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미터, 교회와 국가의 관계(2)

국가는 결코 어떤 형태로든지 국가 교회를 건설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순정 | 기사입력 2020/04/04 [18:52]

헨리 미터, 교회와 국가의 관계(2)

국가는 결코 어떤 형태로든지 국가 교회를 건설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순정 | 입력 : 2020/04/04 [18:52]

 

헨리 미터(H. Henry Meeter, 1886-1963)는 미국 칼빈대학교, 칼빈신학교, 프린스톤신학교, 화란 암스텔담 자유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미국 그랜드래피즈의 칼빈대학교와 신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하였다. 그는 화란의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 미국의 B.B. 워필드, 암스트롱, J.G. 메이첸의 영향을 받았고 칼빈 연구와 칼빈주의 연구를 위해 전생애를 바쳤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가 남긴 업적은 헨리 미터 칼빈 연구소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글은 그가 남긴 「칼빈주의의 기본 사상」이라는 책에 실린 내용이다.

 

2. 국가와 교회의 차이

 

그러므로 국가와 교회는 함께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그 공통된 기초를 두었다. 이 사실은 양자 간에 서로 필연적 조화를 도모하여 공동적인 고귀한 이상들을 함께 수반될 것을 보증한다. 그러나 양자가 공통적 기초를 가진 것과 같이 국가와 교회의 두 영역 사이에 역시 현저한 차이도 있는 것이다. 교회는 국가 혜택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그 근원 또는 왕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교회의 기원은 중생과 특별은총에 둔다. 교회는 신령한 것을 취급하며 또 그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과 신령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하년으로 국가는 인류의 타락 이후 존재하게 된 것으로서 일반적 생활에 그 기원을 가진다. 이는 일반 은총 영역에 속하며 현세 관계의 일들을 취급하며 그 목적은 인간 사회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국가와 교회의 관계는 서로 조화하며 협력하는 관계이어야 한다. 두 영역은 다 하나님의 기관이다. 양자는 다 죄를 제지하려는 기관으로서 전자는 일반 은총 영역에 속하고 후자는 특별 은총 영역에 속한다. 이 두 영역들이 다 적극적으로 사회의 도덕적 이상을 추진시켜서 하나님 나라로 전진케 한다. 국가는 간접적으로 그렇게 하는 바, 곧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데 있어 교회의 진로에 가로막히는 장애물들을 제거하여 주며 교회는 직접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한다.

 

국가와 교회가 다 이 세상의 끝 날에 가서는 제도의 존재는 계속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초자연적 방편으로 설립된 살아 있는 유기체 또는 하나님 나라로서의 교회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기관은 하나님이 맡긴 책무들을 실현하기 위해 가능한 대로 최대한 조화를 이루도록 일할 것이다.

 

3. 교회에 대한 국가의 의무

 

따라서 교회에 대한 국가의 의무는 다음에 나오는 네 가지 항목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국가가 일반적으로 종교에 대하여 중립적 태도를 취할 수가 없다. 그런 태도를 취하면 국가는 실제로 무신론 국가가 되어 버려서 사회생활의 모든 삶의 과정에서 하나님 주권을 침해하게 될 것이다. 국가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지해야 되고 또한 하나님을 향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된다.

 

국가가 이행해야 할 책무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며 교회를 보호하며 자신의 고유한 영역에 관계된 하나님의 도덕적 법칙들을 친히 지키고 또 장려할 것이다. 특히 도덕이 쇠락할 때 국민을 향하여 정부는 그 국민들이 하나님의 법을 존중하도록 격려할 것이다.

 

둘째, 국가는 결코 어떤 형태로든지 국가 교회를 건설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행동은 국가 자체의 정당한 영역의 한계를 넘어가는 월권일 것이다. 국가는 종교를 선포하기 위해 하나님이 세운 기관이 아니다. 자기 영역 안에서 인류 사회의 법과 질서를 유지하며 자연적 공동 유익을 추진시키는데 있다. 국가가 국가 교회를 둔다는 것은 교회의 주권들을 침범함이다. 그렇다고 할 이유는 교회는 자체의 영역에 주권을 가졌고 그 왕이신 그리스도 외에 다른 더 큰 권위를 그 영역에서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국가 교회를 건설함은 종교상 문제에 대한 개인의 판단권과 양심의 자유를 침범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은 역시 옛날의 저급한 종교로 퇴보하는 것이 된다. 어떤 국가에 있어 종교가 이상적 단계에 도달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즉 백성 전체가 종교 문제에 대해 일치하게 생각하고 완전한 종교적 표준들을 주장할 수 있다고 해도 그런 일은 사실 진리를 건설함이 국가의 임무는 아니다.

