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총회내 1979년 영호남의 갈등 재현되나

소재열 | 기사입력 2020/08/12 [06:55]

[논단] 총회내 1979년 영호남의 갈등 재현되나

소재열 | 입력 : 2020/08/12 [06:55]

 

▲ 제27회 총회(1938년) 임원들이 총회를 마치고 신사참배를 하고 있다. 조선일보기사  © 리폼드뉴스

 

【(리폼드뉴스)188664일에 조선과 프랑스가 맺은 한불조약을 계기로 천주교의 포교가 직접 규정되지는 아니하였으나, 프랑스 선교사들은 사실상 포교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가톨릭의 프랑스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 온지 반세기 만의 일이었다. 한불조약은 1884년부터 입국한 개신교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에 커다란 힘이 되었다.

 

한불조약이 체결된 다음해인 1887년 프랑스 블랑 주교의 보고서에 의하면 서울 거리의 수많은 미국 목사들은 불행히도 3개의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고 보고할 정도이고 보면 그들이 개신교 선교를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1900년에 접어들면서 황해도 장연에서 일어난 해서교안(海西敎案) 사건으로 성당 건축에 기부금을 내지 않는다고 개신교인들을 감금 구타하는 일들을 기억한다. 또한 제주도에서는 주민을 학살하는 신축교난(辛丑敎難), 혹은 이재수 난인 선교사를 앞세운 천주교회의 폐단에 맞선 민중 항쟁은 우리들의 아픈 역사의 현실이었다.

 

가톨릭교회와 갈등 속에서도 우리 개신교 복음은 확산되었다. 일제강점기 속에서도, 6.25 전쟁 속에서도 복음은 성령의 능력으로 확산되었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그 복음이 정통보수신학의 기초로 승화되었으며, 비진리와 자유주의 신학과 신앙에 대해서만큼은 언제나 투쟁적이었다.

 

성경적 복음, 교회의 거룩성과 주일성수, 예배의 생명력은 불화산처럼 솟아올랐다. 일제강점기 때에 주일성수와 제대로 드리지 못한 예배에 대한 회개가 요구되는 시점에서 문제가 터졌다. 해방 이후 조선신학교 이을선이라는 학생이 농촌 계몽운동을 위한 답사기인 이상촌이라는 책자에서 주일 아침에 예배만 드리고 주일에 일을 해도 된다는 내용에 김재준 교수가 추천서를 써주자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것이 그 유명한 조선신학교 내 51인 신앙동지회의 울부짖음이었다.

 

해방 이후 교회 재건과 자유주의신학에 맞선 정통보수신학과 신앙을 회복하고 재건해야 하는 시대였다. 51인 신앙동지회 중심의 한국장로회는 신학과 신앙, 예배의 좌경화, 세속화 될 때에 분연이 일어났다. 그 신앙동지회의 리더가 정규오라는 점에서 호남은 자랑스러워 했다. 이는 미국 남장로교 신학적 전통에 의한 열매라고 믿었다.

 

이같은 명분은 역사의 현장에서 언제나 반복적으로 재생산되었다. 1979년 소위 총회내 정규오 목사 중심의 호남과 황해세력이 집단화 되어 있었다. 또한 이영수 목사 중심의 영남과 평안도 세력도 존재하고 있었다. 1979년 분열 직전에 정규오 목사 중심의 총신신학의 좌경화를 이유로 별도의 총신을 복구하여 무려 26년 동안 서로 다른 교단의 길을 걸어왔다.

 

1979년 제63회 총회에서 신학이 다르다는 이유로 분열되었던 양 교단은 2005(90)에 이르러 양교단은 신학과 신앙이 동일하기 때문에 하나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명분론은 1979년의 분열의 원인을 무색하게 했다.

 

이제 금년으로 제105회 총회를 맞이했다. 2005년 합동이후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15년째 되는 금년에 합병 당시 개혁측으로 분류되었던 소강석 목사가 처음으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총회장으로 취임한다.

 

105회 총회를 1개월 정도 남겨놓은 상태에서 1979년 분열 당시 영호남의 갈등 양성이 재생산되고 반복될 기미가 보여 심히 우려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필자는 그동안 이제 영호남의 갈등은 교단의 붕괴를 의미하며, 다른 지역과 더불어 영호남이 하나되어 총회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이제 1인 보스 체제가 아닌 균형을 맞춘 집단지도체제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려할만한 일들이 터지고 있다. 소강석 목사가 담임으로 있는 새에덴교회의 예배와 설교 파동 등은 영남측 인사들에게 민감한 사항이 되고 말았다. 특히 지방의 영남측에서 교단 신학과 신앙의 해체에 강한 불만을 품은 것으로 알려졌다. 본 교단은  주일행사 금지와 공예배 시간에 복음성가도 부르지 못하도록 돼 있다.

 

특히 해명을 위해 현재 교단총회에서 신학 문제로 조사를 받고 있는 인사의 지원을 받고, 타교단 인사가 국민일보를 통해 교단의 예배신학과 교리까지 판단하고 평가하는 일련의 일들은 이 사건에 해결은 커녕 불을 지피고 말았다는 여론이다.

 

이와 더불어 제105회 총회 임원선거를 앞두고 금품수수혐의를 폭로하고 여론 몰이를 하는 것은 호남중심의 작전세력이 총회를 호남중심으로 이끌어가려는 음모라고 주장하며 영남측 인사들이 강한 불만을 품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06회 총회에 부총회장(총회장)에 출마가 예상된 영남인사를 겨냥한 호남인사들의 폭로전이 도를 넘었다는 주장이다. 이제 현재와 과거의 호남인사들의 금품수수혐의도 폭로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일고 있다.

 

이는 제106회 총회에서 호남인사를 부총회장에 당선시키고자 하는 호남의 작전세력이 제105회 장로부총회장의 금품수수 폭로를 이슈화 하고 있다는 주장은 오해임에도 불구하고 걷잡을 수 없이 영남측 정서를 흔들고 있다.

 

양 교단이 합동한지 15년이 되는 시점에서 맞는 제105회 총회를 앞두고 영호남의 갈등 양상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 문제로 정치적인 문제로 포장되면서 100년 넘게 지탱해 온 교단의 보수성이 무너지게 해서는 안된다는 공감대 형성의 확전을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이제 뜻있는 인사들이 하루빨리 모여서 대책을 숙의해야 한다. 이런 문제는 순교를 각오하며 저항하는 속성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본 교단의 양심있는 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지금 진행되어가고 있는 정치권을 지켜보면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더 이상 영남측이 권력장악을 위한 호남의 작전세력이라는 말을 오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즉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

 

105회 총회를 심각하게 주시하고 있는 대다수 많은 눈들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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