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민, 생명윤리에 대한 칼빈주의적 접근(3)

김순정 | 기사입력 2019/12/14 [18:18]

박일민, 생명윤리에 대한 칼빈주의적 접근(3)

김순정 | 입력 : 2019/12/14 [18:18]

 

▲     ©리폼드뉴스

 

(박일민 박사는 총신대학교와 칼빈대학교에서 오랫동안 조직신학을 교수해온 분이다. 이 글에서 저자는 생명윤리에 대하여 칼빈주의적이고 개혁신학적 입장에서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논의하고 있다.)

 

3. 절대적 가치로서의 생명

칼빈주의는 생명을 최고의 절대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본다. 생명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 심지어 온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생명은 그 자체가 궁극적 목적이다. 생명은 어떤 경우에도 다른 어떤 것의 수단이 될 수 없다. 생명과 죽음은 서로 모순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죽음도 역시 생명의 경우처럼 절대적 가치기준으로 접근을 하는 것이 칼빈주의적 자세이다.

 

뇌사의 인정에 대한 논의는 죽음 그 자체의 정의를 분명하게 하려는 관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단지 원활한 장기이식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공리주의적 발상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장기의 이식은 생명을 얻기 위한 수단이기는 하지만 생명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러므로 장기이식을 위해 서둘러 뇌사를 판정하려 하거나 뇌사자의 생명 유지 노력을 포기하려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절대적 가치의 생명을 상대적 가치의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아무리 회생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의 경우라 하더라도 그 사람의 생명은 그 자체만으로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설사 자신의 생명으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또는 한 사람의 생명을 포기하여 다른 여러 사람의 생명을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예외일 수 없다. 그 사람의 생명은 다른 사람의 생명과 바꿀 수 없는 그 사람만의 절대적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이식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것은 분명 아무나 할 수 없는 큰 사랑의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의 표현은 일정한 방식을 따라야 한다. 목적이 선하다고 해서 그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의 정당성을 무시하려 해서는 안된다. 장기이식은 죄인을 위해 아무런 조건없이 목숨까지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의 모범을 따르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죄인들의 대속물로 내어주신 메시아적 사랑과 장기이식을 통한 사랑의 실천은 구별되어야 한다.

 

이유는 무죄하시고 무한한 효력을 가지신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의 생명을 위해 바쳐질 수 있는 유일한 희생제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희생은 지금의 현실생활에 필요한 육체적 생명이 아니라 영적 생명을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날에 지금 이 몸이 다시 살게 될 것을 믿는다. 그러나 그 날에는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다시는 죽지 않을 몸으로 부활할 것이며 그 몸은 이식을 필요로 하는 육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희생과 장기이식의 문제는 달리 취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에 대한 법적인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치루어지는 강제적 사형집행이었다는 사실도 장기이식의 경우와 구별되어야할 요소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죽음도 비록 성자로 추앙받는 사람의 죽음이라 해도 그리스도의 죽음과 비교될 수 없다. 따라서 사람이 자신의 장기를 내어준다고 해도 그것이 그리스도를 흉내낸 것 일 수 없다. 사람이 자기 생명으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에 자신의 죽음으로 다른 사람의 죄의 문제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점을 보아서도 분명해진다.

 

4. 생명과 관련된 성경적 표현

 

(1) 호흡과 생명

성경은 많은 곳에서 사람의 생명을 호흡과 동일시한다. 이런 표현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매 생명을 가진 존재가 되었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시 150:6; 146:4). 이런 표현은 아직 뇌사와 같은 상태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기 않았기에 가능했던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쉽게 지나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에 대한 성경의 표현을 그대로 수용하여 심폐사의 입장에 서는 자세가 더 좋을 것이다.

