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민, 생명윤리에 대한 칼빈주의적 접근(1)

김순정 | 기사입력 2019/11/30 [17:39]

박일민, 생명윤리에 대한 칼빈주의적 접근(1)

김순정 | 입력 : 2019/11/30 [17:39]

 

(박일민 박사는 총신대학교와 칼빈대학교에서 오랫동안 조직신학을 교수해온 분이다. 이 글에서 저자는 생명윤리에 대하여 칼빈주의적이고 개혁신학적 입장에서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논의하고 있다.)

 

현대는 기술문명의 시대라 불러도 좋을만큼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 결과 현대인들에게는 새로운 기술에 적응과 대비가 매우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었다. 기술문명의 발전은 인간생활의 편의와 복지에 많은 유익을 가져다 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환경 문제 등에서 보는 것처럼 인간의 생명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매우 부정적인 결과도 초래했다. 그러기에 최근에는 생명을 주제로 하는 생명윤리의 논의가 매우 중요한 관심사로 떠오르게 되었다.

 

생명윤리는 특히 현대 의료분야에서 매우 심각한 주제가 되고 있다. 현대 의료기술은 과거에 불치, 난치병으로 알고 있던 많은 질병들의 원인과 치료법들을 개발해 냈다. 그 결과 인간의 평균 수명을 현저하게 향상시켜 놓았다. 그러나 현대 의료기술은 여기에서 머물지 않고 인위적인 인구조절, 인공유산, 인공임신, 체외수정, 유전자 조작, 장기이식 등을 거의 보편적 수준에까지 올려놓았다. 심지어 인간생명의 복제까지도 전망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일부에서는 안락사 문제도 쟁점으로 등장시켰다.

 

MS사를 이끌고 있는 빌 게이츠는 앞으로의 10년은 과거 50년 이상의 변화를 맞이하게 되리라고 예측했다. 이 예측은 의료기술 분야도 예외가 아닐 것으로 확신된다. 그러기에 앞으로는 의료기술과 관련해서 생명윤리의 문제가 매우 심각한 주제로 등장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생명윤리는 단지 의료분야에만 국한되는 주제가 아니다. 생명은 법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나 신학적으로도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장기이식과 관련하여 쟁점으로 부각되었던 뇌사인정 문제는 생명윤리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주제에 접근해 볼 수 있는 좋은 단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뇌사인정과 관련해 제기될 수 있는 생명윤리의 문제를 칼빈주의적 입장에서 해석해 보려는 시도는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I. 뇌사논의의 역사

 

뇌사에 대한 논의의 시초는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쿠싱 교수는 1902년에 뇌사와 유사한 사례를 보고하여 학계에서 주목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 후 프랑스의 몰라레와 굴롱 교수는 1959년에 “보통보다 더 진행된 혼수”라는 표현으로 오늘날의 뇌사에 해당하는 23명의 사례를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뇌사라는 용어가 최초로 사용된 것은 1967년 12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외과의사 버나드에 의해서였다. 그는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사람의 심장을 심장병을 앓는 환자에게 세계 최초로 이식하는데 성공했다. 이를 계기로 1968년 호주 시드니에서 모인 세계 의학협회총회에서는 뇌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자는 선언문이 채택되었다. 이와 대를 같이 하여 미국 하바드 의과대학에서는 의사, 법률가, 신학자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뇌사의 정의와 관련한 “불가역적 혼수”를 발표했다.

 

다음해인 1969년 미국 켄사스 주에서는 살아 있을 때에 장차 자신이 사망에 이르면 자기의 사체를 증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통일사체 제공법”을 제정하여 뇌사를 법률로 인정할 수 있는 길을 열었고 1970년에는 뇌사법과 장기이식법을 제정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미국의 다른 주들과 세계의 여러 나라들에서 장기이식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났고 80년대 후반에 이르러 많은 법제정이 뒤따랐다. 현재는 세계 60여국 이상에서 뇌사를 법률로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에 처음으로 뇌사자의 장기이식이 시작되었다. 당시는 뇌사인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상황이었기에 찬반양론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양측은 서로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공식적 논의는 가급적 피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뇌사를 묵시적으로 인정하는 가운데 상당수의 자기이식이 진행되었고 이제는 그 빈도가 1년에 수백 건에 달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마침내 1999년 2월 8일 국회에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됨으로 이제는 장기이식을 전제로 한 뇌사가 법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상태이다.

 

II. 뇌사의 개념

 

1. 전통적 죽음 개념과 뇌사

흔히 사람들은 사람에게 주어진 전체로서의 유기체 기능이 불가역적으로 완전하게 정지된 상태를 가리켜 죽음이라고 인정하는 전제를 받아들여 왔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죽음은 그 기능이 정지된 부위에 따라서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질 수 있다. 심장이나 폐의 기능이 불가역적으로 정지된 상태를 죽음으로 보는 심폐사, 뇌의 기능이 불가역적으로 정지된 상태를 죽음으로 보는 뇌사, 모든 세포의 기능이 불가역적으로 완전하게 정지된 상태를 죽음으로 보는 세포사가 그것이다.

