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환, 칼빈과 언약(2)

그리스도를 통해 맺어진 새언약 속에서 완전히 성취

김순정 | 기사입력 2019/11/16 [19:33]

김인환, 칼빈과 언약(2)

그리스도를 통해 맺어진 새언약 속에서 완전히 성취

김순정 | 입력 : 2019/11/16 [19:33]

▲     ©리폼드뉴스

 

(김인환 박사는 총신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구약학을 가르쳐온 분이다. 이 글은 김인환 박사가 총신대논총에 기고한 글로 칼빈주의 신학과 언약신학의 관계성을 제시하고 있다.)

 

II. 문제제기

 

먼저 이런 분석에 들어가기 전에 일반적으로 어떤 논거에 따라 칼빈과 언약신학이 별개의 것이라고 주장하는가에 대한 여러 견해들을 소개하면서 그 문제점을 파악하고자 한다. 문제를 제기하는 학자들은 칼빈이 언약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졌고 성경의 언약이 그의 모든 신학에 얼마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에 그 논란의 초점을 맞추어서 언약신학의 기원에 그 논란의 중심점을 두고 있다. 이를 간략히 정리해 보자.

 

근간 세대주의의 정당성을 변호하는 Dallas Seminary의 Ryrie 교수는 세대주의가 근간에 발생한 하나의 신학체계임으로 교회는 이런 사상체계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는 O. T. Allis의 주장을 논박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체계화된 언약신학은 최근의 것이다. 그것은 초대교회 때 분명하게 정립된 교리가 아니다. 중세시대의 교회지도자들은 결코 이를 가르치지 않았다. 종교개혁의 지도자들은 심지어 이를 언급도 하지 않았다. 진정, 하나의 체계로서의 언약신학은 세대주의보다 결코 오래된 것이 아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의 선임 세대주의자 F. Lincoln의 입장에 동조하여 다름과 같이 더 부연해 언약신학이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이 아님을 주장했다.

 

“루터, 칼빈 혹 멜랑톤이 죄, 부패, 구원 등등 언약과 관련된 주제들을 논의하면서도 그들의 저술 속에서 언약신학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언약의 개념을 체계화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칼빈은 구속적 계시의 연속성과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언약의 개념에 대해 언급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언약신학이 아니다. 이런 종교개혁의 중심 지도자들 속에서 언약신학이 발견되어지는 것은 언약신학자가 일반적으로 다루는 내용일 뿐이며 17세기에 보다 더 풍성하게 잘 발달된 언약신학이라는 용어에 한정할 수 있는 그런 언약신학은 아니다.”

 

Ryrie의 연구에 의하면 언약 혹 연방신학의 개념이 가장 최초로 나타나는 것은 A. Hyperius, K. Olevianus, R. Eblinus 등 종교개혁 후 시대를 이끌어가던 지도자들의 신학이며 영국과 화란에서 목회하며 언약신학 혹 연방신학을 가장 잘 체계화시킨 Coccesius의 선생 W. Ames가 최초로 행위언약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Ryrie의 이런 입장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언약신학이 칼빈의 후대에 발전된 신학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에 의해 대체적으로 공통적으로 주장되는 입장이다. H. Roston III 역시 언약신학을 집대성했다고 평가되는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와 칼빈의 신학을 비교하면서 칼빈은 언약신학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으며 언약신학의 여러 새로운 내용들은 모두 그의 후계자들의 업적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입장은 이들의 시대보다 훨씬 전의 학자들에게도 발견된다. J. Orr는 Calvinism에서 언약신학은 칼빈이 죽고 난 다음 개혁신학에서 근본적으로 발달된 세 가지 신학 중의 하나였다고 주장했다.

 