 

(2) 피와 생명

성경은 사람의 생명을 호흡 이외에도 피와 동일시한다(창 9:4; 레 17:14). 피는 심장의 박동에 의해 순환한다. 뇌의 기능은 정지되었지만 심장의 활동은 계속되고 있는 식물인간의 상태를 죽음으로 볼 수 없다면 인공소생술에 의한 심장 박동의 유지도 같은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생명을 피와 연관시키는 성경적 표현을 고려하면 뇌사보다는 심폐사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3) 흙으로 돌아감과 죽음

전 12:7에서 보는 대로 성경은 사람의 죽음을 구성요소들이 본래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죽음은 육체적 흙으로 돌아가는 현상으로 설명한다(창 3:19). 뇌사상태가 혹 정기이식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매장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하는 경우에도 장례는 심장과 호흡의 완전한 정지 이후에나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하는 것은 성급한 결정이다.

 

5. 신적 섭리와 죽음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섭리와 그에 따른 모든 영역에서의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다. 그래서 사람의 구원에 대한 것만 아니라 우주의 모든 일도 하나님의 섭리하심 속에서 일어난다고 믿는다. 이유는 성경은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 한 송이의 백합화가 피어나는 것,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오는 것, 사람의 길흉화복, 나라와 민족의 흥망성쇠, 인류와 우주의 역사 등 그 어느 것도 우연히 일어남이 없다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우리의 눈에 사소하고 우연하게 보이는 것들의 경우도 예외가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사람의 생명의 시작과 끝이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달려 있다는 것은 두 말할 것이 없다. 성경은 사람의 수한이 하나님의 정하신 바임을 분명히 밝힌다(욥 12:10). 그러므로 오진의 가능성이 남아 있는 뇌사상태를 인간 편에서 서둘러 죽음으로 인정하는 것은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6. 인격과 죽음

칼빈주의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 중에서 사람이 그 영장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유는 성경은 사람이 다른 피조물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고 말씀하기 때문이다(창 1:26-27). 하나님의 형상이란 사람의 외형적 특징에서 찾을 수는 없다. 하나님은 형체가 없으신 영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피조물들 중에서 오직 사람만이 지니고 있는 특성, 즉 지정의를 포함한 인격이 바로 사람이 지닌 하나님의 형상의 한 요소로 고려될 수 있다고 여긴다. 즉 사람은 인격을 지녔기에 사람일 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람의 인격은 흔히 지정의의 활동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이런 활동들은 뇌의 기능에 속한다. 따라서 얼핏 보면 뇌사의 상태는 인격이 상실된 상태이므로 더 이상 사람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사람의 인격을 뇌의 기능에만 국한시킬 수는 없다. 이유는 사람은 영혼과 육체의 혼합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빈은 사후 영혼의 수면상태를 주장하는 재침례파들을 비판하면서 사후의 영혼이 인격적 활동을 계속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영혼은 육체가 죽은 이후에도 여전히 살아서 감각적이고 이성적 활동을 한다”고 했다.

 

한편 칼빈주의 사상을 잘 나타내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은 32장 1절에서 “사람의 몸은 죽음 이후에 흙으로 돌아가 썩어진다. 그러나 영혼은 불멸하는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즉시로 왔던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의인의 영혼은 완전히 거룩해져 지극히 높은 하늘로 열납 되고 그곳에서 빛과 영광중에 계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몸의 완전한 구속을 기다린다...”고 했다. 그러므로 뇌의 기능이 중지되었다고 해서 죽음으로 보는 것은 인격을 지나치게 제한시키는 것이다.

 

V. 결론

 

의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지난 반세기 동안 쟁점이 되어 왔던 뇌사인정의 문제는 이제 법률로까지 인정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여전히 각 분야에서 찬반양론의 주장들이 서로 맞서고 있다. 이는 인간 생명에 대한 최종적이고 결정적 결론을 인간 스스로 내리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다.

 

인간은 결코 생명의 창조자나 지배자가 아니다. 다만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의 관리를 위임 맡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칼빈주의적 입장에서는 인간이 생명의 목제나 인공임신 또는 낙태, 뇌사인정과 같은 생명의 시작과 마지막에 대한 문제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도록 방임하고 있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주어진 생명을 잘 관리하여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 받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유지되어지고 그래서 생명을 가진 인간의 의로운 활동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도록 하는데 주력을 해야 한다.

 

그러기에 사랑의 실천이라는 이름하에 선뜻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한 나머지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사회적 합의가 없이 벌어지는 논쟁에 휘말려드는 것보다는 차라리 아직 초보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공장기의 개발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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