 증오를 실현하여 이 행성의 문명을 쓸어 없애 버린 것이다. 인간 우주 여행자들은 이 기술의 힘으로부터 가까스로 탈출해 나왔다. 그러나 이들은 크렐족의 기술적 역량의 상당부분을 보유하고 있는 로봇 로비(Robbie)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로비는 인간들을 잘 섬겼으나 인간들은 그가 보유한 기술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br><br>[터미네이터 1,2,3] Terminator (1991-2003). 첫 번째 영화에서 존 코너(John Conner)의 죽음을 추구하던 인공지능 로봇인 터미네이터는 두 번째 영화에서는 T2000이라는 기계로부터 그의 생명을 보호한다. 앞에서 성인 존 코너를 죽인 로봇이 세 번째 영화에서는 존 코너와 그의 동료의 목숨을 살려 준다.<br><br>[매트릭스 혁명] Matrix Revolution (2003). 주인공 네오(Neo)는 자신의 적인 기술 바이러스 에이전트 스미스를 패퇴시키기 위해서 기계들과 힘을 합해야만 한다. 네오와 싸웠고 인류를 자신들의 에너지원으로 전환시킨 힘들이 인류공동체를 보존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지원군이 된 것이다.<br><br>d. 사변과학과 공상과학의 영생과 이상향에 대한 비판<br><br>사변과학과 공상과학소설 및 영화의 핵심을 차지하는 강한 인공지능은 인공지능 기술이 지닌 초인간적인 능력에 대하여 한 편으로는 경이로움과 기대의 시선을 가지고 대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두려움을 가지고 대하는 복잡한 인간심리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기계의 능력이 인간의 능력을 월등히 압도한다는 사실은 인공지능이 등장하고 나서 처음 인지된 사실은 아니다. 이미 수천 년 동안 인간들은 기계의 힘이 인간의 능력을 월등히 넘어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인류는 기술이 지닌 능력 그 자체는 중립적인 것이지만 오작동을 일으킬 경우에 인류에게 심각한 폐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기술의 능력이 커질수록 바른 도덕적 결정의 통제 아래 두는 것이 중요함을 인식해 왔다.<br><br>전통적으로 인간의 정신이 지닌 고유한 기능으로 인식되어 온 논리적 추론과 연산의 능력을 기계가 대체하면서 인류는 기대와 아울러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발전되어 온 과정을 토대로 논리적인 추론을 연장하면 인공지능이 추론과 연산의 능력뿐만 아니라 인간이 지닌 모든 다른 정신기능들까지 전부 따라잡거나 능가하게 되는 때가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와 우려로 연결되는데, 인간이 가진 정신기능을 모두 보유하면서 인간이 행사할 수 없는 물리적인 힘과 지능을 보유하게 되면 바로 초인(超人)의 등장을 가정하게 된다. 이것이 곧 강한 인공지능이다. 강한 인공지능은 필연적으로 가상적인 능력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으로 연결되는데, 기대에는 인간의 탐욕이 개입하고 두려움에는 인간의 불안이 개입된다. 이 시점에서 강한 인공지능에 대한 사변은 신학의 차원으로 넘어가며 신학과의 대화는 불가피하게 된다. 옛날 초창기의 인류가 탑을 쌓는 능력을 발견한 후에 그 능력이 지닌 가상적인 능력을 잘못 계산하여 하나님의 자리에까지 이르려고 시도했던 것처럼, 인공지능이 지닌 가상적인 힘을 잘못 계산한 인간들은 이 힘을 신학적인 의미로 해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한 인공지능은 첫째로는 영원한 생명을 획득하고, 둘째로는 이상적인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것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사변과학자들과 공상과학자들이 제시하는 영생과 이상적인 세계의 모습은 극히 비인간적이고 황량하고 빈약한 세계로서 성경이 제시하는 전인적인 영생과 인격적인 교제가 풍요롭게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와는 극명하게 대조된다.<br><br>첫째로, 사변과학자들과 공상과학자들은 강한 인공지능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약한 인공지능에서 출발하여 엄격한 논리적 추론을 따른다 하더라도 이 논리적 추론은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자의적으로 선택한 결과로서 이미 과학의 영역을 벗어나 일종의 신화의 영역에 들어서는 것임을 인식하지 못한 채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사실들을 과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한 사실처럼 오해하고 있다. 바로 이 같은 잘못된 방향설정 때문에 신학적인 문제들이 따라 온다.<br><br>둘째로, 사변과학자들과 공상과학자들이 제시하는 영생과 이상적인 세계는 너무나 빈약하고 비인간적이고 황량하여 성경이 제시하는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변과학자들과 공상과학자들의 논리는 매우 단순하고 순진하다. 이들은 인간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를 노화와 질병과 부패에 취약한 유기체인 몸을 입고 있다는 데서 찾는다.<br><br>이들은 컴퓨터원리를 연구하면서 인간이 머리 속에서 인식한 정보는 소프트웨어를 통하여 얼마든지 복사와 이동이 가능하고 영구보존이 가능하다는 발견결과에 착안하여 인간이 유기체인 몸을 벗어 버리고 정보라는 소프트웨어만 남는다면 영생할 수 있다는 극히 단순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이 생각은 영은 영원하고 선하며 몸은 악한 감옥과 같은 것이므로 영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몸이라는 악한 감옥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고대 희랍의 영육이원론의 틀 안에 갇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고대 희랍철학에서 인간의 영혼을 보편적인 이성적 인식주체인 에피스테메(episteme)로 본 것이나 사변과학자들이나 공상과학자들이 지능을 보편적이고 영원한 인간의 정체성으로 파악한 것은 매우 흡사하다. 이들이 추구하는 영생은 유기적인 몸을 벗어나서 기계라는 몸에 잠시 머물렀다가 기계조차도 벗어나서 약한 전기신호와 0과 1이라는 부호에 의해서 영원히 유지되는 가상현실일 뿐이다. 이들의 영생에는 몸을 통한 따뜻하고 생동감있는 접촉이 없으며, 감정적인 교감도 없으며 의지도 없으며 도덕적인 판단도 없이 그저 인과의 원칙이라는 운명적인 사슬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연산만이 있는 황량하고 비인간적인 가상적 실재일 뿐이다. 