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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연재5]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에 대한 논쟁(5)

리폼드뉴스 | 기사입력 2021/03/15 [11:07]

[신학연재5]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에 대한 논쟁(5)

리폼드뉴스 | 입력 : 2021/03/15 [11:07]

▲     ©리폼드뉴스

 

(리폼드뉴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에 대한 논쟁'에 대한 유창형 교수(칼빈대학교 조교수, 역사신학)의 논문을 연재한다(편집자 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에 대한 논쟁
Debate on the Imputation of Christ’s Active Obedience 

 

   목차

 

. 들어가는 말

 . 이 교리를부정하는 학자들 

   1. 리차드 백스터 

   2. 존 웨슬리 

   3. 서철원 

   4. 정이철  

III. 이 교리를 인정하는 학자들 

   1. 존 오웬 

   2. 헤르만 바빙크  

   3. 박형룡 

   4. 신호섭

. 분석과 평가 

   1. 이 교리에 관한 성경구절들  

   2. 어느 편이 칼빈과 일치하는가

   3. 이 교리를 부정하는 견해의 장단점 

   4. 이 교리를 인정하는 견해의 장단점 

. 나오는 말 

 

III. 이 교리를 인정하는 학자들

 

1. 존 오웬(John Owen, 1616-1683)

 

1.1.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통한 믿음에 의한 칭의론』1)

1) John Owe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by Faith through the Imputation of the Righteousness of Christ, Explained, Confirmed and Vindicated (Glasgow: John Bryce, 1760; Eighteenth Century Collections Online Print Editions).

 

존 오웬은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를 일관성 있게 주장하고 있다. 그는 칭의 교리의 핵심이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통한 완전한 순종의 전가에 있다”고 보았다.2)

2) 존 머레이는 그리스도의 수동적 복종보다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더 강조했다. John Murray, Redemption-Accomplished and Applied (Grand Rapids: Eerdmans, 1955), 154.


 그는 전가 교리를 다음과 같이 잘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만유 가운데 그의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신 그리스도의 의며 순종이다. 한편, 우리의 불의는 우리의 불순종이자 하나님의 계명을 위반한 우리의 범죄다. 그러나 우리의 의가 그리스도의 순종 안에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 그리스도의 순종이 우리의 소유인 것처럼 우리에게 전가된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의로운 자들로 간주된다.3)

3) John Owe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by Faith, 39.
 

위에서 오웬은 이중적 전가를 말하는데, ‘죄의 무전가’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이다. 오웬은 죄의 용서가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으로 성취되며, 영생을 얻을 권리가 능동적 순종으로 획득된다고 주장한다. “죄의 사면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이루어지듯이, 이 옷(영생을 얻을 권리에 상응하는 의)은 오직 그리스도의 순종으로만 우리의 것이 된다.”4)

4) John Owe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by Faith, 164.

 
오웬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에 대한 여러 가지 반대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1. 만약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이 그의 죽음과 고난이 우리에게 전가된다면, 그의 능동적 의, 혹은 그의 생애의 순종은 우리에게 전가될 필요도 없고 전가될 수도 없다. 그리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인데, 왜냐하면 둘 다 함께 비논리적(inconsistent)이기 때문이다. 2. 만약 모든 죄가 용서된다면, 의는 필요가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인데, 만약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다면 죄 사함을 위한 여지가 필요 없다. 3. 만약 우리 죄가 용서받았음을 믿는다면, 우리의 죄는 믿기 전에 용서받았거나 혹은 그것이 그렇지 않다고 믿어야 한다. 4. 만약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다면, 우리가 전혀 행하지도 않고 고난받지도 않은 것이 행하고 고난받은 것처럼 간주되어야 한다. 만약 우리 스스로 그것을 행했다고 생각한다면 전가는 타도되어야 한다는 것이 참되다. 5. 만약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처럼 의롭다. 6. 만약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에게 전가된다면 그는 범죄한 것처럼 생각되고 주관적으로 죄인이다. 7. 만약 하나님 앞에 우리의 칭의에서 선행이 아무런 관심없이 배제된다면, 선행은 우리 구원에 아무 쓸모가 없다. 8. 죄가 없는 곳에 획득해야 할 모든 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스꽝스럽다. 9. 전가된 의는 추정적이고 상상적인 의다. 등등.5)

5) John Owe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by Faith, 81-82.