P. Miller도 17세기의 New England의 Puritan 신학을 분석하면서 그들의 신학은 비록 칼빈주의에 전적으로 헌신된 입장이 아니지만 언약신학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언약신학의 은혜언약이라는 기본적 개념은 칼빈의 신학체계에는 별로 강조되지 않는 것이었으나 후기 개혁신학자들이 예정론, 하나님의 작정, 택자와 불택자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 등에 대해 지나치게 학문적으로 강조하는 것에 대한 정통 개혁신학자들의 반발로 강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칼빈의 기본적 사상체계에다 은혜언약의 체계를 가미하여 알미니안주의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우월성을 보호하고 무율법주의에 대항하여 도덕적 책임성을 보존하는데 역동적으로 사용하였으며 그 결과 칼빈이 제네바에서 기초를 놓은 신학체계와는 다른 신학체계를 세우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Miller는 이 언약신학은 칼빈주의와는 다른 신학이라고 했다. 즉 칼빈에게서 기원되지 않은 신학이라는 것이다. 칼빈과 언약신학의 관계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이런 주장 이외에도 한편 칼빈과 은혜언약과의 관계를 인정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 칼빈과 행위언약과의 관계를 부정하는 입장들이 언약신학자들의 주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19세기경 전통적 개혁신학이 도입하기를 꺼려 하던 성경신학적 방법론을 과감하게 정통개혁신학과 접목시켜 활용하면서 정통개혁신학적 성경신학의 기초를 놓은 구 Princeton 신학교의 성경신학 교수 G. Vos는 칼빈은 언약을 자주 언급하면서도 그의 신학의 중심점으로 삼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언약을 부수적이긴 하나 하나의 독립된 주제로 삼아 이론을 세운 개혁신학자들의 선두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은 오로지 은혜언약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칼빈이 행위언약에 대해 얼마나 언급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논하지 않았다. 이런 입장은 J. Murray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Murray는 칼빈의 신학에서 타락 전 언약에 관한 특별한 개념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이에 비해 Calvin 신학교의 교수였던 A.A. Hoekema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은혜언약 교리가 17세기에 화란의 Cocceius와 영국의 청교도 신학자들에 의해 기원되었다는 사실은 전혀 사실과 다른 오해임을 강조하였다. 그에 의하면 이미 2세기의 Irenaeus가 이 교리를 가르쳤으나 중세 시대에 이 교리가 별로 거론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16세기의 Zwingli와 그의 후계자 Bullinger에 의하여 이 교리가 가르쳐졌고 Calvin은 그의 기독교강요, 주석, 그의 설교에서 이 교리를 가르쳤으며 은혜언약의 교리는 칼빈의 사상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Hoekema는 비롯 Kuyper가 주장한 바 즉 행위언약에 관련된 영적 진리는 Calvin의 가르침에서 발견된다 하더라도 Calvin은 행위언약은 가르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D. A. Weir도 1984년 영국 St. Andrews 대학교에 제출한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역시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하였다. 그는 칼빈은 은혜언약의 중요성을 많이 다루어왔지만 행위언약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연방신학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칼빈의 신학 속에서 행위언약적 요소를 전혀 발견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다. 그는 칼빈의 기독교강요에서 칼빈이 하나님과 아담의 에덴 동산에서의 관계가 본질적으로 언약적인 것으로 간주한 증거를 인정하면서도 그는 행위언약과 칼빈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칼빈이 죽은 후 80년이 지난 다음 Westminster 신앙고백서에서 행위언약을 언급하게 된 그 뿌리는 1562년 Z. Ursinus가 하나님의 주권과 아담의 타락에 대한 10여년의 논쟁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데서 기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Ursinus는 동료 신학자 C. Olevianus, T. Cartwright, D. Fenner, F. Junius 등과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1590년 이후로 이 연방신학은 전 유럽을 석권하며 만개하였다고 주장했다.

 

이런 입장은 스스로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 칼빈과 언약신학과의 관계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입장은 이미 칼빈과 은혜언약과의 관계를 인정하는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칼빈의 저술 속에서 후기 언약신학자들의 주장들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주장은 그 설득력을 잃고 있다. 또 칼빈과 언약신학과의 부분적 관계를 인정하는 입장, 즉 칼빈은 은혜언약은 강조하였으나 행위언약은 가르치지 않았다는 입장은 스스로의 논리적 모순점을 노정하고 있다. 이들에 의하면 칼빈의 저술 속에서 은혜언약이라는 어휘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칼빈은 언약이라는 어휘를 사용하면서 후기 언약신학자들의 은혜언약에 관련된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이들은 칼빈이 은혜언약을 중시했다고 주장한다. 이와 더불어 이들은 칼빈의 신학 속에서 후기 언약신학자들이 주장하는 행위언약의 요소가 반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칼빈이 행위언약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만일 칼빈에게서 행위언약적 요소를 발견했다면 왜 칼빈이 행위언약을 가르쳤다고 주장하는 것을 꺼리는가? 행위언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은혜언약에 관련된 내용만큼 행위언약에 비중을 두지 않아서인가?

 

만일 칼빈이 은혜언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은혜언약에 관련된 많은 내용을 칼빈이 취급하고 있다는 이유로 칼빈은 은혜언약을 중시하였다고 주장할 수 있다면 칼빈이 행위언약에 관련된 내용들을 비록 작은 분량에서나마 취급하고 있다면 칼빈은 행위언약에 대한 기초를 놓았다고 주장할 수 있지 않는가?

 

Karberg와 Lillback은 Westminster 신학교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에서 칼빈이 어떠한 역사적 배경에서 언약에 관한 인식을 하게 되었으며 그의 신학에 이런 역사적 배경이 어떻게 언약신학을 반영되었는가를 연구 보고했다. 그들에 의하면 언약에 관한 교리는 Irenaeus와 Augustine 때부터 이미 다루어지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Lillback은 특별히 칼빈이 얼마나 Augustine의 신학에 의존하였는가를 밝히면서 이미 Augustine에게서 소위 행위언약에 대한 언급이 발견되는 이상 칼빈이 이를 놓칠리 없었다는 사실을 강조했고 칼빈과 언약신학, 특히 행위언약과의 상관성을 강력히 옹호했다.