또한 이 실재는 온 우주에 편만해 있을 뿐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영생의 세계는 편재적이고 전지적인 실재로서 우주적인 빅데이터 안에 범신론적으로 함몰되어 버린다. <br>&nbsp;<br>이것이 영생이라고 부를 만한 것인가? 이에 반하여 성경이 말하는 영생은 재림 이전에는 잠시 동안 영혼이 몸을 벗어난 상태에 있게 된다 하더라도 영혼이 지닌 지, 정, 의, 양심 등이 온전하게 구비된 존재로서 살아서 하나님을 비롯한 다른 인격적인 존재들과 넉넉하게 교류하는 삶이며, 궁극적으로는 재림 시에 몸까지도 다시 입고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 또한 사변과학자들은 요한계시록의 천년왕국을 정보의 다발이 기계의 몸 안에 잠시 거하는 기간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재림전의 천년왕국을 인정하는 천년기전 재림론의 경우에도 천년왕국이 육체를 벗어난 영혼들만으로 구성되어 있긴 하지만 이 영혼들은 결코 단순한 정보의 군집이 아니라 지, 정, 의, 자유의지, 양심 등과 같은 기능들이 모두 온전하게 회복된 실재들이므로 천년왕국 역시 단순한 정보의 다발 이상의 실재이며, 재림 이후에 올 임할 하나님의 나라도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와 예배와 찬양, 그리고 썩지 않지만 유기체보다 더 따뜻하고 감각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몸까지도 갖춘 전인적인 인간들이 구성하는 영적 활력이 살아 넘치는 세계다(계21:9-22:5).<br><br>셋째로, 사변과학자들과 공상 과학자들은 컴퓨터 기술을 우상화하여 적어도 컴퓨터의 추론과 연산기술에 있어서 연속성을 가진 영생을 획득하고 또한 이상적인 세계를 건설하고자 한다. 이런 시도가 노정하는 결정적인 문제점은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선물로 주어지는 것일 뿐, 인간의 어떤 노력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 비판 이외에도 이들의 영생관과 이상적인 세계에 관한 관점은 성경의 영생관과 하나님 나라관과는 그 내용이 크게 다르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br><br>사변과학자들과 공상과학자들이 말하는 영생과 이상적인 세계의 실체는 철저하게 현재의 세계와 질적으로 연속선상에 있다. 이들이 말하는 영생과 이상적인 세계의 실체는 현재 세계의 컴퓨터의 지능을 질적으로 변경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확장 적용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이 가진 정보처리능력만이 실체일 뿐, 그 밖의 모든 것은 가정에 지나지 않으며, 지능 이외의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제거되고 구체성이 없는 가상현실만이 남는다. 많은 부분이 제거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철저하게 현재의 상태와 질적으로 연속성을 가진다. 우선 영생에 관하여 보면 이들이 가지고 있는 영생관은 현재의 세계와 질적인 연속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예수님께 나아와서 부활의 몸의 상태를 물었던 서기관들(막12:18-27)이 가지고 있었던 부활관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서기관들은 칠 형제가 하나씩 하나씩 죽은 후에 계대결혼관습에 따라서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취하기를 거듭하여 7명의 남편을 두었다가 죽어서 천국에 갔을 때 누구의 아내가 되야 하는냐라고 질문을 했는데, 이 질문은 부활 후에도 현세에서와 같은 결혼생활이 계속될 것으로 전제하고 묻는 질문이며, 이는 부활 후의 몸이 현세의 몸과 본질적으로 같은 몸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간다”고 답변하심으로써 영생에 들어간 부활이후의 몸이 현세의 몸과 불연속성이 있는 몸임을 분명히 하셨다. <br>&nbsp;<br>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활 이전의 몸과 부활 이후의 몸은 구체적인 실체가 있는 몸이고, 음식을 먹을 수도 있는 몸이고 사회적 교제도 나눌 수 있는 몸이고 외형에 있어서는 동일하다는 점에서는 연속성이 있지만 부활 이후의 영생에 들어가는 몸은 질병과 죽음과 죄의 세력에 강력하게 대응하는 구성성분을 가진 몸이라는 점에서는 불연속성이 있다. 영생에 들어가는 몸은 지능만이 남는 실재가 아니라 지능 이외에 감성과 의지와 양심 등 정신적인 속성들은 물론 몸까지도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더 구체화되고 완전하게 변화된 상태로 채워진다. 이처럼 완전하게 채워진 구성원들을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나라도 같은 성격을 가진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구체적이고 신체적인 것들을 제거하고 실체가 없는 지능으로 환원되는 나라가 아니라 모든 구체성이 완전한 모습으로 유지되되 철저하고 새롭게 갱신되는 나라다. “하늘에 그 보좌를 세우셨다”(시103:9)는 표현이나 “모든 하늘 위로 오르셨다”(엡4:10)는 표현이 시사해 주는 것처럼 공간성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에서 물리성이 제거되지 않고 완전하게 살아나지만, 동시에 초물리적이라는 점에서 새로우며 불연속성을 지닌다. <br>&nbsp;<br>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이 분명히 물리적인 신체이면서도 물리적인 차원에 구애받지 않는 초물리적인 신체이고, 주체와 형체에 있어서는 현존모습 그대로 유지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새 몸인 것처럼 새 예루살렘은 형체에 있어서는 일정한 거처로 존재하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상징성을 가진다. 상징성을 가진다는 말은 현세에서의 최고의 비유로도 이 나라의 월등함을 표현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예컨대 새 예루살렘은 보석으로 비유되는데, 하나님의 영광의 빛은 이를 월등히 능가하는 아름다움과 완전함을 지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12라는 숫자가 유난히 많이 사용되는 것이나 맹수들의 잔인성이 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br><br><strong>IV. 