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는 새로운 영적 부흥의 예고 '섭리와 역사'

역동적인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해야 한다.

소재열 | 기사입력 2022/01/01 [20:09]

코로나19 사태는 새로운 영적 부흥의 예고 '섭리와 역사'

역동적인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해야 한다.

소재열 | 입력 : 2022/01/01 [20:09]

 

  © 리폼드뉴스


(리폼드뉴스) 대한예수교장로회는 1517년 종교개혁을 통하여 개혁된 교회의 반열에서 정리된 신학적 입장에 따라 오늘에 이르고 있다. 1517년 이전의 역사 속에서 각 공의회인 종교회의에서 확정된 교리를 발판으로 정통교회의 기준으로 삼는다. 정통교회는 성경의 신적 권위, 그 성경에 의한 신지식인 삼위일체와 성육신 교리,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신칭의 교리를 터잡아 오늘에 개혁교회가 서 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신지식의 근거는 신적 권위를 가진 특별계시의 기록인 성경에 근거하고 있다. 이제 그 성경을 통해서만 신지식과 구원의 도리, 역사의 현 상황을 설명할 수 있다. 그 역사적 상황이란 바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사태이다.

 

1517년 종교개혁 이전까지의 정통교회와 그 이후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정립된 개혁신학은 세계로 전파되어 확산하였다.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스코틀랜드, 미국 등 세계로 확산하였다. 오늘날의 한국장로교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헌법이 미국으로 건너가고 미국의 선교사들이 한국에 내한하여 동일한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고 공회를 조직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결국 한국 장로교회는 이러한 사도시대 이후 정통교회와 종교개혁 이후 개혁신학에 근거한 성경관, 신지식, 구원에 대한 교리로 형성되었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축복은 경제적인 부흥도, 교회 성장의 열매도 아닌 오직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고한 믿음이다. 이 믿음은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신앙의 원리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러한 믿음은 최대의 축복이다. 성경이 신적 권위를 가진 사실이 부정되거나 약화될 때 우리의 신앙도 교회도 무너진다. 신지식에 대한 근거인 신적 계시의 말씀인 성경이 무너지면 성경계시와 그로 인한 신지식에 기초한 교회도 무너진다.

 

우리들의 신앙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받는다”라는 것도 성경의 신적 권위와 삼위일체의 신지식이 무너지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주장이 되고 만다. 결국 기도 운동을 전개하려면 성경의 신적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을 주지 아니하면 그 기도 운동 역시 인간의 종교심을 발동한 종교적 열심에 불과하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성경으로 돌아가는 일이 선행되지 않고는 그 시대 부흥을 선도해 가지 못했다. 인간의 종교적 말초신경을 자극하므로 길흉(吉凶)의 문제를 신에게 뇌물을 바치므로 해결하도록 선동하는 것은 기독교의 참모습은 아니다.

 

이제 신자들이, 자기반성의 능력과 역사에 대한 해석 능력을 함양시켜줌으로 역동적인 기독교의 참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로마제국의 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1737-94)은 “개별 교회들의 입법 권한이 점차 공의회에 의해서 대체되어감에 따라서 주교들은 서로 동맹을 맺어 훨씬 강력한 집행권과 자유 재량권을 가지게 되었다”라고 했다.

 

또한 “주교들이 서로 공동의 이해관계로 결속하게 되자 그들은 단결된 힘으로 원래의 성직자 및 주민들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교권이 발전함에 따라 종전의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던 평신도와 성직자의 확연한 구별이 나타나게 되었다”라고 보았다. 이 평신도는 “그리스도교 교인 전체를 포함”하였으며, 성직자라는 명칭은 “종교의식을 위해서 특별히 선정된 사람”이라고 했다. 성직자들은 “포상과 처벌”이라는 “가장 유효한 통치 수단을 행사하였다.”라고 했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이제 성직자가 평신도로 일컬어지는 교인들을 무지하게 하여 우민정책으로 교권을 행사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교회는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고 운영의 규범들 전부를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 신의 이름으로 무차별적인 협박과 공갈은 그쳐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쳐서 신비적인 믿음의 요소와 그 근거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한국교회 초기 선교사들의 교육정책 중의 하나인 ‘사경회’ 제도가 바로 이를 증명한다.

 

한국교회는 일제 강점기 고난의 역사와 1950년 6ㆍ25 전쟁으로 인한 환난을 겪었다. 이 전쟁은 3년간 지속되었다. 전쟁이 휴전되는 상황인 1954년 10월에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을 이끌어 가고 있던 박형룡 박사는 6ㆍ25 전쟁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신학적으로 설명해 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즉 이러한 불행한 역사를 신자들과 교회에 어떻게 설명하고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신학적 견해가 필요했다.

 

박형룡 박사는 이러한 문제에 답변하기 위하여 “섭리와 역사”라는 논문을 1954년 10월에 <신학지남>에 발표하였다. 그 내용에 첨가한 확장된 논문을 1964년 12월 <신학지남>에 재발표한 후 이를 그의 <교의신학> 제2권 신론 제6장 섭리란에 자리잡게 되었다. 박형룡 박사는 이 논문에서 “우리는 역사상의 만사에 하나님의 섭리가 움직임을 믿는 동시에 큰 사변들에 그의 특별섭리가 움직임을 특별히 주목하여 보게 된다”라고 했다.

