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 박사, 칼빈주의적 예배의 원리 I

하나님께 대하여 마음으로 경배하며 공동으로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

김순정 | 기사입력 2019/09/21 [17:09]

정성구 박사, 칼빈주의적 예배의 원리 I

하나님께 대하여 마음으로 경배하며 공동으로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

김순정 | 입력 : 2019/09/21 [17:09]

▲정성구 목사     © 리폼드뉴스

 

총신대에서 오랫동안 실천신학을 가르치며 후학을 길러온 정성구 박사는 칼빈주의적 예배와 설교를 위해 많은 연구를 해왔다. 이 논문은 칼빈주의적 예배의 원리가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집어주고 오늘 우리 장로교회의 예배가 나아갈 바를 제시해 주고 있다.

 

서론

 

모든 종교에는 예배가 있다. 기독교도 예배의 종교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예배는 다른 종교의 예배 행위와 같은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예배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며 성경의 계시에 기초한 예배이다. 그러나 타종교의 예배는 인간의 편의와 욕구충족을 위해 행해지는 예배이다. 이미 창세기에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참된 예배와 거짓된 예배 사이의 분기점을 제시하여 준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계시한대로 속죄의 제물이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중심한 예배인가 아니면 인간의 자기방식과 생각대로의 예배인가는 인류역사가 두고두고 논쟁점이 되어 왔다.

 

다시 말하면 인본주의적 예배냐 아니면 신본주의적 예배냐의 갈림길이다. 그렇기에 참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참된 신앙을 지키는 일이며 진정한 성경적 기독교를 지키는 일이 된다. 그렇다면 기독교회라고 하더라도 참으로 성경에 합당한 예배정신과 예배방법인가에 따라서 퍽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겠다. 여기에 신학의 갈림길이 있고 예배신학의 토론이 있게 된다.

 

오늘의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예배는 단순히 로마 가톨릭의 미사의 수정이나 갱신이 아니다. 개혁교회의 예배는 멀리는 구약과 신약, 회당과 초대교회 등의 배경을 가지며 가까이는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 사건 위에서 그 맥을 찾아야 할 것이다. 종교개혁은 바로 예배의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개혁교회의 예배원리는 성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사실 오늘날의 교회는 예배혼란의 시대에 살고 있다.

 

장로교회도 오순절교회 같고 감리교회도 장로교회 같은 현상이다. 이런 것은 오늘의 교회들이 지나치게 교회성장과 숫자적 부흥을 추구하다 보니 편의에 의해서 또는 대중들의 취향에 맞게 실용적으로 예배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예배신학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것이다.

 

이 소론에서는 장로교회로서 칼빈주의적인 입장에서의 예배의 원리와 성격이 무엇인가를 다루는 것으로 제한하려고 한다. 이런 시도는 오늘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 한국교회 예배의 반성과 최근의 동향

 

최근에 한국교회 안에서는 실천신학에 대한 학문적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교회 설립 100주년을 전후해서 지금까지의 한국교회의 신학과 신앙의 문제들을 반성하고 재조명하는 일들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그 중에도 때늦은 감은 없지 않으나 한국교회의 예배문제를 검토, 비판하고 여기에 대한 방향모색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2. 칼빈주의적 예배의 이해

 

예배란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마음으로 경배하며 공동으로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는 예배는 영원자에 대한 피조자의 응답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또 미국의 대설교가 죤 멕카드는 “예배는 최상의 존재에게 표하는 경이이다. 그것은 최상의 존재에게 존경, 경의, 찬양,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그러므로 예배는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경의와 존경을 드리는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인 우리가 주일에 함께 모이는 이유이다.-설교와 음악은 우리 마음 속에 그를 존경하려는 바람을 낳는 자극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결국 일반적 의미에서의 예배란 경배로서의 예배, 말씀선포로서의 예배, 헌신으로서의 예배, 교제로서의 예배, 새롭게 되는 예배, 문답을 드림으로서의 예배, 생활로서의 예배를 지적하게 된다. 예배에 대한 바른 인식은 사람의 첫째 의무가 하나님께 영광을 들리는데 있으며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 예배를 받으시고 참된 예배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귀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예배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은총의 계시가 창조와 구속의 역사 속에 나타났기에 거기에 대한 응답적 행위로 감사와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다. 따라서 예배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하신 것과 거기에 대한 인간의 응답으로서 대화와 만남으로 이해되어진다.

