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정목사 설교] 예레미야의 탄식과 하나님

애 1:1-22

김순정 | 기사입력 2019/07/06 [19:28]

[김순정목사 설교] 예레미야의 탄식과 하나님

애 1:1-22

김순정 | 입력 : 2019/07/06 [19:28]

 

예레미야애가는 5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성경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BC 587-586년에 기록한 것입니다. 이 성경이 기록될 당시는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파괴하는 시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남유다 왕국의 죄를 지적하시고 언약백성답게 신앙을 회복하고, 모든 정치 사회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회복할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그러나 남유다는 왕부터 백성까지 모두 이를 거부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대로 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징계의 잔이 너무나 참혹했습니다.

 

그 심판 중에서도 하나님은 택한 자(남은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회복을 약속해주십니다. 이것은 장차 신약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약속하는 말씀입니다.

 

1. 예레미야의 탄식(1-11)

 

예레미야애가는 1:1에 슬프다(에카)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감탄사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라는 의미입니다. 구약성경에 이 단어가 총 82회 쓰였는데 그 중 4회가 애가에 쓰입니다(1:1; 2:1; 4:1; 4:2).

 

원래 예루살렘 성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며 왕래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적막하게 되었습니다. 열국 중에 크던 예루살렘이 이제는 과부같이 되고 공주 갔던 예루살렘이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습니다(1). 이것은 비유입니다. 예루살렘의 영광이 사라지고 이제는 비참한 상태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루살렘을 위로하는 자도 없고 친구들도 다 배신하여 원수가 되었습니다(2). 유다백성은 바벨론에 의해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전에 시온의 대로는 절기를 지키러 오는 사람들로 붐비고 시끄러웠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길로 다니는 사람이 없습니다(4).

 

이렇게 된 이유는 5절에 나옵니다.

 

“그의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이 형통함은 그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곤고하게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5).

 

남유다의 죄악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모든 영광이 떠났습니다. 모든 즐거움이 사라지고 환난과 유리하는 고통이 찾아왔습니다(6-7). 예루살렘은 범죄함으로 다른 나라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전에 유다 왕국에 조공을 바치던 사람들도 이제는 업신여깁니다(8).

 

이러한 유다의 비참함을 바라보면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자비, 돌보심을 간구합니다.

 

“그 모든 백성이 생명을 이으려고 보물로 먹을 것들을 바꾸었더니 지금도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나이다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돌보시옵소서”(11).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기 위해 포위했습니다. 그리고 성 안으로 아무것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차단했습니다. 결국 예루살렘은 1년 6개월 동안 갇혀있게 되고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왕하 25장).

 

2. 여호와의 진노하시는 날(12-19)

 

예레미야는 유다의 고통을 마치 자신의 고통처럼 묘사합니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시는 날에 유다를 괴롭게 하셨습니다(12).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높은 곳에서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시고 내 발 앞에 그물을 치사 나로 물러가게 하셨음이여 종일토록 나를 피곤하게 하여 황폐하게 하셨도다 내 죄악의 멍에를 그의 손으로 묶고 얽어 내 목에 올리사 내 힘을 피곤하게 하셨음이여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자의 손에 주께서 나를 넘기셨도다”(13-14).

 

그래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내리신 형벌로 인해 눈물을 흘렸습니다(16). 눈물이 마치 물처럼 흘러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사방에 대적들이 두셨습니다(17). 그래서 유다는 고립되고 멸망의 기로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형벌의 원인은 바로 유다의 죄악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분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언약을 지키면 유다는 평안의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길을 버리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바로 죄악의 길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그 길을 택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 책임을 감당해야 했습니다(18).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그러나 내가 그의 명령을 거역하였도다 너희 모든 백성들아 내 말을 듣고 내 고통을 볼지어다 나의 처녀들과 나의 청년들이 사로잡혀 갔도다”(18).

 

신 29:22-28에 보면 언약을 파기할 경우 주어지는 형벌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 뒤에 일어나는 너희의 자손과 멀리서 오는 객이 그 땅의 재앙과 여호와께서 그 땅에 유행시키시는 질병을 보며 23 그 온 땅이 유황이 되며 소금이 되며 또 불에 타서 심지도 못하며 결실함도 없으며 거기에는 아무 풀도 나지 아니함이 옛적에 여호와께서 진노와 격분으로 멸하신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의 무너짐과 같음을 보고 물을 것이요 24 여러 나라 사람들도 묻기를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이 땅에 이같이 행하셨느냐 이같이 크고 맹렬하게 노하심은 무슨 뜻이냐 하면 25 그 때에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그 무리가 자기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버리고 26 가서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지도 아니한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고 절한 까닭이라 27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땅에 진노하사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재앙을 내리시고 28 여호와께서 또 진노와 격분과 크게 통한하심으로 그들을 이 땅에서 뽑아내사 다른 나라에 내던지심이 오늘과 같다 하리라”(신 29:22-28).

 

바로 이 말씀의 성취입니다.

 

3.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 예레미야(20-22)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은혜를 간구합니다. 마치 유다의 반역이 자신의 반역인 것처럼 묘사합니다. 이것은 유다를 위한 회개입니다.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내가 환난을 당하여 나의 애를 다 태우고 나의 마음이 상하오니 나의 반역이 심히 큼이니이다 밖에서는 칼이 내 아들을 빼앗아 가고 집 안에서는 죽음 같은 것이 있나이다”(20).

 

예레미야는 탄식합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위로자가 없습니다. 오히려 원수들은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행하신 심판을 보고 기뻐합니다. 예레미야는 “그 선포하신 날”(욤 카라트)이 이르게 하셔서 유다를 조롱하던 그들도 유다와 같이 심판을 받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21).

 

여기 그 선포하신 날은 하나님께서 유다를 대적한 악인들에게 보복하기로 작정하신 날입니다. 1차적으로는 바벨론의 파멸의 날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최후의 날입니다. 그 날에 교회를 박해하고 하나님을 무시하던 세상은 철저하게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최후의 날에 그 백성에게 구원과 평안,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위로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악인에게는 철저한 심판이 주어질 것입니다. 구약의 예언서는 그 날을 여호와의 날이라고 합니다.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사 2:12).

 

“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 땅을 황폐하게 하며 그 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사 13:9).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욜 2:31).

  

결론

 

하나님은 범죄한 유다, 언약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유다를 벌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바벨론을 통한 심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70년 후에 회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실 것입니다.

 

그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의 죄악으로부터 분리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절대로 믿음에서 이탈하는 길을 가서는 안됩니다.

 

비록 우리가 세상에서 믿음 때문에 비난과 오해와 박해를 받는다고 해도 낙심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바라보면서 담대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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