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환, 칼빈과 언약(1)

칼빈주의 신학과 언약신학의 관계성을 제시

김순정 | 기사입력 2019/11/09 [18:40]

김인환, 칼빈과 언약(1)

칼빈주의 신학과 언약신학의 관계성을 제시

김순정 | 입력 : 2019/11/09 [18:40]

 

(김인환 박사는 총신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구약학을 가르쳐온 분이다. 이 글은 김인환 박사가 총신대논총에 기고한 글로 칼빈주의 신학과 언약신학의 관계성을 제시하고 있다.)

 

I. 서론

 

한국개신교의 전통적 신학은 칼빈주의 신학 혹 개혁신학임은 이제 보편화 되었다. 이 칼빈주의 혹은 개혁신학은 언약신학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 개신교에는 칼빈주의 신학이란 곧 언약신학이라는 사실이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필자가 총신대학교와 신학대학원에 재학 중일 때 교수님들에 의해 구약과 신약에 아주 빈번하게 등장하는 언약의 문제가 조직신학이나 성경에 관한 여러 과목에서 간간히 언급되긴 했으나 칼빈주의를 언약신학으로 동일시하여 체계적으로 가르쳐지지 않았다. 그저 언약을 하나님의 약속 정도로 생각하면서 언약과 약속을 혼용해 사용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비록 박형룡 박사님의 조직신학 책에 언약의 문제가 다루어지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조직신학의 많은 주제 중 한 주제에 지나지 않을 뿐 그 언약을 그의 신학의 바탕이나 틀이라고 여길 만큼 언약의 문제가 박형룡 박사님의 신학의 중심점이 되지 않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 결과 한국 개신교에는 언약신학이 생소하게 되었고 칼빈주의가 곧 언약신학임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여겨진다.

 

1970년데 말부터 Westminster 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유학생들이 귀국해 본교 강단에서 강의하게 되면서 성경신학을 소개하게 되고 이때부터 서서히 언약신학이 논의되기 시작하다가 필자가 1982년부터 유학에서 귀국해 본교 신학대학원에 언약신학과 성경신학 강좌를 개설하여 이를 본격적으로 가르치고 또 대학에서 칼빈주의 강좌와 필자가 담당하게 된 구약의 여러 강좌에서 이를 본격적으로 가르치게 되면서부터 칼빈주의와 언약신학이 일치함을 주지시키기 시작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과거에 이런 강좌가 개설되어 체계적으로 강의가 이루어진 적이 없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입증해 주기 때문이다. 그 이후 성경신학을 연구한 많은 교수들이 영입되어 강의를 해 옴으로 적어도 우리 교단의 젊은 목회자들은 이제 언약신학이 칼빈주의 신학임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아직도 조직신학이나 역사신학, 실천신학에서 이러한 관점이 충분히 소화되어 그 신학 영역이 언약신학적 안목으로 정착되지 않는 현실이기에 칼빈주의가 언약신학으로 동일시되어 칼빈주의를 칼빈주의답게 이해하고 그것을 우리들의 삶에 적용하여 진정한 칼빈주의자로서의 역동적 삶을 실천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우리 교단의 80년대 이전에 총신을 졸업한 대부분의 목회자들에게는 여전히 이런 신학이 생소하게만 여겨지는 현실을 감안할 때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서구의 신학계에서는 그것이 자유주의이건 보수주의이건 간에 칼빈주의 신학 혹 개혁신학이란 곧 언약신학이라는 사실에 대해 이견이 없다. 우리들의 칼빈주의와 같은 복음주의적 신학의 입장을 견지하는 세대주의 신학은 그 신학적 입장에서 우리들의 전통적 개혁신학과 같거나 유사한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상당한 신학적 식견을 갖지 않고는 사실 그 구분이 쉽지 않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세대주의 신학자들도 자신의 신학과 우리들의 전통적 개혁신학을 구분하면서 우리들의 개혁신학 혹 칼빈주의 신학은 언약신학이라고 명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국 개신교가 칼빈주의임을 자처하면서도 이런 언약신학을 소홀히 한다던가 칼빈주의 신학을 한다면서 칼빈의 개인적 신학입장을 그대로 고수하는데만 몰두한다면 한국개신교의 칼빈주의를 세계의 개혁교회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올바르게 발전시키기는 어렵다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칼빈주의란 칼빈의 신학을 그대로 고수하는 신학이 아니라 칼빈이 이해하였던 성경관에 기초여 그 성경의 가르침을 더욱 분명한 체계로 성숙시키는 성실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의 사상의 유기적 체계를 일컫기 때문이다.

