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드 클라우니(Edmund P. Clowney), 성경신학이란 무엇인가? (2)

김순정 | 기사입력 2021/03/27 [11:46]

에드먼드 클라우니(Edmund P. Clowney), 성경신학이란 무엇인가? (2)

김순정 | 입력 : 2021/03/27 [11:46]

  

 

E. 클라우니(Edmund P. Clowney)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출생하여 휘튼대학과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예일대학교, 휘튼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개혁신학자인 메이첸이 세운 정통장로교회에서 안수를 받고 목회를 하다가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실천신학 교수와 총장으로 활동하였다. 이 글은 그의 저서인 Preaching and Biblical Theology에 기록한 된 것으로 요약 소개해 본다.

 

계시와 영감의 원리들*  

 

성경의 일관된 메시지를 끊임없이 제공받지 않는 한 성경신학이란 말 자체가 하나의 모순일 수밖에 없다. 성경신학의 본질적 전제는 성경 자체가 주장하는 계시와 영감의 원리들이다. 게르할더스 보스(G. Vos)성경신학에서 이 점을 분명히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 용어의 적절한 신학적 사용과 관련해 가장 본질적 요소로 볼 수 있는 계시의 무오성을 첫 번째 원리로 내세웠다.

 

그의 말대로 이것은 바로 인격적 유신론의 본질에 해당한다. 만일 하나님이 인격적이며 사유하시는 분이라면 계시의 방법과 관련해 자신의 속성과 목적을 나타내심에 있어 오류가 없으실 것이라는 추론은 필수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에 신적 인증을 찍어 세상에 드러내실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전적으로 하나님과 세상의 의사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물질세계의 한계성과 상대성에 어떤 식으로든 묶여 있는 신의 존재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계시란 계시된 진리의 전달에 있지 않다는 것이 오늘날의 공통적 시각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성경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오신 그의 아들을 통해 계시된 진리를 전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17:8).

 

계시의 객관성

 

보스는 성경신학이 계시의 객관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참된 계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사람에게 즉 외부로부터 전달되었음을 의미한다.” 이것을 구술 기록에 대한 불신적 시각 때문에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면 올바른 처사가 아니다. 구술 기록이라고 해서 권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더욱 그러하다. 더구나 계시의 수납자들은 한결같이 이런 과정이 자주 발생하였음을 보여준다. 계속해서 보스는 자신은 내부적 계시를 부인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점은 시편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보스는 모든 성경계시를 이런 범주로 몰아넣음으로 성경의 무오성을 제거하려는 경향에 대해 강력히 경고한다.

 

이처럼 계시의 객관성을 인정한 보스는 성경신학을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과정을 다룬 주경신학의 한 분야라고 정의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성경신학은 자기 모순적이 아니며 또한 역사라는 미명하에 신학을 훼손시키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정통주의적 입장에서 서서 결코 역사과학의 요구에 마지못해 양보하는 모습으로 비치지도 않는다.

 

자유주의가 성경신학을 불가능하게 한다면 정통주의는 그것을 필요 없게 만든다는 생각도 거부되어야 한다. 만약 계시로 말미암아 모든 명제가 주어지고 성경이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굳이 교회가 성경적 가르침에 대한 요약으로 그 증거물로서 교의신학 외에 다른 것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의 진행과 계시

 

성경은 역사의 진행 과정에서 그때그때 주어지는 계시를 기록한 책이다. 이 계시는 단번에 주어지거나 신학사전과 같은 형태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계시의 과정은 구속사와 더불어 진행되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주어진다. 구속사는 획일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적 행위로 말미암아 구분된 시대별로 진행된다. 따라서 계시는 시대적 구조를 가지며 이런 모습은 성경에 뚜렷이 나타난다. 오늘날 세대주의는 구속사가 몇 가지 큰 단계로 나누어져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고 있으나 이런 시대적 구분이 은혜라고 하는 하나의 큰 틀 속에서 유기적 관계를 이루며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는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성경신학은 시대의 진행에 따라 점차 확장되어가는 신학적 지평을 바라보며 각 시대별 계시의 성격과 내용을 체계화한다. 이렇게 볼 때 성경신학은 합리적으로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특정 구절의 해석을 위한 완전한 문맥적 상황을 제시함으로 본문의 배경적 이해는 물론 시대별 계시의 지평적 차원에서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바른 성경해석학의 상호작용적 특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성경신학 역시 성경주해의 결실이며 성경을 단편적이 아닌 전체적 시각에서 가르치기 위한 체계적 진술의 틀을 세우기 위한 중요한 단계이다.