 

그는 “성경은 역사상에 하나님의 비상한 행동들을 많이 들어 보이는 동시에 ‘사실들’로부터 미숙하고 경솔한 추측들을 인출(引出)하는 일에 경고를 말한다”라고 언급한다. 그러면서 “역사의 단편들은 하나님 자신의 계시에 의하여 해석되지 않는 한, 우리는 그것들의 의미가 직각적으로 우리에게 자명한 것처럼 일의 전후 관계를 전부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설명을 시도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특히 “성경계시의 말씀을 가지고 역사적 사변들을 해석하는 일에도 자주 주관적 이기적인 방면으로 경향하여 오해에 들어가기가 쉬우니 항상 경계하지 아니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하나님의 특별 섭리를 쉽게 해석한 사례로 일부 신학자들이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의 주로서 우리의 곤란한 운명에서의 우리의 지도자와 구주로 아돌프 히틀러를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감사 만만하노라”라며 “그(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라는 역사적 사변들처럼 자신들의 유리한 입장에서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해석을 일제 강점기에 해 왔다.

 

최선의 방도는 “교회 시대에도 계시 시대에 들린 특별계시의 음성이 성경에 녹음되어 있으니 그 말씀에 대한 참 신앙을 가지고 역사적 사변들의 참뜻을 탐지하기에 노력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결국 “이적, 비상 사변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를 정해함에는[바르게 이해함에는] 계시의 말씀을 믿는 신앙이 요구된다”라는 말씀으로 결론을 맺고 있다.

 

6ㆍ25 전쟁의 참혹한 시대 속에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고 섭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성경 말씀을 통하여 바르게 이해하는 길만이 환난을 극복해 갈 수 있다는 주장의 논문이다. 이러한 논문을 발표한 다음 해인 1955년 10월에 <신학지남>을 통하여 ‘로마가톨릭 이적 설화’에 대한 논문에서 “이적들은 성경 역사상의 특별계시를 확증하기 위하여 주어졌고 그 계시가 끝난 때에 이적도 끝났다고 하는 것은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일반 교리이다”라며 서론을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교회는 “하나님은 매 시대에 많은 이적을 행하시기를 기뻐하셨다”라고 주장한 사실을 적시하며 그들의 이적 오인과 거짓 이적 치병을 비판하고 있다.

 

칼빈이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장로교회는 특별계시를 위한 이적은 특별계시의 종결과 더불어 중단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박형룡 박사는 “피선교지 교회 가운데서 발생한 그 특별 혹 이상한 일들은 대부분이 기도 응답에 따르는 특별 섭리의 결과일 수 있고 그밖에 특별 혹 이상한 일들도 성경 역사상에 있는 이적들과 동등한 무엇은 아닐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종합하면 성경에 기록된 각종 이적들은 특별계시를 위한 수단으로써 이적이며, 특별계시가 66권으로 종결된 후에는 특별계시 수단으로서 이적은 이제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도 응답으로 인한 하나님의 특별 섭리의 결과로 이적과 같은 놀라운 일들이 있을 수 있다. 이러나 이러한 이적을 특별계시의 수단으로 주신 이적과 같은 성격의 이적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기도하는 주의 종들에게 이러한 놀라운 기적과 같은 일들이 있다.

 

이제 우리의 시선을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로 눈을 돌려보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로 인한 고통은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이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 신자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여야 하는가? 오늘날의 역사 현장에 등장한 이러한 질병에 대한 해석은 결국 하나님의 섭리일 수밖에 없다. 어떤 섭리인가? 그 섭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믿음의 근거가 되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님은 앞을 보지 못한 환자에 대한 해석에서 그 책임에 대한 문제인 “누구의 책임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본인의 죄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모든 질병을 본인의 죄에 대한 책임으로 일반화 시켜 적용하여 해석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모든 사람의 질병은 본인의 죄와 무관하다고 해석할 수도 없다. 이처럼 역사상에 일어난 각종 사변들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이때 가장 이해하기 좋은 것은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이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들의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은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대로 움직여 간다고 믿는 믿음이다.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주권대로 움직여 간다면 현재 내 주변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적 사건들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하나님의 섭리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환난 속에서 신앙적 신비적 요소를 거부하거나 이러한 가운데 감염증으로부터 치유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특별 섭리의 역사적 현장에서 살아간 우리는 기도 응답으로 기적과 같은 놀라운 일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믿음은 이 난관을 이겨낼 수 있다.

 

우리의 본능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은 우리의 한계상황을 극복하게 해 주실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확인되어야 한다. 결국 이러한 고난을 극복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풀어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중요성과 강조점보다 기도하는 인간의 종교적 행위와 감정만을 내세워 이 고난의 현장을 극복하겠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필자는 이제 이 이야기의 결론을 맺으려 한다. 2022년은 여전히 지난 2년 동안 이어져 왔던 코로나19 사태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쉽게 어느 날 갑자기 이 질병이 정복되었다는 소식을 듣지는 못할 것이다. 이러한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신비적 신앙의 힘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단순히 지정된 공간인 지정된 예배당에서만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로 싸울 이유는 없다. 예배당에서도 함께 할 뿐이다.

 

신적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는 우리가 믿은 하나님은 특정 장소에만 국한되어 나타난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특정 장소에서만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특정 장소의 절대화를 말하지 않는다. 장소적 예배의 구원개념을 가진 유대인들과 이슬람은 특정 장소를 ‘순례’해야 한다. 구원을 장소적 개념으로 본 것이다. 

 

역으로 코로나19 사태는 새로운 영적 부흥을 예고한다고 보면 틀림없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영적으로 피폐해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비적 영적 이적과 같은 하나님의 특별 섭리를 더 강하게 설명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인간 본성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마음 저변에 역동적인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교회가 취해야 할 실천 방안이라 할 수 있다.

 

소재열 목사(리폼드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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