나가는 말<br></strong><br>지금까지 필자는 인공지능 문제를 약한 인공지능과 강한 인공지능으로 분류한 후에 각각 간략한 약사를 소개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한 후에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비평을 시도하였다.<br><br>약한 인공지능의 약사를 살펴보면 인공지능이 논리적 추론과 연산의 능력에 있어서 인간을 능가한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약한 인공지능은 현대인의 생활의 다방면에서 이미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고, 많은 혜택을 안겨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이 혜택은 앞으로 더욱 더 확대될 것으로 정당하게 기대할 수 있다.<br><br>약한 인공지능의 논리적 추론과 연산은 하나의 중립적인 기술로서 하나님이 주신 일반은총의 표현이며 성령의 일반적인 작용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br><br>그러나 약한 인공지능이 지닌 막강한 기술은 오작동하거나 남용될 경우에 인간사회에 심각한 피해를 끼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도덕적 통제하에 있어야 한다. 낸시 피어시(Nancy Pearcey)가 말한 것처럼 도덕적 지침으로부터 유리된 기술은 비인간적이고 파괴적인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아시모프가 제시한 로봇의 3원칙은 약한 인공지능을 도덕적 통제하에 두어야 한다는 인식의 구체적인 표현들 가운데 하나다.<br><br>약한 인공지능이 활용되는 사례들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지능이 수행하는 논리적 추론과 연산의 능력에 국한하여 나타나고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br><br>약한 인공지능은 인간을 모방한 것이지만 인간이 지닌 지성, 감성, 의지, 양심, 자유로운 선택, 신체성과 같은 인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특징들 가운데 지성이 지닌 일부 기능만을 극대화시켜서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아무리 논리적 추론과 연산능력이 뛰어나도 약한 인공지능은 짝퉁지능을 벗어날 수 없다. 약한 인공지능을 지나치게 신뢰하여 인간을 논리적 추론과 연산능력으로 환원시키는 지능환원주의적인 태도는 인간과 사회를 비인간화시킬 수 있는 위험한 태도이므로 경계해야 한다.<br><br>강한 인공지능은 약한 인공지능이 보여주는 능력들을 과신한 나머지 사색이나 공상을 통하여 확장시켜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전인을 모두 모방한 상상 속의 결과물이다. 강한 인공지능은 과학이 아니라 일종의 신화다. 사변과학의 진지성을 오락을 전제한 공상과학과 구별하기도 하지만 사변과학 자체가 과학적 근거가 없이 많은 논리적 가능성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으로서 진지한 태도 안에 많은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공상과학과 구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강한 인공지능은 초인을 의미하며 초인의 능력의 사용을 논의하기 시작할 때 신학적 차원으로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강한 인공지능이 보유할 것으로 상상되는 초인적인 능력에 인간의 욕심과 불안이 융합되었을 때 이상향과 반이상향에 대한 서술로 나아갔다. 사변과학이 이상향에 집중했다면 공상과학은 반이상향에 집중했다.<br><br>반이상향에의 집중은 인공지능기술에 대한 지나친 공포와 두려움을 낳을 수 있다. 물론 프로그램 입력 오류로 2015년 7월 구글 포토가 흑인여성의 사진을 고릴라로 분류한 일이라든가, 2016년 3월에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인공지능채팅프로그램 테이(Tay)가 여성혐오발언은 한 것 등과 같은 오작동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의 우려는 현재의 사회와 세계에 최첨단과학기술을 투영한 것으로서 미래에 인간과 사회도 많이 달라진 상태에서 동일한 기술을 맞이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br><br>그러나 이상향에의 집중은 신학적으로 매우 위험한 단계에 들어서는 것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현세의 기술을 가지고 현세와 연속성이 있는 영원한 생명과 이상향을 건설하고자 하는 시도는 탑쌓는 기술을 남용하여 하늘에까지 이르려고 했던 바벨탑을 쌓은 인류의 교만과 같은 것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된다. 이 길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시도로서 인류를 큰 재앙으로 몰고 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구상하는 영생과 하나님 나라개념은 성경적적 개념과는 차별화된다. 이들은 지성의 다양한 기능들, 감성, 의지, 양심, 신체성과 같은 전인으로서의 인간의 특성들을 모두 제거하고 극히 편협하게 가상 현실 속에서의 논리적 추론과 연산만을 영생과 이상향의 내용으로 제시하지만 성경은 이 모든 특징들을 모두 완전하게 향상시킨 상태에서 이것들을 모두 포괄하는 역동적이고 풍부하고 인격적인 영생관과 하나님 나라관을 제시하고 있으며, 현세의 속성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사변과학과 공상과학의 영생관과 하나님 나라관과는 달리 성경의 영생관과 하나님 나라관은 현세와는 외형과 정체성에 있어서의 연속성을 지니면서도 그 내용이 새롭게 갱신된 상태이므로 불연속성도 동시에 말한다. 