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철 박사 신학논단] 종교개혁과 성경해석

성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믿음과 그 고백의 겸손과 담대함이 오늘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다.

정규철 | 기사입력 2021/11/23 [21:09]

[정규철 박사 신학논단] 종교개혁과 성경해석

성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믿음과 그 고백의 겸손과 담대함이 오늘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다.

정규철 | 입력 : 2021/11/23 [21:09]

 

▲  정규철 박사   ©리폼드뉴스

 

(리폼드뉴스) 504주년 종교개혁기념일을 보내면서 종교개혁과 성경해석을 연관 짓는 것은 퍽 의미가 있다고 본다. 종교개혁의 가장 기본적인 동기는 성경해석의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개혁은 성경해석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위대한 종교개혁가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였고 칼빈이 성경의 가르침을 「기독교강요」로 정리하고 성경을 주석한 것은 모두 성경해석과 관련이 있다. 성경해석의 관점에서 볼 때 종교개혁의 배경과 종교개혁의 원리는 무엇인가? 

 

1. 종교개혁의 배경

 

(1) 성경해석의 타락과 외경

 

  ‘해석학’을 뜻하는 ‘헬메뉴틱스’(hermeneutics)는 ‘헬메뉴오’(ερμηνευω)에서 유래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단어가 헬라 신화의 헤르메스(Hermes)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다. 날개 달린 헤르메스는 제우스 신의 메시지를 인간에게 전달하는 신으로 알려졌다. 헤르메스의 사명은 인간의 세계와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의 의미 연관을 인간의 세계에서 이해되는 의미로 옮겨 주어야 했다. 그래서 헬라인들은 인간의 이해능력이 의미를 파악하고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인 언어가 헤르메스의 덕택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 헤르메스라는 단어가 바로 사도행전 14:12에 언급되었다는 사실이다.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선교할 때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자에게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있음을 보고 바울이 큰 소리로 “네 발로 일어서라” 하니까 그 사람이 일어나 걷게 되었다. 이것을 본 루스드라 사람들은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그들 가운데 내려온 것으로 알고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들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였다.”

 

  따라서 헤르메스와 관련하여 성경해석의 기본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메시지의 핵심은 사도 요한의 복음서 기록 목적에 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종교개혁은 중세교회가 성경해석을 바르게 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메시지를 잘 전달하지 못하니까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종교개혁 이전 고대교회 500년과 중세교회 1000년을 합하여 거의 1500년간은 소위 5중 해석과 4중 해석의 바다에 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세계 최초로 풍유적 해석을 시도한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풍유적 해석이 전적으로 성경해석의 중요한 원리로 시행된 시기는 하나님의 계시가 중단된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였다. 신구약중간기에는 과도한 풍유적 성경해석의 등장만 아니라 헬라 철학의 본격적인 발흥과 불교의 석가와 유교의 공자의 출현도 있었다. 아울러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가 부재한 가운데 유대인들의 신앙을 격려하려는 외경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대와 중세의 교회에서는 헬라철학을 응용한 풍유적 성경해석과 더불어 외경을 정경에 포함시켜 성경해석을 도모하였다. 그리하여 성경의 본래 메시지가 충실하게 전달되지 못하였다. 예를 들어 유명한 단테의 「신곡」(La Divina Commedia)은 비성경적 연옥교리의 흔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스콜라 신학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켄터베리의 안셀무스가 자연신학적 관점을 드러낸 「모놀로기온」과 「프로슬로기온」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은 사람이 되었는가?」 (Cur Deus Homo)라는 책에서 하나님의 성육신 인격과 속죄를 논한 것은 특별한 일이다.

 

그렇지만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리스의 철학을 응용하여 「신학대전」을 저술하면서 철학을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철학이 신학의 시녀가 아니라 오히려 신학이 철학의 시녀가 되게 했다. 이 같은 성경해석의 왜곡은 종교개혁에 빼놓을 수 없는 배경이라 할 수 있다.

 

(2)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중세에는 성경해석의 타락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성경해석의 타락은 교회의 타락도 가져왔다. 보카치오의 소설 「데카메론」(Decameron)은 당시 사람들의 타락을 고발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데카메론」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페스트’였다. 쥐벼룩이 옮긴 이 질병은 14세기 유럽을 강타했다. 이 병이 흑사병(黑死病)으로 번역된 것은 시신이 검게 변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유럽 인구가 1억 명 정도였는데 페스트가 만연하면서 희생자가 2500만 명이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유럽의 4분의 1이 원인도 모르고 치료 방법도 모르고 죽어갔다.