 

위에서 오웬에 대한 반대자들은 그리스도의 수동적 의인 수난의 전가로 말미암은 죄 사함은 인정하지만,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인 의의 전가는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의의 전가를 반대하는 자들은 소키니안들과 로마 가톨릭의 한 부류, 그리고 요하네스 피스카토르, 가타커, 백스터 등과 같은 신율주의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오웬에 의해 공격받았다.6)

6) John Owe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by Faith, 165.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 책 전체를 살펴보라.

 

1.2 『사보이 선언』7)

7) 위키백과, “사보이 선언”, “사보이 선언은 1658년에 런던의 사보이 궁전에서 채택된 영국 청교도들의 신앙고백이다. 내용은 기본적으로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동일하지만 각개 교회의 독립을 주장하는 회중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 이 신앙고백은 존 오웬의 주도적 역할로 작성되었다.”

 

존 오웬은 자신이 주관한 『사보이 선언』에서 그리스도의 순종을 능동적 순종과 수종적 순종으로 명확히 구별하였다. 신자들의 모든 행위와 의를 위한 “전체 율법을 향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그의 죽음을 통한 수동적인 순종”8)

8) Savoy Declaration, 11:1, in Creeds & Confessions of Faith in the Christian Tradition, ed. Jaroslav Pelikan & Valerie Hotchkiss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c2003), 3:115.


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이런 오웬의 역할은 알란 클리포드에 의해서 오웬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나타난 칭의론을 변질시켰다는 비판이 가능하게 했다.9)

9) Alan C. Clifford, Atonement and Justification, 12. 구체적인 내용은 신호섭을 다룬 항목을 참조하라.


그러나 논자가 보기에는 변질이라기보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한 것이라고 보인다. 정말 변질시켰다면, 존 오웬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추종하는 많은 개혁파 교단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1.3. 소결론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오웬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와 수동적 순종의 전가를 둘 다 인정했다. 오웬은 자신의 책 『믿음에 의한 칭의론』 12장 전체를 통하여 소키누스의 주장10)을 반박하면서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이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은 인류의 모든 범죄에 대한 형벌을 처리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과 같이, “율법에 의해 모두의 지고한 통치자요 제정자인 하나님의 영광과 명예를 위하여”, 그리고 신자의 영생을 위하여 율법에 대한 그리스도의 순종이 필수적이며, 이 두 가지가 함께 우리의 칭의를 구성한다고 하였다.11)

10) John Owe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by Faith, 437-38.

11) John Owe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by Faith, 436.


이런 주장은 많은 청교도 신학자들과 헤르만 바빙크, 루이스 벌코프, 안토니 후크마에 의해 계승되었다.

 

2. 헤르만 바빙크 (1895-1964)

 

바빙크는 그의 『개혁 교의학』 3권 46장 377항에서 신인이신 그리스도가 “언약의 보증인으로 우리 대신 죄의 모든 죄책과 죄의 형벌을 짊어지고 하나님의 율법의 모든 요구에 복종함으로써 그것을(배상을) 성취했다”고 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사역은 그의 겸손이나 죽음에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의 전체적인 능동적이고 수동적인 복종에 있다”12)

12) Dr. H.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ek, deel 3, 5e Druk (Kampen: J. H. Kok, 1967), 327. “Deze bracht haar daardoor aan, dat Hij zich als Borg des Verbonds in onze plaats stelde, de volle schuld en straf der zonde op zich nam, en aan den ganschen eisch der wet Gods zich onderwierp. Het werk van Christus bestaat dus niet zoozeer in zijne hmilitas, noch ook alleen in zijn dood, maar in zijne gasche, zoowel actieve als passieve gehoorzaamheid.” 이후로는 Dr. H.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ek III, 46, 377로 표기함. 고 보았다.


『개혁 교의학』 3권 47장 389항에서 바빙크는 하나님의 뜻에 그리스도가 복종한 것과 그것을 성취한 의는 하나지만, 수동적인 복종과 능동적인 복종으로 구별될 수 있다고 하였다.13)

13)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ek III, 47, 389.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이중적인데 하나는 “인간이 완전히 율법을 복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형벌에 의해서 율법의 어긴 것을 배상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에 의해 죄 사함과 영생을 얻는다. 이 둘은 같은 것이 아니며 칭의는 “천상의 은총과 자동적으로 동일시되지 않는다.” 비록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의로웠지만, “아직 행위의 방식으로 영생을 얻어야만 했다.”