 

이유는 국가와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각기 특이한 활동 영역을 받았고 결코 교회가 국가의 수족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시대에 있어 국교의 건설은 실제에 있어 퇴보를 의미하는 일일 것이다. 그 이유는 고대의 모든 국가가 국교를 가지고 출발한 것이 역사상 공통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명과 학식이 진보됨에 따라 모든 사람을 단 하나의 교회 안에 가둘 가능성이 없어졌다. 또 이런 국교의 건설은 양심 문제에 있어 강제 또는 박해하는 것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셋째, 국가는 신령한 일들이 아니고 세속적 일들에 한하여 교회에 관계할 권리를 가졌다. 그것은 국가가 교회의 외부에 속한 일들에 대하여 관계할 권리를 가졌다는 뜻이니 그 점에 있어 그 나라 사회 안에 다른 분야의 기관들과 같은 법으로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국가가 국민의 종교적 견해 혹은 교회 정치를 결정하는 법률을 제정할 권리가 있는 줄로 잘못 생각하여 신령한 일에 권리를 사용하면 안된다. 언제나 국가의 권리로 종교의 선전과 제재를 감행할 때는 한결같이 종교와 교회의 손상을 주었다. 신앙을 선포하는 데 있어 하나님이 세우신 적합한 방편은 국가의 칼이 아니라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이며 복음이다.

 

어떤 의미에서 성질상 소극적인 몇 가지를 시행함으로 국가가 종교를 잘 도울 수 있다.

가. 국가는 교회가 자유롭게 발전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들을 제거할 경우이다.

나. 국가는 적대 종교를 추진시키지 않으므로 신앙을 도울 수 있다.

다. 국가는 강제로 종교를 선포하지 않는 것으로 그 종교에 봉사할 수 있다.

 

넷째,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는 모든 시민과 불신자에게도 보증되어야 한다. 국가의 권위가 자체의 고유한 영역에서 넘어서지 않는 한 다만 시민이 가진 종교적 신념 때문에 국가가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훼방할 권리는 없다. 칼빈주의는 칼빈 때로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양심의 자유를 존중히 여겨 왔다. 칼빈이 초창기에는 투쟁의 목표를 결코 달성하게 못했을망정 후에는 교회와 국가의 완전 분리를 위해 제네바에서 다년간 투쟁했다. 이 투쟁으로 어느 정도 개혁주의 신앙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었다.

 

화란과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주에서 후대 칼빈주의자들이 국가 교회의 형태로 되돌아간 것은 사실이다. 만일 그 국가들이 개혁교회 운동의 신앙을 수호하지 않았다면 그때의 거친 종교전쟁 가운데서 개혁교회 운동이 참패에 돌아가고 말았을 것이라는 실제적 근거에서 저들의 행동이 변호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는 한다.

 

그러나 국가 교회를 설립함은 칼빈이 제출한 칼빈주의에서는 떠난 것이다. 로마교와 루터교, 아르미니우스파는 국교 사상을 원리상 옹호했다. 그러나 칼빈주의자들은 그렇지 않다. 칼빈주의자들이 우세하게 정권을 잡은 나라들에 있어서 양심의 자유는 그것이 언론 자유의 권리로 나타난 대로 로마교와 루터교회, 네덜란드의 스피노자와 같이 반대 방향의 철학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에게까지 허락되었다.

 

그것이 다른 파 곧 위에 언급된 로마교, 루터파 등이 우세한 나라들에서는 그렇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종교적 경배의 목적으로 모일 권리와 참정권은 때로 칼빈주의자들의 정권하에서 다른 종파 사람들에게 단체와 모든 국민은 신령한 문제에 대해 저들의 의견이 같지 않았음에도 정부가 동등한 지위에서 대우해야 된다는 것은 칼빈주의의 고유의 원리이고 이 시대에 흔히 그렇게 실시되기에 우리는 이 사실을 감사함으로 기록할 수 있다.

 

국교 이외 다른 교파들에게 대한 종교적 관용 정책은 이탈리아와 덴마크, 스칸디나비아 계 국가들의 헌법에서 그 실례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완전한 종교적 자유와 같지는 않다. 칼빈주의자는 국가가 정책상으로 모든 사람에게 주어야 할 완전한 종교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한다.(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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