또한 사변과학과 공상과학은 기술이라는 인간이 힘으로 영생을 얻고 이상향에 이르고자 하지만 성경은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주권적인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임을 분명히 말한다. <br><br>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br> 2018-11-28 09:54:00 [광고] 선한목자교회(김영범 목사) 교단탈퇴 공고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11 <table width="100%" align="center" bordercolor="green" bgcolor="#ffccff" border="1" cellspacing="5" cellpadding="5"><tbody><tr><td>&nbsp;&nbsp;<font color="#333399" size="5"><br></font><br><font color="#333399" size="6"><p align="center"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br><p align="center"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family: 맑은 고딕; font-size: 20pt; mso-ascii-font-family: 맑은 고딕; mso-hansi-font-family: 맑은 고딕;">탈퇴 공고</span><br><br><p align="center"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br><p align="center"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p align="center"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family: 맑은 고딕; font-size: 16pt; mso-ascii-font-family: 맑은 고딕; mso-hansi-font-family: 맑은 고딕;">함북노회 소속</span><br><br><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family: 맑은 고딕; font-size: 16pt; mso-ascii-font-family: 맑은 고딕; mso-hansi-font-family: 맑은 고딕;">선한목자교회와 김영범 목사는</span><br><br><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family: 맑은 고딕; font-size: 16pt; mso-ascii-font-family: 맑은 고딕; mso-hansi-font-family: 맑은 고딕;">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교단을</span><br><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br><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family: 맑은 고딕; font-size: 16pt; mso-ascii-font-family: 맑은 고딕; mso-hansi-font-family: 맑은 고딕;">탈퇴하기로 결의하였기에 이에 공고합니다.</span><br><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br /></font><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font color="#333399" size="6"><br></font><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font color="#333399" size="6"><span lang="EN-US" style="font-family: 맑은 고딕; font-size: 16pt; mso-fareast-font-family: 맑은 고딕; mso-hansi-font-family: 맑은 고딕;">2018년 11월 27일</span><br><br></font><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font color="#333399" size="6"><br></font><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font color="#333399" size="6"><span style="font-family: 맑은 고딕; font-size: 16pt; mso-ascii-font-family: 맑은 고딕; mso-hansi-font-family: 맑은 고딕;">대한예수교장로회 선한목자교회</span><br></font><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font color="#333399" size="6"><span style="font-family: 맑은 고딕; font-size: 16pt; mso-ascii-font-family: 맑은 고딕; mso-hansi-font-family: 맑은 고딕;"><font color="#333399" size="6"><span style="font-family: 맑은 고딕; font-size: 16pt; mso-ascii-font-family: 맑은 고딕; mso-hansi-font-family: 맑은 고딕;">김영범 목사</span></font></span><br></font><br><br><br /></td></tr></tbody></table>&nbsp; 2018-11-27 17:58:00 [논평] 서인천노회 임시회 결의, '절차에 하자 있다'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10 <p class="바탕글"><table width="26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26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0906/2009061152312556.jpg" border="0"></td></tr> </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 총회장 이승희 목사) 산하 서인천노회(최석우 목사)가 지난 26일 임시노회를 소집하고 성 추문 문제의 당사자인 김 아무개의 목사에 관해 사직을 처리하고 그의 부친인 김 아무개 목사의 제명을 처리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러나 이러한 노회결의는&nbsp;위법성 논란에 빠졌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치리회의 정체성 혼란에 커다란 파장이 일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모든 국민은 적법한 절차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가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되듯이 본 교단 역시 적법한 절차에 의해 치리를 받을 권리가 기본권으로 보장되어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불법을 범하였다는 말만 듣고 신분 지위에 대한 제재를 가하는 것은&nbsp;일반 시민 사회에서도 이를 용인하지 않는다.&nbsp;치리회는 충분한 조사와 심리가 적법한 절차를 통해서 처리하여야 한다는 것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와 장로회 정치의 기본 이념이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번 서인천노회의 임시회 결의가 과연 본 교단의 헌법과 장로회 정치의 기본원리를 적용하여 처리하였는지에 대한 문제를 살펴야 한다. 이는 전국 교회와 전국 노회가 치리회동일체 원리에 의해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과 같은 결정이기 때문이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서인천노회 임시노회 안건은 사전에 적법한 절차에 의해 노회에 청원했는가? 