 

처벌을 받는 것은 율법준수와 완전히 같은 것이 아니다.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는 “우리 대신 단지 처벌만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고 아담이 그의 순종을 통해 얻어야만 하는 의와 생명을 우리를 위해 획득하시기 위해” 오셨다. 그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으로 우리는 아담 안에서 잃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얻었다. 즉 믿음 안에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고 죽지 않을 수 있는 것”14)을 얻었다.

14) Ibid. 


여기에서 바빙크는 그리스도께서 아담이 실패한 것을 성취하시는 능동적 순종과 아담 안에서 지은 우리의 형벌을 지불하신 수동적 순종을 확실하게 구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개혁 교의학』 4권 51장 476항에서 바빙크는 능동적 순종을 부인하고, 칭의를 죄 사함에 제한하는 루터파의 신학자들과 개혁파 신학자들을 비판하였다. 그는 “칭의를 그리스도의 순종 전체의 전가로 정의하는 것”이 더 좋다고 하면서 “그리스도의 전가된 의를 단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으로 이해하는 것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수동적 순종과 능동적 순종을 너무 날카롭게 구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더 나은 결론은 전가된 의가 둘을 포함하는 전체적인 순종의 전가라고 보는 것이다. 즉, 칭의를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라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의는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만이 아니라 능동적 순종도 포함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칭의의 두 가지 열매는 죄 사함과 영생의 권리라고 하였다.15)

15)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ek IV, 51, 476.

 

바빙크는 『하나님의 큰 일』에서 “그리스도의 제사(희생)은 그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의 표시”라고 하였다. 초기에는 능동적 순종이 적게 강조되고 수동적 순종이 많이 강조되었지만, 나중에는 수동적 순종이 경시되고 능동적 순종이 많이 강조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하나님의 의와 그의 율법과 명령에 대한 성취”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잉태와 탄생으로부터 언제나 아버지께 순종”하였다. 그는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내가 당신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라고 하셨다. 그런 순종들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에서” 완전하게 증명되었다. 신약은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 즉 그의 속죄 사역에 대한 설명으로 가득 차 있다. 바빙크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으로 “율법을 완성할 뿐만 아니라” 수동적 순종으로 “죄책을 담당하시는 일은 아버지의 뜻에 속한 것”이라고 하였다. 16)

16) 헤르만 바빙크, 김영규 역, 『하나님의 큰 일』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84), 369.

 

바빙크는 또한 『개혁교의학 개요』17)에서 칭의를 다루는 항목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7) 『하나님의 큰 일』과 『개혁교의학 개요』는 같은 책 Magnalia Dei를 김영규과 원광연이 각자 번역한 것이다.

 

그러므로 칭의에는 두 가지 은택이 포함된다. 곧 죄 사함과 영생에 이르는 권리가 그것이다. 이 둘은 서로 관련되어 있고, 마치 그리스도의 수동적인 순종과 능동적인 순종의 관계와도 같은 관계를 서로 유지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담이 그의 한 가지 범죄로 망쳐놓은 것은 회복시킬 뿐 아니라, 또한 아담이 율법을 지켜서 성취해야 했던 그것, 즉 영생을 성취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 믿음 덕분에 죄 사함을 얻고, 또한 그 순간 영생을 받는 것이다.18)

18) 헤르만 바빙크, 원광연 역, 『개혁교의학 개요』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11), 574.

 

위에서 바빙크가 말한 바를 바꿔서 표현한다면, 죄 사함은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의 전가로 받고, 영생을 얻을 권리는 율법을 완전히 지키신 능동적 순종의 전가로 받는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칭의 항목에서 바빙크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으로 말미암은 죄의 용서를 많이 강조하고, 능동적 순종의 전가에 대해서 많이 말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정리하면, 두 책에서 바빙크는 십자가의 고난으로 죄 사함을 얻고, 율법에 대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로 영생의 권리를 얻는다고 주장한다.

 

다음은 박형룡(1897-1978)의 견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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