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종교 철학적 접근의 위험한 현대신학

인문학적으로 성경에 접근하는 것이 이 시대 트렌드(trend)가 되고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흉내내어 인문학적으로 성경에 접근한다. 그리고 설교학의 방법론으로 접근하고 있는 추세다.

소재열 | 기사입력 2022/01/12 [04:53]

인문학, 종교 철학적 접근의 위험한 현대신학

인문학적으로 성경에 접근하는 것이 이 시대 트렌드(trend)가 되고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흉내내어 인문학적으로 성경에 접근한다. 그리고 설교학의 방법론으로 접근하고 있는 추세다.

소재열 | 입력 : 2022/01/12 [04:53]

▲     ©리폼드뉴스

 

(리폼드뉴스) 서철원 박사는 그의 교의신학 서론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 신학이란 어원적으로 하나님에 관한 학문(the science concerning God)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에 관한 학문으로서 신학을 정의하면 신학은 마땅히 계시에 기초해야만 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고 자기의 사역 곧 창조를 알리셨다.

 

자신이 창조주이시고 섭리주이심을 계시하였다. 또 창조를 통하여 자기의 영광과 권능을 계시하셨음 뿐만 아니라(19:16) 실제로 공포하셨다.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성문화된 문장의 형태로 주어졌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게르할더스 보스 박사 역시 그의 성경신학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비인격적인 대상들을 과학적으로 다룰 때는 검사하고, 실험하는 방법론을 사용하지만, 영적이고 인격적인 존재인 하나님에 관해서는 사정이 다르다. 그러한 존재가 스스로 자신들을 드러내어 알려주실 때에 한하여 우리는 그를 알 수 있다. 모든 영적인 생명은 그 본성상 감취어진 영역, 즉 닫혀진 영역인 것이다. 하나님의 내면적이고 감추어진 마음은 하나님 편에서 자의적으로 열어 보이실 때만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현대신학은 성경에 대한 신의 계시를 부정하므로 출발한다. 이는 예지계와 현상계를 구분하여 초월해 계신 초월자는 현상계에 계시할 수 없는, 계시의 가능성을 부정한 철학자 칸트의 우산 아래 있다. 개혁신학의 후예들은 현대신학의 접근방법에 대한 변증은 언제나 투쟁적이었다. 이는 과격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는 필연적이었다.

 

도울 김용욱의 철학적 방법에 따른성경과 기독교적 접근은 기독교의 근본정신을 해체한다. 철학적이고도 인문학적 방법으로 접근한 그의 종교와 성경 이해는 다분히 기독교 역사에서 이단으로 정죄 된 사상임이 틀림없다. 신구약 성경의 신적 계시와 역사적 예수에 대한 교리체계를 허물고 있다. 그는 예수의 십자가는 허구하고 주장한다. 그의 불교단체에 가서 강의한 내용은 기독교를 표적 삼고 있다.

 

예수의 신성을 거부한 그의 인문학적, 종교 철학적 접근에 의해 마가복음을 강의한다. 그가 택한 마가복음은 복음서 중에 가장 먼저 쓰였다는 의미보다 마가복음이 역사적 예수를 신으로 접근하지 않고 인간 예수로 접근하고 있다고 평가하여 예수를 민중의 혁명가라는 인문학적, 종교철학적 접근을 하고 있다.

 

인문학이나 종교 철학으로 신의 계시를 부정하여 기독교의 신적 권위를 가진 성경을 거부한 부류가 있다. 또 한 부류는 인문학적으로 계시에 접근하여 설명하려는 부류가 있다. 이들 모두는 한결같이 성경적 기독교를 위태롭게 하는 사상적 체계임이 틀림없다.

 

원래 인문학이란 학문의 한 분과로서 인간의 언어, 문학, 예술, 철학, 역사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 학문의 접근방식은 실험하고 관찰하는 자연과학의 영역보다 이성적 사색을 통해 연구대상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인문학적으로 접근하여 언어와 문학, 예술, 철학, 역사 따위를 이성적 체계에 의해 연구하면 하나님이 발견되는가? 이러한 접근방식으로 성경을 연구하면 하나님이 발견되는가?

 

인문학적으로 성경에 접근하는 것이 이 시대 트렌드(trend)가 되고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흉내내어 인문학적으로 성경에 접근한다. 그리고 설교학의 방법론으로 접근하고 있는 추세다. 마치 이러한 학문과 설교의 방법론이 가장 고상한 학문적인 접근방법인 줄 착각하지만, 이는 기독교를 현혹한 것임은 분명하다.

 

인문학적, 혹은 종교 철학적으로 구약성경에 접근하면 모세 율법은 수메르 시대의 우르남무(Ur-Nammu)의 법전과 기원전 1800년의 함무라비 법전에 영향을 받은 것에 불과한 것일 뿐 독특한 계시의 측면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개혁신학은 성경계시가 기록될 당시의 언어, 문학, 예술, 철학, 역사라는 맥락과 배경 속에서 살피되 이를 인문학적 접근방법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성경에 대한 접근방식은 서철원 박사가 언급한 대로 인문학적 접근이 아니라 하나님에 관한 학문은 계시 중에서도 특별계시 중심이어야 한다. 이를 이성적 사색의 냄새가 난다는 계시 의존 사색이라는 용어보다 계시의존 신앙으로 표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혁신학자들은 자연계시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연’(自然)이란 근본 원인이 하나님이 아닌 스스로 말미암아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언제나 창조, 혹은 세상에 있는 갖가지 모든 것을 의미한 만물’(萬物)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자연세계가 아닌 창조세계’, 혹은 만물세계’, ‘피조세계라고 표현한다. 이런 이유로 자연계시라 하지 않고 창조계시’, 내지 일반계시라고 한다.

 

성경과 설교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방법은 결국 자연계시에 도달하게 되며, 이는 이신론(理神論) 주의자에 이르게 된다. 이들에 의하면 성경의 사도 바울 역시 아라비아에서 3년 동안 수도를 통해 자신이 창안한 바울 종교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기독교라는 주장은 기독교를 파괴한 전술 전략이다. 그런 사람을 교회에 초청하여 강의를 듣는다. 그런 교회는 도대체 어떤 교회로 분류해야 하는가?

 

이러한 교회들이 한국교회를 대표한 것처럼 보이려는 온갖 술수는 결국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해당 교회가 어떤 교단에 소속되었는가를 보아야 한다. 물론 우리가 쉽게 하는 말이 교단이 구원해 주는가라는 질문이 있다. 물론 교단이 구원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한국교회는 여전히 신적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 이를 전제하지 않으면 신학과 신앙이 불가능해진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기에 신의 계시로 접근하면 안 되고 인문학적, 종교 철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인문학적으로 성경과 설교에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 자들을 조심해야 한다. 기독교의 복음을 더 이상 해체시켜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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