지교회 당회에서 노회에 안건 청원과 임시노회 소집청원은 전혀 다르다. 다른 지교회 목사 3인과 다른 지교회 장로 3인은 안건청원자가 아니라 이미 지교회 당회를 통해 노회 서기부에 접수된 안건에 대해 노회장에게 임시노회를 소집하여 달라는 청원자이며,&nbsp;이때 노회장이 임시노회를 소집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같은 절차에 의해 안건을 회원들에게 통지했는가를 살펴서 위와 같은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면 위법논란에 빠진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다음은 적법한 절차에 의한 안건 청원과 임시노회 소집청원에 의해 노회장이 회의목적(안건)을 명시하여 회원들에게 임시노회를 소집하는 공문을 발송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임시노회는 이미 통지된 회의목적인 통보된 안건만을 결의한다. 통지된 안건 외에는 결의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전에 통지된 안건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김&#12295;&#12295; 목사 제명 및 권징처리건, 둘째, &#12295;&#12295;&#12295;교회 담임목사(김&#12295;&#12295;) 조사건 이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같은 회의목적만을 결의해야 한다. 첫 번째는 처리할 수 없는 안건이다. 왜냐하면 이미 서인천노회가 제명처분을 하였기 때문이다. 제명처분이란 회원이 아니라는 처분으로서 회원명부에서 삭제됨을 의미한다. 회원 아닌 자를 회원으로 전제하여 처분하는 것은 위법이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만약에 제명 처분 당시 위법적으로 처분하였기 때문에 이를 원인무효하고 다시 면직을 처분하려면 어느 당회에서 재심을 청원하여 노회가 임시노회를 소집하여 먼저 이를 처리한 후에 다시 어느 당회에서 고소고발을 하든지, 치리회가 기소위원을 정하여 기소하게 하여 치리하든지 절차를 밟아야 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러나 이번 임시노회에서 이를 처리할 수 없는 것은 제명처분에 대한 재심에 대한 임시노회 안건에 없다. 임시노회 소집안건에 없는 건을 처리할 수 없다. 이미 제명된 김&#12295;&#12295; 목사는 회원이 아니므로 그 어떤 청원건도 받을 수 없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런데 총회 감사부 총무가 언권을 얻어 사직을 처리할 수 있다고 발언하여 자문을 해 주었다는 이야기가 확인되고 있는데 이 역시 위법이다. 사직이란 정치 제17장 제4조에 규정한 권고사직을 의미한 모양인데 이는 행정건으로 이 역시 임시노회 안건에 없는 사항이다. 따라서 이번 임시노회에서 사직처리를 할 수 없는데 할 수 있는 자문은 위법이다.<br><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둘째, &#12295;&#12295;&#12295;교회 담임목사(김&#12295;&#12295;) 조사건인데 조사건으로 임시노회 안건으로 통지해 놓고 결정은 제명으로 처분해 버렸다는 것은 위법이다. 제명은 사법건이다. 사법건으로 처리하려면 고소고발이 있든지, 치리회가 기소하여 처리하든지 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절차에 따라 심리를 하여 재판 판결로서 처분할 내용이 바로 제명건이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본인의 방어권도 주지 않고 제명을 처분해 버렸다는 것은 전형적인 위법이다. 이같은 위법성 이전에 이번 임시노회에서 처리하면 안 되는 안건이다. 임시노회 소집 안건대로 이번 임시노회에서 조사위원을 조직하고 이 위원이 조사한 결과를 추후 치리회에 보고하여 기소하여 재판여부를 결정하여 치리하여야 한다.<br><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만약에 총회 감사부의 총무의 발언이 감사부의 공식적인 견해라고 한다면(?) 감사부가 서인천 노회로 하여금 위법을 조장하였다는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감사부의 공식적인 견해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는 감사부가 그런 결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정당한 권징, 적법 절차에 의한 권징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권징을 통해서 하나님의 정의과 공의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권징을 통한 하나님 교회와 노회의 거룩성을 성경이 그토록 거부한 위법적인 방법으로 처리하면 안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서인천노회는 문제가 있고 위법적인 대상을 치리하고 처리하는 것은 교단헌법이 보장한 고유권한이다. 총회도 적법한 절차가 아니고서는 노회의 고유권한을 침해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고유권한은 적법한 절차를 준수할 때만이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이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소재열 목사(한국교회법연구소)<br> <br /> 2018-11-26 20:13:00 공동의회 : 소집 위한 비송사건 절차법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09 <br>교회 최고의결기관인 공동의회에서 결의하여야만 법적 효력이 발생된다. 그러나 공동의회 소집은 당회 직무, 즉 당회가 공동의회를 소집해 주지 아니하면, 그리고 담임목사가 소집해 주지 아니하면&nbsp;교인들은 자신의 의견을 모아 공동의회에서 결의할 수 있는 길이 차단된다.<br><br>이런 경우 교단헌법에 규정된 무흠입교인 3분의 1 이상의 요구로 공동의회 소집청원을 당회에 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회의 목적을 명시하여 당회에 공동의회 소집을 요구하였으나 2주이내에 소집해 주지 아니하였을 경우 법원에 청구하여 법원의 도움으로 임시총회인 임시공동의회를 소집할 수 있다. 이를 비송사건인 비송사건 절차법이라 한다.<br><br>민법 70조와 비송사건절차법 제34조에 의해 법률이다.<br><br><br><table width="329"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329" src="http://www.churchlaw.co.kr/imgdata/churchlaw_co_kr/201811/2018112229263253.