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정목사 설교] 성도의 언어와 하나님

약 3:1-18

김순정 | 기사입력 2021/03/20 [18:06]

[김순정목사 설교] 성도의 언어와 하나님

약 3:1-18

김순정 | 입력 : 2021/03/2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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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는 선생이 된 자들에게 교훈을 줍니다. 그 교훈의 구체적인 내용이 3장에 등장합니다. 세상에서 선생은 명예와 존경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선생은 명예와 존경을 받기 위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전하기 위해 필요한 존재입니다. 세상의 가치관, 방식으로 기독교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기독교를 오해하는 것입니다.

 

1. 말에 대한 교훈(1-12)

 

야보고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고 합니다(1). 사람은 다 실수가 많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만약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온전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능히 자신의 몸도 절제할 수 있습니다(2).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은 주인에게 순종하도록 하기 위함이고 그 온 몸을 제어하려는 것입니다(3).

 

또 예를 들어 배를 봅시다.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배를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행합니다(4). 즉 큰 배들도 작은 키로 사공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혀도 우리 몸에서 작은 지체입니다. 그러나 그 작은 혀가 우리의 몸을 제어합니다. 작은 불씨가 많은 나무를 태우는 것처럼 우리의 작은 혀가 불처럼 우리의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 즉 인생을 불사릅니다(5-6).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길들여 왔습니다. 동물원의 동물들은 맹수가 되었든지 작은 동물이 되었든지 바다의 동물이 되었든지 다 길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혀는 쉬지 않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입니다(7-8). 혀로 사람을 욕하고 상처를 줍니다. 그래서 혀는 쉬지 않고 악을 말하고 독을 내뿜는 것과 같습니다.

 

59:7절은 그들의 입으로는 악을 토하며 그들의 입술에는 칼이 있어 이르기를 누가 들으리요 하나이다라고 합니다. 말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 입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또 입을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을 저주합니다.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옵니다(9-10). 샘은 한 구멍으로 단물과 쓴 물을 내지 못합니다.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맺지 못하고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지 못합니다. 이처럼 짠 물이 단물을 내지 못합니다(11-12).

 

2. 지혜의 온유함(13-16)

 

야고보는 성도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인가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런 자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이라고 합니다(13).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는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실제 선행으로 그것을 보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혜와 총명을 가진 사람은 실제 삶 속에서 선행으로 지혜가 나타나게 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말로만 떠들어 댑니다.

 

그러나 그의 삶 속에서 그 지혜와 총명함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선행이 없습니다. 이런 자는 어리석은 자이고, 악인입니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교회 안에서 높은 지위를 자랑하는 선생들이나 교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스스로 지혜롭고 총명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지혜와 총명을 소유하지 못한 것입니다. 야고보는 계속해서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고 합니다(14).

 

독한 시기는 동기가 순전하지 못한 열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약점을 잡아 무시하고 비난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툼이라는 것은 교회 안에서 분파를 만들어 서로 싸우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위로부터 즉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닙니다.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입니다(15).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습니다(16).

 

교회 안에서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고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는 것은 모두 정욕의 것입니다. 악령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을 주지 않으십니다. 이런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바울은 악인들의 행위에 대해 열거합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1:29-30)

 

3. 위로부터 난 지혜(17-18)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는 무엇인가? 17-18절에 나옵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합니다. 성결(하그노스)은 참 지혜의 첫째 요소입니다. 청결, 결백, 완전, 순결 등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성결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형상을 닮아 창조된 사람은 성결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는 화평입니다. 화평(에이레니코스)은 '평화로운, 화평'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성도는 서로 화평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화평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화평을 실천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 화평이 없다면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다음은 관용입니다. 관용(에피에이케스)은 '온화, 절제, 인내'를 말합니다. 자신을 비방하는 상대방에 대해 논쟁하기보다는 화를 내지 않고 관용을 베푸는 것입니다.

 

다음은 양순입니다. 양순(유페이데스)은 '순복, 복종, 유순함'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복종하는 것입니다. 긍휼(엘레오스)은 '자비'를 말합니다. 남의 비참함을 보고 동정하며 실제적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선한 열매(칼폰 아가돈)는 긍휼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편견(아디아크리토스)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이 편견이 없어야 합니다. 또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진실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백성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둡니다. 의의 열매는 영생, 성화를 말합니다. 이것은 교회 공동체가 화평을 실천함으로 주어지는 결과입니다. 교회에서 화평을 실천하면 교회는 성숙해집니다. 성화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어야 합니다. 결국 교회가 의의 열매를 거둠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1:11).

 

결론

 

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는 늘 말에 신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언어를 통해 상처를 주고 분쟁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다툼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항상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 말을 조심하고 화평하고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럴 때 의의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이런 우리의 한 주간의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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