 

보카치오 (Giovanni Boccaccio, 1313-1375)는 사생아로 체르탈도라는 고장에서 출생하였다. 피렌체에서 아버지의 업을 익히는 한편 초보적인 교육을 받았다. 14세 때에 장사를 배우기 위해 나폴리로 보내졌는데 보카치오는 “그 6년간은 시간 낭비 외에 얻은 바가 없었다”고 말하였다. 새로 6년간을 법학 연구에 보냈으나 별로 공부는 하지 않고 문학에 대해서는 열심히 독학을 하였다.

 

보카치오는 1349년에 그의 아버지가 피렌체에서 유행한 흑사병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가족을 모두 잃게 되었고, 생업을 위해 피렌체시의 공무원이 되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카치오는 「데카메론」을 저작했다.

 

「데카메론」은 헬라어로 ‘데카 헤메라이’(deka hemerai)인데 열흘을 의미한다. 이 작품은 흑사병이 퍼진 피렌체를 탈출하여 2주 동안 피에솔레의 별장으로 온 7명의 젊은 여성들과 3명의 남성들이 매일 한 가지씩 이야기한 내용이다. 14일이지만 토요일과 일요일을 빼고 나면 10일이 된다. 10일간 10명이 매일 이야기 하나씩 하였으니까 100개의 이야기가 된다.

 

  첫째 날 첫 번째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차펠레토는 고리대금업과 각종 위조업을 하여 사리사욕만 탐하는 악인이다. 그가 죽기 전에 큰 속임수를 하겠노라고 공언한다. 그는 이름난 성직자를 불러 매우 큰 죄를 범했다고 고백하고는 사소한 죄를 말했다. 예를 들어 신성모독을 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너무나도 큰 죄를 지어 부끄럽다고 하면서, 성당 바닥에 침을 뱉은 적이 한 번 있다고 답했다. 그의 도덕 기준이 아주 높고 성격이 매우 결백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에 성직자는 크게 감동받고, 차펠레토가 죽은 후 성자로 널리 소문이 나도록 했다. 차펠레토의 속임수에 놀아난 당시 교회의 무능과 타락을 고발한 풍자이다. 

 

이처럼 성경해석의 타락은 중세교회의 무능과 타락으로 이어졌고, 종교개혁의 한 계기가 되었다. 

 

2. 종교개혁의 원리 

 

종교개혁자들은 고중세교회에서 약 1500년간 진행된 다중적 풍유적 성경해석을 개혁하여 기독교의 위대한 유산이 되게 했다. 성경해석의 개혁이 종교개혁을 낳았다.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연구하고 해석하는 가운데 두 가지 중요한 원리를 발견했다. 

 

(1) 형식적 원리: 성경의 권위

 

거대한 성경해석의 개혁에 앞장선 대표적 인물은 루터와 칼빈이다. 루터(1483-1546)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위업을 이루었다. 루터가 4년간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연구하면서 고대와 중세의 성경해석 방식을 버리고 성경의 문자적 해석 방식에 집중하였다. 그가 발견한 것 중 하나는 고해성사(penance, poenitentia)인데 헬라어로 메타노이아(μετανοια)였다. 이 단어를 자세히 보니까 라틴어(penance)와는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원어 연구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의 원동력이 되었다. 칼빈(1509-1564)은 성경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그 유명한 「기독교강요」를 저술하였고 성경 대부분을 주석하고 설교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이 말하는 성경의 권위는 가톨릭이 말하는 교회의 권위를 능가한다. 천주교가 말하는 교회의 권위는 교황의 권위이며 주교회의의 권위이다. 그러나 성경의 권위는 교회의 권위도 능가하는 최고의 권위이다. 이러한 성경의 권위가 종교개혁의 형식적 원리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외경을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고 신구약 66권만을 정경으로 인정하였다. 외경이 정경이 아닌 것은 외경의 저자들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경의 기록자들은 신구약 중간기에 하나님의 계시가 없던 시기에 신자들의 경건 생활에 도움을 주고자 외경을 저술하였다. 하나님의 계시가 없었던 중간기에 외경들이 등장하여 성경해석에 막대한 오해와 타락을 가져왔다. 아직까지도 로마 가톨릭(73권)과 성공회(80권)와 정교회(77권)는 외경을 포함시켜 그들의 정경으로 삼고 있다. 외경을 포함하였기 때문에 성경해석에도 영향을 주어 성상과 성화 숭배를 교리화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성상과 성화 숭배는 제2계명 위반을 초래하여 하나님의 질투를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출 20:4-6).  