 

그런데 칼빈주의적 입장에서 예배의 이해는 위의 것들과 무엇이 다른가? 칼빈주의적 입장에서의 예배는 다음과 같은 강조점이 있을 수 있겠다. 우선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과의 관계성에서 예배의 의미를 찾는다. 칼빈은 인간에게는 신의식이 있는데 이것이 종교의 씨앗으로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예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칼빈주의적 예배 또는 개혁파 교회의 예배 이해는 우선 1542년에 나온 칼빈의 ‘교회기도의 본’과 1644년의 ‘공예배에 대한 웨스트민스터 규칙서’가 그 기초가 되는 것이다. 결국 칼빈주의적 예배 이해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그의 교회가 축복받음으로써 하나님과 공동체로서의 그의 백성이 만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1)그러므로 예배는 만남이다.

 

예배는 개인적이고 정신적인 활동의 영역도 아니고 명상도 아니다. 명상은 매우 고상한 종교적 행위이다. 그러나 예배는 그러한 종교적 명상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외아들을 희생시켜 이룩하신 신비스런 구속을 통해 인간과 만나도록 하신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 카이퍼는 예배를 가리켜 “화목된 공동체로서 하나님과의 만남”이란 말로 표현했다.

 

2)예배는 집단적 만남이다.

 

개인적이고 은밀하고 경건한 경험들도 일종의 예배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것은 예배일 수 없다. 예배는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과 기도로써 하나님께 아뢰는 예배 행위를 말한다. 그러므로 개인적 헌신, 친구들끼리의 헌신, 또는 경험이나 간증을 나누는 것 등은 집단적 예배일 수 없다.

 

3)예배는 규칙을 따라서 하는 집단적 만남이다.

 

여기서 규칙에 따른다는 것은 시간이나 장소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예배는 일정한 질서와 규범을 띠라 행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예배의 질서를 이른바 예배의식이라고 부른다. 예배의식은 마치 비유하건데 요리법과 같다고나 할까. 좋은 요리사는 좋은 요리법을 갖고 있듯 모든 교회들은 자신들의 예배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예배의식은 예배를 도와주는 것뿐이고 예배의식이 예배의 전부는 아닌 것이다. 그래서 개혁파교회 또는 장로교회는 그 나름대로의 예배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예배의식은 예배를 좀 더 바르게 하기 위한 조력자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예배의식과 예배는 구별되어야 하나 그 둘은 서로 나눌 수는 없는 것이다.

 

4)예배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일어나는 규칙적이고 집단적인 만남이다.

 

가끔 예배란 말을 대화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예배 순서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순서도 있고 회중들이 응답하는 순서가 있어 예배를 대화로 생각하지 모르겠다. 그러나 예배가 대화란 말은 불완전하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대화란 동격인 상태에서의 행위이다. 그런데 예배는 하나님의 초청에 의해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 드리는 것이다. 대화는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는 것이지만 예배는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규칙을 따라서 만나는 것이어야 한다.

 

5)예배는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면서의 만남이다.

 

찬양은 예배에 있어 가장 중요한 목적이며 필수적 내용이다. 시편에서는 예배의 성격을 나타내는 근본적 단어 찬양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또 다른 성경에서는 예배의 특징을 짓는 말로 여호와 하나님을 노래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예배는 예배자가 멋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경건한 두려움으로 죄를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은총을 바라보면서 예배하는 것이다.

 

6)예배는 축복받은 교회 안에서의 만남이다.

 

성도들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릴 뿐 아니라 받기도 한다. 그의 백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은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통한 결과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예배를 통해서 받는 축복의 원천이다. 예배 시간에 받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축복이 되는 것이다. 예배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은 네 번 정도 청중들에게 선포된다. 첫째는 예배가 시작될 때 성도들에게 문안의 말씀이 되겠고, 둘째는 죄의 고백에 따른 용서의 말씀이다. 그리고 셋째는 설교 시간에 성도들을 위로하며 감화하며 깨닫도록 하며 하나님께 헌신하게 하는 교훈의 말씀이다. 넷째는 한 주간 동안 승리의 생활을 하도록 그의 백성에게 약속하는 축복의 말씀이다. 이 같은 요소들은 칼빈주의적 교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예배의 한 모습일 것이다.(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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