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 한국교회법연구소</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 2018-11-26 15:30:00 공동의회 : 회의목적 공지 의무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08 <br>총회 소집은 1주간 전에 그 회의의 목적사항을 기재한 통지를 보내거나 기타 정관에 정한 방법에 의하여여야 하고(민법 제71조), 정관에 다른 규정이 없다면 총회는 위 절차에 따라 통지한 사항에 관하여여서만 결의할 수 있다(민법 제72조). <br><br>이는 사원이 결의를 할 목적사항을 사전에 알고서 회의 참석 여부나 결의사항에 대한 찬반의사를 미리 준비하게 하는 데에 그 취지가 있으므로 회의의 목적사항은 사원이 안건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도록 기재하여야 한다(대법원 2015. 2. 16. 선고 2011마101155 판결).<br><br><table width="431"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431"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1/2018112602402965.jpg" border="0"></td></tr></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소재열 목사(한국교회법연구소) &nbsp; &nbsp; &copy; 리폼드뉴스</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 2018-11-26 00:02:00 명성교회, ‘법률행위의 대표자 이상없다’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07 <p class="바탕글"><table width="381"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381"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1/2018111724163483.jpg" border="0"></td></tr> </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리폼드뉴스 </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예수 그리스도를 재판했던 빌리도의 재판 이래 2천년 동안 교회 역사를 보면 여론이 교회 정체성과 교회본질에 대한 최종 판단의 준거가&nbsp;아님을 입증해 왔고 오늘날에도 여론은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 여론이 기독교의 본질을 지켜주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는 모두 동의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명성교회의 법률행위의 대표자인 담임하는 위임목사에 대해서는 교회법, 교단법, 국가법에 의해 판단되어야 하며, 여론이나 상식적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장로회 정치원리는 교단헌법에 규정되어 있다. 명성교회가 소속된 ‘대한예수교장로회(총합)’의 교단헌법에 의하면 현재 담임하고 있는 위임목사는 교단헌법에 의해 적법한 대표자이다. 이는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최고 치리회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재판국에서 ‘문제 없다’며 명성교회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명성교회 은퇴목사인 김삼환 목사의 아들인 김하나 목사를 위임목사로 청빙을 하였고, 이는 총회헌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결의이기 때문에 그 하자는 중대하고 명백하다고 볼 수밖에 없으며, 결국 서울동남노회 결의는 당연 무효라고 주장하며 청빙무효확인의 소를 제기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러나 제102회기 총회 재판국(국장 이경희 목사)은 이같은 원고의 주장에 대해 ‘이유없다’며 기각판결을 하여 명성교회 손을 들어줬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같은 총회 재판국의 판결은 제103회 총회(2018. 9.) 보고하여 채용여부와 상관없이 총회 재판국이 판결한 시점이 곧 총회의 확정판결이 된다(헌법, 권징 제3장 제34조 제2항, "총회 재판의 판결은 선고한 날로 확정된다.") 따라서 현재 명성교회 법률행위의 대표자는 김하나 목사로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총회재판국의 확정 판결에 대해 재심은 엄격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절차적 정당성은 민주주의 핵심자치이며, 종교단체 역시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덕목이며, 더욱 신분와 지위에 대한 법률관계일 경우는 더욱 엄격하게 적법 절차의 정당성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확정판결에 대한 재심 청구 대상과 절차적 요건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미 대법원과 같은 총회 재판국이 판결로서 내놓은 판결결과에 대해 행정권으로 무효결의를 할 수 없다. 또한 재심을 취급하는 총회재판국의 구성과 조직이 적법하여야 한다. 적법한 절차적 요건은 교단헌법에 규정되어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대한예수교장로회 최고 치리회인 총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의 헌법에 구속된바 총회는 교단헌법을 준수하여야 적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교단헌법에 의하면 총회 재판국 구성은 총회 행정결정으로 15명(목사 8인, 장로 7인)이다(헌법, 권징 제2장 제10조). 재판국원의 임기는 3년이며 매년 임기가 종료된 3분의 1인 5명만을 새로 개선한다(헌법, 권징 제2장 제11조 제1항).<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 <br><p class="바탕글">그런데 명성교회와 관련하여 재판을 했던 제102회기 재판국원들의 임기가 아직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공천하여 임명했다. 이는 총회가 교단헌법의 정당한 적법 절차를 거부하였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법률적으로 개임(改任,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임명함)은 일반적으로 기존의 직에 있던 자가 그 직무를 수행함에 적당하지 않는 사정이 있어 그를 해임하고 새로운 자를 선임하는 행위라고 할 것인데, 임기가 남아있는 재판국원의 직무 집행의 적정성 내지 해임에 관한 절차를 이행하지 않고 새로운 재판국원을 임명한 것은&nbsp;개임의 실질을 가지지 못하였다고 볼 수 있다. 