 

칼빈의 주석과 그의 대작 기독교강요를 읽어보면 칼빈은 구속역사의 관점에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하고 하나님의 모든 구원활동을 이해하였으며 흔히 칼빈의 중심 사상인 하나님 주권사상도 이러한 그의 구속사의 안목에서 성경을 이해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Westminster 신학교에 제출한 Ph. D. 논문에서 M. W. Karlberg는 칼빈의 신학은 본질상 성경신학적인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한국개신교가 칼빈주의를 강조하면서도 구속역사의 안목에서 형성된 언약신학을 소홀히 한 채 칼빈주의를 철학적이거나 교리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신학과 교회에 적용한 나머지 오늘의 한국개신교 신학과 교회는 사변화되어 있거나 경직되어 있으며 이를 혐오하는 일반 풍조에 발맞추어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채 아예 오순절 교회의 체험 우선주의를 비롯하여 우리 주변에 범람하는 각종 교회성장지상주의 신학을 수용한 혼합주의로 전락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한국개신교회가 이를 잡아 하루 속히 올바른 칼빈주의를 확립하여 본래의 칼빈주의의 역동성에 힘입은 신앙과 신학, 교회 생활을 정착시키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는 칼빈주의가 지향하는 삶 전체의 전 포괄적인 하나님 나라를 정착시키고 그리스도가 왕으로 통치하는 문화, 학문, 교회와 우리들의 개인생활을 추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 날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칼빈주의를 언약신학으로 정착시켜 세계의 개혁교회와 어깨를 나란히 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이와 상관된 중요한 오해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그 오해란 다름 아니나 많은 학자들은 칼빈은 언약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 언약사상을 그의 신학의 중심으로 삼지 않은 이상 칼빈주의가 언약신학으로 동일시되는 것은 어디가지나 칼빈 자신의 사상이라기 보다는 후대의 칼빈주의 학자들에 의해 발전된 결과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성립된다면 칼빈과 현대의 칼빈주의는 별개의 것이라는 주장이 성립된다. 이런 주장은 매우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칼빈주의란 칼빈의 신학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칼빈이 가졌던 신학적 안목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진 삶의 체계이다. 그러므로 칼빈주의 신학이 반드시 칼빈의 신학 그 자체일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칼빈주의 신학이 칼빈의 신학사상을 떠난 별개의 신학일 수는 없는 것이다. 칼빈의 신학적 안목을 기초로 세워진 사상이 칼빈주의라고 한다면 칼빈주의는 분명 칼빈의 신학을 기본으로 하여 그의 신학을 계승 발전시킨 신학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칼빈과 칼빈주의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칼빈주의가 언약신학과 동일시되는 시점에서 칼빈과 언약신학이 상관없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본 고에서는 칼빈과 언약신학의 상관관계를 논하면서 이런 모순점이나 오해를 제거하고자 한다. 미리 결론을 말하면 흔히 주장되는 바와 같이 칼빈은 결코 언약의 문제를 소홀히 취급하지 않았고 오늘의 언약신학의 바탕과 내용이 비록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칼빈의 신학에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칼빈의 신학이 곧 언약신학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이 문제를 칼빈의 주요 저서인 기독교강요와 그의 주석을 분석함으로 설명하고자 한다.(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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