 

그는 “칼빈이 만약 이런 문제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면 그의 시대의 문화적 신학적 맥박으로부터 비켜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현재 그가 평가받는 것처럼 거장의 주석가와 신학자로 여겨지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이런 그의 결론과 평가를 칼빈이 얼마나 언약에 관련된 어휘를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사용하고 있는가를 조사하면서 반증하기도 했다.

 

그에 의하면 칼빈이 스스로 최종적으로 개정한 그의 걸작 기독교강요 1559년 판을 분석해 볼 때 언약에 관련된 직접적 단어만 적어도 273회 정도 나타나고 있다고 하였고 언약과 관련된 다른 유사한 어휘를 모두 고려한다면 그 빈도수는 매우 강력하다고 했다. 그는 이것을 칼빈의 신학의 중심점이라고 알려진 삼위일체라는 어휘의 빈도수 26회와 비교하고 또 언약이라는 어휘가 그의 기독교강요 각권의 주제와 관련해 얼마나 사용되고 있는가를 밝히면서 “칼빈은 언약이라는 개념을 한 화제라는 개념이나 혹 몇몇 학자들이 제언하는 것처럼 어떤 단일한 분명한 주제라는 개념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음이 이러한 자료 분석의 결과를 통해 볼 때 명백하다. 대신 칼빈은 언약이라는 술어를 그의 전 역작을 총괄하는 광범위한 주제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말로 바꾸어서 말하면 언약은 칼빈 신학의 불가분의 요소로 나타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더욱이 동시대의 종교개혁 지도자였고 오늘날 복음주의의 태두라고 말할 수 있는 Luther가 언약에 대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을 감안할 때 칼빈의 언약에 대한 이런 이해와 사용은 그의 신학의 특징을 Luther의 복음주의와 구별되게 하면서 언약신학의 기초를 놓았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오늘날 언약신학은 하나님과 그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 사이에 근본적으로 언약의 관계가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이 언약의 관계는 인간이 창조되는 그 순간부터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며 이를 전통적으로 행위언약으로 명명하였으나 근간에는 이를 주로 창조언약으로 고쳐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인간이 타락된 이후에 하나님이 이 언약을 갱신하여 타락한 인간과 다시금 언약을 맺고 구속 역사 속에서 이 창조언약을 계승 성취해 가시다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성취하여 그의 백성들과 더불어 새언약을 맺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좀 더 세부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이 창조언약의 관계에서 하나님은 언약의 종주 왕이 되시고 그의 형상으로 창조한 인간을 자신의 언약의 복속 왕으로 삼아 자신이 창조한 세상을 그의 영원한 영광스러운 왕국으로 그가 안식할 영원한 안식처가 되도록 땅을 채우고 땅을 정복해야 할 의무를 부여하였다고 한다. 창조주는 그의 형상으로 창조한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대리하여 그가 창조한 피조의 세계를 다스리게 하되 자신에게 순종하며 충성을 다하도록 요구하였다.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그들을 복주시므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안식에 참여하여 영원한 축복을 누리도록 보장받게 되었다.

 

반면 불순종하면 하나님은 그를 저주하여 그들을 죽게 하겠다고 하였다. 창조주 하나님은 완전한 상태에 있는 인간의 마음속에 이 법을 새겨 놓으시고 이 법을 시행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주셨다. 이를 가시화하기 위해 동산 중앙에 있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지 못하도록 규정하였고 또 한편 생명나무를 세워 그들의 순종에 대한 영생을 보증하였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의 형상으로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였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한 몸이 되게 하는 결혼제도를 설정하시고 노동의 제도를 설정하여 충성스럽게 일하게 하시고 하나님 자신이 6일 동안 창조하시고 7일에 안식한 그의 안식을 따라 인간에게 안식의 제도를 설정하여 매 7일마다 안식하게 하므로 노동의 속박으로부터 인간을 자유하게 하면서도 또한 그 날에 인간의 모든 삶의 열매를 하나님께 헌납하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언약의 종주왕 되심을 고백하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언약으로 말미암아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간은 아담 안에서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언약의 백성으로서의 의무를 지고 있다고 헸다. 그러나 인간은 이 창조언약을 어기고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에 이르지 못하고 하나님의 저주아래 놓이게 되었고 인간은 이런 창조언약을 성취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의 원래의 완전한 상태로 회복되기 위해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에게 은총을 베풀어 그들과 더불어 새롭게 언약을 맺으면서 이 창조언약을 갱신하였다는 것이다. 이 언약을 은혜언약 혹 구속언약이라고 명명한다. 이 구속언약은 구속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다른 여러 인물과 더불어 갱신되어 오면서 유지 성취되어 오다 제2의 아담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해 맺어진 새언약 속에서 완전히 성취되어졌다는 것이다.(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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