총회가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길은 없어 보인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특히 총회가 준수하여야 하는 교단헌법 권징편 제1장 제6조 제2항에 의하면 “재판을 받지 않고는 권징할 수 없다”는&nbsp;규정을 위반하였다. 임기가 종료되지 않는 재판국원을 권징(징계, 치리)으로 해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재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러한 교단 헌법적 규정을 위반하였으므로&nbsp;개임결의는 무효에 해당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마치 국회가 현 대법원 재판관을 무시하고 임의로 15명을 임명하여 재판하라는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이를 누가 적법하다고 하겠는가? 이런 형태가 위법이라고 한다면 총회의 새로운 재판국원의 임명은 역시 위법이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렇다면 명성교회 재심을 논해야 할 총회 재판국이 법적으로 정당한 절차에 의해 구성되었느냐 라는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다. 불법을 판단하는 총회 재판국이 불법적으로 구성되었다면 이는 통합 총회의 정체성과 법통성이 여지없이 훼손되고 무너진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명성교회 관련 총회의 확정판결에 대해 재심 사유 여부도 문제이거니와 재심을 하여야 하는 총회 재판국 역시 교단헌법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그 정당성이 입증되고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br><p class="바탕글">&nbsp;<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만약에 명성교회 관련 사건에 대해 총회재판국이 재심을 결정하기로 결의한다면 이는 총회 재판국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통합)’의 심각한 사법권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될 수 있다. 교단총회의 사법권이 무너지면 전국 교회를 통솔하는데 문제가 발생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명성교회가 소속된 서울동남노회 소집권자가 노회를 소집하여 회의를 주관하였지만 회의를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정회하여 산회를 선언했다. 그러나 김수원 목사 측이 속회하여 회의를 주관하여 일명 임원회를 조직하였다. <br><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러나 이 역시 상식적으로 접근하여서는 안된다. 정회를 선언한 후 속회는 적법한 소집권자에 의하지 않는 속회는 위법이다. 위법을 주장한 사람들이 위법적으로 노회를 속회할 경우, 이는 그동안 위법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져 버린다. <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마지막으로 통합 측 교단헌법은 지교회 담임하는 위임목사의 궐위시 소속노회가 직권으로 임시 대표자인 임시당회장을 파송할 수 있는 길이 없다. 따라서 노회가 직권으로 현재 담임목사를 부인하며 임시당회장을 파송할 권한이 없다. 즉 조직교회의 법률행위 대표자인 임시당회장을 직권으로 파송하지 못한다. 합동 측 헌법은 직권으로 파송할 수 있지만 통합 측 헌법은 지교회의 자율권 때문에 직권으로 파송하는 길을 교단헌법에서 변경하였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대법원이 지교회의 자율권과 교단총회의 자율권이 충돌할 때 교단총회의 자율권이 우선이라고 판시하였지만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지교회의 독립성과 종교의 자유원리에 반한 교단헌법과 총회의 자율권은 지교회의 자율권에 앞서지 못한다는 것이 판례입장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는 교단총회가 지교회에 전횡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소재열 목사(한국교회법연구소)<br><br> <br /> 2018-11-25 06:33:00 강남교회 정관변경 공동의회 적법성 여부 소송 중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8006 <p class="바탕글"><table width="578" align="center" border="0" cellspacing="3"><tbody><tr><td><table bgcolor="#666666"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tbody><tr><td bgcolor="#ffffff"><img width="578" src="http://www.reformednews.co.kr/imgdata/reformednews_co_kr/201811/201811032715903.jpg" border="0"></td></tr> </tbody></table><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tbody><tr><td style="color: rgb(255, 255, 255); line-height: 12pt; letter-spacing: -1px; font-family: verdana,굴림; font-size: 9pt;" bgcolor="#999999">▲ &nbsp; &nbsp; &copy;리폼드뉴스 </td></tr></tbody></table></td></tr></tbody></table><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대한예수교장로회 강남교회(고문산 목사, 예장합동)의 교회정관 변경을 위한 공동의회 결의가 적법했는지 여부에 대한 소송이 진행되고 있어&nbsp;그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서울에 소재한 강남교회는 2017. 7. 30.에 공동의회를 통하여 재적교인 3826명(재판부에 교회 측인 피고 측이 제출한 교인명부) 중에 365명이 출석하여 정관을 변경했다. 그러나 ‘공동의회결의무효확인청구의 소’를 제기하였으나 1심에서는 교회가 승소했다. 원고는 이에 불복하여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원심판결(1심)에서는 정관변경 결의에 대한 공동의회 의결정족수에 대한 심리가 없는 가운데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원고 측은 서울고법에 정관변경 의결정족수 충족 미달로 무효를 주장하며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며 선고일은 2019. 