 

성경의 권위는 당연히 성경무오를 전제한다. 현대에 오류를 나타내는 영어단어는 두 가지가 있다. ‘Inerrancy’와 ‘Infallibility’이다. ‘Inerrancy’는 신앙의 영역과 과학과 역사에도 오류가 없는 것을 의미하고 ‘Infallibility’는 신앙의 영역에는 유류가 없으나 역사와 과학의 영역에는 오류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오늘날 성경무오를 말할 때는 ‘Inerrancy’를 의미한다 (마 5:18, 요 10:35, 딤후 3:16 등). 그런데 근대의 슐라이어막허와 현대의 바르트, 틸리히, 불트만 등은 이러한 성경무오를 부정하여 비성경적이고 반기독교적이며 인본주의적인 신학을 전개하였다.

 

(2) 실질적 원리: 이신칭의

 

  종교개혁의 이신칭의는 로마 가톨릭에서 믿음과 선행으로 의로움을 얻어 구원받는다는 교리를 배격한다. 이신칭의 교리는 루터가 갈라디아서 연구를 통하여 확신한 복음이다 (갈 2:16). 이신칭의 교리는 선행이나 인간의 공로가 전혀 없이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믿음으로써만 의롭다 함을 얻음을 의미한다. 

 

이신칭의에서 믿음은 우리가 주일마다 고백하는 사도신경에 요약되어 있다. 사도신경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의 삼위일체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이다. 물론 사도신경은 니케아 신경과 콘스탄티노플 신경과 칼케돈 신경을 통해 그 의미를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사도신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사도신경을 더 요약한다면 주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사도신경 정도의 신앙고백이 없이는 의롭다 함을 못 얻고 구원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이시고 구속 사역을 하신 분으로 믿고 고백할 때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어 영원한 구원 곧 영생을 얻을 것이다 (롬 10:10).

 

의는 하나님 앞에서의 생존권이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기 때문에 누구든지 의가 없이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흠도 없고 티도 없는 의로움이 있어야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고 절대적으로 의로운 나라인 천국에서 살 수 있다. 

 

우리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했기 때문에 자신의 노력과 선행으로 천국의 의에 이를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성육신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믿음으로써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완전히 사함받고 의를 선물로 받아 영생에 이를 것이다. 영생을 얻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는 그리스도의 후사까지 될 것이다.

 

이러한 이신칭의 교리는 성경의 복음이다. 이신칭의 교리는 종교개혁자들이 창안한 것이 아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미 성경에 기록된 이신칭의 복음을 발견하여 공표한 것뿐이다. 이렇게 이신칭의의 복음을 교회가 이해하여 공표하기까지는 기독교 역사에서 1500년이나 흘렀다. 더구나 이신칭의의 복음선포와 관련하여 소위 신구교의 갈등은 독일(1618-1648)과 프랑스(1562-1598) 등에서 소위 30년 전쟁까지 일어나서 약 800만 명이 희생되었다. 그러니까 이신칭의의 복음이 우리에게 전달되기까지는 수많은 피 흘림의 순교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이신칭의의 복음은 여전히 유대교와 로마 가톨릭의 반대를 받고 있다. 유대교 출신들의 ‘바울의 새관점학파’는 교묘하게 이신칭의를 부정하고 있다. 이미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 성경의 권위와 이신칭의 교리를 이단으로 규정한 로마 가톨릭은 제2 바티칸 공의회(1962-1965)에서 ‘타종교와의 대화’라는 명목으로 기독교를 아예 해체하는 교리를 수립하여 시행하고 있다. 웨슬리 신학도 믿음과 행위로 말미암은 구원을 강조하여 이신칭의의 복음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세계교회협의회(WCC)도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고 이신칭의를 부정하여 전통적 정통적 기독교를 해체하고 있다.  

 

그렇지만 성경의 권위와 이신칭의 복음은 성경의 내용으로서 성경 메시지의 전달이다. 성경해석은 성경의 내용을 가감 없이 전달할 뿐이다. 종교개혁의 성경해석은 성경의 권위와 이신칭의로 교회와 세상에 성경의 복음을 그대로 전했다는 점에서 매우 위대한 일을 하여 인류에 엄청난 유익을 가져왔다. 그러므로 현대의 사상이라는 미명과 타종교와의 대화라는 슬로건으로 성경의 권위와 이신칭의 복음을 너무 쉽게 무시하지 않고 성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믿음과 그 고백의 겸손과 담대함이 오늘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다. 

 

정 규 철 목사(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역임,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및 이사, 예수인교회 협동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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