 

인류는 전통적으로 맥박이나 호흡의 활동이 완전하게 정지되는 상태를 죽음으로 보는 심폐사의 입장에 별다른 이의가 없었다. 심장 활동의 정지는 곧 이어 뇌 기능의 정지로 이어지고 또 자연스럽게 모든 세포 활동의 정지로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에는 이 세 가지 형태의 죽음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심폐 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를 비롯한 생명유지 기술의 발달은 뇌 기능이 정지된 이후에도 심장이나 폐의 기능을 소생시키거나 상당한 시간동안의 활동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죽음에 대한 전통적 입장과는 달리, 뇌사, 심폐사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생겨나게 했다. 더욱이 장기이식 기술의 발달은 이식을 위한 신선한 장기의 확보를 위해 심폐사에 이르기 이전의 뇌사 상태를 죽음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강력한 요구를 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뇌사란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것인가.

 

2. 뇌사의 유형

사람의 뇌는 해부학적으로 볼 때 대뇌, 소뇌, 뇌간으로 나누어진다. 따라서 뇌사는 이들 부분이 지니고 있는 각각의 기능과 관련하여 다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1) 뇌간사

뇌간에는 모든 장기의 기능을 통합 조절하는 신경중추와 반사중추가 있다. 그래서 뇌간은 의식 유지의 중심적 역할을 한다. 특히 뇌간에는 생명유지에 가장 필요한 호흡과 순환기능의 중추가 있다. 그러므로 뇌간의 기능이 영구적으로 정지되면 인공호흡이나 생명유지 수단들을 동원한다 해도 적게는 2시간에서 길게는 14일이 지나면 반드시 심폐사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뇌간의 기능이 영구적으로 정지되는 상태를 죽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등장하게 된다.

 

이 견해는 장기의 이식과 관련해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영국 왕립의과대학 의사들이 이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뇌의 모든 기능에 대한 해부학적 지식이 부족하여 뇌간의 기능은 완전히 정지했는데도 불구하고 대뇌나 뇌피질은 그 기능을 여전히 발휘하는 경우가 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에 반론의 여지를 남겨 놓고 있다.

 

(2) 대뇌사

대뇌에는 운동과 감각을 지배하는 중추신경이 있다. 그리고 대뇌는 언어, 정서, 의지, 기억, 사고와 같은 정신활동의 기능을 감당하는 중추가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고유한 인격을 구성하는 활동은 대뇌에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의 죽음은 당연히 대뇌 활동의 영구적인 정지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대뇌의 기능이 고차적인 신경기능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기본적인 생명을 유지하는 것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대뇌 기능의 정지를 죽음으로 인정하는 것은 지나친 급진이론이라는 반대를 받기도 한다. 왜냐하면 뇌간은 대뇌의 활동이 정지된 상태에서도 여전히 그 기능을 발휘하고 있고 따라서 뇌간과 관련된 호흡이나 자극에 대한 무의지식적인 반응은 계속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식물인간의 상태가 여기에 해당된다.

 

뇌사와 식물인간은 구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대뇌사를 인정하게 되면 식물인간의 상태에 있는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보고 매장하거나 안락사를 유도할 수 있는 과오를 낳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좀 더 자세하게 다루게 될 것이다. 한편 대뇌기능의 정지를 죽음으로 볼 수 없다는 반론에는 뇌 기능의 영구적 상실은 심폐기능의 상실의 경우처럼 확실하게 판단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 제기되기도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본다면 뇌기능의 영구적 상실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3) 전뇌사

뇌간을 포함한 뇌 전체의 기능이 완전하게 정지되는 때를 죽음으로 보는 견해이다. 뇌사를 인정하는 사람들 중에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견해이다. 전뇌사를 옹호하는 논거로는 대체로 다음 세 가지가 제시된다.

 

첫째, 뇌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기관이요 한번 정지된 이후에는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뇌 기능의 손실은 죽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과 둘째로 뇌에는 유기체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신체적 기능들을 통합하는 중추가 있는데 뇌 기능이 완전하게 정지되면 그 통합기능이 상실되어 더 이상 유기체의 기능을 가질 수 없음으로 이는 죽음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과 셋째, 뇌 기능이 정지된 사람에게 인공 호흡을 시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행위이므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뇌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자아의식의 정체성에만 국한하여 본다면 전뇌사를 인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이 자아의식의 유무로만 논하여 질 수는 없다. 그러기에 전뇌사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론들이 제기되고 있다.

 

뇌기능의 완전한 정지를 검증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뇌사 판정을 받으면 최장 14일 이내에 심폐사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알아 왔으나 최근 자료에 의하면 엄격한 기준에 따라 뇌사 판정을 받았던 사람들 중에서도 일부의 뇌가 여전히 활동하고 있음이 관찰되었고 놔사판정을 받았던 임산부가 수개월만에 분만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뙤 뇌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신피질이 없이 태어나는 무뇌아들의 경우를 보면 그들은 스스로 호흡을 할 수도 있고 일부 자율적 반사활동도 하며 의료기기의 도움으로 수년간 생명을 유지하는 사례도 있다. 이러한 무뇌아는 미국이나 한국의 경우 2000명에 한 명꼴로 태어난다. 만일 전뇌사를 인정하게 되면 장기이식을 위해 의도적으로 이런 무뇌아를 생산하는 부작용이 생겨날 수 있다. 이런 시도는 실제적으로 발생한 일이 있었다.

 

또 전뇌사를 인정하면 뇌사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윤리 문제가 야기되기도 한다. 이유는 뇌사자에 대한 치료는 이미 죽었다고 판정된 사람을 살리려고 하는 모순이 되므로 치료의 노력을 포기하거나 적극적인 안락사를 조장할 가능성이 생겨나게 되고 또 임신중절을 적당시 하려는 의도에 이용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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