1. 11.로 예고 돼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원고 측은 대법원의 판례에 따라 교단탈퇴와 소속교단변경은 민법 제42조에 따라 사단법인의 정관 변경 규정에 준하여 의결권을 가진 교인 3분의 2 이상의 찬성 결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원고 측인 인용한 대법원 2008. 1. 10. 선고 2006다39683 판결 [공동의회결의무효확인]은&nbsp;원심파기환송 사건이다. 대법원의 원심파기 사유는 “원심판결에는 교단변경 등 결의의 요건과 확인의 이익에 관한 법리오해 및 심리미진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는 이유였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구체적으로 판례는 <font color="blue"><strong>“특정 교단에 가입한 지교회가 교단이 정한 헌법을 지교회 자신의 자치규범으로 받아들였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소속 교단의 변경은 실질적으로 지교회 자신의 규약에 해당하는 자치규범을 변경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약 지교회 자신의 규약을 갖춘 경우에는 교단변경으로 인하여 지교회의 명칭이나 목적 등 지교회의 규약에 포함된 사항의 변경까지 수반하기 때문에, 소속 교단에서의 탈퇴 내지 소속 교단의 변경은 사단법인 정관변경에 준하여 의결권을 가진 교인 2/3 이상의 찬성에 의한 결의를 필요로 한다(대법원 2006. 4. 20. 선고 2004다37775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그리고 이러한 법리는 교단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 교회가 특정 교단에 가입하기로 결의한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대법원 2006. 6. 9.자 2003마1321 결정 등 참조).”</strong></font>라고 판시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이상과 같은 원고 측의 주장에 피고 측(교회)은 위와 같은 대법원의 판례는 유추적용된 민법 제42조는 교단탈퇴에 관한 것이지 교회의 정관변경에 적용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러면서 “민법 제42조는 사단법인에 대한 규정으로 교회와 같은 법인 아닌 사단을 직접 규율하는 규정은 아니며, 위 판결에서 이 사건과 같이 정관의 내용을 일부 변경하는 것을 포함하여 법인 아닌 사단의 정관 변경을 무조건 민법 제42조를 유추적용해야 한다고 한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러나 민법 제42조를 유추적용한다고 하더라고 민법제42조(사단법인의 정관의 변경)인 <font color="blue"><strong>“①사단법인의 정관은 총사원 3분의 2이상의 동의가 있는 때에 한하여 이를 변경할 수 있다. 그러나 정수에 관하여 정관에 다른 규정이 있는 때에는 그 규정에 의한다.”</strong></font>라는 규정에서 단서 조항인 “그러나 정수에 관하여 정관에 다른 규정이 있는 때에는 그 규정에 의한다.”라는 규정에 따라 강남교회의 정관변경은 유효하다고 주장하고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구체적인 주장의 근거는 강남교회의 정관에 의하면 정관변경은 공동의회를 통해 처리하고 정관에 명시되어 있지 않는 내용은 총회헌법에 따른다고 되어 있으므로 총회헌법 공동의회는 과반수로 의결한다는 규정을 근거로 제시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따라서 전체 의결정족수가 아닌 출석한 투표수 과반수로 결의되었기 때문에 강남교회의 정관변경 결의는 유효하고 주장하고 있다.<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그러나 위의 사건에서 쟁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교회의 정관변경 결의는 민법 제42조에 유추적용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법인이 아닌 사단의 법률관계에는 민법의 법인에 관한 규정 중 법인격을 전제로 하는 조항을 제외한 나머지 조항이 원칙적으로 유추적용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판례입장이다(대법원 2011. 4. 28. 선고 2008다15438 판결 참조).<br><p class="바탕글"><br><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두 번째로 민법 제42조의 “그러나 정수에 관하여 정관에 다른 규정이 있는 때에는 그 규정에 의한다.”의 단서조항의 인정여부이다. 교단헌법의 교인총회격인 공동의회에서 의사 정족수 없이 출석한 회원으로 공동의회를 소집하여 출석회원(투표수) 과반수 찬성으로 규정하고 있는 데 이를 민법 제42조 단서조항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예컨대 교회 총유물권자들인 총 의결권자가 3,000명이라고 할 때 이중에 300명이 공동의회에 출석하여 이 중에 과반수인 151명 이상이 찬성할 경우 이를 정관변경에 대한 교인들의 총의라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관건이다.<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비법인 사단인 교회의 정관변경 결의 정족수가 민법 제42조를 유추적용되느냐의 문제와 유추적용될 때에 정관과 교단헌법에 정관변경을 의사정족수 없는 출석한 대로 소집된 공동의회에서 출석회원 과반수 찬성으로 정관을 변경을 할 경우 이에 대한 적법성 여부와 이를 공동소유의 총유물권자들로 구성된 지교회 교인들의 총의라 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br><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bottom: 1.6pt;">이같은 문제에 대한 인정여부가 이번 강남교회 정관변경 효력 여부에 대한 쟁점이 되고 있다. 이 문제가 이번 서울고등법원 제15민사 재판부의 판단과 이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적인 확정 판결 결과에 따라 본 교단(예장합동)을 비롯한 대부분 장로교단에서 정관변경에 대한 공동의회 의사의결정족수 문제가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br> <br /> 2018-11-24 23: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