 

조직신학과 성경신학

 

그렇다면 조직신학이나 교의신학과 성경신학 사이에는 분명한 구분이 있어도 갈등은 있을 수 없다. 조직신학은 성경신학의 결과를 토대로 체계를 세워야 하고 성경신학은 조직신학이 가지는 거시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 양자의 접근법은 전개방식에서 차이가 난다. 조직신학의 전개방식은 철저하게 논제적이고 주제적이다. 즉 성경전체의 가르침을 하나님, 인간, 구원, 교회, 종말 등 특정 주제별로 요약한다. 반면 성경신학은 구속사적 전개방식을 따른다. 성경신학은 모든 역사를 창조, 타락, 홍수, 아브라함에 대한 소명, 출애굽 및 그리스도의 오심과 같은 구속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구분한다. 각 시대별 또는 보다 세분화된 기간 내에서는 체계적 방법이 적용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부분별 계획에 따른 조직신학이 아니다. 만약 역사를 조직신학적 전개에 유리한 방향으로 구분하여 각 시대별 계시를 분류한다면 독단이 될 것이다. 오히려 각 특정 시대별 계시의 형식과 내용 모두에 나타나는 특징과 강조에 대해 민감해야 할 것이다. 족장시대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와 신성한 이름들이 기록된 제단들은 내용과 형식에 있어 그 시대에 적절한 근거와 원리를 갖추고 있다. 이 시대에 대한 해석은 바로 이런 점을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신정 제도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는 데는 전혀 다른 조직적 방법이 필요하다. 즉 야곱의 사다리로부터 모세의 성막에 이르기까지 전개되는 모든 요소에 대한 신학적 의미를 발견하고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

 

물론 이같은 접근 방식에는 융통성이 필요하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떤 학자는 구약신학이라는 제목의 책을 저술하면서 역사적 방식을 지양하고 주제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 즉 그리스도 이전의 모든 계시 역사에서 드러난 교리적 내용을 체계화함으로 제목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법은 성경신학을 조직신학적 형태에 더 가까이 다가서게 한다. 그러나 성경신학이 성경의 내용에 대한 조직적 진술이나 히브리 민족의 종교사로 비치는 혼란을 막아야 할 것이다.

 

계시의 역사성과 점진성

 

성경신학에 대한 가장 바른 이해는 계시의 역사성 및 점진성과 그것이 선언하고 있는 하나님의 계획의 통일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성경신학의 관심은 신학적인 것에만 있지 않다. 그렇게 되면 계시 진행의 역사는 자칫 우연의 산물이 될 소지가 있다. 또한 성경신학의 관심은 역사적인 것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성경신학이 히브리 민족의 종교사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계시에 대한 근본적 오해를 하고 있거나 계시에 대한 불신앙적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성경신학은 엄밀히 말해 계시의 역사도 아니다. 이유는 성경신학의 신학적 관심은 계시과정에 대한 단순한 역사적 연구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신학은 다른 분야와 구별되게 역사적 진행과 신학적 통일성이라는 두 요소 모두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 어느 한쪽에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 성경은 스스로 성경신학을 제공한다. 성경신학은 역사 속에 실현된 하나님의 영원한 구속계획에 대한 계시의 은혜와 영광이 넘쳐흐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화란의 설교자 안델(J. van Andel)강단이 우리를 본문으로 몰고 가게 해서는 안 되며 본문이 우리를 강단으로 몰고 가야 한다는 지혜로운 말을 남겼다. 성경신학을 통해 말씀의 능력이 말할 수 없는 감동으로 설교자의 마음을 충만하게 하는 경험을 누리기를 바란다.

 

*소제목은 필자가 첨가한 것임

 

요약 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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