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칼빈(John Calvin), 그리스도의 부활

김순정 | 기사입력 2021/04/03 [15:18]

존 칼빈(John Calvin), 그리스도의 부활

김순정 | 입력 : 2021/04/03 [15:18]

  

 

▲ 장 칼뱅(프랑스어: Jean Calvin, 1509년 7월 10일 - 1564년 5월 27일)   ©리폼드뉴스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말씀의 사역자, 성령의 사역자라는 별칭이 붙은 인물이다. 그는 1000년 이상 중세교회가 말씀에서 벗어난 길을 가자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복하도록 종교개혁을 완성했다. 고전어인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에도 능통하여 강단에서 설교할 때 히브리어, 헬라어 성경만 놓고 설교를 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교부신학에도 능통했다. 그래서 당대 그 어떤 학자들과 논쟁에서도 결코 막힘이 없었다. 그는 법학을 전공하여 법리와 논리에도 능통했다.

 

그런 그가 저술한 기독교강요성경주석은 그의 신학 사상을 탁월하게 보여준다. 칼빈 이전의 그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교리 체계를 기독교강요에서 분명하게 드러내 주었다. 이를 바탕으로 칼빈은 성경 전체를 주석해 나간다. 성경해석의 안내서와 같은 것이 바로 기독교강요였다. 그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이 작업을 해 나갔고, 그의 사역을 진행해 나갔다.

 

이제 한국교회는 부활주일을 맞이했다. 부활주일에 교회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 것인가? 누구를 기억해야 할 것인가? 부활주일에 교회는 누구를 예배하고 전해야 할 것인가? 종교개혁자 칼빈이 기독교강요II16장에서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자 이 글을 소개해 본다.

 

십자가와 죽음*

 

부활이 없으면 우리가 지금까지 말한 것이 완전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과 매장에서 나타난 것은 무력함이다. 그래서 믿음은 이 모든 것을 초월해 그 완전한 힘을 얻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해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며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대로 배상을 치르고 저주가 제거되며 벌을 완전히 받았기 때문에 우리 구원이 완전히 실현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죽음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되었다고 한다(벧전 1:3).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죽음에 대한 승리자가 되신 것 같이 우리의 믿음이 죽음을 이기는 것도 오직 그의 부활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우리의 범죄 때문에 죽음을 당하셨고 또한 우리의 의롭다 함을 위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는 바울의 말(4:25)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성격을 더 잘 표현한다. 그 뜻을 바꾸어 말하면 그가 죽으심으로서 우리 죄가 제거되고 그가 부활하심으로서 의사 소생하며 회복되었다는 의미이다.

 

부활과 회복

 

그 자신이 죽음에 굴복해 버리셨다면 어떻게 죽음으로 우리를 죽음에서 해방하실 수 있었겠는가? 그 자신이 싸움에 지셨다면 어떻게 우리를 위해 승리를 얻어 주실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구원의 내용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나누어 그의 죽음에 의해 죄가 말소되고 죽음이 말살되었고 그의 부활에 의해 의가 회복되며 생명이 소생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부활의 덕분으로 그의 죽음은 우리 안에서 그의 능력과 효력을 나타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 자체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었다고 한다(1:4). 그 때에 그가 드디어 하늘의 권능을 나타내 보이셨고 이 권능은 그의 신성을 분명히 반영하는 거울인 동시에 우리의 믿음을 굳게 지탱해주기 때문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다른 데서도 바울이 그는 육신이 약하심로 고난을 받으셨으나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 나셨다고 같은 뜻으로 가르친다(고후 13:4). 같은 의미에서 바울은 다른 곳에서 완전성을 논할 때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을 알고자 함이라고 말하고 바로 계속해서 그의 죽음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라고 첨가한다(3:10 의역). 이와 긴밀하게 일치하는 것이 베드로의 언급이다. “하나님이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셔서 우리의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다”(벧전 1:21 의역).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해 지탱이 되는 믿음이 흔들린다는 것이 아니라 믿음 아래서 우리를 지켜주는 하나님의 권능이 특히 부활에서 나타났다는 뜻이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죽음만이 화제에 오를 때마다 동시에 그의 부활에 속한 일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또 부활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부분으로 전체를 대표하는 이 표현법이 적용된다. 즉 죽음과 별도로 부활이 화제에 오를 때마다 우리는 그것은 특히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한 일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부활하신 중보자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사심으로 승리자의 상을 타셨으므로 즉 부활과 생명이 있게 하셨으므로 바울이 만약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 마음에 정착되지 않는다면 믿음이 폐하고 복음이 허망하리라(고전 15:17 의역)고 주장한 것은 바른 것이다. 따라서 그는 다른 구절에서 정죄가 일으키는 공포심에 대항하여 그리스도의 죽음을 자랑한 후에 더욱 역설하는 의미로 확실히 죽은 이가 다시 살아나셨고 우리의 중보자로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다고 첨가한다(8:34).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육을 죽이는 일은 그의 십자가에 첨가하는데 달렸다고 우리가 이미 설명한 것같이 우리는 그의 부활에서도 거기 부합하는 혜택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니 이는 그의 부활에 참여하여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함이라고 사도는 말한다(6:4 의역). 따라서 다른 구절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사실에서(3:3) 우리는 지상에 있는 우리의 지체를 죽여야 한다는 증명을 얻어낸다.

 

영생불사의 육신

 

또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근거로 우리는 지상의 일이 아니라 위에 있는 일을 구해야 한다고 추론한다(3:1-2). 이런 말은 우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새로운 생명을 추구하라고 권고할 뿐 아니라 우리는 그의 권능에 의해 중생하여 의를 얻었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그의 부활에서 셋째 혜택도 받는다. 즉 그의 부활이 실증하는 일종의 보증을 받아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활에 대한 확신을 얻는다. 바울은 이 문제를 고린도전서 15:12-26에서 자세히 논한다.

 

또한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고 하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이 말은 그의 죽음과 부활의 진상을 표현한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는 다른 사람들이 자연히 죽는 것과 같은 죽음을 겪으셨고 그가 죽을 인간의 육신으로 영생 불사를 받으셨다는 것이다.

 

*소제목은 필자가 첨가한 것임

 

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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